[양판소]아버지처럼 되기 싫었어요 (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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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말하지만 이 글은 양판소(……야)이므로 개념이 없고 명랑소설이므로 어이없는 일도 일어날 수 있는 막장입니다^^;;; 양판소의 깽판이 싫으신 분은 조용히 백스페이스로 넘어가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작중에 언급되는 인물, 사건, 지명 등은 실제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습니다. 묘한 것이 보여도 신경 쓰지 마세요. 깊게 생각하면 지는 겁니다. 이 글은 양판소이니까요.
*이 글에 대한 저작권은 저에게 있을지도 모르나 행사할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왜냐하면 양판소니까요.
*이 글은 명랑소설을 지향하고 있으나……양판소이므로 깽판입니다.
[양판소]아버지처럼 되기 싫었어요
55話 센타이 - 노르딕 전쟁1 : 참전
110.
프리그 왕국에서 ‘나’라는 녀석, 세진 알카로이드가 아내들의 영생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동안 나는 약간 골치 아픈 일을 겪어야 했다. 크게 신경 쓰지 않고 있던 노르딕이라는 해적무리들이 통합된 것 같다는 정보를 입수하자마자 터져버린 전쟁 때문이었다.
센타이 - 노르딕 전쟁의 발발이었다.
“원래라면 신경 쓰지 않아도 될 싸움인데 어째서…….”
센타이는 타클란 제국에 종속된 왕국이라 우리 미시어스 제국 쪽에서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될 전쟁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타클란 제국이 센타이를 돕기 위해 파견한 병력은 한 번의 회전에서 모두 전멸해버렸다. 개활지에서의 회전에서 타클란 제국의 기병대가 전멸한 것은 충격이었던 듯 타클란에서는 추가 병력을 파견할 엄두도 내지 못하게 되었다. 이에 다급해진 센타이에서는 타클란에 양해를 구하고 우리에게 구원을 요청하게 된 것이다.
“센타이 다음은 타클란과 미시어스입니다! 부디 도와주십시오!”
사절의 절규를 닮은 요청에 나는 머리를 싸매쥐었다. 명분은 충분하다. 하지만 실리가 있느냐 없느냐에는 의문이 생긴다. 실제로 모른척하고 노르딕들과 교섭을 해버리면 상관이 없으니까. 오히려 제국의 서북방에 투입할 수 있는 병력을 줄일 수 있는 기회가 될 수도 있다. 그리고 우리와 동맹을 맺게 되면 새로운 시장을 개척할 수 있는 기회가 된다. 이 해적들을 믿을 수 있을지 없을지는 차치하고서 말이다.
“저희 황제폐하께서는 이번에 미시어스에서 도움을 주신다면 앞으로 50년간 평화로운 양국관계를 존속시키겠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부끄러운 일이지만 단 한 번의 회전에서 1만에 달하는 기병대가 전멸한 일로 지금 타클란에서는 참전파와 부전파로 나뉘어 어지러운 상태라……. 당장 도움을 줄 수 있는 국가로 미시어스를 생각하신 셈입니다. 부탁드립니다.”
그런 고민을 하고 있는 나에게 센타이 왕국의 사절과 함께 날아온 타클란 제국의 사절, 나타샤 28황녀가 거듭 요청했다. 자신의 딸이자 연인을 보낼 정도라면 이번 사안에 대해서 진심으로 나설 용의가 있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라 생각해도 무방할까?
“…….”
아니, 수십년이라는 세월동안 제국을 통치해온 황제가 그리 간단히 움직일 리는 없었다. 아마 내가 병력을 파견하는데 어깃장을 놓는다고 하더라도 크게 노하지는 않으리라. 무엇인가 꾀하는 바가 있다는 이야기일 것이다. 내가 병력을 파견하면 자존심이 상한 타클란 제국에서는 더 많은 병력을 파견함과 동시에 의용병을 모을 것이고 전쟁이 어떻게 진행되든 영지를 통치하지 못하는 귀족들은 그 힘이 약화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반대로 내가 병력을 파견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센타이가 종속의 연을 맺은 타클란 제국이 아닌 미시어스 제국에 병력을 요청했다는 사실은 귀족들의 명예에 큰 흠집이 남길 것이다. 병력을 파견하자고 제안한 사람은 황제이며 그것을 반대한 것은 귀족들이니까.
이것을 센타이 왕국 쪽에서의 민심 쪽으로 적용해본다면 어느 쪽이라도 타클란 제국의 황제는 그들을 위해 노력해주었다는 결과가 되니 타클란 제국 황제 만만세가 되는 셈이다. 내가 참전하지 않는다면 센타이 왕국의 국민들은 나를 욕하겠지만. 그리고 우호적인 분위기는 전쟁 후에는 참담할 정도로 적대적으로 돌변할 것이다. 타클란 제국으로 상행을 떠나는 상인들에게는 크나큰 걸림돌이 될 것이고.
뭐, 어느 쪽으로 가더라도 나는 이용을 당하는 셈이군. 이용을 당할 상황이라면 적극적으로 이용당해주도록 하지. 노회한 황제의 술수에 쓰게 웃으면서 나는 센타이 왕국의 사절에게 시선을 돌렸다. 도움이 필요하다고 절절하게 호소하는 눈빛이다.
“현재 전황은 어떠합니까?”
내 말에 내가 조금은 마음을 돌렸다는 것을 깨달았던지 센타이 왕국의 사절은 묻지도 않은 것까지 모두 고해주었다. 그리고 그의 나라를 생각하는 진실한 마음이 원로원의원들과 행정관들의 마음을 움직였던지 그들은 병력을 파견하는데 찬성표를 던졌다.198표의 찬성표와 102표의 반대표. 이것으로 미시어스 제국은 센타이 - 노르딕 전쟁에 총 2만의 병력을 파견하기로 했다. 그리고 우리 미시어스 제국이 움직인다는 소식을 들은 타클란에서도 5만의 추가병력과 자원한 의용병들을 파견하기로 합의했다. 그 소식을 들은 나는 나타샤 황녀에게 미소를 지어주었다.
“이것으로 헤빌 황제께서 원하시던 것은 모두 이룬 셈이군요?”
“저로서는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릴 수밖에 없네요.”
“그렇군요. 뭐, 우방국이라는 직함은 감사히 받도록 하지요.”
어쩐지 이 세계에 와서는 처음으로 손해보는 일을 하고 있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느긋한 마음으로 좋게 생각해본다. 그런 나에게 나타샤 황녀는 다음 제안을 꺼냈다.
“그래서 말인데 우호의 증거로 국혼을 맺는 것도…….”
“거절하겠습니다. 보스트롤은 사절합니다.”
“최근에 15살이 되어서 황녀로 인정받은 아이인데, 그 언니는 아니라구요?”
“아내들의 눈치가 보여서 거절해두렵니다.”
그 아버지에 그 딸이라고 나타샤 황녀도 제법 능구렁이였다. 하지만 능구렁이라고 하더라도 이런 사람들을 상대하는 것은 꽤나 유쾌한 일이다. 그 능구렁이들이 나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다면 더더욱 더.
“그 애는 황태자 전하의 초상화를 몇 개씩이나 가지고 있는데 충격이 크겠네요.”
“좋은 사람이 있을 겁니다.”
“냉정하시네요.”
물론 짜증나는 점도 있겠지만.
나, 나는 분명히 거절해두었다고? 그런 시선으로 나를 보지 말라고 사랑하는 마누라님들!
.
.
센타이 왕국은 미시어스 제국과 타클란 제국 사이에 있는 나라로 대륙 동북부에 위치한 왕국이다. 그 지정학적 위치는 19세기 동남아시아를 털고 있던 영국과 프랑스가 중간 지점으로 두었던 타이와 비슷하다고 할까. 타클란 제국과 종속의 연을 맺고 있음에도 미시어스 제국과의 사이도 크게 나쁘지는 않은 그런 국가였다. 말하자면 살아남는 데에는 도가 튼 나라이고 다른 말로 하면 평화를 숭상하는 나라라고 할 수 있겠다. 그 평화가 너무 지나친 나머지 국방을 소홀히 한 것이 문제였지만.
센타이 왕국의 지형을 살펴보자. 센타이 왕국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는데 하나는 반도이고 하나는 초원이나 다름없는 산맥으로 둘러싸인 내륙의 평원지대이다. 그 내륙의 평원지대에는 아직도 문명화되지 않은 야만족들이 살고 있어 가끔 미시어스 제국의 국경을 어지럽히기도 하고 타클란 제국에 까불기도 하고 센타이 왕국을 털기도 하면서 문제를 일으킨다. 그래서 가끔 세 나라에서 합동으로 소탕전을 펼치기도 하지만 그것도 한계가 있었다. 치고 빠지는 데에는 도리가 없다. 그래서 센타이 왕국은 항상 이 부근에 병력을 집중시켜두고 있다. 말하자면 센타이 왕국의 육군은 이 야만족들을 상대하는데 특화되어 있다는 이야기이다. 따라서 해적인 노르딕들이 쳐들어오면 내륙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 적당한 수준에서 쫓아내기를 반복했다. 그 말은 해적들이 각 씨족별로 분산된 상태에서 쳐들어올 때에는 이것만으로도 충분했지만 이런 대규모 침공에는 버틸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뭐, 그런 패턴이 지속되었다면 이런 식으로 해두는 것이 제일 효율적이긴 했지만.’
어쨌거나 다른 왕국과는 달리 제국들의 틈에 끼어서 힘을 못 쓰고 있는 처지이기는 했지만 사람들은 근면하고 물자도 풍부한 나라였다. 덕분에 타클란 제국까지 갈 필요도 없이 센타이 왕국에 교역품을 부리고 센타이 왕국의 특산물들을 싣고 오는 사람들도 제법 존재할 정도다. 먼저 말해둔 것이지만 이들은 평화를 숭상하며 제 나름대로의 문화를 발전시킨 덕분에 아마 양대 제국 사이에 끼어있지 않고 저 중앙 대륙에 속해 있었다면 필시 강국이라고 불렸을 정도의 국력을 자랑하는 나라였다. 이번에 해적이나 다름없는 노르딕이 쳐들어와서 파죽지세로 밀리고 있지만 않았다면 자긍심을 가졌어도 되었을 정도다.
이거 왠지 임진왜란 전의 조선과 비슷한데……기분 탓이겠지?
“다시 묻는 것이지만 아까 말씀하신 전황에는 이상이 없는 것이겠지요?”
“그렇습니다. 전하.”
“그렇다면 우리가 상대해야 할 노르딕에 대해 아시는 바를 말씀해주시겠소?”
부끄러운 일이지만 노르딕에 대해서는 전혀 정보를 모은 적이 없으므로 나도 아는 바가 없다. 하지만 다행히도 노르딕의 해적질에 진절머리가 나 있던 센타이 왕국에서는 그들에 대해 이런저런 정보들을 가지고 있었다. 사절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리고 사절의 이야기를 듣고 느낀 점은 간단했다.
“이 무슨 일본 전국시대 이야기냐.”
노르딕은 센타이 왕국의 북동쪽의 군도에서 살아가는 해적들을 말한다. 원래라면 그곳은 무척이나 추워 사람들이 많이 거주하기에 적합하지는 않지만 365일 분화하는 화산 덕분인지 온난한 기후를 가진 곳이다. 그들은 씨족별로 별도의 섬에 모여서 살며 서로를 봐도 못 본 척하면서 살아간다고 흔히 알려져 있었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의 상식을 무시한 사람이 있었다. 십 수 년 전, 씨족별로 나뉘어 제각기 살고 있던 그들을 하나로 통합한 자가 있었던 것이다. 일단 해적왕이라고 지칭해두자. 그런데 해적왕 그 자는 부하의 배신으로 죽어버렸고 다른 부하들은 그의 뒤를 잇기 위해 치열한 내전을 벌였다. 그리고 그 내전에서 승리한 것은 해적왕의 수발을 들다가 일군을 맡게 된 머리만 좋았던 인물이었다. 마치 오다 노부나가와 도요토미 히데요시다. 아무래도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없는 것 같지만.
어쨌든 이 싸움 후 노르딕의 왕이 된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아니라 제 2대 해적왕, 이름은 쥐엘 프료상이라고 하는 남자는 이 세상에서 자신이 못할 것은 없으며 자신은 이 세상을 모두 정복할 운명의 남자라고 믿어버린 것 같다고 했다. 그리고 센타이를 점령하여 세계 정복의 기반으로 삼으려고 했단다. 웃긴 녀석이다.
“이 무슨 천축돌파 사루라간도 아니고, 과대망상증 환자로구만.”
하지만 그렇게 웃을 수만은 없는 것이 나는 실제로 그런 망상을 가진 녀석을 알고 있다. 실제로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큐슈를 기반으로 조선을 정벌, 조선을 기반으로 명을 정복한다는 계획을 세웠으며 유구(오키나와)를 기반으로 대만과 동남아를 정복한 후 동남아와 명을 기반으로 천축까지 정복하겠다는 웅대한 망상을 펼쳤다고 들었다. 참고로 사루는 일본어로 원숭이를 가리키는 말로 현대에 알려진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별명이다.
오다 노부나가는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사루(원숭이)라기 보다는 대머리쥐라고 불렀다는 미확인 정보가 있기는 하지만.
‘남 일 같지 않아서 도와준다고 하면 후세 사람들이 비웃겠지?’
여하튼 여기까지 이야기를 듣고 난 나는 센타이 왕국을 도와주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그것이 비록 내가 바꿀 수 없는 과거의 역사에 대한 분풀이라 그럴 필요가 없더라도 말이다. 어쨌든 아버지에게 이 일을 보고한다. 아버지는 며칠 정도 어머님들의 어택에 실신해있는 상황이었지만 이야기는 제대로 들어주었다. 그리고 말하길,
“나 거기에 가면 안될까?”
라고 애원하는 듯한 눈으로 나에게 말했다. 눈에는 눈물이 가득 고여있는 상태. 그리고 가슴에 손을 모으고 애원하는 태도에 조금 그렇게 해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아버지가 그곳에 가면 필시 전쟁은 삽시간에 끝나겠지만 어머님들의 보복이 두려우므로 당연히 불가. 나는 거절했다.
“전 죽기 싫습니다.”
“잘 생각했구나. 진아.”
그리고 어디엔가 숨어있었던 어머니, 아라니엔이 방긋 웃으면서 등 뒤에 지옥의 업화를 이글이글 불태우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거절하기를 잘했다는 생각을 한다. 잠시 후, 어머니에게 끌려간 아버지가 교성을 올리는 소리를 들었지만 크게 신경은 쓰지 않는다. 눈물을 머금은 주제에 할 말은 아니지만 어머니의 캐릭터가 조금 변한 것 같다.
‘역시 여자들은 악마를 마음속에 품고 있는 거야. 다정하고 다감한 어머니까지…….’
아내들에게 책잡힐 일은 하지 말아야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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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긋한 마음……은 아니고 조금은 안절부절하며 선발대로 보낸 기병 1천에게서 소식이 들려오기를 기다린다. 보름 만에 한양을 점령당한 조선과는 달리 센타이는 잘 방어해내고 있었다. 덕분에 국경을 넘어 센타이의 수도, 하네른으로 향하고 있는 나머지 1만 9천의 병력이 제시간에 도착할 수 있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을 정도가 되었다. 타클란 제국군을 전멸시켰다는 노르딕의 정체모를 무기가 마음에 걸리기는 했지만 아버지가 체계를 세우고 훈련시킨 미시어스 제국군을 믿어보자. 물론 나는 이곳 일도르프에서 정무나 보고 책이나 보거나 아내들과 즐거운 나날을 보내고 있으니 뭐라 할 입장은 못 되겠지만.
“보고가 들어왔습니다……파견 제 1기병대 전멸! 생존자 없음! 센타이 의용군 3만도 전멸했습니다! 노르딕들도 타격을 입었는지 움직이지 못하고 있는 틈을 타 일부 병력만이 살아서 후퇴하고 있습니다! 아, 방금 통신이 새로 들어왔습니다. 센타이 왕국에서 사죄의 사절이 도착할 예정입니다. 그쪽에서는 이것이 함정일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대국의 병력을 몰살시킨 꼴이 되었다면서…….”
“뭐?”
그런데 불안을 현실로 만들어버린 외침이 들려왔다. 파견 제 1기병대는 전원이 오러소드를 사용할 수 있는 엘리트 집단이었는데 그것을 전멸시켰다고 한다. 게다가 의용군이라고 하지만 지금까지 거점을 잘 방어해온 3만이라는 병력들이 일순간에 소실되었다고 한다. 말도 되지 않는다. 마법이라면 제 1기병대가 입고 있는 갑주가 모두 방어해줄 텐데.
“사절에게는 위로를 해주고……거짓말인지 아닌지는 확실히 판별해보도록. 마법을 사용해도 좋다. 그걸 감안해서 보냈을 테니까. 그건 그렇고 마지막 보고, 음성인가, 화상인가.”
“화상이었습니다.”
“다행이군.”
아무래도 이 세계에 변화가 일어날 모양이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체계의 무기가 새로이 등장했음을 느낀다. 그들 사이에 소드마스터나 그랜드마스터 같은 일인 군단들은 없을 것이다. 마법도 사용할 수 없고 무공도, 오러도 사용할 수 없는 저주받은 자들. 그들에게 남은 것은 육체적인 힘과 무예뿐일 것이다.
‘설마라고 생각하지만 화약무기는 아니겠지.’
불안함을 감추려 일부러 무표정하게 표정을 굳혀버리면서 화상을 본다. 폭발음과 탄환이 바람을 가르는 소리와 함께 쓰러지는 제 1기병대의 모습. 그리고 노르딕들이 가지고 있는 막대기같은 모습의 무기들. 확실하다.
“화약 무기라고? 갑옷도 뚫는 위력의?”
잠시 마음을 진정한다. 이것을 어찌한다. 생각하다가 일단 미봉책이라도 없는 것보다는 낫겠다는 생각을 하며 지시를 내리기 시작했다.
“오르테가 장군에게 통신을 보내라. 마법사들을 최우선적으로 보호하고 적과 싸울 때에는 최대한 엄폐물을 사용하라고. 참호를 파는 것도 좋다. 단숨에 적진에 난입할 자신이 없으면 내가 갈 때까지 센타이 왕국의 도성을 지키는 일에만 몰두하라고 말이다. 알겠나?”
“네.”
개인의 자질과 소질, 그리고 노력이 전부인 이 시대에 자질과 소질이 없는 자도 강력해질 수 있는 새로운 무기가 등장했다. 이것이 무엇을 뜻하는지는 아무리 생각이 없는자라고 해도 충분히 알 수 있을 것이다. 귀족의 몰락이다. 타겟이 일정 이상의 경지에 오르지 않는 한 저 무기들은 그 누구라도 몇 푼 안 되는 납탄만으로도 충분히 죽일 수 있으니까. 수십년의 수련 끝에 힘을 얻게 되는 귀족들의 노력은 한순간에 무용지물이 되는 것이다.
“아버지께 가겠다.”
귀족들이 몰락해도 별로 상관은 없다. 하지만 이 세계에 들여오면 안 될 물건들, 화약이 출현한 것을 아버지에게 알려야 한다. 이 일이 새로운 차원이동자를 의미하는 것인지를 확인해달라고 말해야 할테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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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심심풀이로 만들어둔 화약무기들을 대량생산해야 할 사태가 일어날 것 같은 느낌이 드는구나.’
‘괜찮겠습니까?’
‘세상의 흐름을 우리가 거스를 수는 없는 거다. 이미 저들이 화약이라는 것을 발견하고 활용했다면 어디엔가에서도 그들과 같이 새로운 무기를 개발하는데 성공했을 테니까 말이다. 그들을 모두 죽인다고 해도 가능성은 남겠지. 그럴 바에야 남들보다 앞서나가는 것이 좋을 것이다. 일단 2차 세계대전 수준의 소총을 풀어볼까?’
‘그건 좀…….’
아버지와의 대화는 짧게 끝났다. 시대를 거스를 수 없다면 빠르게 발전하게 만들자는 결론이었다. 어머님들과 아내들은 이 결론에 따라 새로운 무기에 대한 교육을 받았다. 그리고 미시어스 제국의 공방들에서는 새로운 지식을 푼 황제의 덕을 칭송하느라 바빴다. 물론 프리그 왕국에도, 잊혀진 숲의 엘프들에게도 이 지식은 전해졌다. 당연히 함께 싸우고 있는 센타이 왕국과 타클란 제국에도 정보는 들어갔다. 수석식 소총을 만들 수 있을 정도의 정보만. 물론 드래곤들은 화약무기에 대해서 알고 있었으므로 이것이 나타났다는 사실만 알려주기만 하면 되었다. 굳이 지식을 알려줄 필요는 없었다. 핵이 떨어진다고 하더라도 알아서 살아남을 그들이었으니까.
“일단 우리가 할 일은 끝난 것 같고…….”
“보병들에게는 얼마나 되는 비율로 이 총기를 보급해야 할지 고민중입니다. 아직 일은 끝나지 않았어요.”
“그건 그렇다만……이 화상에 나온 전장, 위치 특정 가능하지?”
“좌표도 있습니다.”
“내 다녀오마.”
아버지도 오래간만에 엉덩이를 바닥에서 떼어놓았다. 할 마음이 생긴 것은 좋았다. 여전히 여성의 몸으로 있는 건 좀 그랬지만.
무슨 정보라도 모아왔으면 좋겠는데 말이지. 그런 생각을 하면서 하루 탄약 보급량을 얼마로 결정해야 할지를 고민한다. 하루 탄약 소모량을 40발 정도로 생각해야 할까. 80발 정도로 생각해야 할까. 아니면 120발까지? 고민된다. 검에 창에 방패까지 짊어지고 다니는 것보다는 가벼워지니 군장에 탄약 400발을 들고 다니는 것은 무리가 되지는 않겠지만 하루 탄약 생산량에는 한계가 있다. 그 문제는 시간이 해결해주겠지만 그때까지는 영원히 풀리지 않는 고민거리가 될 것이다. 초기 생산된 탄환에 불량이 많을 것도 생각하면 더더욱 골치가 아프다. 기동성을 높이기 위해 전투식량도 따로 개발해야 하려나.
“다녀왔다.”
그렇게 고민하고 있는 동안 아버지가 돌아왔다. 하루 정도 지났을까 할 시점이었다.
“아무래도 그 화약무기는 이곳에서 자연히 발생한 물건인 것 같다. 차원이동자도 아니고 내가 화약이라는 물건을 쓴 적이 없으니 나도 아니다. 결론은 자연히 저들의 필요에 따라 만들어진 물건이라는 건데, 만약의 경우지만 그 놈들의 잔당이 그곳에 정착했을 가능성이 있다. 물론 그 잔당이라는 녀석들은 모두 죽었을테니 확신할 수는 없지만.”
아버지가 말하는 그 놈들의 잔당이란 인간으로서의 기본적인 자세가 결여되었던 그 극우파 일본인이라는 이름이 아까운 미친 놈 두 명을 말한다. 갑자기 노르딕이 통일된 것이라거나 갑자기 화약무기라는 것을 들고 나온 점으로 미루어보았을 때, 지금의 상황을 가장 잘 설명해줄 수 있는 가설이었다.
“뭐, 그 가설이 반드시 옳다고 할 수는 없으니 냅두고, 일단 이 ‘영혼의 기억’을 보아라. 난 그걸 보고 났더니 센타이 왕국을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무럭무럭 샘솟더구나.”
하던 이야기를 마무리 짓자마자 갑자기 대화주제를 다른 것으로 바꾸더니 눈물을 글썽이는 아버지. 그 모습을 보고는 뭔가 기분이 나빠져서 정신차리라고 알밤을 때렸지만 아버지는 끝까지 내가 그 화상을 보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어쩔 수 없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영혼의 기억’에 손을 대었다. 내가 왜 남의 기억까지 보아야 하는 거냐라는 생각을 하면서.
111.
그의 이름은 바크 비윈트였다.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겠지만 자신의 아버지를 밝힐 수 없는 하층계급 출신이었다. 물론 평민들도 자신의 아버지의 이름을 중간 이름으로 쓸 수는 없지만 관직에 오를 경우 쓸 수 있는 것과는 달리 농노들은 자신의 힘으로 관직에 오르더라도 당대에는 쓸 수 없었다. 귀족들에게는 거기에 더해서 다른 명칭이 더 붙기는 하지만 공문서에 기록될 때만 사용될 뿐 일상생활에서는 복잡해서 사용하지 않으니 내버려두자. 어쨌든 그는 성공한 농노출신의 관리였고 다소의 차별은 있었지만 이대로 평화가 계속된다면 자신의 이름을 아들에게 물려줄 수 있었다.
“바크! 써주기로 약속한 분량에서 조금 모자라!”
“글이 매일 펑펑 나오겠나? 그럼 내가 책팔아먹고 살지 이런 일이나 하겠나? 이번 달은 거기까지가 한계이니까. 그만 포기하라고.”
“이 녀석! 네 놈이 마지막 보루였는데!”
“우후훗, 두 분은 언제나 사이가 좋으시네요.”
“아……루시아였나? 오늘도 안녕한 것 같구만. 그나저나 이젠 믿을 건 루시아 밖에 없다고. 하켄. 아름다운 여성의 발밑에 매달려서 사랑을 호소해봐. 글 좀 써달라고 말야.”
“훗, 그런다고 내가 못할까봐? 해주지!”
그리고 그에게는 친구가 있었고 취미가 있었고 그 취미를 함께할 사람들도 있었다. 그의 취미는 글을 쓰는 것이었고 그의 글, 운문은 사람들의 심금을 울렸다. 그런 그의 재능은 그에게 수많은 여인들이 다가오게 하였다. 하지만 그의 마음에 드는 여자는 쉽게 찾을 수 있을 리가 만무했다. 그렇다고 그의 눈이 높았던 것은 아니었다. 그에게 다가온 여성 중에서는 빼어난 미인도 제법 있었으니까. 어찌보면 그는 성공한 인생이었다.
“쳇. 연인이랍시고 다른 사람있는 곳에서 염장질하긴.”
“부러우면 너도 만들어. 우후후후.”
“아무튼 시 4편에 희곡 한 편이다. 나는 밥값 다했으니까 다른 녀석들을 조져. 왜 나에게 찾아와서 아웅다웅 소리를 지르는 거야?”
“너 아니면 우리 동호회 회지가 못 나온다고.”
“시꺼. 다른 녀석들 더 영입해.”
그가 사랑한 것은 순수한 마음을 가진 여성이었다. 하지만 그의 명성을 듣고 찾아오는 여성들 중에서 그런 사람은 드물었다. 물론 순수한 마음을 가진 여성이 찾아올 때도 있었다. 그럴 경우에는 그는 일생일대의 마음가짐으로 그 여성의 마음을 사로잡아보고자 했으나……슬프게도 그는 쑥맥이었다. 그와 만나본 사람들이 호탕하고 시원한 성격으로 그를 평가하는 것과는 달리 사랑 앞에서는 작아지는 남자였던 것이다. 그의 호탕한 문체를 보고 찾아온 여인들은 그런 그의 모습에 실망하면서 떠나가곤 했다. 그럴 때마다 하켄이라는 친구가 웃으면서 위로주를 사주었고 그런 좋은 친구 앞에서 그는 이렇게 한탄하고는 했다.
“내가 말야. 사랑하려면 평상시처럼 호탕하게 있어야 할 것 같아. 그런데 나는 좋아해도 될 여자 앞에서는 작아지잖아? 아마 난 안 될거야.”
그렇게 너스레를 떨기도 했지만 그는 외로웠다. 그런 그가 안되어 보였던지 어느날 친구인 하켄은 재능있는 여성들을 소개시켜 주겠다고 하면서 그를 요정, 그러니까 술집으로 데려갔다. 그곳에서 그는 한 여자를 만났다. 아니, 두 여성을 보았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가 반한 것은 ‘알리샤’라는 이름을 가진 여성이었고 그 옆에 있는 따스한 미소의 여자는 루시아라는 이름을 가진 여성이었다. 루시아는 그의 친구 하켄의 연인이었다. 모르면 모를까 몇 번 그녀와 대화를 나눠 보았던 그는 루시아는 애초에 사랑할 여자의 명단에서 빼놓은 상태였다. 그는 적어도 정도라는 것을 아는 사람이었다.
“이 두 사람의 재능은 감탄이 절로 나올 정도라고. 하지만 루시아의 시는 기본적으로 나를 위한 것이니까 다른 사람을 위해서는 보여주지 않을거야. 그러니까 알리샤씨랑 놀라고. 처음 만난 거라 어색하겠지만 한 번 대화를 잘 나눠봐.”
싱글벙글 웃으면서 연인의 손을 잡고 나가버리는 친구의 배신에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절규하던 그는 잠시 후 ‘문예’라는 것을 이야기하면서 앞에 있는 사람이 자신이 사랑할만한 여자라는 것을 잊어버렸다. 좋아하는 것에 열광하기 쉬운 그의 성격 탓이리라. 그리고 그런 그의 모습이 보기 좋았던지 알리샤라는 아가씨는 토론을 하다 문득 열이 식고 자신이 여자 앞에 있다는 것을 알아차린 까닭에 당황해버린 그의 손을 잡아왔다. 그리고 두 사람은 사랑하는 사이가 되었다. 친구인 하켄은 그 모습을 보면서 빙긋 웃으면서 놀리기 시작했지만 기분은 나쁘지 않았다. 앞에서 얼마든지 쑥스러워 해도 상관없는 여인을 만난 것이다. 행복한 나날이 시작된 것이다.
“이야아. 제수씨가 있으니 좀 더 편해졌어요. 제수씨께서 주시는 글도 글이려니와 덕분에 다른 녀석들도 압박감에서 벗어났거든요. 독촉이 없으니까요. 그러고 나니까 제법 괜찮은 글들을 쓰게 되어서 짤라내야 할 일도 없어졌어요. 이게 다 제주씨 덕분입니다.”
“제수씨가 아니라 형수님이다. 네 놈은 촌수계산도 못하는 머저리냐?”
“훗, 자고로 물주가 형님인 셈이란다. 바크.”
“시끄러. 돈 많다고 자랑하는 거냐? 내가 남긴 짬이 네놈이 먹은 밥보다 더 많은 걸?”
“오호, 그런 거짓말을……정말로 헤아려볼까?”
“역시 두 분은 사이가 좋으시네요.”
“그럼 우리는 형님 동생인걸까?”
“나는 형니……아야아!”
“내가 형님이야.”
“저 두 사람이 싸우는게 더 무서워.”
“나도 그렇구만.”
“술이나 마시러 갈까?”
“그러지 뭐.”
“어딜 가요!”
“돌아와요.”
“”넵!“”
뭐, 그런 식의 행복이라 웃을 수 있는 기억이 더 많았지만.
“사랑하는 남자 앞에서 다른 남자에게 안기는 것을 보이라는 말씀이십니까? 말도 안되는 소리는 하지 마세요. 무엇보다 이곳은 공창이 아닙니다. 저희들도 몸을 파는 여자들은 아니구요. 이만 물러나 주십시오.”
하지만 그 행복은 오래가지 못했다. 아름다운 외모를 가진 알리샤는 남자들로 하여금 소유욕을 자극했다. 그리고 지병도 있었다. 먼저의 불행은 알리샤의 단호한 태도로 해결했지만 뒤의 불행은 그녀도, 그도 어쩔 수 없었다. 그저 앓아누워있는 그녀를 간호하는 것 밖에는. 병석에 자주 누워 그와 함께 있는 시간을 그녀는 사랑했다. 그도 불행이라는 것을 느끼지는 못했다. 앞으로 닥쳐온 이별에는 슬퍼했지만.
하지만 그런 삶을 살아가면서도 생의 마지막을 불태우듯 알리샤는 그를 사랑했고 그도 알리샤를 사랑했다. 몇 년의 사랑이었다. 그 사랑만으로도 행복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그를 축복하며 알리샤는 숨을 거두었다.
그리고 십여년이 지난 지금, 전쟁이 터졌다.
“의용군의 숫자가 부족하니 관리들 중에서 일부를 차출해야겠습니다.”
차근차근 성을 점령하며 다가오는 적들의 진군을 막기 위해 의용군이 꾸려졌다. 바크 비윈트, 그도 차출되었다. 관리에 오른 노력을 보상하려는 것일까. 하나의 소부대를 이끌 수 있는 직위가 부여되었다. 그의 재능은 글쓰는 재능만은 아니었던지 자꾸만 전공을 세웠다. 이는 하켄도 마찬가지. 두 사람의 활약에 힘이 난 의용군들은 힘을 내어 노르딕들의 진공을 방해하고 물어뜯었다. 점점 노르딕들도 그런 그들의 존재를 인식하기 시작했다.
“결국 이 지방은 포기하는 것인가.”
몇 번이고 진공을 방해하는 동안 이 소규모 저항에 짜증이 난 노르딕들은 곧장 수도로 진공할 계획을 세웠다. 당연히 의용군들은 그 길목에 있는 이름없는 요새를 지키는 임무가 하달되었다. 이것이 함정이었다. 센타이 왕국에서도 이것을 함정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한 것은 분명하다. 그들을 지원하러 보낸 미시어스 제국의 제 1기병대를 말리지 않았으니까. 이것이 함정이라는 것을 알아차린 것은 의용군을 지휘해야 할 중앙군의 장수가 사라지고 요새를 향해 차근차근 포위망을 좁혀오는 노르딕을 보았을 때였다. 정규군은 없는 상황. 모두가 의용병. 사기는 바닥을 모르고 꺾이고 있었다.
“우리는 체스말이다. 그 중에서도 폰이지.”
그런 의용군들의 모습을 보다 못한 그는 단상 위로 뛰어올라갔다. 그리고 그런 말로 입을 떼었다. 모두들 그의 얼굴만 바라보았다.
“나이트, 비숍, 퀸, 룩. 그들이 움직이기 위해 통로를 개척하고 희생한다. 때로는 진형을 갖추어 보기도 하지만 서로가 충돌하면서 탈락하고야 말지. 살아남더라도 방어용 이상으로는 사용하지 않는다. 끝까지 살아남는 폰은 그 임무에 투입된 녀석 정도에 불과해. 보통 사람들은 폰을 그렇게 사용한다.”
‘반란이라도 일으키자는 것인가?’ ‘무엇이 불만인가!’ 누군가가 군중 속에서 그렇게 말했다. 그러나 그는 말을 멈추지 않았다. 아니 멈출 수 없었다.
“하지만 폰에게도 기회는 있다. 맵의 끝에 다다르면 폰은 원하는 존재 무엇이라도 될 수 있다. 물론 킹은 되지 못하겠지만 말야. 죽어가면서 폰들이 부러워하던 나이트, 비숍, 퀸, 룩. 그 어떤 것이라도 될 수 있다.”
사람들의 웅성거림이 멎었다. 기묘한 정적이었다. 사람들이 자신을 바라보는 것을 온 몸으로 느끼며 그는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부터가 그가 할 말이었다.
“싸우자. 그리고 살아남자. 서로를 믿어라. 우리가 살아가는 이 나라에 충성을 다하기 위해서 싸우자고는 말하지 않는다. 동료로서 부탁한다. 싸우자. 그리고 살아남자. 우리들의 뒤에는 가족들이 있을 것이다. 비록 버려진 폰이지만 최소한 우리가 버려질만큼 쓸모없었다는 평가는 받지 않도록 하자. 우리를 버린 저들에게 우리가 무엇이었는지, 무엇이 될 수 있었는지를 절실히 느끼게 해주자! 싸우자! 그리고 살아남자!”
생각했던만큼 함성은 울려 퍼지지 않았다. 다만 서로의 얼굴을 보면서 고개를 끄덕이고 아무렇게나 내팽개쳐져 있던 방패를 집어 들었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했고 의용병들은 아무런 구원도 기대하지 않고 허술한 성벽 하나에 기대어 노르딕 10만과 대치하기 시작했다. 포위는 뚫을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항복하라고?”
“그렇소.”
그런 상황에서 노르딕군으로부터 항복을 권유하는 사자가 달려왔다. 그 사자의 목을 쳐서 장대 높이 매달아 자신들의 의기를 보여주었다. 전투가 시작되었다. 개미떼처럼 성벽에 달라붙는 적병을 후려치고 갈고리와 사다리를 떼어내고 밀어낸다. 함성이, 절규가, 비명이 주변에서 울려 퍼졌다. 그리고 폭발음과 콩볶는 듯한 소리와 함께 의용군들이 죽어나가기 시작했다. 죽지 않은 것은 성벽에 기대고 있던 사람들이었다.
“이건…….”
“무엇인가를 굉장히 빠른 속도로 쏘아낸 거야.”
그리고 그들은 알아차렸다. 노르딕들이 쓰는 신형무기가 어떤 원리로 사용하는 것인지를. 적어도 원리는 알았다. 하지만 나머지는 앞으로 싸울 사람들이 알아내야 할 상황. 그것을 깨달았으나 알릴 방법은 없었다. 결사적으로 포위를 뚫을 대책이 필요했다. 포위를 뚫고 이 소식을 알릴 부대는 그의 친구인 하켄이 맡기로 결정되었다.
“야 임마. 나는…….”
“기회는 한 번 뿐이야. 그러니까 빨리가!”
결사적으로 포위망을 뚫기 시작했다. 문을 열고 화살을 쏟아내면서 그들은 달렸다. 대열이 무너지고 다시 앞을 막아 가려주고 적과 부딪히고 싸우고……그러는 동안 요새는 점차 위태해졌다. 그리고 포위도 다 뚫지 못하고 있었다.
“역시 안되나.”
“미안하네.”
닫았던 성문이 무너지고 성벽 위가 적들에게 점령된 것을 보자 그들의 어깨에서는 힘이 빠졌다. 그 때, 기적이 일어났다.
“저건……지원군?”
“소수이긴 하지만 이쪽을 정확하게 보고 와주고 있는데 말이지. 확실히 도망치라고.”
내가 보낸 미시어스 제국군 파견 제 1기병대가 도착한 것이다. 그들은 적들 사이에 갇혀 혈투를 벌이고 있는 의용군들을 보고는 그들을 구하기 위해 쇄도하기 시작했다. 뒤쪽에서의 기습에는 노르딕들도 당황했다. 하켄이 보고서를 품에 넣고 탈출하기 시작하는 것을 보호하면서 그는 싸웠다. 지난 며칠간 마구잡이식으로 익힌 검술이었지만 그래도 소용은 있었다. 단순히 막고 찌르고 베는 것뿐이었지만. 그렇게 그는 탈출하는 하켄의 뒤를 막아섰다. 얼마나 싸웠을까. 자신의 곁에 선 사람이 죽은 말에서 내린 이름 모를 부대의 일원이라는 것을 알아차린다. 순간 궁금했다. 왜 그가 아직도 싸우고 있는지. 타격만 하고 돌아가도 되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왜 탈출하지 않습니까? 지금은 무리이겠지만요.”
“당신들은 왜 이곳에 남았습니까?”
그도 그것이 궁금했던 듯 그 자신과 동시에 질문을 던졌다. 그의 말에 정신을 차려보자 3만에 이르던 의용군들은 수백으로 줄어있었다. 그리고 나머지는 모두 시체가 되어 있었다. 그만큼의 적들도 시체가 되어 있었지만 아직 투입하지 않은 생생한 전력이 그들을 빙둘러 포위하고 있었다. 미시어스 제국군도 많이 줄어 있었다. 그들의 빛나던 갑옷은 온통 긁힌 채 혼탁한 빛을 내뿜고 있었다. 그런 주변 상황을 파악한 그는 빙긋 웃으면서 대답한다.
“친구 놈이 잡히지 않게 하려고 남았소. 우리를 버린 왕국에게 전해주어야 할 것이 있었으니까요. 아까 내 질문에는 대답하지 않으셨는데 말이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던 이름 모를 부대의 생존자는 그의 질문에 그렇게 답했다.
“도우려면 확실히 도와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런 사람들과 함께 싸웠다는 건 영광이라고 생각하니까요.”
“그건 바보 같은 생각일지도 모르겠군.”
대화를 나누다보니 거칠어진 숨을 의식한 것일까, 답답해한다.
“바보같더라도 그것이 제가 존재하는 이유니까요. 이것 외에는 사는 방법을 몰라서요. 그래서 싸움터를 전전하고 있습니다만, 당신은 왜 싸우시나요?”
“그거 마음에 드는구만. 고작해봐야 죽어버린 여자랑 함께 보던 풍경이 불타는 광경을 보고 싶지 않아 싸우는 나와는 천지 차이로구만.”
“그것도 나쁘지는 않은 이유군요. 남자로서 살아볼만한 삶이기는 합니다. 남들은 바보라고 할지도 모르겠지만요.”
그는 그 순간 웃음이 나오려는 것을 참았다. 비웃음은 아니었다. 적어도 자신의 가치를 알아준 사람이 있다는 것에 대한 만족의 웃음이었다.
“나는 바크 비윈트라고 하는데, 당신은?”
“테오도르 맥에톨 에타드입니다. 살아남을 수 있다면 당신을 우리 제국으로 스카웃하고 싶습니다만…….”
그들은 동시에 앞을 바라보았다. 일렬로 포진한 채 검은 막대기를 닮은 무기를 겨누는 자들이 있었다.
“그건 힘들겠군요.”
포성이 울려퍼진다. 바람을 가르며 날아온 것이 자신의 몸에 박히는 것을 아프게 느끼면서 검을 쥔 손에 힘을 준다. 쓸모가 없을테지만 적어도 자신의 의지는 남아있다. 그런 생각을 하며 천천히 빠져나가는 힘에 바닥에 검을 박는다. 눈을 감는다. 언젠가의 따스한 봄날. 아름다운 정원을 바라보면서 사랑을 속삭이던 여자의 얼굴을 추억한다. 얼굴은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선량하고도 순수한 그 눈만이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이 세상에 남은 한도, 미련도 없이 자유롭다 느꼈을 때, 그는 점점 의식을 잃어간다는 것을 자각했다. 그리고 먼 곳에서 그에게 수고했다고 말하는 것 같은 목소리가 들려온 것 같았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마지막 순간 추억할 수 있는 것이 이것이었다면.
‘고마워.’
세상을 살면서 지금보다 행복한 적은 없었다. 그는 웃었다. 그 때문인지 점점 어두워지는 시야 속에서 그의 의식이 끊어질 때, 그의 얼굴은 웃고 있었다. 그것이 그의 최후였다. 그리고 전투가 끝난 후, 노르딕의 해적들은 바닥에 꽂은 검에 기대어 전사한 자의 미소를 보았다. 그들은 그의 모습을 기이하게 생각하면서도 그의 몸을 불타는 불꽃 속에 밀어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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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타이 왕국의 인물
바크 비윈트 : 캐릭터 모티프는 임진왜란 당시 상주전투에서 전사한 백대붕. 백대붕은 천민 출신으로 전함사(전선戰船을 만들던 관청)에 소속되어 있었지만 그 문장능력이 빼어나 사람들의 인정을 받은 사람. 촌음 유희경과 함께 여항문학을 주도했던 사람이라 알려져있음. 여항문학은 훗날 사설시조 등에 영향을 미쳤다 알려져 있음. 이곳에서도 ‘상주전투’에 해당하는 전투에서 전사. 백대붕이 실제로 이랬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이런 캐릭터는 괜찮을 거라고 생각하면서 마음껏 망상표출하는 중입니다.
하켄 맥제체리안 피로트 : 캐릭터 모티프는 촌음 유희경. 촌음 유희경은 천민 출신이었으나 부모의 상을 극진히 모신 것을 좋게 본 당시의 유학자(이름 잊었음)가 제자로 받아들였다. 그 이후 상喪이 난 집에서는 유희경을 찾았다고. 당시에 유행했던 말이 ‘양예수가 뒷문으로 나오면 유희경은 대문으로 들어간다’였음. 그 명성이 높아지자 결국 왕실의 어른의 장례를 지휘하기도 하였음. 이곳에서는 학문적인 성취가 빼어나 중용된 것으로 변경. 어쨌든 유희경은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을 조직, 그 공로로 전쟁이 끝난 후 양반으로 승급되었다. 상주전투에서 전사한 백대붕과는 달리 전쟁이 끝날 때까지 살아남아 이매창과의 로맨스도 마무리 지었음. 실제 유희경은 상주전투에 참가하지는 않았음.
설정 추가
‘영혼의 기억’
한을 품고 죽은 자가 자신의 한을 남기고 승천하면서 남긴 기억을 회수한 것. 그것을 통해 그의 기억을 들여다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