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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판소]아버지처럼 되기 싫었어요 IF2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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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248 회 작성일 24-01-10 15:37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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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말하지만 이 글은 양판소(……야)이므로 개념이 없고 명랑소설이므로 어이없는 일도 일어날 수 있는 막장입니다^^;;; 양판소의 깽판이 싫으신 분은 조용히 백스페이스로 넘어가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작중에 언급되는 인물, 사건, 지명 등은 실제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습니다. 묘한 것이 보여도 신경 쓰지 마세요. 깊게 생각하면 지는 겁니다. 이 글은 양판소이니까요.
*이 글에 대한 저작권은 저에게 있을지도 모르나 행사할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왜냐하면 양판소니까요.
*이 글은 명랑소설을 지향하고 있으나……양판소이므로 깽판입니다.



  [양판소]아버지처럼 되기 싫었어요
  IF2 2話 이걸 어쩐다.



  3.
  집으로 돌아와 밥도 먹다 남기고 신둥건둥 TV나 보면서 시간을 때우다가 내 방으로 올라왔다. 내 방이라는 말에서 짐작들은 했겠지만 우리 집은 어지간한 중산층만큼이나 잘 사는 것 같고 누나들도 일하면서 따로 용돈을 받거나 하는 것은 아니므로 이 집을 유지할 정도의 생활은 가능한 것 같다. 식탁에 놓인 반찬들이 온통 마당에 있는 하우스에서 재배하고 있는 풀들이라는 건 좀 뭣하지만.


  “이 세계에서는 그냥 사춘기 소년인가.”


  공부를 할 마음도 나지 않아 다소 뒹굴다가 문득 든 의문에 내공을 돌려보거나 마법을 사용해보았다. 당연히 힘을 사용할 수 없었다. 다만 가부좌를 틀고 앉아 내공을 느껴보려고 하는 순간 단전에서 기가 꿈틀거리는 것 정도는 느낄 수 있었다.


  “어라?”


  내가 사용할 수 있는 힘을 감지한 상황임에도 나는 얼간이 같은 반응을 보여야 했다. 내가 눈을 뜬 이 세계에서는 힘을 사용할 수 없는 것이 아니었던가 하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내 몸에 도사라고 있는 이 힘은 분명히 2단계 각성에 필적하는 힘이다. 대체 이건 어찌된 것일까. 나는 혼란에 빠졌다.
  생각해보면 나는 오늘 하루 종일 내 몸을 살필 시간을 가지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의 나, 정세진이라는 녀석의 기억 속에서 이런 수련을 하던 기억이 없는 것으로 보아 어제까지는 나, 정세진이라는 녀석은 이런 힘을 가지지 못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런데 지금 정세진이라는 녀석의 몸을 뒤집어쓴 나는 이렇게 힘을 가지고 있다. 그 차이에서 이 힘이 나온 것일까. 아직은 추측만 할 수 있을 뿐, 확실히 규정할 수는 없다.


  “일단 대주천이라도 해보고 생각하자.”


  힘이 있다면 활용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대주천을 시작했다. 한 번 돌리면서 하루의 피로를 말끔히 씻어낸 나는 다음 단계에 들어갔다. 명상을 하며 온 몸을 관조해보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심장 근처에 만들어져 있는 7개의 원을 발견했다. 이 정도면 언령을 쓸 수는 없어도 꽤나 강한 마법을 사용할 수 있다. 그 다음은 상단전에 해당하는 부분이……원래의 나, 진 맥세인 아슈레이보다 강하지는 않지만 꽤나 활성화되어 있는 상단전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 정도면 이 세계에서 핵폭탄이 터지지 않는 한에서는 다치지 않고 살아갈 수 있으리라.


  “이 다음은…….”


  주변사람들에게서 이런 현상이 있는지 없는지를 확인하는 것인가. 전 세계에 나같은 자가 얼마나 있는지를 한눈에 파악하는 것은 불가능하니 이 힘을 숨기면서 천천히 주변을 살피는 것이 가장 최선. 그런 생각을 하면서 TV를 보면서 웃고 있는 누나를 바라보았다. 여기에서 누나는 제일 나이가 많은 주제에 일도 하지 않고 우아한 백조생활을 영위하고 있는 첫째 누나, 정경아를 말한다.


  “…….”


  슬프지만 누나에게는 힘이 없었다. 그냥 평범한 사람이었다. 무리도 아닌가. 한숨을 쉬면서 고개를 저었다. 다음은 어머님. 이운혜님이다.


  “배가 출출하니?”


  이건 이운혜님이 아니야! 이 자애로운 모습이라니! 아침의 그 모습은 대체 어디로 간 건가요! 그 절제된 말투라거나 딱딱한 표정이 이운혜님의 아이덴티티인 것인데 어찌하여!


  “우후후. 여보……뭐냐 네 녀석은.”
  “배가 고프다면 냉장고에서 먹을 것이라도 꺼내먹어라. 케일을 갈아놓은 음료가 있으니까. 미안해요. 여보. 기다리셨죠?”


  아, 아버지가 곁에 없으니 저렇게 자애로운 모습이 된 것이구나. 나는 이운혜님의 이 갭에 잠시 고개를 끄덕이면서 세상의 이치를 다시 한 번 생각해본다. 생각해보면 저 편에서도 이운혜님과는 단 둘이서 만난 적은 없었지, 그래서 엄격한 모습만을 보게 된 것이 아니었을……이 아니라! 이운혜님에게는 내공이라는 것이 있었다. 그리고 아버지에게도. 다만 두 분에게는 1단계 각성에 불과한 정도의 힘만 존재했을 뿐이다. 물론 조금만 더 수련한다면 2단계 각성도 무사히 넘어설 수 있겠지만.


  ‘이곳의 아버지와 어머님은 대체 어떤 삶을 살아온 걸까?’


  아니, 그보다 지금 가장 중요한 건 경아 누나에게 힘이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어제까지는 나, 정세진에게도 힘이란 것이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


  ‘아니, 지금 그대로 냅둬도 되긴하는데 말야.’


  누나가 늙는 모습은 보고 싶지 않다고나 할까. 하지만 무공을 가르쳐주려면 누나의 나이가 수련을 하기에는 늦은 나이인데다가 혈을 뚫어줄 때의 모습이 자못 남들이 오해하기 딱 좋다는 것 때문에 여러 가지로 갈등된다. 그나저나 아버지. 아직 젊으시군요.


  “아이, 정말이지. 애들 보기 부끄럽지 않아요?”
  “우후후후후.”


  어머님을 공주님처럼 껴안고 방으로 들어가는 아버지의 미소를 보면서 나는 누나에게 말을 걸었다. TV를 보고 있을 때는 말을 걸지 않는 것이 좋을텐데……생각한 것과는 달리 누나는 별 반응은 보이지 않았다.


  “누나.”
  “세진아♡”


  아니, 별 반응을 보이지 않는 것은 아니고 품에 안고 부비적거렸다. 정말이지 이런 장난은 그만둬줬으면 하는데 말야. 동생이랍시고 방심하는 것은 알겠지만 지금의 난 정세진이 아니라고. 조금은 경계해줬으면 하는데 말야.


  “후웅…….”


  반항도 별로 하지 않고 뭘 어쩌는지 지켜보고 있으려니 그제서야 이상하다는 것을 느낀 것인지 뚱한 눈으로 나를 바라본다. 그리고 내 볼을 손가락으로 쭉 늘리더니 하는 말이,


  “뭘 생각하고 있는 거야?”


  였다. 뭘 생각하고 있긴, 당연히……으음, 생각해보면 누나의 가슴의 탄력이 저 세계에서의 누나랑 같았지. 아니, 아니. 지금은 그런 것을 생각할 때가 아니다. 누나를 잘 꼬셔내어서 누나가 내공을 쌓게 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 때늦은 수행이겠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나이를 천천히 먹게 할 수는 있을 것 같으니까. 그러니까 한 번 충동질이나 해볼까.


  “누나도 나이가 많이 들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
  “오호……어릴 적에는 누나에게 장가오겠다고 한 주제에 이제는 늙어서 싫다는 거지?”


  충동질한 것이 즉석에서 효과가 발동된 것은 좋았는데 그게 분노를 부추겼다는 것이 문제였다. 볼을 당기던 손이 이마로 올라와서는 즉석에서 아이언크로. 원래라면 고통을 호소하면서 비명을 질러야겠지만 이상하게 아프지는 않았다.


  “어, 어?”


  이런 예상밖의 상황에 놀랐는지 누나가 놀란 눈으로 나를 바라보자 왠지 모를 자신감(+경 엔세인 아슈레이에게 한 번도 이겨본 적이 없는 진 맥세인 아슈레이로서의 가학심)이 더해져서 누나의 얼굴을 보고 히죽 웃어주었다. 그런 내 표정에 욱한 듯 누나가 꿀밤을 먹이려고 손을 드는 것을 잡고는 이렇게 말했다.


  “아프진 않네. 그렇게 늙는 것이 마음에 걸리면 내 말을 들어보는 건 어때? 노화를 느리게 만들고 젊음을 어느 정도 유지시킬 수 있는 방법이라는 것이 있는데 말야. 어머니도 아마 이 방법을 사용하고 있을 거라고.”


  세상이 달라져도 이 향기는 그대로구나. 누나의 얼굴 가까이 얼굴을 들이밀면서 슬쩍 놀리듯 말하자 누나의 얼굴이 빨개지더니 뒤로 화다닥 물러나 앉았다. 이거 반응이 너무 신선한데……. 좀 더 놀려볼까.


  “그래서, 잠시 반항하지 않아 주었으면 해.”


  음침한 웃음을 흘리면서 누나의 팔을 구속하고 손바닥으로 입을 틀어막고는 누나의 방으로 이동했다. 누나가 무엇을 느꼈는지는 모르겠지만 발버둥을 치려고 한 것을 보면 정조의 위험을 느꼈을지도 모르겠다. 그럴 생각은 없지만 말이지.


  “너, 너! 뭐, 뭐하려는 거야!”
  “가만히 있어봐.”


  내일은 연아라, 아라니엔이 아닌 내 소꿉친구 연아라에게도 이런 것을 해주어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누나의 몸을 주무르기 시작했다. 주무른다고 하더라도 혈도를 타통시키는 것 뿐이라 야한 짓은 아니지만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필시 야한 짓을 하는 것으로 보일지도 모르겠다. 누나도 처음에는 아등바등 반항하더니 무엇인가 이상한 것을 느낀 것인지 잠시 후 차분해진 것 같았다. 그리고 그 눈에는 혐오감이라거나 절망감 같은 것이 아닌 호기심이라는 것이 떠올랐다.


  “지금 뭐하는 거야?”
  “무협지 읽어봤지? 혈도를 타통시키고 있는 중. 그 다음은 내가 도인을 해야 하니까 내가 말하면 바로 가부좌를 틀어봐.”
  “아, 알았어.”


  혈자리를 모두 타통시키고는 누나에게 자리를 잡고 앉으라고 한 것은 잠시 후였다. 그때까지 누나의 몸에서는 땀이 흘러나왔다. 27년 동안 몸에 쌓인 노폐물이 조금 배출된 셈이니 냄새가 날법도 했는데 누나의 몸에서는 그다지 역겨운 냄새는 나지 않았다. 그냥 코가 무던해진 것일지도……. 하지만 누나는 자신의 몸에서 땀이 흐르기 시작하자 얼굴을 붉혔다.


  “자, 이제 도인을 해볼까나. 말을 해버리면 기혈이 뒤틀리는 수가 있으니 꾹 참아.”
  “아, 응.”


  누나를 껴안듯 앉고는 누나의 몸에 기를 불어넣었다. 목덜미에 맺힌 땀이 조금 신경쓰였지만 내공을 돌려 누나의 혈도를 조금씩 뚫어본다. 하나가 무너지고 하나가 뚫렸다. 또 하나가 무너지고 또 하나가 뚫렸다. 누나의 몸에서는 계속해서 땀이 흘러내렸다. 더 이상은 누나의 체력이 못버틸 거라고 생각한 순간 나는 도인을 멈추고 내공을 회수했다.


  “수고했어. 모두 다섯 개를 뚫었는데……한 번 심법도 시작해볼래?”
  “어……. 응.”


  누나에게 구결을 알려주고 제대로 심법을 시작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그렇게 내가 생각했던 하루치의 수련이 끝날 때쯤, 누나는 무엇인가를 확인한 듯 즐거워했다.


  “그, 진이 나에게 넣어준 거……내 속에 있어. 이게 그거야?”
  “느낀 거야?”
  “응.”


  오오, 이것은……역시 누나로구나. 누이들 중에서 셋째 누나와 함께 유일하게 날 때릴 수 있는 누나답게 내공도 빠르게 느끼고 쌓을 수 있는 것 같았다. 그런 누나의 천재적인 재능에 나 역시 기뻐하면서 누나의 손을 잡았다. 땀에 젖어 약간 끈적이기는 했지만 신경 쓰지는 않는다. 누나도 기뻤는지, 당연히 젊음을 유지할 수 있다고 했으니, 나를 품에 안고는 활짝 웃었다. 그리고 말한다.


  “역시 세진이는 최고야!”


  아아, 이렇게 누나가 기뻐해주니 나도 기뻐…….


  “뭐가 최고라는 거지? 아들아, 딸아.”


  하지만 그 기쁨도 잠시, 저승에서 올라온 것 같은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역시 저승에서 올라온 것 같은 어머니의 목소리도 들려왔다.


  “나는……이 관계는 반대하고 싶구나.”


  일단 지금의 상황을 전체적으로 살펴보도록 하자. 누나에게 내공심법을 가르치고 혈도를 타통시키던 와중에 누나는 엄청나게 땀을 흘려댔다. 일단 잠옷은 걸치고 있기는 하지만 땀에 젖어서 눅진해진 상황이고 침대시트도 조금은 어질러져있다. 그리고 누나는 무지 행복한 미소를 지으면서 - 물론 지금은 깜짝 놀라서 얼어붙어있었지만 - 나를 껴안고 있고 나는 그런 누나의 가슴에 안겨 히죽 웃고 있다. 이 모습을 본 아버지와 어머니라면 대체 무슨 생각을 하겠는가. 그렇다, 하늘이 무너지는 것만 같을지도 모른다.


  “악은 참한다. 아들아, 나를 원망하지 마라. 너의 죄를…….”
  “아빠! 그게 아냐!”
  “아들아, 내가 너를 낳으면서 이런 일이 생기기를 바란 것이 아니었단다. 이 집안의 대를 지금 끊어버려도 상관없겠구나!”
  “우아아! 어머니! 그게 아니라니까요!”


  아아, 어째서 나는 항상 이 모양일까. 평소에는 보이지도 않던 검기를 철철 내뿜으면서 나를 베어 들어오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모습에 나는 식은땀을 흘렸다.


  4.
  “다른 세계의 나?”
  “네, 아버지. 거기에서 배웠습니다.”
  “확실히 내가 거기에 간 건 확실하지만……마왕은커녕 그 놈들도 이기지 못하고 이곳으로 겨우 도망왔는데, 거기의 나는 이겨버린건가? 아아, 세상을 지키지 못한 나와는 다른 녀석이구만. 부러운 놈이야. 아주 부러워.”
  “그곳은 멸망한 모양이군요.”
  “응, 뭐, 그랬지. 어떻게든 동료들과 함께 도망치는 데는 성공했어. 6조는 두 사람을 제외하고는 모두 돌아올 수 있었지. 나머지는 돌아오지 못했지만.”


  내가 누나에게 내공심법을 가르쳐주고 있었다는 말에 아버지와 어머님은 눈을 휘둥그래 뜨더니 대체 가르쳐주지도 않은 것을 어찌하느냐는 질문을 했고 나는 다른 세계에서 왔음을 고백했다. 일단 그곳의 아버지가 이곳의 어머님과 결혼해서 잘 살고 있다는 식으로 아버지의 복잡한 여성편력을 감추고 알려주자 아버지는 ‘그럼 내 일은 잘 알고 있겠구나.’하는 식으로 이야기를 하고는 먼눈을 했다. 그 눈은……무척이나 슬퍼보였다.


  “그곳의 아버지는 엘프들의 여왕을 만나 도움을 많이 받았습니다.”
  “누구?”


  그리고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아버지가 겪은 일을 슬쩍 내비치자 아버지는 눈을 휘둥그래 다시 떴다. 그리고 쩝 입맛을 다신다. 엘프들의 여왕이라는 말에 어떤 미모일지를 가늠해본 것이리라. 물론 그 덕에 어머님, 이운혜님에게 정권으로 옆구리를 쥐어 박혔지만 아버지는 곧 부활했다. 내구력도 강하시군요. 아버지.


  “일단 동료들과 함께 숲을 벗어난 뒤에 바로 어비스로 향했다만 중간에 여러 가지로 방해를 받아서 말이지. 결국 어비스 입구에도 못 가봤거든. 엘프들의 여왕은 나온 적은 없고 그 제국의 여황제였나? 8살짜리 꼬마는 그 미친 놈들의 공격을 방어하다가 병력들과 함께 산화했었지. 성녀도 함께 죽었다던가? 음, 일단 그런 기억은 나는구나.”


  최악의 광경은 보지 않았구나.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도 그 세계에서 나라는 존재가 태어날 수 없었던 것이 조금은 씁쓸했다. 그리고 어머님들이 다수 죽어나갔다는 이야기를 듣고서는 아버지의 행운은 그만큼 불행으로 돌아온 것이 아닌지를 생각한다. 만약 다시 그곳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전해줄 수 있을터인데. 생각하면서 나는 조금 슬프게 웃었다. 어찌보면 아버지가 어머님 일직선으로 생활하고 있는 것은 당시 지옥을 체험하지 않았기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그 생각은 안으로 감춰두고 아버지와 어머님이 거기에서도 부부이며 잉꼬부부나 다름없었다는 말을 하자 두 분은 손을 꼭 잡고 행복해했다. 어려운 상황에서 만난 커플은 평온한 일상을 살아가면서 깨질 확률도 높다는데 이 두 사람은 거기에 해당되지 않는 모양이었다.


  “뭐, 그렇다면 네 누이의 무공습득은 너에게 맡기마. 현경에 달한 너의 실력이라면 우리가 지도하는 것보다 더 나을테지.”
  “아, 네. 괜찮나요?”
  “괜찮아. 이 녀석도 어차피 할 일도 없는데 그런 거나 배워두면 좋지 뭐.”


  안절부절못하며 대화를 듣던 누나의 눈에 안도감이 스친 것은 그 때였다. 그것이 조금 마음에 걸리기는 했지만 어쨌든 결과는 올라잇, 잘 된 일인 것 같았다.


  “다른 누나들은요?”
  “그 애들은 뭐, 상관없지 않을까? 그 애들은 무공을 배울 체질들도 아니라서.”


  그런가. 생각하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몸이 무지 피곤했기 때문에 조금은 잠을 자고 싶었다. 자고 일어나서는 대주천이나 몇 번 해볼까.


  “참, 그 엘프들의 여왕이라는 아이는 어떻게 생겼었냐?”
  “제가 아라를 보고 처음에는 굉장히 놀랐었어요. 아버지.”


  내 방으로 가기 전, 아버지가 나에게 그런 질문을 던졌고 아버지는 그 말에 조금 놀라는 듯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음흉하게 웃었다.


  “네 녀석, 으흐흐흐.”
  “참고로 말씀드리는 거지만 엘프들의 여왕은 결혼하지 않은 사람입니다.”


  그리고 아버지의 그 음흉한 웃음을 지워버리기 위해 항변했지만 아버지는 음흉한 웃음을 더 짙게 드리웠다. 이 사람, 설마.


  “잘 해봐. 나는 응원하고 있단다. 아라는 며느리감으로 어릴 적부터 찍어놓고 있었으니까 말야. 이 아비의 심미안에 감탄해도 좋단다.”
  “…….”


  지금 아버지가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지 아십니까. 그런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꾹 참았다. 지금의 아버지는 모른다. 그 인연이 어떻게 이어졌는지를. 그것을 생각하면서 꾹 참는다. 뭐, 이곳의 연아라가 반드시 아라니엔이라는 여성, 내 어머니였다는 확실한 증거도 없으니까 말이지. 괜찮아. 괜찮아. 꾹 눌러 참는다.


  “놀렸다고 화를 낼 녀석은 아닌데.”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서 뒤돌아선다. 일단 누나는 자신의 옷이 땀으로 흥건해진 것에 부끄러움을 느낀 것인지 샤워를 한다면서 사라졌고 아버지와 어머님은 자신들의 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나는 눈을 감으면서 마치 세뇌라도 하려는 듯 ‘연아라는 아라니엔이 아니다’라는 말을 계속해서 반복했다. 어둠 속에서 아라의 입술을 빼앗았던 것이 기억이 나서 얼굴이 붉어진 것만큼은 어쩔 수 없었지만.
  그래서 나는 밤잠을 조금 설쳐야 했다. 그리고 아침 일찍, 누나의 방에 가서 누나의 혈도를 타통시키고는 심법수련을 하게 했다. 묘하게 피곤한 하루의 시작이었다. 그리고 잠시 내 방에서 눈을 붙이고 있는데……그녀가 왔다. 내 마음 속 갈등의 원인인 그녀가.


  “일어나아. 정세진!”
  “…….”


  그 목소리를 듣고 정신이 확 들었다. 눈을 뜨자 금발에 아름다운 녹색의 눈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모습에 여자를 느끼지는 않는다. 하지만 어머니로 보이지도 않는다. 이 애매한 감정. 이 여자를 어떻게 해야 할까. 다른 세계의 연아라라는 이유를 붙여서 그녀를 확 안아버릴까? 그러면 지금 나의 머릿속을 복잡하게 하는 이 상념을 없앨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하며 나는 갈등한다. 아니, 지금은 갈등할 때가 아니다. 생각하면서 나를 바라보고 있는 그 천진한 눈동자를 끌어들인다.


  “자, 잠……흡?”


  갈등의 이유가 된다면 없애버리자. 생각하면서 입술을 맞추어버렸다. 그리고 잠시 후, 그 아름다운 녹색의 눈동자가 눈꺼풀 속으로 사라지고 그녀의 체중이 내 어깨에 실렸다. 이대로라면 끝까지 가버려도 반항하지 않을 것 같은 분위기. 나는 그런 분위기에 빠져들 듯 그녀의 입에 혀를 밀어 넣었다. 그 새하얀 얼굴에 순식간에 피가 몰렸다. 부끄러운 모양이다.


  “아, 아침부터 너무…….”
  “밤잠을 못 잤어. 이해해줘.”


  어떻게든 이성을 지켜내어 딥키스 정도로 마무리를 짓고는 그렇게 변명하자 아라의 얼굴이 빨개졌다.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걸까. 그 반응에 조금은 낙담하면서도 웃음이 나왔다. 이대로라면 오늘 저녁에 그녀의 내공수련을 도와주다가 ‘바보!’ 소리를 들으면서 쫓겨나는 게 아닌가 몰라. 일단 진도부터 나가고 나서 내공수련을 도와주어야 하는 걸까.


  “아, 아직 아이를 만드는 건 너무 이르니까. 그게……그러니까. 역시 첫아이는 남자가 좋을까? 난 아들보다는 딸이…….”
  “…….”


  얼굴을 붉히고는 고개를 숙이고 있다고 생각했더니 이미 가족계획까지 세우기 시작한 그녀의 모습에 그만 웃어버렸다.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야 이 아가씨는. 어머니, 아라니엔과 묘하게 닮은 성격을 가진 이 아가씨의 모습에 그리운 것을 느낀다. 돌아갈 수 없는 그 세계의 일상의 흔적이 언뜻 보였다. 힘을 키우면 돌아갈 수 있을까? 아니 무리이겠지. 그 차원을 특정할 수도 없으니……. 역시 이곳에서 살아가는 것이 최고일지도 모르겠다.


  “나도 딸이 좋아. 하지만 지금은 아침을 먹고 학교를 가야 하니까 말야.”


  이곳에서 살아가야 하니 이 세계의 법칙에 순응하는 것이 좋겠지. 생각하면서 그녀의 가는 허리에 손을 대고는 정중하게 에스코트한다. 이 갑작스런 대우에 놀란 듯 그녀의 얼굴에 물음표가 가득 생길 것 같더니 곧 웃기 시작했다.
.
.
  “반장, 안녕.”
  “선화야 안녕.”


  어제는 몰랐지만 김선화(일단 아버지의 부인 중의 한 사람이었던)는 우리 집과 가까운 곳에 있었던 모양이었다. 학교로 가는 길에서 우리는 그녀를 만났다. 그리고 그녀는 우리의 모습을 보고는 히죽 웃더니 농담을 던졌다.


  “아, 부부동반 등교야?”


  뭐, 그녀가 그렇게 농담을 던질 법도 한 것이 아라가 내 왼쪽 팔짱을 끼고 졸졸 따라오고 있으니까. 일단 사내들로부터는 질시의 눈동자가, 그리고 여자애들로부터도 질투의 눈동자가 쏘아져오고 있지만 그들의 그런 질투의 시선은 이미 극복한지 오래다.


  “뭐, 그렇다고 해두지.”


  그래서 나는 그렇게 대답한다.


  “아, 아……그, 그게…….”


  하지만 아라는 부끄러운 것 같고 말을 더듬고 있었다. 그 모습에 나는 상처를 받은 눈동자를 하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내가 싫은 거야?”
  “그, 그게 아냐! 하지만 그게…….”


  음? 무언가 이유가 있나?
  아라의 시선이 자꾸만 불안한 듯 선화를 바라보는 것을 눈치채고는 고개를 갸웃했다. 설마하니 선화가 나를 좋아하는 건가? 문득 그런, 다른 사람들이 알면 ‘과대망상도 유분수!’라는 말이 나올 것 같은 생각이 들었지만 일단 가능성만 인정해두고 뒤쪽으로 밀어두자. 그럼 남는 것은 협박을 받고 있다거나 앞으로 학교생활이 힘들어질지도 모른다는 걱정이라거나 하는 것이 남는데……. 모두 해당사항이 없을 것 같다. 그래도 조심하는 것이 좋겠지.


  “부부동반 등교라. 그럼 나도 한 번 그 기분을 느껴볼까?”
  “어이, 뭐하는 거냐.”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선화가 내 오른쪽 팔에 매달렸다. 그리고 팔짱을 낀다. 양쪽에서 가슴이 닿는 것을 느끼면서 나는 가벼운 패닉상태에 빠졌다. 어쩐지 꽉꽉 누르고 있는 것 같은데? 아라의 얼굴에 왠지 모를 분노가 떠오르는 것 같은데?


  “……저 자식.”
  “……양손의 꽃.”
  “……설마하지만 둘 다 넘어뜨린 건…….”
  “……용서할 수 없다!”
  “질투단!”
  “결성!”


  이 두 아가씨의 모습에 정신이 팔려 나는 잠시 얼간이들의 말을 무시했다. 뭐, 녀석들이 덤벼들더라도 내가 녀석들을 피해서 도망갈 수 없는 것도 아니니까.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였다. 내 얼굴이 무엇인가 부드러운 것으로 덮여 시야가 깜깜해진 것은.


  “뭐, 뭐야!”
  “어, 언니!”
  “세진이다♡ 너무 오래간만이야♡”


  언니?
  아니 그보다 이 물컹하고도 탱탱한 것은 설마하지만 가슴인 건가? 그보다 이 목소리는……. 어디선가 많이들은 목소리인데?


  “우후후, 대학 축제를 맞아 놀러가자는 선배들의 유혹도 뿌리치고 돌아온 나, 연아미 등장! 누나가 돌아와서 기쁘지? 역시 세진이는 나를 좋아한다니까. 이렇게 뿌리치지도 않으니까. 우후후후. 이대로 우리 집으로 돌아가서 아버지랑 어머니에게 인정을 받는 것도…….”


  어, 설마하지만 이건 마리아스?


  “진아! 빨리 뿌리쳐! 뭐하는 거야! 설마하니 나와 한 약속을 잊은 건 아니겠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쯤, 내 뒤통수를 누군가가 후려치는 것을 느낀다. 아, 이건 또……어디서 많이 듣던 목소리인데……설마하지만, 이건…….


  “아니, 지금 우리가 붙잡고 있어서……아아앗! 그걸로 치면 진이가 죽어버려요! 선배! 참아요!”


  누구인지 떠올리기도 전에 느껴지는 위기감에 몸을 굴려 피했더니 내가 있던 곳으로 목도가 날아들었다. 물론 나만 피한 것이 아니라 선화와 아미라는 마리아스의 목소리를 가진 여자까지 함께 피했으니 그녀의 목도는 허공을 가른 셈이었다. 급히 얼굴을 확인한다. 두 사람 모두. 예상대로였다.


  “마리아스와 카틀레야?”
  “누구야 그건! 설마 다른 여자가 있었던 거냐!”


  살기충천. 목도에서 검기를 내뿜을 기세로 덤벼드는 그녀의 모습에 식은땀을 흘린다. 그리고 원래라면 말도 안되는 짓이지만 목도를 손바닥을 겹쳐 저지한다.


  “아……여기에서는 요령이었지.”
  “선배의 이름을 마음대로 부르라고 했더냐! 그보다 나를 무시하는 거냐! 그 짓은 대체 뭐하자는 거야! 싸우자는 거냐!”


  내 눈 앞에 서 있는 것은 마리아스와 카틀레야였다. 물론 여기에서는 연아미와 지요령이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들. 각각 아라의 언니인 사람 하나와, 나와 같은 부, 검도부에 소속된 선배였다. 각각 20살과 18살. 한 사람은 대학생. 한 사람은 고등학교 2학년.


  “학교 등교할게 아니라 집으로 가자고!”
  “이봐요! 지금 진이는 전국규모의 대회에 나가야 하는……아앗! 나까지 끌어들이려는 겁니까! 이것 놓으세요!”


  아웅다웅. 그녀들이 난장판을 벌이는 것을 보며 나는 한숨을 쉰다. 이미 지나가는 사람들은 그런 우리의 모습을 보면서 웅성대면서 구경하는 중. 따지고 보면 네 명의 미인이 남자애 하나를 두고 아웅다웅하고 있으니 진귀한 구경거리일 것이다. 이걸 어쩐다. 생각하다가 나는 그녀들의 손을 잡아서는 그대로 아라의 집으로 달려간다.


  ‘일단 이 사태를 수습하는 것이 먼저일 것 같아!’


  물론 학교를 빠지는 건 덤이다. 물론 이것은 젊은 시절에 범할 수 있는 실책이자 하나의 특권. 청춘의 한페이지를 이렇게 물들이며 나는 도망간다.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서. 그렇게 달려가면서 나는 고민한다. 집에는 뭐라 변명하지하고. 골치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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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F2 2화. 난장판으로 변하고 있는 이 사태.
  아라니엔(세인 아슈레이의 7부인 중의 한 사람) = 연아라, 김선화(세인 아슈레이의 마지막 정실부인) = 김선화, 마리아스(첫번째 첩) = 연아미, 카틀레야(110번째 부인) = 지요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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