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판소]아버지처럼 되기 싫었어요 (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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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말하지만 이 글은 양판소(……야)이므로 개념이 없고 명랑소설이므로 어이없는 일도 일어날 수 있는 막장입니다^^;;; 양판소의 깽판이 싫으신 분은 조용히 백스페이스로 넘어가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작중에 언급되는 인물, 사건, 지명 등은 실제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습니다. 묘한 것이 보여도 신경 쓰지 마세요. 깊게 생각하면 지는 겁니다. 이 글은 양판소이니까요.
*이 글에 대한 저작권은 저에게 있을지도 모르나 행사할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왜냐하면 양판소니까요.
*이 글은 명랑소설을 지향하고 있으나……양판소이므로 깽판입니다.
[양판소]아버지처럼 되기 싫었어요
52話 별은 우리를 바라보지 않는다
106-1.
남쪽은 온통 꽃이 만발한 봄이었다. 미시어스 제국이었다면 아직 쌀쌀한 기온이 가득해야 할 봄, 이곳은 녹음이 짙게 깔리고 있었다. 조만간 길고 긴 무더위와 스콜이 올 때였다. 그런 계절에 나는 전쟁을 시작했다. 긴장이 고조되었던 것과는 달리 늦은 출동이었다.
그리고 시작된 전쟁의 양상은……기습적으로 영주의 성을 몰아치고 영주의 가족과 반항하는 군사들, 그리고 영주를 베어내고는 후퇴하는 식의 전쟁이었다. 그렇게 무너진 영지에는 미리 선발된 관리들이 들어갔다. 그리고 불안에 떠는 사람들을 질타하여 억지로 평온한 일상을 계속하게 했다. 전쟁은 그렇게 계속되고 있었다.
「탄식은 핏자국 위를 날아 고향으로 날아가는구나, 오오 서글픈 영혼의 미련이여!
사랑은 남은 사람들에게 고통만이 되어가는구나, 오오 슬픔만 남은 아가씨여!」
최대한 희생자를 줄이기 위해 최대한 영주들의 목숨만을 빼앗으려고 노력하던 나에게 어느 날 문득, 이런 노래가 들려왔다. 영주성을 부수고 질서정연하게 병사들을 몰아 철수하고 있을 적에 들은 구슬픈 가락의 노래였다. 고개를 들어 노래를 부르는 사람을 찾아본다. 로브를 걸치고 손에 든 현악기를 켜며 노래를 부르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얼굴은 알아볼 수 없지만 목소리만 보면 여자이리라. 그녀의 모습에 잠시 눈을 크게 뜨고, 귀를 크게 열고 들었다. 병사들이 달려가 노래를 그만두게 하려는 것을 손을 들어 제지했다.
「……핏자국만 남아 탄식을 흘리는, 지키지 못한 약속만 남은 영혼이여, 돌아오지 않을 사람을 그리워할, 아름다운 고향의 예쁜 아가씨여. 그대들을 불행을 한탄하라. 그대들의 불행한 소식을 기다라. 나는 이곳에서 노래에 핏자국을 담아 그대들에게 불행을 전하리니, 마음껏 슬퍼하라. 비록 그대들의 불행을 불러온 자들은 슬퍼하지 않겠지만! 별들은 그대들을 바라보지 않겠지만! 달은 그 소식을 고향에 전해주지 않겠지만!」
저주와도 닮은 가사를 마지막으로 여인이 부르던 구슬픈 노래 소리는 중단되고, 그 노래에 사람들이 수군대던 소리도 훨씬 조용해지고, 다만 포석을 때리는 병사들의 힘찬 발소리만이 둔탁하고 느린 울림으로 거리를 가득 채웠다. 그 발소리는 사람들의 머리 위로 높이 올라가서 맑은 하늘 속으로 흘러들어가 먼 곳에 있는 폭풍을 알리는 천둥소리의 반향처럼 공기를 떨게 한다. 그만큼 사람들의 마음도 떨리게 할 것이다. 나는 미소를 짓는다. 죄 없는 사람이 자신의 무고를 호소하여 보호받기를 청할 성직자도 없다. 어찌할 것인가, 당연히 노래는 멈추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끝내면 실망할 것이다.
다행히도 그녀는 마음을 죄이는 것 같은 눈빛으로 나를 바라본다. 침묵이다. 아까처럼 노랫소리라도 있다면 모를까, 노래 부를 이도 없는 이 침묵의 공간에서 나는 말을 꺼내었다.
“죽음이 두렵지는 않은가?”
재미있는 사람을 찾았다는 즐거움으로 나는 웃는다. 거리에 나온 채 점령자를 맞던 사람들은 피바람을 불러온 이 사람, 나에 대한 온갖 억측으로 두려움에 떨었다. 그런 사람들과는 달리 노래를 부르던 여자는 떠는 기색없이 나에게 이야기했다.
“분명히 두려울 겁니다. 하지만 해야 할 말을 다 하고 죽을 수 있다면 별로 두렵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억울하기는 하겠지만요.”
“그래서 지금 죽는다면 억울하겠는가?”
근거도 없는 단순한 예감이지만 이 여자는 붙잡아두면 재미있을 것 같다. 보통 이것을 예감이라고 하지만 이것이 보통 예감일 리가 없다. 다른 것보다 지금 이렇게 대화가 통하는 것을 보았을 때 이것은 예감이 아닌 확신에 가까워진다.
“억울하다기보다는 두렵습니다.”
“하하하, 하하하하핫!”
유쾌하다. 바쁘게 움직이면서 사람이 죽어가는 모습을 냉정하게 바라보아야 했던 재미없는 일상에 들이닥친 즐거운 자극이 유쾌했다. 그래서 나는 ‘패턴대로’ 움직이기로 생각했다.
“그녀를 데리고 오도록. 이야기를 듣도록 하겠다.”
“넵!”
그렇게 패턴대로 움직이면서도 나는 한마디를 하고 싶어서 입이 근질근질함을 느꼈다. 이걸 말해버리면 패턴대로 되지 않을 것인데. 조금 고민하다가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의 전설에 나온 모자 만들던 장인의 예처럼 속 시원하게 만들어버리기로 결심했다. 말하고 싶은 것을 마음속에 쌓아두었다가 마음의 병이 생기는 것은 바라지 않는 것이다.
“나를 도발하려고 했으니 그 노래를 어떻게든 평가해도 상관없겠지. 도발하려는 목적으로는 1급이었고 노래 자체로는 3급이었다. 화자가 이야기하는 주제는 괜찮았지만 그 전개양상이라거나 드러내는 정도가 미숙했다. 전체적으로는 3급이라고 하겠지만 간이 부은 정도로 보아서는 귀찮게 돌려서 말하는 것보다는 훨씬 시원했으므로 2급 정도로 평가하도록 하겠다. 다음에 나에게 노래를 들려줄 때에는 1급을 받아볼 수 있도록.”
빙긋 웃으면서 그런 말을 던지고 돌아섰다. 그 말에 그녀가 조금은 불쾌한 표정으로 나를 노려본 것은 즐거운 반응이었다고 생각하도록 하자.
.
.
그녀의 이름은 ‘셰에라자데 발레뤼스’였다. 옐레스 대산맥에서 갓 성인이 되어 처음으로 외부 세계를 여행할 수 있게 된 여성 엘프로서 웰렉 산맥을 통해 남하하고 있던 도중이었다고 한다. 거기에서 처참하게 영주와 그 가족, 그리고 끝까지 저항하는 병사들을 참살하는 내 모습에 저항감을 느껴서 그런 노래를 했다나. 그래서 나는 그녀에게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인지를 알려주고는 이마에 가볍게 손가락을 튕겨 알밤을 먹이는 것으로 벌을 주고는 내 막하에서 경험을 쌓을 수 있게 돕고 있다.
“잔텐바인 남작은 살려주십시오.”
“왜?”
그렇게 엘프 여성의 교육을 돕는(말다툼이 전부이지만) 와중에도 전투와 전후처리는 계속되고 있었다. 이번에는 영지군의 수장인 남작의 처리문제로 골치를 썩일 차례인 것 같았다. 다른 사람도 아닌 장군이 직접 그렇게 구명에 나설 정도인 것을 보면 괜찮은 인물인 것 같다. 적어도 지금까지 누군가의 구명을 청한 사람들은 대부분이 적당한 이유가 없이 나섰다가 내 손에 목이 달아나……지는 않고 왕도 루테시아로 압송되었으니까. 왕도로 끌려가면 지금까지의 공적 따위는 모두 삭제되어 버리고 다는 것을 아는 장군직책에 있는 사람이 나서서 구명을 청할 때는 그만한 무엇인가가 있다는 것일지도 모른다.
“시집보낸 딸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반역에 참가했지만 왕도로 진군하지는 않았을 사람입니다. 왕실에 반감이 없었고 피해를 최소화하려 노력한 사람입니다. 살려주십시오.”
으음, 이 말을 믿을 수 있을까. 잠시 고민하다가 마지막으로 확인하고는 마음을 결정한다.
“리아르 장군. 그 말에 책임질 수 있겠는가?”
“제 목을 걸겠습니다.”
“좋다. 왕도 루테시아로 압송하도록.”
“감사합니다.”
일단 목숨을 살려두기는 했으니까 그가 나선 용기에 대한 보답은 되겠지. 그런 생각을 하면서 자신의 양심대로 움직인 장군에게 약간의 벌금형을 선고했다. 그것만으로도 그는 무척이나 감읍했다. 감읍해야 할 정도로 자비로운 처리를 하지는 않았는데 말이지.
“이걸로 이번 영지처리는 끝.”
“수고하셨습니다. 이번에는 몰살을 시키지는 않으셨군요.”
“나라고 피를 보는 것이 마음 편할리는 없으니까 말야.”
“싸늘한 태도로 웃고 계셨던 것과는 어울리지 않는 말씀이시군요.”
이런 일로 미루어 짐작할 수 있겠지만 나는 기본적으로 적들에게 공포를 불러올 수 있는 ‘토벌전’을 벌인다. 물론 원래라면 하루라면 일을 끝낼 수 있겠지만 그렇게 힘을 보여주면 인간의 특성에 따라 현실을 인정하지 않고 초월적인 힘이 도와주었다고 여겨 오히려 일이 커질 수가 있다. 따라서 나는 병사들의 희생과 적들의 희생을 감수하고 움직이고 있다. 그렇게 함으로써 피의 길 위로 공포를 심어나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 공포를 바탕으로 우리에게 굴복하기를 바랬다. 실제로 우리가 진군하는 쪽의 영지에서는 반드시 탈영병이 나왔다. 다만 영주들은 자신들이 살아남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던지 덤비거나 후퇴해서 다른 영주들과 연합하는 것을 택했지만. 아쉽게도 자기 스스로 목을 들이 밀어주는 자는 없었다.
“뭐, 그건 그렇다고 생각하도록 하지. 중요한 건 지금인데……. 이제 남은 건 겨우겨우 모인 1만 5천의 병력과 이곳에 항복한 총 1만의 병력이네. 죽은 자들을 빼고 나면 대략 2만 명이 탈주를 한 셈이야. 거기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지? 셰에라자데 발레뤼스?”
“저에게 그런 걸 물어보셔봐야…….”
“그냥 물어봤어.”
“…….”
이렇게 탈주를 해버린 2만 명은 앞으로 프리그 왕국에는 재앙에 가까운 사회불안요소가 될 것이라고 단언해도 좋다. 그렇게 확언해버리자 즉시 셰에라자데 발레뤼스, 내가 머리를 그 허벅지에 대고 있는 이 엘프 아가씨는 발끈했다. 그런다고 무릎베개를 하던 것을 빼버리는 건 좀 인정이 없어 보이지 않을까. 아가씨.
“반드시 그럴 거라고는 생각할 수 없어요.”
“적어도 2천여 명만이라도 칼을 쥐게 되면 사회적으로 부담이 될 걸?”
엘프 여인이 왜 인간을 두둔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아무래도 나에게는 상관은 없는 일이긴 하다. 그럼에도 굉장히 궁금해지는데…….
“그리고 말이지, 사람들은 좀 더 쉽게 벌어먹고 살 수 있게 되면 거기에서 다른 방법은 떠올리지도 않고 떠올리기도 싫어하면서 헤어 나오지 못한다고. 믿어도 좋아.”
“그런 말은 인정 못합니다!”
잠깐 시간을 들여 그녀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자면 다음과 같다. 그녀는 이제 갓 20세가 된 엘프다. 그리고 아직 어렸다. 물론 그녀가 성인으로 인정을 받고 세상에 나온 것이라고 보아야겠지만 아직 경험은 일천하였으므로 어리다고 보자. 15세가 되면 한 사람 몫의 어른으로 취급하는 인간과는 달리 5년의 유예를 더 두고 있는 엘프들의 성격상 일단 좀 더 안정된 어른스러운 모습을 보일 것으로 보아야겠지만……딱 20세인 나이에, 군대를 이끌고 진군하고 있는 내 앞에서 그런 도발성 노래를 부른 것을 보면 어른답다고 이야기하기는 힘들 것이다. 말하자면 정의감 넘치는 사회초년생이라고 보는 것이 무방할 정도다.
“정 그러면 내기를 해도 좋아. 서로가 원하는 것을 들어주기. 어때?”
그러니까 이렇게 적당한 조건으로 도발을 하면 자신의 부족한 경험을 메우고 있는 지식이 내린 결론만 믿고 앞뒤 가리지 않고 덤벼드는 것이겠지. 음, 내기에서 이기면 뭘 요구할까? 역시 나탈리 옆에서 쫑알쫑알 잔소리를 하게 둘까나. 노래는 잘하니까 전속 악사로 고용해서 말이지. 으음, 역시 그게 제일 좋을는지도……. 나탈리의 백합속성이 조금 걱정되기는 하지만 내가 없는 동안 백합이라도 즐긴다면 그것도 나쁘지는 않을는지도 모르고…….
“왠지 모르게 기분이 나빠지긴 했습니다만 좋은 조건이니 한 번 따라보도록 하겠습니다. 대신 몸을 달라거나 하는 식의 요구는 미리 제외하도록 하죠.”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내 표정에서 무엇인가라고 읽은 듯 그녀는 제한을 걸어버렸다. 뭐, 그래봐야 내가 직접 건드리지만 않으면 되는 거고, 함께 생활하다보면 감정이 어떻게 흐르게 될지는 아무도 모르니까 말이지. 하지만 나를 짐승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모양이니 조금은 놀려주자. 그렇고 그런 것을 요구할 것이라 생각한 그녀에 대한 심술이다.
“응? 그런 걸 생각하고 있었던 건가?”
“……!?”
“으음, 몸을 달라고 한다라. 하긴 보통, 남자들은 엘프들 같이 아름다운 여자들을 보면 정신을 차리지 못하니까 그렇고 그런 요구를 하게 될 것은 확실하지.”
“아, 아니, 그것이…….”
빙긋, ‘아무것도 몰랐었습니다.’라는 것처럼 웃으면서 본격적으로 괴롭히기 시작.
“하지만 순수의 상징인 엘프가 그렇고 그런 생각까지 하게 만들다니, 역시 인간은 어쩔 수 없는 걸까. 확실히 전멸시켜버리는 편이 나을지도 몰라.”
그리고 ‘나는 위험한 사상을 가진 사람입니다.’라고 말하는 것처럼 살짝 위험한 분위기를 풍겨준다. 그녀의 얼굴이 새파래진 것을 보면 성공한 것도 같은데 말이지.
“아, 나도 같은 인간이니까 말이지. 죽어버릴까? 그것도 괜찮…….”
“아, 안되요오오오!”
내친김에 아예 내 목에 검을 들이밀었더니 눈물까지 흘리면서 말리기 시작한다. 너무 놀려버리면 울지도 모르니 여기에서 그만둘까.
“……라는 농담이었습니다.”
“……!?!!”
벙찌는 그녀의 표정에 더 이상은 참지 못하고 마구 웃어버렸다. 놀려먹기 딱 좋은 성격이라고 생각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순진하고 경험이 없다. 이건 잘 키워주지 않으면 그 누군가에게 속고 또 속아버릴지도 모르겠다.
“너무 순진해서 말야……아아, 즐거웠어. 놀려먹기에는 딱 좋은 녀석이야. 넌.”
그녀가 나에게 악마라거나 불한당이라거나 하는 말로 매도하는 소리가 들려오지만 신경쓰지 말자. 무척이나 즐거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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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움이 있으면 기분 나쁜 일이 있게 마련이다.
“미친놈이었군.”
“당신이 군대를 몰고 들이닥쳤기 때문입니다.”
“이런 녀석들을 미리 해치우지 못한 건 내 책임이겠지만……이런 놈들이 품은 생각대로였다면 이 나라는 지옥이 되었겠지라는 핑계를 대고 싶어지는 광경이군. 죄책감은 마음속에 품고 지금은 녀석들을 없애는데 최선을 다하도록 하지. 이런 지옥은 더 보고 싶지 않아.”
불타오르는 영주성의 풍경을 바라보면서 날 선 목소리로 말하는 그녀의 말에 기분이 더더욱 더러워지기 시작했다. 물론 이건 그녀가 나를 매도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영주성 안의 풍경 때문이다. 그 안에는 이미 숯이 되어버린 사람들이 쓰러져있었고 온통 아비규환에 가까운 모습이다. 그 모습에 대경하여 황급히 달려와 불길을 잡는 동안 영주는 도망쳐버렸다. 영지민들에게 방어를 맡기고 도망친 영주 놈들보다 더 최악인 녀석이다.
“잠시……그 영주 놈을 잡아 죽이고 올 테니까.”
“분명히 당신은 ‘인간들이 납득할 수 있는 힘만 사용하겠다’고 하셨습니다만.”
“적어도 이건 납득할 수 있는 힘일 걸, 녀석들은 멀리 도망가지 못했으니까.”
“그렇다면 저도 따라가도록 하지요.”
“방해할 생각인가……뭐, 방해할 수 없게 할 수는 있지.”
음흉한 마음으로 이런 짓을 하는 건 아니니까. 그녀를 옆구리에 끼면서 마음속에서 그렇게 납득하고는 녀석들을 추격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녀가 보는 앞에서 녀석들을 참살했다. 물론 영지민들까지 불태워 죽이라 명했을 영주는 목숨만은 붙여두어 끌고 왔다. 그 끔찍한 모습에 그녀의 얼굴은 새파랗게 질려있었다.
“이게, 당신의 책임감입니까?”
“절대적인 힘으로 공포를 심는다. 이런 짓을 벌이는 녀석들은 반드시 응징한다는 공포를 말이지. 그게 나의 방법이다. 너는 어떻게 할 거지?”
‘이런 선례를 남겨 후의 비극을 막고 싶어하는 마음은 알겠습니다.’라고 말하는 그녀에게 나는 질문을 던졌다. 그녀의 얼굴에는 그림자가 드리웠다. 마음껏 고민하라고. 순진하기 그지없는 엘프 아가씨. 내가 세상의 추악한 모습을 모두 보여줄테니 나탈리에게서는 세상의 아름다운 모습만 발견하기를 바랄게. 그런 생각을 하며 나는 그녀가 마음껏 고민하게 내버려두었다. 자기 스스로 답을 만들어내고 적용해보고 무너뜨리고 다시 답을 찾으려 노력한다면 그녀도 훌륭한 어른이 될 수 있겠지하는 생각으로.
107.
일방적인 기습과 토벌전으로 영주들이 대부분 도망가거나 죽어버린 후에는 반란군들은 한 곳으로 모여들었다. 적어도 내가 그곳은 건드리지 않았으니 가장 안전한 곳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바로 이 반란군의 얼굴마담이자 실질적인 지도자인 말종 백작의 성이었다.
“개활지에서의 회전은 하지 않겠다는 건가…….”
그리고 그곳으로 모든 반란군들이 모여들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나는 혀를 찼다. 최소한 게릴라전이라도 벌일 생각은 없었던 모양. 아무래도 반란군들에게는 군사적인 역량은 없었던 모양이다. 그리고 영지민들에 대한 최소한의 자비도 없는 모양이다.
“살려주십시오!”
“허락한다. 이곳에서 이주하라. 식량과 의복을 들고가는 것까지 모두 보장하겠다.”
“가, 감사합니다!”
식량과 의복을 들고가는 것까지 모두 보장한다고 했음에도 허둥지둥 마을을 떠나는 자들의 짐꾸러미에는 별다른 것들이 없었다. 그것이 안쓰러워 그들에게 당분간 버틸 수 있는 식량을 건네주기도 했을 정도다. 말하자면 반란군 녀석들이 모두 쓸어가 버린 상황. 덕분에 내가 인솔하는 군대의 보급이 간당간당해질 위기에 처할 뻔도 했지만 몰래 내가 채워 넣어 위기는 없었다. 어쩌면 이것을 노렸는지도 모를 일이다.
“주변은 깨끗합니다.”
“매복은?”
“없습니다. 아예 활개를 치고 다녀도 걸릴 것 하나 없을 정도로 조용합니다.”
군사적인 역량이 없는 것 같다고 생각했지만 정말로 없는 모양이다. 식량이 부족해지면 멀리까지 식량을 구하러 돌아다녀야 하는 상황까지 몰 수 있음에도 우리가 성벽 근처에 머무르면서 도발할 때까지 아무런 움직임도 보이지 않았다. 정찰을 나간 병사들이 허탈해할 정도로 말이다. 말하자면 바보들이다.
“바보들 맞네요.”
“저로서는 좋지만요.”
“뭐, 그렇다고 해두지. 리아르 장군은 의용병들에게 진지를 구축할 것을 명하고 병사들에게는 진지를 구축할 동안 경계근무를 설 것을 명하고……셰에라자데는 평소처럼 자유롭게 돌아다녀도 상관없다.”
“제가 스파이라면?”
“너를 스파이로 쓸만한 머리가 저 녀석들에게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데 말이지. 무엇보다 거짓말 못하는 엘프니까 너를 스파이로 쓰겠다 생각하는 녀석이라면 바보인 거고.”
어쨌든, 이런 상황에 비추어볼 때 뒤통수를 맞을 여지는 없었다. 반란군에 동조하거나 힘을 합할 여지가 있는 영주들을 모두 토벌한 덕분이라고 생각하고 싶긴 하지만 그냥 상대할 녀석들이 바보라는 이유 때문인 것 같다. 허탈하달까. 마치 컴퓨터랑 3:1로 스타크래프트를 하면서 입구 막고 캐리어까지 테크를 올리고는 없는 자원 다 짜내어 캐리어 한 부대를 편성하여 나왔건만 아직 일꾼 5마리를 두고 자원만 캐고 있는 컴퓨터를 보는 느낌이랄까.
“평화는 좋은 거잖아요?”
“그 게임의 목적은 적의 전멸이니까.”
이해못한다면 대충 넘어가라고 셰에라자데. 그렇게 ‘그런 야만적인 게임은 근절해야 합니다!’라고 외치지 말고 말이지.
“너도 체스는 두잖아?”
“그, 그거랑은 다를지도…….”
“그것도 같아. 그것도 전쟁이지.”
어쨌든 바보라서 녀석들을 상대하는 것이 쉬워져서 다행이지만 아쉬운 것은 개활지에서 회전을 벌이고자 진영을 풀고 후퇴하는 식으로 도발을 걸어도 그 바보들은 성만 굳게 걸어 잠그고 지키고 있다는 것. 단순히 겁을 먹고 있는 것 같기도 하지만 이대로라면 함부로 공성전을 할 수는 없다. 일단은 병력이 부족할 뿐만이 아니라 말종 백작이 지배하는 도시, 말종에는 예상대로라면 5만의 시민이 있다. 자칫하면 그들이 학살될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싸우실 건가요?”
“일단은, 방법은 생각중이야.”
그렇게 고민하고 있는데 셰에라자데가 말을 걸어왔다. 그 얼굴은 어두웠다. 지난 한 달간 나를 따라다니면서 인간세상의 어두운 면을 많이 보았기에 그 얼굴은 항상 침통했다. 그녀가 목격한 비극들이 나를 말리지 못한 자신의 책임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일까. 그랬다면 웃음이 나올 정도로 바보같은 고민이지만 지금은 계속 고민하게 두자. 그러면 언젠가는 깨닫겠지. 모든 사람들을 구원할 수는 없다는 것을 말이지. 하지만 지금은 그 생각을 부인하고 싶어하고 있는 것이고 말이지.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줄까?”
“네?”
모든 사람들을 구원하고 싶어하는 자가 어찌되는지, 조금은 힌트를 주고 싶어졌다. 일단 반란군쪽에서도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으니 그녀에게 이야기를 들려주기에는 적당한 타이밍일 것이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 바라보는 그녀에게 그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다른 세계에 묵자墨子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의 가르침은 자신의 부모님, 가족들을 사랑하는 만큼 타인도 사랑하라는 것이 기본이었지. 겸애兼愛사상이라고 할까. 말하자면 보편적인 사랑을 추구하라는 것이었지. 실제로 그가 그런 사상을 설파하고 다닐 적에는 그를 직접 따라다니는 무리가 수만에 이르렀다고 알려져 있었다.”
‘정의의 아군’이야기가 아니라서 미안하지만 이 사람만큼 실제로 노력한 사람은 없으니까. 이 이야기가 가장 적당한 예라고 생각한다.
“세계가 혼란에 빠져 있다면 그것은 인간의 이기심과 편애 때문이고, 따라서 이런 혼란을 없앨 수 있는 치료법은 "편파성을 보편성으로 바꾸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이 남의 나라와 도시를 자신의 나라와 도시로 생각하면 아무도 남의 나라를 공격하거나 남의 도시를 점령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라는 거였었지. 그 사람의 생각에 따르면 가족과 개인의 행복에도 똑같은 원칙이 적용된다고 할 수 있었지. 세계의 평화와 인간의 행복은 보편적 사랑의 실천에 달려 있다고 보았으니까. 이 새로운 가르침에 대해 실현 불가능하다거나 부모의 특수한 권리를 무시한다는 등의 수많은 반론이 제기되었지만, 그는 보편적 사랑의 원리가 실용적인 정당성과 신성한 구속력을 내포하고 있음을 입증하려고 노력했어. 그는 "보편적 사랑과 상호이익"을 함께 이야기했으며, 이 원칙이야말로 인간의 길인 동시에 신(神)의 길이라고 확신했다는 거지.”
그렇게 그의 사상은 200여년동안 큰 세력을 떨쳤다. 실제로 당시의 중국에서는 이 사상이 유교와 함께 주요한 사상적인 학파라고 인정했을 정도였으니까. 하지만 그것도 기원전 2세기가 되어서는 순식간에 몰락하고 말았다. 진이 천하를 통일하고 나서의 일이었다. 필시 진시황의 분서갱유같은 사상적인 탄압이 있었겠지만 큰 다툼이 없게 된 시대에 묵가의 사상이 큰 매력을 가지지 못했을 것이라는 것이 진실일 것이다.
“무엇보다 국가의 통치자가 백성들과 같은 수준으로 살아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 가장 큰 문제였을지도 모른다고 하는 사람도 있었지. 강한 힘을 가진 통치자는 부에 탐닉할 가능성이 높으니까 말야. 뭐, 이건 중요치는 않고 실제로 그는 자신의 지지자들과 함께 전쟁이 난 곳을 찾아다니면서 전쟁을 말렸다고 하더군. 그리고 설득이 통하지 않았을 때에는 지지자들을 데리고 중간에 끼어들기도 하고 말야. 그 무력이 얼마나 강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광대한 영토를 가진 국가, 초라는 나라의 병력을 상대로 몇 번이나 수성을 성공시킨 단체였으니 이것도 이들의 소멸에 영향을 주었을 것만은 분명해.”
겸애, 혹은 박애라고도 부를 수 있을 이 사상에는 그 사상을 따르는 사람들의 희생이 필요했을 것이다. 세상이 평화로 물들지 않는 한에는. 어쩌면 그들의 존재가 혼란의 이유가 되었을 수도 있겠지. 2000년대 이후로 나온 건담 시리즈에 나오는 라크스 클라인이라거나 설레스철 비잉이라거나 하는 녀석들처럼 말이다.
“결국은 군사적으로 휘말려 들어갔다는 이야기군요.”
“힘이 없는 자에게는 전쟁을 말릴 수 있을 수단은 없을 테니까. 자격은 충분하겠지만.”
‘결국은 그것이 세상의 한 법칙이다. 네가 가진 힘은 자신 한 사람뿐.’ 그렇게 단언하면서 나는 그녀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그녀가 어떤 선택을 할지는 모른다. 지금 내가 그녀에게 묵자에 대한 이야기를 해준 것은 어디까지나 그녀가 택할 수 있는 한 가지 방법을 제시해준 것에 불과하다. 이 이야기의 방법대로 할지 어쩔지에 대해서는 어디까지나 그녀의 판단. 내가 참견할 것은 아니다. 물론 이런 길을 택한다고 하더라도 나는 그녀를 붙잡아 루테시아의 왕궁에, 나탈리의 곁에 밀어넣을 생각이지만.
“전쟁을 피하기 위해서 또 싸운다라…….”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말했지. 내가 지옥에 가지 않으면 누가 지옥에 가겠는가.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하기 위한 발언이었을지도 모르겠지만 적어도 그 노력 자체는 평가해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많이 고민하고 그 결과, 혼탁한 세계에 뛰어든 것이니까.”
고민하는 그녀에게 그런 말을 남기고 돌아선다. 그러다가 문득 하나를 더 말해주고 싶은 생각이 들어 다시 한 번 뒤돌아보았다.
“이상은 높은데, 그 이상만큼 세상이 마음대로 잘 안돌아가지? 그럴 때는 그렇게 생각하라고. 별들이 우리를 보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별들을 보면서 길을 걷는 거라고. 그렇게 걷다가 그 별빛이 내려앉은 언덕아래에서 최후를 맞아 잠들 수 있다면 그것도 행복이겠지. 나는 이해하기 어려운 종류의 행복이겠지만 말야. 물론 이해를 못하는 건 아냐. 참고로 나는 묵자의 말 중에서 지배자가 백성들과 같은 눈높이를 가질 수 있도록 검소하게 살자는 말에 찬성하는 편이야. 생각만큼 잘 안되어서 서글프지만 말야.”
생각에 잠긴 그녀를 내버려두고 나는 눈앞의 성곽을 바라본다. 역시 무너뜨려야 할까? 아니면 파고들어서 지휘부만 전멸시켜버릴까. 수없이 갈등한다. 딱히 갈등해보아야 결론은 나지 않겠지만. 이럴 때는 무엇이라도 해보는 것이 최선일 것이다.
“일단 이야기를 해볼까.”
녀석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건 마음에 들지 않지만 일단 그런 발버둥이라도 쳐볼까나.
.
.
“뭐, 결국은 항복하지도 않겠다는 이야기구만. 추방형 정도로는 그 죄를 참작해줄 수 있었는데 말이지. 어쩔 수 없나. 오늘부터 밤을 조심하라구.”
발버둥을 쳐봤지만 무리였다. 이곳에 모인 그들은 머릿수에서 우리를 압도하기 시작하자 정신이라도 나가버렸는지 도무지 정상적인 대화를 나눌 수 없었다.
“어딜가려고?”
물론 여성체의 얼굴(상반신까지만)을 한 내 모습에 넋이 나가버린 것도 문제였지만. 으음, 역시 셰에라자데를 데려오지 않은 것이 다행인가. 그녀가 있었다면 이런 모습을 보고 더 좌절했을지도 모르니까 말이지. 으음, 이 녀석들을 어찌한다…….
“10억받을래? 고자될래……가 아니라 풀어줄래? 고자될래?”
“무슨 소리인지는 모르겠지만 우리에게 잡혀주어야 할 것 같은데?”
민망하기 그지없는 타이즈가 불룩해진 것을 보면서 히죽 웃자 말종 백작의 얼굴에도 비웃음이 떠올랐다. 분명, 내가 일대 백으로 기사들을 때려잡은 것을 목격했을텐데도 이런 모습이라니, 게다가 내가 남자라는 것을 기억하지 못하고 있는 것인지. 바보들이다.
“이렇게 예쁜 얼굴이 남자일 리가 없잖아!”
“…….”
그런거냐. 현실도피를 해버린 거냐.
최근 몇 달, 나에게 쫓기듯 살아온 녀석들에게 내가 남자라는 것이라거나(물론 상반신까지는 여자이지만) 내가 그들이 그렇게 타도하겠다고 외치던 세진 알카로이드라는 것은 잊은 듯이 욕구에 충만한 모습이었다. 이건 뭐 양판소보다 더 질이 나쁜 반응들일세. 이 녀석들 때문에 고민했던 것이 바보 같아져서 한숨을 내쉬었다.
“그냥 여기에서 편하게 죽게 해줄게.”
그러니까 골치 아프게 생각하지 말고 녀석들을 날려버리자. 뭐, 일단 책임을 물어야 할 녀석도 있으니 몇 놈은 살려두고 말이지.
“웃기지……어?”
누군가가 이 장면을 본다면 이렇게 이야기할지도 모르겠다. 사람들의 목을 아무렇지도 않은 듯 쳐버리는 내 표정은 지옥에서 올라온 악마와도 같았다고. 사람들이 경악하거나 말거나 지휘부를 절멸시키다시피 한 나는 말종백작의 목에 검을 겨누고는 뒷걸음질로 건물 밖으로 나가게 한다. 그리고 웅성거리면서 이 모습을 보고 있는 병사들에게 한마디를 해주었다.
“자, 킹이 잡혔는데 어쩔거지? 폰 여러분들. 이제 그만 항복하는게 어떨까?”
이것으로 반란은 쉽게 끝나 버렸다. 별 멋도 없는 결과였지만 뭐 어때, 귀찮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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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I.Joe 봤습니다만, 이병헌 씨는 거의 주연급 조연인 듯? 일본 쪽에서 김치닌자라느니 어쩌니 하면서 열받아하는 이유를 알 것 같다는…….
+이번에 개봉할지 못할지 아직 알 수 없는 모 애니메이션을 보았는데 원작을 보지 못한 사람이라면 이해가 불가능할 정도로 전개가 뚝뚝 끊어지더군요. 하지만 최근 그 회사 분위기가 그런 것인지 열혈분위기로 가는 것도 제법 괜찮은 것도 같아서……아아, 제발 사골은 이제 그만orz
+셰에라자데는 아라비안 나이트의 세헤라자데에서 따온 캐릭터입니다. 물론 여기에서는 ‘전쟁’이라는 것을 막기 위해 나선 쪽이지만…….
+한번 멋들어지게 써보자 생각했지만 2페이지부터 포기. 멋들어지기는 커녕 이야기가 이상하게 흘러가고 있는 중인 듯-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