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판소]아버지처럼 되기 싫었어요 (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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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말하지만 이 글은 양판소(……야)이므로 개념이 없고 명랑소설이므로 어이없는 일도 일어날 수 있는 막장입니다^^;;; 양판소의 깽판이 싫으신 분은 조용히 백스페이스로 넘어가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작중에 언급되는 인물, 사건, 지명 등은 실제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습니다. 묘한 것이 보여도 신경쓰지 마세요. 깊게 생각하면 지는 겁니다. 이 글은 양판소이니까요.
*이 글에 대한 저작권은 저에게 있을지도 모르나 행사할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왜냐하면 양판소니까요.
*이 글은 명랑소설을 지향하고 있으나……양판소이므로 깽판입니다.
[양판소]아버지처럼 되기 싫었어요
37話 아수라장
79-1.
다음날, 처음에는 그냥 갇히게 되었지만 나중에는 연구를 위해 나올 생각도 없었던 지하 감옥을 개조한 창고에서 나와 황제가 있다는 본궁으로 이동했다. 일단 만약을 위해 얼굴에는 인피면구를 써서 야비해 보이는 얼굴과 평범한 얼굴로 위장한 우리는 트레이라고 해야 할지 밀것이라고 해야 할 것인지 헷갈리는 것에 황제의 새 몸을 싣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긴장되십니까?”
“조금은……그렇다고 할 수 있겠네요.”
그렇게 걸어 황제의 방까지 이동했다. 대여섯명의 노인들이 문밖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나타샤 황녀의 출현에 반색을 했다. 그런 그들에게 일일이 인사하는 대신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고는 바로 방으로 들어가는 그녀의 뒷모습에서 초조함이 보였다. 그렇게 긴장하지 않아도 되는데 말이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14살인 주제에 어른같은 외모를 한 릴리아나 47황비가 잠든 황제의 머리맡을 지키고 있다가 우리를 맞았다. 그녀의 얼굴에도 긴장이 어려 있었다.
“안심하세요. 성공할테니까요.”
“네…….”
그런 그녀들을 안심시키려는 듯, 아버지는 빙긋 웃으면서 큰소리를 쳤다. 반드시 성공한다고. 하긴 대충의 개념을 잡은 나도 성공할 거라고 확신이야 할 수 있겠지만 저렇게 오버하면 오히려 사람들에게 불안감을 심어주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냉정하게 고했다.
“슬슬 시작해야 할 것 같습니다만.”
“아, 그렇지.”
내가 냉정하게 고한 것과는 달리 아버지는 어딘지 모르게 능글능글한 모습. 살짝 노려보면서 이야기한다.
“왜 안합니까?”
“너에게는 실망했다. 진.”
“뜬금없어. 기분나쁜 수염 붙이지마!”
피로한 듯, 푹 자고 있는 노황제가 깨지 않을 정도로 두들겨주고는 해야 할 일을 시작한다. 왜 이렇게 내가 이렇게 쓸데없는 일에 한팔을 거들고 있는지 의문이 들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그 일은 잠시 잊어버린다. 스펠을 외울 준비를 한다. 평상시 언령이나 다름없는 무영창발동을 자랑하는 나지만 이 상황만큼은 안심할 수 없다. 까딱 잘못하면 이 황제, 죽어버릴지도 모르고. 그랬다가는 당장 전쟁이 날지도 모르니까. 이런 일을 잘못 맡았다가 전쟁이 나는 것만큼은 사양이다.
“ωχζγβκρτνξιβρυΥΦΕδχφτσβχκαλμ…….”
“αγτυδφεζθκωτρπιλξεδβαυτφψωθη…….”
정신을 차리고 제대로 시작. 아버지도 능글능글하던 얼굴에서 미소를 지우고 진지한 모습으로 영창을 시작. 잠시 후 잘 자고 있던 황제의 몸이 서서히 흩어지며 불꽃이 피어오르는 듯 가루처럼 흩어진다. 불꽃이 피어오르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피닉스의 주문>을 외웠기 때문이다. 여기서부터 스펠의 변경. 이번에는 <영혼의 안착>과 <고정>의 주문을 동시에 진행해야 하기 때문에 더욱 더 신경이 쓰인다. 그런 우리들을 초조한 기색으로 바라보고 있는 황녀와 황비를 곁눈질로 바라보고는 최선을 다한다. 세상의 윤리가 어떻든 지금 하는 일은 이미 벌인 일이므로 최선을 다할 수밖에 없다.
“ρτνξιβρυΥωχζγβμφεζθκωτρπιυτφψ…….”
“τσκΦΕδαλωθηβχκλαγτυδχφξεδβα…….”
등골이 오싹하게 젖는 느낌, 몸 안의 마나가 대량으로 방출되는 느낌. 그 느낌들을 무시하면서 새로운 몸으로 들어가기 저어하는 노황제의 영혼을 재촉하여 밀어넣기 시작한다. 일단 다리부터 겹치고 팔을 겹친다. 세세한 컨트롤로 손가락 하나하나, 발가락 하나하나 겹쳐나간다. 그리고 천천히 몸을 가라앉혀 몸 구석구석이 딱 맞아들 수 있도록 만든다. 그리고 새로운 몸과 겹치는 느낌에 발버둥을 치려는 노황제의 영혼을, 이것을 영혼이라고 불러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억누르면서 계속해서 안착시키는데 골몰한다. 그리고 어느정도 겹쳤다 싶을 무렵. 고정의 주문으로 전환, 제대로 안착시키는데 성공한다. 상쾌한 느낌이다. 가만히 눈을 떠서 확인해본 결과 이상은 없음. 영혼과 몸을 제대로 맞추어두었으니 재활치료를 하기 시작하면 일주일 안에 자신의 몸처럼 움직일 수 있을 것이다. 그제서야 이마에 흥건하게 맺힌 식은땀을 닦을 수 있었다. 저절로 한숨이 나왔다.
“끝난……건가요?”
“네. 끝났습니다.”
하루고 이틀이고 길어질 것을 각오하고 있었던지 10분 이내로 끝나버린 ‘이식’에 조금 놀라는 표정들이었다. 18살의 육체로 돌아온 72세의 노황제가 깨어나려면 시간이 좀 걸릴 것이니 잠시 어디에라도 앉아서 쉬라고 이야기를 하고서는 시녀들이 가져온 수건으로 목덜미를 닦아낸다. 제법 땀을 많이 흘렸던지 수건이 축축하게 젖었다. 따지고 보면 내 옷에도 땀이 배어 축 늘어져 있다. 인피면구를 쓰고 있는 상황이라 얼굴을 닦지 못해 찝찝하다.
“언제 깨어나시죠?”
“아마 짧으면 한 시간에서 길면 이틀 정도가 되지 않을까 싶은데요, 일단 일어나는 모습을 보고 이곳을 떠날까 생각중입니다. 일찍 일어날수록 좋겠지만 아무래도 연세가 있으시니 쉽지는 않을 겁니다.”
아버지가 수술실에서 나온 의사처럼 느긋하게 대답하는 모습을 뒤로하고 대기하고 있던 시녀들을 청해 물 한잔을 부탁한다. 눈치가 빠른 시녀인지 냉큼 달려가서 물을 여러잔 가져오는 그녀를 보고 피식 웃었다. 생각해보면 아버지도 땀이 흥건하게 흘러있고 초조한 나머지 입이 바싹바싹 마르고 있을 황녀와 황비도 있다. 그리고 대여섯명의 측근도 있고.
“수고하셨습니다.”
“별말씀을.”
감사를 표하는 그녀들에게 웃음을 보여주고는 물을 마셨다. 목이 꽤나 말랐던지 한잔의 물은 금방 목을 넘어갔다. 더 마실까 생각하기는 했지만 많이 마시는 것도 독이다. 땀을 닦는 아버지를 기다리다가 다시 지하감옥으로 돌아간다. 이제 내가 옆에 없어도 신관이나 7서클 이상의 마법사가 곁에 대기하고 있기만 하더라도 괜찮을 것이다.
“벌써 끝났나요?”
“응, 잘 된 것 같아.”
“다행이네요.”
그리고 우리가 돌아오자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던 아가씨들이 기뻐했다. 걱정할 필요는 없겠지만 황녀의 고백을 듣지 못한 아가씨들에게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알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니까 걱정할 만도 할 것이다. 아니, 그녀들로서는 걱정해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
“괜찮아. 우릴 해칠 생각이 아니라 도움을 받아야 하는데 남의 눈이 무서워서 데려온 거니까.”
“그럼 정말 다행이구요.”
우리들의 미소에 정말로 안심한 것인지 함께 미소를 지어주는 갈색머리 자매, 사샤와 올가의 머리를 쓰다듬어주고는 주변을 둘러본다. 슬슬 짐을 싸둘 준비를 해야 할 것 같다. 신체 일부분의 기능을 강화시킨 것이 어떤 결과로 돌아올지는 잘 모르겠지만 분명히 건강하게 일어날 것이고 재활훈련을 마치면 정상적으로 생활할 수 있을 것이니 남아있을 이유는 어디에도 없을 것이다. 노황제가 한 시간 안에 일어난다면 하루 정도면 새 몸에 적응할 수 있을 거니까. 아무리 늦어도 일주일이면 대충 거동할 정도는 될 것이니 상관은 없다. 언제 이곳을 나갈 수 있는지가 문제가 될 뿐.
79-2.
노황제는 두시간만에 일어났다. 자신의 몸이 젊어진 것에 잠시 놀라기도 하고 자신의 몸을 멋대로 해버린 딸에게 화도 내었던 모양이지만 ‘어른의 시간’을 이용해서 온 몸으로 설득한 47황비 릴리아나 덕분에 화는 푼 모양이었다. 잘된 일이다. 생각하면서 멍하니 앉아있으려니 시녀들이 와서 우리 일행들 모두 귀빈들이 묵는 숙소로 들 것을 권해왔다. 이제는 익숙해진 계단을 지나 화려한 궁전에 딸린 화려한 건물에 들어가서는 하룻밤을 보냈다. 이런 호화로운 방에서 묵는 것이 처음이었던 아가씨들은 불타올라 하룻밤을 거하게 보냈지만 별로 중요한 일은 아니다. 아침에 우리를 깨우러 온 시녀가 조금 질린 얼굴로 시트를 갈아야 했던 것뿐이니까. 아마 아버지도 비슷한 행동을 했겠지.
“이젠 떠날까나.”
“며칠 더 묵어도 될 것 같긴 하지만…….”
“몸이 편하면 정신이 썩어. 이젠 슬슬 가야지.”
그렇게 이틀을 보내고 나타샤 황녀의 행운을 기원하며 황궁에서 나갈 준비를 하는데 시녀가 찾아와 우리에게 따라올 것을 청했다. 왜냐. 잘되었건만. 그런 마음으로 투덜거리자 ‘어른’의 초대라고 하면서 제발 따라와 달라고 부탁하기 시작했다.
“어디 아프다고 합니까?”
“그건 아닙니다.”
“귀찮은데…….”
“제발 부탁드립니다.”
못 데려가면 죽는 거냐. 고개를 숙여가면서 청하는 것을 어찌할 수는 없어서 불안한 듯 바라보는 아가씨들에게 곧 돌아오겠다고 이야기하고는 인피면구를 쓰고 출발하려고 했다.
“그 분들도 함께 모셔오라고 하십니다.”
하지만 부른 것은 나와 아버지만은 아니었던지 아가씨들까지 함께 데리고 나가려는 모양이었다. 그리고 그녀의 뒤에 선 시녀들은 아가씨들을 데리고는 옷을 입히기 시작한다.
“자, 잠깐만요!”
“괜찮아. 볼 것 안 볼 것 다 봤으니 상관없어.”
내가 있는 자리에서 옷을 갈아입기 시작한 갈색머리 자매는 얼굴을 붉히면서도 옷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시녀들은 자매가 걸친 속옷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고. 저것이 바로 가터벨트라고 하는 것이지. 색기가 넘치는 속옷에 관심을 보이던 시녀들은 내 미소에 헛기침을 하면서 관심이 없다는 듯 고개를 돌렸다. 그래봐야 다 보였다고, 아가씨들.
“어떤 옷이 마음에 드시는지요.”
“자, 잘 모르겠……어요.”
화려한 옷과는 인연이 없었던 탓에 아가씨들은 모든 옷이 다 좋아 보이는 모양이었다. 히죽 웃으면서 아직도 가지고 있는 메이드복을 입을 것을 권할까 생각했지만 이 세계의 가치관에 따르면 그 옷을 입히고 남 앞에 간다는 것은 수치플레이나 다름없다. 아니면 변태라고 손가락질 받거나. 그러니까 일단 메이드복은 포기. 남은 것은 용병생활을 하면서 입던 옷이라거나 아버지가 선물한 옷, 그리고 이곳에 있는 옷을 입는 것인데 높은 분을 만나러 가는 거라고 했으니 드레스가 가장 나을 것이다. 당연한 결과이겠지만 그런 결과에 침묵하면서 옷을 갈아입는 것이 아니라 갈아입히고 있는 아가씨들을 보면서 빙긋 웃는다.
거기 시녀 아가씨들, 우리 아가씨들이 입고 있는 속옷이 좋아 보이나?
“저, 세진님. 이건 어떤가요?”
“좋긴 한데, 다른게 더 어울리지 않을까?”
그리고 옷을 입고는 우물우물 내 의견을 묻는 아가씨들에게 가장 얌전한 옷을 입게 했다. 나는 욕심쟁이니까. 다른 남자가 이 아가씨들의 몸매를 보고 침을 흘리는 건 싫으니까. 이기적이라고 누가 뭐라고 해도 상관없다. 나는 그런 사람이다.
“…….”
물론 남들에게 우쭐거리기 좋아하는 아버지는 아가씨 트로이카의 매력을 한껏 발산시킬 수 있는 그런 옷을 입히고 나왔다. 사샤와 올가의 시선에 내 등에 꽂히는 것이 무척이나 가슴이 아프다. 이게 다 너희를 위해……그만두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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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고민고민하면서 옷을 고른 아가씨들을 데리고 우리를 불렀다는 높으신 분을 만나러 갔다. 우리를 불렀다는 높으신 분은 예상대로 정신을 차리고 몸을 추스르기에 여념이 없는 황제였다. 조금은 서프라이즈가 있어도 좋지 않을까. 시시하다.
“짐의 딸아이와 릴리아나가 폐를 끼쳤더군요.”
“진심으로 도와달라고 부탁해왔으니까요. 그보다 몸은 어떠신지요?”
“아직 힘은 없지만 그럭저럭 움직일만 합니다. 첫날처럼 꼼짝도 못하고 있는 것보다는 훨씬 낫군요.”
아버지와 노황제가 대화를 나누는 것을 먼 세계의 일인 것처럼 느끼면서 지루함에 하품을 깨문다. 대체 뭘하려는 건지. 감사의 말을 하는 노황제와 아버지의 대화는 빙글빙글 돌아 오늘 저녁에 열리는 무도회에 우리를 초대하겠다는 노황제의 말이 나올 때까지 계속되었다.
귀찮아.
“무도회라. 그 장소에서 젊어졌다는 사실을 공표하실 생각이십니까?”
“그렇소. 그곳에서 지금의 짐이 확실히 헤빌 맥베르데 케스토론이라고 하는 증언을 해줄 사람이 필요하니까요.”
서로의 정체를 다 아는 두 능구렁이의 대화는 그렇게 흘러갔다. 꼼짝없이 연회에 참석해야 할 것 같은 느낌에 한숨을 깨문다. 책임지려면 확실히 책임져주는 것이 좋겠지만…….
숙청과 반역 사이에서 살아남아 40대가 된 지금까지 자신의 책무에 충실하였던 황태자가 조금 불쌍해지려는 순간이다. 아마도 그 사람은 평생 황태자로 살다가 자신의 아우에게 황태자 자리를 물려주어야 하지 않을까? 잘되면 자신의 아들이 황태손이 되어 다음 황위 계승권자가 되는 것을 볼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 자신은 영광의 자리에 오르지는 못할 것이다. 어떤 이의 행복은 어떤 이의 불행이 되는 현장을 목도하는 자리에서 다시 한 번 한숨을 깨문다. 지루했다.
‘할 수만 있다면 그 사람에게 황제자리 던져주고 나도 은거해버렸으면 좋겠구만.’
만인의 위에 군림하는 황제의 자리에 별다른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나로서는 그런 그의 슬픔에 동감해줄 수는 없지만 이해해 줄 수는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목표를 향해 가던 사람에게 어쩔 수 없을 정도의 방해가 들어온다면 필시 좌절하거나 무리하게 뚫고 가려고 할 것이니까. 바람이 느껴졌다. 앞으로 벌어질 피바람이. 이 사람을 닮았다면 그는 필시 무리하게라도 뚫고 나가보려고 하겠지. 아수라장일 것이다.
“자네……아내들이 없었다면 우리 나타샤를 시집보내고 싶었는데 말야.”
“사양하겠습니다.”
그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18세의 소년이 된 노황제는 그런 농담을 했다. 하나도 즐겁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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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도회를 포함한 연회는 성황리에 개최되었다. 평행세계와 역행을 소재로 글을 썼던 어느 작가는 몇 가지의 의성어와 의태어로 그 광경을 묘사했지만 나는 그 정도의 발상은 가지고 있지 못하니 대충 설명하겠다. 와글와글 모여든 사람이 쌍쌍이 빙글빙글 돌아가고 향기 좋은 술을 앞에 둔 귀족들은 음산한 이야기를 밝게 나누는 전장터였다고.
“이래서 내가 우리 동네에서는 이런 거 자주 못하게 했는데…….”
아버지도 이런 광경이 싫었던 것인지 입을 삐죽거리면서 투덜거렸다. 그 옆에서는 이런 곳에 와본 것만으로도 기뻐하는 아가씨들. 실로 단순하고도 아름다운 마음들이었다. 한 번 크게 데이면 어떻게 생각하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 평범함이 아름다웠다.
“이 제국의…(중략)…황제폐하께 모두들 경의를 표하시오!”
뭐……그런 감탄 정도는 잠시 묻어두도록 하자. 이제 연극이 시작될 때이니까. 그 연극의 마무리가 피로 가득한 비극이 될지, 한 사람의 비탄만으로 끝나는 희극이 될지는 아무도 알지 못하지만. 어쨌든 휠체어를 탄 황제의 등장이었다.
80.
그래서 이 황제의 외모가 급격히 바뀐 것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이 어떻게 되었는가. 그 결론을 말하자면,
“너희들이 미시어스 제국의 황제와 황태자인지 누가 알아! 특히 거기. 20대 외모잖아!”
아수라장이었다.
“필시 저 음란한 것들이 사내를 끌어들인 것이겠지! 혹시 로빌 녀석도 저 녀석들의 아이인 것 아냐?”
할 말, 안 할 말은 가려서 합시다.
멱살을 잡지 않는 불효를 저지르지 않는 것이 다행일 정도로 이성을 잃은 황태자의 모습을 보면서 쓰게 웃었다. 믿고 싶지 않은 현실을 마주한 그의 정신은 처절할 정도로 그 현실을 거부했다. 하나의 목적을 위해 달려왔고 앞으로 몇 년내에 그 목적을 성취할 수 있었을 40대의 남자는 절규를 닮은 고함으로 황제와 누이와 어머니를 성토했다. 그리고 귀족들은 이 상황을 어찌해야 할지 몰라 전전긍긍할 뿐이었다.
“하긴, 내 이야기는 너무 잘 알려져 있으니 누구라도 나를 자칭할 수는 있겠지. 잠깐의 만족을 위해 죽음도 불사하는 녀석이라면.”
쓰게 웃으면서도 불편한 감정을 감추지 못한 아버지는 ‘믿지 못하겠다면 믿지 말라’라고 말하고는 침묵을 지켰다. 일단 삐진 것 같은 반응이다. 지금 정도로 삐져있는 상황이라면 신이라도 강림시켜서 확인해주겠다고 말할 것 같다고나 할까.
“이런 상황이라면 그 방법도 좋겠군.”
정말로 할 생각입니까.
내 말을 듣고서는 좋은 생각이라고 중얼거리는 아버지의 모습에 잠시 식은땀. 그러면 안 되지, 아버지.
“짐을 믿을 수 없다는 것이구나.”
“믿을 수 있겠나?”
믿으라고 강압하는 18세의 소년이 된 노황제와 믿을 수 없었던 40대의 아들 사이에서 공방이 오고가는 것을 보면서 아버지를 말린다.
“노르텐 여신을 불러버려?”
“참으세요.”
신들이 강림한다면 분명히 사실을 확인해줄 수는 있다. 하지만 사실을 확인하는 것과 동시에 이곳에 있는 사람들은 죽어버린다. 우리 부자에게 손가락 하나로 패퇴하는 신들이라 이미지가 많이 실추된 상태이지만 신은 신이다. 그리스 신화에서 제우스에게 본래의 모습을 보여달라고 말해버린 때문에 온 몸이 불타올라 죽어버렸던 어느 왕녀처럼(다행히도 그녀의 아이는 살아남아 제우스의 허벅다리에서 출생할 수 있었다고 한다. 디오니소스가 바로 그 아이다) 이곳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죽어버릴 것이다. 그래서야 언어도단. 신녀나 신관을 통해 자신의 의지를 전달하는 방법도 있겠지만 그것은 시간이 걸린다. 이곳에서 당장 확인하려면…….
“……저 아가씨의 사랑이 이루어지지 못한다는 거지. 끄응.”
“확인하려면 가장 확실한 방법이기는 하죠.”
이 자리에서 유일하게 이성을 접해보지 못한, 친아버지를 사랑하는 아가씨인 28황녀만이 신이 강림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다. 대체 얼마나 문란한 생활을 하고 있는 거냐. 귀족 여러분들. 물론 황족들도 포함이다.
“시녀들은 괜찮잖아.”
“죽이실 생각입니까?”
시녀들 중에 이성을 접해보지 못한 사람이 있을 수도 있으나 신들을 받아들일 수 있는 육체적인 강인함을 가진 사람은 없다. 말 한마디 듣자고 그 시녀를 죽일 수는 없는 노릇이 아닌가. 다시 한 번 아버지를 달랜다. 물론 아버지가 억지로 보호한다면 당장 죽지는 않겠지만 여신이건 남신이건 강림해버린 시녀들은 그 이유 때문에 시한부 인생을 살게 될 것이다. 몸이 서서히 붕괴되어가면서 10년을 넘기지 못하는 영화를 누리고는 죽는다는 이야기다.
“결론은 저 아가씨인데…….”
“개인적으로는 찬성입니다만 저 아가씨의 바람을 이루어주지 못하게 되는데요.”
신이 강림한 육체는 그 누구도 건드리지 못한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신이 한 번 덮어쓴 육체는 신의 일부로 취급되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신이 28황녀의 몸에 강림했을 시, 그녀는 자신의 바람을 이루어보지도 못하고 평생을 홀로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평생 젊음은 유지할 수 있겠지만 비극적인 일생을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뿐이지.”
결국 이 귀찮은 상황을 해명하기 위해 아버지는 하나의 일을 저질러버리기로 생각했다.
“거기 황태자. 10대로 돌아가고 싶지 않나?”
다시 귀찮은 일을 해야 하지만 이것만큼 더 납득하게 만들 방법은 없었다. 그 방법이란 타클란 제국의 황태자도 젊어 보이는 외모로 바꾸는 것을 말한다.
“그거 좋은 생각이군요. 세인 황제.”
“일단 헤빌 황제께서도 동의하셨으니 남은 것은 황태자의 결심이나 거부뿐이군요.”
상큼해보이는 미소로 아버지가 말하자 모두에게서 말이 없어졌다. 반신반의하는 귀족들과 황태자에게 증거를 보여주겠다고 하자 믿을 수가 없다고 수군대기 시작하는 그들에게 증거를 보여주겠다는 확답을 하고 자리를 파했다.
“마, 맙소사.”
그리고 이틀 후, 황제의 측근 중의 하나를 10대의 청년으로 바꾸어놓는 것을 만인이 바라보는 중에 성공시키자 황태자는 결국 조금은 믿기 시작했다.
“내가 직접 받아보겠다. 물론 황궁마법사들에게 모든 과정을 알려주어야 하며 거기에 이상이 없다는 것을 확인받아야 하겠다.”
“물론, 시술 받은 후, 다시 태어난 당신이 있을 거요.”
황태자에게 확언하는 아버지의 얼굴에는 자신감으로 가득 찬 미소가 걸려있었다.
“……물론 나도 10대의 몸으로 해줄 것을 부탁하오.”
“물론이지. 더 이상 키우려면 귀찮아지니까.”
아버지. 지금 우리 무지 귀찮아졌다고.
웃는 아버지의 뒤통수를 때려주고 싶은 것을 참으며 나는 중얼거렸다. 이미 소문이 다 퍼져 우리가 분신 중의 하나라는 것과 밖에 나온 것을 모르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아버지를 말렸어야지!’
‘무리였어. 아버지 열받아서 말야.’
그리고 그 피해는 내가 고스란히 입었다는 것은 별로 중요치 않다. 우리 아내들, 무서워. 훌쩍. 매 맞는 남편이라니. 어쨌든, 황태자의 회춘(?)을 위한 준비를 시작한 우리였다.
.
.
다시 이틀 후.
“호오.”
“10대 때의 모습, 그대로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수고하셨습니다.”
“물론.”
희희낙락하면서 시술대에 올라선 황태자의 얼굴에는 기대감이 어렸다. 그 모습을 보고 나는 잠시 고개를 숙이고 그에게 묵념을 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
.
“저기, 아버지.”
“아들아, 나는 10대라고 하였지 다른 건 확언한 바가 없단다.”
황태자가 자신도 시술을 받아보겠다고 말한 그날 저녁. 나는 기함을 하면서 아버지를 찾았다. 배양기에서 이상한 것을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내가 본 것은 웃고 있지만 어딘가 모르게 검은 무엇이 스멀스멀 흘러나올 것 같은 아버지의 미소였다.
“그래서…….”
“TS(성전환)빔과 모에빔은 없지만 우리에게는 기술이 있단다. 아들아.”
우후후 웃으면서 안경을 고쳐 쓰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고는 식은땀을 흘린다. 이 사람, 이미 매드 사이언티스트 모드다. 아니, 이걸 흑화라고 하던가? 잠시 현실도피를 하면서 그런 아버지의 미소를 기억에서 지우려고 노력한다.
“어쩐지 육체를 두 개 만들더라니…….”
“마술을 또 사용해볼 생각이지.”
천재로 만들어 달라. 검을 익히기에 적합한 체형으로 만들어 달라. 하루에 10번을 하더라도 지치지 않게 해달라는 황태자의 요청을 적극 수용하여 아버지가 분전한 결과는 바로 이것. 황태자와는 전혀 닮지 않은 아름다운 여성의 몸이었다.
“제정신입니까?”
“제정신이다.”
기가 막혀 혀를 차다가 슬쩍 아버지의 작품을 다시 한 번 감상한다. 검을 익히는데 방해가 되지 않도록 슬랜더인 체형, 필시 머리는 천재이겠지. 게다가 하루에 10번을 관계를 맺건, 100번을 관계를 맺건 체력이 다할리 없는 강인한 육체로 강화한 몸이랄까. 필시 잘 만든 몸인 것은 확실하다. 일단 황제나 황제의 충신보다 훨씬 신경써서 만든 몸이다.
“귀찮은 건 싫으니까 이런 식으로 복수를 하는 것이지. 우후후후.”
“이봐요…….”
복수하겠다는 마음은 이해하겠지만 귀찮은 건 싫다고 하면서 이렇게 귀찮은 짓을 하는 이유는 대체 뭐냐. 한숨을 쉬면서 이 불행한 황태자가 가지게 될 육신을 점검해보았다. 심폐기능은 보통 사람들의 3배, 한 번에 낼 수 있는 힘도 보통 사람들의 3배. 거기에 마법과 검을 함께 배울 수 있는 하늘이 내린 체질. 이건 인간이 아니라 새로운 종족이었다.
“뭐, 알아서 하세요.”
“참고로 이 머리에 절대 명령을 내릴 생각이다. 전문용어로 하면 마인드 컨트롤. 줄이면 MC, 다른 말로 하면 세뇌라고 할까.”
“어이…….”
아무리 복수라지만 지나치잖아.
그런 생각을 하면서 아버지를 슬쩍 노려보았다. 설마라고 생각하지만…….
“내 육성으로만 발동시킬 수 있겠지만……‘세진’이라는 말을 넣으면 평생 너만을 따르게 되겠지. 우후후후.”
.
.
‘그런 식으로 너에게 한 명을 더 붙여주려는 생각이라는 거다. 아들아.’
우리가 한 제국의 황제와 황태자라는 사실을 알고는 기겁해서는 말도 제대로 붙이지 못하는 아가씨들의 건과 함께 내 머리를 괴롭히는 이 사실을 다시 떠올린 것은 시술이 끝난 뒤였다. 일단 좀 두들겨 패서 안하겠다는 답을 얻어내기는 했지만 그래도 이 사람, 불안하다.
“심장이 안 뜁니다만…….”
시술을 마치고 나자 타클란 제국 황궁 마법사가 달라붙어 확인을 했다. 그리고 경악. 설마하니 저질렀나? 그런 생각을 하면서 바라보는데 아버지는 여기에서 폭탄선언을 했다.
“당연하지. 그 몸은 안 쓸 거니까.”
“네?”
아버지를 믿게 된 이 황궁 마법사가 놀라는 것도 잠시 시술대 아래의 폐쇄된 공간에서 누군가의 웅얼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저질렀구나 아버지. 이젠 나도 몰라.
재 너머 사래 긴 밭이 보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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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아버지에 그 아들.
아들 : 마왕을 TS
아버지 : 마음에 들지 않는 황태자를 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