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판소]아버지처럼 되기 싫었어요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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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말하지만 이 글은 양판소(……야)이므로 개념이 없고 명랑소설이므로 어이없는 일도 일어날 수 있는 막장입니다^^;;; 양판소의 깽판이 싫으신 분은 조용히 백스페이스로 넘어가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작중에 언급되는 인물, 사건, 지명 등은 실제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습니다. 묘한 것이 보여도 신경쓰지 마세요. 깊게 생각하면 지는 겁니다. 이 글은 양판소이니까요.
*이 글에 대한 저작권은 저에게 있을지도 모르나 행사할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왜냐하면 양판소니까요.
*이 글은 명랑소설을 지향하고 있으나……양판소이므로 깽판입니다.
[양판소]아버지처럼 되기 싫었어요
28話 아버지의 마음
68.
진 맥세인 아슈레이입니다.
어째서인지 14세가 되는 해에 아버지의 계략에 걸려 누이들과 결혼, 15세에 아버지가 되어버렸고 17세인 현재 처음으로 가슴이 뛰는 사랑을 하고 있는 운이 좋은 남자입니다. 어디선가 저를 잡놈이라고 부르고 있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지만 애인없는 생애 25년이 넘어가버린 대마법사들이라고 생각하고 무시하기로 합니다.
……아니, 그런 말 한다고 살기를 피우지는 말아주세요. 등골이 오싹해졌습니다. 방금.
“아빠아!”
“그래, 그래. 우리 공주님들 잘 잤어?”
“응!“
동그란 눈을 반짝이면서 쿵쾅쿵쾅 달려오는 귀여운 따님들을 보면서 저는 행복한 미소를 짓습니다. 딸은 좋아요. 예쁘니까요. 아직 아들이 없어서 아들은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끔찍하다.”
라고 합니다.
어이, 이것 봐.
“어이, 아버지. 한마디로 아들이 끔찍하다는 이야기인가?”
“당연하지. 내 딸들의 관심을 모두 빼앗아간 아들놈은 적이었다!”
아무래도 오래된 원한인 모양입니다. 팔을 벌려서 기다려도 손녀딸이 다가오지 않는 상황에 절망한 할아버지의 푸념이라고 생각해도 좋겠지만 그 눈에서 나오는 원한은 진심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왜 아들놈에게 그렇게 질투를 하는 거야?
“순수한 눈망울! 이 아버지의 마음을 관통하는 그 순수한 눈빛! 그 눈빛이 새로 태어난 아들놈에게 향하고 아버지에게 돌려지는 일이 없어진다면 그 얼마나 슬프겠는가!”
어이, 너무 머리에 열이 오른 것 같은데?
“제군, 나는 따님들이 좋다. 제군! 나는 따님들이 아주 좋다! 제군! 나는 따님들이 무지무지 좋다! 첫째 따님도 좋다. 둘째 따님도 좋다. 셋째 따님도 좋다. 넷째 따님도 좋다. 그 외의 다른 따님들도 다 좋다. 커가는 따님들도 좋다. 평온한 얼굴로 웃어주는 따님들이 좋다. 놀이터에서, 서재에서, 식탁에서, 연무장에서, 분수대에서, 나뭇가지 위에서, 이 세상에서 맛볼 수 있는 모든 환희의 감정을 불러와주는 따님들이 좋다. 나의 생일에 엉망이 된 옷차림으로 선물을 건네주면서 방긋 웃는 것이 아주 좋다. 하늘 높이 비행기를 태워주면 나를 믿고 까르륵 대면서 웃어주는 모습으로 내 정신을 아득하게 해주는 것이 아주아주 좋다. 새옷을 선물받고 ‘아빠 고마워요’라고 말할 때에는 더할 나위 없는 기쁨에 나의 가슴은 아주 시원해진다. 필사적으로 무엇인가를 해보려고 앙다문 가여운 앵두같은 입술이 저녁이 되어 내 입을 맞추며 잘 자라고 인사를 할 때면 내 가슴은 행복으로 미어터질 정도다. 제군들. 나는 이런 따님들의 모습을 바란다. 제군! 나를 비롯한 딸을 둔 이 세상의 모든 아버지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나. 따님들이 어떻게 해주기를 바라나? 갑자기 남자를 데려와서는 결혼하겠다고 하는 것? 따님들을 사랑하는 이 아버지에게 싫다고 이야기하면서 도망가는 것? 아니면 부끄러워하는 얼굴로 아빠하고만 살 거라고 이야기를 하는 것을 원하나?”
헬싱이냐? 네가 소령이냐?
[프린세스메이커!]
[아빠엔딩!]
[왕자 놈에게 줄까보냐!]
어라? 어딘가 환청이 들리는 것 같은 느낌이…….
“그렇다. 아빠 엔딩이다. 우리는 늑대와도 같은 녀석들을 후려치기 위해 주먹을 꽉 움켜쥔 상황이다. 그러나 따님들을 키우느라 늙고 노쇠해진 우리들에게 왕자 따위가 감히 따님을 빼앗아가려는 것을 용서할 수 없다. 그 녀석들 따위는 부족해도 너무나도 부족하다!”
[늑대 같은 놈!]
[줄까보냐!]
아무래도 귀가 이상해진 것 같다. 환청이라니. 아하하.
“아빠 엔딩을! 영원히 우리의 보석같은 따님들을 지켜줄 수 있는 아빠 엔딩을!”
잠깐만. 혹시 그 아빠 엔딩이라는 거……한글판이냐? 그런 거지? 그렇다고 말해줘. 아니면 내가 때리고 싶어질 것 같으니까 말야.
“일본판이다.”
이런 변태같은 바보 영감탱이 같으니!
잠시, 이 어처구니없는 발언을 하는 영감님과 잠시 다투고 돌아오도록 하겠습니다. 부디 다른 채널로 돌리지 마시고 기다려주세요. 광고 들어갑니다.
[등장하는 흉살☆자매]
[손책이다.]
[손권이야! 언니에게 손대지마!]
[두 사람이 한꺼번에 덤비다니 치사하다!]
[소녀들을 만난 엄백호. 그는 과연 아버지의 뜻대로 손견과의 연합을 이루어낼 수 있을 것인가! 동오 덕왕 엄백호전! 다음 이야기. 하렘이 아니면 죽음을 달라!]
[난 반드시 동오의 덕왕이 될테니까!]
[[기대해주세요!]]
뭐야. 이 이상한 광고는……원피스 짜가리냐?
어쨌든, 아버지와 진심으로 조금 푸닥거리를 하고서는, 물론 승부는 나지 않아서 아쉽지만, 돌아와서 딸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아하, 이 순진한 눈망울이 나에 대한 호의와 신뢰를 담아 반짝이는 모습을 보니 세상이 무지하게 아름다워 보이는구나. 세상은 아름다워!
“바보구만.”
그렇게 싱글벙글 웃고 있는 나에게 질투와 원한을 담아 중얼거리는 변태 노인. 그 얼굴이 20대 청년인 것이 징그럽다.
“당신에게 들을 말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만, 그렇게 버림받은 강아지 눈 하지마! 당신 같은 변태가 내 딸을 안아드는 걸 허락할까!”
“훗, 너만큼 변태일까?”
“당신의 열화카피판이라고 생각하고 있으니까 말야.”
으르렁대면서 대립하는 두 사람. 하지만 분위기가 일촉측발의 대결로 흐를리는 없다. 내 곁에서 팔을 잡아당기거나 머리를 잡아당기면서 보채는 애들이 있으니까.
“놀아줘!”
“아빠아!”
“할아버지는 저리가!”
그리고 그 아이들은 이 흉악한 영감을 말 한마디로 퇴치할 수 있는 강력한 존재들이다. 이뻐하지 않으려고 해도 이뻐할 수밖에 없는 존재들이라는 것.
어이, 손수건 깨물지마. 눈물로 적신 손수건 짜지마!
“어이구 이쁜 것들!”
“아빠 간지러워! 꺄하하핫!”
“크, 크윽! 절대로 부럽지 않으니까!”
꼴사나운 모습으로 울부짖으며 도망가는 아버지를 보면서 나는 승자의 미소를 지었다. 아이구, 너희들은 나의 보배다!
“아빠가 세상에서 제일 좋아!”
“그래, 그래.”
으음, 그런데 왠 한기가. 어쩐지 좀 찜찜한데…….
69.
“짐은 오늘부로 은퇴한다!”
“폐, 폐하?”
그런 일이 있었던 점심이 지나고 잠시 서류를 제출하러 업무중인 아버지에게로 갔더니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눈물을 흘리며 은퇴하겠다고 몸부림치는 아버지와 아버지의 팔 다리에 매달려서는 필사적으로 막아서는 행정관들. 어딘지 모르게 꼴사나운 모습에 한숨을 쉬면서 오래간만에 꺼내는 쥘부채를 들어 아버지의 머리를 세게 내리친다.
“으음? 크으윽! 분하지 않으니까! 나도 기필코 딸을 더 만들어서 네 놈에게 복수하겠다!”
“지금만으로도 충분해! 대체 얼마나 더 만들겠다는 거야!”
세계 최강이라는 미시어스 제국을 견제하는 다른 나라에서 보면 망연자실해서 ‘대체 이 나라가 왜 이리 강한 거지?’라고 의문을 품을 법한 광경이다.
“다른 나라 녀석들은 반역만 잘 일으키건만!”
“황제자리 따위 귀찮아! 좀 더 버텨!”
“소년이여! 야망을 가져라!”
“그딴 야망 필요없어!”
내가 끼어들자 행정관들은 한숨을 쉬면서 뒤로 물러난다. 이런 바보같은 일이 한두 번 있었던 것도 아니었으니 그들도 이제는 적응할 때가 된 것이겠지.
“내가 황제자리에 몇 년이나 있었다고 생각하냐! 벌써 28년째! 10000일! 끔찍한 시간들이었어! 질렸어! 너는 이 아비가 불쌍하지 않더냐! 나를 이제 쉬게 하고 싶지 않더냐!”
“옆나라에는 40년째 보위를 지키고 있는 사람도 있는데?”
“이젠 쉬고 싶어!”
“3년만 더 버텨!”
운다. 정말 서럽게 운다. 절규를 뿌리며 대전을 눈물바다로 만들 기세로 울어버린다. 남자의 눈물은 정말 보기 싫은데 말이지. 인상을 찌푸리면서 아버지의 머리를 쥘부채로 두들겨주고 있는데 어머니들이 들어오셨다. 그리고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으면서 하소연하기 시작하셨다. 그런데 왜 그렇게 울고 계십니까?
“우리도 그래, 하루종일 남편 생각을 하면서 독수공방해야 하는 우리 처지도 생각해주렴. 이제 진도 다 컸으니 황제해도 될 것 같아.”
“……독수공방의 의미가 이상한 것 같습니다만. 매일 만나볼 수 있잖아요?”
“하지만 난 세인이 없으면 못 살아. 시야에 없는 것도 불안해!”
“아니, 그건 아버지가 바람둥이니까요.”
“어쨌든! 가두어두고 우리 것만으로 하고 싶단 말야!”
아무래도 오늘은 작정하고 나온 듯 어머니들은, 특히 내 어머니인 아라니엔은 내 어깨를 짚고는 눈물까지 흘려가며 나를 설득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런 것치고는 굉장히 광기 어린 모습입니다만, 어머니.
“진이 황제가 되면 나도 좋을텐데…….”
결론은 이것. 요지는 세상 다 귀찮으니 은거하겠다는 거다. 그런 어머니의 마음이야 잘 알고 있지만 나도 귀찮은 것은 귀찮은 것. 한숨을 내쉬면서 반격한다.
“우리 애들 못 보게 할 거예요.”
“에엣?”
“우리 애들 참으로 귀여운데, ‘할머니’하고 외치면서 달려와서는 품에 안기는 그 애들의 모습을 보면서 즐거워하시는 어머니의 모습을 못 보게 되는 것이 아쉽지만 제 아내들도 호락호락 당하지는 않을 것 같고 필시 우리 애들을 못보게 할 거라는 말이죠.”
“아, 안돼!”
손녀들을 그렇게 귀여워하고 아끼는 어머니에게 일종의 ‘협박’을 하고나자 어머니는 즉각 나에게로 돌아섰다. 어머니. 지조 없어요.
“당신! 앞으로 30년만 더 버텨요!”
“아라니엔, 너마저. 쿨럭.”
어머니의 배신에 충격을 받은 듯, 자리에 앉은 채로 무너져 내리는 아버지. 그런 아버지를 보고 한숨을 내쉬는 이운혜님과 어머님들을 바라보며 나는 승리의 미소를 만면에 머금는다. 그리고 어머니의 손을 잡고 그녀의 공을 치하했다.
“고맙습니다. 어머니. 사랑해요.”
“으, 응? 사, 사랑이라니. 너랑 나는 어머니랑 아들이고, 넌 남자로 느껴지지가……. 우, 우리는 그래서는 안돼!”
대체 무슨 생각을 하시는 건가요. 어머니.
눈에 띄게 당황하기 시작한 어머니를 보고는 식은땀을 흘린다. 이운혜님은 머리를 싸매고 다시 한 번 한숨을 크게 내쉬었고 어머니들도 ‘이런이런’하는 말과 함께 일제히 머리를 흔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좌절해서 밑바닥을 긁으며 자신의 무덤을 파고 있던 아버지는 이 모습을 보고는 즉각 부활. 질투에 휩싸여서는 나에게 달려들었다.
“네 놈! 다른 건 몰라도 이건 허락 못한다!”
“아들이 어머니에게 사랑한다고 이야기하는 것이 이상한 거냐!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요즘 야설보냐! 어머니에게 그런 거 보여주지 말라고 했지!”
무슨 일이건 쉽게 믿어버리는 어머니의 특성상 아버지가 음흉하게 웃으면서 보여준 동인지나 상업지, 야설을 보고는 실제라고 생각하고는 아직도 마음에 두고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 즉 말하자면 원흉은 아버지. 세인 아슈레이, 이 인간이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응징. 삐뚤어진 아버지를 갱생시키는 것은 아들의 의무다. 말은 좀 이상한 것 같지만…….
“아니냐?”
“암만 이 세계가 양판소 같은 세계라고 해도 그런 소설같은 일이 일어나겠냐!”
원흉 주제에 심각할 정도로 착각하고 있는 아버지를 쥘부채로 정신차리게 두들겨준 후에야 겨우 난장판이 수습되었다. 무표정한 얼굴로 아버지와 어머니를 노려보고 있던 이운혜님이 두 사람을 질질 끌고 간 것이 주효하긴 했지만.
“…….”
“…….”
뭐, 그렇게 난장판을 피워두었으니 행정관들이 한숨을 쉬는 것도 당연. 그들의 얼굴을 볼 면목이 없어서 그들이 가져온 서류들을 처리하기 시작한다. 이운혜님에게 끌려간 아버지는 필시 이런저런 잔소리와 함께 갱생 펀치를 맞고 있을 것이고 어머니는 다른 어머니들에게 그런 일은 쉽지 않을 것이라고 충고를 듣고 있겠지. 부모님이 바보라는 생각에 한숨을 내쉬면서 서류를 훑어보고 도장을 찍는 작업을 반복한다.
“…….”
“저, 황태자 전하.”
“응? 아, 무슨 일입니까? 발터 행정관.”
그렇게 작업을 하고 있으려니 행정관 중의 하나가 조심스럽게 말을 걸어왔다. 그런데 그 눈빛은 대체 뭐야?
“설마하지만, 어머님을 실제로 여자로서 사모하지는 않으시지요?”
“……장난합니까?”
새로 들어왔다고 하더니 분위기를 파악하지 못한 모양이다. 그의 말에 안색이 창백해진 다른 행정관들이 내 눈치를 살피고 있는 것을 보면서 살짝 고개를 끄덕여주자 행정관들은 그를 끌고 밖으로 나갔다. 호쾌한 격타음과 발터 행정관의 비명이 조화를 이루어 내 가슴을 시원하게 만들어주는 것을 들으면서 일손이 부족해진 김에 마리아스를 불러와서 보조해달라고 부탁한다. 그녀는 시원한 웃음으로 수락해주었다.
“화, 황태자전하.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
“아니, 실제로 옆 동네에서는 그런 일이 있었던 모양이니까 설마……하는 마음을 가지는 것도 당연하지요. 하지만 조금 불쾌했습니다.”
옆 동네라고 하긴 했지만 다른 제국의 일이다. 실제로 3대를 거치면서 할아버지, 아버지, 손자를 거쳐야 했던 비운의 여인이 있기도 했었고 얼마 전에는 타클란 제국, 대륙 최북단에 위치한 제국의 제 2황자가 아버지의 애첩을 임신시키는 바람에 그 애첩은 화형을 당하고 그 황자는 국외로 추방당한 일이 있었다. 거기에 더해 그 옆의 작은 나라인 코쟌 공국은 그 나라를 세운 작자가 자신의 친어머니를 임신시켜 낳은 아이를 후계자로 내세워 지금까지 200년을 버텨왔으니까. 이들이 혹시나 하는 마음을 가지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하지만 이 진 맥세인 아슈레이. 아무리 잡놈이라고 해도 그런 잡놈은 아니다. 그런 눈빛을 행정관들에게 쏘아주자 그들은 움찔하더니 일제히 고개를 숙이고 부복했다.
“앞으로는 주의시키겠습니다.”
“좋습니다.”
곧 사각대는 소리와 함께 작업이 재개되었다. 이런 일에 익숙한 탓인지 돌려보내야 할 서류와 내가 봐야 할 서류를 정확하게 나누어주는 마리아스의 도움을 받아 수북하게 쌓여있던 서류들을 빠른 속도로 해결해나간다. 하아, 귀찮아. 몸도 마음도 고된 이런 황제자리가 좋다고 반역을 일으키는 놈들은 대체 뭐하자는 놈들이야.
“저, 황태자 전하. 이 서류를 검토해주시겠습니까?”
“응. 뭔데?”
하지만 지금 내가 사인한 서류가 나중의 재정수입이나 국가의 안위를 보장하니까 어쩔 수 없이 일을 하기는 해야 할 것이다. 백성이 입어야 나도 입을 것이고 백성이 먹어야 나도 먹을 것이요 백성이 잠자리에 들어야 나도 비로소 쉴 수 있을 것이라고 호언장담한 아버지의 말을 지켜야만 하니까. 쓸데없이 정의감만 강해서는……하긴 이런 정의감을 가진 아버지이니 나도 어느 정도 그를 인정할 수밖에 없는 것이지만.
“국경수비대 장비교체? 예산이 허락하는 한 허가합니다.”
“네, 그럼 이것은…….”
“황궁비품 수급계획이라……이럴 돈 있으면 학교 다니는 애들 급식이나 확대하라고 해요. 지금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호화롭게 살 수 있으니까.”
“지금 있는 것들은 모두 25년은 충분히 지난 것들입니다만.”
“어디 부서진 것도 없고 부서지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자재만 들여오면 아내들이 취미삼아서 좋은 물건을 만들어낼 테니까 허가할 수 없습니다. 황태자비들의 솜씨를 못 믿으시는 겁니까? 유행을 선도하는 아내들이라고 생각했는데 말이죠.”
“그건 아닙니다만…….”
최고급품들을 찍어내듯 만들어내는 아내들의 신기를 믿지 못할 일은 없다. 황도에서도 이름난 장인들이 만든 물건들을 반품시켜버릴 정도로 눈이 최고급인 사람들이니까 말이지.
“물론 시녀들이나 여관들이 쓸 물건들을 들여오는 것은 허락합니다만, 그것을 감안하더라도 이 예산은 1/3 수준으로 줄일 수 있을 겁니다.”
“네.”
오늘 처리해야 할 일을 대부분 처리하고 앞으로 해야 할 일들을 조심스럽게 아버지의 명령과 비교하여 지시를 내리기까지 그녀는 내 옆에서 일을 도와주었다. 가끔 얼굴이 너무 가까이 다가와서 나를 놀라게 한다거나 서류를 들고 돌아다니다가 내 부름에 달려와서는 등 뒤에서부터 서류를 바라보느라 내 등에 부드러운 것이 와닿는다거나 하는 일을 제외하고는 그녀는 무척이나 도움이 되었다.
“수고하셨습니다.”
“네. 전하. 길을 안내하겠습니다.”
“그럼 그 일까지 부탁하지. 마리아스.”
“네.”
일이 끝나고 그녀와 함께 황태자궁으로 돌아가면서 나는 그녀가 나를 유혹하려고 그랬던 것인지 아니면 그냥 내가 편하기에 아무런 생각도 없이 그러했을지를 궁금해했다. 하지만 직접 물어볼 수는 없고 하여 그냥 아무렇지도 않게 넘기려고 한다. 그녀가 외로움에 지쳐 나를 유혹하고자 했다면 어찌해야 할까.
‘모르겠네.’
누이들과는 다른 의미로 나에게 친숙한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나는 고민에 잠겼다. 문득 누이들, 아니 아내들의 말이 떠올라 머리를 젓게 만들기는 했지만 난봉꾼이 되기 싫은 나는 그 마음속에서 악마가 속삭이는 것을 뿌리친다.
.
.
“하아? 그냥 네가 안지 그러냐?”
“장난하십니까?”
“알 거 다 아는 놈이 왜 그러냐? 마리아스도 아마도 지금쯤이면 자기 숙소에서 ‘황태자님은 바보!’를 외치면서 애욕으로 열이 오른 몸을 식히려고 노력……쿠억!”
바보다. 이 사람에게 많은 것을 기대한 내가 바보다. 이런 바보 아버지에게 조언을 구하러온 내가 바보다. 조언을 달라고 했더니 저런 헛소리를 하는 사람에게 할 것은 오로지 응징뿐. 분노는 나의 힘. 하지만 일단 이야기는 들어보고 패야겠지?
“전 분명히 말이죠. (빠드득) 마리아스를 좋은 사람에게 보내고 싶다고 말했는데 말이죠. 어째서 그런 결론이 나오는 겁니까?”
“남녀의 이치를 안다면 당연한 것이겠지. 훗훗훗.”
이 사람이.
이성을 잃고 쥘부채를 난타했더니 머리에서 김이, 말이 그렇다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무럭무럭 피어오르는 것을 얼음으로 식히던 아버지는 진지한 표정으로 변해서는 이렇게 말했다. 다만 그 얼굴에 떠오른 비웃음은 아프지 않다는 이야기인 것 같은데……빠드득.
“너 바보냐? 당연한 거 아냐. 마리아스의 나이 서른이다. 우리가 온 세계에서도 결혼적령기에서 조금 멀어진 나이야. 아무리 좋은 상대라고 하더라도 마리아스의 나이가 걸려. 그쪽에서 진심으로 그녀를 좋아해줄 것 같냐? 억지로 결혼시키려고 하면 그녀만 불행해져.”
“…….”
할 말이 없다.
“정 안되면 내가 그녀를 품어버리는 수가 있지. 어떠냐. 어릴 적부터 너를 돌보던 마리아스를 내가 품어버릴까, 아니면 네가 할래? 대답이 없으면 지금 내가 간다?”
“……잠깐만.”
왜 이렇게 서두르는 거지? 고개를 갸웃하면서 아버지를 노려본다. 그리고 기감을 돋우어……왜 이리 사람들이 많이 몰려있는 거야!
“내가 불렀지.”
“끄응.”
들킨 것을 아버지의 말로 알아차린 아내들과 어머니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조용하던 아버지의 방은 금방 떠들썩해졌다.
“아버지 공인 바람?”
“사랑한다고 했으면서……하지만 마리아스라면…….”
“냉정하게 생각해보면 호위로 카틀레야. 보좌역으로 마리아스라면 괜찮을지도…….”
“아빠, 마리아스도 엄마가 되는 거야?”
어이, 이것들 봐요. 대체 무엇이 그렇게 궁금했던 거야. 제멋대로 떠들기 시작한 사람들에게 강렬한 눈빛을 날렸더니 모두들 움찔. 하지만 그런 내 눈빛을 겁내지 않는 사람들은 반드시 존재하기 마련이었다.
“하지만 며느리보다 어린 아내를 얻기에는 세인도 좀 껄끄럽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하지만 세인이라면…….”
“상냥하니까. 세인은 분명히 온 힘을 다해서 사랑해주겠지?”
어, 어머니. 아버지의 행동을 납득하시는 겁니까! 그 파렴치한 모수자천毛遂自薦을!
내가 강렬한 눈빛을 날려도 무서워하지 않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모습에 좌절. 내가 좌절하고 있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버지는 호언장담을 하기 시작했다.
“당연히 온 힘을 다해 사랑해주겠어!”
“역시 세인이야. 우후후, 마리아스에게는 해피엔딩?”
글러먹었어. 우리 집안은. 대체 남편이 이렇게 바람을 피우겠다고 당당하게 이야기해도 그러려니하고 넘어가는 호인들이 왜 이리 많은 거야! 이봐, 아버지 콧김 내뿜지마. 그렇게 당당하게 선언하지마!
“와아, 아빠 멋지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진이 더 마음에 들지도?”
“뭐, 세인이니까.”
“어쩔 수 없지. 후궁에 비어있는 방 하나를 깨끗이 치워두어야 하나?”
이봐요.
그렇게 포기를 하니 이 난봉꾼 황제가…….
“고로 네가 가지지 않는다면 내가 가지겠다.”
이렇게 나온 단 말입니다.
주변의 충동질에 기세가 살아난 아버지를 보면서 나는 특단의 조치가 필요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손에 쥔 쥘부채가 어쩐지 손에 딱 맞게 잡히는 것이 오래간만에 제대로 된 구타를 할 수 있겠다 싶을 정도랄까.
잠시후.
“아들아?”
“네. 아버지.”
“이건 우리가 배우고 익힌 윤리적인 도덕관과는 크게 어긋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아버지가 악한 길에 들어서지 않게 지속적인 관심과 관찰과 감시를, 마지막으로 응징을 가하는 것이 아들된 소임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아버지.”
“아무리 그래도 이렇게 공중에 거꾸로 매달아놓고 때리는 건 좀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괜찮습니다. 큰어머님께서 허락하신 것 같으니까요.”
잠시 숨을 돌리면서 아버지의 물음에 친절하게 답한다. 그런 나의 뒤에서 아내들과 어머니들이 ‘저거 분명히 질투하는 거지?’라거나, ‘역시 진은 욕심쟁이라니까. 하지만 좀 더 솔직해져도 좋을텐데.’라고 말하고 있지만 신경쓰지 않는다.
“일단 세인이 한 헛소리에 대해서는 내가 응징하기로 하고……. 진.”
“네.”
“마리아스 문제에 대해서는 좀 더 고민을 해봐야 할 것 같구나. 일단 돌아가겠니?”
“알겠습니다.”
분위기가 싸해지자 이운혜님이 나서서 이 자리를 수습했다. 과연 시녀들과 여관들에게 이 황실 최고의 권력자라고 불리우는 사람다운 일처리였다.
‘훗, 이걸로 녀석이 나설 것 같지?’
‘수고했어요. 하지만 좀 더 지켜봐야 할 것 같네요.’
하지만 그런 전음을 주고 받는 것을 보면 애초에 노린 것이라는 의문을 지울 수가 없다. 그런데 어째서 다 들리게 그런 전음을…….
‘정 안되면 진짜 내가 품어버리는 수가 있으니까.’
‘그때는 그렇게 하세요.’
그런 생각을 하면서 돌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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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릭터 프로필
마리아스 엔자크 루델
30세. 평범한 인간.
어릴 적부터 진을 기르다시피 하면서 함께 살아온 여관. 원래는 시녀였지만 여관으로 승진한 케이스다. 어릴 적 부끄러워하면서 도망가는 진을 제압하여 온 몸 구석구석을 씻어준다거나 하면서 볼 것 안 볼 것 다 본 사이. 평생 황태자를 모시겠다고 신목에 언약을 해버린 상황이지만 이미 결혼 적령기는 다 지나가버린 노처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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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문조사입니다.
이 아가씨의 배우자로 누가 좋을까요
1. 세인 아슈레이(변태황제)
2. 진 맥세인 아슈레이 : 이 경우 첩 1호로 공인받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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