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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소설-내가 만드는 이야기

[양판소]아버지처럼 되기 싫었어요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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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246 회 작성일 24-01-10 01:1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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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말하지만 이 글은 양판소(……야)이므로 개념이 없고 명랑소설이므로 어이없는 일도 일어날 수 있는 막장입니다^^;;; 양판소의 깽판이 싫으신 분은 조용히 백스페이스로 넘어가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작중에 언급되는 인물, 사건, 지명 등은 실제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습니다. 묘한 것이 보여도 신경쓰지 마세요. 깊게 생각하면 지는 겁니다. 이 글은 양판소이니까요.
*이 글에 대한 저작권은 저에게 있을지도 모르나 행사할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왜냐하면 양판소니까요.
*이 글은 명랑소설을 지향하고 있으나……양판소이므로 깽판입니다.



  [양판소]아버지처럼 되기 싫었어요
  17話 누구냐, 넌?!



  45.
  애초에 세워두었던 전략이고 뭐고 힘으로 밀어붙여 영주군을 몰락시킨 나는 이제 여왕을 도와 반토막이 난 프리그 왕국의 국력을 수습하기 위해 노력하기 시작했다. 그러기를 약 7개월. ‘까마귀’카드를 찾으러 다니는 체리와 그 모습을 찍어 나에게 보고하는 수지를 제외하고서는 모두들 업무에 익숙해졌다. 그리고 오늘.


  “마지막 ‘까마귀’카드를 발견하고 포획, 소멸시킬 때까지의 영상입니다.”
  “패스. 귀찮아.”
  “우와앙! 노력했는데!”
  “어떻게 하면 최대한 예쁘게 화면에 나올까 고민하는 모습이잖아? 네 힘이라면 순식간에 포획할 수 있는데 일부러 당하는 척하면서 노출도 노리겠지. 안 봐.”
  “정확하시군요.”
  “그런 거야.”
  “너무해!”


  저 녀석, 정말로 전직 마왕 맞을까?
  엎드려서 울부짖는 고스로리……아니, 체리를 뚱한 눈으로 바라본다. 이런 반응이라면 다음 발언은…….


  “주인님에게 포상을 받아서 딸 이름은 ‘리리’라거나 ‘나노’라거나 하는 식으로 지으려고 했는데!”
  “난 로리콘 아냐. 그런 포상을 줄 마음도 없어! 그보다 미묘하게 저작권법을 넘어가는구나. 뒤에는 컬이라거나 하라거나 하는 단어가 빠져있는 거지?”
  “역시 주인님! 하지만 제발 로리콘이 되어주세요!”
  “즐!”
  “우와앙!”


  단호한 내 대답과 울어버리는 체리. 무표정한 수지와 한숨만 쉬는 여왕의 모습은……꽤나 일상화 되어버렸는지 궁내의 대소사를 처리하는 여관들도 ‘또 시작이네’라는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일부 여관들이 눈을 빛내면서 바라보는 걸 보면 조금은 기대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무엇을?


  “그러니까, 저에게 야한 짓을!”
  “애는 저리가.”
  “우왕!”


  내가 언제 로리콘이라 커밍아웃을 할지 기대하는 모양이다. 일각에서는 돈내기가 오간다는 이야기가 들려올 정도로 관심의 대상이란다.


  “크흠. 어쨌거나 어느 정도 정리는 된 것 같군요.”


  이 난감한 상황을 정리해준 것은 여왕이었다.


  “대운하를 보수하는 작업은 몇 년이 더 걸릴 것 같지만 확실히 한다면 그럭저럭 쓸만할 겁니다. 문제는 양쪽에서 다 가물었을 경우인데 어쩔 수 없이 테이트강에서도 물을 끌어와야겠지요. 그런데 돈이 없단 말입니다. 지금 상황도 좋지 않아서 세금을 더 걷을 수도 없습니다. 비록 영주들에게서 빼앗은 돈도 있긴 하지만 역부족이에요.”
  “그건 안되겠군요.”


  하지만 이 난감한 상황에서 탈출한 것까지는 좋았는데 나오는 이야기는 우울한 이야기들 뿐이다.


  “보물 하나 팔아버릴까.”
  “안됩니다. 진님이 끼어들었다는 증거가 남게 됩니다.”
  “그냥 제국에서 차관을 무이자 할부로…….”
  “다른 나라에서 쌍심지를 켜고 반대할 겁니다.”


  아아, 더러운 현실. 더러운 예산!
  나는 머리를 싸매고 고민한다. 이 위기 상황을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가 하고. 뒷산에 드래곤도 없고 앞산에 드워프도 없으며 숲에 갔더니 엘프가 있더라는 것도 아니며 땅을 팠더니 보물이 나오더라는 기연을 장담하기 힘든 이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건 이것밖에 없다.


  “허리띠 조입시다.”
  “여기서 더 줄이면……1식 3찬이군요.”
  “뭐, 고기를 먹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할지도요.”


  그런 것이다. 더러운 예산!
.
.
  어쨌거나 어딜보나 넉넉했던 황실의 살림살이와는 180도 다른 빈궁한 매일매일을 보내면서도 결국 예산을 확보하기 위해 식비마저도 줄여야했던 상황에서 돈이 나갈 일이 생겼다는 보고를 들으면 일단 살기부터가 치솟게 되는 것은 당연지사다. 그것이 백성들에게 나가야 할 것이라면 문제가 없을텐데 예상치 못했던 사고로 그 뒷수습을 위해 예산이 쓰인다고 하면 그 사고를 촉발한 자에게 분노가 향하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리고 그런 일이 일어났다.


  “그러니까……그 놈이 감히 왕궁에 침입해서 기물을 파손하고 도주했다는 말이지?”
  “그렇습니다. 체리씨와 수지씨가 아니었으면 여왕님도 납치할 기세였습니다만.”


  감히 내가 대운하 보수공사 현장에 나가있는 동안에 일을 친 놈이 있었던 것이다. 발본색원을 한 덕분에 앞으로 반란 같은 건 일어나지 않고 10년 정도는 무탈하게 지낼 수 있겠구나라고 생각했던 것과는 크게 다른 상황이다. 여러 가지 가능성이야 있겠지만 가장 확률이 높은 건 주변 국가에서 이 프리그 왕국의 안정을 바라지 않는 마음으로 벌인 일이라는 것.


  “그래서, 어느 조직인 것 같습니까?”
  “확실한 건 없습니다만……잡히는 것이 없습니다. 일단 그 인상착의에 대해서는 수지 씨가 몽타주를 완성하여 주셨으므로 그것을 바탕으로 현상수배를 할 생각입니다.”


  어느 것 하나 확언할 수 없다는 방첩부대장의 말에 첩보쪽의 예산을 부득이하게 동결해야 했던 것을 아쉽게 생각했지만 수지가 그 정확한 기억력으로 몽타주를 만들어두었다는 이야기에 지친 몸을 이끌고 몽타주가 있다는 곳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 몽타주를 보고 나는 잠시 얼어붙어야 했다.


  “그러니까……이건.”
  “아슈레이님과 비슷한 특징입니다. 얼굴을 보면 그렇게 닮은 것 같지는 않지만요.”


  검은 머리에 검은 눈. 튀어나온 광대뼈. 그리고 외꺼풀의 눈.
  동양인?


  “일단 마법적으로 얼굴을 변형했다거나 하는 것은 아니라고 하므로 이 얼굴이 아마 진짜일 것이라는 것 정도만 유추가능합니다.”


  일단 녀석과 격돌해본 체리와 수지의 말로는 마법적으로 얼굴을 변형한 것은 아니며 그 무위가 소드마스터 수준이었다고 한다. 일단 외모에서 추정되는 연령과 그 무위. 그리고 그 외모의 특징을 보았을 때, 단 하나의 결과가 도출되었다.


  “이고깽?”


  빌어먹을 아버지와 유사한 존재가 또 나타난 것이다.
.
.
  “부르지 않았습니다.”


  혹시나 해서 우리를 눈엣가시로 여기는 신들이 우리를 퇴치하고자(……)부른 것이 아니냐고 확인하러 갔을 때, 신들도 황당하다는 듯 자신들의 이름과 존재를 걸고 자신들이 부른 것이 아니라고 확인해주었다. 일단 신들이 불렀다는 유추는 기각.


  “최근에 용의자의 모습을 한 남자가 모습을 드러낸 곳은 아직 발견할 수 없었습니다. 일단 후드로 얼굴을 가려버리면 아무도 그 외모를 파악할 수 없거니와 소드마스터 정도라면 성벽을 넘는 건 식은죽 먹기이니까요.


  그리고 녀석의 행방을 쫓는 것도 실패했다.


  “체리, 수지. 최근에 도성에 잠입한 기파는 없나?”
  “없습니다. 아무래도 도성 외부에 있는 것 같습니다.”
  “제길.”


  아파오는 머리를 누르면서 생각에 잠긴다. 누구냐, 넌. 왜 겨우 정상으로 돌아가고 있는 이 나라에 반감을 가지고 있는 거지? 나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녀석의 얼굴을 노려보았다. 몽타주 속의 얼굴은 그런 내 눈빛을 무덤덤하게 받아넘기고 있었다.


  46.
  일단 용의자가 도성에 있지 않다는 것을 파악하고 나자 수사범위를 외부로 확대해야 했다. 1식 2찬으로 줄어든 식사에 울상을 짓던 여왕에게 ‘반드시 잡아와서 벌을 내리겠습니다.’라고 말하고는 나선 참이다.
  그런데 왜 체리가 벌벌 떨었는지는 의문이다.


  ‘귀찮은 날파리 녀석.’


  그 귀찮은 녀석, 일단 도성을 급습했다가 안되자 잠적한 듯 보이는 녀석을 끌어내기 위한 외유였지만 여기에 과연 걸려들까 싶다. 녀석이 머리가 있다면야 이런 상황이 자신을 끌어내기 위한 것이라는 것을 어찌 모르겠는가. 바보가 아닌 다음에야…….


  “네가 진이라는 녀석이냐! 받아라!”


  하지만 실제로 바보는 있었다. 얼핏 보아도 그렇게 좋아보이지는 않는 검을 들고 수풀 속에서 튀어나와 급습이라는 것을 하는 녀석이 있었다. 게다가 덤벼들 때 하는 말로 보면 확실히 타겟은 나라는 것을 알 수 있을 정도. 황당하다는 생각과 함께 약간의 괘씸함을 느끼며 녀석을 순식간에 때려눕혔다.


  “한국인이냐, 중국인이냐, 일본인이냐. 차이니즈? 코리언? 재퍼니즈?”


  그리고 녀석의 팔을 꺾어다가 결박을 지어놓고 묻는다. 검은 색 머리에 검은 색 눈. 녀석이다.


  “한국인이다.”


  이곳에서 태어나 살아온 남자가 갑자기 발음이 이상한 한국어로 물어온 것에 놀랐던지 녀석의 눈이 동그랗게 변했다. 그리고 쏟아내는 살기. 간지럽다. 이 녀석.


  “왜 공격했지?”
  “반란을 일으키고 요녀를 도와 훌륭한 사회지도층을 전멸시킨 것을 벌하려고 했다. 그리고, 살인마새끼는 세상에서 사라져야지.”
  “뭐?”


  하도 어이없어서 할 말이 안 나온다. 대체 무슨 소문을 듣고 나선 것일까. 녀석의 황당한 대답에 잠시 멍하니 바라보려니 녀석은 이글이글 불타오르는 눈으로 이야기했다.


  “흥, 어린 나도 알고 있다. 유폐된 전대 국왕이 훌륭한 사람이었다는 걸. 사람들에게 일거리를 주고 사회불안요소를 제거하고 사람들이 살기 좋게 만든 사람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런데 넌 그런 사람을 유폐하고, 그를 따르는 충신들을 죽이고, 어리석은 사람들을 멋대로 행동하게 내버려두었다. 그게 혼란의 시작이라는 걸 왜 모르지?”


  잠깐만. 어딘가 모르게 왜곡된 정보를 바탕으로 판단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혹시나 해서 누군가가 정신을 조작한 것이 아닌가하고 살펴보았지만 그런 것에 당하지는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렇다면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왜곡된 정보를 주었다는 이야기인데…….


  “폐왕이라면 전전대 국왕을 힘으로 몰아낸 사람이다. 네가 싫어하는 반정으로 집권한 사람이지. 거기에 거의 완성 직전에 있던 수로를 모두 폐쇄해버려서 돈을 쓸데없이 허공에 날리고…….”
  “흥, 빨갱이같은 녀석. 다른 나라와 친하게 지낸다고? 그럴 수 없는게 당연한게 아닌가! 그 놈은 나라를 팔아먹으려고 했기 때문에 전대 국왕이 나선 것이 아닌가! 게다가 그런 기분 나쁜 건 당연히 없애버리는 것이 당연한 거다!”


  아, 잠깐만.
  빨갱이라? 어딘가 모르게 그리운 용어가 하나 나온 것 같은데 말야.


  “빨갱이는 나쁜 건가?”
  “아주 나쁜 거지.”


  잠깐의 문답이었지만 대강의 상황은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네가 이 세계로 넘어오기 전의 시간은?”
  “1979년.”


  어디보자 1979년에 고등학생이면……내 전생의 이모 정도의 연배로군.


  “어쩌다가 넘어왔냐?”
  “숙희 씨랑 한강변에서 거닐다가 통금시간에 쫓겨 한강다리를 건너다가 물에 빠졌지. 깨어보니 여기였다.”
  “너, 공부만 하던 녀석이지? 학교에서는 꽤 성실한 학생이라고 알려져 있고.”
  “어쩐지 잘 안다?”
  “너같은 애는 대개 그랬어.”


  그리고 이런 사람들이 대학교에 가면 머리에 띠두르고 시위에 나섰지.


  “몇월에 데이트하다가 그랬는데?”
  “데이트 아냐! 불법이성교제같은 거 할 거 같냐! 5월.”
  “5개월만 더 있었으면 대통령이 죽는 것까지 보고 왔을텐데. 7개월만 더 있었어도 군부쿠데타가 일어나는 것도 보았을 거고.”


  당시의 정서로 살펴보면 여자랑 희희낙락 한강변에서 노닐면 불법이성교제였지, 아니냐?


  “쳇.”


  혀를 차는 것을 보면 그런 일을 한 것에 굉장한 죄악감을 품고 있었던 모양이다. 꼴을 보아서는 손도 못 잡아봤을 거다.


  “그래서, 이곳에 왔더니 한 아가씨가 잘 대해주지? 어쩌면 너에게 몸을 허락했을 수도 있고.”


  그래서 한 번 넘겨짚어 보았다. 갑자기 다른 세계에 떨어진 인간에게 헌신적으로 대하는 여자가 생기고 그 여자가 이런 경험부족한 남자에게 첫여자가 된다면 어떻게 할지를 생각해본 결과였다. 그리고 넘겨 짚는 말에, 이 녀석은 반응했다.


  “딱 보니 이번 싸움에서 집안이 몰락하고 노예로 팔려갔던 여자인 모양이네. 그 여자, 죽었나?”
  “살인마새끼!”


  잠깐, 그 여자에 대해 추론한 것을 언급했더니 이 녀석의 눈이 순식간에 뒤집어졌다. 아무래도 적중했던 모양이다. 바둥거리는 녀석을 묶은 줄을 당기면서 제압한다. 역시 군기본훈련 때 배운 포승묶는 법은 꽤나 쓸만했다.


  “생각해봐. 이런 시대에 영주들이 일반 평민들에게 했을 짓은 상상을 초월한다는 말이지. 동네 깡패는 저리 가라야. 이소룡 영화 봤지? 거기에 나오는 악의 세력 같은 짓은 그냥 한다는 말이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목을 베고 예쁘면 데려가고, 이런 곳의 귀족들이 어떤 생활을 하고 있었는지는 알만하지? 거기에 내가 직접 사람들을 살펴봐서 말야. 악질이 아닌 귀족의 영애들은 모두 이번에 공을 세운 사람들의 부인이 되었거든? 그런데 네가 만난 여자는 그런 쪽의 사람은 아닌 것 같은데 말야. 노예였지? 몰락한 귀족의 여식. 노예가 될 사람이었다면 필시 악질이었다는 이야기야.”
  “네가 어떻게 사람의 마음까지 읽어!”


  내 말에 화를 내다가 꺾인 팔이 아픈 듯 온통 빨개진 얼굴로 외치는 녀석에게 한 번 픽 웃어주고는 계속 말을 이어나간다.


  “나 말야. 여기에서는 꽤나 날리는 인간이거든? 사람의 마음 정도는 그냥 읽어. 너는 이상하게 잘 안 읽히지만.”


  아무래도 이고깽이라서 그럴 것이라고 이야기하자 녀석은 얼굴에 잔뜩 물음표만 떠올린다. 그 모습에 ‘이계로 건너간 고등학생이 깽판을 놓는 소설’을 이야기하는 것이라고 하자 그제서야 이해하는 모습이다.


  “IBM이 이미 버린 몸의 약자와 비슷한 것처럼 말이지.”


  그리고 내가 이런 주석까지 달아주자 완전히 이해한 모습이다. 뭐, 말을 줄이는 농담 정도는 과거에도 있었으니까 말이지. 그런데 1970년대에 IBM이라는 회사나 그 회사명을 딴 농담이 있었던가? 의문이다.


  “뭐, 공부만 하느라 사회 돌아가는 건 잘 몰랐을테지만 말야.”


  어쨌거나 녀석의 오해(……참, 뭣한 이야기이지만)를 풀어주기 위해서 그가 이곳으로 온 후의 대한민국에서 일어난 일들을 이야기해주자 녀석은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면서도 한번씩 고개를 끄덕이면서 열심히 들었다. 1980년 5월의 일. 1986년 6월의 일. 1998년 겨울의 일. 2000년에 있었던 일. 2002년의 드라마 같았던 이야기들, 그리고 2003년에 있었던 일, 마지막으로 2008년에서 2009년 시즌에 있었던 등등. 이야기는 길었다.


  “그게 가능한 이야기냐? 대한민국이 그렇게 발전한다고? 축구 4강? 8:0으로도 지는 나라야. 우리는. 게다가 대통령은 왜 탄핵해? 그 사람들이 박정희 대통령 이후에 계속 집권했던 사람들이라고? 말이 되냐? 그건 그렇고 북한에서 도발한 거, 참 시원하게도 잘 막아냈네. 죽은 사람들은 아깝지만.”


  그리고 내가 해준 이야기는……뻥취급 받았다.


  “진짜인데?”
  “내가 오기 직전까지 오일쇼크로 나라가 흔들리고 있었는데? 북한이 밀고내려온다고 매일 야단법석이었고.”


  아무래도 전생의 부모님이 갓 결혼했을 때, 하루 일하고 하루 쉬어야 했다는 이야기와 비슷한 맥락이었던 것 같다. 어쨌거나 어떻게 그렇게 될 수 있었는지를 차근차근 설명한다. 경제학에 대한 굉장히 얄팍한 지식을 동원해서 말이다. 그리고 그런 내 설명을 들은 녀석은 이렇게 평가했다.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 시위나 하는 녀석들이랑 어째 말이 비슷하다?”
  “그런 시위를 한 사람들 덕에 지금 내 생각이 뿌리 박혔어. 그리고 그 사람들이 노력해서 지금의 대한민국이 되었다고.”
  “알아서 어련히 잘 했을라구. 사람을 그렇게 못 믿나?”
  “그 녀석들을 믿느니 이주일 얼굴이 미남이라는 걸 믿겠다.”


  더 이상 이쪽으로 이야기하면 말싸움이나 실컷하다가 앙금만 남고 끝날 것 같으니 냅두자. 이런 범생이 스타일은……현실을 알게 되면 꽤나 쉽게 이편으로 넘어올 것이다. 시간을 두고 설득해보도록 할까나.


  “이름은?”
  “백원만이다.”
  “거, 이름 참……구질구질하네. 천씨나 만씨로 태어났으면 좋았을 걸.”
  “원만하게 살라고 지어주신 아버지의 뜻을 왜곡하다니!”


  아무래도 오랫동안 설득이 먹힐 것 같지 않다.
.
.
  어쨌거나 녀석을 끌어내려고 나온 길이었으니 돌아간다. ‘사나이답게 싸우자!’라고 외치는 녀석의 바람대로 몇 번이고 결투를 빙자한 일방적인 구타를 가해 녀석을 잠잠하게 만들고는 왕궁으로 돌아왔다.


  “이 사람인가요.”
  “뭐, 어쩌다보니 아버지와 동향사람이 넘어온 것 같……잠깐만, 밥에 대한 원한이라고 해도 죽이는 건 안된다고 생각하는데 말이야.”


  그리고 녀석의 모습을 본 여왕이 이 녀석의 목을 당장 베라고 야단법석을 떠는 것을 간신히 막아내어야 했다. 그래도 동향사람이니까 말이지.


  47.
  1식 2찬으로 줄어든 밥상에 대한 원한이 생각보다 컸던지 지하감옥에 가둔 이고깽……백원만에게 빵과 물만 주라고 명한 여왕과는 달리 나는 녀석을 자주 찾아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뭐랄까……마치 전생에 부모님과 대화하던 것과 비슷한 답답함이 있었다고나 할까. 의외로 굳건한 신념을 가진 녀석이다.


  “최소한 국민으로서 누려야 할 권익을 지키려고 나서는 행동이 도만 넘지 않는다면 괜찮은 거 아니냐? 게다가 국가가 국민에게 가하는 명분없는 폭력이 정당화된다고 보냐?”
  “나라가 어지러우면 북한이 도발한다고, 그건 나중의 일이야.”
  “애초에 사회라는 것은 그 사회의 구성원들의 합의에 의해 존재하는 거다. 서로가 필요한 것을 충족하지 못한다면 찢어지고 분열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지. 그것을 국익이라는 이유로 사회 구성원들이 얻어야할 필요 최소한의 것들을 제한하게 되면 당연히 무리가 가게 되어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 민족? 그런 거 이야기하지마. 민족이란 것이 혈연을 바탕으로 한 하나의 사회라고 생각하는 사람이야, 난. 북한? 그 당시에 한국을 공격하면 북한은 초토화 되었을 거다. 그때 그 친구들이 아무리 적화통일을 외친다고 해도 내부 규합용이지 진짜로 밀고 올 마음을 먹을 녀석들은 하나도 없었을 거다.”
  “정말 구제할 길 없는 빨갱이구나.”
  “사람의 말을 좀 진지하게 들어!”


  이런 식으로 ‘결론을 내리면 너는 빨갱이.’라고 나오는 녀석에게 지칠 것만 같다. 그래도 꾹 참고 1980년 5월, 광주에서 벌어진 일을 이야기한다. 그랬더니 또 말싸움이 벌어졌다.


  “폭도잖아.”
  “너 같으면 시위하는데 최루탄이 아니라 총 들고있는 군대가 들어오면 저항하지 않겠냐? 시위하는데 군대를 투입하는게 에러라고 생각하지 않아? 차라리 경찰이 투입되었다면 저렇게까지는 안했을 거다.”
  “군인이라고 해도, 몽둥이 들고 있잖아.”
  “야 임마……. 너 기다려. 1990년대 초반에 가장 유명했던 드라마 하나를 보여줄테니까.”


  ‘모래시계’방영 개시. 방영 끝.
  참고로 출처는 어둠의 통로다(또 아버지다. 대체 어디서 이런 걸 다 구해오는지 원.)


  “여주인공이 예쁘네. 이름이 뭐라고?”
  “야 임마! 하아……고현정씨다. 미스코리아 출신.”


  그리고 나는 녀석에게 절망했다. 그냥 아무런 생각이 없는 것 아닐까. 이고깽에게 개념이란 있는 걸까? 그런 생각이 내 머리 속을 마구 헤집는다.


  “혹시나 해서 말인데……김일성이 어떻게 생겨먹었는지 그림 그려볼래?”
  “이렇게 생긴거 아니냐?”


  그리고 잠시, 말다툼을 쉬면서 녀석의 생각을 알기 위해 벌인 일에 나는 침묵을 지켰다. 넌 애냐? 사람이 어떻게 이렇게 생길 수가 있냐.


  “그 놈이 사람이냐?”
  “그럼 그 놈이 괴물이냐?”


  녀석이 그려낸 김일성의 그림은……도깨비였다. 혹이 달리고 뿔이 달린 도깨비.


  “혹 빼고는 닮은게 하나도 없구만.”
  “시끄러!”


  마나를 제한하는 수갑을 차고 앉은 녀석이 내 말에 으르렁댔다. 나보다 먼저 태어난 사람이기는 하지만 나이는 내가 더 많았으니 일단 형으로서 갱생펀치.


  “왜 때려!”
  “연장자에 대한 예의범절은 잊었나? 동방예의지국에서 태어난 망나니인가? 앙?”
  “너 나랑 나이 같지 않냐?”


  외면으로 보이는 나이만으로 판단하다니, 아직 멀었구나.


  “내가 여기에 환생하기 전까지 살아온 세월은 무려 29년이다! 합쳐서 마흔다섯! 네 아버지뻘이닷!”


  그러니까 어금니 꽉 깨물어라. 형님의 애정어린 주먹을 안길테니까.


  “안되니까 주먹질이냐!”
  “연장자에게 예의없이 대하는 녀석은 동네 어른이 꾸짖는 것이 당연한 것!”


  조금 혼낸다. 녀석의 맷집이 생각보다 약해서 치료해주어야 했지만.


  “어쨌거나, 조금 더 고민해봐. 세상이 어떻게 유지되어야 하고 사회라는 것이 어떻게 유지되어야 그 사회가 좀 더 오래 살아남을 수 있는지를 말야.”


  이런 건 학문적인 공부가 필요없이 사람들이 원하는 그 무엇을 생각하더라도 답을 도출할 수 있을테니까. 녀석에게 그런 말을 던져주고는 오늘의 교육을 마무리한다. 갑자기 왠 교육이냐고? 녀석의 16년하고도 9개월이 넘어가는 삶 동안 주입된 강요된 사고에서 벗어나게 하려는 교육이다. 물론 이것이 최선인지 최악인지는 아직 나에게는 의문이지만.


  “세뇌에는 교육! 폭력에는 대화! 대립에는 관용!”
  “이상주의자구만.”
  “하지만 이상이 모이다보면 낙원은 멀지 않아. 음핫핫.”
  “말로만. 현실을 보라고.”
  “여기에서는 이것을 현실로 바꿀 힘이 나에게 있지. 음핫핫. 가장 현실적인 방법으로 이상적인 사회를 구현해보겠어.”
  “퍽이나.”


  하지만 녀석의 생각은 크게 변할 것 같지는 않다.
.
.
  녀석과 대화가 계속 평행선을 그리는 것과는 반대로 여왕은 내 말이라면 콩으로 메주……아니 팥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믿을 정도로 나에게 신뢰하고 있다는 태도를 보여주었다. 이 아가씨, 사람 말을 너무 잘 믿는게 아닐까?


  “글쎄요, 전 진님이 이렇게 저를 무조건 도와주시는 것이 더 이상한데 말이죠.”


  그리고 그런 내 의문에 그녀는 이렇게 반문으로 답했다. 즉 말해서 무조건적인 도움이 그녀에게 신뢰를 안겨주었다는 이야기였다. 뭐, 그런 건가.


  “그런 거예요.”


  반짝이는 그녀의 눈빛이 부담스럽다. 그냥 날뛰고 싶어서 도왔다고 이야기하면 실망하겠지?


  “뭐, 어떻게 보면 여왕님의 처지가 저보다 더해서 말이죠.”


  그러니까 잘 포장해서 대답해보자.


  “더, 하다구요?”
  “전, 황태자로 태어나 황태자로 살아가야 합니다. 여왕님께서는 원치 않던 왕족으로서의 삶을 버릴 수도 있었는데 상황에 떠밀려서 여왕으로 등극하지 않으면 죽어야 할 상황이었죠. 누이들을 여자로 보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누이라는 사람들과 결혼을 해야 했습니다. 비슷하게도 앞으로 여왕님께서는 왕실의 대를 잇기 위해 원하건 원치 않건, 결혼하셔야겠지요. 그게 누가 되었건 귀족들이 여왕님에게 맞는 짝, 그리고 자신들에게 도움이 될 짝을 권하게 될 겁니다. 여왕님께서 절대적인 권력을 가지고 계시지 않는 한 거기에 따라야 함은 물론이구요. 여러 가지가 더 있긴 한데……결론은 그런 겁니다. 남같지 않아서 끼어들었다고 이야기하면 될 겁니다. 겨우 그 정도입니다. 도와주는 이유라는 건.”


  앞으로 2개월 남은 기간만이 허용되어 있지만요. 적당히 잘 포장한 이야기를 마치고 나자 여왕, 아니 이 꼬마아가씨의 눈에서 눈물이 또르륵 흘러내렸다. 뭐, 뭐냐.


  “흐음. 그러니까. 플래그 성립?”


  그리고 곁에서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수지가 이 상황을 정리……뭐냐 그 말은!


  “보통 이런 경우를 두고 플래그 성립이라고 하는 말이 있습니다.”
  “우에엥! 역시 나탈리님처럼 가슴이 있는 편이 좋으신 거였나요! 78A에 대항할 수 없는 69등급외는 해당사항이 없는 건가요! 로리콘이라도 여자다워야 되는 건가요!”


  그리고 잠시 난장판. 눈물을 닦은 여왕은 나에게 ‘오빠가 되어주세요.’라고 말하긴 했지만 미묘한 수치를 이야기해버린 체리에게는 살짝 눈을 흘겼다. 화내지 않아도 되는 거냐.


  “오빠가 여보가 되는 건 순식간이니까요.”


  야 임마!
  엉뚱한 이야기로 분위기를 엄하게 몰아가는 체리에게 꿀밤을 안기면서 분위기를 어떻게든 되돌렸다. 그리고, 여왕의 강력한 요구에 따라 나는 그녀의 ‘오빠’가 되어주었다. 이상한 의미로서의 ‘오빠’가 아니라 피는 이어지지 않았지만 ‘오빠’로서 말이다. 나를 남자로 보지 않을 여동생을 가지고 싶었으니 딱 좋으려나. 어쨌거나, 먹이를 기대하는 강아지의 눈빛을 한 여왕에게 좋은 오빠로서 여동생을 지켜주겠다는 약속을 하고는 겨우 이 화제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누나들도 여보가 되었는데 여동생이라도 여보가 되지 않을리는 없잖아요?”
  “그런 말을 하는 것이 이 입인가? 앙?”
  “아우우우. 아하요. 하홋해허효.”


  그러나 포기하지 않고 들이대는 체리를 잠시 응징해주고는 잘 자라는 인사를 이마에 해주고 돌아섰다. 묘하게 눈을 반짝이는 여관의 시선을 무시하고.
  그것이 실수였다.


  “내 돈!”


  다음날. 프리그 왕국에서 가장 신성해야 할 왕궁에서 일하는 여관들 중, 절반은 돈을 잃었다고 한다. 왜냐고?


  “내가 왜 로리콘이야!”


  여왕의 이마에 잘 자라고 가족의 인사를 해주었다는 이유로 로리콘으로 몰린 것이다. 이 소식이 누님들에게 전해지면 죽을지도 모르니 빨리 이 소문을 진압해야 한다. 그래서 나는 왕실에서 일하고 있는 여관들 모두에게 세뇌를 걸었다. 그리고 소문은 조금 다르게 와전되었다. 내가 시스콘이라고. 그게 그거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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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나 전에 넘어온 것 같은데 꽤나 후대에 나타난 이고깽 등장.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9/06/30/2009063000085.html
중국에서 무안단물을 주목하고 있는 듯(뻥)
++

70년대 사람이 2000년대 한국의 이야기를 들으면 판타지라고 여기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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