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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소설-내가 만드는 이야기

티렉스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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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208 회 작성일 24-01-09 23:07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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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치>


 
"읏...으흐흑~!! 아하하하하하~~!!! 아흐흐하하하~~~!!"



여자는 몸을 떨었다. 전신을 바들바들 떨어댔다. 그토록 몸을 움찔거리면서도, 별반 이렇다 할 반항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물론 여자를 제지 하고 있는 것이 있긴 있었다. 그녀의 손목들을 구속하고 있는 은빛의 수갑이 바로 그것이다.


 


하지만 그것에 구속되어 있는 여자가 다름 아닌 그녀라는 점을 감안해볼때, 이 수갑은 사실 있으나 마나 한 물건이었다.



그녀란 존재에게 있어서 이딴 수갑 하나 끊어버리는 일은 정말로 하찮은 일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묶여 있다. 지금 현실이 그렇다. 다리 쪽은 더하다. 그녀의 하체를 구속하고 있는 구속물은 그 어떠한 것도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의 발목을 꽉 붙든채 재빠르게 그녀의 발바닥 여기저기를 긁어나가는 남자의 손가락에서 벗어날 재간이 없는 판이다.



그녀는 그것을 도무지 이해할수가 없었다. 그리고 지금 그녀는 그런것을 생각하기엔 머릿속이 너무 정신이 없었다.



"아하하하하하~~!! 아흐흐흐흑!! 꺄하하하학~!!"


 


여자는 웃었다. 그것은 불가항력적으로 터져나오는 웃음이었다. 그녀가 고개를 흔들어 제낄 때마다 이리저리 물결치듯 살랑대는 머릿결들.
 


고개를 마구마구 휘젓는 그녀. 어느새인가 얼굴이 점차 달아오른다. 체내에 존재하는 혈류의 흐름이 가속화되었다는 증거이다. 더구나 그녀는 취해 있는 상태였다. 그것이, 흥분상태에 젖어 있는 그녀로 하여금 얼굴에 붉은 홍조기를 어리게 한다. 그녀는 지금 자신에게 가해지는 상황에 의해, 취해지고 있었다.



남자는 여자의 얼굴이 한껏 달아오른 것을 보고선 손동작을 멈췄다. 그의 손이 멈추자 마자 여자는 헉헉대면서 힘겹게 숨을 들이내쉬었다.



그 짧은 시간 사이에 피어오른 열기의 흔적을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 그녀의 몸은 젖어있는 듯하다. 가죽자켓이 왠지 더 몸에 밀착되어 감기듯 붙어 있는 느낌을 자아내고 있기 때문이다.


 
"하....학....허억..."



그녀는 힘겹게 몸을 움직여 등을 벤치에 기대면서 고개는 뒤로 확 제껴버렸다. 밤하늘이라도 바라보려는 듯한 동작으로 보이지만 정작 눈은 감겨 있다.



남자는 그런 그녀의 모습에서, 야생적인 뭔가의 느낌을 받았다. 저 여자는 어떤 상황이 닥쳐도 거침이 없을 듯하다. 아무렇게나, 될대로 되라는 듯하는 식의 인상으로 보여질수도 있는 모습이다. 허나 그렇지가 않다. 지금 저 모습은 체념이 아니다.



"수긍...이다...아마도"



그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럴것이다. 아마도 맞을 것이다. 자신의 짐작이.



그 짧은 시간동안, 그가 그렇게 이해하고 있는 중에, 여자는 어느새 고개를 바로해 남자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는 이렇다 할 말을 하지 않고, 남자의 눈만을 들여다봤다. 그녀는 진정 한마디도 하지 않았지만, 눈빛이 그에게 온갖 표현을 쏟아내는 듯했다.


 
"...한이 많은 여자..."
 


여자의 눈동자를 바라보면서 그런 느낌을 받고 있는데, 이내 여자 쪽에서 입을 연다.



"왜......왜 멈췄...어?"



"..음?"



그는 고개를 슬쩍 갸웃하면서 여자를 좀 더 자세히 직시했다. 여자의 눈가는 떨리고 있었다. 목소리는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듯하다.



위험하다. 위험하다. 이건 위험하다.



이 여자는 자신이 도착하기 직전에 이미 뭔가 큰 충격을 받고 있었다. 지금의 상태를 보면 알수 있다. 그리고 그는 은연중 그러한 느낌을 받고 이 공원에 들어선 것이다. 



이 여자에겐 균열이 있다. 자신에겐 보인다. 분명, 거미줄처럼 산산이 금이 가져 있는 유리같은 여자다. 지금의 상황은 일촉즉발이 틀림없다.


 


유리가 깨지기 전에 뭔가 해야 한다.



남자는 입을 열었다.



"울먹거릴 만큼 심각한 일이 아냐. 안 울것 같은 여자"



"....뭐?..."
 


그녀의 인상이 한껏 써지면서 눈망울이 크게 흔들렸다.



"...취했어"



그는 여자가 취해 있음을 상기했다. 어쩌면 내일이 되면, 아무것도 기억 못하거나 하진 않을까.


 
그렇게 생각해보고 있는데, 아이들이 여자의 모습을 보면서 동요하기 시작한다. 이 아이들은 좀 전까지만 해도 웃어대는 여자의 모습을 보며 좋아라 해댔다.



하지만, 그 여자가 다시 울려고 한다. 또다시 슬퍼하려 한다. 아이들은 그게 싫었고, 마음이 아팠다. 자연스레 반응할수밖에 없었다.



"...할수 없군...."



아이들을 내려다보다가 그는 결정을 내렸다.



쓰윽



그의 두 손이 뻗친다.



한 손은 여자의 가느다란 한쪽 발목을 움켜쥔다.  다른 한 손은 그의 다른 손에 의해 들려진 그녀의 다리를, 정확히 말해서 발 여기저기를  어루만지기 시작한다.


 
부드러운 피부인 것인 만지는 쪽이나 만져지는 쪽이나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더 민감하게 반응할 쪽은 어루만져지는 입장에 놓인 측이 틀림없다.



"!!"



움찔
 


여자는 흠칫 대면서 남자에게 말했다. 그녀의 목소리는 여전히 떨리고 있었다.



"뭐..뭐 하는 거야?"



남자는 여자의 발을 계속 주물럭대면서 말했다. 그의 얼굴에는 예의 그 싱그러운 미소가 걸려 있었다.



"납치하려고"



"..........뭐라구?"



그녀는 일순간 멍한 표정이다가 남자에게 그렇게 물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남자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



그는 그저, 자신의 손길로 그녀의 발등이며 발바닥을 어루만지는 일에만 집중했다.



"넌..도대..체..."



그녀, 강희는 남자와 더 대화를 하려 했지만, 순간, 자신을 덮치는 졸음을 의식했다.



"뭐..뭐지.....갑자기...졸음...이..."


 
그녀는 급작스레 자신에게 맹렬한 힘으로 닥쳐오는 졸음의 힘을 이겨낼수가 없었다. 몇 톤도 들기를 우습게 해낼수 있는 그녀이건만, 졸음이라는 무게는 그녀조차도 속수무책인 모양이다. 결국 그녀는 눈꺼풀을 감고 말았다.



벤치에 앉아 있던 그녀의 상체가 옆으로 쓰러지다시피 기울려 하는것을 얼른 받아든 남자는, 조심스레 그녀를 눕혔다.



벤치에 일자로 누운채 새근거리며 잠든 그녀의 얼굴을 피식거리면서 바라보며 그는 말했다.
 


"말했잖아. 릴렉스라고"
 


그렇게 대꾸해준 뒤에 그는 아이들을 바라봤다. 예상대로 애들은 멍 한 표정이었다. 아무래도 아이들 입장에선 그의 행동 하나하나가 다 신기해 보였을 것이다.



"너희들 중에 열쇠 가진 사람 있어?"



그는 수갑을 찬 시늉을 해보이면서 아이들에게 그리 물었다. 그러자 애들 중 한명이 앞으로 나오면서 그에게 열쇠를 주었다.
 


그는 고맙다고 말을 한 후에 여자의 손목에 채워져 있는 수갑을 풀었다. 그리고 나서 그녀를 업은 후  갈 준비를 하는데, 그때까지 가지 않고 그냥 서 있는 아이들이 보인다. 그는 애들에게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아이들 중 유일하게 여자이던 애가 입을 열었다.



"언니가 걱정되서요...오빤 언니 집으로 가려는거에요?"


 
남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야겠지. 왜? 너희도 따라오려고?"



애들은 대답은 않았지만 아무래도 그러고 싶어하는 눈치였다.



남자는 피식 웃더니 말했다.


 
"해가 진지 오래야. 집에서 걱정하신다. 어서들 들어가. 나한테 맡기고. 그럼 볼수 있으면 또 보자 얘들아~"



그는 말을 끝맺으면서 그렇게 걸음을 하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잠시동안 우두커니 서서, 멀어져가는 그와 등에 업힌 여자를 바라보았다.



"괜찮을까?"



"응, 그럴거야. 잘 모르겠지만...저 오빠 보고 있으면, 마음이 편해"



"정말..그렇더라"



아이들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이내 갈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초고수>



그녀는 눈을 떴다. 의식이 어렴풋이나마 느껴지면서 머리에 떠오른 당장의 생각은 두가지이다. 첫번째는 자신이 꿈을 꾸었다는 것이고, 깨어난 시점인 지금에서는 그 꿈의 내용이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잘은 모르겠지만 뭔지 모르게 엄청 복잡한 꿈이었던 것 같다.



두번째는, 시간이다. 잘은 모르겠지만 아침이라 하기엔 이르고, 아직 새벽일 거라는 느낌을 받았다. 비록 천장의 등은 환했지만 밖이 어둡다는 느낌을 받았으니까.
 


"................."



한동안 눈을 깜박거리면서...  무표정인 채 천장의 등을 바라보며 그렇게 눈을 깜박거리고 있는데,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린다.
 


"일어났군. 꿈이 영 별로였나봐"



자신이 깨자마자 저런 첫말을 던지는걸 보면, 분명 내용은 기억이 안 나도 뭔가를 꾸긴 꾸었다.



".......물......."



그녀는 갈증이 나는지 그렇게 한마디를 짧게 내뱉었고, 그는 마치 그녀가 물을 찾을줄 알고 있었다는 듯이 곧바로 물이 담긴 컵을 건넸다. 첫마디를 꺼낼때부터 이미 준비하고 있었던 듯하다.



그녀는 그가 건네는 물잔을 받기 위해 누워 있던 자신의 침대에서 상체를 일으켰다.  그녀가 몸을 일으키면서 자신의 몸에 덮어져 있던 이불이 흘러내린다.



스르륵
 


이불이 흘러내리자마자 눈에 대뜸 들어오는 자신의 둥근 가슴. 그리고 새하얀 살결들.



그녀는 굳이 이불을 마저 걷어치우지 않고도 깨달을수 있었다. 자신이 지금, 아무것도 걸치지 않았다는 것을, 태어날때의 모습이라는 것을. 그 자체가 바로 그녀 자신의 모든 것이라는 걸 말이다.



"................"
 


아무 말 없이 느릿하게 고개를 돌린 후 남자의 눈을 한번 들여다본 후에 그녀는 이내 그의 손에 들린 물컵을 받아들고는 물을 들이켰다.
 


"....왜 이런것?"



오른손에 빈 컵을 쥐어든 채 그녀는 그를 바라보며 그렇게 짤막하게 물었고, 그는 방의 구석에 있는 책상을 가리켰다.


그녀의 시선이 머무는 곳, 책상 위에는  4B로 그려진 스케치풍의 그림이 있었다.  전라의 여인이 머리칼을 퍼뜨린채 침대에 누운채로 단잠에 빠져 있는 스케치였다.
 


스케치를 말없이 바라보고 있는 그녀를 보면서 남자가 피식 웃더니 이내 덧붙인다.


 
"취미라서. 열받으면 때리고"



"......굳이 누드화여야 할 이유가 있었는지 들어보고 싶은데..."



"이유라....그게 취미다. 누드화가 나의 취미야. 대답이 되나"



"...가져갈거야?"



남자는 여자의 질문에 즉각 응답했다. 이미 대답은 정해져 있었던거다.



"물론. 아무때나 취할수 있는 기회가 아니라고 여기거든"


 
".............."



그녀는 그렇게 대답한 그를 잠시동안 바라보다가, 주변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자신의 방이다. 그녀가 사는 곳이다.



문득, 흐릿하나마 아까의 일이 생각났다. 자신을 납치하려고 한다느니 어쩌느니 떠들어대던, 눈앞의 남자의 말이.



"그러고 보니....."
 


처음 있는 일이 아니다. 그녀는 지금의 상황과 연관되어지는, 자연스레 떠오르는 얼마 전의 한 과거를 기억의 편린 속에서 끄집어냈다.
 


"맞아. 그녀석도 나를 꼼짝 못하게 했었지. 난 속수무책이었고. 그리고 나선...."



이 집이었다. 자신이 아끼는 후배도 만사를 제치고 일단 그녀의 집부터 오고 봤던 일이 생각난다.
 


당시의 상황을 떠올려보면 그 녀석이나 눈앞의 이 남자나, 자신을 마음대로, 어떻게든 다룰 수 있었다.
 


자신들에게 유리한 상황을 만들수도 있었다.
 


어느 정도의 비약이 가미된 이야기지만,  그때의 그녀로선 자신의 몸이 어떻게 다루어진다 해도 별달리 뾰족한 수가 없었으니까.



단순히 뒷감당이 두려워 정말 이렇다 할 짓을 못 저질렀다고 할 수만은 없다. 그때의 그녀석은, 진정안은 배려했던 것이다. 눈앞의 이 남자도 그렇고.
 


자신을 배려한 것이다. 그녀로 하여금 안정감을, 익숙함을 안겨주려고 한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들의 식대로 가지 않고 여기에 있었다. 그리고 지금도 여기에 있다. 그녀의 집에, 자신의 집에. 그녀를 위해.



"무슨 생각을 그리 골똘히 하는거야?"



정안이를 만났던 때의 일을 회상하며 지금의 현실과 겹쳐보듯이 투영하고 있는 그녀에게 남자가 그리 묻는다.



"....납치할 장소가 마땅찮았나보네"
 


"어이쿠 죄송. 좀 더 근사한 곳으로 모실걸 그랬나"



"편하게 잠들어있었던 쪽 입장에선 선택의 여지가 없었는데. 이정도로 충분해. 감지덕지야"



"그런가. 그리 여겨주면 황송하고"



그러면서 씨익 웃는 그이다.


 
강희는 남자의 눈을 꿰뚫듯이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눈을 바라보는데 시간을 투자할지언정, 그녀는 완연히 드러난 자신의 상반은 결코 가릴 생각을 하지 않는 듯했다. 아니, 아예 신경쓰지조차 않는 것 같았다.



남자 또한 그런 그녀의 눈길을 조금도 피하지 않고 싱긋싱긋 웃으면서 마주바라봐주고 있었다. 마치, 그것이 예의라고 생각하는 듯이.



그에 반해서 강희는 솔직히 말해, 겉으로는 아닌 척해도 내심은 상당히 쿵쾅거리고 있었다.



"뭐야...뭐야 이녀석..."
 


눈앞의 남자를, 이녀석을 하나도 모르겠다. 정체도, 의도도, 목적도.
 


온갖 것이 수수께끼이고 이상하게 여겨지는 게 한두군데가 아닌 놈이다.



그리고, 깨어나자마자 자신이 나체라는걸 깨달은 그녀. 이불이 덮여져 있었다곤 하지만 얇디얇아 오히려 더 관능적으로 비쳐질수도 있는 그런 수준이었다.
 


그리고 그림.
 


저것을 그렸다는 것 자체가 이미 그는 그녀란 존재에 대해서 적어도 시각적으로 볼수 있는 것은 다 보았다는 이야기가 된다.



이정도쯤 되면, 보통 여자라면 다음으로 이어질 상황은 보통 4가지 정도로 간추릴수 있을것이다.



1. 꺄아아~~ 하고 야밤에 비명을 올리면서 어찌할바를 모르는채 당황을 하는 타입



2. 이런 개~~xx가 하면서 손에 잡히는 아무거나 집어들고 맹렬하게 달려들 타입



3. 딴건 다 필요없고 신고 절차 등등을 계산해 가면서 핸드폰 내지는 전화기를 찾으면서 침착해 보이는 척 하려는 타입



4. 비명을 지른 후에 자신을 이 지경으로 해놓은 놈을 두들겨 팬 후 도주 못하게 꽁꽁 매놓은 후 전화버튼을 누를 타입


 


그러나...그러나 그녀는 그러지 않았다. 왠지..그럴 마음이 들지 않았다.
 


만약, 눈 앞의 남자를 작살낼 마음이었다면 그녀는 해도 진즉에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정말로 그럴 마음 자체가 생기지 않았다.
 


왜일까. 그녀는 그게 궁금했다. 그리고 이내, 남자의 눈을 들여다보면서 어느 정도의 대답을 찾아낼수가 있었다. 비록 모두를 보진 못했지만.
 


"깊어..."
 


깊다. 그 속을 가히 짐작할수조차 없을만큼 그의 눈동자는 온갖 것을 담고 있는 듯해 보인다. 마치....
 


"물...."
 


물...그렇다. 물이다. 저 눈은 청량하다. 시원하고 새파란 물,  물 그자체이다.
 


강희는 항상 불쾌했었다. 자신의 몸을 보면서 음탕한 생각을 굴리는 것 같은 남자놈들의 시선이.



의식하기 싫어도 예민한 자신의 감각은 저절로 그것들을 인지할수밖에 없었고, 그들의 그런 시선이 너무 따가와, 꼴보기 싫어서, 그녀는 남자들을 멀리했다.



진정안을 아꼈던 이유 중의 하나는, 적어도 그가, 남자 중에선 최초로 그녀의 마음을 어느 정도는 파고들만한 조건을 갖추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석은 솔직했다. 정안이도 물론 남자다. 그또한 강희의 몸에 혹했던 건 부인할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그래도, 적어도 그는...솔직했다.



그는 자세가 되어 있었다. 창피를 무릅쓸줄 아는 녀석이었다. 강희에게 자신의 속맘을 털어놓고 고민상담을 해올 때, 그녀는 그때 그녀석이 그렇게 귀여울수가 없었다.



한 발자국, 두 발자국... 그 몇 발자국을 더 나간 사람이냐 아니냐에 따라 상대에 따른 그녀의 평가는 천양지차로 갈린다.



오로지 머릿속에서 그짓거리만을 생각해 대는 놈들은 제발 좀 꺼져줬으면 하는 그녀. 하지만 정안이에게서 보통 놈들과 다른 것을 보았기에, 적어도 그는 그나마의 대접(?)을 그녀에게서 받을수 있었던 것이다.


 
근데....그런데 눈앞의 남자는...진정 그녀를 놀라게 했다.  그는 정말이지, 그녀에게 엄청난 충격으로 다가오는 존재였다.


 


이녀석은....



"깊어..깊지만....공존하고 있어..."
 


강희는 육감이 대단하다. 그녀는 첫인상만으로 상대를 왠만큼 파악해낼줄 아는 여자다. 물론 이 남자는 도무지 쉽지 않은 상대임에는 틀림이 없지만, 그래도 그녀에겐 일말이라도 보여지는 것들이 있다.
 


눈앞에 있는 상대. 그또한 남자이다. 그녀는 그의 눈속에서, 욕정을 엿봤다. 다른 남자들에게서도 보았던 욕정. 분명 보인다. 결코 잘못 본게 아니다.



아마도, 자신이 잠들어 있는 동안에 저러한 감정이 생긴 것일 것이다. 저 감정은 필시, 그녀의 알몸을 대하면서 생겨난 것일게 틀림없다.
 


하지만, 그것이 눈가에 떠오를정도의 욕망이 비치면서도 그는 시종일관 냉철한 모습을 내내 유지하고 있다.



이성과 욕정을 공존시키면서 이처럼 수월하게 조화시키는 인간이라니...강희는 이런 남자를 태어나서 처음 보았다.
 


그가 만약 여자였다면 이렇게까지 놀라지는 않았을지도 모른다. 적어도 여자가 남자보다는 욕정을 더 잘 다스릴줄 알기 때문이다.
 


저 눈은 지금도 자신의 상반신을 바라보고 있다. 그러면서 흥분 또한 분명히 하고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 남자는 편안한 신색을 보인다.


 
그리고 자신에게 보내오는 예의 저 악의 없는 미소가 바로, 그의 마음이 평안하단 증거이다.



냉철한 이성적인 마음과, 원초적이며 야생적인 욕구 중 하나인 욕정의 공존이라니, 이것은 마치 물과 기름처럼, 서로 어울릴래야 도무지 어울리기 힘든 것들이다.
 


그런데도 저녀석은 그것들을 50  : 50으로 잘 혼합해놓은 후 느긋하게 조절을 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니, 그녀로선 황당할 수밖에.



그녀가 살면서 여태껏 보아 왔던 남자들 중, 감정의 통제가 가장 자유로운 사람이었다.



이전에 보아오던 남자들과 너무도 다른 타입의 이성이라서, 그녀는 적이 당황하고 있었던 것이다. 무엇보다도, 이런 인간 자체가 처음이다. 뭐랄까.



말로는 잘 표현 못하겠지만...저녀석은....자신이 화를 낼 여지조차도 주지 않는달까. 아니면, 화를 낼 기분 자체도 안 들게 만들어버리는 남자랄까.



상대에 대해 명확한 기준을 내리기조차 힘든 그녀였다.  다른 남자한테 이런 일을 당했다면 일단 주먹부터 나가고 볼 일이었을텐데...뭐 이런 녀석이 다 있는지...
 


"가만...근데 갑자기 그 애가 생각나네? 저녀석을 보고 있자니까.."



마음 하나만으로 깊이도 통하는 자신의 화끈한 친구가 떠오른다.
 


그 여자애는 이쪽과 완전 다르다.  이녀석이 물과 같다면, 그녀는 마치 불을 연상케 했다.  타오르는 불꽃처럼 황홀한 그 여자애의 삶은  강희로선 부러움 그 자체였다.
 


서로 완벽히 정반대인 듯해 보이지만, 묘하게도 마치 음양처럼 어울릴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문득, 그 여자애와 이 남자가 아는 사이일까, 만약 아니라면 둘이 만난다면 어떤 분위기를 만들어낼까 하고 강희는 생각해보았다.



그녀가 또 그렇게 있는데, 남자가 큭큭 하고 웃더니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그녀에게 말한다.



"원래 그렇게, 대화 중에 생각에 잘 잠겨?"



그의 말을 듣고 눈을 한번 깜박이는 그녀.


 
"원래는 아냐. 그보다...꿈에 대해선 왜 물었지?"



그는 아까, 그녀의 꿈이 영 별로인 모양인것 같다고 첫말을 건넸었다. 그녀는 그걸 상기하고 그에게 물은것이다.


 
남자는 뒷머리를 긁적거렸다. 말을 할까 말까 하는 듯한 눈치이다. 그녀가 고개를 갸웃하는 중인데, 결국 그가 대답을 했다.



"글쎄...울더라고"



"울었다고?"



"음..뭐...아참. 니 눈물 달더라"



눈물은 짜다. 그럼에도 저녀석은 왜 저런 식의 표현을 할까. 아니, 그걸 떠나서 이건 또 무슨 소린가. 저 말대로라면, 저녀석은 자신의 눈물을 맛보기라도 했단 말인가.



"무슨...."
 


그녀는 다시 물으려 했지만 그가 더 빨랐다.
 


"아니아니, 생각보다 많이 울더란 말이지. 신음은 해도 소리조차 죽여가면서 울건 또 뭐냔 말이지. 별거 아니니 신경쓰지 말라고"



그러면서 너스레를 떤다.



강희는 그의 말을 들으면서 이번에는 여왕이 생각났다.


 
여왕의 저택에 붙잡혀 있을 때의 일이다. 강희는 여왕에 의해 거의 하루의 대부분 동안 신체를 매만져지면서 엄청나게 힘들어했었다.



전신이 후줄근하게 젖어들었을 정도였는데, 여왕은 손가락으로 자신의 겨드랑이를 쓰다듬은 후에 젖어든 손가락을 혀로 맛보면서 그랬었다.



"달아. 참 달아. 넌 어쩜 몸에 고인 땀조차도 나를 황홀하게 만드니?"
 


그러면서 큰 소리로 웃음짓던 여왕. 왜 또 갑자기 이런 일이 기억나는진 모르겠지만 강희는 순간 저도 모르게 중얼댔다.



"내 몸은 무슨 설탕으로 되어 있나. 뭐가 됐든 달다고 하네. 내참 어이가 없어서...."
 


그렇게 그녀가 툴툴대자, 남자 입장에선 어리둥절할수밖에 없다.


 
"설탕? 왠 설탕?"
 


"아 됐고...그래서....몇 시지?"



시간을 묻는 그녀에게 남자는 현시간을 말해줬다.


 
"3시 5분전"



"좀 잤군.....원래 중간엔 잘 안깨는데..."



"꿈때문이겠지. 그러나저러나....옷 좀 입지 그래. 나야 좋지만, 아무래도 손해는 그쪽이 아닐까 싶어서말이야"
 


강희는 눈을 흘겼다.



"벗겨놓은 주제에 잘도 말하는군"
 


남자는 하하 거리면서 멋쩍은 표정으로 서 있었다. 하지만 그건 겉으로 그렇게 보이는 것일 뿐, 그녀가 보기에 그는 전혀 위축됨이 없다.



잠시 그를 바라보다가 그녀는 남자를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지금부터 질문을 하나 할건데....솔직하게 말하면 아무것도 없던 일로 해줄게"



"대답이 맘에 안든다면?"



강희는 피식 웃었다.
 


"좋을대로 생각해. 단...날 이꼴로 해놓은 것에 대해 그에 합당한 처사는 필연적으로 고려해야겠지? 그쪽 입장에선 말이야"
 


이번엔 남자가 피식 웃는다.
 


"글쎄...내가 보기에 너는....별로 나를 어떻게 하겠다는 마음이 없어 보이는데..."



"!!"



정곡을 찔렸는지 강희는 순간 움찔했다.



"대체 뭐야.... 뭐 이렇게 어려운 녀석이 다 있어?"



강희는 정말로 상대가 까다롭게 느껴졌다.  사실 속마음은, 그가 어떻게 대답을 하던, 별로 화낼 맘이 없었던 것이다. 근데, 이리도 쉽게 간파당하다니.



차라리 무식하게, 치고 받고 하는 육탄전에 올인이라면, 눈앞에 1명이 있건 100명이 있건, 천명 만명이 있건 그녀 입장에서 본다면 그게 그거였다.



개미 떼가 아무리 모인들 공룡을 이길수 있을까. 인간이나 개미나 그녀 앞에선 똑같다.  단순하게 몸으로 들이받는 거라면 머릿수 따위는 그녀 앞에선 무의미한 일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눈앞의 남자는 그게 아니다. 말 한마디, 행동 하나 하나가 어렵기 그지없다.



첫만남만 해도 그렇다. 시작부터 남자는 자신을 앞에 두고 수월하게 대처했다. 반면 자신은 내내 상대의 페이스대로 움직여지는 듯한 느낌이었다.



하지만 분명 그렇게, 끌려다니는 듯하면서도 이상하리만치 불쾌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이게 바로, 그녀가 상대에게 진정으로 화날수 없게 하는 결정적인 이유가 되고 있었다.


 
모든 것이 그의 흐름대로이다. 그는 유수와 같다. 자신이 아무리 거대한 돌덩이같다 할지라도 그의 물길에 휩쓸리면, 속절없이 붙잡혀 물길의 흐름에 내맡겨질 듯하다.



"제...젠장....뭐 이런 경우가..."



그녀는 정말, 자신이 여태껏 살면서 이렇게 쩔쩔 매는 경우가 있었나 하고 되새겨보았다. 대답은 당연 아니다 였다.
 


"어떻게 돼 먹은 녀석이야.....도무지....화날 마음조차 안 들게 하다니...하참 기가 막히네....."



그녀는 입술을 꼭 깨문채 짐짓 화가 난 듯한 표정으로 상대를 노려보는 척하고 있었다.



그녀의 시선을 일절 피하지 않고, 그대로 유유히 받아내는 남자는 싱긋싱긋 연신 웃음을 흘려댈 뿐이었다.



그런 그를 보면서 식은땀을 흘리는 강희...
 


"고수군 정말...."



천하의 최강희를 이리도 쉽게 대하는 이녀석, 분명 언변의 달인, 그는 분명 초고수임에 틀림이 없다.



"좋아...대답은 일단 들어볼까?"



애써 표정관리를 다시 한 후에 강희는 녀석을 바라보며 입술을 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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