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M] O의 이야기 - 4장 2편 <원제:Story of 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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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하던대로 르네가 나탈리를 데리고 소형 요트를 타려고 다섯 시에 쟈크리느를 데리러 왔을 때, 그녀는 낮잠에서 깨어나 나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오후가 되자 바람이 조금씩 불기 시작했다.
“나탈리는 어디에 있지?”
하고 르네가 물었다. 나탈리는 그녀의 방에 없었다. 정원으로 나가 그녀를 불러보았다. 르네는 정원에 이어진 떡갈나무 숲까지 들어가 보았지만 나탈리를 찾을 수 없었다.
“혼자서 바닷가에 간 게 아닐까? 아니면 요트에 미리 가 있거나.”
두 사람은 더 이상 나탈리를 찾는 것을 포기하고 출발했다.
O가 테라스에서 캄푸치아 산 매트리스에 드러눕다가 집 안에서 달려 나오는 나탈리의 모습을 본 것은 바로 이때였다. O는 드러눕다 말고 몸을 일으켜 옷을 몸에 걸치고 ㅡ 너무 더웠기 때문에 알몸으로 있었다. ㅡ 벨트를 맸다. 그때 나탈리가 빠른 속도로 돌진해와 O의 몸 위에 자기 몸을 던졌다.
“언니는 갔어요, 마침내 언니가 바다에 나간 거예요. 나, 언니 목소리를 하나도 빼놓지 않고 들었어요, O. 언니와 당신이 조금 전에 무슨 일을 했는지 알고 있어요. 문 밖에서 들었어요. 당신은 언니한테 키스하고 언니를 껴안고 있었죠? 왜, 나는 껴안아 주지 않는 거죠? 왜, 나한테는 키스해 주지 않는 거예요? 내가 못생기고 귀엽지 않기 때문이에요? 쟈크리느 언니는 당신을 사랑하지 않아요. 하지만 나는 당신을 사랑하고 있어요.”
그렇게 총알같이 말을 쏟아낸 나탈리는 마침내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
“자아, 이제 그만 해.”
하고 O가 말했다.
O는 그녀를 안락의자에 앉히고 장식장에서 커다란 타올 ㅡ그것은 스테판 경의 타월이었다. ㅡ 꺼내 나탈리의 울음이 어느 정도 진정되었을 때 그녀의 얼굴을 닦아주었다. 나탈리는 O의 두 손에 입을 맞추면서, 용서해 달라고 했다.
“나를 껴안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아도 당신 옆에 놔두고 귀여워 해줘요, O. 언제고 당신 옆에 있고 싶어요. 만약 애완견을 갖고 있으면 당신은 그 강아지를 귀여워 하겠죠? 만약에 나를 안고 싶은 마음이 없고 때리고 싶으면, 또 그렇게 해서 당신이 즐거워진다면 얼마든지 나를 때려도 좋아요. 그 대신 모른 척하고 외면하고 쫓아내지만 말아줘요.”
“그만 하라니까, 나탈리. 너는 지금 자기가 무엇을 얘기하고 있는 건지 알지도 못해.”
O가 목소리의 톤을 낮추어서 말했다. 그러자 나탈리도 소리를 죽이며 손을 O의 허벅지에 갖다 대면서 항변했다.
“그럴 리가 없어요, 난 죄다 알고 있어요. 기억하죠? 나는 그때 당신의 엉덩이에 사람 이름을 뜻하는 이니셜과 지렁이가 기어가듯 파랗고 길게 멍든 자국이 있는 걸 봤어요. 그것뿐만 아녜요. 쟈크리느 언니가 내게 말해 준 게‥‥‥”
“뭐라고 했는데?”
“당신이 어디에 있었다는 것, 그리고 거기에서 무슨 일이 있었다는 것까지 얘기해줬어요.”
“언니가 로와시 저택 얘기를 들려줬어?”
“당신이 지금 어느 정도의 상태라는 것도 이야기해줬어요, 당신이 ‥‥‥‥”
“내가 어떻다고?”
“당신 몸에 쇠고리가 달려 있다는 것‥‥‥‥”
맞아, 그대로야. 그리고 또 뭐라고 했지?”
하고 O가 물었다.
“그리고 스테판 경이 매일 당신한테 채찍질하고 있다는 이야기도 해줬어요.”
“그래, 모두 맞는 말이야. 지금 바로 그 분이 이리로 올 거야, 나탈리. 어서 네 방에 가 봐.”
나탈리는 꿈쩍도 하지 않고 O의 얼굴만을 바라보았다. O의 눈길과 숭배하는 마음이 가득 들어 있는 나탈리의 시선이 부딪쳤다.
“O, 이렇게 사정할게요. 내 마음을 알아줘요. 나도 당신처럼 되고 싶어요. 당신이 시키는 일이라면 뭐든지 할게요. 약속할 수 있어요. 당신이 쟈크리느 언니한테 말한 그 장소에 다시 돌아갈 때 나도 데려가 줘요.”
“넌, 너무 어려서 안돼.”
하고 O가 말했다.
“아니에요, 난 어리지 않아요. 벌써 열다섯 살이란 말이에요.”
하고 나탈리가 분노 섞인 목소리로 울먹였다.
“난, 절대로 어리지 않아요. 스테판 경한테 직접 부탁하겠어요.”
나탈리가 되 뇌었다. 그때 스테판 경이 O의 방에 들어왔다.
나탈리는 O의 옆에 있어도 좋다는 허락과 로와시 저택에 갈 때 함께 데리고 가겠다는 약속을 받아냈다. 하지만 스테판 경은 O에게 어떠한 애무 방법도 나탈리 에게 가르쳐 주어서는 안된다고 명령했다. 그리고 나탈리가 어떤 누구에게도 입술을 갖다 대서는 안되고, 또 O가 나탈리에게 키스하는 것도 금지시켰다.
스테판 경은 나탈리가 이성이든 동성이든 성적인 접촉 경험 없이 순수한 몸으로 로와시 저택을 방문해 줄 것을 희망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대신 그는 나탈리가 O의 옆을 떠나고 싶어하지 않는 이상 계속해서 O의 옆을 붙어 다녀도 좋다는 것과, 또 O가 쟈크리느를 애무할 때나 자기를 애무할 때도 지켜보고 있어야 한다고 명했다. O가 스테판 경과 그의 가정부 노라에게 채찍질을 당할 때도 물론 마찬가지였다.
O가 쟈크리느의 온몸에 키스 세례를 퍼붓고 O의 입이 언니의 그 부위에 닿는 것을 보면서, 나탈리는 질투와 증오를 견디어 내느라고 몸을 부들부들 떨곤 했다.
나탈리는 O의 침대다리 옆 카페트 위에 웅크리고 앉아 O가 나무 난간에 묶인 채 채찍질을 당하면서 몸부림치는 모습과, O가 무릎을 꿇고 스테판 경을 부드럽게 애무하거나 엉덩이 사이로 그를 받아들이는 모습을 하루도 거르지 않고, 감탄과 열망과 간절한 소원하는 마음으로 지켜보고 있었던 것이다.
어쩌면 O는 쟈크리느의 돈이나 지위에 집착하지 않는 담백한 태도를 너무 중시했었는지도 모른다. 또 쟈크리느는 르네와의 관계도 있고 해서 너무 O에게 몸을 내맡기는 것은 자기에게 위험스러운 일이라고 소박하게 생각했을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갑자기 관계가 중단돼 버렸다.
그 무렵 낮이건 밤이건 가리지 않고 르네와 같이 생활하던 쟈크리느가 그를 멀리하기 시작한 듯한 느낌이 들었다. 쟈크리느는 르네와 같이 있어도 연인 같은 태도는 보이지 않았었다. 쟈크리느는 차가운 시선으로 르네를 바라보고 미소를 보낼 때도 얼굴 근육만 움찔할 뿐이지 시선에는 온기가 없었던 것이다.
O에게 몸을 내맡기듯 르네에게 몸을 허락해도 ㅡ 그것은 언제든지 가능한 일이다. ㅡ 그 행위는 쟈크리느에게 그다지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게 아니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한편 르네는 쟈크리느에 대해 눈이 어두워져서 원인을 알 수 없는 불안을 느끼고, 모든 일에 확신을 갖지 못했고, 상대의 얼굴색만 살피게 되는 사랑의 수렁에 빠지게 된 것 같았다.
르네는 스테판 경과 O와 같은 집안에서 생활하고, 잠자고, 점심을 먹고, 저녁을 먹고, O와 스테판 경과 함께 외출이나 산책을 하고,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하지만 르네는 스테판 경이나 O를 바라보려고도 하지 않았고 말을 들으려고도 하지 않았다. 르네는 그들을 지나쳐 앞지르고 허공을 바라보고 파도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바람과 대화를 나누었던 것이다.
꿈 속 에서 자기를 태우지 않고 그냥 출발하려고 하는 전철에 매달리고, 붕괴하는 다리의 난간에 매달리려는 노력과도 비슷한 침묵의 인내로, 흙으로 빛어 구워낸 인형에게 말을 거는 것처럼, 그 황금색 피부 속에 위치하고 있을 쟈크리느의 존재 이유와 쟈크리느의 진실에 도달하려고 노력하고 있었던 것이다.
O는 때가 찾아온 거라고 생각했다.
‘내가 그렇게 두려운 마음으로 고대하고 있던 날, 르네에게 내가지나간 과거의 한 생활의 망령으로 내비치는 날이 드디어 찾아온 거야.
하지만 내 몸 안에서 슬픔조차 남아있지 않아 라고 그저 연민밖에 그에게 느낄 수가 없어. 그가 이젠 나를 요구하지 않는다고 해도 나쁜 마음을 먹거나 고통과 회한을 품지 않고 그의 얼굴을 바라볼 수 있을 거야.
그러나 몇 주 전만 해도 나는 그에게 사랑한다고 하면서 간절한 마음으로 달려가곤 했어. 그건 나의 애정이었을까? 사랑이란 이렇게 허무하고 이렇게 사람을 가볍게 회롱할 수 있는 걸까? 농락당할 값어치조차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나는 지금 지극히 행복한 상태니까. 그럼 내가 그의 품을 떠나 다른 사람에게 안겨 이토록 쉽게 새로운 사랑을 꽃피울 수 있었던 것은 단순히 그가 날 스테판 경에게 양보했다는 사실만으로 충분한 걸까?’
그럼 르네는 스테판 경과 비교했을 때 무엇이란 말일까? 살을 꽤 뚫고 영원한 무게를 느끼게 하는 쇠고리, 죽을 때까지 없앨 수없는 낙인과 대리석 침상 위에 자신을 쓰러뜨리는 주인의 손, 냉혹하고 비정하게 자신이 사랑하는 것을 마음대로 갖고 놀 수 있는 기술을 터득하고 있는 주인의 사랑은, 얼마나 아늑하고 얼마나 고마운 것일까?
그래서 O는, 결국 르네는 사랑을 배우기 위해, 그리고 노예 신분을 달갑게 받아들이는 자신을 스테판 경에게 헌상하기 위해서만 사랑하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자신과 함께 있을 때 그렇게 자유로 왔던 르네가 ㅡ 그리고 그 자유 분방함 속에 자신은 르네를 사랑하고 있었던 것이다. ㅡ 겉으로는 파도 하나 일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좀더 깊은 곳에서 급류가 흐르고 있는 물속에 휩쓸리지 않으려고 조심스럽게 걷고 있는 모습을 보고, O는 쟈크리느에 대한 불같은 증오를 떠올렸던 것이다.
그가 그런 상황을 인식하고 있는 걸까, 아니면 자신이 너무 경솔하게 그것을 얼굴에 드러냈던 것은 아닐까?
어쨌든 O는 한 가지 오류를 범한 것이다. 그날 오후, O와 쟈크리느 두 사람은 나란히 칸느에 있는 미용실에 갔다. 그리고 래제르브 테라스에서 빙수를 먹었다.
해적들이 입는 듯한 판타롱과 검은 아마로 짠 스웨터를 걸친 쟈크리느는 주위의 모든 사물과 어린아이들의 맑은 눈동자까지도 압도해 버릴 정도로 요염하고 화려하고 엄숙한 분위기를 풍겼다. 어떻게 보면 지극히 맑은 것 같으면서도 거만하고 배타적인 냄새가 났다.
쟈크리느가 O에게 말했다. 여기에서 영화감독과 만날 약속이 있는데, 인근 산악 지방에서 행할 야외 촬영에 대해서 의논할 계획이라고 했다.
그 청년은 무엇을 깊이 생각하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에게는 말을 걸어 확인할 필요가 없을 듯싶었다. 그가 쟈크리느를 사랑하고 있다는 것은 어김없는 사실이었다. 쟈크리느를 바라보는 그의 눈이 그것을 증명하고 있었다.
호들갑을 떨 정도로 놀랄 일은 아니다. 문제는 영화감독이 아니라 쟈크리느 쪽이었다. 쟈크리느는 앞뒤로 흔들거리는 커다란 안락의자에 몸을 파묻고 촬영에 들어갈 날짜와 스탭들과의 회합, 영화를 완성시키는 데 필요한 비용을 조달하는 문제 등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는 그의 말을 듣고 있었다.
그는 허물없는 말투로 쟈크리느 에게 말을 걸고, 그녀는 눈을 반쯤 감은 채 고개를 끄덕이거나 가로 저어서 거부나 찬동한다는 뜻을 밝혔다.
O는, 쟈크리느가 거의 감다시피한 눈으로, 그녀가 늘 그러듯이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영화감독의 욕망을 살피고 있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간파할 수 있었다. 하지만 더욱 기괴한 것은 쟈크리느가 동요의 빛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두 손을 힘없이 늘어뜨린 채 미소의 그림자 하나 내보이지 않고 침울한듯한 그 모습은, 지금까지 르네 앞에서 행동했던 쟈크리느의 그 태도가 아니었다.
O는 빙수가 담겨 있던 그릇을 테이블에 내려놓으면서 찰나적인 미소가 쟈크리느의 입술에 떠오르는 것을 보고 시선을 교환했다. 그리고 그때 O는, 쟈크리느가 자기 마음 속을 읽히고 말았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지만 쟈크리느는 그 정도로 당황해 하거나 서둘러 시선을 거두어들이지는 않았다. 오히려 얼굴이 빨개진 것은 O쪽이었다.
"당신, 너무 더운 모양이죠? 다음에 이야기하기로 해요. 얼굴이 흉해지겠어요.”
그렇게 말한 쟈크리느가 다시 미소를 지어보였다. O는, 그 미소가 상대편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면서 얼굴에 나타내는 아주 부드럽고 깊은 정을 담고 있는 것이었기 때문에, 그가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 쟈크리느에게 키스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O의 짐작은 보기좋게 빗나가고 말았다. 그는 너무 젊었기 때문에 꿈쩍도 하지 않고 침묵을 지키고 있는 게 오히려 실례가 된다는 걸 몰랐었던 모양이다. 그는 말없이 일어나 쟈크리느에게 손을 내밀고 이별의 악수를 했다.
“나중에 전화 할께요.”
하고 쟈크리느가 말했다. 그가 다시 헤어지는 것을 아쉬워해 뭐라 말을 꺼내려고 할 때 이미 쟈크리느는 등을 돌리고 있었다.
뜨거운 태양열이 내리쏟아지는 인도 위에 그를 놔두고 시커먼 뷰익이 시원스럽게 달려 나갔다. 뒤돌아 본 O의 눈에 멍하니 뷰익을 바라보고 있는 영화감독의 모습이 들어왔다. 종려나무 숲은 금속판에서 도려내기라도 한 것 같이 보이고 통행인들은 신기한 기계장치로 조종되고 있는, 추하게 녹아내린 밀랍인형들처럼 보였다.
“그가 마음에 드는 모양이지?”
차가 마을을 빠져 나가 제법 높은 언덕길을 달리고 있을 때 O가물었다.
“그게 너하고 무슨 관계가 있어?”
하고 쟈크리느가 대답했다.
“르네와 관계가 있잖아.”
하고 O가 되받아 말했다.
“만약 내가 잘못 생각한 게 아니라면 르네는 물론이고 스테판 경 하고도 관계가 있을 거야. 다른 사람들도 마찬 가지구. 조금 전에 빙수를 먹으면서 넌 규칙에 벗어난 일을 했어. 스커트를 깔고 앉아서 다 구겨졌어.”
O는 몸이 경직되는 것을 느꼈다.
“그뿐만 아냐, 넌 무릎도 계속 꼬고 있었어.”
하지만 O는 이미 쟈크리느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있었다.
‘쟈크리느의 협박이 나와 무슨 관계가 있을까? 혹시 이런 하찮은 실수를 트집 잡아 자신을 일러바치겠다고 협박해서 영화감독과의 일을 르네에게 폭로하지 못하게 하려는 속셈이 아닐까?’
르네에게 일러바쳐야 되겠다는 생각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르네는 쟈크리느가 자기를 속이려 든다거나 자기 손에 미치지 않는 곳에서 멋대로 행동하려 한다면 절대로 그냥 두지 않을 것이다.
만약 자신이 입을 다문다고 하면 그것은 르네의 체면이 손상되는 것을 보기 싫어서 그런 것일 뿐이지, 쟈크리느 이외의 다른 여자 때문에 얼굴이 창백해지거나 그녀를 벌하지 못하는 연약함을 드러내는 것이 보기 싫어서 그러는 게 아니라는 걸 어떻게 쟈크리느 에게 설명해 믿음을 갖게 할 수 있을까?
또 나쁜 소식을 전달해 준 밀고자인 자신에게 르네의 노여움이 쏟아질지도 모르는 두려움 때문이라는 것을, 또 자신은 기브 앤드테이크의 거래를 쟈크리느와 체결할 생각은 손톱만큼도 없고 그저 침묵만 지키고 싶다는 뜻을 어떻게 전달해야 좋은 것일까? 그것은 쟈크리느가, 만약 자기가 입을 벙긋하는 날이면 내 온몸에 소름이 돋아날 정도로 공포가 닥쳐오고 전율에 떨게 될 것이라고 상상하고 있기 때문이다.
별장 정원에 차가 도착했을 때 두 사람은 입을 꾹 다문 채 침묵만을 고집하고 있었다. 쟈크리느는 O를 펴다보지도 않고 정면 화단 가장자리에 있는 하얀 제라늄 줄기 하나를 잡아 뽑았다. O는 쟈크리느의 바로 뒤를 따라가면서 그녀의 손 안에서 짓이겨져 강렬하게 발산하는 램새를 맡을 수 있었다. 쟈크리느는 그렇게 해서자기 겨드랑이에서 풍기고 있는 역겨운 땀냄새를 중화시키려는 생각인 듯했다.
하얀 벽과 붉은 타일 바닥의 방 안에는 르네 혼자 있었다.
“왜 이렇게 늦었어?”
하고 O와 쟈크리느가 방에 들어서자마자 그가 말했다.
“스테판 경이 방에서 당신을 기다리고 있어. 무슨 일이 있는지 기분이 상당히 좋지 않아 보여.”
하고 그가 O를 바라보면서 덧붙였다.
쟈크리느가 갑자기 소리를 내면서 웃기 시작했다. O는 쟈크리느를 보고 얼굴을 붉혔다.
“다른 날을 잡아도 됐을 텐데.”
하고 르네가 말했다. 그는 쟈크리느의 홍소와 O의 곤욕스러운 표정을 보고 둘이 밖에 나가서 즐기고 온 것으로 착각한 듯싶었다.
“그런 게 아녜요. 당신은 모르고 있을 거예요, 르네. 당신과 스테판 경이 지켜보지 않는데서 당신들의 아름다운 노예가 규칙을 마음대로 어기고 있다는 걸. O의 스커트를 보세요, 주름이 많이 생겼죠?”
O는 방 한가운데서 르네와 마주 보고 서 있었다. 뒤돌아보라고 르네가 O에게 말했다. 하지만 O는 꼼짝할 수가 없었다.
“그뿐이 아녜요. O는 또 무릎도 꼬고 있었어요. 그런데도 당신들은 감쪽같이 모르고 있었던 거예요. 또 있어요. O가 다른 남자를 낚으려 했다는 사실이죠.”
“그건 새빨간 거짓말이에요! 남자를 만나고 온 건 쟈크리느 너잖아!”
O가 이렇게 말하며 쟈크리느에게 덤벼들었다. 프네가 쟈크리느를 쥐어뜯으려 하는 O를 제지했다. O는 그의 팔 안에서 발버둥치면서 자신이 힘이 없어 그가 제지하는 대로 따를 수밖에 없다는 것을 깨닫고 다행스럽게 생각했다.
바로 그때 발자국 소리도 내지 않고 스테판 경이 문에 들어섰다. 쟈크리느는 르네가 밀친 대로 소파에 앉았다. 그녀의 조그만 얼굴은 공포와 분노로 잔뜩 일그러진 상태였다. 하지만 O는 르네가 자신을 꿈쩍도 하지 못하게 단속하면서도 줄곧 쟈크리느에게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O는 온 몸의 힘을 빼냈다. 그리고 스테판 경의 눈앞에서까지 자신이 죄를 짊어진 여자처럼 상황이 돌아가는데 억누를 수 없는 절망감을 맛보면서 조금 전보다는 목소리를 낮추어 다시 입을 열었다.
“그건 진실이 아녜요. 전부 꾸며낸 말이에요. 맹세할 수 있어요.”
그러자 스테판 경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또 쟈크리느한테는 시선 한 번 돌리지 않고, 르네에게 O를 놔주라고 한 뒤 O에게 따라오라는 손짓을 했다.
문을 넘어서자마자 O는 스테판 경에게 벽으로 떠밀려 아래와 유방을 침범당하고 그의 입으로 입술이 눌리는 바람에 갑작스레 찾아온 행복감과 해방감에 어쩔 줄을 몰랐다.
스테판 경이 한쪽 손으로 O의 아래를 너무 억세게 거머쥐었기 때문에 O는 정신이 아득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그가 자신을 마음대로 농락할 때 구사하는 자유, 자신의 육신에게 쾌락을 이끌어내기 위해 어떤 것도 용납하지 않는, 조금도 부끄러워하지 않는 확신, 그것을 알 때의 행복에 비교하면 어떠한 쾌락도, 어떠한 환희도, 어떤 상상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그에게 고백할 용기가 있을까?
그가 자신의 몸뚱아리에 닿고, 설령 그것이 자신을 애무하는 것이든 학대하는 것이든, 무언가를 자신에게 명령하는 것은 틀림없이 그가 그것을 욕심내고 있다는 뜻이다. 스테판 경은 자기 자신의 욕망 밖에 생각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그 증거를 잡을 때마다, 또 단순히 그런 사실을 머릿속에 떠올리는 것만으로, 불타는 갑옷을 머리에서 발끝까지 뒤집어쓰고 있는 듯한 행복감을 만끽 할 수 있는 것이다.
O가 눈을 감고 등을 벽에 대고 서서 숨을 헐떡이면서도 어렵게, ‘당신을 사랑해요.’ 라고 중얼거리자 스테판 경의 두 손이 더욱 격렬하게 몸을 불태우기 시작했다. 이윽고 그는 O의 스커트를 무릎위로 내려 주고 가슴의 두 봉오리 위에 볼레로를 덮어준 뒤 살짝 O의 몸에서 떨어졌다. 그리고는 말했다.
“따라오시오, O. 할 일이 있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