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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M] O의 이야기 - 3장 4편 <원제:Story of 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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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324 회 작성일 24-01-09 03:1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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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 후, 안느마리는 O의 하체 잎사귀에서 실밥을 빼고 견본쇠고리를 끼웠다. 그것은 보기보다도 훨씬 무거워 아래로 늘어졌다. 깨물어도 이빨 자국이 남지 않을 정도로 단단한 금속이 살 속에 파고든 모습을 보고 O는 고문 도구와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여기에 쇠고리 두 개가 더 달리면 어떻게 될까? 이 야만스러운 장치는 한번 눈으로 직접 보면 확연히 그 실상을 깨달을 수 있었다.


“물론, 너는 스테판 경이 무엇을 요구하고 있는지 잘 알고 있겠지? 누구든지, 로와시 에서든 다른 장소에서든, 또 그분이든 다른 사람 이든 거울 앞에 서있는 네 자신이든, 네 스커트를 걷어 올리는 사람이라면 바로 너의 아래에 달린 그 쇠고리를, 또 너의 엉덩이에 각인돼 있는 문장을 볼 수 있을 거야. 그 고리는 줄로 끊어 낼 수 있어도 문장만은 결코 없앨 수 없어.”
 
“나는 문신 정도는 얼마든지 간단히 없앨 수 있다고 생각해요.”


이본느의 하얀 피부에, 그것도 아랫배의 삼각형 위에 수를 놓듯 파란 글씨로 그녀의 주인 이니셜을 넣어준 것도 콜랫트였다.
 
“O에게는 문신이 필요 없어.”
 
하고 안느마리가 말했다.
 
O는 무슨 말인가 하고 안느마리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콜랫트와 이본느는 괜한 말을 했다 싶었는지 입을 꾹 다물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안느마리도 입을 여는 게 망설여지는 모양이었다.


“말씀해 주세요.”


하고 O가 재촉했다.
 
“그래, 얘기해 주지. 꺼내기가 힘든 이야기지만‥‥‥ 너는 쇠로 도장을 찍어야 돼. 스테판 경이 이틀 전에 그 도구를 보내왔어.”
 
“쇠로?”


하고 이본느가 소리를 질렀다.
 
“불에 달군 쇠로 말이에요?”


첫날부터 O는 이 집의 생활에 동참했다. 이곳에서는 부지런할 필요가 없었다. 정해진 스케줄 이외에는 무슨 일이든 할 수 있었다. 여자들은 마음대로 정원을 산책하거나 책을 보고, 그림을 그리고, 카드놀이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여자들은 각자 자기 방에서 잠을 자고 정원에서 알몸으로 나뒹굴고 마음껏 일광욕을 할 수도 있었다. 이따금 모두, 아니면 두 사람씩 한 자리에 모여 하루 종일 잡담을 하거나, 안느마리의 발 밑에 앉아 하는 일 없이 시간을 때울 때도 있었다.


식사 시간은 늘 어금지금 했다. 저녁은 촛불 밑에서 하고 차는 정원에서 마셨다. 그리고 의식용 식탁에 둘러앉아 있는 여자들의 시중을 들어주는 두 하인의 자연스러운 행동거지에는 어딘지 모르게 우스꽝스러운 게 있었다.


밤이 되면 안느마리는 여자들 중 한 명을 자기와 같이 자도록 지명했는데 어떤 때는 한 사람이 며칠씩 계속될 때도 있었다. 안느마리의 방에 지명돼 들어온 여자를 그녀가 애무하고, 또 상대에게 자기를 애무하도록 해 날이 밝을 때까지 신음이 그치지 않을 때도 많았다. 그런 다음 지명돼 들어온 여자를 돌려보내고 다시 잠을 청하는 것이다.


반 정도 젖혀 있는 보라색 커텐이 새벽 햇살을 받아 파란색으로 염색돼 있었다. 이본느는, 안느마리가 환락에 빠져 있을 때도 결코 피로를 모르고, 집요하게 요구할 때도 변함없이 아름답다는 이야기를 들려 주었다.


여자들 중 어느 누구도 안느마리의 알몸을 보지 못했다고 한다. 안느마리는 하얀 나이트 가운을 걷어 올리든가 말아 올릴 뿐이지 절대로 그것을 벗을 생각은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안느마리가 밤에 창조해 내는 쾌락도, 전날 이루어졌던 각종 선별도 그 이튿날 오후의 결정에는 아무런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항상 제비 뽑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안느마리는 항상 3시가 되면 붉은색이 감도는 너도밤나무 밑으로 번호표가 들어 있는 컵을 갖고 오게 했다. 각자 한 장씩 집어 든다. 그리고 제일 작은 숫자가 적혀 있는 표를 집은 사람이 음악실로 끌려가 O가 첫날 당했던 것처럼 무대 위에 결박되는 것이다.


O는 이 집을 떠날 때까지 그 역할이 면제돼 있었다. 제일 작은 숫자가 적힌 표를 집어 든 사람도 안느마리의 두 손에 쥐어져 있는 공 ㅡ 하나는 하얗고 하나는 까만 것이다. ㅡ 을 지정할 기회가 남아 있었다. 검은 공을 가리키면 그 여자는 채찍질을 면할 수 없고, 하얀 공을 선택하면 그 역을 피할 수 있는 것이다.


안느마리는 한 여자가 제비를 잘못 뽑아 며칠 동안 계속해서 채찍질을 당해도 면제해 주려 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바로 작은 몸집의 이본느가 제비를 잘못 뽑아 나흘을 연속 채찍 세례를 받았었다. 그때 이본느는 울부짖으면서 자신의 정부 이름을 마구 불러댔었다. 가슴과 마찬가지로 파란 정맥이 불거져 나온 이본느의 허벅지는 보기에 안쓰러울 정도였다.


“그런데, 목걸이를 하고 있으면 됐지, 왜 쇠고리를 달고 있는 거야.”


하고 O가 이본느 에게 물어보았다.
 
“이 쇠고리는 나를 속박하고 있는 거야.”
 
이본느의 녹색눈과 세모꼴의 얼굴 모양에서 O는 쟈크리느를 떠올렸다.


‘만약 쟈크리느가 로와시 저택으로 보내진다면? 그러면 쟈크리느도 언젠가 여기에 오게 될 거야. 그리고 저 음악실의 무대 위에 매달려서‥‥‥ 아냐, 그렇게 만들고 싶지 않아. 나는 쟈크리느를 꾀어내기 위한 어떤 행위도 하지 않을 거야. 나는 그저 쟈크리느를 좋아할 뿐이야. 쟈크리느는 채찍을 맞거나 낙인 찍히는 일을 견딜 수 없을 거야.’ 하지만 이본느 에게는 채찍질과 쇠고리가 아주 잘 어울리는 것 같았다. 이본느의 땀과 신음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쾌감을 불러일으키고 즐겁게 만드는 것이다. 그것은 안느마리가 두 차례에 걸쳐서 이본느를 때리도록 O에게 채찍을 내밀었기 때문이다.


난생 처음 채찍을 휘두르는 순간 O의 귀에는 이본느의 숨 넘어가는 듯한 비명만 들려왔다. 하지만 채찍을 두 번째 내리쳤을 ㅡ 이본느가 더욱 큰 소리로 비명을 내질렀을 ㅡ 때 O는 두려울 정도의 쾌감에 휩싸이게 되었다. 그것이 너무도 예리했기 때문에 O는 무의식 중에 유열의 미소가 떠오르는 것을 느꼈다. 그래서 한꺼번에 공격하지 않고 한껏 힘을 다하여 내리치지 않도록 자신의 감정을 억제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이다.


마침내 O는 이본느가 결박 당한 채 무대 위에 있는 동안 그녀 옆을 떠나지 않고 자주 입술을 갖다 댄 것이다. 두 사람이 닮은 데가 많은 탓일까? 적어도 안느마리의 감정은 그것을 증명하고 있었던 것이다. 안느마리의 마음을 빼앗는 것은 O의 침묵일까, O의 순종일까?


O의 상처가 아물자마자 안느마리가 말했다.
 
“너를 채찍질하지 못하는 게 정말 유감이야. 하지만 언제 또다시 여기에 오게 되면‥‥‥ 나는 너를 하루도 거르지 않고 괴롭힐 생각이야.”
 
그래서 매일 음악실에 들어간 여자가 해방된 뒤에, O는 저녁식사 종이 울릴 때까지 계속해서 희생양이 된 것이다. 안느마리는 실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O는 그 두 시간 동안 몸을 벌리고 아래에 무겁게 매달려 있는 쇠고리 이외의 어떤 일도 생각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자신의 예종 상태와 그 예종 상태가 뜻하는 것 이외에는 아무것도‥‥‥‥


어느 날 밤, 크레르가 콜랫트와 함께 정원에서 돌아와 O에게 다가와 쇠고리를 들쳐보았다. 거기에는 아직 아무것도 적혀 있지 않았던 것이다.
 
“로와시 에서는 언제 돌아왔어?”
 
하고 크레르가 물었다.
 
“안느마리가 그곳에서 데리고 나왔어?”


“아냐.”


하고 O가 대답했다.
 
“그럼 너는 아무한테도 소유되지 않은 모양이지?”
 
하고 O가 물었다.
 
“크레르는 내 거야. 네 주인은 내일 아침 올 거야, O. 오늘밤 너는 내 방에 들어와서 자야 돼.”
 
갑자기 나타난 안느마리가 말했다.

짧은 여름 밤이 걷히고 천천히 밝아오기 시작하다가 마침내 새벽 4시경에 아침 빛이 마지막 별을 삼켰다. 두 무릎을 맞대고 자고 있는 O는 무릎 사이에 미끄러져 들어온 안느마리의 손에 의해 꿈 속에서 깨어났다. 하지만 안느마리는 더 이상의 행동은 하지 않았다. 0가 자기를 애무하도록 그냥 깨워놓기만 한 것이다.


안느마리의 두 눈은 간신히 사람의 형상을 알아볼 수 있는 어둠 속에서 반짝이고 있었다. 거의 웨이브가 없고 짧게 커트된 회색이 섞인 검은 머리카락은 추방된 귀족이나 용감한 자유사상가 같은 풍모를 던져주고 있었다.


O는 안느마리의 단단해진 가슴의 융기에 입술을 대고 그녀의 아랫배 쪽으로 손을 내려 보냈다. 안느마리의 몸은 바로 위축되었다. 하지만 그것은 O에 대한 반응이 아니었다. 새벽을 맞이한 안느마리가 빠져드는 쾌락은 익명의, 인격 없는 쾌락이고 O는 그저 그 도구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안느마리의 윤기가 흐르고 젊어진 듯한 얼굴과 헐떡이고 있는 아름다운 입을 크게 칭찬하는 것과 O가 입술과 이로 안느마리를 학대할 때 터져 나오는 신음과는 아무런 상관 관계가 없는 것이다.


안느마리는 O의 머리카락을 움켜쥐고 바싹 자기 몸 쪽으로 끌어당겨, "다시 한 번" 하고 명령할 뿐이었다. O 역시 똑같은 방법으로 쟈크리느를 사랑했다. 쟈크리느를 완전한 무저항 상태로 품속에 껴안고 있었던 것이다.


O는 쟈크리느를 정복했다. 적어도 O는 그렇게 믿고 있었다. 하지만 행동거지가 똑같다고 해서 의미 역시 조건 없이 같을 수는 없는 것이다.


O는 결코 안느마리를 소유하지 못했다. O뿐만 아니라 콜랫트, 이본느, 크레르도 안느마리를 소유할 수 없었다. 안느마리는 자기를 애무하고 있는 여자가 어떤 감정을 갖고 있는가에 대해서는 전혀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 그저 기계적으로 애무의 손길만 강요하다가 혼자서 절정감을 맛보고 자신의 존대함을 느끼는 것이었다.


그런 안느마리가 O에 대해서 부드럽고 친절하게 대하면서 O의 입술과 유방에 키스하고 O를 돌려보내기 전에 거의 한 시간 가까이 O를 껴안은 채 떨어지지 않았던 것이다.


O의 쇠고리를 때어내면서 말했다.
 
“네가 쇠고리를 차지않고 자는 것은 이번이 마지막이야. 곧 차게 될 쇠고리는 두 번 다시 때어낼 수가 없어.”


안느마리는 오랫동안 부드럽게 O의 허리를 감싸고 있었다. 그리고 자기가 사용하는 탈의실로 O를 데리고 갔다. 이 방은 이 집에서 삼면경이 있는 유일한 방이었다. 안느마리가 O스스로 모습을 비추어 볼 수 있도록, 평상시에는 닫아두고 있는 그 삼면경을 열어 주었다.


“상처 없는 네 육신을 마지막으로 보도록 해. 바로 여기, 매끄럽게 풍성한 이곳에 스테판 경의 이니셜을 넣는 거야. 엉덩이 위에 말이야. 네가 여기를 떠나기 전에 다시 한 번 이 거울 앞에 데리고 와서 보여 줄게. 따라서 지금 이 모습은 이게 마지막이야. 그럼 잠을 푹 자두도록 해, O.”
 
하지만 O는 점점 육박해 오는 불안 때문에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10시에 이본느가 O를 데리러 왔을 때 ㅡ O는 샤워하고 머리를 손질하고 화장하는 데 안느마리의 도움을 받아야만 했다. ㅡ 떨려 오는 손발을 진정시킬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바깥 세상과 연결된 문이 열리는 소리를 들었기 때문이다.


스테판 경이 거기에 있었다.
 
“자, 어서 가봐, O.”
 
하고 이본느가 말했다.
 
이미 태양은 머리 위에 와 있었고 너도밤나무의 잎사귀들은 바람이 없는 탓인지 별로 움직이지도 않았다. 무더위에 지친 개가 그 나무 밑 그늘에 엎드려 눈을 감고 있었다.


스테판 경은 대리석으로 만든 원탁 옆에 계속 서 있었고 O를 스테판 경 앞에 데리고 왔을 때 안느마리가 말했다.


“네 주인이 기다리고 있어.”
 
스테판 경은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고 O를 껴안고 입술에 키스하고 가볍게 안아 들어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그대로 O 위에서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리고 나서 다시 키스하고 눈썹과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어루만진 뒤 상체를 일으켜 안느마리에게 말했다.
 
“가능하다면 지금 바로 시작하죠.”


안느마리는 집 안에서 갖고 온 작은 상자를 열고 O의 이름과 스테판 경의 이름이 각인된 메달과 쇠고리를 따로따로 스테판 경에게 내밀었다.
 
“좋습니다.”


라고 스테판 경이 말했다.


이본느가 O의 두 무릎을 들어올렸다. 그리고 O는 안느마리가 살 속에 삽입하는 차가운 금속의 감촉을 느꼈다. 쇠고리에 메달을 끼워 넣을 때 안느마리는 검정과 금색으로 상감된 면이 엉덩이 쪽으로, 그리고 문자가 각인된 쪽이 허벅지 안쪽을 향하도록 했다.


그런데 용수철이 너무 빡빡했기 때문에 이본느가 망치질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O를 일으켜서 두 다리를 벌리게 한 뒤 대리석 원탁을 받침 삼아 용수철을 두들겨 빈틈없이 들어맞도록 했다.


스테판 경은 그런 과정을 아무 말 없이 바라보고만 있었다. 일이 끝났을 때, 그는 안느마리에게 수고했다는 말을 하고 O가 일어서는 것을 도와주었다. O는 그때 새로 몸에 단 쇠고리가 며칠 전부터 임시로 달고 있었던 것보다 훨씬 더 무겁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지만 이것은 절대로 때어낼 수 없는 쇠고리인 것이다.
 
“다음은 낙인이에요.”


하고 안느마리가 스테판 경에게 말했다.


스테판 경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여 알았다는 뜻을 표하고 비슬거리는 O의 몸통을 부둥켜안고 지탱해 주었다. O는 검은 코르셋을 착용하고 있지는 않았지만 허리가 만족할 정도로 가늘어졌기 때문에 당장이라고 뚝 하고 꺾일 것만 같았다. O의 엉덩이는 더욱 살이 불어 가슴보다도 더 풍만해 보였다.
 
안느마리와 이본느의 뒤를 따라서 음악실에 들어간 스테판 경이 O를 데리고 들어왔다는 표현보다는 오히려 안고 들어 왔다는 게 어울릴 것만 같았다. 클랫트와 크레르는 무대 아래쪽에 앉아있었다. 그 두 여자는 일행이 음악실에 들어서자마자 일어섰다.


무대 위에는 커다란 풍로가 하나 있었다. 안느마리가 옷장에서 혁대를 꺼내 O의 허리와 오금을 묶고 기둥 하나에 동여맨 뒤 단단히 결박했다. 이어서 손과 발도 묶었다.


간이 콩알 만해진 O는 무엇이 어떻게 돌아가는 것인지 정신을 못 차릴 것 같으면서도 안느마리의 손이 자신의 엉덩이에 와 닿는 것은 느낄 수 있었다. 바로 그곳에 불에 달군 인두가 닿는 것이리라.
 
숨막히는 침묵 속에서 O는 화염의 신음을, 그리고 덧문과 창문이 닫히는 소리를 들었다. O는 뒤돌아볼 수도 직접 눈으로 확인 할 수도 없었다. 뭣보다도 용기가 없었던 것이다.


순간적으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지금까지 한 번도 겪어보지 못했던 고통이 O의 온몸을 휩쓸고 비명을 쥐어짜냈다. O는 결박 당한 채 몸을 뒤로 비틀었다.


누가 자기 엉덩이 살에 인두를 갖다 댄 것인지, 누가 소리를 내어 다섯까지 센 것인지, 누구의 신호로 그 인두가 살을 태우고 몸에서 떨어진 것인지 O는 전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결박에서 풀려났을 때 O는 안느마리의 품속에 있었다. 그리고 주위의 모든 것이 암흑 속으로 가라앉기 전에, 의식이 사라지기 전에 O는 스테판 경의 창백한 얼굴을 희미하게 본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스테판 경은 7월을 열흘 남겨 놓고 O를 파리로 데리고 돌아왔다. O의 아래에 달려 있는, 자신이 스테판 경의 소유물이라는 걸 뜻하는 문자를 각인한 쇠고리는 한 발 한 발 옮길 때마다 흔들거렸고, 각인된 메달은 쇠고리보다도 더 크고 무거웠다.


인두로 살을 태워서 만든 낙인은 세로가 세 손가락 정도의 폭이고 가로는 그 반쯤, 깊이는 약 1센치 정도였다. 손가락을 살짝 갖다 대기만 해도 문자를 판독할 수 있었다.


O는 그 쇠고리와 낙인에 이상한 자부심 같은 것을 느끼게 되었다. 쟈크리느를 만약 만나게 된다고 해도, 아파트를 떠나 안느마리한데 가기 전에 스테판 경에게 말채찍으로 얻어맞은 자국을 감추려고 하지 않고 자랑스럽게 내보이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것처럼, 숨기고 싶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하지만 쟈크리느는 일주일 후에야 돌아올 것이다. 지금은 르네도 없다. 이 일주일 동안 O는 스테판 경의 요구로 특수한 구조의 외출복과 아주 얇은 천으로 된 야회복을 만들었다. 스테판 경은 O에게 그 두 가지 옷만 입으라고 지시했다.


그 중 하나는 아래위를 지퍼로 채우게 돼 있는 것 ㅡ O는 그전부터 비슷한 것을 갖고 있었다. ㅡ 이고, 다른 하나는 단번에 벌어지는 부채 모양으로 생긴 스커트로 볼레로와 같이 입게 돼 있었다. 어깨와 유방을 드러내는 것은 볼레로를 벗는 것만으로 충분했고, 또 만약 유방을 보고 싶다는 욕심이 생기면 볼레로를 벗지 않고 앞을 벌리기만 해도 됐다.


수영복은 한 마디로 이야기해서 필요 없었다. 아랫배의 쇠고리가 수영복 밖으로 불거져 나오기 때문이다.


“올 여름에 수영하고 싶으면 알몸으로 해.”


하고 스테판 경이 말했다. 숏 팬츠도 마찬가지였다.
 
안느마리가 ㅡ 그녀는 스테판 경이 O에게 어떤 취미를 갖고 있는가를 알고 있었기 때문에 ㅡ 양쪽에 지퍼가 달려 있고 엉덩이 쪽만 내리면 일을 치를 수 있는 슬랙스를 제안했었다. 하지만 스테판 경은 그리 달가워하지 않는 눈치였다. 스테판 경은 소년들처럼 항상 O의 몸을 집요하게 헤집으려 했던 것이다.


O의 몸을 탐하지 않을 때도 옆에 있기만 하면, 기계적으로 O의 아래를 만지작거리고 풍성한 덤불을 거머쥐고 잡아당겨 몸을 벌리고, 손을 집요하게 놀려 습해지는 것을 확인한 뒤에야 동작을 멈추곤 했다. 마찬가지로 O 역시 쟈크리느 에게 그런 행위를 해서 쾌락을 얻어 냈었기 때문에 스테판 경의 행동을 이해할 수 있었던 것이다. 또 그가 거추장스러운 복장을 싫어하는 이유도 잘 알고 있었다.


회색과 하얀색이 물방울 무늬로 어우러져 있는 옷과 플리츠 스커트를 즐겨 입는 O는 아주 영리한 소녀처럼 보였다. 스테판 경과 함께 길거리를 걸어 다니면 사람들은 O를 스테판 경의 딸이나 조카쯤으로 생각하곤 했다. 스테판 경이 O에게 허물없이 대하고, 또 O는 존경하는 마음이 흥건히 담긴 눈길로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밖에 수 없었던 것이다.


두 사람이 시내에 나가 거리를 거닐고 상점을 기웃거리고 비가오지 않아 흙먼지가 날리는 강변을 산책하고 있을 때, 마주치는 사람들이 행복한 사람들에게 보내는 부드럽고 다정한 미소를 자신들에게 선사하고 있다는 것을 조금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스테판 경은 들어가는 입구가 약간 음습하고 지하실 냄새가 풍기고 있는 건물의 아케이트 아래로 O를 데리고 들어가 키스하고 사랑한다는 말을 늘어놓곤 했다.


O는 아케이트 정문 옆에 안쪽으로 통하는 문 아래에 있는 계단 사이에 하이힐 굽이 빠져 애를 먹었던 적도 있었다. 거기에서 창문 밖에 속옷을 말리고 있는 안마당이 들여다보였다. 발코니에 팔꿈치를 괴고 있던 금발의 여자가 자신들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고양이가 기지개를 켜고 느릿한 걸음으로 안쪽으로 들어갔다.


두 사람은 그런 식으로 국영 고블랑직 공장과 성마르셀 기념당, 무프탈르 거리, 기사단본부 유적, 바스티유 감옥 등을 돌아다녔다. 한번은 스테판 경이 갑자기 O를 초라한 러브호텔로 끌고 들어간 적이 있었다. 그 호텔 주인은 먼저 숙박부에 이름을 기입해 줄 것을 요구하면서 한 시간을 초과할 수 없다고 했다. 방 안의 벽지는 꽃이 그려져 있는 파란색이고 창문은 지독한 냄새가 피어 오르는 우물 쪽으로 나 있었다. 침대 머리맡에 있는 스탠드 불빛은 아주 희미했고 침대 바로 위 천장에는 커다란 거울이 붙어 있어 모든 모습과 동작과 표정을 적나라하게 비추고 있었다.


딱 한 번 스테판 경은 O와 함께 파리에 머물고 있는 두 영국인을 점심에 초대한 적이 있었다. 스테판 경은 O를 자기 아파트로 바로 부르지 않고 나가려던 시각 한 시간 전에 데리러 왔다. 샤워는 끝내기는 했지만 머리도 매만지지 못하고 화장도 하지 못하고 옷도 실내복 그대로였었다.


O는 스테판 경의 손에 들려 있는 골프클럽용 백을 보고 깜짝 놀랐다. 그러나 O의 경악은 바로 물거품처럼 사라지고 말았다. 스테판 경이 O에게 그 백을 열라고 지시했다. 그 안에는 가죽으로 만든 채찍이 여러 개 들어 있었다.


조금 굵직한 감이 들면서 빨간색을 띠고 있는 게 둘, 무척 가느다라면서 검은 가죽으로 만들어진 것이 둘, 그리고 다른 것에 비해 길이가 제법 긴 녹색 가죽 끈을 묶은 태형용 채찍이 하나, 자루가 굵은 수렵용 채찍이 하나, 그리고 나머지는 로와시 저택에서 차고 있었던 가죽 팔찌와 끈 종류였다.


O는 그것들을 모두 침대 위에 늘어놓았다. 이제는 무슨 일이 벌어져도 놀라는 일 없이 침착하게 행동할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마음과는 달리 손끝이 떨어지는 걸 느꼈다. 스테판 경이 O를 거칠게 껴안았다.


“O, 당신은 어떤 걸 고를 거요?”
 
하고 스테판 경이 물었다.
 
하지만 O는 입을 벌릴 수가 없었다. O는 자신의 겨드랑이에 식은땀이 흘러내리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어떤 게 마음에 드느냐고 묻지 않소?”


하고 그가 다시 물어보았다.
 
“좋소, 우선 당신의 도움이 필요하오.”


스테판 경은 O에게 못을 가지고 오라고 했다. 그리고 침대 정면에 있는 거울 오른쪽에 못을 박았다. 모든 채찍의 끝에는 고리가 달려 있기 때문에 X자 형태로 걸 수가 있었다. 팔찌와 감겨 있는 로프도 벽에 걸었다. 그렇게 해서 O는 자신의 침대 정면에 자신의 육신을 학대하는 고문 도구 세트를 바라보게 된 것이다.


그것은 너무나 아름다운 장식물이었고 순교자 성녀 카트리느의 그림에 나오는 형차와 집게, 또 수난도 에서 볼 수 있는 망치와 못, 가시 수레, 창 등과 마찬가지로 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쟈크리느가 돌아온다면‥‥‥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쟈크리느 자신의 문제일 뿐이야.’


스테판 경의 질문에 답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나 O는 대답 할 수 가 없었다. 그러자 스테판 경은 직접 수렵용 채찍을 선택했다. 라 페래즈 레스토랑의 3층에 있는 작은 특별실의 벽에는 인물화가 약간 어두운 색조로 묘사돼 있어 꼭 인형극에 등장하는 주인공을 연상시켰다.


O의 오른쪽 옆에는 스테판 경의 친구가, 다른 친구는 왼쪽에 앉아 있고 스테판 경은 맞은편에 앉아있었다. O는 스테판 경의 친구들 가운데 한 사람은 이미 로와시 저택에서 얼굴을 대한 적이 있었지만 다른 한 사람은 전혀 기억이 없었다. 생면 부지의 그 남자는 회색 눈 과 불그레한 머리카락에다 몸집이 아주 큰 편이었고 스물다섯 정도로 보였다.


스테판 경이, 자기가 O를 초대한 이유와 어떤 여자인가를 간결하게 그들에게 설명했다.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O는 우연히 한두 번에 그치는 게 아니라 연속해서 사용하는 스테판 경의 상스러운 말투에 깜짝 놀랐다.


어째서 자신은 창녀도 아닌데 세 남자 앞에서, 그것도 아직 음식 서비스가 끝나지 않아 뻔질나게 웨이터가 드나들고 있는 것을 무시하고 가슴을 열어 젖히고 유방을 드러내는 데 동의한 것일까? 남자들은 유방이 화장돼 있는 것을 알았고 하얀 피부를 가로지르고 있는 두 가닥의 보라색 선이 채찍으로 얻어맞은 자국 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식사는 오래 계속되고 두 영국인은 실컷 먹었다. 커피를 마시고 접시들이 치워지자 스테판 경이 식탁을 한쪽으로 밀어놓고 O의 몸에 어떻게 쇠고리가 달려 있으며 낙인이 어떻게 찍혀 있는가를 친구들에게 보여 주기 위해 O의 스커트를 걷어 올려 보인 뒤 O를 그들의 손에 넘겼다.


로와시 저택에서 얼굴을 대한 적이 있는 남자는 뜸을 들이지 않고 O를 농락했다. 그는 의자에서 일어날 생각도 하지 않고 또 O의 몸에 손가락 하나 데려고도 하지 않고, O에게 자기 앞에 무릎을 꿇고 만족할 때까지 입으로 애무하라고 요구한 것이다. 그 일을 끝내자 그는 O에게 뒷마무리를 시키고 그대로 밖으로 나가 버렸다.


그런데 붉은 머리카락의 청년은 O의 굴종적 태도와 O의 몸뚱어리에 나 있는 상처에서 받은 인상에 깜짝 놀라, O가 예상하고 있던 대로 몸을 가까이 하려 하지 않고 O의 손을 잡은 뒤, 웨이터들의 조롱 섞인 시선을 받으면서 계단을 뛰어 내려가 택시를 불러 호텔에 있는 자기 방으로 데리고 갔다.


그는 밤새도록 미친 듯이 달려들어 O를 상처투성이로 만들 때까지 O의 몸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그만큼 그는 포악하고 세련되지 않았던 것이다. 또 여자를 아래의 숲이 무성한 입만이 아니라 본래의 입으로도 만족할 수 있다는 것을, 즉 조금 전 레스토랑에서 친구의 요구에 벌어진 광경 그대로 ㅡ 그는 그때까지 어느 누구에게도 그런 것을 요구할 용기가 없었던 것이다. ㅡ O에게 자기를 애무 하도록 강요할 수 있다는 갑작스러운 자유에 정신을 잃고 만 것이다.


이튿날 O는 스테판 경의 아파트를 방문해서 ㅡ 그가 O를 부른 것이다. ㅡ 그의 심각한 얼굴 표정과 갑자기 나이 들어 보이는 태도에 깜짝 놀랐다.
 
“에릭이 당신에게 푹 빠진 것 같소, O. 놈이 오늘 아침에 찾아와서 당신을 자유롭게 해달라는 부탁을 한 거요. 그리고 또 당신과 결혼하고 싶다는 뜻도 밝혔소. 에릭은 당신을 구제하고 싶어 하는 거요. 당신이 내게 정말로 순종한다면, 내가 당신을 어떻게 다룰 것인지 잘 알고 있을 줄 아오, O. 만약 당신이 내 소유물이라면 당신은 거절할 자유가 없는 것이오. 하지만 당신도 잘 알고 있다시피, O 당신한테는 나의 소유물이라는 걸 거부할 자유가 항상 보장돼 있소‥‥‥ 놈은 3시에 다시 올 거요.”
 
O의 얼굴에 웃음이 피어났다.


“만약 에릭이 오늘 아침 찾아오지 않았다면 당신은 오늘 오후에 날 어떻게 하실 생각이었어요? 산책을 했을까요? 그럼, 산책하러 나가요. 아니면, 나를 부르지 않을까요? 그럼, 나는 이것으로‥‥‥”
 
“아냐.”


하고 대답한 스테판 경이 말을 계속했다.
 
“나는 틀림없이 당신을 불렀을 거요, O. 하지만 함께 산책하기 위해서가 아니오. 난‥‥‥‥”


“말씀을 계속해 주세요.”


“날 따라 오시오, 그게 오히려 간단한 것 같소.”


스테판 경이 의자에서 일어나 집무실로 통하는 문 반대쪽에 있는 문을 열었다. 그 방은 여자들이 사용하는 듯한 좁은 공간으로 실내장식이 모두 새로 바뀐 것 같았다. 창문에는 검붉은 천이 드리워져 있었고 사모와에 있는 안느마리의 집 음악실처럼 무대도 마련돼 있었다.


“벽과 천장은 클크를 사용해 이중으로 만들었겠군요, 문도 마찬가지고요. 창문도 이중인가요?”
 
하고 O가 물었다.
 
스테판 경이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언제부터 ‥‥‥ ?”


“당신이 돌아오자마자 시작했소.”


“대체, 뭣 때문에?”


“왜, 내가 오늘까지 기다려 왔는지 모르겠소? 그것은 당신이 다른 남자와 어울리는 것을 기다렸기 때문이오. 지금이야말로 내가 당신을 벌할 때요. 나는 지금까지 당신을 벌한 적이 없었소, O.”


“난 당신 한 분밖에 사랑하지 않아요. 그래도 당신이 내리는 벌을 받고 싶어요. 에릭이 왔을 때‥‥ ”


한 시간 후, 두 기둥 사이에 묶여 채찍질을 당해 처참한 모습을 하고 있는 O의 모습을 본 에릭은 얼굴이 새하얗게 변해,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며 그대로 바깥으로 뛰쳐나가 버렸다.


O는, ‘두 번 다시 만날 수는 없을 거야.’ 하고 중얼거렸다. 하지만 O는 9월이 가기 전에 로와시 저택에서 다시 그를 보게 되었다. 거기에서 그는 사흘 연속해서 O의 몸을 탐닉하고 아주 거칠게 학대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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