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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M] O의 이야기 - 3장 2편 <원제:Story of 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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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227 회 작성일 24-01-09 02:58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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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무렵 쟈크리느는 모델 일을 하면서 좀더 안정된, 보다 매력적인 일을 하기 시작했다. 즉 영화에 엑스트라로 나가기 시작한 것이다. 쟈크리느가 그 일에 자부심을 갖고 있는 것인지 아닌지, 또 쟈크리느가 그 일을 유명한 배우가 되기 위한 첫걸음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인지 아닌지를 짐작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쟈크리느는 뛰어나가듯 침대에서 몸을 빼내 서둘러 샤워를 끝내고 화장을 하고 O가 가까스로 끓인 진한 커피를 훌쩍훌쩍 마시고 기계적인 미소를 떠올린 뒤 손끝에 키스를 하고 나갔다.


O는 하얀 가운을 걸치고 푸근한 느낌을 선사하는 온기를 감지했다. 빗질을 하고 얼굴에 습기를 머금게 한 O는 다시 잠자리에 들려는 사람처럼 보였다. 하지만 사실은 그런 게 아니었다. 0에게는 아직 쟈크리느 에게 그 이유를 설명할 용기가 없었던 것이다. 사실은 이런 것이었다. 즉 매일 쟈크리느가, 학생들이 학교에 가고 노동자들이 제각기 자기 직장을 향하는 시각에 브로뉴에 있는 스튜디오로 나가 버리면 그 다음에는 O가 서둘러 옷을 갈아입을 차례였었다.


“당신 아파트에 내 차를 보내겠소. 그 차는 쟈크리느를 브로뉴까지 태워다 준 뒤 당신을 태우러 다시 돌아올 것이오.”


라는 스테판 경의 말이 있을 뒤로는 매일 아침 O는 그의 아파트에 가기로 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때 O가 탄 차가 지나가는 길가의 건물들은 아직 동쪽 면만 그늘을 밀어내고 있었고 마당 안에 있는 나무들이 만들어내는 그림자도 기다랗게 서쪽으로 뻗어 있곤 했다. 또 포와티에 거리에서는 그 시간까지 청소하고 있는 사람들도 여럿 볼 수가 있었다.


흑인과의 피가 섞인 노라가, 첫날밤 스테판 경이 O를 혼자 재우고 눈물을 흘리게 한 그 방으로 O를 안내했다. 그리고 O가 장갑과 핸드백, 옷을 벗어 침대에 올려놓는 것을 기다렸다가 O가 지켜보는 데서 그것들을 자기가 열쇠로 보관하고 있는 옷장에 차곡차곡 집어넣는 것이었다. 그리고 나서 O에게 에나멜 칠이 돼 있는 굽 높은 슬리퍼 ㅡ 그 슬리퍼는 O가 발을 옮길 때마다 달각달각 하는 소리를 냈다. ㅡ 를 내주고, O 앞에 서서 앞문을 열고 스테판 경의 집무실까지 인도한 뒤, O를 들여보내기 위해서 한쪽으로 물러서는 것이었다.


O는 그런 틀에 박힌 준비 과정에 습관을 들이지 못했다. 그뿐만 아니라 자신에게 말 한 마디 건네려 하지 않고, 또 거의 자신을 쳐다보려 하지 않는 그 참을성 많은 가정부 앞에서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는 알몸이 되는 것은 로와시 저택에서 하인들의 시선 속에 자신의 몸뚱어리를 적나라하게 드러냈을 때와 마찬가지로 두렵기만 했던 것이다.


흑백 혼혈인 노라는 펠트 슬리퍼를 신고 수도하는 여자처럼 아무 말 없이 미끄러지듯 걸어 나갔다. 노라의 뒤를 쫓아가는 동안 그녀의 목에 휘감겨 있는 마드리스 천과 그녀가 문을 열 때마다 사기 손잡이를 쥐는, 고목처럼 말라 있는 것 같은 흑갈색의 여윈 손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동시에 O는 가정부 노라가 빚어내는 공포심과는 정반대의 감정에 의해 ㅡ O는 그 모순이 어떻게 생긴 것인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왜, 노라는 스테판 경을 위해서 일을 하는 것일까? 또, 스테판 경은 왜 그 직책을 수행하는 데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노라에게 이 역할을 맡긴 것일까? ㅡ 자신 역시 그녀에 의해 인도되는 다른 여자들처럼 스테판 경의 이용에 도움이 될 만한 여자라는 것을 이 여자가 알고 있을 거라는 식으로, 일종의 우월감 비슷한 것을 품고 있었던 것이다. 왜냐하면 틀림없이 스테판 경이 자신을 사랑하고 있을 것이고, 또 그가 그런 심정을 가정부에게 알려줄 시기가 멀지 않았다는 것을, 또 자신에 대한 사랑과 욕망이 증대함에 따라 그가 좀더 오래, 좀더 여유를 부리고, 좀더 혹독한 요구를 제시하면서 자신과 함께 있으려 한다는 걸 O스스로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오전 내내 그의 아파트에서 그렇게 붙들어 매져 있는 동안 스테판 경은 이따금 O에게 손끝 한 번 대려고 하지 않고 O의 부드러운 손길과 입을 요구할 때가 있었다. 그러면 O는 스테판 경의 그런 요구를 감격스러운 마음 자세로 받아들이고, 그의 요구가 명령을 내리는 듯한 형태를 띠게 되면 그 감격의 도는 더욱 치솟곤 했다.


각자의 자기 포기는 O에게, 또 다른 자기 포기가 자신에게 요구된다는 걸 보증하는 것이고, O는 그 하나하나를 당연한 의무로 이행하고 있었던 것이다.


스테판 경이 밤에 사용하는 황회색 응접실 위에 있는 집무실은 비좁고 천장이 낮은 방이었다. 그곳에는 소파도 쿠션도 없었다. 섭정시대에 사용했음직한 안락의자 두 개가 있을 뿐이었다.


O는 가끔 그 안락의자에 앉곤 했지만 스테판 경은 의자보다 더 가까이, 즉 자기가 팔을 뻗어 닿는 곳에 O가 있는 것을 좋아했기 때문에, 특별한 일이 아니면 ㅡ O에게 손을 대지 않아도 ㅡ 책상 왼쪽 위에 O를 앉혀놓곤 했다.


그 책상은 벽에 직각으로 놓여져 있어 O는 두세 권의 사전과 연 감류가 꽂혀 있는 책꽂이 옆에 걸터앉을 수가 있었다. 전화가 O의 왼쪽 허벅지 가까이 있기 때문에 벨이 울릴 때마다 O는 몸에 진동을 느끼곤 챘다. 그럴 때마다 수화기를 들어 응답하는 것은 전적으로 O의 임무였다.


“누구시라구요?”


하고 높인 목소리로 되뇌어 스테판 경이 전화를 받을 것인가 회피할 것인가를 눈으로는 확인한 후 수화기를 넘기든가 없다고 돌려대는 것이었다.


스테판 경의 아파트를 찾아온 사람이 있을 때에는 노라가 먼저 그런 사실을 알려주면 O는 노라의 꽁무니를 따라 맨 처음 옷을 벗었던 방으로 돌아가서 손님이 일을 끝내고 갈 때까지 기다린다. 그리고 손님이 돌아가면 스테판 경이 벨을 눌러 다시 노라가 열어주는 문을 통해 스테판 경의 방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매일 아침 노라는 스테판 경에게 커피와 우편물을 갖고 들어가거나 창의 덧문을 열어두기 위해서 몇 차례씩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노크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명령을 받고 있는듯했다. 또 뭔가 말하고 싶은 것이 있을 때에도 스테판 경 쪽이 먼저 입을 열어, ‘무슨 일이지?’ 하고 물어볼 때까지 묵묵히 등 뒤에 서있는 것이었다.


언젠가 O가 책상 위에 머리와 두 팔을 밑으로 하고 엉덩이를 위로 치켜든 자세를 취하고 스테판 경의 침입을 기다리고 있을 때 노라가 들어온 적이 있었다. O가 얼굴을 들어 노라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노라는 평상시 같으면 O를 거들떠 보지도 않고 얼굴색이나 동작에 아무런 변화도 일으키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때만은 노라가 O의 시선을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O의 시선과 마주친 노라의 무섭게 빛나는 눈, 무표정하고 감정이 드러나지 않는 노라의 얼굴에서 무섭게 빛나고 있는 그 눈이O에게 관심을 보이고 있는 것인지 아닌지는 정확히 판별할 수 없었지만, 그 눈빛이 O를 당황하게 만든 것만은 부정할 수 없었다.


O는 참다 못 해 스테판 경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려고 몸을 일으켰다. 스테판 경은 순간 모든 상황을 파악했다. 그래서 한쪽 손으로 O의 몸 뚱아리를 책상 위에 짓눌러 옴짝달싹 하지 못하게 하고 다른 손으로 O의 몸을 벌리라고 했다.


언제나 정성을 다해 스테판 경을 받들려 했던 O였지만 그때만은 모든 몸의 부위를 위축시킬 수 있는 대로 위축시켰던 것이다. 따라서 스테판 경은 O를 억누르면서 벌릴 수밖에 없었다. 그가 가까스로 O의 몸을 벌리는 데 성공해 진입에는 성공했지만 완전한 행위를 이루기까지는 평상시 하지 않았던 고초가 따랐다. 그는 아무런 불편 없이 그녀의 몸 안을 왕복할 수 있는 상태가 될 때까지 몸을 떼지 않았다.


그리고 그가 다시 O를 껴안았을 때 스테판 경은 노라에게 나가지 말고 기다리라는 지시를 하고 일을 끝내는 대로 O에게 옷을 입혀도 좋다고 했다. 그리고 O를 내보내기 전에 그는 O의 입술에 가볍게 키스를 했다.
 
O가 며칠 후 큰맘 먹고 스테판 경에게, 노라가 무서워 죽겠다고 이야기했다.
 
“곧 알게 될 거요.”
 
하고 그가 말했다.
 
“뭐를요?”


“멀지 않아 그렇게 되겠지만‥‥‥당신이 내 이니셜과 쇠고리를 몸에 받아들인다면 ㅡ 당신의 승낙이 전제되어야 하겠지만 ㅡ 당신은 지금 이상으로 노라를 무서워하게 된다는 뜻이지.”
 
“왜요? 이니셜이 어떻다고요? 또 쇠고리는 무슨 말이에요? 지금 내 손에 이렇게 쇠 반지가 있는데‥‥‥ ”


하고 궁금해 죽겠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그건 안느마리의 의견을 존중한 거요. 난 당신을 데리고 가겠다는 약속을 그녀한테 했소. 우리들은 점심을 먹은 후에 안느마리의 집에 가야 돼. 물론 당신도 가고 싶어 하겠지. 안느마리는 내 여자 친구의 한 사람이요. 당신도 지금까지 내 친구들을 만나본 적이 없다는 걸 깨닫고 있을 줄 아오. 당신이 정말로 노라를 두려워하게 될 동기를 부여하게 될 것이오.
 
O한테는 항변할 용기가 없었다. 스테판 경이 지금 말한 안느마리라는 여자에게 노라 이상의 호기심이 생기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두 사람이 얼마 전에 세느 강가 레스토랑에서 점심식사를 할 때 스테판 경이 할 이야기가 있다고 했던 것도 바로 이 안느마리라는 여자와 관련된 내용이 아닐까? 또 O가 스데판 경의 친구들 중에 알고 지내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것과 그들 사이의 관계를 짐작조차 하지 못한다는 것은 어김없는 사실이었다. 요컨대 O는 파리 시내에, 마치 나가는 문이 마련돼 있지 않은 집에 유폐되어있기라도 한 것처럼 자신의 비밀 속에 꼼짝없이 갇혀서 지내고 있었던 것이다.


O의 비밀에 관련된 권리를 독점하고 있는 사람, 즉 르네와 스테판 경은 동시에 O의 육신에 대한 권리도 갖고 있었던 것이다. O가 한 남자에게 몸을 벌린다는 것, 즉 몸을 허락한다는 것은 문자 그대로 육체적, 그리고 절대적 의미밖에 지니지 않는 것이다. 왜냐하면 사실 O는 가능한 한 자신의 육체 모든 부위를 활짝 열고 있었기 때문이다. 또 그것이 자신의 존재 이유이고, 르네와 마찬가지로 스테판 경도 자신이 그런 상태를 갈망하고 있다는 식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것은 그가 세느 강가 레스토랑에서 말한 것처럼 자기 친구에 대해서 말할 때 다음과 같이 말했기 때문이다. 즉, 그가 O에게 소개하는 친구들이라고 하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이 그들이 O를 욕심 낼 때마다 아무런 변명 없이 무조건 그들이 요구하는 대로 하지 않으면 안 될 친구들 이라고 하지만 안느마리에 대해서 생각해 보려고 해도, 또 스테판 경이 자신을 위해 안느마리한테서 무엇을 기대하고 있는 것인지를 알아보려고 해도, O는 그것과 관련이 있을 듯한 어떠한 단서나 정보도 갖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또 로와시 에서의 경험도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았기 때문에 어떤 결과도 도출해 낼 수 없었다.


스테판 경은 또 O가 여자를 껴안는 모습을 보고 싶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는데 그 일과 연관된 것일까? ㅡ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쟈크리느와의 관계일 뿐이라고 그가 명언했었는데‥‥‥ ㅡ 아니야, 그런 것은 아냐.


그가 ‘당신을 내보인다.’ 고 말한 그대로였다. 사실 그대로였던 것이다. 하지만 O가 안느마리의 집을 나오고 나서도 그 이상의 것은 알 수 없었다.


안느마리는 기상대 근처에 있는 커다란 공장 같은 아파트에서 살고 있었다. 스테판 경과 엇비슷한 나이로 화사한 옷을 걸치고 있었고 그녀의 까만 머리카락에는 회색 빛이 드문드문 섞여 있었다.


안느마리의 파란 눈은 너무 움푹 들어가 있어 검게 보일 정도였다. 스테판 경과 O를 위해 마실 것을 내놓았는데 그것은 아주 작은 잔에 담긴 진한 커피였다. O는 그 커피를 마시고 나서 원기가 회복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O가 그것을 다 마시고 빈 잔을 작은 테이블 위에 내려놓으려고 안락의자에서 일어나자 안느마리가 O의 손목을 쥐고 스테판 경 쪽으로 몸을 돌려 세운 뒤 입을 열었다.


“괜찮겠죠?”


“물론입니다.”


하고 스테판 경이 말했다.
 
그때까지 안느마리는 O에게 아무 말도 걸지 않았고, 또 스테판경이 O를 자기에게 소개할 때조차 인사말은커녕 미소도 띠우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 안느마리가 부드러운 미소를 흘리면서 입을 연 것이다.


“자아, 이쪽으로 와서 배와 히프를 보여줘. 그래, 옷을 다 벗는게 좋겠지. 그게 편할 거야.”
 
O가 지시대로 따르는 동안 안느마리는 담배를 빨고 있었다. 스데판 경은 O에게서 잠시도 눈을 떼지 않았다. 두 사람 모두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알몸으로 서있는 O를 5분 정도 방치해 두었다. 그 방 안에는 거울이 없었다. O는 자기 자신의 희미한 반영을 윤이 나는 가구를 통해서 확인할 수 있었다.


“두 팔을 올려.”


하고 갑자기 안느마리가 말했다.
 
“네에.”


하고 대답한 O가 팔을 올렸다.
 
양말 대신 사용하면 안돼. 허벅지의 선이 망가지잖아.”


그러면서 안느마리는 손끝으로 O의 무릎 위에 희미하게 생긴 양말 대님자국을 가리켰다.


“누가 당신에게 그런 것을 신으라고 했지?”


O가 미처 대답하기 전에,


그건 O를 양도한 청년입니다. 당신도 그 남자를 알고 있을 텐데요.”


하고 스테판 경이 말했다.
 
“르네 씨를 말씀하시는 거예요?”


“그렇습니다. 그는 당신의 의견을 존중하고 있습니다.”
 
“그래요?”


하고 안느마리가 대답했다.


“O, 당신에게 줄 게 있어.”


안느마리가 벨을 누르자 젊은 금발머리 여자가 아무 말 없이 검고 아주 얇은 긴 양말과, 검은 나일론으로 만들어진 안에 고래 뼈가 들어 있는 코르셋을 갖고 왔다. O는 한쪽 다리로 번갈아 균형을 유지하면서 그 양말을 신었다. 그리고 금발머리 여자가 코르셋을 착용하는 것을 도와주었다. 그것은 로와시 저택에서처럼 끈으로 자유롭게 조이고 풀 수 있게 되어 있었다.


O는 그 코르셋 밑에 달려 있는 네 개의 양말 대님에 양말을 연결해 고정시키고 계속해서 금발머리 젊은 여자가 코르셋의 끈을 조이는 대로 몸을 내맡겼다.
 
“좋은 몸매를 만드는데 아주 효과적일 거예요.”
 
하고 안느마리가 스테판 경을 바라보고 말했다. 그리고 O에게 손짓해서 가까이 오라고 했다. 금발머리 여자는 볼일을 끝내고 방에서 나갔다.


안느마리는 체리 색깔이 도는 우단으로 씌워진, 높지 않은 안락의자에 앉아있었다. 그녀가 유연한 동작으로 손을 내밀어 O의 히프를 어루만졌다. 그리고 O를 안락의자와 나란히 놓여 있는 쿠션에 쓰러뜨려 사지를 벌리고 움직이지 말라고 지시한 후 아랫배에 혀와 손을 갖다 댔다.


‘맞아, 시장에서 물건을 살 때는 그 물건을 자세히 살펴 본 뒤에, 예를 들어 물고기의 아가미나 말의 입술을 조사해 본 다음에 사는 법이야.’


O는 또 로와시 저택에서도 첫날밤 하인 피에르가 자신을 쇠사슬로 꽁꽁 묶고 나서 같은 짓을 했다는 걸 머릿속에 떠올려봤다.


결국 자신은 이미 자신의 소유가 아닌 것이다. 특히 하반신은 더더구나 자신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는 것이 훌륭한 임무를 해내고 있을 뿐이다. 자신은 어째서 그런 사실을 착안할 때마다 놀라기보다는 지극히 당연한 일처럼 받아들이고 있는 것일까?


격렬한 어떤 불안에 의해 몸을 움직이지 못하게 되어도 O 자신이 몸과 마음을 바쳐서 섬기고 있는 상대는, 지금 자신을 농락하고 있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을 생면 부지의 인간이 내미는 손과 혀와 그 기관에 던져버린 남자인 것이다.


로와시 저택에서 다른 남자들의 침과 정액과 땀을 몸 안에 받아들이면서도 자신의 마음은 르네를 향하고 있었다. 그런데 여기에서는 그 마음이 누구에게 향하고 있는 것일까? 르네일까, 아니면 스테판 경일까? 아아! 나도 모르겠다. O는 어느새 알고 싶다는 생각을 포기해 버렸다. 그것은 언제부터인가 자신이 스테판 경의소유물이라는 것이 확실하기 때문이다.


안느마리가 다시 O를 일으켜 세워 옷을 입게 했다.
 
“언제든지 적당할 때 이 여자를 내게 데리고 와도 좋아요.”
 
하고 안느마리가 스테판 경에게 말했다. 계속해서 안느마리가 말했다.
 
“나는 이틀 후에 사모와에 갈 거예요.” (사모와 ㅡ O는 로와시 라는 말을 기대하고 있었던 것이다. 로와시 저택이 아니라면 도대체 어디란 말일까?)
 
“아주 잘될 거예요.” (뭐가 잘된다는 걸까?)
 
“지장 없다면 열흘 후에.”


하고 스테판 경이 말했다.
 
“7월 초순이 되겠군요.”


스테판 경은 안느마리의 집에 그대로 남고 O혼자서 차를 타고나왔다. O는 차 안에서 어렸을 때 룩셈부르 공원에서 본 동상을 머릿속에 떠올렸다. 그것은 가는 허리와 탐스러운 유방이 보기 좋게 조화를 이루어 너무 화사한 인상을 주는 여인상 ㅡ 그 동상의 발 밑에는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인공 연못이 있는데 자신의 모습을 비추어 보려고 몸을 숙이고 있었다. ㅡ 이었다.


스테판 경이 바라는 일이라면. 쟈크리느 일 같으면 르네의 변덕 때문에 잘 안 된다고 스테판 경에게 말하면 쉽게 넘어갈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나서 O는 마음에 걸리는 어떤 찜찜한 생각을 떠올렸으나 자기 스스로 놀라 피하려고 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미 그 불안이 격렬한 성격을 띠지 않고 있다는 것이었다.


쟈크리느가 나타난 이래 르네가 이렇게까지 자신을 쟈크리느와 단둘이 있게 신경을 써주기만 하고 ㅡ 그것은 얼마든지 이해 할수 있는 것이지만 ㅡ 자신과 단 둘이 있게 되는 것을 어색할 정도로 피하려 드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7월이 되면 그의 출장은 잦아질 것이고, 그렇게 되면 스테판 경이 자신을 데리고 가겠다고 약속한 안느마리의 처소로는 만나러 오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O는 벌써, 그가 자신과 쟈크리느를 초대할 마음이 생길 때, 아니면 자신이 스테판 경 아파트에 가 있는 오전 중에 이따금 찾아와서 만날 때를 제외하고는 그를 마주할 수 없게 된 것이다-이 두 가지 일 중에서 어느 것이 성가신 일인가, 이미 자신은 판단할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자신과 르네의 사이는 이렇게 구속돼 있었고 그들 사이에는 본질적으로 허위 관계밖에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스테판 경은 늘 그를 반갑게 맞아들이고 르네는 늘 O에게 키스하고, 젖꼭지를 어루만지고, 그리고 이튿날 있을 스케줄에 대해서 스테판 경과 이야기를 주고받고 그대로 나가버리는 것이다.


‘그는 자신을 스테판 경에게 완전히 양도해 버렸기 때문에 이미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을 잃어버리고 만 것일까? 만약 그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면 앞으로 어떻게 되는 걸까?’


그렇게 생각이 다다르자, O는 문득 놀라는 마음으로 달려오는 차들을 완전히 무시하고 차도를 건너 택시를 잡으려고 했다. 이곳에서 택시잡기는 여간 힘든 게 아니다. O는 상제르만 거리까지 내 달려 가기에서도 한참을 기다려야 했다.


코르셋이 몸통을 옥죄어 자유스러운 호흡을 방해했기 때문에 O는 땀을 비 오듯 흘리면서 헐떡일 수밖에 없었다. 바로 그때 빈 택시 한 대가 저쪽 모퉁이에 토습을 나타냈다. O는 손을 들어 택시를 세운 뒤 올라타고 르네의 사무실이 있는 데를 알려주었다. 하지만 그가 지금 사무실에 있는지 없는지, 또 있다고 해도 앞으로의 스케줄이 어떻게 되는지, 자신을 반겨줄 것인지 홀대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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