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M] O의 이야기 - 2장 후편 <원제:Story of 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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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튿날 정오 조금 못 미쳐 스테판 경의 운전수가 O를 데려다 주었다. 10시에 눈을 떴을 때 어떤 노파가 커피를 갖고 와서 목욕물을 받아주고 옷을 갖다 주었다.
O가 코트를 걸치자 그 노파가 스테판 경이 남겨 놓은 편지를 내밀었다. 그 봉투에는 그의 이니셜만 적혀 있었다. 그리고 편지지에는 단두 줄, ‘르네한테서 당신을 6시에 스튜디오로 데리러 가겠다는 전화가 있었소.’라고 씌어 있었고 S라는 서명에 이어서 다시 ‘다음에는 채찍이 당신을 위로해 줄 것이오.’라는 내용이 덧붙여 있었다.
O는 주위를 살펴보았다. 어젯밤 르네와 스테판 경이 앉아있었던 안락의자 옆 테이블 위에 가느다란 채찍이 하나 놓여 있었다. 노파가 현관 앞에서 O를 기다리고 있었다. O는 편지를 핸드백 안에 집어넣고 아파트를 나섰다.
르네는 스테판 경에게 전화를 걸면서 0에게는 해주지 않았다. 아파트로 돌아가 옷을 벗고 점심을 먹은 뒤 실내복을 입었다. O는 다시 평상시 하던 그대로· 얼굴과 머리를 손질하고 3시까지 얼굴을 내밀어야만 하는 스튜디오로 가기 위해 옷을 바꾸어 입었다.
전화가 울리지 않았다. 르네는 전화를 해주지 않았다. 왜? 스테판 경은 그에게 뭐라고 했을까? 그들은 자신에 대해서 어떤 말을 주고받았을까? O는 그 두 사람이 자신의 눈앞에서 그들의 요구가 당연하다는 듯 자신의 육체 이용방법에 대해서 논의하고 있었을 때의 말을 떠올렸다. O의 귀에 익숙하지 않은 영어는 제쳐두고라도 가슴을 파고드는 프랑스어 단어는 야비하기 짝이 없는 것 들이었다.
자신의 매음굴의 창녀들처럼 많은 남자들의 배 밑에 눌렸던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기 때문에 그런 대화의 주인공으로 떠올려도 변명의 여지가 없는 것일까?
“사랑해요, 르네. 사랑해요.”
하고 O는 몇 번씩 그의 이름을 부르면서 되 뇌었다.
“당신 좋은 대로 해주세요. 하지만 날 버리지는 마세요. 제발 부탁이에요, 날 버리지 말아줘요.”
O는 블라우스와 빨간 실크 패티코트 위에 스코틀랜드풍 스커트와 사슴가죽으로 만든 짧은 자켓을 입고 나갔다. 반쯤 열려 있는 자켓 안의 빨간 블라우스가 창백한 얼굴을 더욱 두드러지게 했다. 그래서인지 어떤 모델이 꼭 애기를 가진 사람 같다고 했다. O는 ‘누구의 애를‥‥‥?’하고 마음 속을 중얼거려 보았다.
르네를 만나기 직전인 2년 전이라면 ‘스테판 경의 애를 가졌어.’하고 확실하게 밝힐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르네를 사랑하는 자신의 애정과 자신을 사랑하는 르네의 애정이 모든 무기를 강탈해 간 것이다. 그리고 새로운 힘의 증거를 자신에게 가져다 주는 대신에 그때까지 자신이 갖고 있던 힘의 증거를 거두어 가버린 것이다.
O는 오히려 냉담하게 다른 남자들을 머릿속에 떠올렸다. 자신에게 연정을 품고 있는 청년에게 의미심장한 자태를 내보여 그 반응을 살피면서 즐거워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무엇 하나 주려 고는 하지 않았다. O는 그 남자들이 자신을 사랑하고 있다는 확신을 갖고 있었다.
그 중 한 사람은 자살까지 기도할 정도로 아주 정열적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 남자가 병원에서 원기를 회복했을 때 O는 그를 찾아가서 옷을 벗고는 자신의 몸에 손을 대어서는 안된 다면서 앉아있던 소파에 가로누웠다. 열정과 고통 때문에 창백해진 그 남자는 O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가시에 못 박힌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두 시간 동안 0를 바라보고만 있었다. O는 두 번 다시 그 남자를 만나지 않았다.
O는 결코 자신의 가슴을 불 지르는 욕망을 경시하는 행동을 하지는 않았다. O는 자신의 여자친구들과 미지의 젊은 여자들에 대해서도 비슷한 정욕을 품었던 경험이 있었던 만큼 그런 것을 이해하고 있었다. 아니면 여자들은 O의 진영에 투항했다. 그래서 O는 그 여자들을 빈약하기 짝이 없는 싸구려 호텔 ㅡ 복도는 좁아 터졌고 옆방의 소리가 그대로 벽을 뚫고 들려오는 ㅡ 에 데리고 갔다. 그러나 다른 여자들은 두려움을 느끼고 O를 거부했다.
O가 욕정에 그 바탕을 두고 있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것과 정복취미는 하등의 다를 게 없었다. 따라서, 못된 짓거리를 일삼는 O의 행동, 자신이 여러 명의 애인을 갖고 있다는 사실, 그녀의 냉혹함, 그리고 O의 용기를 포함한 모든 것은 O가 르네를 만났을 때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던 것이다.
일주일 동안 두려우면서도 자신감이 생기는, 괴로우면서도 행복한 기분에 휩싸였었다. 르네는 마치 포로를 대하는 해적처럼 O에게 덤벼들었다. 그래서 O는 황홀한 쾌감에 빠져들어 포로의 신세가 되었다. 게다가 그의 손목과 그의 복사뼈, 그의 사지, 또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가장 신비스러운 부분에서 르네가 한 번 바라보는 것만으로 한껏 조였다 풀려 버리고, 섬세한 어떤 머리카락보다도 고 성분을 파악하기 힘들고, 난쟁이들이 걸리버를 묶은 밧줄보다 더 강력한 고삐를 느꼈던 것이다.
이제 자신은 자유가 없는 것일까? 아! 고맙게도 이미 자신은 자유를 박탈당하고 만 것이다. 하지만 O는 홀가분해졌다. 마치 구름에 올라탄 여신마냥, 물 속에 뛰어든 고기마냥 행복감에 휩싸여 죽을지경이었다.
르네의 한쪽 손에 쥐어져 있는 가느다란 실과 밧줄이 그것을 통해서 자신의 내부에 생명의 흐름이 돌아다니는 유일한 활력 조직이 되었기 때문이다. 정말 그대로였다. 따라서 르네가 O의 고삐를 늦추었을 때 ㅡ 또는 자신이 그렇게 느꼈을 때 ㅡ그가 자리에 없다고 느꼈을 때, 아니면 자신의 생각에 그가 무관심하다고 느껴질 정도로 서먹서먹하게 대할 때, 아니면 그가 자기와 대면을 회피하든가 자신의 편지에 답장을 주지 않을 때, O는 숨이 막혀오는 것을 느끼곤 했었다.
푸른 들판이 암흑으로 변하고, 따뜻한 햇살이 이미 그 온화함을 포기해 버리고, 밤은 밤이 아니었다. 신선한 물도 그녀에게 구토를 재촉했다. O는 자신이 고모라 ㅡ 야훼의 노여움을 산 소돔과 더불어 음란한 죄로 망했다는 곳으로 지금의 사해를 이른다. ㅡ 의 소금 기둥처럼 저주받고 무익하고 떨떠름한 형상이라도 된 듯한 느낌을 받았던 것이다. 왜냐하면 그녀가 죄 많은 여인이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로서, 깜깜한 어둠 속에서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긴 자들은 모두 죄인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버림받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추억 속에서 자신들의 과오를 찾으러 다녔다. O도 자신의 추억 속에서 자신의 죄를 더듬었다. 하지만 O는 르네 이외의 남자들에 의해서 일깨워진 욕정에 대해서는 하찮은 자기만족 ㅡ 그것은 O의 행위라기보다는 차라리 O의 성벽에 가까웠다. ㅡ 밖에 찾아내지 못했다.
O는 르네의 애정이 자신에게 가져다 주는 행복감, 즉 자신은 르네의 소유물이라는 안도감이 가슴을 충족시키는 한 그에게 주의를 기울이려고 하지 않았다. 르네와 한 몸이 된다고 하는 안도감에 빠져 그 행복감이 자신을 상처에서 보호하고, 책임을 면해 주고, 어떤 행위에서도 아무런 결과를 찾아내지 못한 것이다. 그런데 어떤 행위 였을까? O는 관념의 세계밖에, 아니면 순간적으로 유혹하려는 마음밖에 자신을 책망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O에게 죄가 있다고 하면, 르네가 O 자신도 모르는 O의 죄 ㅡ 그 죄가 겉으로 완전히 드러나지 않았다면 ㅡ 를 벌하려고 덤빌 것은 자명했다.
하지만 스테판 경은 O를 대하자마자 그것을 간파한 것이다. 즉 O의 마음 속에 있는 바람기를 죄로 여겼다. O는 르네가 자신에게 채찍질을 가하고 거리의 여자를 대하듯 취급한 데 행복감을 느끼고 있었다. O의 필사적인 복종은 애인에게 자신의 소유물 이라는 증거를 제공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또 O는 채찍질의 고통과 치욕, 자신을 한 것 농락하면서 자신의 쾌락에는 철저히 무관심하고 그들이 자행하는 능욕, 그런 것들이 자신의 죄를 씻어주기라도 하는 양 생각했다. 갖가지 행위가 있었다.
O에게는 정말이지 추접스럽게 생각된 강요, 자신의 유방을 학대하는 참기 어려운 손, 자신의 입술과 혀를 허덕이게 한 많은 입들, 그리고 이를 악문 자신의 입과 한껏 옥죄인 배와 허리를 짐승처럼 애무한 남자들의 혀와 정욕의 증거는 반항심으로 자신의 몸을 경직시켰다. 그 저항이 너무 길었기 때문에 온순해지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채찍이 등장할 정도였다. 하지만 결국은 체념과 꺼림칙한 노예근성에 의해 몸을 열었던 것이다.
그럼 스테판 경은 정당했던 것일까? O의 타락은 O 자신에게 즐거웠던 일이었을까? 그렇다고 하면 르네는 자신을 스테판 경의쾌락 도구로 양도하는 데 동의함으로써 자신의 타락 정도를 더욱 깊어지게 하는 관대한 행위를 자행했다는 뜻이 될 것이다.
O는 어렸을 때 웨일즈에 두 달 가량 머물렀던 적이 있었는데, 그때 자신이 체재하고 있던 방의 하얀 벽에 씌어진 ‘살아있는 신의손아귀에 빠지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라는 구절이 생각났다. 하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뭔가 잘못된 말 같았다. 그것은 진실이 아니다. 두려워할 일은 살아있는 신에게서 버림을 받는 일이다.
오늘처럼 약속한 시간에 르네가 늦을 때마다. ㅡ 6시에 약속을 했는데 6시 반이 되도록 나타나지 않았다.ㅡ O는 광란과 절망 상태에 빠져 어쩔 줄을 모르는 것이다. 정신적 피로 탓일까?
‘르네는 틀림없이 올 거야. 그는 나를 사랑하고 있어 회의나 바쁜 업무 때문에 늦는 걸 거야. 그는 미리 연락할 틈조차 없었던 게 틀림 없어.’ 그렇게 생각하자 O는 질식할 것 같은 가스실에서 튀어나와 맑은 공기를 한껏 들이마시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이따금 느끼게 되는 공포의 발작이 가슴 속에 희미한 암흑의 예감을, 불행의 예고를 남기는 것이다.
르네는 연락하는 걸 잊어버린 거야, 골프 연습이나 브리지, 아니면 다른 일로 지체되고 있는 걸 거야, 나를 사랑하고 있다고 해도 그는 자유의 몸이다. 날 신뢰하고 있다고 해도 그는 변덕이 심한 사람이다. 어느 날 갑자기 죽음과 잿더미의 날이 찾아와서 이런 망상이 사실로 재현돼 가스실 문이 두 번 다시 열리지 않게 된다면? 아아! 기적이 언제까지고 이어지도록! O는 오늘, 내일, 모레, 다음주, 하고 앞을 내다보기를 거부했다. 따라서 르네와 함께 지내는 밤은 자신의 영원한 하룻밤인 셈이다.
르네는 7시가 다 돼서 모습을 나타냈다. 그의 요란스러운 언동에 조명등을 고치고 있던 전기기사와 화장실에 갔었던 빨간 머리모델이 기웃거렸다. 그리고 쟈크리느가 지켜보고 있는데 르네가 O에게 키스를 했다.
“질투 때문에 견딜 수가 없는데 마침 지나가는 길에 요전에 찍은 사진을 부탁하러 왔어. 하지만 다음에 얘기해도 돼.”
하고 쟈크리느가 O에게 말했다.
“아가씨, 제발 부탁입니다. 그냥 있어주세요.”
하고 르네가 O의 허리를 부둥켜안은 채 몸을 떼지 않고 소리쳤다. O가 르네를 쟈크리느에게, 쟈크리느를 르네에게 소개시켰다. 빨간 머리 모델은 뽀로통해서 자기 방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전기기사는 관심 없는 양 하던 일을 계속하고 있었다.
O가 쟈크리느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자신의 시선을 쫓고 있는 르네를 느꼈다. 쟈크리느는 스키복을 걸치고 있었다. 쟈크리느의 검은 스웨터 밑으로 브래지어를 하지 않은 유방이 도드라져 보였고 끝이 좁은 바지는 설국 처녀의 기다랗고 늘씬한 다리를 강조하고 있었다.
쟈크리느의 몸 전체에서 눈의 느낌이 발산되는 듯했다. 바다표범 가죽으로 만든 자켓이 내뿜는 광택은 그늘에 있는 눈이고 쟈크리느의 머리와 속눈썹 주위에 떠도는 차가운 안개에 덮여 있는 광채는 양지 쪽의 눈인 셈이다. 쟈크리느의 입술은 능소화끝으로 만든 루즈가 칠해져 있었다. 그리고 쟈크리느가 미소를 머금은 눈으로 O를 바라보았을 때, O는 그 속눈썹 아래에 녹색으로 흔들리고 있는 호수에 입을 대고 싶다는 욕망과, 또 쟈크리느의 스웨터를 들추어 올려 소담스러울 것 같은 유방에 손을 대 보고 싶다는 욕망이 솟구치는 걸 느꼈다.
세 사람이 함께 거리로 나왔다. 두세 시간 동안 계속 내리퍼붓던 함박눈이 지금은 세설로 탈바꿈해 그들의 얼굴을 간질였다. 길거리에 뿌려진 소금이 신발 밑에서 삐걱거리며 눈을 녹여갔다. 그리고 O는 눈을 몰고 온 차가 바람이 자신의 다리를 따라 올라와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두 허벅지 사이를 찌르는 것도 느꼈다.
자신이 무엇을 찾아 젊은 여자들을 쫓고 있는 것인지, O는 마음속에 확실한 생각을 갖고 있었다. 그것은 남자들과 경쟁하고 남자처럼 행동해서 자신의 소유로 한 적이 없는 여자로서의 열세를 벌충하자는 의도는 조금도 없었던 것이다. 스무 살 때, 뛰어난 미모를 지닌 사랑스러운 여자친구에게 애틋한 마음을 품고 열심히 설득하고, ‘안녕’ 하고 아는 척하면서 길을 양보하고, 택시에 내릴 때 손을 내밀어 부축했던 것은 틀림없이 자신에게 있어서 놀랄 만한 일이었다.
또 카페에서 같이 차를 마셨을 때는 자기가 돈을 지불하지 않고는 견뎌내지 못했었다. O는 설령 길 한가운데서라도 여자친구들의 손에, 또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 입에다 서슴없이 자신의 입을 갖다 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그때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기분보다는 오히려 어린애 같은 충동에 의해 자신의 주위에 좋지 않은 이야기를 퍼뜨리고 싶은 데서 비롯된 행동이었다.
그런데 자신의 마력에 이끌린 달콤한 감미로움과, 오후 5시에 커텐을 내리고 램프에 불을 붙인 뒤 소파의 그늘에서 반쯤 감긴 두 눈이 진주나 칠보처럼 반짝이는 ‘아아, 제발-부탁이니, 좀 더!’ 라고 애타게 호소하는 목소리, 손끝에 남아있는 집요한 바다 내음, 그런 것에 대한 자신의 기호는 가식이란 찾아 볼 수 얼고 바닥이 보이지 않는 우물마냥 깊기만 한 것이었다.
여자친구들을 쫓아다니는 즐거움도 정말이지 약동감이 넘치는 것 이었다. 그것이 아무리 유쾌하고 뜨거운 열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라고 해도, 그런 것들 자체를 추구하는 게 아니라, 자신이 칭찬을 아끼지 않았던 그 완벽한 자유 때문일 것이다.
O는 자기 한 몸뚱어리로 그 쾌락을 이끌어냈다-남자와 같이 있을 때는 빙 둘러서 행하는 간접 방법을 택했다. 두 사람간의 대화, 랑데부, 키스의 주도권을 쥐고 있었던 것은 자신이었고, 또 다른 사람이 먼저 자신에게 키스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정부를 만들고 나서도 여자친구가 자신의 포옹을 포옹으로 대응하는 것을 참지 못했던 것이다.
여자친구를 재촉해서 알몸으로 만들어 자신의 품속에 껴안거나 구석구석 바라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할수록, 자기 자신이 옷을 벗는 것은 필요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이따금 그녀는 감기 기운이 있다든가 컨디션이 좋지 않다고 둘러대 옷을 벗지 않으려는 구실을 만들어낸 것이다.
O는 어떤 여자친구들한테서도 특정한 아름다움을 인정하지 않는 일은 없었다. 학교를 졸업할 무렵에 잘 생기지도 않고 같이 있어도 유쾌한 마음이 들지 않는 키 작은 여자친구를 유혹한 일이 있었다. 왜냐하면 그 친구의 피부가 아주 부드럽고 한껏 조여져 있었고 거칠게 손질된 풍부한 갈색 머리카락이 그림자를 창조해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 친구가 자신을 열심히 쫓아다니고, 또 언젠가는 좋은 느낌을 주는 얼굴에 환희의 빛을 떠올리기도 했지만 그것은 O의 탓이 아니었다.
O는 자신의 두 눈에 보이는, 여자들의 얼굴에 퍼져나가는 그 신비스러운 안개가 뭣보다도 사랑스러웠다. 그 불가사의한 안개는 여자들을 밝고 젊게 만들었다. 그것은 단순히 어렸을 때로 되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나이를 초월하는 젊음이었다. 입술에 살을 붙이고 두 눈을 두드러지게 하고, 홍채를 더욱 선명하게 반짝거리게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사랑 그 자체보다는 오히려 찬미하는 감정이 중요하다고 판단했다. 왜냐하면 O는 스스로 손길을 가해 마음이 움직였던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O는 로와시 에서도 생면 부지의 남자들의 손에 의해 자유로 와진 여자들의 일그러진 얼굴을 보고 같은 감동을 경험했었다. 상대가 알몸 상태로 아무렇게나 내팽개쳐지는 것을 보고 자신은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설레 임이 고개를 쳐드는 것을 느꼈었다.
태양이 이글거리는 바닷가에서 눈에 뜨이는 알몸은 O에게 아무런 감흥도 불러일으키지 못했다. 왜냐하면 그 몸이 여러 사람의 눈에 공공연히 드러났기 때문이 아니라, 절대적이지 못한 것이 공개되는 바람에 약간의 보호를 받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O는 다른 여자들의 아름다움 속에서 자신의 아름다움이 반사되는 것을 바라보고 있었다. 여자친구들이 자신에게 영향력을 행사한다고 인정할 수 없는 힘은 동시에 자신의 남자친구들에게 미치는 힘의 보증이기도 했다.
O는 여자친구들에게 요구하는 것으로 만족하고 있었기 때문에-친구들에게 보답하는 일은 거의 없었다- 남자들이 눈을 부라리고 자신에게 요구해도 그것을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따라서 O는 항상 두 가지 입장과 관계를 맺고 있었고 두 전리품에서 이익을 취하고 있었던 것이다.
행하기 어려운 일도 있었다. 예를 들어 O가 다른 여자친구들과의 경우처럼 쟈크리느를 사랑했다는 것은-지나친 표현이기는 하지만-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하지만 왜 자신은 그것을 확실히 하지 않는 것일까?
강가의 포플러의 봉우리가 입을 벌리고, 낮 시간이 길어져 사무실에서 물려 나온 연인들이 공원 벤치에 앉아 이 얘기 저 얘기 주고받기가 쉬워졌을 무렵, O는 드디어 쟈크리느 에게 기를 쓰거나 덤빌 자신이 생겼다.
겨우내 쟈크리느는 새로 사 입은 모피에 둘러싸여 다소 거만한자세로 빛을 발했기 때문에 접근하기 어려운 고고한 상품처럼 보였었다. 쟈크리느 자신도 그것을 잘 알고 있었던 모양이다. 봄이 되자 쟈크리느는 슈트를 입고 굽 낮은 신발에다 스웨터를 입었다. 머리를 짧게 한 쟈크리느는 생기 발랄한 여학생 같은 인상을 풍겼다.
O도 여학교 다닐 무렵인 열 여섯 살 때, 그런 학생을 아무도 없는 탈의실에 말없이 데리고 들어가 부둥켜안고 벽에 걸려 있는 코트에 밀어붙였던 적이 있었다. 그러자 옷걸이에 걸린 코트가 떨어져 O는 미친 듯이 웃어 제겼었다. O와 그 친구는 가슴에 빨간 비단실로 이니셜을 수놓은 면 블라우스를 제복처럼 입고 다녔다.
3킬로 떨어져 있는 곳에서 3년이란 갭을 두고 쟈크리느도 다른 여학교에서 같은 블라우스를 몸에 걸치고 있었던 것이다. 어느 날 쟈크리느가 흠 웨어를 촬영하기 위해 포즈를 취하면서,‘학교에 다닐 때 이렇게 아름다운 옷을 입을 수만 있었다면 정말이지 행복했을 거야.’ 하고 중얼거리는 것을 듣고 O는 그 일을 떠 올렸었다. 게다가 쟈크리느는, ‘그 밑에 아무것도 입지 않고 말이야.’하고 덧붙인 것이다.
“아무것도 걸치지 않고? 무슨 말이지?”
하고 O가 물었다.
“속옷을 입지 않는다는 말이야.”
하고 쟈크리느가 대답했다. 그 말을 들은 O의 얼굴이 빨갛게 물들었다. 아직도 맨 살 위에 스커트만 달랑 걸치는 데 익숙해지지 않았기 때문에 그 애매모호한 말이 자신의 현재 처지를 넌지시 빈정거린 것 같은 생각이 든 것이다.
‘누구든 옷 안에는 맨 살이잖아.’ 하는 말이 공허하게 입 안에서 맴돌았다. 침략군 대장에게 몸을 바치려 했다던 베로나의 이탈리아 여자가 갑자기 머릿속에 떠올랐다. 약간만 벌리고 있어도 그 아랫도리가 싸늘한 공기가 드러나 있다는 것을 의식하게 되었다. 그 이탈리아 여자처럼 무언가를 구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도대체 무엇을 구한단 말인가? 쟈크리느는 자부심이 대단한 여자이기 때문에 어떤 구원도 필요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새삼스레 자신감을 불어줄 것까지도 없잖은가? 쟈크리느 에게는 거들 하나면 족할 듯싶었다.
O는 조심스러운 눈길로 쟈크리느를 바라보면서 생각해 보았다. 쟈크리느 에게 줄 만한 선물은 목련꽃이 제일 나을 것 같고, 창피당할 염려도 없을 듯했다. 왜냐하면 두툼하고 애교 만점인 목련꽃이라면 시든다고 해도 그 풍성한 모습 그대로 거무스름한 갈색으로 변할 테니까. 아니면 동백꽃이 좋을는지도 모른다. 창백한 분위기 속에 장미색의 밝은 기운이 섞여있으니까.
겨울이 꼬리를 감추고 날씨가 차차 따뜻해짐에 따라 쟈크리느의 살갖에 남아있는 여린 그을음들이 눈의 추억과 함께 자취를 감추어 버렸다. 이윽고 쟈크리느 한테도 동백꽃만 어울리게 될 것이다. 하지만 O는 그와 같은 흔해 빠진 꽃 때문에 쟈크리느로 부터 경멸에 찬 시선을 받을까 두려워하고 있었다.
어느 날 O가 한 묶음의 파란 히아신드 꽃다발을 들고 사무실에 들어섰다. 그 냄새가 네델란드 수선화처럼 너무 강렬했기 때문에 사람들의 시선을 집중시켰다. 기름지고 강력하고 집요한 게 동백꽃 냄새와 비슷했지만 그 자태만은 더욱 출중했다.
쟈크리느는 그 히아신드 꽃다발 속에서 자신의 코와 2주일 전부터 빨간색 대신에 장미색이 발라져 있는 입술을 파묻었다. 쟈크리느가 입을 열었다.
“이거, 내거?”
하고 평상시 주위 사람들로부터 많은 선물을 받고 있는 여자처럼 말했다. 이어서 쟈크리느는 고맙다고 하면서, 르네가 O를 데리러 오느냐고 물었다.
“응, 올 거야.”
O가 대답했다.
“온다고.”
하고 쟈크리느가 되 뇌었다. 그가 오면 평상시 침묵과 침착한 태도를 내보이던 쟈크리느도 차가운 물 같은 눈으로 그를 바라 보다. 뭣 하나 그녀에게 배울 필요가 없는 것이다. 침묵하고, 옆에 손을 내려뜨리고, 머리를 비스듬히 기울이는 것쯤은 다 알고 있다.
O는 목덜미에 흘러내린 쟈크리느의 아름다운 머리칼을 한줌에 그러잡고 머리를 뒤로 젖히고 손가락으로 볼을 어루만지고 싶다는 생각을 애타게 해보았다. 르네 역시 그런 욕구를 느끼게 될 것이다.
O는 일찍이 대담하기 짝이 없었던 자신이 왜 이토록 소심해졌는지, 지난 두 달 동안 쟈크리느를 애타게 마음 속에 그리면서도 상대에게 심정을 털어놓는 행동이나 말이 왜 생각처럼 되지 않는 것인지, 그 이유를 알 수 없었다. O는 자신의 소심한 태도를 설명하기 위해 당치도 않은 이유를 내세워 스스로를 속이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쟈크리느 쪽이 걸리적거렸던 것은 아니다.
그것은 O의 감정 그 안에 웅크리고 있는 것이고, 자신이 지금까지 한 번도 맞닥뜨려 본 적이 없는 것이다. 그것은 르네가 자신에게 준 자유이다. 더 심각한 것은 자신이 그 자유를 혐오하고 있다는 점이다.
자신의 자유는 지금까지 이어온 어떤 쇠사슬보다도 악질이었다. 그 자유가 자신과 르네와의 사이를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분열시켜 놓은 것이다.
O는 몇 번이고 쟈크리느의 두 손을 말없이 끌어당겨 핀으로 나비를 고정시키듯 벽으로 밀어붙이는 행위를 충분히 해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때 쟈크리느는 꼼짝하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어쩌면 따뜻한 미소마저 얼굴에 떠올렸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O는 아직까지 사냥꾼에게 사로잡혀 더 큰 짐승을 포획하는 데 쓰여지고 있는 미끼 내지는 그들을 위해 사냥감을 몰아내고 주인의 명령에 의해서만 덤벼드는 야수에 불과했다.
O는 허락된 이상의 것을 고대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이미 자신에게 그 허락이 주어졌기 때문이다. 자신은 명령을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르네가 아닌 스테판 경한테서 나오는 명령이다.
르네가 자신을 스테판 경에게 양도하고 한 달여가 지나서, O는 스테판 경을 생각하는 애인의 존경심이 끝없이 증대돼 가는 것을 전율과 함께 지켜보고 있었다. 그렇다고는 하지만 행위 내지 감정에 그런 변화가 있었다고 상상하는 것은 잘못이 아닐까? 변화가 있었다고 하는 것은 그 행위를 인식하거나 그 감정을 승인하거나 하는 자신 쪽이었다는 것을 O는 동시에 생각하고 있었다.
O는 그 이후 르네가 자신과 밤을 함께 지내기 위해서 오는 게 꼭 자신이 스테판 경의 초대를 받은 다음 날이라는 걸 깨닫게 되었다. 스테판 경은 르네가 파리에 없을 때만 O가 자기 아파트에서 자는 걸 허용했다. 또 르네가 스테판 경의 아파트에 함께 있을 때라도, 자신이 발버둥질 치는 것을 옴짝달싹하지 못하고 억눌러 스테판 경이 보다 편히 행위를 할 수 있도록 꾀할 때를 제외하고는 자신의 몸에 손대기를 꺼려 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가 스테판 경의 아파트에 남아 시간을 보내는 일은 극히 드물었다. 스테판 경의 어떤 언급이나 특별한 일이 있을 때 말고는 절대로 빈둥거리지 않는 것이다.
간혹 자리를 같이 할 때가 있어도 옷을 다 걸친 채, 침묵하거나 상대의 담뱃불을 붙여주거나 난로에 장작을 보충해 주거나 스테판 경의 술잔을 채우는 게 전부였다. 하지만 자신은 절대로 술을 입에 대지 않았다. 자기가 길들인 맹수가 관객들 앞에서 순종하고 완벽한 연기를 보여주는지 주의 깊게 지켜보는 노련한 조련사처럼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을 감독 하는 것 이었다. 또 왕자 옆에서 경호하고 있는 근위병 같기도 했고, 보스가 길거리에서 찾아낸 창녀를 돌보고 있는 부하 같기도 했다.
그가 하인이나 심부름꾼 역할에 만족해 한다는 증거는 그가 O보다도 스테판 경의 얼굴색을 부단히 살피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었다. 따라서 스테판 경과 그 행위를 하다가도 그의 시선을 여기저기에 느끼게 되면 뜨겁게 달아올랐던 욕정이 물거품처럼 사라지곤 했던 것이다. 르네는 자신에게 쾌락을 안겨주는데 반해서 스테판 경한테는 존경과 찬미와 감사를 보이고, 자기가 헌상한 몸뚱어리에 스테판 경이 부족함이나 불편을 느끼지 않고 만족하는 것을 뭣보다도 기뻐하곤 했다.
만약에 스테판 경이 동성연애자였다면 이야기는 의외로 간단했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르네가 호모라는 것은 아니다. 스테판경이 원하는 일이라면 어떤 사소한 일이든 긴급을 요구하는 일이든 시간과 장소의 어떤 누구의 시선도 두려워하지 않고 승낙하리라는 것을 O는 의심하지 않았다.
하지만 스테판 경의 사랑은 여자하고 나누는 정상적인 것이었다. 그들 두 사람에게 공동 소유되고 있는 자신의 육신 이전에, 그들이 사랑의 성찬보다 더 예리하게, 또 보다 신비적인 무언가 ㅡ 그것이 의미하고 있는 게 무언지 자신으로서는 이해하기 어렵지만 ㅡ 를, 그 실재와 위력을 부정할 수 없는 어떤 연대를 목표하고 있다는 것을 이해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공유는 어떻게 해서 추상적인 것일까?
로와시 저택에서는 같은 순간, 같은 장소에서 르네와 다른 남자들의 손에 희생되었다. 르네는 왜 스테판 경의 앞에서 자신을 범하지 않고 자신에게 명령 내리는 일을 중단한 것일까? 그는 스테판 경의 명령을 전달하기만 했다. O는 그것에 대해 그에게 물어보기는 했지만 대답은 들으나마나 뻔한 것이었다.
“경의를 표하기 위해서야.”
라고 르네가 대답했다.
“그래도 난 당신 거예요.”
하고 O가 말했다.
“당신은 스테판경의 소유물이야.”
르네가 자기 애인에 대해서 그 소유권을 포기해 버렸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자신에 관한 한 스테판 경의 하찮은 요구나 부탁이라도 르네의 결단, 또는 자신에 대한 어떤 요구에도 우선 한다는 것이었다. 가령 르네 자신이 둘이 밖에 나가 식사하자거나 또는 영화 보러 가자고 했다가도 스테판 경이 한 시간 전에 전화를 걸어와. ‘O를 안고 싶으니 데려다 주게.’ 하면 르네는 스튜디오로 자신을 데리러 와서 스테판 경 아파트까지 태워준 뒤 그냥 차를 몰고 가버리는 것이다. 딱 한 번 O는 파티에 참석하는 르네에게 함께 데려가 달라고 조르면서 스테판 경한테 가기로 한 약속을 변경시켰으면 좋겠다고 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르네는 냉정하게 거절했다.
“이렇게 애원하잖아요.”
하고 다시 졸랐다.
“당신이 이미 내 소유가 아니고, 또 당신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주인 역시 내가 아니라는 걸, 아직 몰라서 그러는 거야?”
르네는 거절로 끝내지 않고 그런 사실을 스테판 경에게 알리면서, 그녀가 약속을 파기하는 등 불손한 생각을 하지 못하도록 합당한 처벌을 가하는 게 마땅하다고 한 것이다. 게다가 그녀의 면전에서,
“알았네.”
하고 스테판 경이 대답했다.
그런 이야기가 오간 곳은 자개를 상감한 검은 탁자 하나만 달랑 놓여 있는, 널찍한 황 회색 응접실로 통하는 작은 타원형 방이었다. 거기에서 르네가 O를 배신하고 스테판 경의 대답을 듣는 데 걸린 시간은 3분을 초과하지 않았다. 그리고 나서 그는 손을 흔들어 스테판 경에게 인사하고 자신에게 미소를 지어보인 뒤 아파트를 나섰다. O는 가운데 뜰을 걸어가는 그의 뒷모습을 창 너머로 보았다. 그는 뒤돌아보지 않았다. O는 자동차 문이 꽝하고 닫히는 소리와 엔진소리만을 들었을 뿐이다.
O는 벽에 결려 있는 작은 거울 속에 드러난 자신을 보았다. 공포와 절망으로 얼굴이 창백해졌다. 스테판 경이 자신을 위해 응접실 문을 열었다. O는 스테판 경의 앞을 지나가다 말고 힐끗 그를 바라 보았다. 그 역시 자신과 마찬가지로 핼쑥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하늘을 가르는 번갯불이라도 본 듯 O는 갑자기 그가 자신을 사랑하고 있다는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하지만 그 확신은 금방 소멸되고 말았다.
O는 그런 것을 믿지 않았고, 또 그런 것을 생각하고 있는 자기 자신을 경멸했다. 하지만 그것에 의해 원기를 회복해 그의 지시를 기다리지 않고 부드러운 태도로 옷을 벗었다.
그는 일주일에 두세 번 O를 불렀다. 그리고는 손을 대기 전에 자신을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상태로 한 시간씩 기다리게 하면서 무슨 의식이라도 거행하듯 일정한 시간에 일정한 명령을 되풀이하고, O가 간절하게 애원해도 못들은 척하고 천천히 훌 닦기만 했었다.
그 다음 코스는 O가 입으로 그것을 애무하거나 꿇어앉아서 얼굴을 소파에 파묻고 그에게 허리를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것 이었다. O가 그를 위해 이드거니 몸을 벌렸기 때문에 그 이후에는 상처를 입는 일 없이 허리를 소유할 수 있었다.
그 이후 자신을 옥죄는 공포에도 불구하고, 르네의 배신이 빚어 낸 절망에도 불구하고, 0는 완전히 자신을 포기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스테판 경의 타는 듯한 시선과 맞닥뜨린 O의 눈이 너무도 아름다운 탓인지 그가 갑자기 허물없이 대하듯 프랑스어로 말하기 시작했다.
“O, 나는 당신한테 재갈을 물리고, 또 피가 솟구치도록 당신을 채찍질하고 싶소. 내게 그것을 허락해 주겠소?”
“나는 당신 거예요.”
하고 O가 대답했다.
O는 응접실 한가운데 서서 로와시 저택에서처럼 팔찌로 결박된 두 팔을 전에 샨델리어가 매달려 있던 천장의 갈고랑이에 쇠사슬로 연결되길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는 사이 두 유방이 앞으로 튀어나왔다. 스테판 경은 그 유방을 애무하고 키스하고 다시 입에, 다시 한 번, 그리고 계속 키스를 퍼부었다-그가 지금까지 입에 키스한 적은 한 번도 없었던 것이다.
그는 O에게 재갈물리기를 끝마치고-젖은 타월 같은 재갈을 O의 입 안에 채우고 혀를 목구멍 쪽으로 밀어붙였기 때문에 이를 맞댈 수가 없었다- 머리카락을 거머쥐었다. O는 간신히 쇠사슬에 몸을 지탱하면서 맨발로 비틀거렸다.
“O, 용서해 줘!”
하고 그가 말했다. 지금까지 그는 O에게 용서를 구한 적은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O에게서 떨어져 채찍질을 시작했다.
르네가 밤늦게 파티에서 돌아왔을 때, O는 하얀 나일론 잠옷을 입고 드러누워 몸을 진동시키고 있었다. 스테판 경이 아파트까지 O를 데려다 주고 침대에 눕혀준 뒤, 다시 애무를 한 것이다.
O는 일어났던 모든 일을 소상히 르네에게 알려주었다. 또 O는 르네에게 앞으로는 스테판 경의 명령을 거역하는 일이 없을 거라고도 말했다. O가 거기에서 죽도록 얻어맞은 것이 필요하면서도 온당한 처사였다는 결론을 르네가 내릴 수 있도록 ㅡ 하지만 유일한 이유는 아니었다. ㅡ 마찬가지로 르네에게도 그런 결과가 필요했다는 것이 된다. 르네는 지금까지 직접 O에게 손을 댄 일이 한 번도 없을 정도로, 때리는 것을 두려워했다. 하지만 O가 다른 사람한테 얻어맞는 광경을 지켜보거나 O의 비명을 듣는 일을 즐기고 있었던 것이다.
딱 한 번 스테판 경이 그의 면전에서 O에게 말채찍을 치켜든 적이 있었다. 그때 르네는 O로 하여금 테이블을 마주 보게 하고 몸을 굽히게 한 다음 옴짝달싹 하지 못하게 억눌렀었다. O의 스커트가 흘러내리자 다시 그것을 말아 올렸다. 르네는 O와 같이 있지 않을 때나 공원을 거닐거나 일을 하고 있을 때도, O가 괴로움을 견디지 못하고 몸부림치거나 채찍 밑에서 눈물을 홀리면서 용서를 청해도 받아들여지지 않는 정경을 떠올리고 있을 필요를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 괴로움과 굴욕이 O를 사랑하는 애인의 의지에 의해서, 또 그 애인의 쾌락을 위해서 O에게 가해지고 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었던 것이리라 .
로와시 에서 그는 O에게 가해지는 채찍질을 하인들에게 시켰었다. 르네는 스테판 경에게서 상상할 수도 없는 준엄한 주인을 발견한 것 이다. 그가 이 세상에서 가장 경모하는 남자가 자기 애인을 흡족히 생각하고 길들이는 데 기꺼이 동의해 주었다는 사실이, O에 대한 르네의 정열을 한껏 부풀린 것이다. O의 입을 더듬고 흡입한 모든 입, 자신의 유방과 아랫배를 거머쥐었던 모든 손, 자신의 몸 속에 침입해 자신이 창녀였다는 사실을 남김없이 증명한 모든 기관들, 동시에 그들 모두는 O가 그만한 값어치가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 하지만 르네의 눈에 비쳐진 그것은 스테판 경이 가져온 증거에 비교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던 것이다.
O가 스테판 경의 품속에서 돌아올 때마다 르네는 자신의 몸뚱어리에서 하나님의 징표를 수색하곤 했다. 그가 몇 시간 전에 자신을 배반한 것도 보다 새롭고, 보다 잔혹한 징표를 O의 몸에 빚어 내기 위한 행동이었다는 걸 O는 잘 알고 있었다.
르네가 흥분을 참지 못하고, 굵은 보라색 지렁이가 떼를 지어 어깨와 배, 허리, 가슴 등을 몰려다니고 있는 듯한 O의 육체를 한참 동안 바라보고 있었다. 또 군데군데 피가 맺혀 생긴 멍울도 어루만져 주었다.
“아! 난, 당신이 좋아.”
하고 그가 중얼거렸다.
그가 떨리는 손으로 옷을 벗고 불을 끈 뒤 O의 옆에 누웠다. O는 르네가 자신을 자유롭게 하는 동안 어둠 속에서 신음을 내고 있었다.
O의 몸에 생겼던 상처들이 없어질 때까지는 거의 한 달 가까이 걸렸다. 피부가 찢어졌던 부위는 완전히 없어지지 않고 하얀 선이 남아 있었다.
르네는 O의 아파트 열쇠를 갖고 있었다. 그는 스테판 경에게 열쇠를 만들어 줄 생각을 하지 않았었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스테판 경이 O의 아파트를 찾아와 보고 싶다는 의지를 표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날 밤 스테판 경이 O를 데려다 주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은 르네는, 머리에 와 닿는 것이 있었다. 그것은 그와 O만 열 수 있는 저 문이 스테판 경에게 하나의 장해물이나 방벽이 될 수 있다는, 아니면 그의 조정에 의한 일종의 제약으로 생각할는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따라서 무시로 O의 아파트에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수단을 스테판 경에게 부여하지 않는다면 그에게 O를 양도한 의의가 반감되고 만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르네는 열쇠 하나를 급히 복제해서 스테판 경에게 건넸다. 하지만 스테판 경의 손에 열쇠가 들어가기 전에 O에게는 말하지 않았다. O는 항의하겠다는 생각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스테판 경의 방문을 기대하는 자신의 감정 속에 이해할 수 없는 침착함이 깃들어 있는 것을 깨달았다.
O는 오랫동안 기다렸다. 그가 한밤중에 느닷없이 찾아오는 것은 아닐까, 르네의 출장을 노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냥 가벼운 마음으로 들렀다가 차나 한 잔 마시고 가는 것은 아닐까, 하고 마음을 한껏 조이고 있었던 것이다. O는 그런 심정을 르네에게는 말하고 싶지 않았다.
어느 날 아침, 10시경에 자리에서 외출준비를 하고 있는데 열쇠로 문을 여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날은 파출부가 쉬는 날이었다. O가 그 소리를 듣고,
“르네.”
하고 소리치면서 문 쪽으로 달려갔다. 하지만 문을 열고 들어선 사람은 르네가 아닌 스테판 경이었다. 그가 얼굴 가득 미소를 떠올리면서 O에게 말했다.
“그럼, 르네를 부르기로 하지.”
르네는 한 시간 후가 아니면 사무실에서 나올 수가 없었다. O는 자신도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격렬하게 두근거리는 것을 느끼면서 스테판 경이 수화기를 내려놓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O를 침대에 걸터앉게 한 뒤 양손으로 O의 얼굴을 거머쥐고 키스를 퍼부었다. 그 동작이 너무 격정적이었기 때문에 O는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만약 그가 얼굴을 쥐고 있지 않았다면 쓰러지고 말았을 것이다.
스테판 경이 O를 일으켜 세웠다. 왜, 심장이 이렇게 뛰는 것일까? 일찍이 경험하지 못했던 공포를 스테판 경으로부터 받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일까? O는 그 이유를 알 수 없었다.
O에게 옷을 벗으라고 명령한 그가 물끄러미 O의 동작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침묵과 그의 쾌락에 관련된 결정을 기다리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어도, O 자신이 그의 날카로운 시선이 번뜩이는 가운데 알몸이 되는 것은 쉽지 않았다. 즉, 자신은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이라고, 그리고 만에 하나 자신이 장소와 시간 탓으로, 또 자신은 이 방 안에서 르네 이외의 사람들을 위해 옷을 벗어본 적이 없었다는 사실 때문에 어찌할 바를 모른다고 해도, 동요의 근본 원인은 항상 같을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즉, 자기 자신의 세계가 박탈되는 것이다. 유일한 차이는 그 박탈이 자신에게 더욱 확실한 형상을 취하고 있다는 점이다. 자신에게는 그 박탈에서 도망갈 장소가 존재하지 않고, 꿈과 비밀 생활도 존재하지 않는다. 또 로와시 저택에서 르네와의 생활이 지속되지 않았던 것처럼 여기에서는 밤이라고 하는 시간이 없어져 버린 것이다.
5월의 아침을 밝히는 빛이 이 비밀을 폭로시켰다. 이제부터는 밤과 낮의 실체가 똑같은 것이 된다. 이제부터는-. 그리고 O는, "아이고 하나님" 하고 중얼거렸다. 동시에 피도 얼어버릴 듯한 공포에 어우러진 기묘한 안도감이 생성돼, O는 자신이 그에게 몸을 바치고 있는 것을 느끼고 있었고, 또 그것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채 그 안도감을 이미 예감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앞으로는 휴지도, 헛된 시간도, 용서도 힘들 것이다.
애타게 기다리던 사람은 이미 눈앞에 존재하고, 지배자로 탈바꿈한 것이다. 스테판 경의 혹독함은 르네를 능가하는 것이면서도 한편으로는 믿음직스러운 주인이었다. 게다가 O는 르네를, 또 르네는 O를 정열적으로 사랑하고 있었기 때문에 두 사람 사이에는 일종의 대등관계가 형성돼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O의 마음 속 에 있는 복종감과 종속의식을 깨끗이 쓸어내 버린 것이다.
그가 요구한 것은 단순히 그것을 자신에게 요구했다는 이유하나만으로 O는 바로 소망스러운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르네는 스테판 경의 명령을 하늘의 지시라도 되는 것처럼 받아들이고, 한술 더 떠 자신에게 명령을 내리는 그에게 감사하고 있는 것이다.
그가 영어로 이야기하든 프랑스어로 말하든, 또 ‘너’라는 비칭을 사용하든 ‘당신’이라는 호칭을 사용하든, O는 자신이 외국인 아니면 시녀라도 된 듯, 그를 부를 때는 ‘스테판 경’이라는 말 밖에 사용하지 않았다. 그의 앞에서는 노예를 상징하는 말이 자신에게 매우 잘 어울렸기 때문에, 만약 허용만 된다면 ‘전하’ 라는 단어를 꼭 쓰고 싶을 정도였던 것이다.
O는 또 르네가 스테판 경의 노예가 되어 있는 자신을 사랑하는 것으로 만족하고 있기 때문에 모든 일이 잘 풀려가는 것이라고 자기 자신에게 속삭이고 있었다.
벗은 옷을 침대다리 옆에 놔두고 굽 높은 슬리퍼를 다시 신었다. 그리고 창문에 기대어 있는 스테판 경과 마주 보고 눈을 내리뜬 채 기다리고 있었다. 이글거리는 태양이 발하는 햇살이 커텐을 뚫고 들어와 O의 허리를 따뜻하게 감쌌다. O는 침착한 태도를 보이려고 노력한 것은 아니지만 다음과 같은 것을 재빨리 머릿속에 떠올려 보았다.
미리 향수를 사용했었으면, 젖꼭지에 화장을 해뒀으면 좋았을 텐데 하고. 그 다음에 O의 뇌리를 스친 게 있었다. 이 침묵과 이 빛 속에서, 실제로 자신이 애타게 고뇌하고 있으면서도 자기 스스로도 확실하게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은 스테판 경이 자신에게 신호를 해주든가, 아니면 그의 앞에 무릎을 꿇고 그의 옷을 벗긴 뒤 그를 애무하라는 명령을 기다렸던 일이었다. 그런 명령은 없었다. 그저 희망 사항에 불과했던 자신의 생각에 O의 얼굴이 빨개졌다. 그와 동시에 한쪽에서는 얼굴을 붉히는 자신이 우스꽝스럽다는 반성이 있었다. 창녀에게 그런 수치감이 있다니!
스테판 경이 O에게 경대 앞에 앉아서 자기가 말하는 걸 들어달라고 했다. O는 그가 말한 대로 경대 앞 의자에 앉아서 거울 속 에 있는 자신을 바라보았다. 스테판 경이 O의 등 뒤를 왔다 갔다 하면서 입을 열기 시작했다. 스테판 경이 던진 질문들은 그의 입에서 나온 말들이라고는 정말이지 믿기지 않을 정도로 천박하기 짝이 없는 것들이었다.
“로와시 저택에서 돌아온 이후, 당신은 르네와 나 이외의 남자 품에 안긴 적이 있소?”
“없어요.”
“당신이 지금까지 만났던 사람 말고 다른 남자의 소유물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소?”
“아뇨.”
“밤에 혼자 침대 속에 있을 때 마스터베이션을 즐기는 편이오?”
“아니에요.”
“당신을 애무하거나 당신이 애무하는 여자친구가 있소?”
“없어요.” ㅡ 이 대답은 조금 망설이다 했다.
“그럼, 욕심을 품었던 여자친구는?”
“글쎄요, 쟈크리느라면, 그저 친구일 뿐이에요. 동료라고 하는 편이 나을 거예요. 같은 사무실에서 일하고 있어요.”
그러자 스테판 경이 O에게 쟈크리느의 사진을 갖고 있느냐고 물었다. 마침 갖고 있는 사진이 있다고 하자, O의 몸을 일으켜 세워 그것을 찾아 오라고 했다.
르네가 5층까지 단숨에 뛰어올라와 숨을 헐떡이면서 문을 열고 들어왔을 때, 두 사람은 응접실에 있었다. 그때 O는 널찍한 테이블 앞에 서있었는데, 거기에는 쟈크리느를 찍은 작품 사진들이 마치 어두컴컴한 길바닥의 물웅덩이처럼 하얗게 빛나고 있었다.
스테판 경은 그 테이블에 걸터앉아 O가 건네는 순서대로 한 장씩 받아들고 감상한 뒤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 그러면서 다른 한 손으로는 O의 배를 거머쥐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는 O의 몸에서. 손을 떼지 않고 르네와 인사를 나눈 스테판 경은 ㅡ O는 자신의 몸을 쥐고 있는 그의 손이 더욱 민첩해진 것을 느꼈다.ㅡ O가 아닌 르네를 상대로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그 이유를 O는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즉, 르네가 끼어들어 스테판 경과 그의 사이에 자신에 관한, 하지만 자신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합의가 성립 된 것이다.
자신은 단순한 물품이나 유인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이제는 어느 누구도 자신을 심문할 필요가 없고, 자신도 마찬가지로 대답하지 않아도 된다. 자신이 무슨 일을 하든, 또 어떻게 되든, 그런 것은 자신이 아닌 자신의 소유주들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이다.
정오가 가까워져 갔다. 테이블 위에 거의 수직으로 내리 쪼이는 햇살이 사진 끝을 말고 있었다. O는 그 사진들이 손상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한쪽으로 정리하려고 했지만 자신의 몸을 쥐고 있는 스테판 경의 손이 열을 발산하고 있었기 때문에 거의 불가능했다. 신음이 입에서 터져 나오고 모든 동작은 안정 상태를 유지하지 못하고 흐느적거리기만 한 것이다. 그리고 맑은 정신을 되찾았을 때는 0의 몸은 테이블 위에 비스듬히 사진들이 널려 있는 중앙에 천장을 보고 드러누워 있었다.
스테란 경은 O의 사지를 한껏 벌려놓고 힘없이 축 늘어진 육신에서 떨어져 나갔다. O의 두 다리는 바닥에 닿지 않고 소리 없이 벗겨진 한쪽 슬리퍼가 하얀 카페트 위에 나뒹굴고 있었다. O의 얼굴에 햇살이 와 닿아 코 밑에 그늘을 만들었다.
잠시 후 흥분 상태가 가라앉았을 때, O는 드러누워 있는 자세 그대로 스테판 경과 르네가 나누는 대화를, 마치 자신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양, 또 이미 자신이 오랜 전에 경험했던 일을 듣기라도 하는 것처럼 멍하니 귓속에 받아들이고 있었다.
사실 O는 지금과 똑같은 경우를 이미 경험했던 것이다. 그것은 르네가 맨 처음 O를 스테판 경에게 데려갔을 때, 그들 두 사람은 지금과 똑같은 방식으로 자신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눴었다. 하지만 그때는 O가 스테판 경에게 미지의 여자였고, 두 사람 중 르네가 말을 많이 했었다. 그 이후 스테판 경은 자기 취향에 맞춰 O를 굴종시키고 멋대로 행동하면서 비이상적인 자기 만족을 O에게서 우려낸 것이다.
0에게는 이미 줄 만한 것이 무엇 하나 남아있지 않았다. 적어도 O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스테판 경은 늘 O 앞에서 침묵을 지키고 있었지만 지금은 르네와의 대화에 아주 열심이었다.
그 대화의 내용은 어떻게 해야 O를 최대한 이용할 수 있느냐 하는 것과, 또 그들이 O를 이용해 보고 얻은 각자의 지식과 경험을 주고받는 것이었다. 스테판 경은 어떤 상처이든 O의 육체에 피를 홀리는 것으로 O를 흥분시킬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 상처들로 해서 O가 상대를 배신하지 못할 것이라는 걸 이유로 들었다.
“르네, 자네가 O에게 채찍질을 하고 싶어 하는 것은 올바른 거야.”
하고 스테판 경이 말했다. 그들은 자신의 비명과 눈물을 즐기는 것 말고도 자신의 몸뚱어리에 새 상처를 계속 남기기 위해서도 채찍질을 중단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O는 계속 천장을 보고 드러누워 있는 자세로 그들의 대화를 듣고 있었는데,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스테판 경이 O를 위해, 또 O 자신에게 이야기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든 것이다. 마치 스테판경이 자신의 몸 속에 들어와 불안과 고민과 치욕, 그리고 신비스러운 자부심과 비통함을 극복한 유열까지도 경험한 듯했다.
특히 O는 자신이 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번화가 군중 속에 혼자 있을 때, 아니면 버스에 타고 있을 때, 또는 모델이나 스텝들과 함께 스튜디오에서 일을 하고 있을 때, 가끔 떠올렸던 일이지만 자신의 주위에 어떤 인간이라도, 만약 자신의 몸에 갑작스런 사고가 일어나 길바닥에 나뒹굴게 되든가 의사를 부르게 되는 사태가 발생해도, 그 사람은 ㅡ 자신이 몸에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 실신했다고 해도 ㅡ 자신의 비밀을 지켜줄 것이라고 생각했다.
자신의 비밀은 자신 한 사람의 침묵과 연관된 것이 아니고, 자신 한 사람의 의지에 달린 것도 아니다. 사소한 어떤 일이라도 마음대로 행하는 게 허용되지 않고 ㅡ 스스로도 해보겠다는 생각도하지 않았지만-만에 하나 용납된다고 해도 자신은 오래 마음속에 담아두지 못하고 고백하고 말 것이다. ㅡ 바로 그것이 스테판 경이 벌인 심문의 의도였었다.
또 O는 천진난만한 활동, 즉 테니스나 수영을 하는 것조차 마음대로 할 수 없었던 것이다. 막 수녀원의 철문 안에 갇혀 처녀들의 자유스러운 행동이 금지된 것처럼 육체적으로 금지돼 있는 것은 자신에게도 즐거운 일이었다. 그렇다면 쟈크리느 에게 대해서 그 사실의 전부는 아닌 약간의 진실도 털어놓지 않고 그녀에게 접근할 기회를 어떻게 노릴 수 있단 말인가?
태양은 이미 방향을 바꿔 O의 얼굴을 외면하고 있었다. O의 양 어깨에는 드러누웠을 때 몸 밑에 깔린 사진이 붙어 있다. 그리고 O는 자신의 무릎 끝에 테이블 쪽으로 다가온 스테판 경의 옷이 스치는 것을 느꼈다. 르네와 스테판 경이 O의 손을 잡고 그녀를 일으켜 세웠다. 르네가 떨어져 있는 슬리퍼를 집어서 신겨 주었다. 옷을 걸쳐야만 했다.
스테판 경의 O에 대한 심문이 재개된 것은 세느 강가에 위치한 레스토랑에서 점심을 먹고 난 뒤였다. O가 두 허벅지로 철제 의자를 따뜻하게 하는 데는 제법 긴 시간이 걸렸다. O는 스테판 경이주의를 주기 전에 미리 스커트를 들어올리면서 맨 살로 앉았던 것이다. 광장 한쪽 끝에 있는 선착장에 매여 있는 보트를 때리는 물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스테판 경은 O와 마주 보고 앉아있었다. O는 진실에서 벗어났다고 생각되는 것은 한 마디도 대답하지 말자는 결심을 하고 천천히 입을 열기 시작했다. 스테판 경이 알고 싶어 한 것은, 왜 쟈크리느 에게 마음을 두고 있었느냐는 것이었다.
“네에, 그건 아주 간단해요. 쟈크리느가 너무 아름다워 보였기 때문이에요. 뭐랄까, 가난한 애들에게 던져 줘도 조심스러워 감히 손 댈 생각을 하지 못하는, 사람 크기만한 인형처럼요. 그런데도 내가 쟈크리느 에게 말을 걸거나 접근하지 않은 것은-그렇게 하는 것을 욕심내지 않았기 때문이에요.”
그런 다음 O는 바깥을 쳐다보고 있던 시선을 돌려 스테판 경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가 자신의 입술을 응시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스테판 경은 O의 말을 듣고 있었던 것일까, 아니면 그저 O가 주절거리고 있는 목소리의 울림과 입술의 움직임만 느끼고 바라본 것 일까 ?
O는 깜짝 놀라 입을 다물었다. 그러자 스테판 경의 시선이 다시 올라와 자신의 눈길과 마주쳤다. O가 그때부터 그의 시선 속에서 읽은 것이 너무도 명백한 것이었기 때문에 ㅡ 그것이 너무 명백했기 때문에 간파할 수 있었지만 ㅡ 이번에는 그의 쪽이 당황할 차례였다.
만약 그가 O를 사랑하고 있는 거라면, O가 그것을 알아차리는 걸 허용해 줄까? O는 눈을 딴 데로 돌릴 수도, 미소를 지을 수도, 말을 걸 수도 없었다. 만약 그가 자신을 사랑한다고 해도 어떤 변화가 있는 걸까? 자신의 목숨을 빼앗겠다고 해도 도망은커녕 무릎이 움직이지 않아 꼼짝도 못할 것이다. 그의 욕망이 계속되는 한, 자기 욕망에 O를 굴종시키는 일 이외에는 어떠한 요구도 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르네가 O를 스테판 경에게 양도한 이래, 스테판 경이 O를 요구하는 횟수가 잦아지고 떼어놓으려 하지 않았던 것은, 또 이따금 O를 눈앞에 세워둔 채 아무런 요구도하지 않고 바라보기만 했던 것은 단순히 이 욕망 때문 이었을까? 스테판 경 역시 O와 마찬가지로 아무 말 없이 꿈쩍하지 않고 있었다. 옆 테이블에서 실업가인 듯한 사람들이 커피를 마시면서 대화를 나누고 있었는데, 그 진한 커피향이 두 사람이 앉아있는 테이블까지 날아왔다. 또 다른 테이블의 두 미국인은 뭐라고 큰소리로 열심히 떠들면서, 식사 중인데도 불구하고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웨이터 한 사람이 4분의 1쯤 남아있는 스테판 경의 잔을 채우기 위해 다가왔다가 조상처럼, 몽유병 환자처럼 있는 손님에게 마실 것을 따라봐야 소용 없을 것 같았는지 포기하고 돌아가 버렸다. O는 만약 그의 뜨겁게 타오르는 잿빛 시선이 자신의 눈에서 멀어져 간다고 해도, 그것은 자신의 손과 가슴을 휘감기 위함이고 다른 의도는 없을 거라는 확신을 마음 속에 갖고 있었다.
마침내 O는 미소의 그늘이 거기에서 생겨난 것을 알아차렸지만 반응을 보일 수는 없었다. O는 숨을 쉴 수 없다는 상황이 이런 게 아닐까 하고 생각해 보았다.
“O‥‥‥‥”
하고 스테판 경이 말했다.
“네에.”
하고 O가 힘없이 대답했다.
“O, 지금부터 당신에게 말하려는 건 이미 르네와 얘기가 다 끝난 거요. 그리고 또, 나는‥‥‥‥”
그가 말을 중단했다. 그것이, 자신이 갑작스러운 감동으로 눈을 내리뜬 탓인지, 아니면 그 역시 목이 메 인 탓인지, O는 전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웨이터가 접시를 치우면서 O에게 디저트를 주문해 달라며 메뉴를 내밀었다. O는 그것을 스테판 경에게 건넸다.
“스프래로 하시겠습니까?”
“그래, 스프래로 하지.”
“20분 정도 걸리겠는데요.”
“알겠네, 그것으로 주게.”
웨이터가 물러갔다.
“나는 20분 이상이 필요해.”
하고 스테판 경이 말했다. 그리고 그는 조금 전에 냈던 목소리 그대로 말을 계속해 나갔다.
O는 그가 지금 하고 있는 말 가운데서 적어도 한 가지 사실은 분명히 깨달을 수 있었다. 그것은 그가 자신을 사랑한다고 해도지금 이전과 아무런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가 자기가 내린 명령에만 복종할 것을 요구하다가, ‘만약 당신이 그렇게만 해준다면, 나는 매우 고맙게‥‥‥‥’ 라는 말로 기괴한 결의의 열정을 나타낸 것을 변화로 간주할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뭣보다 중요한 문제는 O가 그 명령을 거역하거나 회피하는 문제 등을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O가 그것을 스테판 경에게 지적했다. 그 도 그것을 인정했다.
“어쨌든 대답해 주기 바라오.”
하고 그가 말했다.
“당신이 희망하는 대로 하겠어요.”
하고 O가 대답했다. 그리고 O가 대답한 말의 여운이 그녀에게 되돌아왔다.
“르네는 내가 당신에게 윌 바라고 있는지 알고 있소. 내 말을 잘 들어 보시오.”
그가 영어로 말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의 목소리는 아주 낮고 신중했기 때문에 바로 옆 테이블에 앉아있는 사람들도 알아 들을 수 없을 정도였다. 스테판 경은 웨이터가 다가오자 말을 멈추고 그가 카운터 쪽으로 돌아가자 다시 말하기 시작했다.
O는 스테판 경의 태도와 마찬가지로 극히 자연스러운 태도로 그의 말을 경청하고 있었다. 그는 먼저, 자신이 그의 아파트를 처음 방문했던 날 밤, 어떤 명령에 굴복하지 않았던 것을 언급 하면서,그 이후 두 번 다시 똑같은 명령을 내리지 않았다는 사실을 언급했다.
“그때 거부했던 것을 이 자리에서 인정해 주겠소?”
O는 단순히 인정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고, 자신의 입에서 나오는, ‘네, 경께서 요구하실 때마다 스스로 몸을 뜨겁게 하겠어요.’ 라는 말을 듣고 싶어 하는 것을 알고 있었다. O는 그의 바램 대로 해주었다. 그러자 알몸으로 카페트 위에 눕혀져 있는 모습이, 황 회색 응접실 정경이, 걸어가는 르네의 등이, 맨 처음 반항이, 한껏 벌려진 두 무릎 사이로 벌겋게 달궈진 난로의 불길이 머릿속에 생생하게 떠올랐다. 오늘밤도 그 응접실에서 -하지만 그것은 기우였다.
스테판 경은 그 점을 착실히 말해 주지 않았다. 그는 다음과 같은 말을 계속해 나갔다. 즉, 스테판 경이 ㅡ 로와시 저택에서는 다른 남자들이 르네의 면전에서 자신의 알몸을 껴안기는 했지만, 르네가 스테판 경 ㅡ 아니면 다른 남자들-앞에서 자신을 껴안은 적은 없다는 것이었다.
“당신이, 자신을 사랑하고 있는 남자의 면전에서 자신을 사랑하지도 않는 남자에게 몸을 내맡겨, 거기에서 쾌락을 느낀다고 하는 굴욕감을 그저 르네를 위해서만 생각하지는 않았을 거요. 게다가 르네는 상당 기간 당신을 탐내는 친구들에게 당신이 거리낌 없이 가랑이를 벌리게 될 거라고 역설하고 다녔지.”
O는 스테판 경의 입에서 나온 말 중에서 ‘자신을 사랑하고 있는 남자’ 라는 구절만 마음 속 에 받아들였다. 이보다 더한 사랑의 고백이 있을까? 그리고 또 스테판 경은 이번 여름에 0를 로와시 저택에 데리고 갈 계획이라고 했다.
“맨 처음 르네의, 이어서 내 소유물이 되어 계속 자유를 잃어버렸기 때문에 당신은 놀라지도 않는 모양이지? 당신은 우리 두 사람밖에 만나지 않았어.”
스테판 경이 아파트에 손님들을 초대했을 때 그는 O를 부르지 않았다. O는 그의 아파트에서 점심과 저녁을 먹은 적이 없었다. 르네 역시 지금가지 스테판 경을 제외한 어떤 친구도 소개해 주지 않았다. 스테판 경은 자신을 격리시킨 채 고삐를 쥐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스테판 경이 자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