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희를 업은 설영은 닥터와 함께 자신의 침실로 향했다.
호화스럽기 이를 데 없는, 부드러운 융단을 연상케 하는 호피털이 시트로 덮인 침대 위에 설영은 강희를 조심스레 내리눕혔
다.
풀썩
침대에 몸이 뉘어진 강희의 배가 아래쪽으로 가도록 눕힌 후에 설영은 오른손을 뻗어서, 팬티로 가려져 있는 강희의 새하얀 엉덩이가 살짝 드러나게끔 아래로 잡아내렸다. 그리고 나서 그녀는 닥터를 돌아보았다.
"자, 바로 부탁해요"
"알겠소"
닥터는 누워 있는 여자애에쪽으로 다가와서 오른손에 들려져 있는 주사기를 가져다 댔다.
탁탁
그는 의례적으로 왼손으로 강희의 엉덩이를 두번 두드린 후에 주사바늘을 찔러넣었다. 아니, 찔러넣으려 했다. 그런데....
"...응?"
들어가지지 않았다. 주사바늘이 여자애의 엉덩이쪽을 찔러들어가지 못하고 있었다.
닥터 솔은 황당해서 입을 열었다.
"뭐지? 결함이 있나?"
그는 주사기 바늘에 문제가 있는줄 알고 주사기를 한번 살피려 했다. 그때 설영이 아 맞다 하고 중얼거리더니 이어 말했다.
"그냥은 안 들어가요. 힘껏 찌르세요. 만질땐 부드러워도 압박엔 강하더군요."
닥터는 이해할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설영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뭔 소리요? 압박에 강하다니?"
설영은 더 이야기하기가 귀찮은지 살짝 인상을 찌푸리면서 말했다.
"아무튼!! 최대한 쎄게 찔러넣으세요! 잘못 찌르지도 말구요. 바늘이 휘어져버릴수도 있으니까요. 한번에 팍! 하고 제대로 찔러넣어야 해요"
"....오늘은 여왕님답지 않게 정말 이상한 모습을 계속 보여주는구려. 거참..."
닥터는 여자애의 엉덩이를 신기한 듯이 쳐다보고 있다가 이번엔 집중을 해서 오른손에 들려진 주사기를 한번에 팍 하고 찔러넣었다.
그러자 이번엔 다행이도 주사바늘의 끄트머리가 들어가졌고, 닥터는 고개를 잠시 가로젓더니 약물을 주입하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여왕이 중얼댔다.
"그나마도 지금 이 아이가 정신을 못차리고 있으니까 바늘이 들어가는거에요..."
설영은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어 가면서 닥터가 하는 양을 주욱 지켜보고 있다가 그가 주사를 놓고 난 후에, 자신의 가운에 들어있던 솜을 건네주면서 여자애의 주사 맞은 자리를 눌러달라고 하자 그렇게 했다.
그렇게 설영은 잠시 여자애의 주사 맞은 자리를 솜으로 눌러주고 있다가, 이어서 정신을 잃은 채로 침대에 누워 있는 여자애를 다시 돌려눕혔다.
누워 있는 여자애의 머리카락이 아무렇게나 흩어져 있어 얼굴이 가려져 있자.설영은 두 손을 뻗어 잠든 여자애의 야성미가 느껴지는 머리카락을 좌우로 쓸어 정리해주었다. 그러자 예쁘기 그지없는 이목구비가 드러난다. 설영은 아직 여자애의 콧가며 입가를 가리고 있는 마스크를 보더니 이젠 주사도 놓은 시점이고 하니 마스크를 벗겼다.
일단 그렇게 여자애의 얼굴이 완연히 드러나게 해놓고 나서 그녀는 고개를 꺾고 목을 기울여 여자애의 콧가에 귀를 가져다 대었다.
스으.....
스으.....
여자애의 숨소리가 퍽 깊게 가라앉았음을 느낀 설영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 자기 가슴을 쓸었다.
"후~~아...정말..이 앨 본지가 이틀도 아직 안되었는데 벌써 내 명이 십년은 준것 같아...."
완전히 깊게 잠들어버린, 그야말로 편안한 표정을 지으면서 수면을 취하는 여자애와 그런 여자애를 보고 안심하면서 자기 가슴을 쓸어내리며 안도하는 설영을 번갈아 보던 닥터는 당최 이해를 할수 없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의자를 하나 끌어다가 여왕의 옆에 앉으면서.
"아니 도대체..여왕님. 왜 그런겁니까?"
"...뭐가요?"
너무 안도한 나머지 순식간에 대폭 기운이 빠진 설영이 힘없는 어조로 물었다. 여기까지 오는 내내 너무 긴장한 탓이다.
닥터는 연신 이해할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이미 잠들어 있는 여자애한테, 이 애한테 굳이 나보고, 가장 강한 마취주사를 놓으라 한 이유가 뭐냐 이거지요 내 말은....난 여왕님이 시키는 대로 하였소. 좀전에 주입한 페르노바르미탈의 양이면... 이 아이는 아예 그냥 의식불명 상태에 빠져 못 깨어나도 이상하게 전혀 없다 이 말이오. 근데도 굳이 시킨걸 보면......내가 설마 살인자가 되길 바라는건 아닐테고....이야기나 들어봅시다"
닥터는 조금 전에, 정말로 엄청나게 강한 마취주사를 놓았다. 그는 여왕이 하도 닥달을 해대기에, 뭔가 있겠지 싶어서 그녀가 시키는데로 최고위의 마취주사를 놓았다.
이 여자애가 만약 평범한 애라면, 지금 놓은 주사를 맞은 시점에서 이 여자애가 영원히 못깨어나도 이상할 것이 없다.
근데도 굳이!! <가장 강한 마취주사>를 놓아야 한다고 악을 써댄 여왕의 의도를 파악하고 싶어서 그는 이렇게 질문을 던진 것이다. 일단 여왕이 말한대로 해주었는데, 그에게는 충분히 들을 자격이 있지 않은가 말이다.
여왕은 푸욱 한숨을 쉬곤 말했다.
"닥터....이 애의 얼굴을 자세히 봐보세요..."
그녀의 말을 듣고 닥터는, 정신을 잃은 채 깊은 숨소리를 내면서 잠들어 있는, 속옷 차림의 여자애를 자세히, 그리고 찬찬히 살폈다. 눈에 그리듯 선선히 살펴도 좋을 만큼, 그리고 그가 여지껏 보아 왔던 그 누구보다도 아름답다고, 예쁘다고 느낄 만큼, 이 여학생은 뛰어나고 훌륭한 얼굴과 몸매를 가지고 있어서이다.
"흐음........."
그는 정말 여자아이의 얼굴을 요모조모 살피더니 자신의 감상을 피력했다. 씨익 미소 지으면서.
"내가 정말....내 취향때문에, 그리고 여왕님 덕분에 상당하다고 여겨질만한 여학생들을 무수히 봐 왔소만....여지껏 본 여자애 중에서 가장 뛰어나다고 해도 좋겠구려. 흠잡을것이 없소! 딱 하나 있다면..."
"딱 하나?"
여왕이 관심을 가지자 그는 씨익 미소지으며 말했다.
"눈썹이 약간 불만이오. 지금은 잠들어 있어 표정이 평안하니 좀 덜해보이지만, 눈을 뜨고 있을때는 어떤 표정을 짓던 항상 좀 화나있는듯한 인상일 듯하군. 그런 느낌이오"
정확히 짚었다는 듯 여왕은 그의 의견에 동조했다. 그러면서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정말 좀...그런게 있더군요. 확실히 평소때의 이 아이를 보면, 그런 느낌을 계속 받게 되요. 특히...화를 낼 때의 그 표정이란 정말이지...아.."
이마를 짚으면서 고개를 좌우로 젓는 여왕. 그녀는, 겪어봐야 그 심정을 안다는 것을 표정으로 말해주고 있었다.
닥터는 그녀에게 다시 대답을 촉구해 왔다.
"어쨌거나 이 아이한테 이정도 양의 신경안정제를 주사하라고 한 이유가 뭡니까? 그리고 아깐 또 우리 목숨이 위험하다고도 말했었고....이상히 여겨지는건 또 있소. 주사바늘이 왜 그렇게 안 들어가진건지...모든게 의문 투성이로군. 이 아이. 대체 누굽니까? 설영씨"
지금부터는 자신이 원하는 대답을 꼭 들어야겠다는 표정을 지은채 그는 뿔테안경을 검지로 치켜올리면서 말의 끝맺음에 설영의 본명까지 불러 왔다.
최강희도 완전히 잠들었겠다, 이제는 시간의 여유가 좀 생긴 듯하다고 여긴 여왕도 슬슬 닥터에게 질문받은 것에 대한 답을 해줘야겠다고 여기던 참이었다.
그녀는 오른손을 뻗어 잠들어 있는데 최강희의 이마며 빰을 쓸어주면서 입을 열었다.
"이 애는...TBM 까페의 정회원이에요. 닉네임은 티렉스이고, 본명은 최강희 라는 아이지요"
닥터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까 핸드폰 통화를 할 때도 잠들어 있는 이 여자애의 이름과 닉네임을 몇번 들었으니까.
"아아, 그렇군. 과연....여왕님 당신이 탐낼 만도 하겠소. 정말이지 예쁘군."
닥터의 대답을 듣고 있다가 설영은 씁쓸한 미소를 지으면서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
"닥터.....난 이 아이를 오늘 잡았어요. 어떻게 잡았을것 같아요?"
"글쎄...매혹안 아니오?"
그녀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리곤 짤막하게 말했다.
"안 통해요...이 애한테는"
"..뭐요?"
닥터는 믿지 못하겠단 표정이었다. 설영이 설명을 이었다.
"안 통한다구요. 만약 통한다면 벌써 내 마음대로 데리고 놀았을거에요. 하지만...그럴수가 없었죠..."
닥터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당신의 매혹안이 통하지 않는 사람도 있소?"
설영도 허탈한 심정인지 기운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있지요. 있더군요..아하하...암튼, 그래서 난 다단계의 작전을 짜서 결국 이 애를 사로잡는데는 일단 성공했어요. 장소는 여탕이었는데, 거기 여주인이 레즈거든요. 계약을 맺고 그쪽 건물을 좀 빌렸어요. 어려움이 많았지만 마침내 성공했어요.
그리곤 이 아이를 묶었죠"
"묶었다고? 뭘로 묶었소?"
"뭘로 묶었을 것 같나요?"
"글쎄...여왕님의 Bondage 취향은 다양하니까 여러가지가 있을 수 있겠지만....난 메탈 자재의 차꼬대 계열을 무척이나 좋아하는 반면에 당신은 주로, 좀더 심플한걸 좋아하잖소? 커프...수갑 계열이라던지. 사실 당신은 메탈 쪽은 수갑을 많이 좋아하니까. 아니면 로프 계열, 끈 계열이니 말이오"
여왕은 닥터가 말하는 자신의 결박 취향을 듣고 있다가 수긍하고선 고개는 끄덕여줬다. 하지만...
"분명, 나는 메탈 쪽은 Stock보다는 Cuff 계열을 더 많이 좋아하지요. 그리고 로프 계열을 많이 좋아하는것도 사실이에요. 하지만 닥터. 내가 이 애를 결박했을때, 난 이 애의 손가락이랑 발가락까지 다 묶었어요. 빠짐없이요. 촘촘하게...."
닥터는 약간 눈을 크게 떴다. 그는 여왕의 취향을 꽤 잘 알고 있는 편이었다. 같이 의견이나 취향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눈게 한두번이, 하루 이틀이 아니었으니까.
닥터가 알기로는, 여왕은 여자애들을 결박할때, 손가락은 몰라도 발가락은 잘 묶지 않았다. 사실상 거의 묶지 않는다고 보는 편이 좋을 것이다. 커프 계열을 좋아하는 여왕이지만, 그리고 여자애의 발 또한 사랑하는 여왕이지만 Toe cuff 에 대한 관심사는 상대적으론 낮은 편이었다. 그 이유를 닥터는 여왕에게 들어 알고 있었다.
닥터와 여왕은 구속된 여자의 발에 관한한 취향이 약간 남다르다. 발목이 구속되어 있어야 한다는 점에선 두 사람 모두 의견이 일치하지만, 세밀하게 파고들면 두 사람은 갈린다.
닥터는 항상, 여자애의 발가락까지 죄다 묶여 있어야 하는, 어찌 보면 집요하게 냉철하게 보일 수 있는 구속을 사랑했다. 그가 가장 이상적으로 선호하는건, 아킬레스건이 최대한 활용되어질때까지 발가락이 최대한으로 뒤쪽으로 제껴진채 약간의 주름살조차 지을 수 없는 여자애의 발바닥을 유린하는, 티클링하는 것이다.
아무리 간지러워도, 아무리 괴로워도 반항할수 없는, 그가 생각하는 가장 이상적인 구속, 결박된 발목들, 뒤로 제껴져 완전히 제압된 10개의 발가락들. 그 상태가 된 여자의 발을 간지럽히는 자신. 그것이 자신이 가장 이상적으로 추구하는 결박과 티클링.
반면 여왕은, 여자애들의 발목만 묶는데서 만족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녀는 간지럽혀져 어쩔줄 모르는 상황에 이르게 된 여자애들이 꼬물락거리는, 꿈틀대는 발가락들의 향연을 매우 사랑했다. 발가락들이 움직이면서 그리는, 그 과정에서 자신의 시야에 담겨지는 즐거움을 만끽하는것이다.
바쁘게, 정신없게, 매우 당황스러워 어쩔줄 모르는 듯한 발가락들의 움직임을 그녀가 대단히 즐긴다는 것을 닥터는 알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여왕이, 그렇게 여자애들의 움직여대는 발가락의 움직임을 즐기길 좋아하는 여왕이, 지금 잠들어 있는 이 여자애에 한해서는, 철저하게 모든 가락들을, 온 마디들을 다 굳이 묶었다고 스스로 말하니, 닥터로서는 눈을 크게 뜰수밖에 없는 것이다.
"당신이? 일부러?"
여왕은 고개를 끄덕였다. 닥터는 재차 물었다.
"굳이 그렇게 묶은 이유가 있소? 난 당신의 취향을 아는데...당신은 그런 식의 결박을 즐기는 여자가 아니지"
"맞아요. 확실히 그렇죠. 하지만...이 아이는 그렇게 묶어야 안심이 되었어요...아니, 반드시 그렇게 묶어야만 했죠"
닥터는 새삼스런 표정으로 잠들어있는 여자애의 얼굴을 다시 한번 바라보았다가 침을 한번 꿀꺽 삼키곤 물었다.
"이 아이는 도대체?..."
여왕은 강희의 뺨을 쓰다듬어주면서 다시 입을 열었다. 툭 내뱉다시피 하는 듯한 음성으로.
"이 아이의 손가락이랑 발가락을 자세히 봐보실래요?"
최강희는 속옷만 입은채 이불도 덮여지지 않고 침대에 누워 있는 채라 닥터가 보려고만 하면 얼마든지 그녀의 손가락이랑 발가락을 세심하게 볼수 있었다.
닥터는 의자에서 일어나 강희의 몸쪽으로 가까이 다가와 몸을 기울여서 찬찬히 그녀의 손가락이며 발가락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참으로 예쁘군....예쁘기 그지없지만....단순히 그것만을 말하기 위해 굳이 이렇게 살펴보라고 하는 것일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세심하게 잠든 여자애의 손가락이나 발가락들을 살펴보고 있는데...진설영이 재차 질문을 해왔다.
"뭘로 묶은거 같아요?"
"그..글쎄? 특별한 이상은 없어 보이는데...잘 짐작을 못하겠소만..."
설영은 툭 내뱉었다. 말하는 자신도 아직도 믿기지 않는다는 듯이.
"아라미드 섬유로 묶은거에요...."
흠칫
"............."
닥터는 살펴보던 여자애의 신체쪽에서 시야를 돌리곤 여왕을 바라보았다. 그의 얼굴에 처음 떠오른 표정은, 무표정이었다.
아니, 어리둥절해하는듯한 표정을 지었다고 해야 할까.
후비적
그는 자신의 오른손으로 귀를 한번 판 후에 안경을 치켜올렸다. 그리고 물었다.
"잘 못들었소?"
"...들으셨잖아요"
"아니아니...내가 벌써 나이가 이리 되었나...뭘 잘못 들은 듯해서 말이오."
설영은 하아- 하고 한숨을 한번 푹 쉬더니 말했다.
"아라미드 섬유로 묶었다구요. 이애 손가락이랑 발가락"
"................"
"손가락 10개 다, 발가락 10개 다. 죄다요. 아라미드 섬유로 묶었어요. 빠짐없이."
닥터 솔은 잠시 멍- 하니 있다가 드디어 얼굴에 경악감을 띄운 표정을 지었다. 그의 심정을 대변하듯 목소리도 한껏 고양되어 있었다.
"뭐...뭐요?!! 아라미드 섬유? 지금 아라미드 섬유라 그랬소?!!"
눈을 최대한 크게 뜬채 자신을 바라보는 닥터에게 설영은 고개를 힘없이 끄덕여줬다.
"네..아.라.미.드.섬.유.요. 됐죠? 그걸로 묶었다구요"
"마..말도 안돼!!"
닥터 솔은 너무 놀라 정신을 못차리겠는지 잠시 아무데나 시선을 두고싶은듯 미친듯이 고개를 휘저어대다가 퍼뜩 정신을 차리곤, 두 손을 뻗어서 누워 있는 여자애의 손목이나 발목을 들어올려 가며 손가락이랑 발가락을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좀전까진 그냥 쳐다만 보았었는데, 너무 황당한 소리를 들으니 기가 막혀서 눈을 크게 치뜨고는 더 자세히 바라보려는 행동이었다.
평소같으면 예쁜 여자애의 아름다운 발가락이며 발바닥을 보느라 거기서 즐거움을 느꼈겠지만, 지금 그는 그런 즐거움을 느낄 새가 없는지, 사건의 진상을 파헤치려는 형사같은 눈빛으로 여자애의 각 마디들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잠시동안 그렇게 여기저기 몸수색을 하던 닥터는 여자애의 왼쪽 발목을 들어서 발가락을 살펴본걸 마지막으로 침대에 도로 발목을 내려놓고 나선 외쳤다.
"미..믿을수가 없소!"
"..........."
침묵하면서 자신을 그냥 물끄러미 바라만 보는 설영에게 닥터는 다시 외쳤다.
"아라미드 섬유가 어떤 것인지 설마 모르는건 아닐테고! 설마 지금 나를 놀리는거요 설영씨?!"
감정적으로 따지는게 아닌가 싶을정도로 여겨지는 모습을 보이는 그였지만, 설영은 그가 이런 모습을 보이는게 무리는 아니라 생각했다.
"나도 똑같았는걸 뭐.."
그렇게 혼자 생각하다가 그녀는 닥터에게 말했다.
"물론, 잘 알고 있죠. 5미리미터의 굵기를 가진 섬유이고, 현재까진 세상에 알려진 보강재 중 최고위를 차지하며, 그 가는 길이에도 불구하고 장력이 2000킬로그램에 이른다는 섬유. 이게 아라미드 섬유잖아요?"
"그렇소! "
"닥터...로프 계열 쪽엔 닥터보다 오히려 내가 결박과 관련해서 더 많은 관심을 쏟아요. 내가 가는 결박물을 사랑한다는걸 알잖아요? 그런 내가 아라미드 섬유를 모르겠어요? 잘 알아요. 충분히 알만큼 알고 있죠. 아무튼, 난 아라미드 섬유로 이 애의 손가락, 발가락은 물론이고, 팔목이랑 무릎, 발목까지 죄다 묶었어요. 그리고 나서 이 애가 어떻게 했을 것 같아요?"
"............"
"날뛰었어요. 아라미드 섬유에 묶인 사람이, 날뛰었다구요. 아라미드 섬유가 끊어져라고 날뛰어댔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처 하나도 없어요. 그애의 몸 어디 한군데라도 상처가 나 보이나요?"
"............"
설영은 한숨을 내쉬곤 중얼거리듯 말했다.
"나 역시 놀라울 뿐이에요. 놀라움의 연속이죠. 이 애가 아무리 힘을 줘대도, 손목이며 발목이, 무릎이 베인 흔적조차 없어요. 더욱 놀랄만한건 손가락이나 발가락같이 가는 부분도 멀쩡하다는 거죠. 게다가...정말 놀라운 일은....."
"..정말 놀라운 일?"
이미 설영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거의 넋이 나가 있던 닥터인지라 그의 질문 또한 독백처럼 들렸다.
"나중에는...아라미드 섬유를 거의 다 끊어냈다는 거죠...탈출 직전에 내가 발견했기에 망정이지, 안 그랬으면 내쪽이 당했을거에요. 아하하...정말이에요 닥터. 이 애 앞에선 아라미드 섬유조차 우습게 보였어요....이 아이는....."
꿀꺽
침을 삼키는 닥터를 바라보며 그녀는 씁쓸하게 미소지었다.
"이 세상에서.....가장 강한 여자애랍니다......"
"..............."
"티렉스....그게 이 아이의 닉네임이에요. 닉네임 그대로....공룡같은 힘을, 상상을 초월할 힘을 가지고 있어요. 나의 능력이 마인드 컨트롤이라면...이 애의 능력은 힘..이라는거죠...."
"..............."
당황감 속에 물든채 말이 없는 닥터를 쳐다보면서 그녀는 간절한 표정을 지어보이며 그에게 간곡히 말했다.
"닥터...아니 박사님. 나...이 아이가 너무 가지고 싶어요...근데...너무 강해요. 부디...이 애를...구속해주세요."
"...내가 말이오?"
"네. 박사님만이 가능해요. 박사님의 메탈계열 쪽 구속물이라면...반드시 가능할 거에요. 난 그것을 상의하기 위해...박사님을 찾은 거에요...이젠 좀 아시겠죠?"
"................"
닥터 솔은 잠시동안 말 없이 서 있더니 푸욱 한숨을 내쉬곤 의자를 들어서 설영의 바로 옆자리에 내려놓고는 입을 열었다.
"일단 아는 것을 다 말해보시오. 추측적인 계산이라도 내봐야 하니까......"
여탕에서 강희가 보였던 힘, 그리고 아라미드 섬유로 결박되었을때 날뛰었던 사건 등을 쭈욱 듣고 있던 닥터는 심각한 표정이 되어선 여왕에게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정황을 들어봐선....내 생각엔....최하 2톤정도는 우습게 든다는 이야기인데.....허허...이거 참...이걸 믿어야 하는건지...."
설영은 입술을 깨물었다.
"사실이에요. 정말....나도 믿기지가 않아요. 눈으로 봤으면서도......."
닥터는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꼭....물체로 구속할 방법을 찾아야 할 필요가 있소? 어찌되었건, 지금 이 애는 이렇게 사로잡혔잖소? 당신에게. 그럼 그 다음부턴 어떤 식으로든 내가 붙잡아 줄순 있지. 약물을 투여해서 계속 힘을 빼놓으면 되는거 아닙니까? 신경안정제를 지속적으로 주사한다던지..."
여왕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러면서 강희의 잠든 얼굴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난 말이죠. 이 애를..굴복시키고 싶은거에요. 이 아이가 소망하는것이 있어요. 그게 뭔지 아세요?"
"...모르겠소"
"이 애는...<완벽한 구속>이란걸 갈망한댔어요"
"완벽한 구속?"
"그래요. 완벽한 구속. 이 앤 정말 터무니없는 힘을 가졌지만, 다행히도 심성이 매우 착하고 여리더군요. 겉은 강한 척해도 까뒤집어보면 내 눈엔 다 보여요. 만약 이 애가 나쁘게 성장했다면 어떤 일이 일어났을지...이야기가 샜는데, 아무튼 내가 보기엔, 좀 다혈질 적인 면도 보이더군요. 아마 화를 주체못할때 자길 구속해낼수 있는 사람이 있기를 바라고 찾아다니는 것 같더라구요"
"흐음...그렇소?"
"네. 만약 나한테, 이 애를 완벽히 구속할 수단이 있다면, 이 애한테도, 나한테도 좋은 이점으로 작용하는거죠. 아깐 거절했었는데, 성향이 M이니까 어쩌면 마음이 기울지도 몰라요. 내 입장에서도, 이 아이가 맘에 들어버린 이상 절대 놓아줄순 없는 노릇이니 완벽한 구속수단이 필요한건 당연한 거구요"
"성향이 M이오?"
"네. 그것때문에도 TBM에서 그토록 유명한 거에요. 사실 이정도 되는 애가 M 성향자라니, 상당히 의외스러운 일로 여겨질 법도 하잖아요?"
닥터는 공감하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M 성향자는 상당히 드물지. S에 비하면 그 숫자가 상대적으로 훨씬....정말 의외로군"
"그리고 약물쪽은 되도록 잠을 재울때 외에는 사용을 최대한 안 하는 방향으로 하고 싶네요. 물론 필수불가결이지만, 너무 자주 주사를 놓게 되면, 몸에 좋을건 없다고 봐요"
"그렇겠지"
"또한, 나는 이 애한테, 내가 더 우위에 있다는걸 각인시켜야 할 필요가 있어요. 약물따위의 치사한 수법을 쓰지 않아도, 내가 자기를 구속할 수단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줌으로서, 우월감을 느끼게 하는 거에요. 이건 어떤 면으로든 이점으로 작용할 거에요. 분명히 도움이 되리라 봐요."
다시 고개를 끄덕대던 닥터는 설영을 바라보면서 물었다.
"아라미드 섬유에 묶인채 발버둥쳐대도 섬유가 몸을 베어내질 못했는데, 왜 주사기 바늘은 들어가졌는지가 좀 의외인데..."
설영은 음 하고 잠시 생각하다가 의견을 말했다.
"주사기 바늘정도는 몸에 별로 안 위험하다고 신체에서 반응하니까 그런것 아닐까요? 아라미드 섬유의 경우에는 만약 베인다 치면 몽땅그리 다 잘려져 나갈거 아니에요? 아마 저의 짐작이지만...위험하다고 판단될수록 강하게 반응하는 감각이랄까? 센서랄까 그런게 있는게 아닐까 싶네요"
닥터는 황당한 표정을 지은 채 말했다.
"완전 야생동물같은 여자애로구먼. 아니. 맹수라고 해야 하나?"
설영은 생글거리면서 강희의 이마를 쓸어주며 말했다.
"공룡이라니까요"
두 사람은 잠시 쉬었다가 다시 대화를 이었다.
"그래...계획은 있는거요?"
"계획이요?"
"그렇소 계획. 약물을 쓰지 않고 물체의 수단으로 구속하겠다고 했잖소. 아마 대단한 준비가 필요할 텐데. 생각해둔 게 있냐 이거지요. 뭘로 구속할 건지, 어떻게 구속할 건지, 장소는 어디로 할 것인지 등등"
"아..으음.....좋아요. 일단 제 생각을 말씀드리죠"
그렇게 운을 뗀 진설영은 닥터에게, 최강희를 구속할 수단에 대해서 말을 하기 시작했다.
"난....이 아이를 구속할 수단을 세 가지 정도로 계산하고 있어요."
"세가지?"
"네. 세가지요"
"종류는?"
"아라미드 섬유, 산악용 로프, 합금 계열의 금속. 이렇게요"
"끈과 줄, 철이라...산악용 로프?"
"특수제작된 산악용 로프 중에 장력이 4톤 가량을 버티는게 있다고 들었어요. 그걸 써볼까 하고..."
"합금은?"
"티타늄으로 생각하고 있어요. 주변에 알고 있는 방위산업체가 있는데 손쓰면 제련하는거야 어려운 일이 아니죠. 물론 그게 완성될때까지 약물로 계속 재워놓으면 되니까. 어차피 지금 이렇게 잡혀 있으니 시간은 고려할 필요 없죠"
"티탄이라...아라미드 섬유는 왜 넣었습니까?"
설영은 배시시 웃었다.
"금속 계열로 제련하는것보다 끈 계열이 나을거 같아서요. 이 아이를 제압할 수단 중에 가장 얇은 걸로 꼽자면, 아라미드 섬유밖에 생각나는게 없군요. 아마 그거밖에 없을거에요. 아무리 이 애가 힘이 쎄다곤 하지만, 아까 보니, 손가락이랑 발가락 하나하나만으로는 아라미드 섬유를 못 끊어내더라구요. 그래서 다시 마디 부위를 묶는데 쓸려고..."
"손목과 발목만 완벽히 구속할 수단을 찾으면, 당신이 원하는 마음대로 이 아이의 몸부림쳐대는 발가락의 움직임을 볼수 있을텐데. 그래도 묶으려 하시오?"
"예. 묶을거에요. 그래야 완벽한 구속이라고 느껴지네요. 사지만 제압해선 부족하죠. 아무튼 철저하게 압박해줄수록 좋아요 이 애한텐. 그리고 더 집요한 티클링도 하기 손쉬울테구요"
"여왕님께서는 이 애가 정말 단단히 맘에 드신 모양이군"
"후훗, 네. 아무튼간에 고집이 너무 쎄서요. 눈썹에서 벌써 이미지가 표출되지 않나요? 자존심이 엄청난 아이에요. 그걸 꺾어버리려면, 최대한 짧은 시간 동안에, 최대한 괴로울 정도로 간지럽혀야 해요. 아직 틈이 안 보여서 마인드 컨트롤을 못 걸고 있어요. 빨리 무릎을 꿇리려면....어쩔수 없죠. 잔인하게 간지럽히는 수밖에. 호호"
"흠. 아참. 아라미드 섬유가 남은게 있소? 나는 아라미드 섬유를 취급 안한다는걸 여왕님이 모르진 않을테고"
설영은 약간 아쉬운 표정으로 말했다.
"대부분의 것들은 욕탕에서 이 애를 묶는데 다 사용했는데...엉망으로 늘어나버린지라 쓸만한것들이 거의 없더군요....간신히 딱 이애한테 다시 쓸수 있을 정도는 건졌어요"
닥터는 애석하단 투로 말했다.
"저런. 아라미드 섬유가 얼마나 비싼건데...안됐소"
설영은 피식 웃었다.
"그깟 돈쯤이야. 이 아이를 잡는다고 쓴건데, 하나도 안 아까워요. 뭐 그리고 마음만 먹으면, 돈 따위야 손에 만지는건 내게는 하나도 어려운 일이 아니니까. 후훗"
국내 기업체의 이름난 대부호들 중에서 설영의 손아귀에 놀아나는 이들도 많았다. 설영의 막대한 자금줄은 다 그들로부터 나오는 것이다.
닥터는 잠시 생각하다가 여왕에게 물었다.
"아라미드 섬유로 어떻게 묶었습니까?"
"네?"
"자세말이요 자세. 어떻게 묶었는지 자세히는 못 들어서"
"아아...그러니까요. 양 팔을 위로 가게 한 다음에, 손등은 서로 붙게 하고 손가락들을 섬유로 8자식으로 감아묶고...."
설영은 그렇게 강희를 묶은 자세를 잠시동안 닥터에게 설명했다. 듣고 있던 닥터는 약간 인상을 찌푸리고 있다가 말했다.
"허참. 그렇게 묶으면 탈출하기가 더 쉬울만도 했겠소"
"네에?"
설영은 무슨 소리냐는 표정으로 닥터에게 대답을 구하는 시선을 던졌다. 닥터는 설명을 했다.
"이런 특수한 축에 속하는 여자애를 구속하려면, 그런 식으로 묶으면 안됩니다. 힘을 고립시켜놔야 한다 이말이오. 양 손목이나 발목을 이어묶었다고? 그럼 두 팔, 두 다리를 동시에 놀릴 수 있으니 상대적으로 훨씬 힘 쓰기가 쉽지. 내가 왜 크로스, X자 계열도 많이 좋아하는지 아시오 여왕님? 그건, 팔 다리가 전부 다 따로 떨어져서 힘이 나뉘어져 있기에 묶여 있는 대상자로 하여금 위축감을 더욱 많이 줄수 있다는 이점이 있기 때문이지. 이 아이의 힘이 그렇게나 쎄다면, 전부 따로따로 힘을 분산시켜놓아야 상대적으로 훨씬 일이 쉬워진다는 말입니다"
"아아....."
설영은 그의 설명을 듣고는 수긍했다가 이내 아쉬운 듯 입술을 살짝 깨물면서 말했다.
"하..하지만 닥터는...내 취향을 알잖아요? 내가 왜 굳이 몸이 세워진 채로 묶었는지...."
"흐흠....아 그것 때문이로군"
닥터는 설영의 취향을 또다시 상기했다. 여자의 발바닥에 엄청난 집착을 하는 자신보다는, 상대적으로 설영은 훨씬 여자의 겨드랑이를 많이 사랑했다.
설영이 가장 좋아하는 것 중의 하나가 양 팔이 위로 치켜들린채 몸이 세워져 있는 여자애의 등 뒤에 가서 한손으론 허리를 끌어안고 나머지 손으로 겨드랑이를 간지럽히는 행동이다.
여자애의 웃음소리가 가장 생생하게 들리는 듯이 여겨지는 이유도 있고, 레즈라는 그녀의 성격상, 붙잡힌 여자애들의 가는 허리를 껴안는걸 좋아했다.
허리를 꽉 껴안은채 티클링을 하면, 뭔가 좀더, 확실히 상대를 구속하고 있는 입장인 S의 즐거움 만끽이랄까? 그런 맛을 즐기는 것이다.
하지만 티클링을 당하는 대상자가 베드, 즉 침대 위같은 곳이라던지에 눕혀져 있다면 뒤로 가서 허리를 껴안는 행동을 취할 수 없으니, 그녀는 거의 어지간하면, 티클링 당하게 되는 여자애를 세워놓기를 선호하는 이였다.
여자애들을 눕혀놓고 발바닥을 집요하게 간지럽히는 닥터 솔과는 이점에서 취향 차가 좀 있었던 것이다.
닥터는 한숨을 푹 쉬더니 물었다.
"이 아이의 허리를 껴안고 간지럽히고 싶은거요?"
설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할수 있다면요....못 움직이게 구속해놓고...겨드랑이를 유린하고 싶지요. 무엇보다도 이 허리를 보세요. 아아. 이 잘록함...마구마구 껴안아주고 싶다는 생각밖에 안드네요 전. 닥터는 안들어요?"
닥터는 대답했다.
"언제나 말하지만, 여자의 몸은 만능 그 자체요. 어느 곳 하나도 맘에 안 드는 곳은 내겐 없지. 다만 발이 제일 좋다는 것일 뿐. 암튼간에 여왕님이 말하고자 하는 뜻은 알겠는데....애석하지만 이 아이를 세워놓고 간지럽힐수 있는게 가능하게끔 할만한 구속구를 만드는건...사실적으로 매우 어렵소"
설영은 당황했다.
"아니, 왜요?"
닥터는 잠시 생각하는 듯하더니 말했다.
"서 있는 상태보단 누워 있는 상태에서 힘을 쓰기가 상대적으로 더 어려운 편이지. 아니. 많이 어려울 거요. 예를 들어 이 아이를 세워둔채 구속할만한 구속구가 있으려면...내 판단엔 그게 크로스 계열의 메탈구속구라 치고....적어도 15톤에서 20톤 정도는 되어야 안전하다고 봐야 할 듯합니다. 이 애가 쓸수 있는 힘의 최대치에서 적어도 5톤 이상은 상회해야 수직으로 놓여질 그 구속구를 못 움직일테니까. 그리고 말이 좋아 15톤, 20톤이지 그걸 세우는것도 쉬운게 아니고."
"그..그럼 어떻게 해요..."
설영은 아쉬운 듯 입술을 잘근잘근 물면서 누워 있는 여자애의 잘록한 허리에 시선을 주었다.
"껴..껴안고 싶은데...허리...."
설영은 여탕에서 강희를 묶었던 그 자세를 다시 취하고 싶은 것이다. 바뀌는게 있다면, 이번엔 손목이나 발목이랑 무릎쪽은 메탈 자재로 구속하고, 손가락이랑 발가락은 또다시 아라미드 섬유를 쓰는 정도랄까.
강희의 복부며 허리에 자꾸 시선을 주면서 설영이 아쉬운 듯 오른손으로 강희의 뱃가를 쓰다듬는것을 닥터는 바라보면서 말했다.
"뭐..아쉽지만 포기하시오. 그런 작업을 성공시키려면, 아무리 당신이라고 해도, 결코 적지 않은 사람들에게 마인드 컨트롤을 걸어야 할텐데...무리 하지 마시오"
닥터는 설영의 건강을 염려하는 것이다.
사실, 진설영이 세계에서 따라올자가 없는 정신계열의 최고 능력자이긴 하지만, 그녀의 마인드 컨트롤이 아무리 대단해도 한계는 있기 마련이다.
진설영은 일반인보다는 훨씬 잠을 많이 필요로 했다.
예를 들어 설영이 특정인 한명한테 마인드 컨트롤을 걸면, 그 사람하고 정신적인 유대의 끈 이라는것이 생기는데, 그것이 있음으로 해서 상대는 그녀의 조종, 통제를 받게 된다.
이것은 거리에 상관없이, 비록 떨어져 있다 하여도 이어져 있는 것이다. 정신이 이어져있다고 보면 된다. 그런 식으로 설영은 무한한 실타래를 가진 듯 무수한 사람과 정신의 유대를 맺었다.
한번 맺으면, 설영이 풀어주지 않는 이상 결코 그 끈이 끊어지지 않으며, 마인드컨트롤에 걸린 상대들은 오로지 설영의 말이라면 전적으로 존중하고 떠받들게 된다.
유대의 끈이 있기에 거리가 아무리 떨어져 있어도 그녀가 마음속으로 전체지령을 내려서 모두를 불러내는것도 가능하다. 단, 전체일 때만 가능하지 특정인을 한명 한명 찝어내서 불러낼수는 없다.
왜 그러냐면, 여왕을 모시는 자들의 입장에서야, 떠받드는 인물이 단 한명, 그녀뿐이니 정신적으로 훨씬 영향을 덜 받게 되어 있다. 그들은 오로지 모시는 주인과의 관계, 딱 하나의 실타래만 신경쓰면 되는것이다.
하지만 설영의 입장에선 그게 아니다. 자기가 마인드 컨트롤을 걸어버린 사람이 한둘이 아니니 그 모두를 다 관리할수가 없는 것이다.
거리가 멀리 떨어져 있는 상태일때 특정인 한명에게 명령을 내린다거나 하는 컨트롤은 제아무리 그녀라도 불가능인 것이다.
이런 상황의 설영인 만큼, 컨트롤을 거는 사람의 숫자가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과부하가 걸려 몸에 무리가 가는 것이다.
컴퓨터의 용량이 아무리 많아도 계속 자료를 다운받으면 배겨낼수가 없는 이치와 마찬가지.
그렇다면, 일전에 마인드 컨트롤을 걸었던 이들을 풀어주고 나서 다른 이들을 쓰면 안될까 하고 생각할 법도 하지만, 이미 그녀가 현재 컨트롤을 건 사람들 모두가 그녀에게 다 필요한 이들이었다.
유명한 회사의 부호들은 자금줄이니 필요하고, 닥터의 비밀연구소가 들키지 않게끔 도와주기 위해 보건복지부 쪽의 인물들에게도 적잖은 인물을 컨트롤하고 있다. 관공서쪽에도 사람이 있으며, 맘에 들어하는 여학생들도 상당수 매혹안에 걸려 있다. 닥터 취향 쪽의 여자애들도 따로 통제하고 있고.
하나 하나 따지고 보면, 내다 버릴만한 인물이 거의 없는 것이다. 이런 이유인고로, 매혹안에 걸린 상대가 불의의 사고로 운명했거나, 수명이 다하는 등의 일이 벌어지지 않는 한, 그녀는 마인드 컨트롤을 스스로 해제하는 일이 거의 전무하다시피 했다.
설영도 상당히 신중하게 생각을 하면서 상대에게 마인드 컨트롤을 하는 편이기에 이런 일이 생기게 되었다.
아무튼 이러저러한 이유때문에, 설영은 두통을 느낄 때가 많았다. 능력이 정신 계열 쪽이다 보니, 피로는 두통으로 나타났다. 그럴때마다 그녀는 수면을 취하는 방법을 썼다. 잠을 자고 일어나면 두통이 많이 가라앉기에.
진설영은 이미 적잖은 수의 인물들을 마인드 컨트롤 하고 있는데, 최강희를 잡을 목적으로 방위산업체쪽의 인물들에도 손을 뻗치면, 아무리 그녀라도 몸에 과부하가 일어날것을 염려한 닥터가 그 점을 지적한 것이다.
설영은 조바심을 내면서 강희를 내려다보았다. 비록 주사를 맞았다곤 하지만, 또 언제 깨어날지 모르는 최강희.
그렇다고 또 주사를 지금 당장 이어서 놓기엔 잠든 그녀의 신체가 어떤 상황인지를 모르니 함부로 그럴수도 없다. 진설영은 최강희의 몸에 무리가 가거나 망가지는걸 결코 원하지 않으니까.
진설영은 잠시 그렇게 강희를 바라보다가 닥터를 돌아보았다.
"계속 잘 지켜보아야 해요. 깨어날 기미라도 보이면 다시 바로 또 주사를 놓아야 하니까."
닥터는 피식 웃었다.
"절대 금방 못 깨어날거요. 오히려 난, 제발 눈을 떠주길 바랄 뿐이지. 아까 말했지만, 못 깨어난다 해도 이상할게 없소"
설영은 말해줬다.
"아까 이야기를 대략 해주느라 깜박 했는데요. 수면제를 먹여서 사로잡았다고 했잖아요. 그렇게만 말씀드렸죠?"
닥터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랬지"
"그거, 보통 사람이었으면 최하 열다섯시간은 잠들었을 수면제에요. 근데 이 애가 얼마만에 깨어났는줄 아세요?"
"글쎄..잘 모르겠소"
설영은 그의 눈을 들여다보다가 말해줬다.
"한...40분? 45분? 아무튼 1시간은 안되어서 깨어났어요"
".....허허 참...정말 믿을수가 없군"
아라미드 섬유도 거의 작살내놨었다는 말을 이미 들은 터라 닥터는 믿기지 않지만 이번에도 수긍할수밖에 없었다.
그러다가 그는 씨익 웃으면서 설영에게 말했다.
"어쨌든, 방위산업체 쪽에는 손쓰지 마시오 여왕님. 내가 여왕님께, 선물 하나 해드리지"
설영은 눈을 크게 치떴다.
"선물이요?"
박사는 허허 하고 웃은 후에 말했다.
"그렇소. 선물. 아니, 선물이랄것도 없지. 오히려 흥미가, 의욕이 마구 치솟아오르는군. 세상에서 가장 강한 인간이 이렇게 예쁜 여자애라니, 무척 흥미로운 일이 아닐 수 없지. 더구나 난 메탈 계열의 구속주의자요. 즉 기계쪽이란 말이지. 금속보다 강한 건 없다는게 내 생각이오. 여자와 금속도 왜 그렇게 내가 매료하는지 여왕님은 짐작을 할려는지 모르겠군. 여자는 이 세상에서 가장 부드러운 것. 금속은 이 세상에서 가장 차갑고 단단한 것이오. 물론 다이아몬드가 있지만, 다이아몬드로 구속물을 만들기엔 양이 현저하게 적지. 그것이 아쉬울 따름이오. 어쨌거나 다이아를 빼면 메탈이지. 가장 유 한것과 가장 강 한 것이 어울리는데, 정말이지 크나큰 매력이 아닐수 없소"
"....분명 매력이라고 봐요 저도"
"큭큭. 그럴거요. 여왕님은 여자애들의 손목이나 발목에 수갑을 채우는걸 즐기시니. 뭐 어쨌건, 근데, 이번의 여자애는 아주 독특하다 할수 있지. 이처럼 부드러운 몸을 가졌으면서 메탈같은 강도의 강함을 겸비한 듯하니 말이야. 이거 정말이지 유쾌한 일이 아니오? 지금 너무 흥분이 되서 표현을 잘 못하겠군. 어서 빨리 묶어보고 싶소. 꼼짝 못하게 말이지. 큭큭..."
웃음을 흘리면서 안경을 치켜올리는 닥터 솔을 바라보며 여왕은 기대감어린 표정을 띄운채 물었다.
"뭔가 대단한게 있는거지요? 그렇죠?"
닥터는 여왕을 마주 바라보고선 계속 큭큭대다가 말했다.
"가지고 있는 Bed(침대)가 하나 있소. 몇개월 전에 완성되었던 듯한데....연구소운영비용으로 쓰라고 여왕님 당신이 내게 준 돈을 기억합니까?"
"..기억나요"
"허허..난 그걸로. 최고의 구속물을 하나 만들었소. 침대의 상단과 하단은 Cage의 쇠창살을 연상하게끔 디자인 했지. 그리고 삼각. Y 모양의 꼭짓점 부위엔 조그맣게 정사각으로 개방되어지는 홀이 있소. 그 안에는 차륜구조식으로 만들어진, 티타늄 재질의 체인이 있고. 차륜바퀴를 작동시키면 휠이 돌려 감아지면서 체인의 길이를 조절할수 있지. 침대의 표면, 체인, 그리고 내장되어 있는 기계들까지 모두 최경도의 합금으로 만든거요"
설영은 깜짝 놀랐다.
"그..그런걸 만들었다구요? 정말 몽땅 다 합금이에요?"
닥터는 껄껄 웃었다.
"그렇다마다. 다 합금이오. 정말...장식용으로 만들었다고 해야 할까? 그런 상상을 문득 해본적이 있었소. 정말 말도 안 되는 이야기지만, 말 그대로 말도 안 되게 강한 여학생이란게 세상에 있으면, 그리고 그 여학생이 만약 내 맘에 든다면 어떻게 구속해야 할까..하고 말이오. 그래서 그런 여자애가 정말 있다면..하고 가정을 하여 만든게 그것이지. 실제로 그런 여학생이 세상을 활보하고 있다면, 잡아서 구속해버리는걸 가능하게 해주는 구속구! 그런 일념으로 만든 것이오."
설영은 너무 흥분해서 물었다.
"그것의 이름은?"
박사는 씨익 웃으면서 답했다.
"사우전드(Thousand)라고 명명했소. 사우전드의 뜻은 천(1000)이지. 무게의 단위, 1톤은 1000kg이오. 그 침대에 달린, 여자애의 팔목이나 발목을 구속하는 체인들은 장력이 각각 6~7톤 정도. 그 이상의 힘을 가하지 않는 한 절대 끊어지지 않소. 아마...이 아이라 해도...큭큭...장담코...풀수 없을거요. "
설영은 그의 말을 흥분에 가득 찬 표정으로 듣고 있다가 낮게 중얼거렸다.
"사우전드....너무 매력적이야...."
설영은 생긋 웃더니 강희를 시선에 담고는 고개 숙여 그녀의 입술에 키스를 했다.
쪼옥
강희의 입술을 또 한번 빼앗은 설영은 생글거리면서 말했다.
"드디어...몸은 가지는건가?"
잠시 그렇게 황홀한 심정으로 강희를 쳐다보던 설영은 문득, 닥터에게 뭘 좀 대접해야겠다 싶어 입을 열었다.
"아까 보니 비교적 싸구려 드시던데, 딴것좀 내올께요. 뭐 드실래요?"
닥터는 턱수염을 쓸더니 말했다.
"데낄라 있소?"
설영은 피식 웃었다.
"발렌타인 30년은 있어요. 생각 있으세요?"
"30년 발렌타인이라. 좋소"
"얼음은?"
"여왕님 좋으실대로"
설영은 고급 양주를 진열해놓은 진열장쪽으로 가면서 닥터를 보며 한마디 덧붙였다.
"애를 계속 주시하세요. 지금 당장 일어난다 해도 이상할게 없는 애거든요"
"허허, 걱정말고 다녀오시오. 잘 지킬테니"
얼음이 담긴 유리잔에 발렌타인을 따른 후에 설영은 다시 와서 닥터에게 잔을 내밀었다.
"건배 한번 해요"
"그럽시다. 근데 무엇을 위해?"
설영은 씨익 웃으면서 말했다.
"이 아이, 티렉스 최강희의 <완벽한 구속>을 위해 건배하죠"
"허허. 좋소"
따랑
두 사람은 잔을 한 번 친 후에 주향과 맛음 음미하면서 현재의 분위기를 즐겼다. 그러다가 설영이 문득 물었다.
"근데...강희를 그리로 데리고 가야겠죠?"
닥터는 씨익 웃더니 말했다.
"허허, 왔다갔다하기 번거롭지 않겠소? 사우전드는 분해가 가능하지. 부품들을 나누어서 이리로 날라 재조립하면 됩니다. 여왕님 취향대로 마음껏 즐기시면 좋겠구려"
설영은 감격했다. 자신의 저택에서 이제부터 최강희와 매일 매일 지낼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기분이 날라갈 듯하다.
"정말 고마워요 닥터"
"허허, 뭘. 당신은 나한테 이미 많은 호의를 베풀었잖소. 여자애들이며, 자금이며 등등을. 이정돈 기꺼이 해드려야지. 따지고 보면 사우전드는 당신이 준 돈으로 만든 거니까."
"사우전드...닥터가 지었어요?"
"그렇소. 왜, 이상하오?"
"아뇨아뇨. 썩 맘에 들었어요. 후훗. 닥터는 작명을 짓는데 일가견이 있는듯해요. Dr. sole도 그렇고 말이죠
"칭찬 감사하오 여왕님."
"본명을 부르래두요"
"허허, 뭐 어쨌거나. 걱정마시오. 다 잘될거요. 사우전드보다 강한 구속물은 아마...세상에 아직 만들어지지 않았을거요. 상식적으로 그런 걸 만들어야 할 필요성을 일반인들은 못 느낄테니까"
"호호. 이제 그 침대가 눕힐 주인을 만난거지요"
두 사람은 계속 술잔을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앞으로의 계획에 대하여 의논했다. 그렇게 조금씩 시간이 지나갔다....
"............."
강희는 눈을 떴다. 힘들게, 눈꺼풀을 들어올리는게 어렵다고 느껴질만큼, 그녀는 애써서 눈동자를 움직였다.
"....어디지?..."
보이는건 천장뿐. 눈동자를 움직이기도 힘겨운 지금의 자신으로선, 고개를 움직이는건 엄두도 못 낼 일이다. 그녀는 그저, 실내를 밝히는 천장의 흰 조명에 시선을 주고 있을 뿐이었다. 그때..
끼익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며, 누군가 다가온다. 그리고는 다가온 이가 입을 연다. 아주 즐거운 듯한 음성으로.
"어머? 깨어났구나?"
"......실패했구나...."
여왕의 목소리를 인지하자, 강희는 욕탕 때의 마지막 일이 떠올랐다. 자신은 거의 섬유의 결박을 끊어내는데 성공했지만, 막판의 그 무렵에....눈앞이 어두워진걸 기억해낸 것이다.
강희는 눈동자를 힘겹게 또록또록 굴려서 여왕을 쳐다보았다. 강희의 얼굴엔 아무 표정도 떠올라 있지 않았다. 지금의 몸상태로선, 표정을 짓는 것조차도 아주 어려운 일이었기에.
설영은 생글거리면서 의자를 끌어다가 앉고는 강희의 이마며 뺨을 쓸어주면서 말했다.
"역시 대단해. 벌써 깨어나다니. 닥터의 말로는 아주 강한 수면제라고 했는데. 훗. 하지만 움직이진 못하겠지?"
"............"
물끄러미 쳐다보면서 말이 없는 강희의 눈동자를 들여다보며 설영은 설명해줬다.
"10분 전에 진정제를 놓았어. 근육이 잘 풀어졌을거야. 물론, 너한테 걸맞게 아주 쎈거지. 팔다리는 움직이기 힘들겠지만, 말은 좀 힘겨워도 할수는 있을거고."
그렇게 설명을 한 후에 다시 강희의 뺨을 어루만지면서 설영은 방긋거리며 물었다.
"지금, 기분이 어때? 응? 몽롱하지 않아? 아주 편안한 기분이 들게끔 할만한 걸로 놔달라고 했는데 말이야"
".............."
"왜 말이 없어? 응? 무슨 말이라도 해봐. 너의 목소리를 듣고 싶어. 프린세스"
".....묻고 싶은게....있어요"
약효때문에 혀까지 마비된건 아닌지, 약간 어눌한 음성으로 강희는 천천히 물었다. 설영은 미소지으면서 말했다.
"묻고 싶은것? 어떤거?"
강희는 눈을 천천히 깜박이면서 여왕의 눈동자를 꿰뚫어볼듯이 쳐다보더니, 입을 다시 열었다.
"....날...사랑...해요?"
설영은 강희가 갑자기 이런 질문을 하자 눈이 동그랗게 될 정도로 꽤 놀랐지만, 당연하다는 듯이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어. 그럼! 당연하지. 최고로 사랑해. 너무 사랑스러워서 견딜수 없을 만큼"
강희는 그런 그녀의 말을 듣고 있다가 다시 떠듬떠듬 물었다. 진정제때문에 워낙에 기운이 없는지라 그건 어쩔수 없었다.
"그럼...내가..부탁 하면....날 풀어..줄수 있나요?"
설영은 인상을 약간 찡그린채 말했다.
"안돼. 절대로. 그렇겐 안되지. 넌 나의 것이거든"
강희는 그렇게 말하는 그녀의 눈동자를 연신 살피다가 피식 웃었다. 기운이 없어서 정말로 맥없이 지어진 웃음. 강희는 속으로 생각했다.
"눈...눈에....깃들어 있어..."
그렇게 속으로 생각한 후에 강희는 다시 말했다.
"그게 바로.....사랑...과.....소유욕..의.....차이에요...."
여왕은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물었다.
"무슨 말이니?"
"순수의 사랑...이라면..상대를 배려하는...마음이..묻어나오게...되어 있죠....하지만...소유욕은....독선....아주머니는....날..사랑한다 하지만.....훗....그것은...잘못된...비뚤어진...것...일그러진..것이죠...그런 것이..존재해선..안되요...내가 왜 이렇게..하아..기운이 없는데도..애써서 말씀을..드리는지...아시겠어요?"
강희가 힘겹게 이어가는 말을 쭈욱 듣던 여왕은 심각한 표정이 되어선 말했다.
"몰라. 모르겠어. 무슨 말을 하고 싶은거지?"
강희는 눈을 감고는 독백하듯이, 중얼거리듯이 말했다. 슬픈 듯한 어조로.
"나...처음엔..아주머니가.....미웠는데....정말이지...참을 수 없을 만큼...화가 났는데....지금...아주머니의 눈을...들여다 보
니...마음이..아프네요..참.."
설영은 점점 머리가 아플 지경이었다. 이 애는 도대체 자신에게 무엇을 말하려 하는걸까.
설영이 재차 입을 열려는데 강희가 먼저 말을 이었다.
"이런 짓...그만두세요....아주머니가...불쌍하게 느껴지니까....화도 못 내겠어...그만둬요.....유정이도...사람들도....그만 놓아 주세요..."
"너...무슨 소리야 도대체! 내가 왜 불쌍하다는 거지? 화를 못 내겠다구? 그건 또 어떤 의미인거야? 이해가 안 가. 넌 지금 나한테 잡혔어. 상황파악이 잘 안되는거야? 넌 이제 꼼짝도 할수 없어. 아까 이야기도 다 끝냈고. 니가 자는 사이에 말이야. 넌 이제 도망치지 못해. 승리한건 나라구. 근데 도대체...무슨 말을..."
강희는 여왕의 말을 잘랐다. 강희는 옅은 웃음을 띄운 채 여전히 눈을 감고는 말했다.
"아주머니의 눈은...보고 있으면...차가워....너무 차가워....뱀처럼....하지만....처음엔 그것뿐이었는데....단지 그뿐이었는데....지금 보니......다시 보니...그것이 보여....그래서 나...아주머니를 용서하고 싶으니....그만 하세요...."
부탁조로, 권고하는 듯한 여자애의 음성을 들으면서 여왕은 떨며 물었다.
"니가...무엇을 보았는데? 응? 뭐가 보인단 말이야?"
강희는 서글픈 미소를 지으며 짧게 말했다.
"슬픔...."
흠칫
"............"
"아픔...."
"............"
"괴로움...."
"............"
"그것들이...하나되어...내재되어..있어요..."
"....무슨 말인지 모르겠네. 막 깨어나서 머리가 아픈가 보구나"
설영은 애써서 아무렇지 않은 듯 비릿한 웃음을 흘렸다. 강희는 그런 그녀를 안타까운 듯한 시선으로 바라보다 말했다.
"그만둬요...이제는....멈추세요.."
설영은 자꾸 자신을 불쌍한 듯한 시선으로 쳐다보는, 그리고 안타까운 듯한 시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