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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소설-내가 만드는 이야기

德厚の野望 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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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318 회 작성일 24-01-08 14:49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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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가장은 소주에서 심가장에 버금가는 이씨(이매가), 고씨(고소영), 강씨(강부자)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대족이다. 가진 땅은 삼십 무(약 삼천 평)에 불과했지만 대강남북을 잇는 수로와 인접해 있어 경작 외에 벌어들이는 수입도 만만치 않았다. 조정의 세수 정책, 양주 일대에 대한 2배 세금도 그럭저럭 감당할 수 있는데다가, 현 장주인 장보질 역시 감생 출신으로 일찍이 면세 해택이 있었다.


지주 자리까지 올랐다가 부친상을 이유로 낙향해서 그대로 조기 은퇴하여 소일거리로 장의 내외 업무를 맡아보다가 관혼상제나 경사가 있을 때 외출하는 정도였다. 장보질에 대한 인근의 평가는 적당히 인정이 있고 착실하면서도 과묵한 사람이었다.


장보질에게는 자식이 없었다. 정처 소생이 있었지만 일찍 죽었고, 처도 오래 전에 사별했다. 주변에서는 후처를 얻기를 재촉했지만 장보질은 증삼의 예를 들며 고사했다. 대신 장보질은 먼 혈족의 여아들이 일찍이 부모를 사별하여 곤란을 겪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문득 거두었는데 장미미, 추소연, 반옥령 셋의 이름이었다.


피가 이어지지 않았지만, 장보질은 이 셋에 대해 후견인의 의무를 다해주었다. 장보질의 바램대로 셋은 만개하는 꽃처럼 자라나 장가장 뿐만 아니라 소주의 자랑거리였다. 비록 심가장의 심주혜가 있어 가려지기는 했지만.


슬슬 혼기가 되어 사방에서 들어오는 중매도 검토하고 있던 장보질은 이른 아침부터 셋을 대청으로 불렀다. 즐겨 앉은 관모의에 앉은 장보질은 셋이 춘등에 나란히 앉을 때까지 입을 다물고 있다가 궤에 올려 방문첩을 들어보였다.


“이 방문첩들은 무어냐.”


셋의 동체가 움찔한다. 장보질은 짐짓 모른 척 배첩을 꺼내 이력을 하나 씩 읽어 내렸다.


“강 윤식, 황 철웅, 초 제학....어디선가 많이들은 이름들 같구나.”
“강남 삼공자라고 유명해요.”


셋 중 가장 어리고 활달해 장보질의 귀여움을 거의 독차지하다시피 하는 장미미가 자랑하듯 말했으나 장보질의 엄한 눈초리에 찔끔하고 말았다. 장보질은 시선을 나머지 둘에게도 향한다.


“소주 삼선녀도 유명한가보구나. 이 뒷방 늙은이의 귀에도 똑똑하게 들어오는 것을 보니.”


모든 것을 다 알고 말하는 장보질의 눈초리가 닿을 때마다 시든 꽃처럼 세 처녀의 고개도 수그러진다.


“내가 너희들의 외출을 허락해준 것은 과년해지기 전에 추억거리라도 만들어두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거금을 들여서 믿을만한 보표들을 구해다주지 않았더냐. 허나, 정도는 지켜야하지 않겠느냐. 이런 무뢰를 끌어들이다니...”
“무뢰가 아니에요!”


장미미가 입술을 뾰족하게 내밀며 항의했으나, 의부의 엄한 눈길에 양 손이라도 들 태세로 기가 죽었다.


“허명만 높은 이가 아니라 대상련에서 가장 촉망받는 무인武人들 입니다.”
“그래서?”


추소연이 장미미의 지원을 위해 입을 열었지만 돌아온 대답은 싸늘했다.


“숭문천무라고 했느니. 꼭 그렇지만 않더라도 민간이 도당을 이루는 것은 원칙적으로 금하고 있다. 그런데 너희들은 도당의 수괴들이랑 연을 맺을 작정이냐?”
“그런 무뢰랑 근본적으로 틀려요!”


반옥령의 항변에 장보질은 혀를 찼다. 이 병아리들을 어찌하누. 다른 가장 같았으면 닥치고 들어라! 라고 하겠지만, 관직 생활로 위아래를 겪어본 경험과 일방적으로 뒤끝을 남기기 싫어하는 성격 탓에 양녀들에게도 차근차근 따져가기 시작했다.


“좋다, 그럼 촉망받는 무인이라고 했는데 그렇다 치자. 어디 순무나 총병직에 오를 것 같으냐?”
“그건....관직에 오를 분들 같지는 않아요.”
“문으로 경륜할 뜻이 없다면, 무로서 변방을 지키는 것도 남아가 할 일이다. 이 셋이 둘에 해당되느냐? 교육이 부족하지 않다고 여겼거늘, 대체 무엇을 보고 결정하는 게냐.”


침묵 뒤에 셋은 각자 개성대로 한 마디씩 했다.


“미미는 그분이 너무 좋으니까요...”
“그 인간 외의 상대는 역시...아이 참.”
“펴, 평생을 함께 하고 싶어요.”


볼을 상기시켜 몸 둘 바를 몰라 한다. 장보질은 이 망아지 같은 수양딸들을 어떻게 해야 할지 감당하기 힘들어졌다. 배첩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그러다 비명횡사하면 열부가 될 참이냐?”


장보질의 물음은 폐부를 찌르는 고드름처럼 세 처녀의 훈풍을 그대로 얼려버렸다.


“대저 강호인이라면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인생이거늘, 그네들이 죽으면 그 뒤는 어쩌려고 그러느냐? 나중에 너희 자식들이 제 지아비 따라 칼 들고 설쳐대는 꼴을 그렇게도 보고 싶으냐?”


장보질은 꾸깃해진 방문첩을 궤장에 도로 올려놓았다.


“너희들도 잘 알겠지만 내겐 후사가 없다.”


익히 아는 이야기를 꺼내자 세 처녀는 불안하게 눈빛을 두고 받았다. 장보질이 독신인 것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주변의 권유에 그녀들도 덩달아 후처를 맞이하라고 했다. 그러나 장보질은 두 번 다시 거론하지 못하게 했다. 대신 자신의 업무가 과중할 때 조금 씩 수양딸에게 넘겨주었다. 장가장 정도의 규모라면 단순한 일가 차원을 넘어 소유한 토지와 그 위에 사는 사람들로 하여금 유무형의 영향력을 행사하여, 자연스럽게 대소사를 총괄하는 입장이 된다. 그래서 셋은 분야와 정도의 차이는 있어도 대갓집에서 집사나 총관을 맡아도 안심할 정도로 살림법을 꿰고 있었다.


“내가 죽으면...”
“아버님! 그런 일은 없을 거예요.”
“아직은 정정하시잖아요.”
“역시 외로우셨군요. 아무래도 후처를....”


종달새처럼 지저귀자 귀가 아파진 장보질은 손을 번쩍 들었다. 순한 양처럼 조용해지자 장보질은 중단했던 말을 이었다.


“가산을 너희 셋에게 균등해서 나누어줄 작정이다.”


셋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녀들도 사물을 제대로 분간하지 못할 나이 때부터 장가장에 들어와 남부럽지 않게 자랐다. 장보질이 딱히 이상적인 부성父性을 지닌 것은 아니지만, 아버지로서 의무를 한시라도 포기하지 않았고, 자신의 주관만으로 수양딸들에게 억지를 시키진 않았다. 그래서 세 처녀는 방심芳心에 따라 뒤 담화 삼기는 해도 의부를 마음 깊이부터 공경했다.


“부모 마음에서 자식을 고생을 시키고 싶지 않다. 허나, 물가에 내놓는다고 언제까지나 메어둘 수는 없는 노릇, 인생에는 항상 편한 다리만 놓여있는 것은 아니야. 때론 헤엄도 쳐야하고 배를 구해서 격랑을 해쳐나가야 한다. 그 뿐만 아니라 마음이 변해 여태까지 동고同苦를 버리고 딴 길로 갈 수도 있다. 다시 물으마. 이 셋이 너희들에게 진정으로 반려가 되어줄 수 있겠느냐? 그렇다면 나도 굳이 반대하진 않겠다.”
“....시간을 주세요.”


추소연이 머뭇거리며 대표로 말을 했다. 원하는 답은 아니었지만 그 정도로 만족하기로 했다. 자리를 파하려고 할 때 장미미가 돌연 고개를 발딱 들며 물었다.


“아버님은 어머님을 어떻게 생각하세요?”


셋 중 가장 상상력이 풍부해서 간혹 엉뚱한 질문을 던지곤 하는 장미미의 말에, 장보질은 평소처럼 가볍게 대꾸하거나 나무라진 못했다. 아내라는 물음에 장보질은 잔주름이 잡혀가는 눈가의 고랑을 깊게 했다.


이 시대 가장들이 그렇듯 집안의 중매로 결혼하기 전까지는 얼굴도 모르는 처자였다. 사람을 즐겁게 하는 미인이냐 하면 약간 밉상이고 행동이 굼뜬 여자였다. 몸을 섞으면서 살림을 같이 공유 하면서 자연스럽게 가진 정감이 전부였다. 그 때 자신은 전시를 위해 한창 공부에 매달리던 시기였고, 아내 혼자 장가장에 남겨졌다.
 
전시에 합격하여 진사가 되고 지현이 되었을 때, 아내는 먼저 보낸 핏덩이를 따르듯이 고단히 잠든 듯이 세상을 떠났다. 원인은 아파도 내색하지 않고 꾹 참는 아내의 무던한 성격이 병을 고황에 이르도록 키운 것이었다. 결혼을 하고도 둘 사이에는 열 마디도 넘지 못한 사이였다.


상을 마치자 장보질은 도망치듯이 부임지로 떠났고, 일에 매달려 가는 곳에 성과를 매달리며 실적을 올려 벼슬이 지부에 이르렀을 무렵 부모상을 당한 뒤 아예 귀향했다. 주변에서 후처를 맞이하라고 할 때 장보질은 거절했다. 주변에서 추측하는 것처럼 부부간의 의리나 사랑 때문은 아니었다. 그저 우울한 기억을 떠올리고 싶지 않았을 뿐이었다. 더불어 얼마 추억을 세월과 함께 삭히는 것이 방치되다시피 세상을 떠난 아내에 대한 의무라고 믿었다.


장미미에게 이렇게 불현듯 질문을 받자, 일찍이 사별한 아내가 생전의 아침처럼 자신을 보던 때가 떠올랐다. 그러나 그 때만큼 묵직한 슬픔은 느껴지지 않았다. 삭아 끊어지는 족쇄를 응시하는 것처럼 시간의 풍향에 맡긴지 오래 되어 옅은 흉터로만 남은 것이다.


“글쎄, 잘 모르겠구나.”


장보질의 대답에 추소연과 반옥령은 깜짝 놀랐다. 울듯이 혹은 웃는 듯이 괴상하게 표정을 일그러뜨리고 있었다.


“미미는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할래요.”


내가 여태까지 한 말은 물로 들은 게냐. 장보질은 평소처럼 엄한 시선을 했지만 미미는 피하지 않았다. 오히려 몽롱한 듯 눈을 반짝였다.
 
“그 사람이랑 있으면 모든 게 다 좋은 느낌이에요. 아버님이 말씀하신 것도 그 사람과 함께라면 다 잘될 것 같아요. 웅, 뭐더라,....물고기가 물을 만난...? 물이 물고기를 얻은...?”
“수어지교.”


추소연이 짧게 일러주었다. 미미는 응응, 하면서 두 손으로 가슴 위를 올린다.


“그래요, 그거. 말로 잘 설명하지 못하겠는데 그 사람이 그 자체에요. 미미가 언니들과 달리 제멋대로라는 건 미미도 잘 아는데, 그 사람과 함께라면 무엇이라도 될 것 같은 기분이에요.”


장보질은 열변을 토하는 미미를 보다가 추소연과 반옥령도 보았다. 둘도 미미와 크게 다르진 않았다. 장보질은 방금 전 양녀가 말했던 것을 똑같이 입에 올릴 수밖에 없었다.


“.....시간을 다오.”


설득을 받아들이기 위한 유예가 아니라 자신까지 고민할 유예를 얻게 되자 장보질은 셋을 내보내면서 쓰게 웃었다. 상념도 잠시 출타할 준비를 서둘렀다. 심가장에서 중요한 모임이 있기 때문이다.


점심을 먹고 하인이 준비한 수레를 타고 심가장으로 향했다. 양주의 유력 인사들이 모이는 중요한 모임인지라 대문 밖에서 수레가 줄지어 있었다. 장보질은 수레를 맡기고 하인의 안내를 받아 대청으로 들어섰다. 많은 빈객이 오갔지만 사전 계획은 철저히 했는지 혼잡한 분위기는 아니었다. 수많은 인사가 왔음에도 잡음 없이 접대 질서가 분명하여 순조롭게 집행되는 것을 보자 장보질은 속으로 감탄했다.


-이번 대상련주가 일대 여걸이라는 소리는 들었는데 사실인 것 같구나.


석년의 금대숭가 면식이 있던 장보질은 금보옥이란 이름이 아주 낯설지는 않았다. 금대숭 사후 대리로 올랐다고 하지만 어디 유력자와 혼인하겠거니 했었다. 그러나 심가장의 난동을 해결하면서 복건의 무뢰당(상관세가)을 정리하고 남창의 무뢰(천하문)들을 끌어안는 것을 보면 재고해야할 듯싶었다.


하인의 안내로 내청의 자리에 착석을 할 때 누군가 말을 건넸다.


“이 사람, 장 대인이 아닌가?”
“심 시랑도 간만입니다.”


장보질은 다시 일어서 심우량에게 인사를 했다. 같이 감생 동기 출신이라 막역하게 지내는 사이였다. 자신은 일찍 은퇴하여 지부에 그쳤지만 심우량은 심가장의 배경을 업고 정 3품인 시랑(侍郞)에까지 올랐다. 장보질이 예를 갖추자 심우량은 짐짓 고개를 저었다.


“시랑은 무슨, 그대나 나나 같이 낙향한 처지에 그냥 편하게 대인으로 부르게나.”
“예, 대인.”


호칭은 고치면서 말은 놓지 않는다. 심우량은 장보질의 옆에 앉으며 짐짓 호쾌하게 웃었다.


“답답한 성정은 여전히 변함없구먼. 그래, 자네 딸들은 잘 크고 있나?”
“그냥저냥 하지요, 아직 철부지들입니다.”
“슬슬 혼기가 찰 나이로 아네만.....”
“적당한 인연이 있으면 알아서 맺어지겠지요.”


장보질은 두루뭉실하게 말을 맺었다. 있는 듯 없는 듯 살고 있지만 장가장 역시 세력을 가지고 있는 만큼 귀는 항상 열어두고 있었다. 심가장의 비극으로 소주 심가의 적통으로 심우량이 되었고, 하루아침에 몰락한 가문의 세를 일으키기 위해 여기저기 인연을 끌어들이려 하고 있었다. 평소 장보질이 먼저 인사하기 전까지 알은 체도 안하는 심우량이 먼저 인사했다는 것이 그 증거였다.


심가장이 예전의 성세를 이루고 있다면 장보질도 별 생각 없이 중매를 넣어도 상관없겠거니 했겠지만 지금은 때가 안 좋다. 심우량은 당장 세를 확보하기 위한 포석으로 혼인을 이용할 뿐이니, 혼인 당사자들 사정은 둘째 치고 분가할 일족의 미래까지 고려해줄 리가 없을 터. 최악의 경우에는 장가장의 재화가 양녀들을 통해 심우량에게 그대로 넘어가지 말란 법이 없으리라. 심우량이 불쾌해지기 전에 장보질은 자신의 덤덤한 인상을 최대한 활용하며 화제를 전환 했다. 


“이번 모임은 유독 성대한 것 같군요. 저도 모르는 면면들도 많이 보이고 말입니다.”
“절강뿐만 아니라 복건과 강소의 유지와 부호들도 올라왔네.”
“허어, 대단하군요. 대상련의 영향력은 과연 대단한 것 같습니다.”
“글쎄, 말이야 맞네만....”


심우량의 안색은 어딘가 불편해 보인다. 부자가 망해도 삼년은 간다는 속담이 있다. 그러나 심우량에게는 해당사항이 아니었다. 우선 형의 생전 동안 보이지 않는 견제를 받아야했고, 상속인은 심주혜에게 이어졌으며, 그 심주혜는 의누이인 금보옥에게 모든 것을 남겼다. 그리고 금보옥은 심가장의 혈난을 해결했을 뿐만 아니라 원흉인 상관세가를 무림에서 영원히 지워버렸다. 심가장의 원한을 가장 훌륭하게 완수한 셈이었다. 이 상황에서 심우량이 혈족의 권리를 주장해도 마뜩찮은 시선만 받을 것이다.


연석에 주요 빈객들이 앉고 은은한 주악이 울리자 단을 올린 상석에 대상련의 대총관인 금천요와 함께 한 소녀가 등장했다. 자색을 기조로 은실을 놓은 옷을 몸에 두르고 봉황의 수를 놓은 허리띠, 머리에는 금잠을 꽂고 있었다. 그 자리에 있는 것만으로 사방이 빛이 비쳐지는 것 같은 절색의 미녀였다.


금보옥을 처음 보는 중인들은 말을 잊고 압도적인 아름다움에 도취되었다. 장보질도 그 중에 하나였다. 자신의 양녀들도 미녀들이고, 그보다 절색이라는 심주혜도 보았지만, 금보옥은 느낌이 확연하게 달랐다. 구름 속에 있는 것처럼 미모 위에 까닭을 알 수 없는 위엄을 한 가닥 더하고 있었다.


“이 자리를 빛내주신 귀한 손님들께 감사드립니다. 차린 것은 얼마 없으나, 수전노 같다고 꾸짖지는 말아주십시오. 흥을 돋우기 위한 정도로만 준비했고, 정찬은 덕담으로 채우기 위해서니까요.”


금보옥은 두 손을 모아 읍을 하며 농을 던졌다. 자신만만한 패기에 중인들은 금보옥을 탓하기는 커녕 재치가 있다고 여겼다. 원래 이 시대에 여자가 중인들이 앞에 나서는 것은, 그것도 주인석을 차지하는 경우는 극히 이례적이다. 보통 여자가 행상을 한다면 도박을 하는 것과 다름 없다며 심지어는 매춘을 한다는 편견이 있던 시절이다. 그만큼 금보옥이 선대를 뛰어넘는 실적을 이룩했고, 대상련에 심가장의 기반을 꽉 쥐고 있기 때문에 가능했다. 여기 모인 호족들도 금보옥이 어린 여자라고 속으로 질시는 해도, 대놓고 무시하는 경우는 없었다.


금보옥이 상석에 앉자 주악이 바뀌면서 간단한 요리가 나왔다. 저마다 젓가락질을 하거나 차를 마시면서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는 중에 금보옥은 시중에게 손짓을 했다. 시중이 나가더니 곧 건장한 하인 둘을 대동하고 책들을 한아름 안아 들고 왔다.


“좀 이르지만, 선물로 드리는 것입니다.”


명 중기 이후 상업의 급속한 발전으로 상인들은 지휘 향상을 꾀하게 되었고, 권력의 근간이라 할 수 있는 관료 및 신사층과 어떻게든 연관을 맺으려 애를 썼다. 그렇다보니 거상들의 경우에는 교제의 폭을 넓히기 위해 교양을 쌓거나 장서를 수집하였다. 그래서 금보옥처럼 책을 선물하는 것도 흔한 일은 아니었다.


받아든 책은 제목이 없었다. 장보질이 책의 내용을 가늠이라도 하듯 표지를 바라볼 때 금보옥의 목소리가 낭랑하게 울렸다. 넓은 대청임에도 금보옥의 목소리는 가까이나 구석구석에 명료하게 전달되었는데 내공을 이용한 발성이라는 것을 알 리가 없었다.
 
“보다시피 어느 이인異人과의 문답을 수록한 것입니다. 완성된 것이 아니라 제목은 짓지 못했습니다. 읽어보시고 어울리는 제목을 붙여주신다면 삼생三生의 영광으로 알겠습니다.”


중인들은 대상련주가 삼생까지 거론하는 소리를 듣고 갑자기 책자에 지대한 관심이 쏠렸다. 성급한 이들은 표지를 넘겨 읽기 시작했다. 그러나 금보옥은 이 자리에서 읽어볼 시간을 주지 않으려는 듯 어조를 바꿨다.


“이 자리에 모이신 분들의 후원으로 대상련은 복주의 무뢰한들을 모두 소탕할 수 있었습니다. 작게는 대상련의 비원을 이룬 것이요, 넓게는 대명제국의 우환을 제거한 것입니다.”


상관세가의 부흥은 명 건국 이후 감합이라는 조공 무역에 기인했다. 대원제국과 달리 명나라는 폐쇄정책을 펼쳤고 해금령을 내리는 등 교역에 소극적이었다. 조공 무역은 기 백 매 가량 발행되고 황제가 교체될 때마다 새로 갱신되었다. 그러나 공급처는 바늘귀만 한데 수요는 자꾸만 눈사태처럼 불어나니 남은 답은 밀무역이었다. 상관 세가는 그 중개의 정점을 차지하여 막대한 부를 획득한 것이다. 원래 역사와 달리 여기서는 상관세가가 존재함으로서 왜구의 발호는 미미한 실정이었다. 대신 대상련이 잔뜩 시달려야했지만.


이 자리는 대상련의 승리에 대한 축하이면서 동시에 상관세가가 소유했던 이권에 대한 분배의 모임이다. 대상련의 기반은 상인 연합이고 연합에는 자금을 댈 수 있는 부호와 신사들이 후원자로 있었다. -최고의 대주주는 금보옥이었지만.- 그래서 양주 일대에 엉덩이가 무거운 작자들이 한 자리에 모이는 진풍경을 연출한 내막이었다. 진정한 거래는 삼삼오오 회담으로 이루어질 것이다. 사람이 많으니 며칠 정도는 즐겁게 기다려줄 수 있었다. 다들 어서 해가 저물기를 바라는 심정이었는데 금보옥은 뜻밖의 소리를 하였다.


“말미를 거창하게 한 것 같습니다만, 그 말은 응천부에서 오신 귀인의 전언입니다.”


순간 흥겹던 분위기가 거짓말처럼 싸늘하게 식었다. 명 초기의 도읍이자 북경 천도 후에는 행정의 중심지로 직할령에 속한 곳이다. 그리고 최근 베일에 휩싸인 덕왕의 부임지이기도 했다. 중인들의 이미지에 덕왕은 트집 잡기 좋아하고 변덕스러운 골칫거리였다.


“이해할 수 없는 일이군요. 왕야께서 이런 하잖은 동네에 관심을 가진답니까?”


심우량이 겉으로는 정말 정중하게 물었다. 그러나 강남 태생이라면 그 이면에 은은하게 숨겨진 비분을 감지할 수 있었다.


“알다시피 대명제국의 제후로 소임을 다하기 위해서랍니다. 최근에 구변진이 설치된 것은 아시겠지요. 그 때문이 아닐까 싶네요.”


춥고 황폐한 북방에 수십만을 주둔 시키려면 양곡은 필수다. 문제는 수급할만한 재화가 강남에 집중되어 있다는 점이다.  수 양제 이후로 대강남북의 경제를 이으려는 시도는 여러 차례 있었고, 영락제시기에 3천 7백리의 회통하를 개통함으로서 완성했다. 그리고 여기에 대한 통행세를 얻음과 동시에 둔전과 함께 개중법(소금 전매권을 주고 대신 국경까지 곡식을 운반함)을 실시함으로서 북방 문제를 명 전기까지는 해결했다. 그러나 영종(정통제,천순제)가 토목보의 변으로 북방 군사체계를 화려하게 말아먹은 뒤에는 전면적으로 조정을 거치게 되었다.


“그 높으신 분들은!”


누군가 발끈하며 일어났다. 그러나 이목이 집중되자 헛기침과 함께 목소리를 나긋하게 바꾸었다.


“아래 것들을 사정을 너무 모르시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축수 겸 시찰을 하시겠다 합니다.”
“험! 험!”


한 마디로 감사 떴다는 소리였다. 말하는 금보옥의 표정도 달가워하지는 않은듯 했다.


“시찰로만 끝나면 다행일지도 모르지요.”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의미심장하게 흘리자 심우량이 불쑥 묻는다. 금보옥은 실언을 했다는 듯 멈칫했으나 내친 김에 토로했다.


“왕야께서는 계찰 같으신 분이라 스스로 마다하고 오신 분입니다. 황상께서는 그분의 충심을 높이 사셔 일반 번왕들과는 다른 많은 특례를 베푸셨고요. 주공 단처럼 말이지요.”


계찰은 사마천의 사기-오태백세가에 등장하는 오의 왕족으로 왕위를 끝내 사양하고, 중원으로 사절의 임무를 핑계대며 떠난 현인이고, 주공 단은 봉신연의로 유명한 은주혁명 이후 어린 왕을 보좌하여 섭정의 미덕을 남긴 왕족이었다.


비록 좋은 말로 가려했으나 중인들은 그 밑에 숨은 행간을 충분히 파악했다. 즉 덕왕의 위세가 강남에 진동할 것이라는 의미였다. 그것도 안 좋은 의미로.


주원장은 오왕 장사성을 몰락시키고 응천부에 도읍을 정하면서 두 배 세율과 함께 사민정책으로 양주 일대를 탄압했다. 그러는 한편 응천부에 막대한 투자를 쏟아부어 위세를 떨치려했다. 이 때 중국거상열전에 열 손가락 안에 꼽힌다는 심만삼이 성벽의 3분지 1을 기부한 일화는 유명했다. 심만삼은 주원장의 비위를 맞추겠다는 계산이었으나, 처음부터 찍어버린 주원장이 두고두고 기억했다. 후일 심씨 일족은 처절하게 몰락하고 만다.


심만삼의 몰락은 소주를 비롯한 강남의 후인들에게 경고가 되었다. 정난지변으로 영락제가 북경으로 천도해버리는 바람에 소주를 비롯한 강남을 촌동네로 만들겠다는 주원장의 의도는 무산 되었지만, 영락제도 만만치 않았다. 회통하를 뚫어버려 강남의 부를 북방으로 흡수해버리고 태조가 금지했던 환관을 기용함으로서 강남 인사들과 정치적으로 대립각을 세우도록 했다. 이 환관들은 정치적 식견은 없고 탐욕스러웠으나, 황제의 측근으로서 협잡과 축재에 능했고 정적을 견제하거나 제거할 때 유용한 소모품이 되어주었다. 군주 자신의 전제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천하가 신음하건 말건 환관의 횡포 하나 쯤 눈감아 주는 것은 일도 아니고, 정 지나치다 싶으면 모든 죄과를 몰아 덮어씌워서 척결해버림 되기 때문이다.


이들은 조정의 과도한 세금과 부역의 압박에 벗어나기 위해 면세해택이 주어지는 과거에 죽자사자 매달렸고 상업에도 몰두하여 거상들이 탄생하는 등, 재기에 성공한다. 비록 전통인 심가장이 몰락하고 반쯤 외부인인 대상련이 주체라는 것이 마뜩찮았으나, 골칫거리였던 상관세가를 정리해버렸으니 자신들의 세상이다. 그런 호기를 맞이할 시기에 주원장의 재래가 응천부에 떡하니 나타나버리니, 세간 이목만 아니었더라면 주씨 조상의 중팔의 대까지 두고두고 욕했을 것이다.


“덕왕부의 대소사를 총괄하시는 주 집사께서 심가장에 머물러 계십니다. 워낙 불시에 찾아오셨고 조용히 있기를 원하는지라 미처 알려 드리지 못했네요. 뵙고 싶으신 분은 나중에 배첩을 넣어보시지요.”


소재를 알려주면서 금보옥은 이들의 태반이 배첩을 넣을 것이라는 것을 장담했다. 지금은 이렇게 분개해도 뒤로는 권력에 엿가락처럼 영합하는 것이 가진 자들의 속성이니까. 그에 관해 일점의 호오도 비치지 않는 금보옥은 속내를 깊이 감추듯이 밝은 미소를 지으며 첫날 회담을 무사히 마무리했다.


금보옥은 우아하게 천천히 대청을 벗어났으나, 자기 방에 이르러서는 거의 줄달음치듯 빨라졌다. 방안으로 들어서자 당혜를 벗고, 금잠을 빼서 땅에 아무렇게나 던지며 허리띠를 풀었다. 벌어진 옷 틈새로는 밀랍처럼 하얀 피부와 봉긋하게 솟은 가슴의 계곡이 비쳤다. 금보옥은 품에서 사향 주머니를 뜯어내더니 휙하니 벗어던졌다.


침대로 돌진하는 금보옥의 가슴을 단단한 남자의 팔이 껴안으며 가슴으로 등을 껴안았다.


“나, 그 날이에요. 냄새나요.”


금보옥의 목소리는 잔뜩 갈라져 있었다. 팔을 떼어내려고 하지만 꿈쩍도 하지 않는다. 대신 귓가에 후, 하고 바람이 와 닿았다. 금보옥은 어지럼증을 느꼈다. 두 번 세 번 하자 그 느낌은 아찔함으로 변했다. 그리고 귓불 아래로 부드럽고 촉촉한 것이 와 닿았다. 금보옥은 가만히 있다가 자세를 낮춰 오른 팔 아래로 빠져나갔다. 그리고 옷을 완전히 흘려보냈다. 나신이 드러나며 약간 볼록한 사타구니가 드러났다. 예민한 후각을 가지고 있다면 그 사이에 피냄새를 맡을 수 있을 것이다. 금보옥의 가는 손가락이 보지의 틈 갈래를 훑어간다.


“손바닥보다 작은 기저귀를 차고 사람들을 만나니 기분이 참 뭣 같더군요. 상공의 아주 친절한 배려작 덕분에.”
 
금보옥의 어조는 잔뜩 신경질 적이었으나 기운이 빠져있었다. 대답이 없는 덕후에게 다가가 손가락으로 어깨를 만지더니 근육 사이의 여린 부분을 지그시 누르곤 했다. 무도자의 감각이 아니라 여자로서 남자의 신체를 접한 호기심과 애무였다. 손끝에 닿는 감각으로 만족을 못했는지 금보옥은 가만히 양손으로 덕후의 가슴을 짚은 채 서서히 자신의 몸을 포갰다. 덕후의 두 팔이 울타리처럼 금보옥의 좁은 어깨를 감싸 안는다.


“앞으로 한 달 뒤에는 똑 같은 꼴이 되겠죠.”
“싫은 거야?”
“아뇨, 그냥....저...”


금보옥은 머뭇거리다가 머리칼을 헤집는 덕후의 손길에 용기를 내듯 말했다.


“날 임신시켜줘요.”


덕후의 손길이 멈칫했다.


“왜 그런 소리를? 남자라서 잘 모르지만, 그 날과 해산의 고통은 비교할 바가 아니라는 것 정도는 아는데.”
“몰라서 물어요? 하면 그 동안은 달거리를 할 필요가 없으니까요.”
“조삼모사군. 임신하면 단순히 배만 부르는 게 아니야. 입덧을 비롯해서 여러 가지 이상 현상을 겪는다고.”
“그래도, 그냥은 안 되나요?”


금보옥은 심장박동을 들으며 이미 생리해서 없을 터인 자신의 내부가 배란된 것 같이 뛰는 것을 느꼈다.
 
“그냥요, 그냥. 아무 이유 없이.”


젖은 눈으로 재촉하듯 바라보는 금보옥의 시선에 덕후는 자신도 모르게 호흡을 정지했다. 중압감과 정서불안으로


“조금만 더 뒷날에.”
“언제?”
“안부낙도의 꿈을 이루는 순간에....그땐 얼굴 보기 지겹다고 쫓아 보내도 악착같이 곁에 있을 작정이니까.”


금보옥은 덕후의 어깨로 얼굴을 파묻었다. 남자의 체취가 느껴지면서 자신에 대한 환멸이 생겼다.


“전 아무래도 속물인가 봐요.”
“왜?”
“회담에서 사람들이 당신을 거론하니까 눈빛부터 달라지더군요. 어떻게든 끈을 대보겠다는 속셈인 거죠. 문득 그들과 비교해보니까 나도 다를 게 없어서.....그들과 격이 다르다는 증명하기 위해서 일지도 몰라요. 아마 그럴 거예요. 아무리 사향주머니를 차고 곱게 차려도 근본은 구린내 나는 천한 상인이니까, 희선 언니와는 틀리죠.”


덕후는 가만히 토로하는 금보옥의 뺨에 자신의 뺨을 포갠 채 가만히 비볐다. 목의 율동은 전신으로 번져 금보옥의 몸도 흔들렸다. 그 흔들림이 멎었을 때는 불현 듯 침대 위 였다.


“내 신분은 왕야지만 근본은 천박한 남자거든.”
“....오늘은 그냥 두세요.”


덕후는 자꾸만 밀치는 금보옥을 끈질기게 금보옥을 애무했다. 젖가슴은 물론이고 겨드랑이 그리고 척수의 부위를 무릎과 종아리까지 꼼꼼히. 금보옥은 속을 알 수 없을 만큼 어두운 인상과 끈적끈적한 느낌에 허우적거리며 의미 없는 말을 산발적으로 토해냈다. 그러면 덕후는 애무를 중단하고 타이르듯이 맞장구를 쳤다. 그것이 몇 번 반복되자 금보옥은 애무가 중단되는 것이 싫어 스스로 입을 다물었다. 지긋하고 불결한 하반신의 통증과 혈액도 덕후가 모조리 가져가는 것이 아닌가 싶었지만, 거기까지 상상한 금보옥은 스스로 너무하다고 생각했다. 다음에는 이 남자한테 잘해주어야지. 전에 해준다고 해놓고 못한 것도 있잖아. 얄미운 구석이 있긴 하지만 응석도 가끔은 받아주어도 괜찮지 않을까. 이런저런 생각의 끝에 금보옥은 잠 가루를 흡입하듯이 서서히 잠 속으로 빠져들었다.


 



 

 

 

에....체감 날짜가 한 달이 됬다능.....(삐질.;)


중도에 역사랑 경제 이야기가 좀 나왔습니다만, 시기상 혼재된 부분도 있으니까 100% 진실로 받아들이기는 마시길.(이 글은 픽션입니다.)


거의 연중에 가까움에도 댓글이 꾸준히 늘기에 좀 의아했는데....어디선가 이 글을 추천 받아서 오신 것 같습니다. 이게 팔아먹는 글이라면 안티라도 반겨야할 입장입니다만 -대차게 까주기 위해서라도 봐 줄 테니까.- 어디까지나 취향을 타는 습작이다 보니 좀 거시기하군요. (출판물이나 전연령판 같았으면 추천 해주신 분께 직접 ㄳㄳ 이러고 있을 텐데....orz 그보다 이걸 추천할 사이트라도 있기는 한가?;) 개인적으로 이야기하는 것까지야 상관없습니다만, 열린 공간에 소개는 지양했으면 합니다.


삭제한 전작의 유출 건도 있고, 별로 네이버3 밖에는 알려지고 싶지 않군요. 애당초 이 글은 볼 사람은 정해져 있으니까요. (여자가 보겠습니까, 얘들이 보겠습니까.) 저도 다른 곳에서는 이 글 내가 썼다고 말 안합니다.-_-;


 


ps - 원제(?)가 한자로 되어 있기도 하지만, 확실히 아는 사람이 아니라면 눈에 띄지 말라고 의도적으로 한글 병기 안하고 한자로 한 것입니다. 그래봐야 글쓴이로 하면 간단히 찾지만요.(....)


ps2 - 제 사전에 완결 전 리메는 없습니다. 리메한다고 그대로 아빌론 행이거나 출판->조루종결로 뒤통수 친 작자들을 한 두 번 본 게 아니라서요.ㅡㅡ^ 

ps3 - guruguru00 님 지적으로 수정합니다. 무심코 적다보니 이런 실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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