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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수과 여형사 - 시작되는 사건(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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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364 회 작성일 24-01-08 10:1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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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수가 특수과에 첫 출근을 한지 벌써 몇년의 시간이 흘렀다.


첫날 그 이후 시간이 흐르자 주혁은 진심으로 은수를 동료로서 인정해줬다.


은수는 그만큼 뛰어났으며, 또한 그만큼 많은 노력을 했었다.

 

『어이 계집애 조사하고 있던건 어떻게 됐어?』

 


결국....
최주혁은 은수를 동료로 인정은 했으나 호칭은 또다시 계집애로 돌아왔다.


은수 역시 "계집애"라는 단어가 이제는 이방인을 의미하는게 아닌 단지 동료의 별명정도라는걸잘 알고 있었기에 딱히 불만따위는 없었다. 그러다보니 어느사이인가 은수의 별명은 계집애가 되어 버렸다.

 

하지만 능력면에서나 계급에서도 특수과의 가장 고참인 최주혁 이외에 다른 동료들중에서 은수를 계집애라 부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은수를 "계집애"라 부르면 주혁이 불같이 성질을 내기도 했지만서도 이제 이 특수과에서 은수가 여자라는 이유로 은수를 얕잡아 볼 사람은 아무도 없었기 때문이다.


지난 세월동안 그만큼 은수의 노력과 실력은 출중했었다.


『아..안그래도 오늘 국과수에서 와보라고 하던데.. 뭔가 나왔나봐.. 같이갈래요? 』


『아 난 서류 마무리해야돼 』


『에이~ 선배 그러지말고 같이가자~~  』


『야 안돼 이거 마무리해야..  』


결국 그렇게 은수에게 질질 끌려나가는 주혁이었다.


『그런데 너 언제부터 은근슬쩍 말이 짧아지고 있는것 같다??  』

 


얼마전 변두리 지역의 학교에서 사건이 하나 발생하였다.

이른바 "왕따"를 당하던 학생이 어느날 수업시간에 갑자기 칼을 들고 같은반 학생 대여섯명을 찔러 중상을 입힌 사건이었다.


여기까지는 딱히 특수과가 관여할 일도 아니었다. 이미 범인도 나왔고 증거와 증인까지 그리고 그 범행동기까지 모두 명확하게 밝혀진 사안이었으니 따로 수사할 필요도 없는 사건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그 사건 이후에 발생하였다.


친구들에게 중상을 입히고 자신도 병원에 입원해 있던 그 학생이 갑자기 병원에서 돌연사 한것이었다. 긁히거나 타박상을 입은것 이외에 큰 부상은 없었던 그 학생이 돌연 사망한것도 의아한 일이지만 사망원인은 의사들도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들었다.


그 학생의 사망원인은 온몸에 혈관이 터지고 근육이 파열되어 사망했다는 것이다.


더군다나 그 학생은 죽기 바로 전까지 고통을 호소하거나 특별한 증상을 보이지 않았었는데 갑자기 극심한 고통을 호소하다 사망했다는 것이다.


추후에 부검 결과가 나왔으나 이렇다할만한 사망 원인은 결국 밝혀내지 못했었다.

 

그런 사건이 있은지 얼마후 또다시 비슷한 사건이 발생하였다.


비슷한 지역에서 다른 학교 학생들끼리 시비가 붙어 패싸움이 발생한 사건이었는데
이 패싸움에서 3명이 사망했고, 그들의 사망은 얼마전 "왕따"사건에 의해 죽은 학생의 사망원인과 일치했다.


결국, 사건은 특수과로 넘어오게 되었고, 특수과에서도 이렇다할 단서를 찿지 못하고 있던 중에 부검자료를 살펴보던 은수의 눈에띄는 부분이 있었다.


한 학생의 부검자료에서 어떤 특정한 성분이 일반인의 기준치에 비해 훨씬 넘어서고 있었던 것이었다.

 

다른 학생들의 부검자료에서도 이와같이 기준치를 훌쩍 넘어선 성분이 존재하고 있었지만 불행히도 각기 다른 성분이었다.

 

은수는 여러명의 의사에게 이 결과를 보여주며 자문을 구했지만 자문을 구한 의사들의 대답은 한결같았다.

 

 

각각의 성분들이 기준치를 훨씬 상회하고 있는건 사실이지만 이 성분들이 기준치를 많이 넘어섰다고 해서 사람이 죽는 경우까지 가는 경우는 없다는 대답이었다.

 

 

더구나 혈관이나 근육파열이 사망원인 이었으니 이 성분이 기준치 초과라는 것과 사망원인은 일치할수 없다는 이야기였다. 세사람에게서 나온 성분 모두 그런 대답을 들었다.

 


어떤 단서도 얻을수 없자 은수는 끙끙앓기 시작했다. 사무실에서도 집에서도 온통 그 생각 뿐이며 수백번도 넘게 자료를 보고 또 봐도 새로운 단서는 나타나지 않았다.

 

 

그날도 집에서 자료를 뒤적이며 한숨을 푹푹 쉬는 은수에게 같이 살고 있는 동생 은진이 차를 타주면서 우연히 피해학생의 사진을 보게 되었다.

 


은진은 약간 온전치 못했다. 어떤일로 인해 과거의 기억을 잃고 대인기피증 증세가 있어 밖에 나가는 것을 싫어하는 편이었고 모든 말을 문장이 아닌 단어로 짧게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나마 말수도 거의 없었다.

 


병원에 입원해 있었던 은진의 병세가 특별히 호전될 증상이보이지 않자 은수는 오히려 폐쇄적인 병동보다는 환경을 바꾸어 집에서 통원치료 해보는 것이 어떻겠냐는 제의를 했고 생활자체에 문제가 있었던건 아니었기에 되도록 은진에게 바깥구경을 자주 시켜주는 조건으로 허락해 현재 은진은 은수와 같이 살고 있었다.

 

 

그런 은진이 은수의 사건자료 사진을 보고 무서워 하며 몸을 떨었다.


아차 싶었던 은수는 사건 파일을 덮어두고 은진을 꼬옥 안아주며 은진을 안심시키려 했다.

 

은진은 가늘고 떨리는 목소리로 은수에게 안겨 사진파일을 가르키며

 


『마...마약...마약.. 』

이라는 단어를 반복했다.

 

 

그 후에 은수는 도저히 더이상의 단서가 잡히지 않자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각 부검자료에서 기준치 이상으로 나온 성분들을 모두 분류하고 그 분류결과를 가지고 국과수에 이 성분들로 시약을 만들어 쥐들에게 실험해줄것을 요청했다.

 


그결과가 오늘 나온 것이다.


『좋은결과와 나쁜결과가 있는데 어떤것부터 말해줄까?  』


연구원은 은수를 보자 결과이야기를 하는데 뜸을 들였다.


『좋은거요~  』


은수는 망설임 없이 이야기 했다.


『은수씨는 언제나 해맑네 그래 』


『너무 해맑아서 탈이죠 』


연구원의 말에 옆에있던 주혁이 한마디 보탰다.

 

『좋아 잘들어 좋은소식은 은수씨가 원하던 결과를 얻었다는거야 』


『우와~ 정말요?  』


은수는 자신이 가지고 싶어하던 것을 가지게된 소녀마냥 좋아했다.


『응..우연히 얻은 결과이긴 하지만 은수씨가 건네준 시약을 여러가지 조합으로 배합을 해봤는데 그중에 한 시약을 주사한 쥐가 그들의 사망원인과 아주 유사한 결과가 나왔지  』


『음...그럼 나쁜소식은요?  』


이번엔 주혁이 질문했다.


『그게 말이야... 결과는 유사하게 나왔는데 쥐한테 주사하자마자 죽었어  』


『쥐하고 사람하고 경과시간 차이가 나지 않나요?  』


『응 그렇지 쥐가 금방 죽었다고 해서 사람도 금방 죽는다는 보장은 없지. 그래서 조금 더 큰 짐승들에게도 실험을 해봤는데 역시나 투약하자마자 죽었어  』


『사람한테 실험해 볼 수는 없지만 이정도면 사람도 투약하자 마자 죽는다고 보는게 옳아  』

 

 

 

사무실로 돌아가는 차안에서 은수는 아무말없이 곰곰히 생각에 잠겨 있었다.

 

 


성과가 아주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최소한 이런게 원인일 수도 있겠다..라는 것은 건졌으니까..하지만 결국 사망학생들이 성분이 같은 무언가를 먹고 죽었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이야기였다. 주사하자마자 죽었다는 것은 먹으면 죽는다는 이야기이고 결국 그 말은 자살했다는 이야기 밖에 안되는 것뿐이니까...

 

 

 

은수의 실망한 표정을 보면서 주혁이 먼저 말을 꺼냈다.

 

 

『그렇게 시무룩해 있을 필요없어. 니 덕에 그래도 최소한 그런 이유로 사망할 수도 있다는 것정도는 알았잖아 이정도로 된거야 우리가 그런 성분들이 어떻게 몸에서 작용해서 그런 결과까지 발생하게 했는지 밝힐수는 없는거아냐 이건 이제 우리손을 떠난거야 그냥 의학적인 학문적인 차원의 문제라고 』

 


마치 주혁이 말이 은수에게는 들리지 않는듯 은수는 대답이 없었다.

 


한참을 조용히 있던 은수가 갑자기 말을 꺼냈다.


『마..약... 』


『뭐?  』


은수의 뜻밖의 말에 주혁은 멍하니 은수를 쳐다보았다.

 

『선배...이건 이건 정말 만약의 가정인데말야  』


주혁은 은수의 말에 귀를 귀울였다.


『만약에 어떤 약이 있다고 가정하고 말이야 죽은애들이 그 약을 먹고 죽었다면? 』

 

 


『에이 말도 안되지 아까 연구원도 말했잖아. 그거야말로 자살을 했다는 이야기인데 패싸움했던애들은 그렇다 치더라도 첫번째 죽은애는 병원에 있었어 그것도 정신감정때문에 정신병원에 경찰하고 같이 감금되어 있었단말이야 설사 그약이 있다해도 그애가 그걸 어떻게 거기까지 가지고 들어가겠어? 더군다나 나중에 죽은 애들까지 생각하면 패싸움하다 죽을려고 약먹고 죽는 애들이 세상에 어딨어? 』

 

 


『선배 내가 뽑은 그 성분데이타말야 학생들마다 기준치 이상의 성분은 제각각 이었잖아 중복되는것도 있었고 말야  』

 

『그런데? 』


『다른 성분들로 조합해서 만들었는데 같은결과가 나왔잖아 만약에 우리가 찿지못한 어떤 성분이 있고 그 성분이 그런효과를 나중에 나타나게 한다면?  』


『흐음..충분히 가능성은 있겠네 그런데 우리가 그걸 어떻게 찿아? 의사들도 못찿는걸  』


은수는 주혁을 바라보며 씨익 하고 웃었다.


『우리는 못찿지...나도 의학적인 부분까지 알고 싶지는 않아. 하지만 몇가지 알아보고 싶은게 있어. 그때까지만 오늘 결과 보고하지 말아줄수 있어요? 』


『너도..참...사서 고생이다..정말  』


『다~ 누구한테 잘못 배워서 그렇다죠?  』


은수가 주혁을 보며 웃었다.


『아..맞다 야 계집애  』


『네?  』


『너 왜 중간중간 반말하는건데?  』


『제가요?  언제요?』


은수는 자기가 언제 그랬냐는듯 정말로 모른다는 듯 똘망똘망한 눈으로 주혁을 바라보았다.


『이게 또 모르는척 하고 있네!!  』


『처~엉~사안~~~이이~~~  』


주혁이 짐짓 화내는 척을 하자 은수는 딴청부리며 차창밖을 바라보고 70대 할아버지가 목욕탕에서 부를법한 노래 아니 곡조를 흥얼거리기 시작했다.


『이 계집애가 진짜!!!  』


『뭐..선배가 계집애라고 안부르면 한번 생각해볼께요 헤헤헤  』


은수는 운전하고 있던 주혁의 팔을 꽉 끼어안고 웃으며 말했다.


『악...으악..야야 무슨짓이야!! 사..사고나!!!  』


은수는 곰같이 큰 덩치에 은수가 친구끼리도 무난히 할 수있는 스킨쉽이라도 살짝 하면
당황해서 어쩔 줄 모르는 주혁을 놀리는게 재밌었다. 그리고 그런 주혁이 좋았다.

 

주혁도 항상 투덜대고 틱틱 거리지만 그래도 살갑게 다가와주는 은수가 싫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서울지방경찰청 특수과 회의실


과장과 주혁 은수를 포함한 특수부 형사들이 회의실 탁자를 중앙에 두고 둘러앉아 있었다. 탁자의 중앙에는 몇알의 하얀색의 알약이 증거수집용 비닐봉지에 들어있었다.


모두들 심각한 표정이었다.

 

『이게 그 약이란 말이야?  』


국과수 결과보고서를 읽던 과장이 입을 열었다.


『예 과장님 』


은수도 분위기때문인지 어두운 표정으로 대답했다.

 

 


은수는 그날 국과수 연구원에게 이야기를 듣고 돌아오면서 왠지 자꾸 은진이 사진을 보면서 했던말이 마음에 걸렸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확인해보자는 생각으로 사망했던 아이들의 집과 주위 친구들을 탐문하면서 건강보조제나 집중력을 향상시켜준다는 등 모든 약들을 수집하던중 한가지 출처가 불분명한 약을 얻을 수 있었다. 패싸움하다 사망한 아이중 한명의 집 침대의 아래쪽에 작은 상자가 테이프로 붙어 있었고 그 안에 알약이 십수알 들어있었던 것이다.

 

 

 


가끔씩이지만 공부잘하는 약, 집중력을 높여주는 약, 건강보조제등의 이름을 가장한 값싸고 저질의 마약이 학생들 사이에 유통되기도 하였고 그런 보조제들로 인해 오히려 건강을 잃는 학생들도 종종 나왔으나 학생들은 스스로 보조제정도의 약으로만 알고 있지 마약으로 인식하는 경우는 많지 않았다.

 

 

 

 

약 성분의뢰를 한 결과 약의 성분이 전에 국과수에 의뢰해서 만들었던 시약과 상당히 비슷한 성분들로 이루어져있는데다 실험투약시 몇개체는 전과 똑같은 증상을 보이며 죽었으나 몇몇은 오래도록 살아남았다.

 

 

 

다만 살아남은 쥐들의 경우 몇번의 투약후에 투약을 중지했을시 몇개체는 살아남았지만 몇개체는 역시 같은 증상을 보이며 죽었다.

 

 


이 약의 성분들이 어떻게 해서 저런 현상을 유발케하는지는 조금 더 많은 연구가 이루어져야 할 부분이며 마약감별에도 나타나지 않는지라 현재로서는 투약자와 비투약자를 구분할 방법이 없다는 보고를 받았다.

 

 

 

『현재까지 사망자의 집과 주위 친구등을 수색 탐문해서 그들이 복용하는 모든 약종류와 보조제 종류들을 수집해봤지만 같거나 비슷한 종류의 약은 발견되지 않은걸로 보아 비밀스럽게 소수에게만 약이 공급되는것 같습니다 』

 

『출처는 짐작가는데가 없나?  』

 

 

『각 경찰서에 협조를 요청해서 그 일대에서 마약판매 혐의가 있었던자들을 몰래 미행하고 조사해봤지만 학생들과 연결되는 부분은 없었습니다. 우리가 모르고 있는 새로운 루트가 있던지 희박하기는 하나 학생들 자체제작했을 가능성도 무시하기는 어려울듯합니다. 』

 

『음...  』

 


과장의 입에서 신음소리가 흘러나왔다. 한참의 침묵후에 과장이 말을 이었다.

 

 

 

『일단 최형사와 신형사가 맡아 최형사는 그일대뿐아니라 전체적인 마약판매 전적이 있는 놈들 위주로 새로운 마약에 대한 정보를 알아보고 지금까지 학생들에게 마약을 팔았던 전과가 있는 놈들 뒤져봐. 신형사는 학생들 쪽을 맡아 그 지역 모든 병원에 몇가지 주요성분들 알려주고 병원에 오는 환자들 중 비슷한 증세가 있는 환자가 있으면 언제든 바로 보고 올릴수있도록 공문 띄우고 』


 



 

 

 

 

 

 

 

은수는 지친몸을 이끌고 집으로 돌아왔다. 깔끔하게 마무리 짓고 싶었던 사건이 더 큰 사건이 되어서 다시 돌아온 셈이었다.


『찰칵  』


문이 열리는 소리가나자 은진이 쪼르르 달려와 은수에게 안겨왔다.


『어이구 우리 은진이 심심했쪄?  』


은진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끄덕 거리며 손가락으로 식탁을 가리켰다.


식탁위에는 저녁이 차려져 있었다.


은수는 항상 말없이 자신을 믿고 의지해주는 은진이 고맙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했다.


형사란 직업이 일정하게 출퇴근 할 수 있는 직업이 아니기에 바쁘면 몇일이고 집을 비워야하는 경우도 허다했다.


요즘처럼 바쁜날에는 은진을 괜히 병원에서 데려왔나 싶기도 하다.


차라리 병원에 있으면 의사나 간호사나 환자들이라도 볼것을....


밖에 나가는것도 싫어하는 애가 집에서 혼자 얼마나 외로웠을까 싶은 생각에 은수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밤마다 외로움과 무서움에 떨어야했던 자신이 생각나자 은진을 꼬옥 안아주었다


『우리 이쁜 은진이...고마워... 그리고 미안해  』

 

은수는 식사와 샤워를 마치고 은진과 같은 침대에 누워있었다.


『오늘은 말이야.....  』


은수는 밖에서 있었던 일에 대해 재잘재잘 은진에게 이야기해주었다.


은진은 말한마디 없이 그런 은수의 이야기를 잘도 들어주었다.


『그래도 우리 은진이 덕에 사건하나 해결했다~  』


은수는 은진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면서 이야기했다.


문득 은진이 그때의 사진생각이 났는지 몸을 웅크리며 은수의 품안으로 파고 들어왔다.


『괜찮아 은진아 언니가 있자나 』

 

은수는 눈을 감았다. 몇일만에 은진의 따뜻한 온기가 전해져 오자 은수는 오래전 일이 생각이 났다.

 

사실 은진은 은수의 친동생은 아니었다.


은진의 부모님은 모두 돌아가셨다.

 

기억이 잘 나지 않을정도로 어린시절에 어머니를 여의었던 은수가 너무 좋아했던 아버지는 경찰이었다.


은수가 경찰대학에 가게 된것도 어쩌면 아버지를 너무 그리워 했기 때문이라해도 은수는 구지 부정할 생각은 없었다. 은수가 고등학교 다닐때 아버지는 순직하셨다.


은수는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것같은 심정이었다.

 

세상에서 의지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 아버지였고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사람도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도 아버지였다. 아버지는 은수의 삶에 커다란 자랑거리이자 버팀목이었다.

 


그런 아버지가 어느날 갑자기 돌아가신 것이다.

 

 

 

어린 나이에 혼자가 된 은수의 생활은 아버지의 친구분이셨던 지금의 특수과 형사과장이 은수가 공부에만 신경쓸수 있게 경제적으로 충분히 도와주셨기에 큰 어려움은 없었으나 항상 밝게 웃으시던 아버지의 존재를 더이상 느낄수 없음에 언제나 외롭웠고 이제 이 세상에는 은수 혼자라는 사실에 집에 혼자 있는게 너무 싫고 무서웠던 은수였다.

 

 


그렇게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경찰대학에 입학하게 되었다. 남자들이 중심이 된 세계에서의 고된 생활이 힘은 들었지만 은수에게는 차라리 집에 외롭고 무섭게 혼자 있는것보다는 대학생활쪽이 훨씬 좋았다.

 

 

그렇게 대학을 졸업하고 은수는 아버지의 친구분이 계신 곳에 발령신청을 했고, 형사과장은 처음엔 만류하였으나 결국엔 허락하였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특수과를 거친 경찰들은 별 다른 잡음없이 자연스레 그들의 능력을 인정받게되고 그로인해 승진에 유리한 경력이 되지만 경위이상만이 지원 가능했기에 나이가 조금 있는 사람들의 경우 구지 형사반장의 자리를 마다하고 그 자리에가서 다시 형사생활을 하고 싶어하는 이는 없었으며 경찰대학졸업생들도 대부분 그렇게 고생하는 곳보단 조금 더 편한곳으로 발령받길 원했다.

 

 

 

가끔 혈기왕성한 몇몇 졸업생들이 지원을 하기도 했지만 거의 대부분 채 한달을 버티지 못하고 나가 떨어지기 마련이어서 별 문제없이 은수는 특수과에 들어올 수 있었다.

 

 


특수과에서 순탄치 않은 첫날을 보낸 은수가 지친몸을 이끌고 집에 왔을때 은수는 대학생활을 하는동안 잊고 있었던 외로움과 두려움 그리고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이 한꺼번에 엄습해 오는 바람에 하루종일 피곤했음에도 불구하고 잠을 이룰수 없었다. 그렇게 은수는 밤이 새도록 울었다.

 

 


그날 이후 은수는 집에들어가는 날보다 서에서 밤을 새거나 잠복을 자청하는 일이 늘어났다.

 

그러던 어느날 용의자를 잡기위해 기습적으로 침입한 성매매업소에서 은진을 만났다.

 

용의자를 잡고 성매매를 하고있던 몇몇의 여자들과 업주의 신병을 확보하고 돌아서는 순간 은수는 무슨 소리인가를 들은것 같았다.


주의를 조용히 시키고 귀를 귀울여 봤지만 특별히 들리는 소리는 없었다.


무언가 찜찜한 느낌을 지울수 없었던 은수는 업소를 작은것 하나 놓치지 않고 다시 뒤지기 시작했다.

 

그러던중 바닥과 비밀스럽게 연결되어있던 지하실에서 은수는
온몸에 멍이들고 발가벗겨진채 재갈이 물려있는 은진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게 은진과의 첫만남이었다.


어떻게 그 찰나에 일어난 소리가 은수의 귀에 들어왔고, 또 은수는 왜 그 소리가 다 뒤져본 업소를 다시 처음부터 샅샅히 뒤질정도로 신경이 쓰였던 것일까?

 


처음에는 이에대해 별다른 생각을 하지 않았던 은수지만 은진이 동생이 되고 가끔씩
외로움을 무서워하는 은수를 위해 아버지가 보낸 선물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종종 들었다.

 

 

그날 처음 본 은진의 모습은 처참하기 그지 없었다.

 


이런 시대에도 이런일이 있을수 있을까 싶을정도로 은진은 마치 죽어가는 사람처럼 비쩍 말라 있었으며 재갈을 물린 입주위가 피멍으로 얼룩져 있었고 어두운곳에 오래 있어서인지 앞도 잘 못보는듯 보였다. 작은 움직임조차 힘겨워 보였으며 제대로 씻기지도 않았는지 다리사이에 하얗게 말라붙어 있는 이물질의 흔적을 미루어 보아 성폭행도 당해온듯 보였다.

 

 

 

은수는 은진에게 다가가 은진의 상태를 보고 소리쳐 구급차를 요청하고 자신의 옷을 벗어 은진을 덮어주었다. 옷을 덮어주었음에도 부들부들떨고 있는 은진을 보고 윗층의 방에 있는 이불이라도 덮어주려고 자리에서 일어서려고 하는 순간 은진은 은수의 팔을 잡았다. 다 죽어가는 사람처럼 보이는 사람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은진은 은수의 팔을 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은수는 마른침을 삼켰다.

 

 


왜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 모르겠지만 다 죽어가는 몸으로 필사적으로 은수를 잡고 있는 은진의 모습에서 억지로 이팔을 떼면 은진은 곧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은수는 은진에게 손을 잡힌채 병원까지 따라 갈 수 밖에 없었다.

 

 


병원에서도 진정제의 효과가 나타나기전까지 절대 은진은 은수의 손을 놓지 않았다.


은진이 잡은 은수의 팔에는 은진이 잡았던 부위에 피멍이 들어있을 정도였다.


그날 병원에서 사무실로 돌아온 은수에게 업소주인은 피떡이 되도록 얻어맞았다.


아마 주혁이 말리지 않았으면 정말 죽였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몇일후 병원을 찿은 은수는 의사에게서 극심한 충격과 고통으로 인한 일시적인 기억상실로 보인다는 말을 했다. 오랫동안 강압적이고 고통속에서 살아왔고 그것이 일반적인 상식에선 상상하기 어려운 상황이라 그 기억에서 벗어나지 못하는게 원인이 아닐까 짐작된다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어쩌면 자신도 모르게 스스로 고통스런 기억과 함께 과거의 기억을 봉인하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이야기와 함께...

 


은수가 병실에 있는 은진을 보았을때 은진은 침대구석에 다리를 모으고 쭈그리고 앉아서 다리사이에 머리를 박고 있었다.

 


의사는 억지로 붙잡아 진정제와 영양제를 주고는 있지만 그 어느누구의 접근도 허락하지 않고 있다고 문에 나있는 조그만 창으로 은진을 보고 있는 은수에게 말했다.

 


은수는 은진이 측은하게 느껴졌다. 은수는 은진의 방에 들어가고 싶다고 의사에게 이야기했다. 의사는 잠시 만류했으나 은수가 뜻을 굽히지 않자 이를 허락했다.

 


은수는 이번에는 은수가 은진의 손을 잡아주고 싶었다. 그리고 말해주고 싶었다.


괜찮다고.. 이제 정말 괜찮다고...


문이 열리고 은수가 병실안으로 들어서자 문쪽을 흘깃 쳐다보던 은진이 갑자기 은수에게 달려들었다.

 

지켜보던 의사와 조무사들이 깜짝놀라 은진을 제지하려 했지만 은진은 어느새 덮칠듯이 은수에게 다가왔고 은진은 이번엔 은수의 다리를 끌어 안았다.


그때 처음 보았던 은수를 기억하고 있었던 것일까?


은수가 허리를 굽혀 은진의 손을 잡아주자 은진이 고개를 들어 은수를 쳐다보았다.


은수는 그런 은진을 조용히 안아주며 등을 토닥여 주었다.


한참을 둘은 그렇게 있었다. 그리고 잠시후에 은수는 은진을 침대에 데려갈 수 있었다.

 

은수는 의료진에게 은진의 치료에 협조하겠다는 약속을 하고 병원을 나왔다.


은수는 특별히 밤을 새거나 잠복을 해야하는 일이 없는 날에는 어김없이 병원을 찿았고 은진의 병세도 확연히 좋아지기 시작했다.

 


조금씩이지만 말도 하기 시작했고 여전히 다른사람들을 만나는건 싫어하는 편이었지만 담당의사나 간호사등 자주 보는 사람들을 거부하는 일은 없었다.

 


은수도 은진과 같이 있는게 좋았다. 처음에는 측은한 마음에 치료를 도와줄 목적이었다. 또한 혼자 집에서 밤새 싸워야할 외로움과 두려움이 싫어서도 은진을 찿아왔다.

 


하지만 어느샌가부터 은수가 일을 하고 있을때도 조금씩 병원에 있는 은진이 신경이 쓰이고 있다는걸 느끼고 있었다.

 


조금씩 시간이 흐르면서 은수는 자연스레 은진의 보호자가 되었다.

 

나이도 이름도 고향도 모르지만 은진과 함께 있는 시간이 좋았다. 그리고 은수는 은진에게 신은진이라는 이름을 주었다.

 

그리고 그때부터 은진은 은수의 소중한 동생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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