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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소설-내가 만드는 이야기

德厚の野望 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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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245 회 작성일 24-01-08 09:37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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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마이 숄더!”


뜻밖의 외침에 강윤식을 비롯한 초제학, 황철웅은 어깨를 움찔했다. 자신들이 들어간 무망루는 어깨가 서로 부딪칠 만큼 객들이 많았지만, 다들 고수 반열에 든지라 삼촌도 안 되는 공간으로도 편히 서 있었다. 셋의 눈길이 소리가 난 입구로 향하자 귀공자 차림의 젊은이가 어깨를 움켜쥐고 있었다. 부딪친 상대는 새집처럼 억센 수염의 장한이었다.


수염장한은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귀공자를 보았다. 무망루에 삼선녀를 보러 왔다가 성긴 인파에 답답하여 덩치를 믿고 사람들을 밀치던 중이었다. 그러던 중 웬 비실이를 쳤더니 요상한 소리를 하는 것이다.


“뭐라 씨부렁거리는 거야? 한 번 해보자는 거냐?”
“앙~? 유 스핀 미 롸잇 라운? 베이비 롸잇 라운?”


어깨를 움켜쥐고 호들갑을 떨던 귀공자가 삐딱한 자세로 연신 손가락질을 하며 노려보자 수염장한은 가소롭기도 하고 황당했다. 한주먹 감도 안 되는 녀석이 대체 어느 지방 방언을 써먹는 건지 알아들을 수 있어야지.
 
“꺼져! 새꺄!”


무릎을 굽히더니 발을 쑥 뻗는다. 가슴팍을 걷어차 밀치려는 것이다. 그러자 귀공자의 허리가 뒤로 쑥 굽혀지더니 발길질을 피했다. 각법에 자신 있던 털보장한은 흠칫했다.


-철판교?


다리를 굽히며 팔꿈치를 굽힌다. 일어서는 즉시 강권으로 반격을 가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쿵! 소리와 함께 귀공자는 뒤통수를 땅에 부딪쳤다. 어찌나 아팠는지 뒤통수를 부여잡고 땅바닥을 데굴데굴 굴렀다. 사람이 밀집해있던 터라 귀공자는 무수한 다리에 채이게 되었다.


“나려타곤을 제대로 펼치는군!”


지켜보던 황철웅이 혀를 차자 초제학이 넌지시 권했다.


“구해야하지 않을까. 주 집사라면 귀빈이네만.”
“어쩔 수 없군. 부탁 하네, 철웅.”
“이럴 때 만만한 게 나지.”


황철웅은 혀를 찼다. 곱상한 강윤식이나 먹물 티가 나는 초제학은 안면력(?)이 약했으므로 허우대가 가장 좋은 황철웅이 종종 이런 일에 나서곤 했다.


“그쯤 해두지! 그 사람은 우리가 아는 사람이오.”


황철웅이 얼굴에 잔뜩 힘을 주며 수염장한에게 일갈했다.


“그대는 뭐하는 작자요?”
“황가 성을 쓰는 철웅이라고 하오.”


황철웅의 말이 끝나자 주루에서 웅성임이 일었다. 심가장의 비무초진과 상관세가의 전쟁에서 삼공자의 명성은 떠오르는 신성처럼 쟁쟁했다.


패도무쌍 용위수를 꺾고 대상련의 숙적인 상관세가를 무너뜨린 금보옥이 가장 유명해질 법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십패나 권세가들 사이에서였다. 련주라는 입장 상 저자거리에 맨 얼굴로 외출할 일이 거의 없기에 왕후장상처럼 뜬구름과 같은 존재였다. 염미홍과 소월하, 신도형욱의 경우에는 조력자의 입장에 있고, 덕후와 우희선의 경우에는 아예 알려지지도 않았다.


그에 반해 삼공자는 현장에서 뛸 일이 많았고, 저자거리에 나도는데 부담이 없었다. 그렇다보니 집중 조명을 받게 되고 강호의 호사가들의 입담에 많이 오르락내리락 하여 양주 일대에 삼공자를 모르면 간첩이었다.


익히 들은 이름인지 수염장한은 걸걸한 어조로 툭 뱉듯 말했다.


“필부는 한맹이라고 하오.”
“한 형이셨구려. 저 자의 무례를 대신 용서해주시기 바라오. 원하신다면 응분의 사례를 해드리겠소.”
“미트스핀!”


귀공자, 덕후가 벌떡 일어나며 부르짖자 황철웅은 분위기 파악하라는 듯 혀를 찼다.


“농은 그만하고!”
“실례했소. 개인적으로 효험 있는 주문을 외우던 중이었소. 그게 저 사람과 부딪치는 바람에 깨진 터라 잠깐 흥분했소.”


정색을 하고 공손히 사과를 하니 한맹도 누그러졌다. 화해무드가 형성되자 장내의 긴장도 자연 풀렸다. 유일하게 인파 틈에 있던 소월하의 입술이 삐죽였을 뿐이었다. 한맹은 다음부터는 주의하라는 말과 함께 인파 속으로 사라졌다. 덕후는 한맹의 등짝을 그윽한 눈으로 보다가 황철웅에게 달라붙듯이 가까이 했다.


“위기에 구해주셔서 감사하오.”
“아, 알았으니 좀 떨어지쇼.”


여태 그 의혹을 버리지 못한 터라 황철웅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손사레를 쳤다. 심가장 비무초진에서 첫 만남 이후 셋이 덕후에게 가진 인식은 수상쩍은 한편이라는 것이다. 금보옥이 굉장히 아끼는 최측근이라는 것이 전부였다. 황철웅은 혼자 덕후를 상대하기 부담이 갔는지 강윤식과 초제학을 끌어들였다. 덕후는 떨떠름한 안색의 둘을 두고 제 딴에는 살갑게 통성명을 하더니 슬쩍 접근한 목적을 꺼낸다.


“그런데 세분이 여긴 어쩐 일이오?”
“주 형은 삼선녀를 보러 온 것이 아니오?”


강윤식이 묻자 옷을 툭툭 털던 덕후는 고개를 갸웃했다.


“꼭대기 층의 경치가 좋다고 들어서 온 것이오. 그런데 인파가 왜 이리 많은지. 설마 여기 있는 사람들 전부가 삼선녀를 보러 온 것이오?”


설명이 필요한 것 같자 초제학이 헛기침을 하고는 말문을 열었다. 


세 달 전에 세 재녀才女가 무망루에 올랐다. 하나 같이 특징을 갖춘 절색이고 세도깨나 부리는 집안인지 적지 않는 호위를 데리고 5층을 전속 예약을 한다는 것이었다. 그녀들을 본 한 백면공자가 넌지시 마음을 움직여 볼까하고 시를 읊어보다가, 시제를 두고 내기하는 모양새로 흘렀고, 결과는 백면공자는 창피로 끝나고 말았다. 그러나 그 모습을 보고 미녀에 대한 욕심과 호승심이 불붙은 남자들이 문무를 두고 내기를 하게 되었고, 이제는 행사처럼 돼 버린 것이었다.


“도전 항목은 기(바둑), 시, 금, 화 뿐 만 아니라 무공도 해당 사항이 된다오. 단 무와 진법에 대해서는 그녀들이 직접 나서지는 않고 훈련시킨 호위무사들이 대신 하지만. 순번을 받은 자들은 5층으로 올라갈 수 있소.”


초제학은 순번 패를 보이며 말을 맺었다. 재미있는 어장관리라 생각하던 덕후는 그러나 겉으로 드러나진 않고 어디까지나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묻는다.


“세 분은 삼선녀를 직접 본 모양이구려?”
“그녀들은....아, 직접 보는 게 낫겠군.”


초제학은 입구 방향으로 손바닥을 보이며 가리켰다. 그러자 아까 오전에 보았던 청, 녹, 황의 청년검수들의 호위를 받으며 입장한 세 미녀가 등장했다. 가운데 있는 청의미녀는 흑 비단 같은 머리칼과 하얀 피부 그리고 날씬한 몸매가 제비를 연상케 하였고, 오른 쪽의 황의미녀는 약간 처진 눈에 나른한 듯한 인상이었으나 육감 진 몸매와 빨간 입술이 농염한 색기를 감돌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왼편의 녹의미녀는 풋풋한 청사과와 같았는데 머리를 양 갈래로 땋아 깜찍해보였다.
 
“방명들은 청, 황, 녹 순으로 추소연, 반옥령, 장미미라오.”
“초 형은 어느 쪽이 취향?”


초제학에게 묻자 초제학은 머뭇거리면서 반옥령을 지목했다. 덕후가 둘에게 돌리자 강윤식은 추소연을, 황철웅은 장미미라고 밝혔다. 덕후는 부채 살로 어깨를 툭툭 치다가 말했다.


“진지하게 뜻이 있다면 소생이 월하노인이 될 의향이 있소만.”


셋은 반신반의했다. 덕후의 실력이 영 미더운 것은 둘째 치고, 남아라면 하나같이 노려볼만한 미녀들을 뒷전에 놓는다는 것이 이해가 안 갔기 때문이다. 그러나 덕후로서는 세 미녀는 어차피 그림의 떡에 불과했다. 내연을 맺은 여인들도 하나 같이 정치적 안배를 깔아두고 있는데, 순간의 변덕으로 꿀꺽했다가는 암암리에 정한 서열과 지분이 엉망이 되 버리기 때문이다.


막후 조종을 지향하는 덕후의 입장 상 아무 미녀(?)라고 안을 수는 없었다. 그리고 삼공자가 금보옥과 잦은 만남을 가지 게 되면, 모르는 사이에 연심이 싹트지 말란 보장이 없지 않은가. 딴 생각 못하게 말뚝을 만들어주고, 삼선녀의 내력을 따로 알아볼 필요 없이 이들을 통한다면 접점도 깔아두고 일석다조이다.


세상에 마음에 안 든다고 위협이 될지도 모른다고 바로 죽일 수는 없는 노릇.


-심가장 일로 충분하고.


금보옥의 자리를 위협할 수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무고하게 팽시켰지만, 시간이 많이 주어졌더라면 다른 결과를 만들었을지도 모른다. 그쯤에서 덕후는 생각을 끊었다. 모든 일을 예측하고 변수의 무한소수점까지 계산하며 완벽을 기하고자 한다면, 인간의 틀을 벗어던져야했으므로.


“크흠! 나는 동행이 있어서 말이오.”


덕후가 한 쪽을 가리키자 덕후와 일행이 아닌 척 떨어져 있던 소월하가 살짝 외면하며 걸어나왔다. 소월하를 발견한 셋은 저마다 포권을 하였다. 눈 앞의 소녀는 천하문의 2인자이자 상관세가와 일선 전투를 실질적으로 지휘한 지낭智囊이었다. 셋의 혁혁한 무훈武勳도 내실을 알고 보면 소월하와 함께한 탓이었다.


그럼 련주님은? 하는 듯한 눈빛이 덕후에게 쏟아졌지만 장본인은 정작 어깨만 으쓱했다. 알아서 판단하라는 뜻이었다. 다른 오해(?)보다는 월하노인의 뜻에 속셈이 없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으로 충분했다.


“헌데 무엇으로 겨룰 참이오?”
“우리들한테 자신 있는 게 무공 아니겠소.”
“광의적이군. 논검論劍 도 있고, 무리武理도 있고, 백타와 진법도 있을 텐데.”


덕후가 자세한 설명을 요구했으나 셋은 귀찮아하지 않고 성실히 답했다. 어쨌든 도와주기로 했으니까. 사실은 덕후가 아니라 혹시나하고 소월하에게 의지하고 있는 것이지만.


“진법으로 겨루네. 듣자하니 삼선녀께서는 절전된 칠성표괴진을 복원했다고 하더군. 이 진법에는 무림인이 서른 명 이상 도전했고, 개 중에는 일류 고수도 넷은 있었지만 끝내 격파하지 못했다지.”
“오호, 그렇군. 진법이라면 여기 소 군사가 전문이지!”


덕후가 호들갑을 떨었다. 귓전으로 날카로운 전음이 들린다.


-편한 대로 가져다 붙이지 말아요.
-그렇게 매정하게 굴지 말고. 잠깐이라도 한 솥 먹던 처지 인데, 인정을 베풀어줄 셈 치고 도와주시구려.


누가 싫대, 당신이 희희낙락하는 것이 보기 싫을 뿐이지. 자신을 깍쟁이로 만드는 화법에 내심 투덜거린 소월하는 세 명의 기대에 찬 시선을 받자 겉으로는 침착하게 수긍의 낯빛을 띄웠다.


“대책은 있나요?”
“마침 세 명이니까 삼재진으로 맞설 생각입니다.”


천지인의 삼재로 가장 흔한 진법이며 연환공격에 효과적이었다. 무림의 진법 훈련에 공수를 각기 전담하는 양익진과 함께 익히는 것이 삼재진 이다. 셋은 서로 익힌 무공도 다르고 병장기도 극과 극을 달리는데다가 무수한 실전을 거친 터라 기존의 삼재진보다 위력이 월등히 빼어났다.


군사軍事에 관심이 많은 소월하는 복원했다는 진법을 직접 견식해보고 싶었기에 거절하진 않았다.


“상황을 봐서요. 그런데 당사자만 들어갈 수 있나요?”
“입회인 한 둘 정도는 가능한 것 같습니다.”


대화를 주고받는 사이에 삼선녀들은 5층으로 올라가고 청년검수들이 순번을 부르기 시작했다. 무인과 묵객들이 하나같이 고양된 표정으로 올라갔으나 이내 들 것에 실려 나오거나 실의한 표정으로 터덜거리며 떠나갔다. 개중에는 아까 덕후와 쇼를 찍은 한맹도 있었다. 이윽고 삼공자의 차례가 왔다.


“올라가기 전에 잠깐 이것들을.”


덕후는 종이에 싼 얇은 것들을 세 개 꺼내더니 나눠주었다.


“품 안에 잘 간직해두시오. 부적이니까.”


덕후가 이상한 헛소리(?)를 한 덕분에 셋은 의심하지 않고 순순히 받았다. 덕후와 소월하는 셋의 보증으로 입회 자격을 얻고 올라설 수 있었다.


5층은 대청처럼 꾸며져 있었다. 대들보 아래로 드리워진 비단 휘장이 바람막이처럼 쳐져 있었고 난간 쪽에 느티나무로 정교한 조각을 한 세 의자에 여인들이 앉았다. 서호의 아련한 풍경을 등지고 가지런히 앉아 있는 세 여인은 마치 지상에 하강한 선녀들이었다. 세 공자는 소주삼선녀라는 명칭이 참 어울린다 느꼈다.


-그대가 훨씬 더 아름답소.


삼공자가 멍해있는 사이 날아든 덕후의 전음에 소월하는 흥, 하는 반응이었지만 싫지는 않았다.


-그 련주님과 비교하면요?
-춘란추국이지.


우열을 가늠할 수 없다는 소리다. 하여간 말로는 지지 않는 인간이다. 그 사이 삼선녀와 삼공자 사이에는 인사를 건너뛰고 내기 항목이 결정되었다. 삼선녀와 내기에는 특이 사항이 있는데 이기기 전까지는 통성명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결국 허다한 남정네들이 접근했지만 정식 통교는 전무하다는 뜻이었다.


“진법으로 겨루고자합니다.”


강윤식이 대표로 말을 맺자 황철웅과 초제학은 좌우 방위를 점하며 삼재진을 형성했다. 강윤식은 검, 황철웅은 곤을 초제학은 판관필을 쥐었다. 완숙의 경지에 이르렀는지 청년검수 일곱도 칠성 방위를 점했다.


“출出!”


칠성진이 방위를 이동시켜가며 삼공자를 압박해간다. 삼공자도 눈어림으로 거리를 가늠한 뒤에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서로 걸음을 맞추며 공격했다. 첫 타는 황철웅의 강맹한 곤이었다. 후웅-! 소리와 함께 칠성진의 꼬리에 있던 청년검수의 머리를 노렸다.


청년검수는 검면으로 곤을 쳐내는 동작으로 휘둘렀다. 그 대담한 동작에 황철웅은 속으로 뜨끔했다. 얇은 검과 두터운 곤이라면 내공이 압도적으로 우위에 서지 않는 이상 곤의 승리이다. 저 청년검수의 검공이 벌써 일가를 이룰 경지란 말인가? 그러나 황철웅은 팔에 힘을 주며 부딪쳐갔다. 벽이 있으면 부수고 나가는 것이 그의 성정이었다. 그리고 자신의 친구들을 믿었다.


-땅!


검은 부러지지 않았으나 곤력을 이기지 못하고 튕겨나갔다. 그러나 당초 노렸던 공격은 헛방으로 돌아가고 말았다.


-쉬악!


뱀의 혀처럼 날카로운 예기를 담은 네 검이 황철웅의 양 어깨와 무릎을 노리고 날아든다. 일격을 막는 동안 칠성진의 나머지가 좌우협공을 한 것이다. 황철웅의 옆에 있던 강윤식과 초제학은 호통을 치며 각자의 절기를 펼쳐 맞받아쳤다. 네 검은 순순히 물러났다. 강윤식과 초제학은 그 뒤를 쫓지 못했다. 네 검 뒤에 다음 차례를 기다리고 있는 두 검수 때문이었다. 양편의 기세가 이렇듯 팽팽하자 서로 획기적으로 공략할 방법을 찾지 못했다.


고수의 눈으론 소강국면으로 접어들었다 할만하지만, 범인들의 눈에는 예기가 번뜩이고 삼촌 이하로 스쳐가는 아슬아슬한 공방에 손에 땀을 쥐기 바빴다. 삼선녀 중에 어려보이는 장미미의 경우에는 아예 자리에 일어나 발을 동동 굴렀다. 체신없다기 보다는 그 나이에 어울리는 귀여움이라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절로 미소 짓게 만들었다.


덕후가 전음으로 묻는다.


-어떻소?
-왕야도 공략할 수 있지 않나요?
-천호소를 호출해서 주루를 포위해서 불 싸지르는 것 밖에는. 아, 밖에다가 강노수를 배치해서 튀어나오면 즉시 사격하면 되겠고.
-......


소월하는 전음중이라는 것을 잊고 덕후를 바라보았다. 무공도 익혔고 막후에서 삼패를 통합하다시피하면 강호무림에 대해서 무척 잘 알 텐데, 놀리려고 저런 말을 하는 건지 아님 사는 세계 자체가 틀려서 말하는 건지 판단할 수 없었다.


-매우 신선한 발상이군요.
-핫핫, 별로 칭찬받을 정도는.
-초가삼간도 아니고 기와삼십 칸을 통째로 태우니까 드리는 말씀이에요.
-......


콧대를 높이 세우려던 덕후가 무춤해졌다. 소월하는 고소한 심정이 되었다. 약간 너그러워진 소월하는 평소 하지 않는 설명을 곁들였다.


-칠성표괴진은 제법 쓸만한 진법이에요.
-제법이라?
-당금 십패에 맞지는 않지만 구파일방 시절에는 이름깨나 날릴만해요. 단, 일 대 다수 라든가 많아야 백 명 이하의 넘지 않는 회전일 때 말이죠.


십패의 시대가 도래하면서 회전의 규모는 백 명에서 천 단위로 늘었다. 개개인의 무공과 상성도 많이 퇴색되었지만 기존의 진법도 빛이 바래버렸다. 물량과 효율성의 문제 때문이다. 무당의 칠성검진, 소림의 십팔나한진은 이름만 들어도 유명하지만 동문의 무공으로 수십 년을 고련해야 한다. 뭔 말이고 하니 결원이 생기면 바로 보충할 수 없고 잡다하게 섞여 싸우는 십패의 산전수전에 어울리지 않는 것이다. 십패 형성기에 잠깐은 전통의 힘과 정순한 내공 그리고 고도로 정밀화 된 진법의 위력으로 버티기는 했으나 시대의 흐름을 이기지 못하고 하나 같이 퇴장하고 말았다.


당금의 진법은 군진軍陣을 모방하거나 구파일방에서 전해지는 진법을 아류亞流로 소화한데 지나지 않는다. 짝퉁이라고 경시할 수 없는 것은 양쪽에 없는 장점을 취했기 때문이다. 일반 군병에 비해 내공을 지니고 있고, 구파일방의 전통 무림인들보다 쪽수는 월등히 많다.


-방법이 없는 건 아니에요. 보아하니 천추(天樞), 천선(天璇), 천기(天璣), 천권(天權)을 맡은 검수들이 나설 때는 공세를 취하고 옥형(玉衡), 개양(開陽), 요광(搖光)이 중심일 때는 수세를 취하네요. 전자를 괴魁라 하고 후자를 표杓라고하니, 진법 이름 그대로네요.
-변화를 알아볼 수 있겠소?
-칠성이 한 바퀴 돌아오는 동안 변하는 괴표를 셈하면 56번이네요.


덕후는 자신이 왓슨이 된 듯한 기분이었다.


-그런 걸 다 셌소?
-암산은 산학의 기본 아닌가요. 삼괴와 사표로 오십육변을 구하면 답은 금방 나오잖아요. 명색이 모사인데 이런 간단한 이원식도 못 풀면 왜 살아요? 나가 죽어야죠.


덕후는 나가 죽어야하는지 진지하게 고민했다. 전생의 자신이라면 이차 방정식을 푸는데 종이에다 써가며 풀고 있을 것이다. 현생은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었지만 출발점이 틀리다.  비록 하도낙서와 구장산술을 비롯한 동양수학들을 배웠지만 자체적으론 편한 아라비아 숫자와 수학기호들로 치환하고 있다. 그러나 소월하에게 그런 편한 수단이 있을 리 만무하다. 슬쩍 물어보니 천문을 계산할 때나 쓰는 4차 고차방정식을 푸는 경지에 도달해 있는 모양이다.


-암산으로 말이오?
-당연한 것 아닌가요? 노자도 선수불용주책善數不用籌策 이라 하셨고요.(훌륭한 수학자는 산가지를 사용하지 않는다.)
-졌소. 진짜 괴물은 그쪽 아닌가 싶소.
-숙녀에게 못하는 말이 없군요. 어쨌든 답을 알려줄테니까 말시키지 말아요.
-네네, 마님.


덕후가 인정을 넘어 감탄하는 듯하자 슬쩍 기분이 좋아진 소월하는 서비스를 해주기로 마음  먹었다. 


잠시 후 칠성검수와 삼재진의 대치에 미묘한 변화가 일어났다. 56변의 틈을 기억한 소월하의 지시에 따라 공략해 들어갔기 때문이다. 56변으로 일어난 초식으로 분해하니 총 224번 나뉘므로 삼변과 사변을 각기 대입하니 32식과 24식이 나왔다.


맞물리는 톱니바퀴 부위에 콕콕 찝어 장애물을 끼워 넣은 셈이니 칠성괴표진은 금세 삐꺼덕 거렸다. 청년검수들은 땀을 뻘뻘 흘리면서 연계를 맞추려고 했지만 낱낱이 간파당한 상황이라 반 각도 지나기 전에 각개격파로 무너지고 말았다. 그리고 삼공자는 삼선녀 앞에 아무런 장애 없이 도착할 수 있었다.


-준 부적을 꺼내 주시오. 그리고 내 말 그대로 하시오.


셋의 귀에 덕후의 전음이 들린다. 한바탕 힘겨운 싸움과 이겼다는 성취감에 탈력감을 받던 셋은 덕후의 전음에 따라 반사적으로 같은 동작으로 한쪽 무릎을 꿇었다. 승자가 무릎을 꿇자 삼선녀는 당황했다. 이 시대에 무릎을 꿇는 것은 존경 아니면 굴욕 둘 중에 하나였다. 그리고 남존여비의 시대라 어머니나 집안 어른이 아닌 여자 앞에 무릎을 꿇는 꿇는 것은 수치였다.


그 상태에서 셋은 품안의 부적을 꺼내 내밀었다. 부적의 내용은 한 송이의 꽃이었다. 강윤식이 추소연에게 바친 것은 하얀 꽃, 초제학이 반옥령에게 내민 것은 활짝 만개한 노란 꽃을 그리고 황철웅이 장미미에게 건넨 것은 봉우리가 채 벌어지지 않는 앙증맞은 꽃이었다.


“꿈에도 당신을 사모했습니다.”
“당신을 향하는 몸짓에 어려움이 많았습니다만, 굳게 다짐했습니다. 당신을 구하고 말 것이라고. 제 마음을 받아주시겠습니까?”
“손을 잡을 수만 있다면 저 하늘을 나는 기분일 것입니다.”


느끼한 대사도 때와 상황에 따라서는 다르다. 삼선녀는 삼공자의 구애에 넋이 나가버렸다. 사실 이런 내기를 하게 된 원인이 치근덕 거리는 남자들을 떼어놓을 겸 골려줄 심산으로 한 것이다. 칠성괴표진이 파훼되었을 때는 분함과 당혹감이 들었지만 그 흔들림은 셋이 무릎을 꿇어가며 꽃과 함께 온유하며 열렬한 구애로 나오자 흥분과 두근거림으로 급변했다.


“저...고마워요.”
“훗, 제법이네. 마음에 들어.”
“고마워!”


머뭇거리다가 저마다 개성으로 한 마디씩 하며 꽃을 받아들인다. 짝짝짝! 덕후가 박수를 쳤다. 그리고 소월하에게 강하게 눈짓을 하니 마지못해 따라한다. 진이 파훼당해 청년검수들도 분위기에 휩쓸려 갈채를 보낸다.


세 쌍의 선남선녀들이 은밀하고 뜨거운 눈빛을 주고받으며 통성명을 하는 동안 덕후는 전음으로 작별을 고했다.


-방해꾼들은 이만 물러가지. 좋은 시간들 되게. 나중에 결과 알려주는 것을 잊지 말고.
-하하하 고맙네. 이게 다 두 사람 덕분이야.
-고마우면 혹시라도 우리들에 대해 묻거들랑 대충 넘어가주게. 작업 도중에 저어가 될까 하니.
-철두철미하군. 알겠네.


진을 파훼한 것은 소월하이고 이 시대로서는 파격적인 프로포즈 법을 알려준 것은 덕후였다. 덕후는 삼선녀의 눈에 공연히 띄기는 싫었으므로 셋에게 다짐을 받고는 소월하를 재촉하여 조용히 주루를 벗어났다.


주루를 벗어나 시장으로 오니 해는 서산으로 기울고 있었다. 파장 분위기가 만연한 저자거리를 거닐다가 마침 판을 접으려던 노점상한테 당과를 한 봉지 산 덕후는 소월하에게 하나 내밀었다. 소월하는 입 앞으로 온 당과를 손으로 미는 시늉으로 거절했다.


“안 먹어요. 나이가 몇인데.”
“당분을 섭취해야 심력을 보충하는데 도움이 된다오.”
“그건 몰랐네요. 그 정도는 심력을 쓴 축에도 안 드니까 나중에 먹을게요. 누구 주려고 그렇게 산거예요?”
“우리 딸 주려고 말이오. 당과를 무척 좋아하거든.”


주부용을 떠올린 소월하는 고개를 끄떡였다. 가장 접점이 없지만 평범하지 않는 아이라는 것은 한눈에 간파했다.


“당과가 생각 없다면........이건 어떻소?”


덕후는 당과를 사타구니 깨로 내리더니 위아래로 꺼덕인다. 순간적이라 아무도 보지 못했지만 소월하만은 분명히 보았다. 덕후가 눈웃음을 치며 제딴에는 은근히 속삭인다.


“고기당과요. 들어가는 입도 틀리지.”


입이 아니라 아래를 가리킨다. 소월하는 이 화상아! 라고 소리를 빽 지르려다가 참았다. 아까는 그렇게 멋진 연출을 유도하더니만 지금은 이토록 천박하고 졸렬하단 말인가. 소월하는 두 손을 비비며 간신배처럼 구는 덕후를 흘겨보다가 손을 휙 뻗어 당과를 봉투 째 빼앗았다.


“어머, 생각이 바뀌었어요. 당과가 무척 먹고 싶어졌네요. 매우매우~ 말이죠.”


추파를 던지듯이 생긋 웃는다. 그리고 당과 하나를 꺼내 보란 듯이 입에 물더니 그리고 등을 휙 돌리며 잰 걸음으로 사라졌다.


“어? 어?”


돌발 행동에 덕후는 빈손과 소월하를 번갈아보며 멍하니 신음을 토했다. 사태를 깨닫고 소월하를 보았을 때는 인파 사이에 묻혀 보이지 않았다. 쫓아서 하나라도 돌려 달라고 간원을 해야할지 아님 자리 접고 떠난 노점상을 찾아야할지 순간적으로 감이 안 잡혀 안절부절했다.


결국 덕후가 당과를 구해 심가장에 돌아간 것은 해가 지고 나서였다. 그리고 자기 전에 당과를 먹으면 살찐다는 세휘의 엄명에 따라, 덕후는 약속을 지키고서 딸내미에게 원망소리를 징글맞게 들어야했다.


 


 


 


 



칠성기표진의 출처는 스님 바리떼 계산하기(...) 소월하의 계산은 우희선과 금보옥도 할 줄 압니다.  현대수학으로 치면 소월하가 대수, 기학, 해석을 비롯한 전반이라면, 금보옥은 확률통계학 쪽이고 우희선은 응용수학 및 기타? 실제 셋이 마음 맞은 계기가 덕후 부재중에 숫자놀이(?)를 하면서 친해졌다는(....) 본문에 넣기도 거시기하고 쓰는 저부터가 수준도 안 되고, 어떻게 표현할지 머리 아파 패스한 거지만요.


학생이나 전업이 아니다보니, 몇 년 각오하고 쓰는 것입니다. 스토리 전개상 십패를 통합하고 +a 이니까요. 현재 진행중인 파트는 기반 다기지고요. 주기가 늘어지다 보니, 지난 글들을 볼 때마다 자질한 에러가 많다는 것을 알지만 손대지 못하고 있습니다. (미스 농의 엉성함을 닮아가는 것 같아 찜찜. 시나리오를 던마 식으로 변통해가면서 써서 그런가.-_-;) 이거 끝내면 네이버3에 두 번 다시 오리지널은 안 쓸 작정입니다. 대신 야설 번역 쪽으로 돌리고 싶네요.


아무튼 이걸로 3월분. 역시 다음 달에 뵙겠습니다. 올해 가기 전에는 이번 파트는 끝나겠지요.(진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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