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엄마를 다른 남자와 결혼시킨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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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의 축제나 대소사를 의논하는 마을의 광장.
그곳에 피온은 멀뚱히 서 있었다. 바로 오늘 벌어지는 결혼식을 보기 위해서였다.
피온은 왠지 사람들의 시선이 자꾸 느껴졌다. 사람들은 아무런 내색도 안하고 있었지만 자기들끼리 수근대며 무언가를 얘기하고 있었고 피온은 그들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듣지 않아도 훤히 알 수 있었다.
한편 그의 아버지 질러트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었다. 아마도 이 결혼식을 위해 그도 뭔가를 준비해야 하는지도 몰랐다.
그녀는 아버지가 없었다. 아버지는 병으로 죽었고 그의 엄마가 혼자 엘리카의 오빠 두명을 포함해 세명의 아이를 키우고 있었다. 덕분에 일단 아직까지 엘리카의 어머니는 강제 씨받이를 하지 않아도 되었다. 최저선에 딱 걸린 것이다. 만약 아이가 두명만 되었더라도 어쩌면 피온과 비슷한 운명에 처했을지도 모르는 처지였다.
“너 괜찮니?”
엘리카의 눈빛에 동정이 가득했다. 하지만 피온은 왠지 자기가 짝사랑하는 여자아이한테 그런 동정을 받는 것이 싫어졌다. 자신이 동정을 받는다고 생각하니 너무 비참하고 자존심이 상했기 때문이다.
“응, 아무렇지도 않아!”
“그러니?”
엘리카의 눈이 이채롭게 빛났다.
“나는 네가 많이 낙담해 있을 줄 알았어.”
“쳇, 이까짓게 뭐 대수라고. 이제 나도 2년만 더 있으면 성인식을 치러야 한다고!”
속마음과는 다른 피온의 호기어린 말에 엘리카가 잠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씩씩해 보여서 다행이다. 이제 피온도 어른이 되어 가네.”
“뭐야? 나를 어린애 취급하는 거야?”
“어머! 그렇게 들렸니. 그랬다면 미안해. 그런 뜻은 아니었어.”
“됐어. 나도 이제 나이 먹을만큼 먹었고 어른들을 다 이해한다고!”
그는 다시한번 큰소리를 떵떵 쳤다. 안그래도 예전부터 엘리카가 동갑임에도 그를 은근히 어린애 취급하는 것 같아 신경이 쓰이던 차였다.
“그래, 정말 다행이야...”
“....”
둘의 대화가 갑자기 끊겼고 피온은 무슨 말을 해야할지 몰라 둘의 사이가 갑자기 어색해졌다. 그때 마침 구원이라도 하듯이 엘리카의 엄마가 저 멀리서 엘리카를 불렀다.
“엘리카, 뭐하고 있니! 이리 와서 이것 좀 도와주렴.”
“앗, 엄마가 부른다. 나 이제 가봐야 겠어. 피온, 기운내. 내가 있잖아!”
엘리카가 서둘러 피온의 곁을 떠나 그녀의 엄마에게로 향했다.
피온은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잠시 그녀가 마지막에 했던 내가 있다는 말을 상기했다. 그 말이 무슨 뜻일까?
그런 그녀와 눈이 마주치자 피온은 자기도 모르게 얼굴이 빨개졌고 그런 그를 보며 엘리카의 엄마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가볍게 지어 보였다.
그리고 잠시 후 곧 결혼식을 올리는 것을 알리는 나팔이 광장에 크게 울려퍼졌다.
음악소리와 함께 한 명의 사내가 당당하게 광장 안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겔릭이라는 이름을 가진 남자. 올해 딱 20세가 되는 전도유망한 청년이었다.
마을에서 열리는 각종 무술대회를 휩쓸고 어린 나이임에도 이미 많은 전공을 세운 녀석이었다. 다만 흠이 있다면 좀 저돌적이고 거칠다는 평이 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마을회의의 입장에선 그런 것은 하등의 문제가 될 것이 없었다. 그가 얼마나 앞으로 피온의 엄마 이실리에게 씨를 잘 뿌려 성공적으로 임신을 시킬 것인가만이 문제일 뿐이었으니까.
그는 예의 그 당당하면서도 오만한 걸음걸이로 광장의 한 가운데로 당당하게 들어서고 있었다.
그리고 그가 주례사 앞에 서자 곧 음악이 바뀌면서 신부가 입장하기 시작했다. 피온의 어머니 이실리가...
피온의 아버지 질러트는 비록 멋지게 정장을 갖춰 입었지만 어딘지 모르게 초췌해 보였다. 그에 반해 그의 손을 잡고 있는 그의 아내이자 피온의 어머니인 이실리는 너무 아름답게 빛나고 있었다.
올해 29세의 그녀...
통상 이곳의 여성들은 16,7세쯤에 결혼을 한다. 남자들의 결혼연령은 대략 23,4세쯤.
그녀 역시 16세때 24살의 질러트와 결혼식을 올렸다. 그때는 아직 소녀다운 풋풋함 아름다움이 있었다면 오늘은 20대 후반에 접어든 유부녀의 성숙한 아름다움이 있었다.
이실리의 어린 아들 피온이 보기에도 이실리는 정말 너무 아름다웠고 청초하면서 요염했다...
그런 이실리가 조용조용한 걸음으로 질러트의 손을 잡고 입장을 하고 있었고 광장안의 사람들은 한순간 탄성을 내질러야만 했다. 그리고 그 탄성은 곧이어 그녀의 손을 잡고 있는 그녀의 남편-곧 제1남편의 위치마저도 박탈당할-질러트에 대한 동정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누군가가 속삭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러게 왜 그걸 숨겼누. 차라리 솔직하게 고백했으면 제1남편 위치까지는 박탈 안당했잖아!”
“그렇긴 하지만 이해 못할 것도 아니죠. 잠깐도 아니고 최소 1년 이상을 한집에서 다른 남자와 같이 사는 건 아무리 우리 마을 남자라 해도 쉽게 내키는 일은 아니었을 거예요. 더군다나 보세요. 이실리를. 얼마나 예뻐요. 어쩌면 나라도 그랬을지도 모르죠...”
피온은 사람들이 소근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덩달아 마음이 아릿해져 오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사람들이 그렇게 속닥이는 사이 어느덧 둘은 겔릭의 앞에 거의 다 걸어갔고, 그들이 완전히 앞으로 오기 전에 겔릭이 마중을 나갔다.
겔릭이 다가오자 피온의 아버지 질러트는 잡고 있던 아내의 손을 겔릭에게 건네주었다.
하지만 사람들이 궁금해하거나 말거나 이실리는 자연스럽게 겔릭의 손을 잡고 주례사 앞으로 겔릭과 걸음을 맞춰 걸어가기 시작했다. 정말 너무나 자연스러운 걸음이라 그녀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아무도 종잡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주례사 선생님의 기다긴 연설이 시작되었다. 뭔 할 말이 그렇게도 많은지 주례사 선생은 장황한 연설을 늘어놓았고 한참의 연설 끝에 드디어 두 사람의 부부서약 맹세를 확인하고 결국 그날의 결혼식이 끝났다.
질러트의 아내 이실리와 20세의 야심찬 청년 겔릭은 아름다운 키스를 나누며 그날 결혼식의 피날레를 장식했다...
그리고 그날 저녁 둘은 신혼의식을 치르러 마을의 외곽에 있는 한 오두막으로 향했다.
이곳에선 결혼식을 치르면 부부 두사람은 이렇게 마을의 번잡함을 피해 3일 동안 부부의 의식을 치르는 관습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드디어 마을의 외곽에 있는 오두막에 도착해 두 사람만의 시간을 갖게된 이실리와 겔릭....
겔릭의 눈빛이 탐욕스럽게 이글거리고 있었고 이실리의 눈빛은 슬픔인지 기대인지 모를 무언가로 애처롭게 흔들리고 있었다..
그렇게 두 사람만의 첫날밤이 시작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