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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소설-내가 만드는 이야기

德厚の野望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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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362 회 작성일 24-01-05 14:3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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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녘의 햇살이 대전 안으로 비치며 서편으로 스무 남짓한 사람 그림자들을 당겨냈다. 그들 중 반은 한 단 높이 설치된 자리에 좌우에 팔 자로 늘어선 의자에 착석하여 빈을 맞이하는 주인의 자리를 보좌하듯이 있었고, 나머지 절반은 회의용 긴 탁자 맞은 편에 마련된 좌석에 앉아 빈객의 위치를 고수하고 있었다.


단상의 주인과 대치하듯 빈객의 중심인 듯한 미장부는 침착한 얼굴이었으나, 좌우에 시립한 이들은 저마다 불편하거나 가벼운 의혹에 사로잡힌 듯 불편한 안색이었다. 그러다 선뜩한 표정을 짓곤 했는데 주로 단상의 여인과 눈빛을 마주했을 때였다.


단상에 봉황의를 입은 소녀의 눈빛은 언뜻 푸른 기가 도는 듯해 고요한 호수를 보듯 홀리게 만드는 기운이 있었다. 또한, 자색빛이 감도는 머리칼과 진주빛 피부가 드러나는 얼굴과 목은 시선을 떼지 못하게 만드는 요요한 매력이 있었다. 표정을 담지 않는 얼굴 조차도 바라보는 이로 하여금 심장을 두근거리게 만드는 묘한 마력이 있었다.


-허어, 저 정도면 미혼술이라해도 믿겠군.


끄트머리에 앉아있던 덕후는 내심 고개를 흔들었다. 지금 이 자리에 모인 이들은 절강성을 좌우지하는 영향력을 지닌 이들이었다. 미녀를 처음보는 혈기방장한 청년도 아니고, 산전수전을 겪은 노회한 이들을 대면한 순간 얼간이로 만든 그녀의 변화가 두렵게 느껴졌다.


덕후는 빈객으로 온 금천효와 대상련의 원로들의 반응을 보고 그들의 심경을 가늠해보았다. 이 자리에서 지켜보는 자신조차 눈을 씻고 금보옥을 보는데, 한달 가까이 안 본 그들로선 괄목상대라는 말조차 약소하게 들릴 것이었다. 그들에게 있어 눈 앞의 여인은 어디까지나 대행에 불과했었으니까.


“련주님을 뵙습니다.”


가장 심지가 깊은 금천효가 먼저 말문을 열었다. 그제서야 저마다 분분히 뒤따르듯이 인사를 하였다. 단상의 여인, 금보옥은 턱짓조차 하지 않고 오연하게 받았다. 이전 같았으면 건방지게 느껴질 법하지만, 지금은 전대 련주 금대숭이 그랬던 것처럼 당연하게 느껴졌다.


“오시는 길에 들었습니다. 불상사가 있었다고….”
“많은 일들이 있었죠, 여러 분들을 참 오랜만에 보는 것 같군요.”


금보옥은 등받이로 젖혔던 상체를 약간 앞으로 당겼다. 그 작은 변화만으로 놓쳐서는 안될 것이 있다는 듯 중인들의 시선이 절로 모였다.


-어쩌면 나는 마녀의 본성을 일깨운 것이 아닐까?


그저 카리스마라면 저렇게 홀린 듯한 반응을 이끌어내긴 어렵다. 거기에 여자만이 지닐 수 있는 선천적인 매력이 더해져 프리즘과 같은 광채로 이지를 흔들어 놓는 것이다. 이런 기품이라면 우희선에 맞먹겠다고 평하던 덕후는 금보옥이 고개짓을 하자 미리 준비한 상자를 의자 밑에서 꺼내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음!”


금천효 바로 옆에 있던 우치명은 내용물을 확인하는 순간 눈을 찌푸리며 침음을 흘렸다. 쟁반 위에 정갈하게 놓여있는 것은 4개의 소금에 절인 목이었다. 저마다 조형물처럼 단장을 깨끗이 하고 분칠을 하였지만 시신이 가지는 푸르슴한 죽음의 색은 어찌하지 못했다. 나머지 3두는 낯설었으나 가장 앞에 눈 감고 있는 목은 수십 년전 흑룡대를 이끌던 강일도와 많이 닮아 있었다.


“이 자는 흑룡방주와 닮은 듯 하오만?”


직선적인 성격의 정익훈이 물었다. 대상련 무사단의 책임자로 강일도가 흑룡대를 이끌던 시절에는 동고동락한 사이였다. 나중에 그가 대상련을 배신하면서 적이 되었지만 대상련 인물들 중에서는 강일도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이었다.


“천하문에서 제게 선물로 주었지요.”


고혹적인 미소를 지으며 금보옥이 덧붙이자 금천효가 물었다.


“련주의 뜻은 어떠십니까?”
“저쪽에서 손을 내밀었는데 굳이 못 잡을 것은 없지요.”
“그렇다해도, 천하문의 전신은 하오문 아닙니까. 그들과 동맹을 하다니.”


우치명이 토를 달자 금보옥은 여전히 미소를 지우지 않은 채 답했다.


“처음부터 남남인 자들과 한 때 아군이었다가 배신한 자중 어느 쪽에 무게를 두시렵니까?”
“큼!”
“천하문과 손을 잡아야할 필요는 단지 강무제의 목 때문만은 아닐 것 같습니다만.”


무안을 당한 우치명을 대신 하듯 금천효가 말꼬리를 흐렸다. 원로인 우치명의 체면이 상하지 않도록 하면서 금보옥이 내심을 보일 수 있도록 배려하는 처사였다. 금보옥은 직접 말하지 않고 우측에 있는 노인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유삼을 입은 노인은 얼굴 가득 분기를 담고 있었다.


“나머지 셋은 상관 세가의 세작이오! 감히 심가장을 노리고 장주님뿐만 아니라 금지옥엽을 해쳤소!”


노인은 심우량으로 장주 심우진의 동생이었다. 형이 상계에 있다면 동생은 관직에 몸담고 있어 음으로 심가장을 보필해왔다. 그러나 요 몇 년간은 심주혜를 본격적으로 후계자로 키우기로 결심한 심우진이 일부러 멀리해왔다. 숙질 간에 피비린내나는 권력 쟁투는 고금에 드문 일은 아닌 까닭에서였다. 그러나 머리는 이해해도 가슴은 아니라 형의 매정한 처사에 심우량 역시 관직에서 퇴직함으로서 화답했다. 그러다 심우진 부녀가 죽고 나자 심가장에 혈연을 가진 이들이 없자 금보옥이 부르자, 기다렸다 싶을 정도로 신속히 달려왔다. 처음에는 심가장주를 이어받을 수 있지 않을까 찾아왔지만, 오면서 정황을 수집한 결과 요원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금보옥은 금대숭과 심우진의 주재하에 심주혜와 정식으로 의자매를 맺은 사이이며, 영웅대회의 소란 때 심주혜의 유언으로 거의 심가장의 새주인이 되어 있었다. 자신도 미처 몰랐던 사업권과 이권을 철저히 챙기면서까지!
 
그 뿐만 아니라 절강성 일대의 유력 호족들, 강부자, 이매가, 고소영들과 전략적 제휴를 맺어 입지를 더욱 강화했다. 심우량이 심가장주의 권리를 주장한다면 꼭두각시가 될 가능성이 높고 이미 물밑작업이 끝난 다른 토호들이 발목을 붙잡을 게 뻔했다. 꿔다놓은 보릿자루 직전의 신세가 된 심우량에게 금보옥은 막대한 연금증서와 함께 덕왕부의 관직자리라는 미끼를 제공해서 순식간에 구워삶았다.


그래서 심우량은 형님 부녀에 대한 애도가 삼할, 그리고 금보옥에 대한 환심이 칠할 더하여 상관세가를 성토했다.


“더 참을 수 없는 것은 상관세가 놈들은 본장을 능멸함에 있어 대상련도 함께 욕을 보이려 작정했단 말이외다! 알다시피 제 형님 심우진은 전대 련주 금대숭과 호형호제를 할 만큼 돈독한 사이였고, 본련의 발전에 혁혁한 공을 세우신 바, 저들이 심가장을 노린 것은 결국 대상련을 뿌리부터 흔드는 행위가 아니고 무엇이란 말이오!”


금보옥 쪽 뿐만 아니라 금천효 쪽에 있는 이들들도 한결같이 고개를 끄떡였다. 우치명이 내키지 않는 듯이 말했다.


“그래서 심우량님은 상관세가와 싸우잔 말이오?”
“필요하다면 해야지요! 련주께서는 걱정하실 것이 없습니다. 대상련의 기치만 올리신다면 절강의 모든 상인들이 물자를 대고 무사들이 칼을 들 것입니다!”
“아니, 그건 너무 성급하오. 일단 일의 정황부터 알고 나서….”
“갈! 진작에 쳐서 뿌리부터 뽑았으면 이런 일은 없을 것 아니오!”
“누가 피하고자 하였소? 우선 전후부터 파악하고, 상관 세가의 반응을 알고 움직여야 순리라는 것이오.”


과격한 심우량에게 눌리지 않으려는 듯 우치명의 언성도 다소 높아졌다. 그러자 험상궂은 털보가 일어나 뇌성 같은 소리를 질렀다.


“영감네들이 그렇게 느즈막하게 따질거 다 따지고 퍼질러 있으니 상관 세가가 이 따위 도발을 하는거 아니오! 십패 같은 소리하고 있네. 밖에 나가서 무림인들한테 물어보시오. 가장 최약체가 어디냐고. 열에 열은 대상련이라고 할 것이오!”
“뭐, 뭣이? 네, 네 녀석은 누구냐!”
“소인은 황철웅이라고 하외다. 비록 가산도 별로 없고 배운 바도 적지마는! 영감님네들보단 이 몸뚱아리만큼은 대상련의 주춧돌로 쓸만할게요.”
“고, 고얀지고!”


우치명이 부들부들 떨리는 손짓으로 황철웅을 삿대질했다. 황철웅은 그래서 뭐? 가소롭다는 듯 팔짱을 끼고 있다가 옆에 초제학이 소매를 잡아당기자 마지 못한 듯 앉았다. 그제서야 우치명은 황철웅 옆에 강윤식과 초제학의 존재를 발견했다.


“련주님! 저 불한당들은 누굽니까!”
“소개가 늦었군요. 새로 맞이한 가신들이에요. 이번 심가장 사태에 저를 도와 많은 공을 세우셨지요.”


금보옥은 나긋하게 말했다. 그러나 우치명과 기존 원로들의 귀에는 “그 동안 너희들은 뭐했니?” 라고 빈정거리는 듯 했다.


“저런 것들을 우리와 같은 자리에 놓다니요. 이는 원로들을 대하는 예의가 아닙니다.”
“인사권은 련주에게 있습니다. 인사권까지 관여하실 참인가요?”
“그, 그건….”
“존장에 대한 예의도 가볍게 여길 것은 아니지만, 그 보다 련주로서 인사가 더 중요하기 때문에 먼저 했을 뿐입니다. 황 공자가 다소 과격하게 말한 점은 있으나 존장으로 아량을 베풀면 될 것이고요.”
“부디! 많은 이해를 바랍니다!”


기다렸다는 듯이 황철웅이 우렁차게 사과했다. 그러자 우치명의 항의는 부질없어졌다. 이 자리에 모인 이들은, 특히 대상련의 사람들은 금보옥의 물흐듯이 당당한 태도에 하나 같이 낯빛이 변했다. 예전의 금보옥이라면 오직 노회한 원로들 사이에 둘러싸여 자신의 총기 역시 규중처자의 소극적인 면으로 제약을 받았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달랐다. 심가장의 음모를 적수공권으로 파해치는 과정에서 자신의 약점을 극복했을 뿐만 아니라, 대상련 원로들이 소집되는 그 짧은 기간동안 소주의 인사들과 젊은 무인들을 대거 포섭하여 정국 개편을 시도한 것이다. 금보옥의 의도는 맞아떨어져, 대립각을 조장하여 캐스팅보트를 쥐는데 성공하여 련주의 지위를 제대로 쇄신하고 있었다.


“그보다 현안을 해결하는 것이 우선이에요. 상관 씨족에 세객을 보내 이번 일에 대한 해명과 사과, 그리고 손해보상금을 책정해오도록 할 필요가 있어요.”
“보상금이라니요?”


우치명이 저도 모르게 반문하고 말았다. 상관 세가가 범인이든 아니든 대뜸 사자로 가 돈부터 내놓으라면 한 판 붙자는 소리나 마찬가지였다. 그러자 심우량이 코웃음을 치며 나섰다.


“이번 일로 소주 사람들이 얼마나 피해를 입었는지 아시오? 관아에 사람이 나와 무마했지, 죽은 사람들의 신원을 파악해서 보상금을 지불했지, 백주대낮에 칼부림으로 흉흉한 민심을 다독이느라고 부호들과 신사들이 발벗고 나섰으니, 이분들에 대한 은사금이라도 마련해야지. 왜요? 상관 씨들이 아니라 귀하가 다 내줄 겁니까?”


잘못하다가 보상 올가미를 쓰게 될 판인 우치명은 노화를 꾹꾹 누른 채 자리에 앉았다. 우치명을 대신해서 금천효가 묻는다.


“천하문과 동맹은 어느 선에서 하실 것입니까?”
“필요하다면 무력 공조까지 생각하고 있습니다.”
“천하문의 터전은 영호세가와 우문세가랑 척을 지고 있습니다. 그들이 쉽게 무사들을 내주려 할까요?”
“신임 방주가 시무를 아는 자라면 이번 기회를 놓치지 않을 거예요. 그 기회를 최대한 살리기 위해서라면 수단은 알아서 강구하겠죠. 우리는 그걸로 신임 방주의 역량을 파악해두는 것으로 충분하답니다.”


십패도 엄연히 세력차가 있었다. 1비 3강 3중 3약이 그것이었다. 1비는 한번도 전력을 드러내보인 적이 없는데다가 순수한 무림세력이라 말하기 어려운 밀천회이고, 3강은 녹수맹, 성교, 영호세가를, 3중은 우문세가, 신도세가, 혁련세가를 가리키며, 3약은 대상련, 상관세가, 흑룡방을 가리켰다.


흑룡방을 전신으로 두고 있는 천하문의 전력은 그리 강하다고 말하게 어려운 편이다. 그러나 상관세가를 토벌하여 세를 확장하고 대상련의 원조를 받을 수 있다면 3강은 무리더라도 최소한 우문세가나 신도세가 못지 않은 위치를 확립할 터였다. 또한 한 방면의 적을 알아서 없앨 수 있다. 대상련으로도 상관세가가 가진 해외교역권을 이전할 수 있으므로 국내외의 상권을 모조리 독식하는 셈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가장 동쪽에 치우친 터라 인접한 천하문과 순망치한의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면 적대 세력에 직접 노출되지 않게 된다.


이런 점을 들어 설명하자, 중인들은 금보옥이 이 번 일을 명분 삼아 상관 세가를 치려는 의지가 확실함을 알았다. 소주 인사들이야 밑져야 본전이고, 잘 되면 손해배상금이란 떡고물을 만질 수 있으니 반대를 안하고, 이번 기회에 전공을 세우려는 젊은 무인들은 금보옥의 구상에 지지를 보내고 있었다. 주도권 상실을 우려한 대상련측은 반대를 위한 반대를 부르짖고 있었지만 이미 기세 싸움에 밀리고 있었다. 유일하게 금천효만이 금보옥과 맞수가 될만하나, 본래 원로들 파벌이라기 보다는, 총관으로서 금보옥과 원로들 사이에 중재역을 해온 입장이라 적극적으로 움직이지 않았다.


갑을론박이 펼쳐지는 가운데 금천효는 금보옥과 시선을 마주쳤다. 대견한 듯 눈웃음을 짖는 금천효에게 금보옥 역시 희미하게 미소를 보였다. 오누이와 같은 친근한 교감이 오갔다. 이를 보던 덕후가 불편한 듯 헛기침을 할 무렵, 금보옥은 정색을 하고 천천히 일어났다. 높은 단 위에서 내려보자 좌중은 저도 모르게 위압당했다.


“상관 씨족은 선대부터 숙적, 조부님이 그들과 화의를 한 것은 동맹으로 생각해서가 아니에요. 설령 우리가 그렇게 착각한다해도 심가장 참변으로 상관 씨족이 본련을 어떻게 생각하는 지 만천하에 드러났어요. 그렇게까지 본련을 우습게 본다면 쳐서 응징을 할 수 밖에!”


금보옥의 선언으로 결국 회의는 상관 세가에 세객을 보내 전말을 추궁하고, 한편으로는 천하문에도 사람을 보내 동맹을 정식으로 신청하는 것으로 마무리 지어졌다. 또한 별도로 상관 세가가 굴종을 하든, 거부하든 즉각적으로 무력 대응이 용이하도록 대상련의 조직을 총점검하기로 했다. 금보옥이 단상을 떠나니 남은 두 파에서 신경전이 오가기 시작했다.


거처로 돌아온 금보옥은 상관부용이 준비했다는 듯 준 차를 벌컥 마셨다. 차갑게 식어 있었다.


“후우!”


떫으면서도 개운한 향이 입가에 감도는 것을 느끼며 금보옥은 의자에 앉았다. 부용이 내주는 물수건으로 얼굴을 대자 갑자기 피로가 몰려오며 진이 빠지는 기분이었다. 아득한 기분에 젖어 있는데 문이 드르륵 열리며 덕후가 따라 들어왔다.


“훌륭했소!”


덕후는 호들갑을 떨며 박수를 쳤다. 그 광대같이 익살맞은 모습을 내린 수건 너머로 보던 금보옥은 어쩔 수 없다는 미소를 지었다.


“상공이 보기에 저는 어땠나요?”
“어엿한 군주의 티가 나오. 적벽전을 두고 손권이 결단을 내리던 장면이 이와 같지 않을까 싶을 정도요.”
“그럴 줄 알았으면 단상을 준비해서 모서리를 칼로 자를 걸 그랬나요?”


농담을 하던 금보옥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처음으로 주도권을 잡은 회의였다. 가감없이 자신의 뜻대로 주재하고 결론내는 그 과정은 현기증처럼 짜릿하면서도 절대적이었다. 속된 말로 진정한 권력의 맛을 보았다할 수 있는 셈이다. 그 순간 금보옥의 내면에는 잔혹할 정도로 권력욕에 도취되어 더 갈구하고자 하는 욕망이 눈을 뜨고 있었다.


“무엇을 그렇게 생각하오?”
“아……상공은 어째서 황태자의 자리를 버리셨죠?”


십패의 하나만으로 이 정도인데 중원의 황제가 된다면 차원이 틀릴 것이다.


“나를 나로서 남기고 싶으니까.”
“도사 같은 말씀이네요. 무욕이라….”


금보옥은 덕후에게 감탄하듯 말했지만, 덕후는 쓴웃음을 지었다. 무욕 같은 것이 아니라 아집이었다. 설령 구제불능일 정도로 비틀린 자아라 해도, 황제의 자리가 자신의 본성을 유지하는데 방해가 될 것 같다는 판단이 있기에 물리친 것뿐이었다. 실제로 모양은 달리해도 소유한 권세를 꽉 지키고 있는 것은 이전과 다름 없었다. 금보옥이 덕후의 마각을 알려면 아직 한참 있어야 할 성 싶었다.


“후후후, 그래도 색욕은 남겨 두었소!”


음흉한 웃음을 지으며 손을 비비며 오는 덕후를 향해, 금보옥은 가볍게 혀를 차며 물수건을 던졌다. 공력이 실려있지 않지만 젖어 있어서 꽤 묵직했다. 덕후는 피하지 않고 얼굴로 받았다. 젖은 수건을 대고 마구 부비적댔다.


“킁킁~ 여기에 우리 보옥의 체취가~ 컥!”


덕후는 명치에 묵직한 충격을 받고 털썩 쓰러졌다. 보다 못한 금보옥이 질풍권을 날린 것이었다. 공력이 거의 담겨있지 않지만 천하제일권공인만큼 응징타로는 차고 넘쳤다.


“포…폭력 반대! 가정 폭력 반대!”
“…..저번처럼 밟아줄까요?”
“죄송합니다!”


덕후의 머리 밑으로 다가와 생글생글 웃는 금보옥에게 덕후는 당장 백기를 내걸었다.


“우리가 비록 부부 사이인 것은 맞지만, 시도 때도 없이 희롱은 적당히 해주세요. 불쾌하답니다.”


금보옥은 한숨을 쉬며 달래듯이 말하며 덕후를 일으켜 세웠다. 덕후는 대답대신 삐질 테다! 하는 표정을 고수했다. 어찌나 잘 어울리는지, 금보옥은 저 입에다가 당과를 물릴까 생각할 정도였다. 대신 머리를 쓱쓱 쓰다듬어주었다.


“….아이 취급 받을 나이는 지난 거 같은데?”
“유치해서요.”
“됐소!”


흥, 소리를 내며 덕후는 머리를 뒤로 뺐다.


“그보다 부탁할 거라도 있소?”
-이럴 때 눈치는 귀신 같다니까.


금보옥은 자기에게 안 어울리게 어르는 듯한 행위를 한 것을 덕후가 금방 파악하자 그렇게 티가 나나 싶었다.


“앞으로 상공이 천하문과 대상련 사이에 중재역을 해주셨으면 해요.”
“음?”
“대상련이나 천하문이나 적대는 아니지만 사이가 좋다고 하기 어려워요. 저나 염 방주라면 서로 협조하겠지만 몰라도 밑에 사람들까지는 아니죠. 그러니까 상공이 주재를 해주시면 좋겠어요. 공식적으로 왕야의 이름을 걸 필요는 없지만요.”


그 말에 덕후는 미묘한 얼굴을 했다. 금보옥이 보기에는 벌써부터 자신의 가치를 두고 써먹으려는 것 같아 덕후가 기분 나쁜 것 같아 보였다. 금보옥은 가슴이 철렁하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제가 너무 주제 넘었나요?”
“아니, 전혀 아니오.”
“상공….”
“오해는 하지 말아주시오. 지도자로서 그건 칭찬해야 마땅하지. 당연히 지녀야할 항목이고…단지…”
“단지?”


금보옥은 덕후가 개의치 않아하자 마음이 놓이는 한편 궁금증이 일어 채근했다.


“이런 일이 있을 것 같아서 미리 사람을 불렀는데 말이오. 조만간 올 것이오.”
“중재역으로 사람을 불렀다구요?”
“이름은 들어서 알 것이오. 밀천회주라고. 자금성에 있을 때 날 많이 도와준 사람이오.”
“희선 언니 말씀인가요?”
“밀천회주를 아시오?”
“아!”


뜻밖의 말에 묻지도 않은 밀천회주의 이름을 언급하던 금보옥은 덕후의 지적에 아차, 하는 심정이 되었다. 그러나 이 자리에서 굳이 숨길 것은 아닌지라 밀천회주와 언니 동생하는 사이라는 것을 순순히 밝혔다. 이미 내막은 알고 있었지만 덕후는 몰랐다는 듯이 놀란 척을 해보였다.


“솔직히 말해봐요. 희선 언니와 무슨 사이죠?”
“짐작하는대로요.”


몸을 사릴 법하건만 덕후는 깨끗이 인정했다. 말꼬리를 돌리거나 부정했다가 나중에 역풍을 받느니 먼저 매를 맞자는 심보였다. 상대를 속이기 보다는 상대가 알아서 스스로 정리할 기회를 주는 고단수 처세였다. 그리고 자신이 겪거나 후보로 점찍은 여인들은 순정에 목매는 열녀보다는 악녀에 가까운 타입들로 현실을 잘 이해하는 특성을 지니고 있었다.


예상대로 금보옥은 서운한 심사를 누르며 물었다.


“희선 언니를 왜 불렀죠? 밀천회주란 명함 때문은 아닐텐데요.”
“그녀가 장자방이기 때문이오.”
“저와 염 방주, 소 군사, 신도 형욱님만으로 부족하단 말인가요?”
“소 군사와 염 방주, 형욱이라면 능히 한신과 팽월, 번쾌에 견줄 수 있을 것이고, 그대라면 관중이나 소하에 비견될만하겠지. 하지만 거국적인 틀을 잡고 포석하는 일은 아무래도 우 희선을 따를 순 없소.”


음지에서 중원을 감시하며 황실을 수호하는 밀천회주의 역할을 맡고 있는 게 그녀다. 보통 식견이 아니고서는 하루라도 감당 할 수 없는 자리다. 그 점을 장황히 설명했지만 금보옥은 덕후의 논리에 허점을 예리하게 간파했다.


“그 역할은 상공이 대신 할 수 있지 않습니까?”


금보옥의 말대로 하기에는 덕후로서는 맡을 수 없는 속사정이 따로 있다. 왕야의 신분을 덮어놓고 지휘하면 된다지만, 결과적으로는 무림에다 자신의 능력을 드러내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그렇게 되면 부임지인 덕왕부로 향하지 않고 대상련과 천하문을 오가며 물밑작업 한게 모두 허사로 돌아간다. 천하를 속일만한 인의 장막을 완성하기 전까지는 지양해야 했다. 지금 당장 금보옥에게 그 심정을 토로할 수 없었다. 금보옥에게 자신은 남편일 뿐만 아니라 손꼽힐 정도로 믿을만한 인재였다. 써먹을 수 있으면 어디에서든 앉히려보고 들 터였다. 덕후가 이 자리에서 어설프게 거절하면 배갯송사를 하지 말란 법이 없다. 그래서 덕후는 이쪽에서 생떼를 쓰기로 했다.


“…..나는 머리 아픈 것은 질색이오.”


덕후는 말 뿐이 아니라 땅바닥에 누워 만사가 귀찮다는 표정을 지으며 방콕 폐인의 전형을 재현했다. 금보옥의 주먹이 부르르 떨렸으나 내치지 않았다. 이번에 때리면 공력을 조절할 자신이 없었다.


대신 아주 잘근잘근 공을 들여 밟아주았다. 덕후가 비명을 지르거나 말거나, 온 몸의 뼈 마디라는 마디는 놓치지 않고서 꼼꼼하게.


 


 


 


 


 


 


 



원래는 한달 가까이 쉴 생각은 아니었습니다. 최대한 보름 정도로 잡았는데, 서울시를 하나님께 봉헌한다는 모 장로 출신 덕분에 사이드로 빠졌지요. 시위에 조용히 갔다오고 넷의 의견들을 스크랩하면서 두루뭉실하지만, 많은 자극을 받고 있었습니다. 공교롭게도 이 글의 또 다른 주제 와도 맞닿는 부분이 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어쨌든 파트3 시작입니다. 역시 연재 주기는 장담못합니다.(어이)


참, 주인공 덕후의 성인 오는 伍 입니다.(설마 五로 생각하신 분은 없겠지요.;)


케릭터 프로파일 #3


우희선 : 무공 97 지모 99  정치 91
모티브 : 모리 모토나리, 아케치 미쓰히데
내   력  : 북경 태생.
명장 우겸의 후손.
덕왕부 왕비
밀천회주
전대 회주 화명사태로부터 보타암의 비전을 사사, 검공과 지법에 한해서는 천하에 견줄자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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