德厚の野望 05
페이지 정보
본문
05
다음 날, 덕후는 의관을 정제하고 방을 나섰다. 거실에는 염미홍이 식사를 하고 있었다. 머무는 동안 겸상이니 독상이니 구분하지 말고 끼니가 되면 알아서 먹으라고 지시한 탓에 볼 수 있는 광경이었다. 막 새우튀김으로 입 안에 우물거리고 있던 염미홍은 덕후를 보자마자 일어나서 자리를 권했다.
" 공자님도 식사하세요."
" 지금 아가씨를 보기만해도 배가 부른 걸? 아휴~ 이제 보니 먹는 모습도 참 복스럽기도 하지."
느끼한 시선을 받자 염미홍은 한참 잘 먹다가 속이 메쓱해졌다. 일부러라는 것을 안 까닭이다. 째려보는 시선을 회피하면서 덕후는 문쪽에 장식처럼 서 있는 형욱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 밥은 안 먹나?"
" 제가 알아서 해결합니다."
정나미가 뚝 떨어지는 대꾸였다. 형욱의 본심에 달리 악의가 없다는 것은 아는 덕후지만, 말을 해도 꼭 사람을 머쓱하게 만들었다. 염미홍이 입안의 내용물을 우물우물 꿀떡 삼키더니 배시시 웃었다. 주종간의 성정을 나름 파악한 것이다.
" 데리고 다니시느라 고생이 많았겠어요?"
기름기로 번들거리는 입술을 삐죽 내밀면서 검지 손가락으로 툭툭 가리키는 염미홍. 덕후는 그 입에다가 부채로 탁! 때려주고 싶은 욕구를 느꼈다. 그러다 다른 생각이 들어 일단 웃는 낯을 했다.
" 흑룡방에 얻어온 천 냥짜리 전표, 아직 가지고 있소?"
" 그건 왜요?"
다시 음식을 들던 염미홍의 눈동자가 순간적으로 좌우로 돌아가면서 몸이 살짝 굽어졌다. 경계심이 잔뜩 올라간 고양이와 같은 몸짓이다.
" 오늘 대상련을 갈 예정이거든. 기왕 가는 김에 처분하려고 하오."
".... 내 건데....제가 알아서 하면 안되나요?"
형욱의 발언을 표절하는 염미홍을 향해 덕후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보였다.
" 상계의 일은 잘 모르지만, 대상련의 전표는 신용도가 높다고 알고 있소. 천 냥 정도 거금이면 신원 확인 같은 거라도 하지 않겠소?"
그 옛날에 금대숭이 전대 흑룡방주에게 뒤통수를 까였을 때, 보복 수단으로 흑룡방의 전표를 무효화시키지 못한 것은, 흑룡방 하나 때문에 천하의 신용을 무시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사적 감정보다 상계의 신용을 지킨 덕분에 대상련의 전표는 실제 금은과 같은 효과를 누리게 되었다.
대신 금대숭은 전표의 발행과 관리에 다른 전장보다 까다로운 규율을 책정했다. 일정 고액 이상은 본인의 신원 조회 사항을 넣은 것이다. 이는 흑룡방을 비롯한 다른 십패의 자금의 흐름을 만반에 탐지하기 위함이었다. 물론 전장이 대상련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태반이 대상련과 연관이 있는 만큼 대상련 몰래 일을 꾸민다면 두 배 세 배 돌아가야 하기 때문에 지연 효과 및 조기경보의 역할이 된다. 이런 사항들을 잘 알고 있는 덕후는 지나가는 말로 일깨우는 척 했다.
" 그러네요. 막말로 흑룡방 새끼들이 신고를 하면 못쓰게 될 테고...."
염미홍은 시무룩해하며 품에서 백 냥 전표 열장을 꺼내주었다. 전표를 쥔 손이 덜덜 떨린다. 덕후가 받아서 주머니 안에 넣는 것을 끝까지 아쉬운 눈길을 떨치지 못했다.
"그런데 공자님을 어떻게 믿고 맡겨요?"
" 이런, 줘 놓고 벌써 딴 소리가 나오려 하오? 정 그렇다면 같이 동행하시면 되지 않소? 천 냥 가지고 벌벌 떨기는."
쯧쯧, 혀를 차는 모습에 염미홍은 속에서 울컥하는 기운이 치밀었다. "소시민이라서 한 냥 가지고도 벌벌 떤다, 어쩔래?" 라고 대꾸하려다가, 문득 스치는 기억이 있었다. 내기에 실패할 시 북경에 집 하나를 장만해준다는 소리를 아무렇지 않게 하던 약속을. 그 정도 재력을 가졌다면 천 냥 정도는 당과일 것이다. 염미홍은 동의의 뜻으로 그러마 대답했다. 덕후는 대수롭지 않은 것으로 시간을 끌었다는 몸짓으로 염미홍의 부아를 좀 돋운 다음에 형욱에게 전낭을 주면서 지시 했다.
" 너는 가서 이 나리가 탈만한 수레 한 대를 장만해오너라."
" 잠깐 외출하시는 거라면 금화루 에도 몇 대는 있을 거예요."
염미홍이 일깨워주었다. 덕후는 그대로 하라는 듯 고갯짓을 했다. 형욱이 수레를 대령하러 가는 사이 덕후는 염미홍의 옷차림을 지적했다. 현재 염미홍은 팔다리가 드러나는 짧은 단삼에 각반과 수갑을 찬 상태이다.
" 작업복에 참견할 바는 아니지만, 대상련을 방문하려는데 어울리지 않소. 몸종이라고 소개를 할 참이니 몸종다운 차림을 하시오. 그 복장을 고집할 생각이면 데려가지 않겠소."
" 네네."
투자 차원에서 천 냥도 줬겠다, 염미홍은 덕후의 잔소리를 순순히 따랐다. 방에 들어가 아무렇게나 풀어헤친 머리를 정돈하여 비녀를 꽂고 품이 낙낙한 저고리와 긴 치마를 입고 은실로 싼 허리띠로 감았다. 몰라보게 단정한 차림으로 나오자 덕후가 휘파람을 불었다.
" 훨씬 보기 좋군. 고작 몸종 차림인데 이 정도면 본격적으로 꾸미면 정말 아름답겠소."
" 공자님도 실없는 소리를 다하네요."
염미홍은 가볍게 대꾸했지만 싫지는 않은 표정이었다.
" 아니오. 관상을 보건데 성숙하면 사내 여럿을 잡아먹을 요부가 될 것 같소."
-...... 이 화상이 끝까지 좋은 소리를 할 리가 없지.
수줍게 웃던 염미홍은 분기가 확 치밀었다. 그러나 점치는 듯한 태도가 께름칙하여 내색하지 않았다.
" 어머, 그러면 어떻게 해야 그 화를 피할 수 있을까요?"
" 요기를 달랠 수 있을 정도로 정력이 좋은 남자를 만나면 되오."
덕후는 성실한 얼굴로 말했으나 염미홍은 그럼 그렇지, 하고 정색했다.
" 흥, 결국은 공자님의 첩이 되라는 소리군요?"
" 하하하, 그거야 앞으로 운명에 따라 달릴 일이고. 본인도 강제할 생각은 없소."
둘이 시시한 이야기를 하고 있노라니, 수레를 구하러 간 형욱이 돌아왔다. 밖으로 나온 덕후는 수레를 살폈다. 말은 백마였고 수레는 붉은 빛 바탕에 은박으로 무늬가 놓여 있었다. 덕후는 형욱을 마부로, 염미홍은 옆에 태운 채 수레에 올라 대상련으로 향했다.
소란스러운 저잣거리를 지나 항주 북쪽으로 향하자 시야가 탁 트이며 거대한 장원이 모습을 보였다. 높은 담으로 둘러싸여 있고 그 너머로 언 듯 비치는 수많은 기둥과 지붕들은 안의 규모가 얼마나 대단한지 상상이 가고 남았다. 중앙에는 팔두 마차가 넉넉히 통과할 수 있을만한 황금빛의 거대한 대문이 좌우의 석사자의 호위를 받으며 닫혀 있었다.
대문 위에 현판에는 용사비등한 필체로 [대륙상단연합]이라고 금박이 입혀져 있고, 그 좌우에는 각문이 나 있어 사람들이 출입을 하고 있었다. 소문만 무성했지 처음 보는 대상련의 장관에 염미홍은 순간적으로 압도되었다. 덕후를 보니 태평한 얼굴로 부채질을 하고 있었다. 형욱이야 워낙 표정이 없는 인간이니 볼 것 없고.
".... 소감이 어때요? 공자님."
" 이 몸이 거하기에는 족할 것 같구려."
자금성에서 자란 덕후다. 그리고 부임할 덕왕부의 규모를 도면으로나마 파악한 터라 대상련의 웅장함을 봐도 아무런 감흥이 없었다. 덕후는 그대로 정문으로 갈 것을 지시했다. 옆에 있던 염미홍이 놀라 물었다.
" 공자님 설마 대문을 열어달라는 건 아니겠죠?"
" 신랑을 맞이할 것이니 당연한 것 아니겠소?"
" 신랑이 되기 위해 가는 것이지 경사를 맞이하는 건 아니잖아요. 대갓집 출신이 왜 그걸 몰라? 당장 쫓겨나려면 어쩌려고. 저 쪽문으로 가야죠!"
" 하하, 지금 날 걱정해주는 것이오?"
덕후의 너스레에 염미홍은 자신의 행동을 자각했다. 늘 자신에게 밉살맞게 굴던 인간을 위해 충고를 해주다니? 염미홍의 얼굴에 피가 확 몰렸다. 변명할 말을 찾지 못해하는 그녀에게 덕후는 이제까지 놀려주기 위한 표정이 아니라 상냥한 얼굴을 했다.
" 이제 보니 아가씨는 배려심이 있는 성격이군. 내 호의는 잊지 않겠소."
" 으으...그냥 오지랖이 넓은 것뿐이죠, 몰라요!"
귓 볼까지 붉어진 염미홍은 얼굴을 팩 돌렸다. 캐릭터 보정으로 절정의 미남이다. 황도를 나온 이래로 이미지를 깎아먹는 행동거지를 하는 바람에 다소 흐려지지만, 폼을 잡으면 방심을 흔드는 것은 여반장인 것이다.
" 그럼 이왕 호의를 준 김에 날 믿으시구려. 앞으로 어떠한 일이 벌어지더라도 놀라거나 당황하지 마시고. 나중에 다 설명을 해 줄 터이니."
덕후가 단단히 다짐을 주자 염미홍은 홀린 듯이 고개를 끄떡였다. 수레가 정문으로 가자 대문의 좌우에 시립해 있던 수문장이 제지했다. 구무협의 묘사대로 두 눈에 정광이 어리고 태양혈이 불쑥 솟은 걸로 보아 고수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아마도.
" 어디서 오신 분이시오."
" 여기가 대상련 인가?"
" 보면 모르시나?"
좌우 무사들이 번갈아가며 덕후의 말을 받았다. 위아래를 훑어보는 듯한 노골적인 시선에도 덕후는 태연히 웃었다.
" 그럼 잘못 찾아오지는 않았군. 안에 기별 좀 주게. 금보옥님을 뵙자고 말이네."
" 가주 대리님은 그렇게 쉽게 만날 수가 없소."
" 그런가, 그럼."
덕후는 미련없이 수레를 돌리라고 지시했다. 덕분에 실랑이를 각오했던 무사들은 허탈을 넘어 당혹스럽기까지 했다. 금대숭 서거 후 금보옥이 가주 대리가 된 이후로 수많은 매파나 귀공자들이 혼인을 하기 위해 찾아왔다. 개중에는 세도가라면서 대문을 열 자격이 되지 않느냐고 야료를 부리는 축도 있었다. 이럴 때마다 무력을 써야하기 때문에 문지기도 고수들이 배치되어 있는 판이었다. 그런데 방금 저 공자는 없음 말고, 하는 식으로 등을 돌리지 않는가.
벌줌 하게 서 있는 둘을 향해 덕후는 허리춤의 전장을 끌러냈다.
" 아, 이건 하루종이 번을 서는 그대들을 위한 수고비라네."
전낭을 휙 던지자 한 수문장이 받아들었다. 전낭은 의외로 가벼웠다. 의아한 무사가 확인을 하기 위해 끈 주머니를 풀고 내용물을 확인하자 기겁했다.
" 헉! 처, 천냥!"
천냥이라는 말에 염미홍의 고개가 획 돌아갈 뻔했다. 그 전에 옆구리가 꼬집히는 아픔에 가까스로 제동이 걸렸다. 고개를 돌리지 않은 채 덕후가 인상을 쓰며 나지막하게 일렀다.
" 어허, 놀라지 말랐잖소. 다된 밥에 코를 빠뜨릴 격이오?"
" 끄응, 아니요. 공자, 제가 너무 경망스러웠네요."
염미홍은 시큰거리는 옆구리를 보이지 않게 비비면서 억지로 웃는 낯을 했다.
- 이 인간이 대체 무슨 수작을 부리나 보자.
속으로 투덜거리고 있는 찰나, 수문장 하나가 급히 덕후를 불러 세웠다.
" 잠깐 기다리십시오! 공자, 전낭을 잘못 주신것 같습니다."
" 안에 천냥 들은 것 말인가?"
" 그렇습니다."
" 그럼 자네들 것이 맞네. 금보옥님은 다음에 뵙도록 하지."
덕후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부채로 입가를 가렸다. 이렇게 되자 수문장들은 어찌할 바를 몰랐다. 문지기 역할을 하다보면 떡고물을 만지는 경우가 빈번하다. 그러나 천냥을 일개 문지기에게 그냥 주다니 들어보지도 못한 기사였다. 정해진 틀에 익숙한 그들에게 천 냥은 횡재가 아니라 부담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문지기는 사람을 보는 안목이 어느정도 있어야한다. 들여보낼 사람과 아닌 사람을 잘 구분해야 하는 것이다. 엉뚱한 손님을 들여보내면 집안 주인에게 가장 크게 혼나는게 문지기이니 말이다. 수문장의 느낌에 덕후는 이제까지 청혼하러 온 손님들과는 전혀 다르다는 예감이 들었다.
" 자, 잠깐 기다려주십시오. 금보옥님은 힘들지만 총관님은 뵈올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그런가. 그럼 만나고 가겠네."
수문장 하나가 쪽문으로 급히 사라졌다. 한참 기다리고 있노라니 쪽문에서 한 사람이 나왔다. 청삼을 입은 스무 살 남짓의 청년이 나왔다. 이목구비가 단정한 것이 귀티가 흘렀고, 행동거지가 정중한 것이 실제 나이보다 10년은 더 들어보인 듯한 관록이 배어있는 듯 했다.
" 금천효입니다. 본련에 잘 오셨습니다."
수문장에게 내막을 들었을 텐데도 천효는 침착하게 덕후를 맞이했다. 덕후는 답례없이 고개를 끄떡이고는 품에서 전낭 하나를 꺼내 천효에게 던졌다.
" 총관 수고비요. 자, 총관을 뵈었으니 가보자."
그리고는 형욱에게 미련없이 수레를 돌릴 것을 명했다. 이렇게 되자 침착한 천효도 흔들리지 않을 수 없었다. 수문장에게 대뜸 천 냥을 주었다는 사람이 있기에 대체 무슨 수작인가 하고 나왔더니 자신에게도 똑같이 전낭을 주고 제 갈 길을 가는 것이 아닌가? 수문장들의 시선이 전낭에 쏠린 것을 감지한 금천효는 전낭을 확인했다.
" 마, 만 냥..."
곁에 있던 수문장이 숨이 넘어가는 듯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금 천효는 수문장처럼 놀란 표정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았다. 대신 덕후를 쫓아가 읍했다. 종종 걸음으로 걷는가 싶더니 어느새 수레 앞을 막은 것이다.
" 귀한 손님이 오셨는데 이대로 돌려보내면 천하가 본련을 손님 접대 제대로 못한다고 비웃을 것입니다. 안에 들어가서 차 한 잔이라도 드시고 가시지요."
" 본인의 용무는 련주 에게만 있소이다. 안에 들어가서 다른 사람과 한담을 나누는 것은 시간 낭비요. 그래서 전표로 성의를 대체한 것이고."
천효의 미간이 꿈틀거렸다.
" 본련이 아무리 상인에서 출발하였다고 하나...."
" 혹시 시간은 금이요, 돈이란 말을 들어보지 못하였소?"
덕후가 말을 자르자 금 천효는 상대가 보통내기가 아님을 짐작했다. 쓴웃음을 감추지 않았다.
" 자리를 한 번 만들어보이겠습니다. 대신 저와 같이 각문으로 들어가셔야 합니다."
" 그럽시다."
목표를 달성한 덕후는 강짜를 부리지 않고 순순히 수레에서 내렸다. 형욱더러 수레를 지키도록 하고 염미홍을 동반하여 대상련 안으로 들어갔다. 들어가면서 염미홍은 요술에 홀린 듯한 기분이 들었다. 출발 전만해도 문전박대를 상상했는데 순순히 초청 받을 줄이야.
- 그냥 별난 공자님이라고 하기엔 의표를 찌르는 솜씨도 기상천외하네?
대상련 안은 밖과 달리 아담하게 꾸며져 있었다. 루각들 사이로 각 화단마다 천하의 기화이초가 교묘하게 심어져 도원경같은 정취를 자아냈다.세 개의 중문을 통과하고 두 자리 넘어가는 누각들을 지나쳐 천효는 한 정자 앞에 멈춰섰다.
" 오르시지요."
정자에는 자리가 마련되어 있었고 그 중간에 발이 드리워졌다. 금천효가 발이 있는 데로 가 서자, 덕후는 빈 의자로 가서 거침없이 앉았다. 그 뒤를 염미홍이 시립하듯이 섰다. 대갓집에 공연 차 갔기 때문에 시녀들이 어떻게 행동하는지는 파악해두고 행동에 옮긴 것이다.
" 객소로 안내할 줄 알았더니 벌써 행차하셨군."
제 집 안방에 온 것처럼 자리에 앉은 덕후가 꺼낸 첫 마디였다. 상견례를 예상했던 금천효는 흠칫했고, 염미홍은 간이 오그라드는 것을 느꼈다. 그러자 발 안쪽에서 나른한 듯한 음성이 들려왔다.
" 귀공깨옵서는 규중처자로서 부덕하다고 질책하시는 것은 아니겠지요?"
" 그럴리가, 무림인이라면 명성을 추구하고 상인이라면 이재를 추구하는 것이 마땅하오."
발 안쪽에서 청아한 웃음이 흘러나왔다. 염미홍에게는 사내를 홀리는 듯한, 여우의 웃음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 옳으신 말씀이시군요. 귀공께서는 본련에 무슨 이재를 안겨주시려고 왔나요?"
" 나요."
덕후는 자신의 가슴을 불쑥 내밀면서 부채 끝으로 툭툭 쳤다. 이 대응에 정자 안에는 한 줄기의 적막한 바람이 불었다. 가장 먼저 정신을 차린 것은 발 안의 여인이었다.
".... 청혼을 하시는 것인가요?"
" 그렇소. 충분히 차고 넘칠 것이오."
" 저의 지아비가 되시려면 대상련의 주인으로서도 자격을 갖추셔야..."
" 아, 잠깐."
덕후는 팔을 올려 금보옥의 말을 막았다. 그리고 정말로 궁금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 내가 어째서 대상련의 주인이 되어야하오?"
" 네?"
" 대상련은 그대의 조부와 그대가 일군 평생의 기업이 아니오? 아무리 지아비가 된다고 하나 외지에서 온 남자에게 맡기다니, 불민한 소생으로는 도무지 이해가 안가오."
데릴사위로 무전취식하겠다, 라는 것을 저렇게도 돌려말할 수 있구나. 하고 염미홍은 감탄했지만 금천효와 금보옥은 덕후의 의도를 파악하느라 머리를 굴렸다. 지금까지 만났던 이들은 기업을 삼킬 궁리만 했지 가독을 열외로 하고 결혼만하겠다는 작자는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 그럼 귀공은 대상련과 별도로 소녀와 결혼만 하겠다는 말씀인가요?"
덕후의 의도를 파악하기 위해서인지 금보옥이 물었다. 덕후는 상체를 약간 숙이더니 은밀한 어조로 말했다.
" 맞소. 사실 나는 대상련 따위보다는 그대를 더 원하고 있소."
발 안쪽에서 움찔하는 듯했다. 뒤에 있던 염미홍도 마른침을 삼켰다. 저런 소리를 직격으로 들었으니 발 안쪽의 금보옥의 얼굴이 어떤 상태일지 충분히 짐작이 갔다. 한참 후, 금보옥은 매서운 어조로 면박을 주었다.
" 방금 말씀, 묵과할 수 없군요. 본련을 하잖게 보는 것인가요?"
" 그럴리 있겠소? 단지 대상련도 따지고 보면 사람이 세운 것에 지나지 않소? 하지만 절세가인은 조물주가 빗은 것. 소생은 단지 이치를 바르게 밝힌 것뿐이외다."
계속 작업을 건다. 발 안의 침묵은 종전보다 더욱 길어졌다. 발 안의 금보옥은 덕후의 말에 신선한 충격과 묘한 감흥 같은 것이 뒤범벅 되어 마음을 뒤흔드는 것을 느꼈다. "기쁨"이라 부를 만한 감정이라는 것을 깨닫고서 금보옥은 놀랐다. 대화가 늘어날수록 점차 발 너머의 남자에게 중독이 되는 것 같기에.
그러나 한 편으로는 냉정하게 계산을 하는 머리가 있었다.
" 쉽게 대답할 수 없는 문제군요. 귀공께서 소녀를 마음에 드신다면 못드릴 것 없지요. 하오나..."
금보옥은 의도적으로 한숨을 쉬었다. 철저히 계산된 행동으로, 뭇 남자들은 이런 금보옥의 수심에 젓은 기척에 간이라도 내줄 듯이 굴었다.
" 조부님께서 세상을 뜨신 이래, 본련은 외압을 받고 있습니다. 상공께옵서는 그들을 감당하실 수 있을터인지..."
" 흑룡방들 말이오? 알아서 자멸할 무리들이니 신경쓸 것이 못 되오."
" 하지만 부자도 망하는데 3년은 간다고, 무림 십패의 일원이 그렇게 쉽게 무너지리라 보기는 힘들어요. 마지막 발악으로 본련이 위기에 처할 수 있답니다. 소녀를 이렇게까지 생각해주시는 상공에게 피해를 끼칠 수는 없어요."
십패중에 무력은 가장 최하위를 달리는 대상련이다. 언제 주변 세력에 삼켜진다해도 이상할 것이 없었다.
- 아주 남창까지 얻어달라고 하지 그러지?
덕후는 속으로 빈정거렸다. 금보옥을 비롯하여 주요 인물들의 프로필을 꿰고 있다. 어떤 의미에서 덕후는 현 무림의 조물주(?)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니 금보옥의 내심을 모를 리가 없었다. 본래 진행대로라면 호탕하게 승락을 하고 단숨에 흑룡방으로 달려가 때려부신다음 남창 일대를 지참금으로 삼아 대상련과 금보옥을 겟 한다.
- 최대한 조용히, 안락히 사는 것이다.
밖에서야 "와하하하~나 졸라 쌍 쎄~ 까부는 새끼들 다 주거써~" 하든 말든 상관 없지만, 직접 살다보니 일련의 과정이 매우 귀찮았다. 후까시 어필을 하기 위해 이마에 피를 흘리며 불굴의 투혼을 빛낸다! 는 것도 관람자 입장에나 볼만하지, 당사자가 되면 지나가는소시민A가 백배 낫다. 우희선에게는 무림을 정리한다고 폼을 잡았지만 실제 덕후의 내심은 고만고만 살기 위해 현상유지를 최우선으로 다짐했다. 그렇다고 안주하면 발판이 무너지니 수시로 점검을 하는 것이다. 덕후가 생각하기에 폭군 주왕이 망한 것은 주지육림과 사치를 부려서가 아니라 너무 몰두하는 바람에 지 발판을 건사하지 못한 걸로 여겨오던 차였다.
그래서 덕후는 원래 대답과 다른 소리을 꺼냈다.
" 그대가 날 지켜주리라 믿소."
일동은 어이가 없었다. 무능력을 인정해서가 아니라, 태도가 하도 당당해서 그런 것이었다.
" 나는 그대의 마음을 지킬 것이오. 대신 그대는 나를 지켜주시오."
아니, 보통은 그 반대가 되어야하지 말입니다. 염미홍은 속으로 절규했다. 잠시 후, 발 안에서 낭랑한 웃음 소리가 흘러나왔다. 진심으로 유쾌한 듯한 웃음에, 염미홍은 금보옥도 덩달아 미쳤는가 보다 싶었다. 그러나 금보옥은 제정신이었다.
" 이제까지 별별 혼사 제의를 받았지만 이런 식의 제의를 받는 것은 처음이에요. 소녀를 그토록 마음에 들어하시니 대상련이 망하더라도 그대의 몸만은 지켜드리죠. 대신 당신은 어떻게 제 마음을 지켜 줄 것인가요?"
" 당장 결혼하기도 그렇고, 1년의 말미를 주시오. 그 안에 그대의 마음을 얻으리다."
덕후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용건이 끝났으니 더 볼 일은 없었다. 단을 내려가던 덕후는 잊은 게 있다는 듯 발쪽으로 고개를 향했다.
" 깜빡한 게 있는 데 발을 올릴 수 있겠소?"
"..... 좋아요."
승락이 떨어지자 금천효가 손수 발을 접어 올려주었다. 발이 올라가면서 금보옥의 모습이 서서히 두 사람 앞에 드러났다. 이윽고 드러난 모습에 염미홍은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허리까지 내려오는 자주빛 머리카락에 은은한 푸른 빛이 감도는 눈동자를 지닌 절세의 미녀였다. 다섯 이상의 얇고 긴 장옷을 겹쳐 입어 그 이국적 미모를 현란하게 비추는 듯했다. 보통 여인보다 약간 작은 키였으나 봉긋한 가슴과 잡티 없이 하얀 얼굴에 어우러져 채 피어나지 않은 꽃망울을 연상시켰다.
" 아름답군."
덕후는 씩 웃으며 감상을 남기고는 금보옥의 미모에 얼이 빠져 있는 염미홍의 허리를 쿡 찔러주며 길을 재촉했다. 올 때처럼 표횰히 사라지는 뒷 모습을 금보옥과 금천효는 끝까지 지켜보았다. 시야에서 완전히 지워졌을 때, 금천효의 얼굴에 의혹이 떠올랐다.
" 저 자의 제의를 어떻게 생각하시오?"
" 아이 참, 소녀는 오직 큰 어르신의 뜻을 따를 뿐이랍니다."
금보옥은 고인이 된 금대숭을 내세웠다. 결국은 금대숭의 유언을 방패삼아 자기 뜻대로 하겠다는 의미였다.
" 덕왕부에는 아직 기별이 없나요?"
금천효는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대상련의 총관뿐만 아니라 황실에 납품하는 어용상인의 책임자이기도 했다.
" 아직도 병중이라는 군."
" 어련하실까. 당사자는 항주에 있는데."
봉건 사회에서 번왕은 나라 안의 나라를 다스리는 입장이었으나, 명대에는 조금 의미가 달랐다. 번왕은 잠재적인 황권 위협자이고 영락제가 훌륭하게 실례를 보여줌으로서 왕부 자체의 군사는 적게는 삼천에서 많게는 이만을 넘지 못하도록 규정되어 있었다. 군사와 행정에 직접적으로 권한이 없지만, 삼정사를 감찰할 수 있는 권한이 있기 때문에 막강한 권력을 휘두를 수 있었다. 때문에 덕왕부가 남경 근교에 자리 잡고 부임했을 때, 남직례 일대의 관리들이나 토호들이 인사하기 위해 찾아왔지만, 와병중이라는 이유로 방문첩만 받아두고 있었다. 이를 두고 세간에서는 북경에 있는 황태자를 위해 스스로 몸을 낮추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 언니가 말하길 자금성 안에는 잠룡이 있다고 하던데.....그럼, 언니는 단순한 바보에게 눈이 멀었거나, 아니면 세상을 속일 정도로 멍청이를 가장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네요."
“내 생각에는...”
금천효는 조심스럽게 자기 생각을 밝혔다. 사기꾼이 아니라는 것은 문지기와 자신에게 던진 천 냥, 만 냥 전표가 진짜라는 것으로 증명 되었다. 그 정도 배포와 신분을 가진 자가 수레를 세놓는 것을 아무렇지 않게 여기며 대문 열기를 고집하지 않고 쪽문으로 거침없이 들어온다는 것은 후자에 무게가 실렸다. 그러나 금보옥은 부인했다.
" 반반이에요. 왜냐하면 언니와 저의 사이는 그 잠룡 분도 모르는 일이니까요."
밀천회는 천하 각지에 은밀히 분포되어 있다. 성격상 회주 밖에 구성원을 모르는 철저한 점조직과 요인 마다 실세의 핵심인사이기 때문에 천하의 눈을 속여오고 있던 것이다. 금보옥은 어느 쪽일까 고민했다. 그러다 입가를 가리며 살포시 웃었다.
" 우후후, 한 가지 실험을 해보도록 하죠. 흑룡방에서 저를 신부로 맞이하겠다, 어쩌겠다 불경한 소리를 지껄이고 있는 데 잘만 하면...."
금천효는 흠칫했다.
" 혹시 차도살인을?"
" 그런 끔찍한 말을, 차풍사선이라는 좋은 말을 두고서."
금보옥이 금천효를 나무라는 시늉을 했다.
" 무엇보다 그 사람은 강도일, 그 파렴치한보다 마음에 드는 걸요. 무능해서 망신당하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목숨만은 붙여줄 생각이에요."
그렇게까지 마음에 들었나, 하고 금천효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로서는 덕후의 발언을 들을 때마다 첫째로는 기가 막혔으며, 둘째로는 남아대장부로 연약한 여성을 보호해주겠다는 소리는 커녕 역으로 보호를 청하다니 한심하기 그지없었다. 대상련의 총관을 맡을 만큼 역량 있는 금천효였지만 그 역시 이 시대 남자의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 만약 그 사람이 능력을 숨기고 계신 거라면 흑룡방 정도는 가볍게 정리해주시겠죠. 거기에 전임 방주는 인과응보로 죽었지만, 그렇다고 배신자의 핏줄을 만천하에 활개 하도록 내버려 둘 수는 없어요. 주제넘게 상전을 넘보다니...."
금보옥의 푸른 눈이 서릿장 같은 한기가 피어올랐다. 그러나 오래 가지 못하고 규중 숙녀처럼 단정한 표정으로 돌아온다. 정자의 화원이 금보옥의 시야에 들어왔다. 나비 몇몇이 팔랑거리며 꽃을 찾고 있었다.
" 무림에 난세는 곧 찾아와요. 당금 십패들은 하나 둘 세력 정비를 마치고 주변을 호시탐탐 노려보고 있잖아요? 이젠 기류를 타고 순항을 하느냐, 침몰하느냐가 남았을 뿐이죠."
" 꼭 싸워야 하는가...."
금천효의 얼굴에 그늘이 깔렸다. 자신의 출생부터가 난세의 아픔이었다.
" 싸우지 않는다면 저야 좋죠. 하지만 송 태조가 말했잖아요? 천하는 한 집안과 같아서 남이 발 뻗고 자는 것을 두고 볼 수 없노라고. 십패 중 하나가 천하인이 되서 질서를 세우는 것이야말로 난세를 종식시키는 길이 최선이에요."
그 십패의 하나는 자신의 대상련이 중심이 될 것이다. 덕후와 달리 금보옥의 꿈은 안주에 있지 않았다.
주인공(?)의 본신실력은 데미 갓 입니다. 작정하면 혼자서 무림 전체를 상대하는 것도 가능합니다. 그러나 그대로 진행하면 투드 밖에 안 되니....잔머리 근성 외 막판에 혼노지(?)급 반전을 끼웠습니다. (로도스SS의 마무리 때 폐기한 임팩트 루트의 한도 있고...-_-)
이 사실을 미리 언급하는 이유는 이세계용자 패턴을 기대하시는 분이 있으면 일찌감치 다른 걸 찾아보라는 마음에서 입니다. 저도 읽는 쪽은 좋아해서 전작에 시도했는데, 번번이 쓴 잔을 마셔서 내키는 대로 진행하렵니다.~_~
ps - MC는 고려해보겠습니다.;
ps2 - 전작들을 삭제 했기에 이걸 연재하는 겁니다. 복구는 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