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상회 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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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 이사 그리고 반장 아줌마.
반년 동안 사무실도 얻지 못할 정도로 바빠서 나의 오피스텔에서 의뢰를 받고 회사일을 했던 시기라서 휴식의 개념조차 얻지 못할 무렵이었다.
그래도 사무실의 필요성은 느끼고 있었다. 부하직원 모두 재택근무 상태라지만 영업을 할 영업 직원들이나 접대를 하기 위한 공간이 극도로 필요했던 시기였다.
의외로 사무실을 구하기는 쉬웠다. 한창 불던 벤쳐 바람이 거품이 빠지기 시작하면서 테헤란로의 IT밸리는 텅비워지고 있었으니까.
컨설팅 비가 조금 비싼 편이기도 하였지만 워낙 해커들 월급 빼놓고는 들어간 돈이 없어서 벌어놓은 돈이 테헤란 밸리의 5층짜리 작은 건물 한 채는 살 정도가 되었다. 그렇게 해서 나는 나의 이름으로 작은 건물을 샀고, 회사가 망하더라도 임대료는 벌수 있게 되었다고 혼자 웃던 시기였다.
물론 아직 해야 할 일은 넘치고 있었다. 일단 영업직과 접대를 위한 인원도 뽑아야 했고, 컨설팅만으로 회사를 운영하기엔 시간이 가면 갈수록 컨설팅 업체가 많아지고 있기 때문에 경쟁력이 떨어지고 있었다.
개발인력은 기존인력으로 대체한다고 해도, 잘나가는 컨설팅 일까지 생각한다면 한숨만 나올 뿐이었다. 그래도 일은 계속 밀려오고 있었으니 행복한 고민이었다.
이 때 즈음이었다. 사건의 발단이 된 사촌형의 전화는.
“정현아, 너 요즘 잘나간다면서?”
잘나가긴 우리 형도 마찬가지다. 외국계 금융 기업에서 잘나가는 펀드 매니져로 일하고 있었다. 가끔 TV에서 경제 관련 뉴스나, 토론회에 얼굴을 내밀 정도였다. 나도 도움 받았다. ㅋㅋ 스톡옵션으로 받았던 5억 정도 되는 돈을 학교 다니는 2년여 동안 3배로 불려놓아서 프리랜서 팀 초기에 잘 썼으니까.
“잘나가긴 형도 마찬가지잖아. 그런데 왠일이야? 회식 거리 있어?”
아 울 사촌 형도 가끔 날 회식 자리에 불렀다. 덕분에 울 사촌형 회사에서 회식 자리에서 이쁨 받는 직원이다. 근데 생각해보니 열받네. 어이 작가 글 쓴지 2부가 되도 한참 지났는데 이제야 내 이름이 나온거야 죽을래.
“퍼억”
흑 아프다. 멀쩡하던 액자가 왜 갑자기. 흠.. 이거 작가의 횡포 아냐!
“퍼~억. 쾅”
미치겠다. 이젠 책상까지 날 덥치네. 작가님, 작가형 내가 잘못했어. 내가 강남에 젤 잘나가는 아가씨들 있다는 룸싸롱 데리고 갈게. 거기 김마담이 대략 4년 전부터 나랑 붕가붕가 친구야. 내가 단골들 잘 물어줘서 이젠 아예 가게 낼 정도로 돈 벌었대.
이제 조용하구나. 작가의 힘 대단하군. 근데 작가도 남잔가봐.. ㅋㅋ 여자 밝히긴... 돈은 걱정하지마. 나 돈 많아.
“무슨 소리냐? 누가 너 때리냐?”
“아니야, 형. 근데 왜?”
“너 아직도 17평짜리 오피스텔에서 회사일 하면서 사냐?”
“어이 형 지난번에 건물 사고 회사로 제대로 시작할 때 불르니까, 바쁘다고 안 와서 섭섭하게 하더니. 이젠 기억도 못하는 거야?”
“흠... 흠...”
“헛기침 하지마. 나이도 얼마 안먹었으면서.”
“아니 작가가 안알려줘서 그래. 내가 설마 기억 못하겠냐? 퍼~~~억”
전화기로 이상한 말이 들린다. 흠. 형이 작가 돈 굴려준다고 한다. 아... 작가 캐릭터 파악된다. 돈 좋아하고 여자 좋아한다. ㅋㅋ 전형적인 내 형들이네.
“형 작가 비방 함부로 하지마. 얼마나 좋으신(폭력적이면서, 쪼잔하고, 돈 좋아하고, 여자 좋아하는) 분(놈) 이신데(인데).”
“너도 아까 그 소리가. 아악”
아이고 형 내가 갈쳐줬는데도. 거참 저 머리로 어떻게 펀드 매니저 하는지.
“근데 형, 용건이 뭔데. 작가한테 맞아 죽기전에 용건 말하고 전화 끊는게.”
“그래 그게 좋겠다. 나 이번에 해외로 부임 받아서 간다.”
“응.”
“이번에 월스트리트 본사로 발령났다. 그래서 니 형수랑 같이 간다.”
“형 솔직히 말해. 원정 출산 가는거지?”
“흠. 흠. 내가 가는 건 원정 출산 받으러 가는 것도 부임 받아 가는 것도 아녀.. !@#$”
형 원래 저런 사람 아니었는데 맞은게 충격이 컸구나. 하긴 나처럼 거칠게 살아온 인생이 아니니. 작가의 폭력 아 다시 올려놨던 액자가 흔들린다. 작가분처럼 폭력적이지 않고 현명하고 착하신 분이랑 어울리기는 힘들겨(나 뭔소리 하는겨.).
“그래서 뭐.”
“응, 이번에 해외로 부임하게 되면서, 집이 비잖아. 솔직히 너도 알다시피 이 집 얼마나 형수가 좋아하냐? 남한테 세 주기도 그렇고. 형수가 그러더라. 너 작은 오피스텔에서 고생한다고 우리 나가 있는 동안 니가 쓰면 어떻냐고?”
얼레 이게 왠 횡재수야. 오늘 좋은 꿈도 안 꾸었는데. 형네 집이면 경기도 일산에 있는 고급 빌라 아니야. 34평에 지은지 막 1년 되고 형수 말로는 신혼 부부들만 살아서 조용하고 살기 좋다는... 고급 빌라.
“정말이유. 주면 나야 고맙지. 근데 월세 얼마 줘야 하우?”
“내가 너한테 월세 받으려고 이런 소리 하겠냐? 그냥 관리비만 내라.”
이렇게 해서 일산의 고급 빌라도 들어간 것이 행복의 시작이었다. 하지만 행복이라고 해서 무조건 시작되는 것은 아니었다. 워낙 새 사무실을 들일 장비(난 확실히 경영자 타입은 아니다. 장비들이는데 돈 무지하게 썼다. 이놈의 공돌이 기질)들이나, 새로 인원의 들이고 인원들 교육 시키느라 이웃에 누가 사는지 모르는 바쁜 생활이었다.
솔직히 6개월은 그전의 1년 반보다 더 바쁜 생활이었다. 오죽하면 새 사무실에 들어온 것이 잘못된 일인가? 생각했을 정도니. 그래도 기존 인원들과 새로 뽑은 해커들은 워낙에 폐인 기질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인지 잘 어울렸고, 영업부로 영입해오는 사원들은 형들의 도움이 컸다.
실력있고 믿을만한 사람이란건 흔하지 않다. 하지만 의외로 형들의 도움으로 M&A 전문가 출신의 재원을 얻을 수 있었다. 또 반년동안 그녀를 주시한 결과 믿을 만한 사람이란 생각이 들었다. 성실하고, 경영에 관한 초보자나 다름없는 나를 무시하는 태도가 아니라, 내가 막히는 것이 있으면 기분 상하지 않게 가르쳐 주는 것이 더욱 나의 맘에 들게 하였다.
처음에는 영업부만을 맡기고 능력을 지켜보았지만, 결과적으로 나중에는 부사장의 역할까지 맡기었다.
이렇게 회사가 정리되는 반년동안 맨션에서 생활하고 있는 나였지만 옆집에 누가 사는지조차 제대로 모르고 이웃들도 이사 온 사람이 누군지 알지 못하고 있었지.
하지만 회사가 안정화되고 조금은 생활을 영유할 수 있을 만큼이 되자 이웃들이나 나나 슬슬 얼굴을 읽혀가고 있었어. 신혼부부들을 대상으로 분양한 맨션이라 그런지 부인들이 전부 퀄러티가 상당했거든. 그리고 쉬는 날이나 아침마다 적어도 얼굴을 보면 인사를 할 정도의 친분은 생겼지.
친분이 생기고 나서가 문제였어 내가 살고 있는 층은 501호(실제로 5층은 아니야 우리 맨션은 4층까지 밖에 없어. 아마도 4자가 재수없는 숫자라고 해서 건너 뛴것 같아.) 그리고 반장이라고 불리는 아줌마가 502호에 살고 있었지.
맨션에 사는 사람들 모두 반장언니 혹은 반장이라고 불러서 나는 별명이 반장이구나 이렇게 생각하고만 있었는데. 글세 반상회 반장이었던거야.
정말 오랜만에 들어보는 단어였어. 요즘에도 그런거 있나 싶었는데, 옆집 반장 아줌마가 슬슬 나를 반상회에 나오라고 하는거야. 그 동안은 회사가 바뻐서 안불렀지만 이젠 맨션의 일원으로서 활동하라는 거지.
맨 처음에 반상회가 있다고 들었을 때에는 좀 멍했어. 있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지만 우리 맨션은 주택가와 떨어진 작은 동산이라고 할 수 있는 곳에 중턱에 위치하고 있었고, 맨션도 딱 한 채 지어져 있었거든. 솔직히 차 있는 사람들이나 살 수 있는 곳이지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살 수 없다고 생각해. 그래도 큰 불편은 없었어. 차로 10분 거리에 마트가 위치하고 있었고 일산 시내도 20분 정도면 충분했으니까. 모두들 주부로 활동하는 사람들이 힘들겠다 생각하고 있겠지만 반상회의 활약이라고 해야 할까. 맨션 이름으로 작은 봉고차를 사놓고 장을 보거나 문화생활을 하거나 맨션의 여자들은 함께 생활하고 있었으니까. 게다가 몇몇 집은 차도 2대였으니 불편할 건덕지가 없지.
위험하지 않냐고? 그건 좀 그래 밤에는 나가기가 무섭지. 하지만 반상회가 근처 경찰서에 부탁을 하고 동사무소에 청원을 내서 결과적으론 꽤 원래 맨션에 있던 방범시설까지 포함된다면 맨션을 둘러싸고 있는 담장 안은 안전하다고 할 수 있어.
여튼 잘 들어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8가구가 사는 맨션치곤 꽤 반상회가 활동적으로 활약하고 있었고, 내가 보기에도 아파트의 말도 안 되는 짓들 하는 부녀회들보단 낫다고 생각했어.
하지만 여자들만 모여 있는 반상회에 내가 가서 무엇하냐고? 우리 맨션의 반상회는 반상호의 취지 목적뿐만이 아니라 맨션 여자들의 여가 시간 활용, 취미, 운동, 헬스클럽까지 모두 같이하는 셈이라 정말 여성들의 모임이라고 할 수 있어.
그러니 난 그 자리에 가면 꽁보리밥에 도토리 꼴이지. 게다가 총각이 가면 얼마나 씹을 건지.. 아줌마들이란 게 원래 그렇잖아. 뭐 외모로만 보면 절대 아줌마답지 않지만.
하지만 아침에 출근할 때, 반장 아줌마는 항상 내 문 앞에서 기달리는 건지 웃는 소리로 금요일 저녁에 자기 집으로 오라고 하고, 저녁에는 맛있는 반찬거리 갔다 주면서 하는데 정말 미치겠더만. 그래도 꾿꾿히 버티어 냈어. 솔직히 반장 아줌마 그렇게 무대포이신 분은 아니었거든.
그래도 양심의 가책이라고 할까. 반찬도 얻어먹고 하는데, 은근히 미안해지는 것이 사실이었다. 하지만 도저히 반상회에 참가하는 것은 나에게 힘든 일이었다.
그러던 중 보통보다 좀 늦게 집에 들어가는 길이었다. 열쇠를 따고 집에 들어가려 하는데 옥상으로 들어가는 계단에 누군가가 앉아 있는 것이 보였다.
4층의 전등으로는 옥상으로 올라가는 계단에 앉아 있는 사람이 누군지 잘 알아 볼 수 없었다.
“누구세요?”
“흑흑... 아니, 아니예요.”
누구냐고 물었는데 아니라고 대답하는 건 무슨 심보람. 하여튼 옥상으로 통하는 계단으로 올라갔다. 솔직히 울고 있었고 머리가 흐트러진 여자가 서 있어서 순간 귀신인 줄 알았지만 반장 아줌마였다.
“반장님, 여기서 뭐하세요?”
“괜....찮아요.”
반장 아줌마는 말투도 그렇고, 하는 행동도 정상적으로 보이지 않았다. 평소에는 늘 빈틈없고 남에게 베푸는 친절한 모습만 보았던 나로서는 적응이 되지 않는 모습이었다.
내 질문에 대답하는 것도 그랬다. 늘 바른 생활 교과서처럼 정석적인 대답만 하던 그녀였다. 무언가 큰 일이 일어났다는 건 짐작 할 필요도 없었다.
“일단 저희 집에 들어가서 따뜻한 차라도 한 잔 하죠. 이 손 봐라. 완전히 얼음장이네. 한 겨울에 여기서 시간을 얼마나 보낸 거예요.”
“괜... 찮아요.”
“괜찮긴 뭐가 괜찮아요. 저 따라 들어와요.”
맨션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 다행히 핸드폰으로 예약한 보일러 시스템은 제대로 작동하고 있었다.
“여기 앉아서 기다리고 계세요. 제 따뜻한 커피 한잔 드릴게요. 아이리쉬 커피 괜찮죠?”
소파에 앉은 반장 아줌마는 넋이 나간 사람처럼 대답도 없이 멍하니 벽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서둘러 커피 포트에 물을 넣고 아이리쉬 커피를 준비했다. 그리고 아이리쉬 커피에 들어가는 위스키를 간이 바에서 가져왔다. 적당한 위스키는 얼은 몸을 덥혀주는데 탁월한 효과를 차지한다.
물은 순식간에 끓었고 아이리쉬 커피 두잔을 들고 소파로 갔다. 소파에 앉아있는 반장 아줌마는 이젠 두 눈에서 한 줄기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머그컵에 담긴 아이리쉬 커피를 아줌마와 나의 앞에 놓아두고 아줌마에게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커피 드세요.”
아줌마는 두 손으로 따뜻한 커피잔을 감싸쥐고 커피를 마시기 시작하였다. 두 손으로 머그컵을 잡고 커피를 마시는 그녀의 모습을 보니 아줌마라기보다는 소녀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어깨를 덮는 중간 정도의 생머리. 추운 곳에 오래 있어서였을까? 약간은 창백해 보이는 그녀의 얼굴에 조금씩 따뜻한 온기가 스며들어가는 모습은 명화를 감상하는 느낌이었다.
넓지도 좁지도 않은 이마, 이마 아래로 보이는 미려한 곡선의 눈썹, 눈썹 사이로 친절하긴 하지만 자존심이 있다는 것을 알게 해주는 콧대, 그리고 얇지만 청초함이 느껴지는 입술, 그동안 내가 경험해왔던 여성들 중에서도 최상급의 얼굴이었다.
평소에는 항상 반상회에 나와라, 반상회 활동에 참가해라, 이런 잔소리만 들어와서 반장 아줌마는 나에게 부인이라는 호칭보다는 아줌마라는 호칭으로 머리속에 인식되어 있어서 그녀의 아름다움을 느끼지 못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뜨거운 커피를 호호 불어가면서 마시는 그녀의 모습은 안성기씨와 맥심 광고에 자주 나오던 이름 모르는 CF모델을 생각하게 하였다. 또 약간은 주황색 빛이 감도는 거실의 조명은 그런 그녀의 모습을 광고 속의 한 장면으로 여기게끔 하였다.
그럼 난 안성기인가, 피식 웃음이 나왔다. 적어도 안성기보단 잘생겼다. ㅋㅋ
“웃는 모습이 참 보기 좋네요.”
나의 웃는 모습을 보고 그녀가 처음으로 뱉은 말이었다. 그 말을 들은 나는 그녀가 조금은 안정을 찾아가고 있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런 소리 자주 듣습니다.”
“어머 호호. 평소에는 젊잖은 분이신줄 알았는데 이런 농담도 하실 줄 아네요.”
이렇게 시작된 그녀와 나의 대화는 계속 되었다. 대화를 나누면서 즐겁다는 생각을 하였고, 그녀도 그런 느낌이었는지 화사한 미소를 보여주었다. 나는 개그 콘서트, 웃찾사 등에 보았던 유행어를 하였고 그녀는 주로 들어주는 편이었다.
“모처럼만에 아무 생각 없이 웃네요. 고마워요.... 아 그러고 보니 이웃에 사시는 분인데 이름도 모르네요.”
“김정현이라고 합니다. 부인은 성함이......”
“부인이라 부인이겠죠. 저도..... 이하연이라고 합니다.”
“하연씨라 이름이 참 좋으네요. 어감이 마음에 듭니다.”
“그 사람도 처음 선 자리에서 저를 보았을 때 그런 이야기 했죠. 흑흑.”
그녀는 감정이 북받쳐 올라오는지 울음을 터뜨렸다. 그리곤 고개를 숙이며 소리 죽여 울기 시작했다. 너무나 애처러워 보이는 마음에 나도 모르게 그녀가 앉은 소파 옆자리로 자리를 옮겨 그녀를 내 품 속에 앉았다.
“........”
“흑... 으.. 아...”
그녀의 소리 죽인 울음소리는 한참 계속되었다. 그녀의 눈물에 내 셔츠가 젖고 그 차가움이 느껴질 때 나의 감정도 하연이와 동화되는 듯 했다.
어느새 내 마음속에 그녀는 반장 아줌마라는 호칭보다 하연이란 호칭이 더 어울리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저기 물좀 주실래요?”
한참을 울어서 목이 말라서였을까? 내 품에서 나온 그녀는 물을 찾았다.
냉장고를 열어보았지만 생수는 없었다. 다행히 이온음료가 있어 그걸 꺼냈다.
"저기 생수는 없고, 이온 음료 있는데 이것이라도 드실래요.“
“네.”
이온 음료를 컵에 담아서 그녀 앞에 놓아두고, 앞자리가 아닌 옆자리에 앉았다. 왠지 그래야 될 것 같은 느낌이었다.
하연이는 많이 목이 말랐는지 이온음료를 꿀꺽 꿀꺽 넘겼다. 그녀의 목젖이 움직이며 마시는 모습은 처랑해 보이는 그녀와는 달리 섹시하다고 생각되었다.
“저기 고마워요. 무슨 일이냐고 묻지 않아서....”
“아니요. 만약 하실 이야기면 하실 것이고, 하지 못할 이야기라면 묻는 게 좀 그래서요.”
“한참 울고 났더니 맘속에 응어리가 풀리는 듯 하네요. 정현씨라고 하셨죠. 제 이야기 좀 들어주실래요?”
하연은 작지만 또렷한 목소리로 말을 하기 시작했다. 하연의 집안은 아버지는 대학교 교수시고, 어머니는 초등학교 교장까지 지내신 교육자 집안이었다. 하연의 두 오빠들도 큰오빠는 아버지랑 같이 교수가 되었고, 작은 오빠는 교육청에 고급 공무원으로 지낸다고 하니 철저한 교육자들만 집안에 존재하였다.
그렇게 자랐으니 당연히 하연은 남들과는 조금 다른 생활을 지내게 되었다. 그녀의 말로는 그녀도 만족하고 자랐다고 한다. 흔히 말하는 아가씨 생활이라고 해야 할까? 학창시절에는 학교에 충실하고, 남녀공학은 꿈도 못 꿀 일이었고 대학마저 여대를 지원했다고 한다.
나름대로 공부는 열씸히 해서 변호사까지 되었지만 사회생활을 하면서도 남자란 존재는 경험해 보지 못한 순진한 아가씨였다고 했다. 그러다가 나이 25살에 아버지의 권유로 친구 분 자제와 선을 보게 되었는데, 그 자제분이 지금의 남편이라고 한다.
처음 보았을 때에는 그리 잘생기지도 그렇다고 능력이 뛰어나지도 않은 평범한 남자라서 그리 맘에 들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남편의 말 한마디에 호감이 생겨, 결혼까지 이어졌다고 한다.
“적어도 3번까지는 아버지 체면 때문에 만나야겠다고 생각했거든요. 그 남자 3번째 만났을 때인가? 저한테 제 이름이 한자로 무어냐고 물어보는 거예요?”
“네.”
“처음에는 무슨 소리인가 했어요. 저 여름 하(夏) 가선 (연)緣, 여기서 연자는 인연할 때 연이에요. 제가 여름에 태어나서 여름의 인연이라는 이름으로 아버지가 지어주신 이름이에요. 정현씨가 아까 말한 것처럼 어감이 좋다고 하면서, 뜻이 좋다고 했어요. 그때 뭐라고 해야 될까? 내 이름을 기억해주는 사람이고, 좋다고 해주는 사람이란 의미에서 좀 더 만나야 하겠다는 생각을 하였어요.”
“네.”
“어처구니 없죠. 결혼할 이유로 남편될 사람이 제 이름을 좋아한다라니, 저도 제 이름 어감이 참 좋고, 뜻도 좋다고 생각하고 있었거든요. 저랑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니 무언가 통할것이라고 생각했어요. 부모님을 보면서 대화가 참 잘 통하는 부부한테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렇게 계속 만나면서 다른 남자들과는 달리 여자와 이야기 나누는 것처럼 편하였다고 한다. 아무래도 남자와 생활을 하지 못하니 남자들과의 대화가 힘들었다고 한다. 반면에 그 사람과는 쉽게 이야기 할 수 있어서 점점 호감이 늘었다고 한다.
하지만 결혼하고 나서는 무언가 틀렸다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신혼여행에서 성행위가 딱 1번, 남들과 다르다는 생각은 하였지만 그때는 자기가 처녀라서 배려해주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그의 배려심을 생각하니 사랑받는 기분이 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시간이 가면서 이제는 결혼 5년차, 성행위의 횟수를 합치면 20번이 넘지 않고, 다른 부부의 이야기를 들으면 오르가즘이라느니, 섹스의 쾌락이라던지 그런 건 말로만 들었고 그러려니 생각하고 살았다고 한다.
하지만 오늘 우연히 대학원을 다녀오는 길에 대학교 친구와 호텔에서 차를 마셨는데, 거기서 그 사람을 보았다고 한다.
순간 다른 여자가 있나라는 생각이 들어 아는 채를 하지 않았지만 곧 잘생긴 젊은 남자와 만나 호텔에 체크인 하길래 호텔에서 회의라도 하나 하면서 무심코 넘겼다고 한다.
의심을 했다는 것이 미안해서 오늘 저녁 남편에게 맛있는 것 해주어야겠다는 생각에 전화를 해서 무심코 어디야 물으니 회사라는 대답을 들어 ‘왜 거짓말을 하지?’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오늘 저녁 뭐 해줄까?’라고 질문을 했더니 ‘지금 회사 일 때문에 저녁에 부산 가야 하니 저녁엔 못들어 갈 것 같다’라는 대답을 들었다고 한다.
“그때까지는 저도 아무 생각 없었어요. 혹시나 싶어 회사에 전화해서 남편 있나고 물으니까. 남편이 오늘 월차냈다는 거예요.”
“아....”
“역시 정현씨도 제 친구랑 같은 생각을 하나보죠. 아무래도 전 의심이 지워지지 않아서 같이 사법 연수원을 다녔던 변호사 친구에게 상담을 했어요. 물론 제 이야기가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상담을 받은 것처럼 말이죠. 그 친구 이혼 변호사를 하거든요. 제 이야기를 듣고 나서 그 친구 단언하다시피 해서 그 남자 게이네 하는 거예요.”
“네.”
“정말 믿고 싶지 않았어요. 하지만 제 이상속의 생각은 그 아이의 말이 맞다고 계속 저에게 하는 거예요. 정말 아무 생각 없이 호텔에 앉아 머리 속 생각을 정리하고 있는데 엘리베이터에 그 남자랑 잘생긴 남자가 다시 나오는 거예요. 그리곤 호텔 레스토랑을 가는데, 자연스럽게 남편을 따라가게 되었죠.”
“네.”
“무슨 용기였는지 몰라요. 마치 전 영화속의 스파이처럼 그 사람들이 앉은 테이블 뒤로 찾아가 그들의 이야기를 들었어요. 그리고 전 들었어요. 그 빌어먹을 ..... 남자가 하는 말을....”
다시 눈에 눈물이 고이는 그녀를 조용히 안았다. 그녀는 훌쩍이면서 이야기를 계속 했다.
“남편이 말하는 거예요. ‘자기야 오늘 좋았어?’ 저에겐 들려주지 않는 다정한 목소리였죠. 그러니까 그 남자가 대답하는 거예요. ‘화끈했어.’ 더 이상 들을 것도 없었죠. 전 그 자리에서 일어나서 남편을 한 대라도 치고 싶었지만, 제가 여태까지 받아온 교육으로 인해 생긴 이성은 그걸 막았어요. 참 어처구니 없죠?”
“아니예요. 똥을 무서워서 피하나요? 더러워서 피하지. 물론 동성애가 잘못되었다는 것은 아닙니다. 동성애도 전 이해 못하지만 사랑의 한 종류니까요. 하지만 제가 보기에 남편분은 부인을 일종의 방어막으로 여기신 듯 하군요. 그래도 아직 확실한 것은 아니니까. 남편분한테 표현은 하지 마세요.”
“하하 헛웃음만 나오네요. 변호사는 전데 정현씨가 이혼 상담해주는 것 같아요.”
“변호사세요?”
“모르셨구나. 이래봬도 학교 다니는 중에 사법 고시 패스했는 걸요. 비록 결혼 때문에 로 펌에서 1년 정도 밖에 근무 안했지만, 사무실에선 꽤 유능한 변호사였다구요.”
“그러신 분이 왜 전업주부를......”
“저희 어머니 존경하실 만한 분이지만, 어머니로서는 아니었어요. 늘 바쁘시고, 저녁 식사는 가정부 아줌마가 하고, 제 자식한테 그렇게 해주고 싶지는 않았거든요. 제 꿈이었어요. 현모양처.”
“보통의 남자들에겐 최고의 이상형이군요. 그런데 왜 복도에서.......?”
“모르겠어요. 그 레스토랑에서 나와서 집까지 어떻게 왔는진 기억 안나요. 단지 집앞에서 서서 든 생각은 정현씨 반상회 나오게 해야 하는데....... 이 생각이 들었어요. 그때부터 무턱대고 기다린 거예요. 우습죠. 남편에게 버림받고 이웃에게 반상회 나오라고 독촉해야 한다니.”
“으흠.... 흠. 꼭 나가야 합니까? 시간이라고 해봤자 오후 늦게나 시간 나고, 솔직히 부인들끼리 계시는데 제가 가기엔 좀 뻘줌하거든요.”
“오세요. ㅋㅋ 사실 안 오셔도 별 상관은 없어요. 그렇지만 제가 좀 완벽주의라고 해야 할까. 쓰잘데 없는 곳에 신경을 쓴다고 해야 될까, 안 오시면 신경이 쓰일 거예요. 아 남편한테 버림 받고 이웃집 남자에게 상처받고. 참 오늘 처랑하네요.”
흠 복원력 상당한걸. 어느새 보통의 아줌마 페이스네. 그래도 웃으니까 보기는 좋네. 하 가야해야 하나. 말 돌려야겠다.
“남편 분 일은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만약 제 짐작이 맞다면 이혼할 생각이에요. 뭐 다행히 신경 쓸 자식도 없고, 사실을 알고나면 부모님은 저에게 미안해 하실 게 걱정이지만, 길게 가지는 않겠죠. 뭐.”
“잘 생각 하셨어요.”
“근데요. 저 매력 없나요? 남편이 제가 아닌 다른 남자를 사랑한다고 하니. 여자로서 자존심이 상하네요.”
얼레 지금 작업 거는 거야. 아니면 넋두리야. 이거 헷갈리네.
그래도 사무실의 필요성은 느끼고 있었다. 부하직원 모두 재택근무 상태라지만 영업을 할 영업 직원들이나 접대를 하기 위한 공간이 극도로 필요했던 시기였다.
의외로 사무실을 구하기는 쉬웠다. 한창 불던 벤쳐 바람이 거품이 빠지기 시작하면서 테헤란로의 IT밸리는 텅비워지고 있었으니까.
컨설팅 비가 조금 비싼 편이기도 하였지만 워낙 해커들 월급 빼놓고는 들어간 돈이 없어서 벌어놓은 돈이 테헤란 밸리의 5층짜리 작은 건물 한 채는 살 정도가 되었다. 그렇게 해서 나는 나의 이름으로 작은 건물을 샀고, 회사가 망하더라도 임대료는 벌수 있게 되었다고 혼자 웃던 시기였다.
물론 아직 해야 할 일은 넘치고 있었다. 일단 영업직과 접대를 위한 인원도 뽑아야 했고, 컨설팅만으로 회사를 운영하기엔 시간이 가면 갈수록 컨설팅 업체가 많아지고 있기 때문에 경쟁력이 떨어지고 있었다.
개발인력은 기존인력으로 대체한다고 해도, 잘나가는 컨설팅 일까지 생각한다면 한숨만 나올 뿐이었다. 그래도 일은 계속 밀려오고 있었으니 행복한 고민이었다.
이 때 즈음이었다. 사건의 발단이 된 사촌형의 전화는.
“정현아, 너 요즘 잘나간다면서?”
잘나가긴 우리 형도 마찬가지다. 외국계 금융 기업에서 잘나가는 펀드 매니져로 일하고 있었다. 가끔 TV에서 경제 관련 뉴스나, 토론회에 얼굴을 내밀 정도였다. 나도 도움 받았다. ㅋㅋ 스톡옵션으로 받았던 5억 정도 되는 돈을 학교 다니는 2년여 동안 3배로 불려놓아서 프리랜서 팀 초기에 잘 썼으니까.
“잘나가긴 형도 마찬가지잖아. 그런데 왠일이야? 회식 거리 있어?”
아 울 사촌 형도 가끔 날 회식 자리에 불렀다. 덕분에 울 사촌형 회사에서 회식 자리에서 이쁨 받는 직원이다. 근데 생각해보니 열받네. 어이 작가 글 쓴지 2부가 되도 한참 지났는데 이제야 내 이름이 나온거야 죽을래.
“퍼억”
흑 아프다. 멀쩡하던 액자가 왜 갑자기. 흠.. 이거 작가의 횡포 아냐!
“퍼~억. 쾅”
미치겠다. 이젠 책상까지 날 덥치네. 작가님, 작가형 내가 잘못했어. 내가 강남에 젤 잘나가는 아가씨들 있다는 룸싸롱 데리고 갈게. 거기 김마담이 대략 4년 전부터 나랑 붕가붕가 친구야. 내가 단골들 잘 물어줘서 이젠 아예 가게 낼 정도로 돈 벌었대.
이제 조용하구나. 작가의 힘 대단하군. 근데 작가도 남잔가봐.. ㅋㅋ 여자 밝히긴... 돈은 걱정하지마. 나 돈 많아.
“무슨 소리냐? 누가 너 때리냐?”
“아니야, 형. 근데 왜?”
“너 아직도 17평짜리 오피스텔에서 회사일 하면서 사냐?”
“어이 형 지난번에 건물 사고 회사로 제대로 시작할 때 불르니까, 바쁘다고 안 와서 섭섭하게 하더니. 이젠 기억도 못하는 거야?”
“흠... 흠...”
“헛기침 하지마. 나이도 얼마 안먹었으면서.”
“아니 작가가 안알려줘서 그래. 내가 설마 기억 못하겠냐? 퍼~~~억”
전화기로 이상한 말이 들린다. 흠. 형이 작가 돈 굴려준다고 한다. 아... 작가 캐릭터 파악된다. 돈 좋아하고 여자 좋아한다. ㅋㅋ 전형적인 내 형들이네.
“형 작가 비방 함부로 하지마. 얼마나 좋으신(폭력적이면서, 쪼잔하고, 돈 좋아하고, 여자 좋아하는) 분(놈) 이신데(인데).”
“너도 아까 그 소리가. 아악”
아이고 형 내가 갈쳐줬는데도. 거참 저 머리로 어떻게 펀드 매니저 하는지.
“근데 형, 용건이 뭔데. 작가한테 맞아 죽기전에 용건 말하고 전화 끊는게.”
“그래 그게 좋겠다. 나 이번에 해외로 부임 받아서 간다.”
“응.”
“이번에 월스트리트 본사로 발령났다. 그래서 니 형수랑 같이 간다.”
“형 솔직히 말해. 원정 출산 가는거지?”
“흠. 흠. 내가 가는 건 원정 출산 받으러 가는 것도 부임 받아 가는 것도 아녀.. !@#$”
형 원래 저런 사람 아니었는데 맞은게 충격이 컸구나. 하긴 나처럼 거칠게 살아온 인생이 아니니. 작가의 폭력 아 다시 올려놨던 액자가 흔들린다. 작가분처럼 폭력적이지 않고 현명하고 착하신 분이랑 어울리기는 힘들겨(나 뭔소리 하는겨.).
“그래서 뭐.”
“응, 이번에 해외로 부임하게 되면서, 집이 비잖아. 솔직히 너도 알다시피 이 집 얼마나 형수가 좋아하냐? 남한테 세 주기도 그렇고. 형수가 그러더라. 너 작은 오피스텔에서 고생한다고 우리 나가 있는 동안 니가 쓰면 어떻냐고?”
얼레 이게 왠 횡재수야. 오늘 좋은 꿈도 안 꾸었는데. 형네 집이면 경기도 일산에 있는 고급 빌라 아니야. 34평에 지은지 막 1년 되고 형수 말로는 신혼 부부들만 살아서 조용하고 살기 좋다는... 고급 빌라.
“정말이유. 주면 나야 고맙지. 근데 월세 얼마 줘야 하우?”
“내가 너한테 월세 받으려고 이런 소리 하겠냐? 그냥 관리비만 내라.”
이렇게 해서 일산의 고급 빌라도 들어간 것이 행복의 시작이었다. 하지만 행복이라고 해서 무조건 시작되는 것은 아니었다. 워낙 새 사무실을 들일 장비(난 확실히 경영자 타입은 아니다. 장비들이는데 돈 무지하게 썼다. 이놈의 공돌이 기질)들이나, 새로 인원의 들이고 인원들 교육 시키느라 이웃에 누가 사는지 모르는 바쁜 생활이었다.
솔직히 6개월은 그전의 1년 반보다 더 바쁜 생활이었다. 오죽하면 새 사무실에 들어온 것이 잘못된 일인가? 생각했을 정도니. 그래도 기존 인원들과 새로 뽑은 해커들은 워낙에 폐인 기질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인지 잘 어울렸고, 영업부로 영입해오는 사원들은 형들의 도움이 컸다.
실력있고 믿을만한 사람이란건 흔하지 않다. 하지만 의외로 형들의 도움으로 M&A 전문가 출신의 재원을 얻을 수 있었다. 또 반년동안 그녀를 주시한 결과 믿을 만한 사람이란 생각이 들었다. 성실하고, 경영에 관한 초보자나 다름없는 나를 무시하는 태도가 아니라, 내가 막히는 것이 있으면 기분 상하지 않게 가르쳐 주는 것이 더욱 나의 맘에 들게 하였다.
처음에는 영업부만을 맡기고 능력을 지켜보았지만, 결과적으로 나중에는 부사장의 역할까지 맡기었다.
이렇게 회사가 정리되는 반년동안 맨션에서 생활하고 있는 나였지만 옆집에 누가 사는지조차 제대로 모르고 이웃들도 이사 온 사람이 누군지 알지 못하고 있었지.
하지만 회사가 안정화되고 조금은 생활을 영유할 수 있을 만큼이 되자 이웃들이나 나나 슬슬 얼굴을 읽혀가고 있었어. 신혼부부들을 대상으로 분양한 맨션이라 그런지 부인들이 전부 퀄러티가 상당했거든. 그리고 쉬는 날이나 아침마다 적어도 얼굴을 보면 인사를 할 정도의 친분은 생겼지.
친분이 생기고 나서가 문제였어 내가 살고 있는 층은 501호(실제로 5층은 아니야 우리 맨션은 4층까지 밖에 없어. 아마도 4자가 재수없는 숫자라고 해서 건너 뛴것 같아.) 그리고 반장이라고 불리는 아줌마가 502호에 살고 있었지.
맨션에 사는 사람들 모두 반장언니 혹은 반장이라고 불러서 나는 별명이 반장이구나 이렇게 생각하고만 있었는데. 글세 반상회 반장이었던거야.
정말 오랜만에 들어보는 단어였어. 요즘에도 그런거 있나 싶었는데, 옆집 반장 아줌마가 슬슬 나를 반상회에 나오라고 하는거야. 그 동안은 회사가 바뻐서 안불렀지만 이젠 맨션의 일원으로서 활동하라는 거지.
맨 처음에 반상회가 있다고 들었을 때에는 좀 멍했어. 있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지만 우리 맨션은 주택가와 떨어진 작은 동산이라고 할 수 있는 곳에 중턱에 위치하고 있었고, 맨션도 딱 한 채 지어져 있었거든. 솔직히 차 있는 사람들이나 살 수 있는 곳이지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살 수 없다고 생각해. 그래도 큰 불편은 없었어. 차로 10분 거리에 마트가 위치하고 있었고 일산 시내도 20분 정도면 충분했으니까. 모두들 주부로 활동하는 사람들이 힘들겠다 생각하고 있겠지만 반상회의 활약이라고 해야 할까. 맨션 이름으로 작은 봉고차를 사놓고 장을 보거나 문화생활을 하거나 맨션의 여자들은 함께 생활하고 있었으니까. 게다가 몇몇 집은 차도 2대였으니 불편할 건덕지가 없지.
위험하지 않냐고? 그건 좀 그래 밤에는 나가기가 무섭지. 하지만 반상회가 근처 경찰서에 부탁을 하고 동사무소에 청원을 내서 결과적으론 꽤 원래 맨션에 있던 방범시설까지 포함된다면 맨션을 둘러싸고 있는 담장 안은 안전하다고 할 수 있어.
여튼 잘 들어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8가구가 사는 맨션치곤 꽤 반상회가 활동적으로 활약하고 있었고, 내가 보기에도 아파트의 말도 안 되는 짓들 하는 부녀회들보단 낫다고 생각했어.
하지만 여자들만 모여 있는 반상회에 내가 가서 무엇하냐고? 우리 맨션의 반상회는 반상호의 취지 목적뿐만이 아니라 맨션 여자들의 여가 시간 활용, 취미, 운동, 헬스클럽까지 모두 같이하는 셈이라 정말 여성들의 모임이라고 할 수 있어.
그러니 난 그 자리에 가면 꽁보리밥에 도토리 꼴이지. 게다가 총각이 가면 얼마나 씹을 건지.. 아줌마들이란 게 원래 그렇잖아. 뭐 외모로만 보면 절대 아줌마답지 않지만.
하지만 아침에 출근할 때, 반장 아줌마는 항상 내 문 앞에서 기달리는 건지 웃는 소리로 금요일 저녁에 자기 집으로 오라고 하고, 저녁에는 맛있는 반찬거리 갔다 주면서 하는데 정말 미치겠더만. 그래도 꾿꾿히 버티어 냈어. 솔직히 반장 아줌마 그렇게 무대포이신 분은 아니었거든.
그래도 양심의 가책이라고 할까. 반찬도 얻어먹고 하는데, 은근히 미안해지는 것이 사실이었다. 하지만 도저히 반상회에 참가하는 것은 나에게 힘든 일이었다.
그러던 중 보통보다 좀 늦게 집에 들어가는 길이었다. 열쇠를 따고 집에 들어가려 하는데 옥상으로 들어가는 계단에 누군가가 앉아 있는 것이 보였다.
4층의 전등으로는 옥상으로 올라가는 계단에 앉아 있는 사람이 누군지 잘 알아 볼 수 없었다.
“누구세요?”
“흑흑... 아니, 아니예요.”
누구냐고 물었는데 아니라고 대답하는 건 무슨 심보람. 하여튼 옥상으로 통하는 계단으로 올라갔다. 솔직히 울고 있었고 머리가 흐트러진 여자가 서 있어서 순간 귀신인 줄 알았지만 반장 아줌마였다.
“반장님, 여기서 뭐하세요?”
“괜....찮아요.”
반장 아줌마는 말투도 그렇고, 하는 행동도 정상적으로 보이지 않았다. 평소에는 늘 빈틈없고 남에게 베푸는 친절한 모습만 보았던 나로서는 적응이 되지 않는 모습이었다.
내 질문에 대답하는 것도 그랬다. 늘 바른 생활 교과서처럼 정석적인 대답만 하던 그녀였다. 무언가 큰 일이 일어났다는 건 짐작 할 필요도 없었다.
“일단 저희 집에 들어가서 따뜻한 차라도 한 잔 하죠. 이 손 봐라. 완전히 얼음장이네. 한 겨울에 여기서 시간을 얼마나 보낸 거예요.”
“괜... 찮아요.”
“괜찮긴 뭐가 괜찮아요. 저 따라 들어와요.”
맨션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 다행히 핸드폰으로 예약한 보일러 시스템은 제대로 작동하고 있었다.
“여기 앉아서 기다리고 계세요. 제 따뜻한 커피 한잔 드릴게요. 아이리쉬 커피 괜찮죠?”
소파에 앉은 반장 아줌마는 넋이 나간 사람처럼 대답도 없이 멍하니 벽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서둘러 커피 포트에 물을 넣고 아이리쉬 커피를 준비했다. 그리고 아이리쉬 커피에 들어가는 위스키를 간이 바에서 가져왔다. 적당한 위스키는 얼은 몸을 덥혀주는데 탁월한 효과를 차지한다.
물은 순식간에 끓었고 아이리쉬 커피 두잔을 들고 소파로 갔다. 소파에 앉아있는 반장 아줌마는 이젠 두 눈에서 한 줄기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머그컵에 담긴 아이리쉬 커피를 아줌마와 나의 앞에 놓아두고 아줌마에게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커피 드세요.”
아줌마는 두 손으로 따뜻한 커피잔을 감싸쥐고 커피를 마시기 시작하였다. 두 손으로 머그컵을 잡고 커피를 마시는 그녀의 모습을 보니 아줌마라기보다는 소녀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어깨를 덮는 중간 정도의 생머리. 추운 곳에 오래 있어서였을까? 약간은 창백해 보이는 그녀의 얼굴에 조금씩 따뜻한 온기가 스며들어가는 모습은 명화를 감상하는 느낌이었다.
넓지도 좁지도 않은 이마, 이마 아래로 보이는 미려한 곡선의 눈썹, 눈썹 사이로 친절하긴 하지만 자존심이 있다는 것을 알게 해주는 콧대, 그리고 얇지만 청초함이 느껴지는 입술, 그동안 내가 경험해왔던 여성들 중에서도 최상급의 얼굴이었다.
평소에는 항상 반상회에 나와라, 반상회 활동에 참가해라, 이런 잔소리만 들어와서 반장 아줌마는 나에게 부인이라는 호칭보다는 아줌마라는 호칭으로 머리속에 인식되어 있어서 그녀의 아름다움을 느끼지 못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뜨거운 커피를 호호 불어가면서 마시는 그녀의 모습은 안성기씨와 맥심 광고에 자주 나오던 이름 모르는 CF모델을 생각하게 하였다. 또 약간은 주황색 빛이 감도는 거실의 조명은 그런 그녀의 모습을 광고 속의 한 장면으로 여기게끔 하였다.
그럼 난 안성기인가, 피식 웃음이 나왔다. 적어도 안성기보단 잘생겼다. ㅋㅋ
“웃는 모습이 참 보기 좋네요.”
나의 웃는 모습을 보고 그녀가 처음으로 뱉은 말이었다. 그 말을 들은 나는 그녀가 조금은 안정을 찾아가고 있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런 소리 자주 듣습니다.”
“어머 호호. 평소에는 젊잖은 분이신줄 알았는데 이런 농담도 하실 줄 아네요.”
이렇게 시작된 그녀와 나의 대화는 계속 되었다. 대화를 나누면서 즐겁다는 생각을 하였고, 그녀도 그런 느낌이었는지 화사한 미소를 보여주었다. 나는 개그 콘서트, 웃찾사 등에 보았던 유행어를 하였고 그녀는 주로 들어주는 편이었다.
“모처럼만에 아무 생각 없이 웃네요. 고마워요.... 아 그러고 보니 이웃에 사시는 분인데 이름도 모르네요.”
“김정현이라고 합니다. 부인은 성함이......”
“부인이라 부인이겠죠. 저도..... 이하연이라고 합니다.”
“하연씨라 이름이 참 좋으네요. 어감이 마음에 듭니다.”
“그 사람도 처음 선 자리에서 저를 보았을 때 그런 이야기 했죠. 흑흑.”
그녀는 감정이 북받쳐 올라오는지 울음을 터뜨렸다. 그리곤 고개를 숙이며 소리 죽여 울기 시작했다. 너무나 애처러워 보이는 마음에 나도 모르게 그녀가 앉은 소파 옆자리로 자리를 옮겨 그녀를 내 품 속에 앉았다.
“........”
“흑... 으.. 아...”
그녀의 소리 죽인 울음소리는 한참 계속되었다. 그녀의 눈물에 내 셔츠가 젖고 그 차가움이 느껴질 때 나의 감정도 하연이와 동화되는 듯 했다.
어느새 내 마음속에 그녀는 반장 아줌마라는 호칭보다 하연이란 호칭이 더 어울리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저기 물좀 주실래요?”
한참을 울어서 목이 말라서였을까? 내 품에서 나온 그녀는 물을 찾았다.
냉장고를 열어보았지만 생수는 없었다. 다행히 이온음료가 있어 그걸 꺼냈다.
"저기 생수는 없고, 이온 음료 있는데 이것이라도 드실래요.“
“네.”
이온 음료를 컵에 담아서 그녀 앞에 놓아두고, 앞자리가 아닌 옆자리에 앉았다. 왠지 그래야 될 것 같은 느낌이었다.
하연이는 많이 목이 말랐는지 이온음료를 꿀꺽 꿀꺽 넘겼다. 그녀의 목젖이 움직이며 마시는 모습은 처랑해 보이는 그녀와는 달리 섹시하다고 생각되었다.
“저기 고마워요. 무슨 일이냐고 묻지 않아서....”
“아니요. 만약 하실 이야기면 하실 것이고, 하지 못할 이야기라면 묻는 게 좀 그래서요.”
“한참 울고 났더니 맘속에 응어리가 풀리는 듯 하네요. 정현씨라고 하셨죠. 제 이야기 좀 들어주실래요?”
하연은 작지만 또렷한 목소리로 말을 하기 시작했다. 하연의 집안은 아버지는 대학교 교수시고, 어머니는 초등학교 교장까지 지내신 교육자 집안이었다. 하연의 두 오빠들도 큰오빠는 아버지랑 같이 교수가 되었고, 작은 오빠는 교육청에 고급 공무원으로 지낸다고 하니 철저한 교육자들만 집안에 존재하였다.
그렇게 자랐으니 당연히 하연은 남들과는 조금 다른 생활을 지내게 되었다. 그녀의 말로는 그녀도 만족하고 자랐다고 한다. 흔히 말하는 아가씨 생활이라고 해야 할까? 학창시절에는 학교에 충실하고, 남녀공학은 꿈도 못 꿀 일이었고 대학마저 여대를 지원했다고 한다.
나름대로 공부는 열씸히 해서 변호사까지 되었지만 사회생활을 하면서도 남자란 존재는 경험해 보지 못한 순진한 아가씨였다고 했다. 그러다가 나이 25살에 아버지의 권유로 친구 분 자제와 선을 보게 되었는데, 그 자제분이 지금의 남편이라고 한다.
처음 보았을 때에는 그리 잘생기지도 그렇다고 능력이 뛰어나지도 않은 평범한 남자라서 그리 맘에 들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남편의 말 한마디에 호감이 생겨, 결혼까지 이어졌다고 한다.
“적어도 3번까지는 아버지 체면 때문에 만나야겠다고 생각했거든요. 그 남자 3번째 만났을 때인가? 저한테 제 이름이 한자로 무어냐고 물어보는 거예요?”
“네.”
“처음에는 무슨 소리인가 했어요. 저 여름 하(夏) 가선 (연)緣, 여기서 연자는 인연할 때 연이에요. 제가 여름에 태어나서 여름의 인연이라는 이름으로 아버지가 지어주신 이름이에요. 정현씨가 아까 말한 것처럼 어감이 좋다고 하면서, 뜻이 좋다고 했어요. 그때 뭐라고 해야 될까? 내 이름을 기억해주는 사람이고, 좋다고 해주는 사람이란 의미에서 좀 더 만나야 하겠다는 생각을 하였어요.”
“네.”
“어처구니 없죠. 결혼할 이유로 남편될 사람이 제 이름을 좋아한다라니, 저도 제 이름 어감이 참 좋고, 뜻도 좋다고 생각하고 있었거든요. 저랑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니 무언가 통할것이라고 생각했어요. 부모님을 보면서 대화가 참 잘 통하는 부부한테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렇게 계속 만나면서 다른 남자들과는 달리 여자와 이야기 나누는 것처럼 편하였다고 한다. 아무래도 남자와 생활을 하지 못하니 남자들과의 대화가 힘들었다고 한다. 반면에 그 사람과는 쉽게 이야기 할 수 있어서 점점 호감이 늘었다고 한다.
하지만 결혼하고 나서는 무언가 틀렸다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신혼여행에서 성행위가 딱 1번, 남들과 다르다는 생각은 하였지만 그때는 자기가 처녀라서 배려해주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그의 배려심을 생각하니 사랑받는 기분이 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시간이 가면서 이제는 결혼 5년차, 성행위의 횟수를 합치면 20번이 넘지 않고, 다른 부부의 이야기를 들으면 오르가즘이라느니, 섹스의 쾌락이라던지 그런 건 말로만 들었고 그러려니 생각하고 살았다고 한다.
하지만 오늘 우연히 대학원을 다녀오는 길에 대학교 친구와 호텔에서 차를 마셨는데, 거기서 그 사람을 보았다고 한다.
순간 다른 여자가 있나라는 생각이 들어 아는 채를 하지 않았지만 곧 잘생긴 젊은 남자와 만나 호텔에 체크인 하길래 호텔에서 회의라도 하나 하면서 무심코 넘겼다고 한다.
의심을 했다는 것이 미안해서 오늘 저녁 남편에게 맛있는 것 해주어야겠다는 생각에 전화를 해서 무심코 어디야 물으니 회사라는 대답을 들어 ‘왜 거짓말을 하지?’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오늘 저녁 뭐 해줄까?’라고 질문을 했더니 ‘지금 회사 일 때문에 저녁에 부산 가야 하니 저녁엔 못들어 갈 것 같다’라는 대답을 들었다고 한다.
“그때까지는 저도 아무 생각 없었어요. 혹시나 싶어 회사에 전화해서 남편 있나고 물으니까. 남편이 오늘 월차냈다는 거예요.”
“아....”
“역시 정현씨도 제 친구랑 같은 생각을 하나보죠. 아무래도 전 의심이 지워지지 않아서 같이 사법 연수원을 다녔던 변호사 친구에게 상담을 했어요. 물론 제 이야기가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상담을 받은 것처럼 말이죠. 그 친구 이혼 변호사를 하거든요. 제 이야기를 듣고 나서 그 친구 단언하다시피 해서 그 남자 게이네 하는 거예요.”
“네.”
“정말 믿고 싶지 않았어요. 하지만 제 이상속의 생각은 그 아이의 말이 맞다고 계속 저에게 하는 거예요. 정말 아무 생각 없이 호텔에 앉아 머리 속 생각을 정리하고 있는데 엘리베이터에 그 남자랑 잘생긴 남자가 다시 나오는 거예요. 그리곤 호텔 레스토랑을 가는데, 자연스럽게 남편을 따라가게 되었죠.”
“네.”
“무슨 용기였는지 몰라요. 마치 전 영화속의 스파이처럼 그 사람들이 앉은 테이블 뒤로 찾아가 그들의 이야기를 들었어요. 그리고 전 들었어요. 그 빌어먹을 ..... 남자가 하는 말을....”
다시 눈에 눈물이 고이는 그녀를 조용히 안았다. 그녀는 훌쩍이면서 이야기를 계속 했다.
“남편이 말하는 거예요. ‘자기야 오늘 좋았어?’ 저에겐 들려주지 않는 다정한 목소리였죠. 그러니까 그 남자가 대답하는 거예요. ‘화끈했어.’ 더 이상 들을 것도 없었죠. 전 그 자리에서 일어나서 남편을 한 대라도 치고 싶었지만, 제가 여태까지 받아온 교육으로 인해 생긴 이성은 그걸 막았어요. 참 어처구니 없죠?”
“아니예요. 똥을 무서워서 피하나요? 더러워서 피하지. 물론 동성애가 잘못되었다는 것은 아닙니다. 동성애도 전 이해 못하지만 사랑의 한 종류니까요. 하지만 제가 보기에 남편분은 부인을 일종의 방어막으로 여기신 듯 하군요. 그래도 아직 확실한 것은 아니니까. 남편분한테 표현은 하지 마세요.”
“하하 헛웃음만 나오네요. 변호사는 전데 정현씨가 이혼 상담해주는 것 같아요.”
“변호사세요?”
“모르셨구나. 이래봬도 학교 다니는 중에 사법 고시 패스했는 걸요. 비록 결혼 때문에 로 펌에서 1년 정도 밖에 근무 안했지만, 사무실에선 꽤 유능한 변호사였다구요.”
“그러신 분이 왜 전업주부를......”
“저희 어머니 존경하실 만한 분이지만, 어머니로서는 아니었어요. 늘 바쁘시고, 저녁 식사는 가정부 아줌마가 하고, 제 자식한테 그렇게 해주고 싶지는 않았거든요. 제 꿈이었어요. 현모양처.”
“보통의 남자들에겐 최고의 이상형이군요. 그런데 왜 복도에서.......?”
“모르겠어요. 그 레스토랑에서 나와서 집까지 어떻게 왔는진 기억 안나요. 단지 집앞에서 서서 든 생각은 정현씨 반상회 나오게 해야 하는데....... 이 생각이 들었어요. 그때부터 무턱대고 기다린 거예요. 우습죠. 남편에게 버림받고 이웃에게 반상회 나오라고 독촉해야 한다니.”
“으흠.... 흠. 꼭 나가야 합니까? 시간이라고 해봤자 오후 늦게나 시간 나고, 솔직히 부인들끼리 계시는데 제가 가기엔 좀 뻘줌하거든요.”
“오세요. ㅋㅋ 사실 안 오셔도 별 상관은 없어요. 그렇지만 제가 좀 완벽주의라고 해야 할까. 쓰잘데 없는 곳에 신경을 쓴다고 해야 될까, 안 오시면 신경이 쓰일 거예요. 아 남편한테 버림 받고 이웃집 남자에게 상처받고. 참 오늘 처랑하네요.”
흠 복원력 상당한걸. 어느새 보통의 아줌마 페이스네. 그래도 웃으니까 보기는 좋네. 하 가야해야 하나. 말 돌려야겠다.
“남편 분 일은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만약 제 짐작이 맞다면 이혼할 생각이에요. 뭐 다행히 신경 쓸 자식도 없고, 사실을 알고나면 부모님은 저에게 미안해 하실 게 걱정이지만, 길게 가지는 않겠죠. 뭐.”
“잘 생각 하셨어요.”
“근데요. 저 매력 없나요? 남편이 제가 아닌 다른 남자를 사랑한다고 하니. 여자로서 자존심이 상하네요.”
얼레 지금 작업 거는 거야. 아니면 넋두리야. 이거 헷갈리네.
흠 네이버3은 오페라로 글을 쓰면 띄어쓰기가 안되는 군요. 이거 펌 아닙니다. 이 글 쓴 사람 저입니다.
추천94 비추천 6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