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렘 캐슬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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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었군요!"
루이즈를 동반한 필릭스가 넓은 어전으로 뛰어 들었을 때, 여왕 글로리아나는 이미 왕좌에 앉아 있었다.
도성 아래의 마을이 불 바다가 되어 있다는 것은 국가의 중대한 사건이다. 자고 있다가 급히 일어났을 것이다. 하얀 가운을 걸치고 있지만 안은 아마도 속옷 차림 그대로다.
그녀 앞에서는 백명에 가까운 무관과 문관들이 모여 우왕좌왕하면서 바쁘게 이리저리 돌아다니고 있다.
지휘를 맡고 있는 이는 재상 캔버라와 데크셀 장군.
순간 필릭스는 위화감을 느꼈다.
있어야 할 사람이 없는 것이다. 이 나라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톱니바퀴라 여겨지는 인물이.
"어머님, 히르메디스 숙부님은 어디에?"
"그게 아직 오지 않았습니다."
"히르메디스 전하입니다. 현장에 달려가 지휘를 하고 있지 않을까요?"
재상 캔버라의 견해에 일동은 동의했다.
"없는 사람을 신경쓰기 보다는, 이 자리에 있는 사람으로 화재를 지납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각부대, 출진준비 완료되었습니다. 폐하, 배치 지시를 해주시지 않겠습니까?"
"왕태자에게 맡기겠습니다."
재상 캔버라와 데크셀 장군의 시선이 순간적으로 교차했다.
여왕 글로리아나에게 위기관리의 지식은 없었다. 이런 경우, 당연히 "재상 캔버라, 데크셀 장군 두 사람이 알아서" 라는 대답을 해주어야 마땅하다.
그런데 필릭스에게 지휘권이 주어졌다..
이것은 여왕이 왕태자의 자질을 시험하는 것이다. 아니, 그것만이 아니라, 신하들에게도, 왕태자의 역량을 지켜보게 할 찬스를 주었다고 해도 좋다.
그것은 아직 빠른 것이 아닐까, 하고 노인들은 생각했다.
시험받고 있다는 것은 필릭스도 물론 느꼈다.
그 자리에서 성아래 마을의 지도를 보았다. 왕가에 주둔해 있는 부대는 대강 알고 있었다.
"제 1대대는 서부지구를 소화해 주세요. 제 2대대는 동부지구를 소화해 주세요. 제 3대대는 남부지구를 소화해 주세요. 제 4대대는 대로의 혼란을 막아 주세요. 왕태자 직속 기사단은 중앙교를 확보해, 사람들이 원활하게 왕래 할 수 있도록 해주세요. ……"
필릭스가 지시를 내리자, 데크셀 장군은 소리를 높여 칭송했다.
"훌륭하십니다. 멋집니다. 각부대, 전하의 지시대로 행동해라!"
각부대장이 급히 흩어졌다.
호위를 맡은 장군은 처음부터 왕태자가 터무니 없이 바보같은 소리만 하지 않는 한 큰 목소리로 칭찬 할 속셈이었을 것이다.
거기다 이 경우, 부대의 배치보다도 화마에서 주민을 대피시키기 위해 일각이라도 빨리 결단하는 것이 중요하기에 우물쭈물하지 않았다는 것만 해도 합격점이었다.
"그럼, 졸자가 현장에 나가 지휘를 맡겠습니다. 왕태자 전하께서는 여기에 계시면서 전하의 어머님을 보좌해 주십시오."
"응. 알았다."
호위를 맡은 장군을 내보낸 필릭스가 양어머니에게 시선을 보내자, 글로리아나도 역시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무심코 자신도 모르게 얼굴을 빨갛게 붉힌 소년이 무서운 가정교사와 같은 메이드장에게 시선을 보냈다가 놀랐다.
"루이즈 왜 그래?"
왕국의 재녀는 지도를 노려보며 심란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아무리 바람이 강한 밤이라고 해도, 불이 번지는 게 너무 빠릅니다."
"그렇다는 건?"
"방화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것도 조직적으로, 일제히 불을 질렀을지도"
국가수뇌부에 속한 이들이 일제히 안색을 바꿨다.
"조직적이라니, 누가 무엇을 위해서"
"지금, 이 나라에 불만을 가지고 있고, 조직적인 행동을 할 수 있는 인물이라면, 저절로 용의선상이 좁아집니다."
그것이 누구를 말하는 건지, 아무리 둔한 사람이라고 해도 알아차릴 수 있었다.
"설마!?"
"저도 그렇게 생각하고 싶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분이 한 일이라면, 방화만으로 끝날 리가 없습니다. 서둘러 준비를 하지 않으면"
사태는 필릭스가 당황하고 루이즈가 행동을 하는 것보다도 빠르게 움직였다.
노호성과 비명. 금속이 부딪히는 소리가 나는 것을 들은 순간, 어전의 문이 갑자기 열렸다.
문 틈으로 피냄새와 함께, 근위병 제복을 입은 남자가 들어와 쓰러졌다.
로얄가드의 기사가 달려 왔다.
"왜 그러지. 무슨 일이냐?"
피 범벅이 된 기사의 입이 열리고, 피 덩어리와 함께 말이 토해졌다.
"히르메디스 전하, 모반을……"
허약하고 작은 목소리였지만, 하늘을 찢는 천둥에 필적하는 충격을 가지고, 실내의 사람들의 고막을 때렸다.
그것은 경악이었지만, 동시에 사람들의 가슴 속에 그러면 그렇지 라는 생각도 떠오르게 했다.
지금은 난세이다. 인망과 실력을 가진 자가 왕좌를 탐내지 않는 게 이상한 일이다.
오히려, 그만한 인물이 음모에 의해 왕좌에 앉지 못하고, 그대로 가만히 따르는 쪽이 더 부자연스럽지 않은가.
문이 더욱 크게 벌어졌다.
그리고 검은 바탕에 금빛 세공이 더해진 갑옷을 입은 당당한 대장부가 모습을 드러냈다. 손에는 피묻은 칼을 늘어 뜨리고 있다.
글로리아나의 안색은 창백했다. 필릭스도 역시 창백했다. 사신과 대면한 기분이 바로 이런 기분을 말하는 게 아닐까.
"그런 차림으로 폐하가 계신 곳에 나타나다니, 양식 있으신 전하가 하실만한 행동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 군요."
재상 캔버라가 노회한 궁정 정치가 답게, 온화한 미소로 이야기 하며 앞으로 나오자,
횡으로 그어지는 일선.
노인의 목이 하늘 높이 솟구쳤다.
"히익!"
"글로리아나님. 도망치세요."
루이즈는 여왕 아래로 달려 들었다.
그리고 그 곳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히르메디스를 따라온 기사들과, 로얄가드와의 전투의 승부가 결정될 때까지의 시간은 그다지 길지 않았다.
기량의 차이라기보다는, 각오의 차이가 너무 났던 것이다. 그 자리에 있던 로얄가드들 약 이십명은 순식간에 육편이 되어버렸다.
여왕을 데리고 나가려 하는 빨간 옷의 시녀 앞에는 히르메디스가 가로 막고 서 있었다.
"이 불여우가!"
토하는 것과 동시에 내질러진 왼주먹을 복부에 먹은 루이즈는 몸을 ㄱ자로 구브리며 침을 토하며 무너졌다. 비전투원인 여자는 죽이지 않는다는 방침인 모양이다.
아름다운 여왕은, 야무지게도 시동생을 똑바로 노려보았다.
서둘러 움직이느라, 가운의 가슴팍이 벗겨져, 희고 풍만한 가슴이 엿보이고 있다. 그것을 보면서도 히르메디스는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평시라면 몰라도, 북에서는 도모스 왕국이, 남에서는 올시니-사브리나 연합왕국이 판도를 넓히고 있다. 이런 시기에 당신에게 이슈탈 왕국을 맡길 수는 없소. 형수님. 당신은 죽이지 않을 것이오. 유폐할 뿐이지. 하지만, 애송이"
마치 도끼로 찍는 듯한 매서운 시선이, 그 때까지 가만히 서 있던 필릭스에게 쏘아졌다.
"검을 빼라, 결투다"
즉, 글로리아나는 괴뢰로서 이용가치가 있지만, 필릭스를 살려 둘 가치는 없다, 버리는 돌이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대로 베어버릴 수도 있는데, 결투를 신청한 것은 히르메디스 나름의 무인의 자비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알겠습니다."
사형선고를 받은 것과 마찬가지인데도, 필릭스의 목소리는 의외로 안정되어 있었다.
왕태자가 되고 나서 남몰래 느끼고 있던 것이지만, 스스로도 놀라울 정도로 굵은 정신력의 소유자인 것 같다.
아니, 왕태자로서의 이 일주일동안의 우아한 생활이, 어딘가 꿈같은 기분이라 현실감을 느끼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순순히 허리에서 검을 뽑은 왕태자와, 왕제의 혈검이 부딪히며 불꽃을 튀겼다.
이미 알고 있었지만, 첫 일격으로 확신했다. 기술적으로나, 힘으로나, 근본적인 레벨이 다르다.
칼을 맞부딪힐 수 있었던 것은 단번에 베어버리는 건 가엾다고 생각한 히르메디스의 배려일 것이다.
"나름대로 실력이 좋군. 질베르트 백작도, 그냥 아들의 어리광을 받아주기만 한건 아니구나. 하지만, 그래봤자 실전도 모르는 어설픈 기술이다!"
일갈과 동시에, 소년의 신체는 바닥을 굴렀다. 두번째 공격은 머리 위로 왔다. 검을 막았다. 무기를 손에서 놓치지 않은 것은 사부의 교육이 뛰어났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부자연스러운 자세로는 다음 공격은 막을 수 없다. 각오를 한 필릭스는 반사적으로 눈을 감고, 몸을 굳혔다.
그러나 마지막 일격은 좀처럼 내려 오지 않았다.
무력한 소년은 의아하게 생각하며, 조심조심 눈을 떴다.
"……크윽"
흔들림 없는 거상과도 같았던 히르메디스는 피를 토했다.
그의 복부에서는 강철 창날이 돋아나 있었다.
자신의 배에서 생겨난 이물을, 무표정하게 내려다본 히르메디스는 검을 검집에 되돌리고, 양손으로 창날을 붙잡고, 강제로 앞으로 잡아당겼다.
여왕과 왕태자 그리고 많은 중신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창은 쑤욱 앞으로 뽑아져 나왔고, 마침내 관통해 버렸다. 당연히, 복부에는 큰 구멍이 벌어졌고, 대량의 혈액이 흐르고 있었지만, 그런 것 따위는 완전히 무시한 움직임으로, 그 혈창을 뒤쪽으로 휘둘렀다.
-카강.
둔한 소리가 나며 창이 튕겨 날아갔다.
창에 부딧힌 것은 은색 장검이었다.
그것을 잡고 있는 이는 암갈색 긴 머리카락, 은색 흉갑과 은색 요갑, 은색 건틀릿으로 몸을 감싼 경장의 여기사.
전신은 붉게 물들어 있지만, 크리스탈처럼 투명한 미모는 인상적이었다.
"우르슬라……"
필릭스의 신음에, 자신에게 치명상을 입힌 상대의 정체를 안 듯 하다. 히르메디스의 입가에서는 처음으로 표정이 떠올랐다. 쓴웃음이라기보다는, 자신에 대한 비웃음 같았다.
"왕도방위기사단 소속 제 12소대 [포효하는 익룡] 대장인가. ……그런가, 이 애송이는 너의 부대의 견습기사였지"
엄청난 일을 저지른 호걸의 무릎이 천천히 무너졌다.
"후회할거야, 평시라면 모르겠지만, 이 전란의 시대에 여자랑 어린애가 국민의 안전을 지킬 수 있을까. 내가 아니면 이 난세를 헤쳐나갈 수 없어."
"훗, 그럴지도 모르지."
실패했을 때는 오명을 뒤집어 쓰고 죽을 각오는 하고 있었다. 마치 거목이 쓰러지듯이 히르메디스는 무너졌다.
반사적으로 필릭스는 부축해 버렸다.
"애송이, 이슈탈 왕국을 부탁하마……"
그 말을 최후로, 영웅이 되는 데 실패한 반역자는 숨을 거두었다.
머리를 죽이면 뱀은 죽는다. 히르메디스의 죽음에 의해 반란군은 금방 진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