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협야설) 붉은 달(月)을 베다. 2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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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白雲俠(낭만백작)著/ 붉은 달(月)을 베다. **
제 25 회 대담(大膽)한 담판(談判)
윤충尹忠)이 긴 마루를 지나 달려오고 그의 뒤에는 설아가 윤충의 무모한 행동을 제지하려
정신없이 뒤쫓고 있다.
「오라버니.. 명(明)공자께서 침착하라 했습니다. 이러면 오히려 더욱 일을 그르치게 됩니다.」
「시끄럽다. 방해하지 마라. 지금이 아니면 옥함을 찾을 기회를 영원히 놓친다.」
윤충은 내일 아침이면 이 성을 떠나야 하리라 짐작하여 그 초조함을 도저히 참지 못하고 달려나
온 길이다.
이미 그들의 앞을 서너명의 무인들과 무네노리가 막아 대치하고 있었다.
「윤공이 아닌가..? 늦은 밤 이 무슨 소란이오?」
「막아서지 말고 길을 여시오!」
윤충이 막무가내 검을 빼어들며 소리친다. 그러나 윤충의 검 앞을 막어선 무네노리의 목소리는
더욱 부드러워 졌다. 윤충의 눈동자에서 필사(必死)의 염원(念願)을 느낀 것이다.
「윤(尹)공.. 주군께서 이 소동을 눈치채기 전에 어서 숙소로 돌아가시오. 내 이일을 모른 척
수습하리다.」
그러나 윤충은 오히려 한발 더 앞으로 다가서며 검을 겨눈다.
「비키시오. 아니면 베고라도 지나가겠소!!」
윤충의 고집을 알아 챈 무네노리는 곁에 있는 무사들에게 말없이 눈짓을 보냈다.
- 휙.. 휙..!
- 휘익.. 촤르르..!
그 무사들의 손에서 날아온 철망(鐵網)이 순식간에 윤충과 설아의 머리위로 덮쳐 그속에 가두어
버렸다.
「저들을 우선 옥에 가두어라. 천천히 소란의 이유를 심문할 것이다.」
무네노리는 한마디를 툭.. 던지고 다시 이에야스가 있는 내실쪽으로 돌아갔다.
천정위에서 아래를 살펴 보던 명(明)은 무네노리의 행위를 아뭇소리없이 지켜보고만 있었다. 윤
충의 소란보다 등 뒤 이에야스의 내실쪽 움직임에 오히려 더 신경이 쓰였던 것이다.
* * * * * * * * * *
「수습이 되었느냐?」
이에야스는 등 뒤의 벽장을 돌아보며 조용히 묻는다.
「예.. 주군, 잠시 소란이 있었으나 그들을 체포해 옥에 가두어 두었습니다.」
「허허.. 나의 목숨을 구한 그들이 무슨 이유로 내실을 침범하려 했던가?」
이에야스는 이미 침입자가 누군가 보고받고 있었던 것이다.
「별일이 아닌듯 합니다. 주군께 원하는 것이 있어 이곳을 찾았다가 경비무사들에게 제지를 당
하는 과정에 시비가 일어난 소란입니다.」
「그런가.. 잘 처리 하도록 하라.」
「예.. 주군..! 천정위에 계신 분은 이리로 내려 오시지!!」
벽장뒤에서 툭 던지듯 하는 무네노리의 말에 이에야스가 일순 긴장을 했다.
「헉.. 여기까지..?」
놀라 둥그레진 눈으로 천정을 바라보는 이에야스의 앞에 흰 그림자가 스르르 내려 앉았다. 동시
에 무네노리도 벽장뒤에서 달려나와 이에야스의 앞을 막아선다.
「그.. 그대는..?」
내려앉은 인영(人影)이 이에야스의 앞으로 다가서며 고개를 숙였다.
「합하(閤下)..! 명(明)입니다. 놀라게 해서 죄송합니다.」
그 명(明)의 앞을 무네노리가 막아서며 빙긋 웃음을 흘렸다.
「공자라 짐작했소. 무례하게 천정에 숨어 들다니.. 그래 늦은 시각에 어인 일인가?」
「합하(閤下)를 뵙고자 오는 길에 소란이 일어 불필요한 오해를 부를까 천정으로 숨어 들었습니
다. 합하(閤下)에게 독대(獨對)를 청하니 자리를 비켜주십시오.」
「어허 이놈..! 동료들이 투옥된 마당에 주군과 독대(獨對)를 하겠다? 안된다. 내게 말하라.」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짓는 무네노리를 보며 명(明)의 얼굴에는 단단히 각오를 다진듯한 표정이
떠오른다.
「야규우(柳生)님.. 비켜주시오. 소생이 마음을 먹으면 몇명의 야규우가 내 앞을 막아서더라도
이에야스님의 목숨을 지키지 못합니다.」
심중(深重)한 어조로 말을 하며 한쪽 무릎을 꿇고 죽장(竹杖)을 왼쪽 무릎옆에 조용히 가져다
놓는 명(明)의 모습을 본 무네노리가 일순 긴장했다.
「어엇.. 발검(拔劍)의 자세..! 이놈이..!」
- 휙.. 휘이익..!
무네노리의 검이 바람을 갈랐다. 그 찰나..!
「얏..!」
명(明)의 입에서 기합이 터졌다. 그리고..!
- 챙.. 챙그렁..!
번개처럼 뽑아든 죽장 속의 검(劍)이 무네노리의 대도(大刀)를 날려버리는 순간..!
「하핫..!」
다시 명(明)의 기합소리가 실내를 울렸다.
「악.. 아악..!」
- 삭.. 사악.. 촤르르르..!
기합소리와 동시에 천조각이 잘려지는 소리가 들리며 파랗게 질린 이에야스의 입에서 비명이 터
져 나왔다. 그러나 이에야스의 몸은 어느 한곳 부상당한 구석 없이 멀쩡했다. 다만 피할 겨를도
없이 자신을 향해 날아드는 검날에 극심한 공포를 느껴 비명을 지른 것이다.
- 펄럭..!
잘려진 천조각이 바람에 날려 이에야스의 앞에 툭.. 떨어졌다.
「으윽.. 이.. 이건..!」
그 천조각은 도쿠가와 가문(家門)을 상징하는, 보름달처럼 둥글게 접시꽃을 수(繡)놓아 벽에 걸
어 두었던 문양(文樣)이 양단(兩斷)되어 떨어져 내린 것이다.
도쿠가와 가문의 목숨과도 같은 접시꽃 문양(文樣)..!
그 문양(文樣)이 명(明)의 검에 두동강이 났다. 칼에 목이 날아가버린 것보다 더한 치욕이었다.
일그러진 얼굴을 하고 동강난 문양(文樣)을 내려다 보고 있는 이에야스의 귀에 명(明)의 목소리
가 조용히 울려왔다.
「합하(閤下).. 천정에 숨어 합하(閤下)와 연(蓮)누님이 나누는 대화를 모두 들었습니다. 다행
히 합하(閤下)께서 조선을 침공할 생각이 없다는 결심을 밝혀 조용히 물러가고자 했으나 소생의
동료가 소란을 피워 그 전말을 아뢰러 합하(閤下)를 뵙고자 찾은 것입니다.」
달려 들려는 무네노리를 손으로 제지하며 다시 위엄을 갖춘 이에야스가 노기를 띠고 명(明)을
노려보며 말한다.
「뭐라..? 연(蓮)누님이라 했느냐? 너희 둘은 일찍부터 아는사이였구나. 너희들 두 사람이 공모
를 하여 이 이에야스를 기만한 것이더냐?」
「아닙니다. 소생도 여기에 와서 비로소 연(蓮)누님을 보았습니다. 또한 저 옆에 놓인 옥함도
이곳에서 처음 발견한 것이지요.」
「옥함을 찾기위해 온 것이냐?」
「그 옥함때문에 지금 옥에 갇힌 두 사람이 소란을 부린 것입니다. 소생은 단지 연(蓮)누님을
찾기위해 거친 바다를 건넜을 뿐입니다.」
이에야스와 마주하여 조금도 주눅이 들지않고 당당하게 대하고 있는 명(明)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던 연(蓮)의 눈이 뿌옇게 흐려온다.
「오로지 한 여인을 만나기 위해 적지에 뛰어들었다? 으음.. 과연..! 그래 내게 다시 청하려 한
일이 무엇이냐?」
「예.. 합하(閤下)..! 소생은 이제 조선으로 돌아갈까 합니다. 먼저 약조하신바 대로 연(蓮)누
님을 제게 주십시오. 그리고 저의 동료를 석방하고 저 옥함도 돌려주십시오. 여기에 놓아 두어
야 열어 볼 수도 없는 무용지물이라는 사실을 잘 아시리라 믿습니다. 아참..! 조선으로 돌아갈
선박도 마련해 주셨으면 합니다.」
「어허.. 대담한 배짱이로구나! 이 에도성내에서 나를 핍박하고 감히 살아나갈 수 있겠느냐?」
「하하하 합하(閤下)..! 조금전 합하(閤下)께서는 소생의 검아래 목숨을 잃은 것이나 진배 없습니
다. 또한 소생이 천정위에서 합하(閤下)의 말을 듣지 않았다면 합하(閤下)의 문양(文樣)이 아닌
목을 베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다행히 합하(閤下)는 연(蓮)누님 앞에서 조선 침공의 야욕을
버렸다고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이놈.. 점점 방자하구나..! 더 이상 입을 나불거리면 네놈의 목를 칠 것이다.」
곁에 서 있던 무네노리가 참을 수 없다는 듯 고함을 지른다.
「허허허.. 놓아두거라! 감히 내앞에서 이토록 당당한 인물은 처음이다. 그래.. 내가 너의 청을
거절하고 추포하려 한다면 어찌 하겠느냐?」
「합하(閤下)를 비롯한 이 에도성내의 모든 사람이 죽어나가겠지요.」
「푸하하하.. 대단한 배포로다. 또한 내가 침략의 야욕을 버리지 않았다면..?」
명(明)의 얼굴에 슬며시 조소(嘲笑)가 떠오른다.
「합하(閤下).. 소생 이처럼 난공불락의 지밀인 합하(閤下)의 내실까지 들어와 합하(閤下)와
마주하고 있습니다. 만약 소생이 자객이었다면 합하(閤下)의 목숨은 벌써 이 세상의 것이 아니
었겠지요. 소생의 나라 조선에는 저보다 더욱 뛰어난 청년들이 수두룩 합니다. 합하(閤下)의 야
욕이 드러나는 순간 그들이 합하(閤下)의 앞에 나타날 것입니다.」
「허허허.. 허허허허허.. 졌다. 내가 졌다. 내 너의 청을 들어주리라. 무네노리.. 이 청년이 무
사히 조선으로 돌아가도록 배려하라!!」
* * * * * * * * * *
하얀 돛이 높게 걸린 목선에 앉아 방금 떠난 나고야 항을 돌아보는 명(明)의 얼굴은 감개(感慨)
어린 표정에 젖어 있다.
곁에는 연(蓮)이 그윽한 눈길로 명(明)을 바라보고 있었다.
「호호호.. 명(明)아..! 이 누나를 찾기위해 왔다는 네가 참한 두 명의 여인(女人)만 챙겨 가는
구나!」
「하하하.. 누님도, 굳이 우리와 함께 가겠다는 걸 어찌하겠습니까? 두고 떠나면 자진(自盡)을
하겠다고 고집을 부리는데..!」
뱃전에는 하루(春)와 사다에가 부서지는 파도의 포말을 바라보고 있으며 그 두 여인의 뒤에는
고로(吾郞)가 지키고 서있다.
모두 명(明)을 따라 조선으로 향하고 있는 중이었다.
다른 한쪽에는 옥함을 품속에 꼭 안고있는 설아(雪娥)를 바라보며 윤충(尹忠)이 고개를 갸웃거
리고 있다.
무사히 옥함을 회수(回收)항 것은 다행이나 어찌해야 옥함을 열 수 있을까 그 궁리에 얼굴이 펴
이지를 않는 윤충(尹忠)의 표정이었다.
그런 모두를 웃음 띤 얼굴로 물끄러미 바라보던 명(明)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다.
망망대해에 내려비치는 태양을 받아 반짝이는 장도(粧刀)..! 연(蓮)의 머리에 비녀대신 꽂혀있
는 장도(粧刀)가 눈속에 들어온 것이다.
「설아낭자.. 어서 이리로 와 보시오. 그리고 누님..!」
연(蓮)의 머리에서 뽑아든 장도(粧刀)의 칼날..! 그 칼날의 모양은 매끄러운 칼날이 아니라 들
쑥날쑥 요철(凹凸)을 이룬 묘한 생김새 였다.
(그 옛날 스승께서 연(蓮)누님의 몸에 나라의 명운(命運)이 걸린 물건이 숨겨져 있다고 말씀을
하셨다.)
「어서 그 옥함을 내밀어 보시오.」
설아(雪娥)에게서 받아든 옥함의 조그만 구멍속으로 조심스럽게 장도(粧刀)의 칼날을 밀어넣는
명(明)의 손이 잔잔하게 떨렸다. 그 순간..!
- 철거덕..!
경쾌한 음향을 울리며 옥함의 두껑이 눈앞에서 열렸다.
「으하하.. 으하하하하.. 하하하하하하...!!」
기쁨에 들뜬 명(明)의 웃음소리가 푸른 바다를 지나 멀리 울렸다. 그런 명(明)의 곁으로 조용히
다가온 연(蓮)이 귓가에 속삭인다.
「명(明)아..! 조선에 돌아가면 풀어야할 숙제가 한가지 더 남아있다는 사실을 명심하거라..!
아직 `戰方急 愼勿言我死!! 란 말을 잊지 않았겠지? 그 말의 의미도 네가 풀어야 할 숙제란다!!」
......................... 끝 .....................................
구상한 줄거리를 여기서 끝을 냅니다. 더욱 많은 시간을 잡아 살을 붙이고 내용을 첨가해 더 좋
은 글을 만들어 볼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