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기(香氣) - 18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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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
발에 채인 돌맹이가 데구르르 길가를 가로질러 굴러간다. 낮의 끈적거리는 여름날의 더위보다는 다소 선선한 저녁. 상쾌한 밤바람을 맞으려는 듯 근처 공원 길가에는 이리저리 산책을 하는 이들과 집 앞에 나와 배드민턴을 치는 사람들로 낮 못지 않게 활기찬 분위기였다.
그리고 간간히 보이는 벤치위에서 사랑의 금자탑을 쌓고 있는 커플들 역시 한가로운 한때를 보내고 있었다.
<이리와봐...>
<아잉~ 뭐야..키키..>
지롤 한다... 얼굴에 꿀쳐 발랐냐?? 뭐 그렇게 만져대냐..만져대긴... 좀 만 더 있어 봐라..
이제 그 손으로 서로의 얼굴을 뜯을 날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뭐가 그리 좋은지 벤치에 앉아 연신 쪼개가며 서로의 얼굴을 쓰다듬는 커플들의 모습을 애써 외면하며 씹어대는 나지만 가슴한구석이 애려 오는 것은 왜인지... 이유를 모르겠네..후...
<봐봐...저기 별 있어..>
<진짜네?? 반짝반짝 보석같이 빛나는 거 보니까 딱 자기 별이네..>
미친거 아냐...서울에 별이 어딨어.. 저거 인공위성 아리랑 13호야...TV도 안보냐??
<그럼 별 옆에 떠도는 핑크 빛 구름은 자기~~>
그거 스모근데....핑크빛 구름이 어딨냐.. 옆 공장 매연이다~~
소름이 끼칠만한 강도의 닭살 멘트와 연신 이어지는 스킨쉽에 들리지도 않을 딴지를 걸던 나는 이내 패배자의 뒷모습을 보이며 자리를 떠났다. 아하~~ 서울의 밤은 외롭구나...
하아...요즘엔 은근히 한숨이 많이 나온다.. 외로운 하이애나처럼 이 밤거리를 혼자 걷는 기분이란...이게 다 망할 아줌마 때문이야.. 정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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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시간 전
크하하하~~!! 드디어 복수 했다!! 이 한강혁이가 드디어 이 악마같은 아줌마에게 정의의 철퇴를 가했다고~!! 아~~ 국민 여러분 기뻐해 주십시요...드디어 드디어 18년간 통한의 아픔을 딛고 이 한강혁이가 우뚝 우뚝 다시 섰습니다.
그동안의 고통들이 주마등처럼 머리를 스쳐간다. 구타와 폭력에 시달리던 어린날 그 끊임 없던 노동의 착취와 모아두었던 저금통 까지 빼앗기는 임금 착취까지.. 이루말할수 없었던 고통과 슬픔의 나날들이 파노라마처럼 눈가를 스쳐지나간다. 아..안구에 습기 찬다.. 나에게도 이런날이 오다니...흑흑흑..
그렇게 몇 분동안을 누나를 무너뜨린 승리의 기쁨에 감격해 하던 나였지만 점점 시간이 지나고 마음이 안정되기 시작하자 조금씩 다른 감정들이 가슴 한구석에서 자리잡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느새 머릿속의 파노라마는 장면을 급반전해 다른 화면을 보여주고 있었다.
복수 뒤에 내가 겪었던 순간들.. 맞고 맞고 또 맞고 맞은데 또 맞고 쉬었다 맞고 나눠서 맞고 이자까지 붙여서 맞았던.. 사실 반항을 안해본 것은 아니었던 것 같다. 나 나름대로 누나에게 지렁이도 밟으면 꿂틀댄다!! 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항쟁하고 노력했던 것 같다.
하지만... 지렁이가 꿂틀거리면 아예 못 꿂틀거리게 확실하게 밟아버리는 것도 우리 누나였다. 즉...돌아 오는건 더한 보복. 복수는 복수를 부르는법...그리고 언제나 그 뒤에는 골병든채 몸져 누운 내 모습이 있었다.
하하...기분은 좋은데 이제 어쩌냐?? 뒷일이 문제였다. 이 여자가 가만히 있을 여자가 아닌데.. 슬쩍 고개를 돌려 곁눈질을 해보니 누나는 아직까지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은 듯 가만히 누워있었다. 아직 괴롭힘의 여운이 남았는지 누나의 불규칙한 숨소리가 공기를 타고 전해져 온다.
아...보지 말걸..보고 나니까 더 걱정된다.. 사나운 맹수의 고요는 더욱 무서운 법. 한번 회돌기 시작한 두려움은 급속도로 커져가 내 마음을 채워가고 있었다.
어떻하지?? 아..지금이라도 빌까?? 아냐...지금 빈다고 해서 될까?? 더 맞을껄?? 그럼 도망갈까?? 갈데는 있어?? 없지... 아 어쩌면 좋냐?? 그냥 죽어..악!!! 이게 아니잖아...
무슨 생각을 하든 결론은 죽었다다...
<야..>
나지막히 들려오는 목소리. 그 작은 목소리에 깔린 뭔지 모를 중압감에 나는 침을 삼키며 소리가 난쪽을 바라보았다.
<으..응??>
<풀어...이거..>
아무 감정도 없는 듯한 무미건조한 목소리 였지만 그 안에는 맹수앞에 놓인 초식 동물처럼 떨고 있는 나를 압도하는 힘이 있었다.
<으..응>
자연스레 반응하듯 조심조심 떨리는 손으로 누나의 묶인 손을 풀은 나는 신앞에 기도하는 신자의 마음으로 기도문을 외우며 각오를 다져간다.
하나님 아버지 제발 부디 한방에 기절할수 있도록 해주시길... 질긴 정신력으로 마지막 한방까지 보지않게 하옵시고 부디 당신 자식의 의식을 당신 곁으로 보낼 수 있는 깨끗한 한방으로 가엾은 어린양을 구제해 주시길..기도하옵 나이다...
나지막히 연신 기도문을 외우는 나였지만 두려움은 사라지지 않는다. 젠장.. 뭐가 먼저 올까?? 어퍼컷?? 아님 발차기??
아...근데 뭐가 이렇게 길어...
이상하다 싶을 정도로 긴 타임에 나는 용기를 내어 감았던 눈을 살며시 뜨고 앞을 바라봤다. 언제 입었는지 옷을 고쳐 입고는 매무새를 가다듬는 누나. 이리저리 땀에 저려 헝클어진 검은 머리를 다시 모아 깔끔하게 묶은 모습이 아까의 처절하게 몸부림치던 그 모습이라고는 전혀 생각 할수 없을 정도로 빈틈이 없어 보인다. 다만 아직 가라앉지 않은 듯 얼굴에 남아있는 분홍빛 기운과 촉촉이 젖은 눈만이 아까의 누나의 모습을 떠올리게 해주는 연계가 될 뿐이었다.
스르르..
옷매무새를 다 가다듬고는 자리에 일어서는 누나의 행동에 나는 반사적으로 몸을 웅크렸다. 마치 자라가 제 등껍질로 들어가듯이 몸을 숙인 나였지만 마치 그런 나를 비웃기라도 하듯 누나에게서는 아무런 반응도 오지 않았다.
뭐야..이거?? 왜 이래??
다시 눈을 뜨고 방안을 보니 어느새 누나는 침대에서 내려와 방문을 향해가고 있었다.
어이..어이..그냥..가는 거야?? 예상을 깨는 뜻밖의 상황에 이대론 안되겠다 싶어 있는 용기를 가득 짜내어 누나를 불러본다.
<누..누나..어디가??>
<....방에...>
<방엔..왜??>
지극히 단순한 문답. 3초도 가지않을 이 문답속에서 내 머릿속에서는 오만가지 가정과 생각들로 머리가 뒤엉켜 갔다. 저 여자가 왜 이러지?? 저러고 나가서 몽둥이 들고 다시 들어 올라고 그러나?? 아..연장은 안되는데.. 아님..밥먹고 힘있을때 때릴라고 하나?? 아..왜그러지??
<자러...>
하하...뭐야...거짓말이지??
쾅!!
내 말을 듣기라도 한 것처럼 멋지게 내 예상을 깨고 방을 나가버린 누나. 그리고 넓은 방안에 홀로 덩그라니 남겨져 멍하니 공기와 동화되어 버려 굳어버린 나..
나 살은..거야?? 근데...왜 이렇게 찝찝하냐..이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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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아...이제 뭐하냐...
방금 전에 편의점에서 산 바나나우유를 한 모금 빨아 마신 나는 가슴속을 가득 메운 답답함에 한숨을 쉬어갔다.
누나의 이유모를 저 이상한 행동에 치밀어 오르는 의문점과 답을 알 수 없는 답답함에 막상 바람이라도 쐴겸 나오기는 했지만 상황은 그닥 달라진게 없었다.
우리 아줌마가 뭘 잘못 먹었나... 아까 저녘때 먹은 찌개가 이상했나?? 난 괜찮은데..
정말 한번도 이런 적이 없었다. 언제나 나의 작은 반항에도 확실한 응징을 가했던게 아줌마인데.. 그런 아줌마가 그냥 넘어가다니...그것두 누나의 자존심을 무너뜨리며 괴롭힌 나를..
도통 이유를 알수가 없네..
온갖 가설을 세우며 추리를 해보는 나이지만 역시 답은 나오지 않는다.
아~~젠장 머리아파.. 오만가지 생각으로 터질듯한 머리를 긁어대며 몸을 뒤로 기대 갔다.
<아~~!!>
그리고 갑자기 들려오는 비명소리인지 환호소리인지 모를 짧은 외마디 소리가 나를 생각의 늪에서 끄집어 낸다. 뭐야?? 편의점 앞에 놓인 인형 뽑기에 기대어 있던 내가 소리가 난쪽으로 고개를 돌려가자 나의 시야에 무언가 들어온다.
하얀색 비니(골무모자 - 이거이름몰라서 인터넷에서 한참 찼았다는..ㅠㅠ)를 머리에 쓰고 몸에 달라붙는 가벼운 면티 한 장에 분홍빛의 벨벳 츄리닝을 입고 있는 한 여자. 그녀는 내가 쳐다 보고 있는 것도 모르는지 한동안 멍하니 무언가를 응시하고 있었다. 뭘 보고 있는거야?? 그 시선에 자연스레 시선을 돌리자 내가 기대어 있던 인형 뽑기의 안에서 빈 은색 갈고리가 터덜터덜 흔들리며 제자리로 돌아오고 있었다. 아마도 아무것도 건지지 못한것이리라..
그렇게 다시 갈고리를 따라 시선을 옮기자 다시 한번 그녀가 나의 눈에 들어온다.
무언가 충격에 빠진 듯 망연자실한 얼굴로 가만히 서있는 그녀. 왜 이러냐..이 여자..어디 아픈가??
<아...아.....거의 다 잡은건데...>
응?? 마치 대어를 놓친 낚시꾼처럼 아쉬움과 안타까움이 가득 묻어나오는 목소리로 중얼거리던 그녀는 이내 살며시 고개를 틀어 나를 바라본다. 큰 눈은 아니었지만 상당히 활기찬 인상을 주는 눈매에 그 안을 가득 채우고 있는 검은 구슬 같은 눈동자가 원망스럽다는 듯 나를 바라본다.
뭐야..이 여자..왜 그런 눈으로 보는 거야??
<씨이...거의 다 잡은건데...>
그러니까 그게 뭐!!
<저...왜..그러세요??>
<거의 다 잡은 거였단 말예요...>
<네??>
<씨이...그쪽에서 치지만 않았으면 뽑을 수 있는 건데...히이...>
울상을 짓듯 눈가를 늘어뜨리며 한없이 투정 어린 시선을 보내오는 그녀의 말에 나는 그제서야 상황을 파악할수 있엇다. 아마도 좀 전에 내가 기계에 몸을 기대서 그 충격으로 인형이 떨어진 것이겠지...
<아...죄송해요..그냥 저도 모르게 기댄다는게...>
<씨이...20번 해서 겨우 한번 성공한건데...>
20번?? 하하...돈을 얼마나 쏟아 부은거야..그럼...
보통은 그렇게 안하지 않나?? 더 미안해지네..
<죄송해요...정말...>
<휴..아뇨 뭐 어쩔수 없죠..이렇게 된거...>
별로 탓하고 싶진 않았던 것일까?? 그녀는 이내 가볍게 한숨을 쉬고는 괜찮다는 듯 가볍게 미소를 지었다. 원래 사람이 괜찮다고 하면 더 미안해지는 법. 아..진짜 그렇게 웃으니까 더 미안해지잖아..
<정말 괜찮아요..뭐 인형이야 뽑으면 되는 거고.. 신경쓰지 말아요..>
더욱 곤혹 스러워지는 내 표정을 읽었는지 손사래를 치며 호탕하게 웃어넘기는 그녀의 말에는 꾸밈은 없어 보였다. 큼지막한 입이 보기 좋은 선을 그리며 올라가는 것이 보는 이로 하여금 경계심을 풀게 하는 그런 미소였다,
<자..그럼 새롭게 도전~!!>
띵띵띠리디리딩~~
언제 동전을 넣는지 다시 한번 레버를 잡고 갈고리를 움직이는 그녀. 하지만 20번 해서 한번 돼 던게 단번에 다시 될리는 없는 법. 이번에도 역시 갈고리는 아무것도 낚지 못한채 빈손으로 돌아 오고 있었다.
<하아...안되네...>
기계 앞에 쪼그려 앉으며 턱을 기대어 가는 그녀. 마치 가게 앞에서 갖고 싶은 장난감을 바라보는 귀여운 아이 같은 느낌이다. 그렇게 갖고 싶은가?? 아...그렇지...
<저기....>
<네??>
<저기..실례가 안된다면 제가 한번 해봐도 될까요??>
<네??>
<그러니까 제가 한번 뽑아 볼께요...인형..>
<아..네...네..그러세요...>
한걸음 뒤로 물러나며 자리를 양보하는 그녀의 앞으로 온 나는 손을 풀 듯 움직이며 가만히 기계 안을 바라보았다. 후후..준비운동은 이쯤하고.. 오랜만에 실력 발휘 좀 해볼까..
띵딩 띠리디리딩~~
동전을 넣고 경쾌한 음악소리와 함께 갈고리를 움직이는 나. 섬세한 손길로 부드럽게 레버를 움직이고 가벼운 터치로 아까 그녀가 놓쳤던 강아지 인형을 조준해 갔다. 자...자...잠깐 갈고리 보고.. 위치 보고... 낙하... 칙....묘한 기계음과 함께 갈고리가 내려가는긴장되는 순간. 내 옆에서는 그녀 역시 긴장하는 표정으로 갈고리를 바라보고있다. 후후...놀랄꺼다..
갈고리에 인형이 걸리고 마치 자석에 붙은 듯 그 갈고리 사이에 강쥐 한 마리가 걸려 올라온다. 요시~~ 성공!!
<아~~~!!>
뭐가 그리 신기한지 마치 아이 같은 목소리로 탄성을 내뱉는 그녀. 웬지 모르게 우쭐해진다. 내가 이래뵈도 왕년에 이걸로 한가닥 했다고.. 인형 팔아서 장사까지 할 정도 였으니까..크크..뭐 그 돈도 역시 우리 아줌마의 유흥비로 탕진 됐지만..
탕~
인형 떨어지는 소리와 함께 밖으로 나오자 나는 허리를 숙여 인형을 잡아 그녀를 바라본다.
응?? 근데 이 여자 표정이 왜 이래?? 내 인형 뽑기 실력에 너무 놀란 것 일까?? 한동안 멍한 표정으로 내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보는 그녀의 모습에 나는 약간 머쓱함을 느끼며 얼굴을 만지작 거려갔다. 무안하게 뭘 그렇게 뚫어져라 보나..
<저기..제 얼굴에 뭐 묻었나요??.>
<예?? 아..아뇨...그냥...조..금 낯이 익어서요..하하..>
그러고 보니 나도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얼굴인데... 어서 봤더라...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뒷머리를 문지르는 그녀를 따라 나 역시도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바라보았다. 조그마한 얼굴에 큼직큼직 시원시원하게 자리잡은 이목구비와 선명하지만 사나워보이지 않는 눈매는 딱 보기에도 성격 좋아 보인다 라는 인상을 주고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매력적인 것은 확연히 드러나는 저 커다란 입. 두껍지 않은 적당한 입술선이 곡선을 그리며 휘어질때마다 보고 있는 사람마저 기분이 좋아지게 만드는 매력이 있는 그 입은 그녀의 쾌활하고 명랑한 성격을 대변해주는 듯 했고 전체적으로 풍기는 보이쉬한 매력에 일조하며 첫인상부터 사람을 편하게 만드는 힘을 가지고 있었다.
저...웃음...낯설지가 않단 말야...
<저기.. 제 얼굴에 뭐가 묻었어요??>
<예? 아..아뇨..그냥 저도 조금 낯이 익어서요..하하..>
마치 아까의 나의 행동을 따라하기라도 하는 듯 얼굴을 만지작 거리는 그녀의 모습에 나는 다급히 좀전의 그녀처럼 어색한 웃음을 지어갔다. 하하..무슨 코메디하는 것도 아니고 똑같이 리플레이를 하네.. 아..맞다!!
<저기...이거 가지세요.>
<네??>
방금 전에 뽑은 강쥐 인형을 내미는 나를 그녀가 약간 의아한 눈빛으로 바라본다.
<이걸...왜..?? 그쪽이 뽑은 거잖아요..>
<좀 전에 저 때문에 인형 떨어뜨리셨잖아요..뭐..그거에 대한 보답이랄까..>
<아~~ 아뇨 전 정말 괜찮아요.. 뭐 다시 뽑으면 되는데요..뭘..>
다시 뽑긴... 지금부터 20번 더할라고?? 그러다 집안 거덜란다... 이것도 도박이라고..
이거 때문에 용돈 날리고 탕진한 초딩들이 한둘이 아니야..이 사람아..
<어차피 전 인형같은 거 안좋아하거든요.. 있어봐야 줄 사람도 없고.. 괜찮으니까 가지세요..>
<하하..정말 괜찮은데.. >
짙은 눈썹을 긁으며 가벼운 승낙의 미소를 짓는 그녀는 조심스레 나에게서 인형을 받아갔다. 맘에 들었던 것일까?? 받아든 인형을 손안에 쥐고는 마치 진짜 강아지라도 쓰다듬는 것 마냥 부드러운 손길로 쓰다듬는 그녀의 얼굴에 밝은 미소가 가득 걸려있었다.
튕기더니... 안줬으면 울뻔했네...
<귀엽네요..이거...고맙습니다.>
가볍게 인형을 들고 나에게 감사의 인사를 하는 그녀의 모습에 뿌듯한 마음과 함께 어디선가 보았던 무언가가 겹쳐 보여온다. 하아..뭐지...생각이 날 듯 말 듯 한데...
<저기...근데 우리 어디서 만난적 있나요??>
<네??>
<아뇨..그냥 자꾸 어디서 본 것 같아서요..>
나올 듯 말 듯 안개속에 휘말린 것처럼 뿌연 기억속을 해치며 더듬어 보지만 도무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저...혹시 지금 저한테 작업 거시는 거예요??>
엥?? 뜬금없이 뭔 소리래?? 작업?? 뭐.. 공사해??
<아뇨..그렇잖아요... 제가 누군지도 모르는 데 인형까지 주고 거기다 딱 뻔히 보이는 작업 멘트까지 날리고.. 누가 봐도 이건 작업이죠..>
그런가?? 하긴 그렇게 보였을 수도 있겠다. 그래도 그렇지!! 남의 호의를 그런 작업으로 보다니!! 이런 배은망덕한...
<아뇨...그런 건 아니고요..그냥 뭐..그냥...미안해서..그쪽이 맘에 있어서 그런 건 아니니까..>
<예?? 그래요?? 에..내가 그렇게 매력이 없나?? 그래요?? 그쪽이 보기에는?? 막 보면 말시키거나 같이 놀자고 할 정도로 매력 있어 보이지는 않아요??>
갑작스레 나에게 한 발짝 다가오며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물어오는 그녀의 행동에 나도 모르게 몸을 움츠려 갔다. 뭐야..이 여자..갑자기 진지해져 가지고.. 마치 칼라렌즈라도 낀건마냥 까만 눈이 나를 응시하자 어색함에 나도 모르게 고개를 돌려 외면한다.
<에?? 저,,그게..아..뭐라고 할까...이쁘세요..이쁘시고..음...첫인상도 좋으시고..호감형이시고..암튼 매력 있어요..>
<그래요?? 그럼 작업 건거 맞네요??>
엥?? 또 얘기가 그렇게 되는 거야??
<네?? 아니..그건...>
<에..그럼 빈말이네..>
<아니..그건 아닌데...>
웬지 모르게 실망한 듯 말끝을 흐리는 그녀의 모습에 나는 난감한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아이씨..뭐라고 해야 돼..이거..
<후후..>
뭐야..갑자기..왜 웃어..
<장난이예요 장난..놀랬어요??>
<네?? 아..조금..하하..>
사뭇 곤한 한 표정을 짓던 나를 보고는 가볍게 웃으며 그만 두라는 듯 손을 휘젓는 그녀의 모습에 나는 그제서야 그녀를 표정을 풀고 어색하게 따라 웃어갔다. 하하... 이게 첨 본 사람 막 가지고 노네??
<에~~지금 속으로 나 욕했죠??>
<네??>
<막 이게 나 가지고 노네?? 하고 속으로 욕한거 아니예요??>
<아..아뇨..그럴리가..하하..>
마치 내 마음을 읽은 듯 한 날카로운 말에 나는 그저 어색한 웃음만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이 여자 뭐야...독심술 쓰나...
<에~ 얼굴에 써 있는데.. 이 여자 이상해!! 라고...>
<예?? 설마..>
혹시나 하는 마음에 얼굴을 만져 보자 눈앞의 여자가 그 모습을 보고는 기다렸다는 듯이 웃음을 터뜨린다.
<하하..농담이에요~~농담..>
에..이 여자가 진짜.. 잠깐 울컥하는 마음이 들어오는 나지만 꾸밈없이 시원한 웃음을 짓는 눈앞의 여자를 보자 웬지 모르게 나도 웃음 나온다. 진짜 묘하게 사람을 끌어당기는 웃음이다.
<에..뭐예요....진짜..>
<미안..미안..오랜 만에 하니까 재밌어서..>
응?? 오랜만에?? 언제 이런적이 있었나??
<저기..지금 시간 있어요??>
<네??>
<음..그러니까 지금 뭐 딴거 할거나 다른데 갈일 없냐고요..>
<아..뭐..특별히 할건 없는데...>
<그래요?? 그럼 나랑 어디 좀 같이 갈래요??>
<네??>
이거..무슨 전개?? 혹시...
<나랑 놀자고요..지금~~>
<저랑요??>
<네..그쪽이랑 저랑..>
<왜..왜요??>
<뭐..인형 받은 것도 있고..그쪽이랑 있으면 재밌는거 같고..>
뭐야..이 뜬금없는 얘기는.. 설마...이 여자가 나한테?? 내가?? 그럴 리가 없지..
<또 장난 치는 거죠?? 이번엔 안속아요..>
<에..진짠데..>
<정말요??..>
<정말이죠..속고만 살으셨나...>
방금전에 당신이 나 속이기만 했잖아!!
<그러니까 작업 거는 거예요..내가 그쪽한테. OK??>
믿으라는 듯 사뭇 진지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는 그녀. 갑작스런 말에 얼떨떨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자 그녀가 나를 향해 다시 한번 환한 얼굴로 웃음을 보이고 핑크빛의 얕은 입술 사리로 가지런히 나열된 하얀 치아가 보인다. 악의라곤 전혀 없는 해맑은 웃음이 어두운 저녘 길가에서 눈부시게 빛난다. 아..어디서 봤는데..정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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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차피 집에 가봐야 할일도 없었다. 뭐 빨래도 다 해놨고 숙제 같은 거야 집에서까지 들고와서 하는 내가 아니니까.. 그리고 무엇보다 집에 들어가서 어색한 분위기속에서 누나랑 한공간에 있는 것 도 상당히 껄끄러운 게 마음에 걸리니까.. 그래도 말야..이건 아니잖아..
<엉덩일 흔들어봐~~ 힘껏 더 흔들어봐~>
흔들긴 뭘 흔드냐.. 듣고 만 있어도 몸과 함께 뇌까지 흔드릴 것 같은 빠른 템포의 신나는 음악이 안을 가득 메우고 울려온다. 붉으스름하고 알록달록 색색빛깔들의 조명들이 분지에 깔려 반짝반짝 빛나는 것이 한껏 멋지고 열정적인 분위기를 뽐내고 있다.
<자자..잔들고 건배~~!!>
<오늘 먹고 죽자!!>
여기저기서 잔 부딪히는 소리가 악기를 치듯 쉴새 없이 들려온다. 아..이건 좀 아닌데..
나에게 작업(??)을 건 그녀를 따라 마지못해 따라온 이곳 시내의 한 호프집. 어색한 몸짓으로 주위를 둘러보는 내가 이상했던지 기본안주로 나온 강냉이를 주워 먹으며 말을 걸어왔다.
<뭐해요??>
<네?>
<아까부터 자꾸 두리번거리기만 하고 이런데 첨 와봐요??>
<아..아뇨...그냥..>
당연히 첨 와보지!! 난 성실하고 건전한 고등 학생이란 말이다!! 언제나 착실하게 집 학교, 집 학교..뭐 가끔가다 들리는 곳이라고는 시장밖에 없는 세상에 둘도 없는 건전 청소년이 이 나 한강혁이란 말이다!! 근데..그런 내가 이런 곳에 들어오다니.. 웬지.. 토끼를 따라 이상한 나라에 간 앨리스가 된 기분인걸..
<여기 분위기 좋죠??>
<예?? 아..네..신나네요..>
<여기가 이 근방에서는 가장 먹어주거든요.. 분위기도 좋고 무대도 있고..뭐 이벤트도 자주하고...>
<아..네..>
마치 이곳 웨이터라도 되는 양 친절하게 세세하게 설명하는 그녀의 말을 들으며 나는 다시한번 주위를 둘러 보았다. 넓은 내부 안을 가득 매운 좌석과 테이블 그리고 빈자리가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로 꽉 들어찬 사람들. 확실히 인기가 많은 것 같았다.
근데.. 괜찮을려나.. 미성년자가 이런데 와도..말을 할까..지금이라도..
이런 저런 걱정을 하고 있는 도중 깔끔하게 검은색 제복을 깔끔하게 차려입은 종업원이 테이블로 다가왔다.
<저기 실례지만 신분증 좀 보여주시겠어요??>
아..역시 올 것이 왔구나..뭐라고 하지?? 아..집에 놓고 왔다고 하면 될까?? 믿어 줄라나??
근데..잰 왜 저쪽보고 물어보냐?? 우리 테이블로 다가온 종업원은 확실히 나에게는 눈길도 주지 않은채 눈앞의 그녀만을 주시하고 있었다. 이봐..미성년자는 나라고..
<아..저 성인인데..>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좀 보여 주시겠어요??>
<네..뭐 그러죠..>
별 거 아니라는 듯 가볍게 미소 지으며 그녀는 가방에서 지갑을 꺼내 신분증을 내밀어 갔다.
<에~86년 생이세요??>
<네..왜요?? 뭐 잘못 됐나요??>
<아뇨..전 그보다 더 어리게 봤거든요..많아 봐야 열 아홉?? 야..상당히 동안이시네요..>
<에?? 거짓말...>
<아뇨..정말 어려보이세요..피부도 그렇고 생긴것도 그렇고..>
<예..뭐..고맙 습니다..빈 말이라도...듣기는 좋네요..>
<아뇨..진짜로요.. 근데 이 사진 정말 손님꺼 맞으세요??>
<예 맞는데요..왜요??>
<아니..사진도 이쁘긴 한데 실물이 더~~ 이뻐서요..>
<그래요?? 하하..>
뭐하는 거야 이것들... 뭐가 그리 좋은지 서로 웃고 떠드는 눈앞의 연놈들을 나는 어이없는 표정으로 바라 보고 있었다. 아니..이 종업원 놈은 민증 보러 왔으면 민증 까고 후딱 갈것이지 뭐하는 거야..저거 지금 수작 거 는 거 아냐??
확실히 종업원의 행태는 상당히 의심스러웠다. 그녀를 치켜 세우려는 듯 달콤한 말을 내뱉으며 반반한 얼굴로 눈웃음까지 쳐가고 있는 것 까지 누가 봐도 명백한 작업이었다. 얼굴도 잘생긴 놈이 눈웃음 까지 치니까 평범한 나로서는 재수없기 그지 없다.
<그럼 이따가 제가 안주 하나 쏠께요~>
<정말요?? 진짜죠??>
<당연하죠..이런 미인분 한테 그런 서비스를 안드리면 누구한테 드려요~>
<하하...참...농담도..>
하하..참...지랄도... 못봐주겠다..
<저기요..안 바쁘세요??>
<네?? 아...죄송합니다..제가 말이 좀 많았네요..>
그게 좀 이냐?? 안 말렸으면 자리 옆자리에 앉았겠다..
<그럼 즐거운 시간 되십시요..>
이래저래 주문을 마치자 다시 한번 그녀를 향해 가볍게 고개를 숙이는 종업원은 살짝 눈웃음을 날리며 자리를 떠났다. 뭐야..저거 끝까지 저러네..그리고 민증 까보러 왔으면 내것 까지 까봐야지.. 저거 직무유기 아냐?? 확..신고해 버릴라.. 아니지..나도 들어가지..미성년자가 술집같다고..그럼 잘된건가..하아..근데 왜이렇게 가슴이 애리냐..
<왜 그래요??>
<네?? 뭐가요??>
<아니..지금 표정이 막 이렇게 이렇게 일그러져 있는데...>
설명이라도 하듯 이리저리 손가락을 움직이는 그녀의 모습은 상당히 귀여운 느낌이었지만 그 흉내내는 상대가 나라는 점에 그런 생각은 금방 사라져갔다.
<아뇨,,뭘 아무것도 아니예요..>
<에이...아닌게 아닌데... 뭐랄까.. 아!! 그 똥씹은 표정..그런 표정 하고 있어요..지금..>
하하.. 말을 해도 똥씹은 표정이 뭐냐.. 그리고 똥 씹어봤냐?? 어떡해 알아..
<아!! 혹시..좀 전에 그 종업원이 나만 민증 검사해서 그런 거예요?? 막 나이많이 먹은 사람 취급 받은 것 같아서??>
얘기가 또 왜 그러쪽으로 빠져...뭐 틀린말은 아니지만..그래도 남자가 그런걸로 화내면 안되니까..
<아니예요..설마~·>
아니라는 것을 강조 하듯 말끝을 길게 늘어뜨리는 나를 관찰하듯 가늘게 실눈을 뜨며 바라보던 그녀가 미묘한 미소를 보낸다. 뭐야..그 웃음은..
<헤..맞구나..>
뭐야..뭘 보고 그렇게 판단하는 거냐고..
<글쎄 그런거 아니라니..>
<뭐..어때요 그럴수도 있죠..원래 남자는 좀 나이먹어 보여야지 어려보이는 건 안좋아요.. 남자가 어려보이면 뭐랄까 웬지 여자도 그렇고 같은 남자들도 그렇고 무시하잖아요.. 뭐 여자들도 성숙한 남자를 좋아하고..나쁘게 생각하지 말아요..>
그 말은 나이 들어 보인다는 말이지.. 결국은.. 위로라고 하냐..그걸...
<뭐..그쪽이 고등학생이라면 문제겠지만..아니니까..>
아...이건 결정탄데..진짜 이번에 나 곗돈 타면 보톡스 꼭 맞는다.. 정말 한두번도 아니고..
언제 이렇게 노안 캐릭이 된거야..나..좀 학생답게 그려줘...
나름 심각한 고민에 빠져있던 와중에 주문했던 음식과 술이 나오자 우리는 서로의 잔을 채워줬다. 시원한 안개를 잔위로 만들며 거품을 일으키는 모습이 보기만 해도 시원함이 느껴진다.
<자..건배 한번 하죠..>
가득 채운 맥주잔을 들고 나를 내미는 그녀를 향해 나 역시 응답하듯 맥주잔을 들어갔다.
<음...언젠가 만났을지 모르는 두사람을 위해..건배!!>
창~~ 잔 깨지겠네.. 힘차게 잔을 부딪힌 그녀가 기다렸다는 듯이 시원스러운 움직임으로 맥주를 들이마셔 갔고 나 역시 이내 그녀를 따라 가볍게 술잔을 기울여 갔다.
목구멍을 톡쏘는 산뜻한 느낌과 함께 시원함이 식도를 타고 흘러 몸 전체를 누빈다. 코끝에서 맴도는 싸한 냄새가 나쁘지 않은 느낌이었다.
그렇게 시작된 술자리를 생각보다 좋은 분위기로 흘러갔다. 만난지 몇시간도 안된 여자, 그리고 그 몇시간 만에 가진 술자리, 어색하지 않을까 걱정도 했지만 그런 생각은 이내 사라졌다. 마치 오랜만에 만난 사람처럼 전혀 어색함이나 껄끄러움 없이 나에게 말을 걸어오는 그녀는 마치 그것이 천성인 듯 결코 가벼워 보이지 않는 친근함으로 어색함을 녹여갔고 이내 나 역시 그런 그녀의 모습에 스스럼없이 그녀와 말을 섞어갔다.
<그래서 말이죠...그때 제가..>
무언가 재밌는 얘기를 하듯 장난기 가득한 얼굴을 한 채로 말을 하는 그녀. 마치 태어날때부터 웃고 있엇던 것은 아닐까 하고 느껴질 정도로 자연스러움이 느껴지는 저 웃음이 상당히 매력적이었다. 뭔가 사람을 끌어당기는 스타일이라고 할까?? 뭐..얼굴도 제법 이쁜 편이고.. 솔직히 제법이라고 하기에는 모자랄 정도로 이쁜편이었다. 누나나 선생님이 가진 성숙한 이미지와는 다른 분위기의 매력을 가지고 있는 그녀는 누가 보기에도 빠져들만한 여자 같았다. 근데..많이 익숙해...처음 만났는데도..
그렇게 얼마나 먹었을까 조금씩 취기가 도는 것이 느껴져가자 나는 시계를 들여다 보았다.
에..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네.. 막차 끊기기 전에 가야겠다. 그녀를 따라 번화가로 나온 나였기에 차를 타고 들어가려면 지금 일어서야 했다.
<왜요?? 무슨일 있어요??>
시계를 들여다 보고 있는 나를 보더니 그녀가 마시던 맥주를 내려놓으며 물어온다.
<아뇨..이제 가봐야될 것 같아서..시간이 너무 늦었네요..>
<예?? 헤~~벌써 이렇게 됐네...시간가는 줄도 몰랐네..헤헤..>
그녀 역시 약간 취기가 올랐는지 뽀얀 두볼이 살짝 물들어있다. 하지만 두 까만 눈동자는 전혀 흐트러짐 없는 광택을 발하며 까맣게 빛나는 것이 많이 취한 것 같지는 않아보였다.
잘 먹네.. 나보다 훨씬 더 먹은 것 같은데..
<하아..정말 잘 먹었어요..덕분에..>
<예..저도 잘..예??>
뭔소리야.. 덕분에 라니... 그쪽이 사는거 아니였어??
<왜요??>
<아니..저..그게...>
능처스럽게 반문해 오는 그녀에게 차마 니가 내기로 했잖아라고 따질 수 없는 노릇이었기에 나는 그저 어쩔줄 몰라 우물쭈물 할 수밖에 없었다. 아..말해야 돼 말아야 돼..
<푸후...훗...크크...>
뭐야..왜 웃어?? 뭐가 웃긴지 말아쥔 손으로 입가를 가리며 킥킥 거리던 그녀는 이내 재밌어 죽겠다는 얼굴로 나를 바라본다.
<크크..지금 내가 내야 되는 거야?? 하고 속으로 걱정하고 있었죠??>
다 안다는 듯 내 마음을 꽤뚫어 오는듯한 말에 나는 뜨끔하며 어색하게 반문을 했다.
<아뇨....전 그냥 그쪽이 암말 없으면 내가 낼라고 했어요...원래부터..>
물론 뻥이다.. 가진돈 이라곤 차비 밖에 없는데.. 여기 술값 낼 라면 여기서 나 설거지 해야한다..
<진짜요?? 그럼 그쪽이 낼래요??>
<예??>
뭐야..또...이건.. 그렇다고 바로 그렇게 나오면 안되지..
<농담이예요. 오늘은 내가 사기로 한거니까..내가 낼께요>
빌즈를 짚어 자기 앞으로 가져가는 그녀의 모습을 보며 나는 나지막히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진짜 이 여자.. 사람 여러모로 놀라게 하네..
근데 뭐하고 있냐??
<뭐하세요?? 안일어 나세요??>
<아뇨..잠깐만요..>
뭘 찾는 것일까?? 가방안에서 이라도 잡듯 이리저리 뒤적 거리는 그녀는 이내 가방에 있던 모든 것들을 테이블위에 쏟아 놓고는 헤집어 간다. 뭐야..왜 저래??
<아...없다..>
<네?? 뭐가요??>
<없어요...>
아..그니까 뭐가..
<카드...계산해야 되는 데 카드가 없어요..>
이건 또 무슨 소리냐?? 또 장난치는 거 아냐??
<에이..장난 치지 말아요..이번엔 안속으니까...>
<이번엔 진짜예요..정말로 없어요...>
증명이라도 하듯 가방을 뒤집어 탈탈 털어보는 그녀의 모션에는 아까와는 다른 느낌이 풍겨져 왔다. 설마..진짜로??
<다시 한번 찾아봐요..>
<다 찾아 봤는데 없어요...>
아~~!! 진짜..뭐야..
<현금은요?? 현금은 가진거 있어요??>
<아뇨..아까 인형 뽑기 할때 다 써서 지금 가진 거라곤 몇백원 밖에 없어요..>
얼마나 했길래 현금을 다써... 어쩌냐..나도 돈 없는데..
<그쪽은요?? 그쪽은 돈 가진거 없어요??>
<예..저도 가진 돈은 얼마 없는데..>
<아니..무슨 남자가 여자랑 술집 오는데 돈도 안들고 와요..매너없이..>
니가 오자고 했잖아!! 그리고 여기로 올줄 알았냐?? 어디서 누명을 씌워..
<아니..저 그게..>
<아..그건 됐고..이제 어쩌죠??>
말돌리는 거 봐라...투정부리듯 말하는 그녀의 말에 우컥하는 나였지만 따져봐야 별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내뱉으려던 말을 도로 집어 넣었다. 상황전환 드럽게 빠르네..그나저나 진짜 이제 어쩌냐...
<도망 갈까요??>
마치 대단한 아이디어라도 내듯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하는 그녀. 도망?? 무전 취식?? 그런 그녀의 말에 천천히 주위을 동태를 살피듯 고개를 입구 쪽으로 돌려가자 입구의 한 남자가 눈에 들어왔다. 보기만 해도 주눅 들것 같은 험악한 인상의 사내가 마치 지옥의 문을 지키는 수문장처럼 서서 미동도 하지 않은 채 입구를 지키고 있었다. 무슨 K-1 출신이냐.. 뭐 저렇게 몸이 좋아.. 멀리서 봐도 눈에 띄일만한 우락부락한 근육들은 정말 한대만 맞아도 골로간다는 말이 절실히 느껴질 정도로 위협스러워 보였다.
<안되겠네요..저건...헤헤>
그녀 역시 문 앞의 그를 봤는지 고개를 다시 원위치 시키며 실없는 웃음을 흘려갔다. 웃음이 나오냐..지금..그래도..저건 아무리봐도 무리지.. 잘못하다간 술값보다 병원비가 더 많이 나오겠다..
아..그럼 이제 어쩌지.. 아무리 생각해봐도 뾰족한 수가 나오지 않는다. 누나한테 가져오라고 할까?? 아니지..가뜩이나 지금 분위기도 안좋은데 거기다 술집에 그거도 여자랑 같이 또 돈가지고 나오라고 하면..아...상상하기 싫다..죽어도 그짓은 못하겠다..
<저기..무슨 좋은 방법..>
뭐야..이 여자.. 남은 이렇게 머리가 터지도록 고민하고 있는데.. 앞의 그녀를 바라보자 그녀는 어디를 보고 있는건지 고개를 뒤로 돌려 무언가를 유심히 바라보고 있었다. 뭐야..뭘보는 거야 도대체..
그녀가 고개를 돌린 방향으로 나 역시 눈을 돌리자 가게안의 큰 무대가 들어왔다.
뭐야..뭐 하나?? 마치 무얼 준비하듯 무대위에서는 여러 사람들이 왔다갔다 하며 무언가를 설치하고 있었다. 아..여기 오늘 무슨 이벤트하는 날이라고 했지.. 뭐였더라... 커플..뭔데...
아..몰라..그런 건 중요한게 아니고..
<저기요..뭐 좋은 방법..>
<저기 춤 잘춰요??>
내 말을 자르며 불쑥 물어오는 그녀. 밑도 끝도 없는 소리에 나는 그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춤?? 갑자기 왜 춤 얘기가 나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