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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협야설) 붉은 달(月)을 베다. 1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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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289 회 작성일 24-01-01 04:25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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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白雲俠(낭만백작)著/ 붉은 달(月)을 베다.  **



제 12 회  호기(好機)를 노리다 2


명(明)과 두 명의 조선인이 보현원(寶賢院)의 방문을 열고 실내로 들어서 모습을 감추는
그 순간..!


- 우르르 다다다닷..! 
- 웅성웅성..!


보현원이 있는 후원까지 한 무리 경비무사들이 달려와 부산스럽게 움직이고 있었다.


「핏자국이 여기에서 끊겼다. 이 주변을 샅샅이 뒤져라!!」


「옛..!」


요란하게 흩어져가는 발자국소리가 귀에서 멀어져 갈 즈음 보현원(寶賢院)의 문 앞에서 헛기침
소리가 들렸다.


「으흠.. 으흠.. 보현원마님..! 경비조장 긴지로(金次郞)입니다. 말씀 좀 여쭙겠습니다.」


그러나 방안에서는 아무런 대답이 없이 고요했다. 긴지로는 실내를 향해 조금은 더 긴박한 어조
로 다시 말을 던졌다.


「천수각 서고에 침입한 간자(間者)를 쫒고 있습니다. 핏자국이 여기에서 끊어져 혹시 마님의
신변에 위험이 없는지 확인 하고자 합니다.」


방을 수색하기를 원한다는 통고인 것이었다.
잠시 후 보현원(寶賢院)의 미닫이문이 드르륵.. 열리며 하루(春)가 모습을 나타냈다.


「누구냐..? 누가 퇴설당(堆雪堂)후원을 이리도 시끄럽게 하는가?」


히데요리조차도 이 후원을 방문할 때는 지극히 조심스러워 하지 않았던가?
그런 장소를 찾아온 일개 조장따위가 소란을 피우고 있는 사실을 질책하는 하루(春)의 얼굴에는
싸늘한 냉기가 흘렀다.


「예.. 예.. 간자가 후원으로 뛰어들어 위험에 처하지 않았나 하여..!」


조장 긴지로의 말에 하루(春)는 얼굴에 노기를 띠우며 방안을 가리킨다.


「이놈 긴지로.. 너의 눈에는 이 광경이 보이지 않느냐? 지금 세키가하라(關ケ原)에서 전쟁이
한참인 아버님의 무운과 이씨다님의 승전을 기원하는 지성(至誠)을 드리고 있거늘..! 들어와 찾
아 보거라.」


열려진 방안의 벽 아래 선단(禪壇)에는 조그만 관음상이 놓여 져 있고, 그 앞 촛불이 켜져 있는
다반(茶盤)위의 향로(香爐)에서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 올라 향내를 물씬 풍기고 있었다.


「죄.. 죄송합니다. 마님.. 혹시 마님의 신변에 위험이 닥칠까하여..! 저는 물러가겠습니다.」


방안의 경건함과 추상같은 하루(春)의 표정을 살핀 긴지로는 고개를 숙여 예를 올리고 말없이
천수각으로 되돌아갔다.


 * * * * * * * * * *


「이제 나오셔도 됩니다.」


사방을 살피고 들어온 하루(春)가 안심을 해도 좋다는 말을 하자 관음상이 놓여진 선단(禪壇)속
에 웅크리고 숨을 죽이고 있던 세 사람이 천천히 기어 나왔다.
재빨리 약함(藥函)을 들고 다가간 하루(春)가 지혈제를 부상당한 남자의 상처에 뿌리며 응급처
치를 한 후 궁금한 듯 입을 열었다.


「명(明)님.. 이들은 또 누구신지?」


「허허.. 나도 오늘 이 순간 처음 만난 이들이오. 그래 두 분은 무슨 일로 천수각의 서고(書庫)
로 숨어 들었습니까?」


명(明)이 그들을 향해 돌아앉으며 물었다. 그런 명(明)에게 남장여인이 입을 열었다.


「우리는.. 꼭 찾아야 할 서책이..!」


미처 여인이 말을 다하기도 전에 남자의 입에서 호통이 터져 나왔다.


「어허.. 설아(雪娥)..! 입조심 하거라!!」


갑작스러운 호통에 멀뚱한 눈으로 바라보는 여인의 입단속을 시키며 무릎걸음으로 가까이 다가
온 남자가 명(明)과 하루(春)에게 고개를 숙였다.


「두 분..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러나 사정이 있어 저 아이의 말을 막은 점 용서하십시오.」


위험을 무릅쓰고 이들의 목숨을 살려준 자신들이 아닌가!!
못마땅한 표정을 짓고 있는 하루(春)를 돌아보며 명(明)은 얼굴에 미소를 가득담고 달래듯 온화
한 눈길을 보내주었다.


「하하하.. 두 분, 소생도 조선 사람이외다. 무슨 영문으로 이 삼엄한 곳을 침입했는지 말해줄
수 없겠소?」


자신도 조선에서 건너온 신분이라 밝히며 그들의 입을 열게 하려 한 명(明)에게 엉뚱한 대답만
돌아왔다.
 
「죄송하오 공자..! 이 아이는 설아(雪娥)라 하며 저는 윤충(尹忠)이라 합니다. 우리 두 사람은
어떤 분의 밀명을 받고 파견된 조선의 관헌(官憲)이올시다. 중요한 임무를 띠고 온 우리들이라
더 말씀드릴 수 없는 점 양해 바랍니다.」


궁지에 몰려 이곳에 숨어 있으면서도 명(明)이 조선사람이라 하여 그 앞에서 조정의 관리라는
오만함이 묻어나는 말이었다.


「푸흐흐흐.. 전란 중 조선의 백성들을 죽음에 몰아넣었던 그 조선조정의 관리였구려..! 나는
명(明)이라 하외다. 허허허.. 그 임무라는 것을 소생이 굳이 알아야 할 필요는 없겠지요.」


조선사람인 명(明) 한방에 있는 이 일본여인은 손수 자신의 다친 어깨를 치료해 주었다. 그렇다
면 두 사람은 보통 가까운 연분(緣分)이 아닐 것..! 또한 이 여인은 자신을 추적해온 병졸들을
한마디 호통으로 돌려 보낼만큼 이곳에서는 지위가 높은 여인이리라. 해서 자신들은 밀명을 받
은 조선 조정의 중한 인물이라는 점을 밝혀 명(明)에게 협조를 강요하리라 입을 연 것이었다.
그러나 명(明)의 빈정거림에 윤충(尹忠)의 눈꼬리가 꿈틀 치솟으며 얼굴엔 노기가 스쳤다.
  
그런 윤충(尹忠)의 표정은 비웃듯 바라보던 명(明)이 슬며시 고개를 들어 천정을 바라보며 조용
히 말했다.


「그 위에 숨어 계시는 분..! 이제 방안으로 내려오시지요!!」


느닷없는 명(明)의 말에 방안의 모두가 깜짝 놀라 어리둥절 하는 사이..! 스르르 검은 그림자
하나가 연기가 스며들듯 실내로 내려앉았다.


「크크크크크.. 호흡조차 멈추고 숨어있었는데 그 기척을 알아차리다니..! 과연 공자시오..!
고로(吾郞)가 마님께 인사드립니다.」


홀연(忽然) 방안으로 내려앉은 그 그림자를 본 하루(春)가 아연실색(啞然失色)을 하며 쓰러질듯
몸을 앞으로 내밀었다.


「그.. 그대는 아버님을 모시던 그 닌자(忍者)가 아닌가? 전장(戰場)에 계시는 아버님을 지키고
있어야 할 그대가 어찌 여기에.. 혹시.. 아버님의 신상에..?」


미처 묻고 싶은 말의 대답을 듣기도 전에 하루(春)의 눈자위는 발갛게 물들어 갔다.


「후후.. 아닙니다. 그러나 주군께서는 이번 전쟁의 결과를 뻔히 예측하고 계십니다. 예 부터
히데요시님과의 인연을 맺은 그 신의(信義)때문에 서군에 참여하신 것입니다. 주군께서 세키가
하라(關ケ原)로 출병하시던 그날 이놈에게 명(命)하셨습니다. 즉시 달려가서 아씨마님의 신변을
을 지키라고 말입니다!!」


그 말을 들은 명(明)이 무겁고 절박한 말을 내뱉었다.
 
「허허.. 고니시님은 죽음을 각오하셨구려. 아니 지금쯤 이미 목숨을 버렸을 지도 모를 일..!」       


「헉.. 명(明)님 그 짐작이 진정입니까? 고로(吾郞).. 정말이냐??」


고로(吾郞)는 대답 없이 천정만 올려다보고 있었다.


 * * * * * * * * * *


한동안 적막이 흐른 후, 방안의 모두를 바라보며 고로(吾郞)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명(明)님.. 그리고 여기계신 두 분..! 전쟁의 와중이라 필시 이 오사카성의 경비가 허술해
졌을거라 짐작하여 침입을 하신 것이라 생각 합니다. 그러나 세분 모두 큰 오산을 하셨습니다.
전쟁중에는 서로의 첩자가 횡행하기에 더욱 경계를 철저히 한다는 사실을 몰랐을 것입니다.」


어깨에 흰 천을 감고 부상당한 팔을 한손으로 감사고 있던 윤충(尹忠)이 고로(吾郞)의 친밀한
말에 마음을 놓은 듯 그의 앞으로 다가갔다.


「이곳에 오래 숨어계셨다 하니 오사카성의 사정을 잘 알거라 믿고 한마디만 묻겠습니다. 혹시
천수각 칠층의 서고에 있던 서책들을 어디로 옮긴 적이 있습니까?」


「그건 왜 묻소..? 그 곳에 있던 중요한 책들은 아마 에도 도꾸가와의 서고에 가 있을 거요.
푸훗.. 저 어리석은 미쓰나리가 몸을 의탁하면서 상납 한거지...」


「그렇소..? 알려주셔서 고맙소이다. 설아(雪娥)야.. 가자. 우리는 에도로 가야한다. 모두 감사
하오. 그럼...」


마음 급하게 일어서려는 두 사람을 보며 고로(吾郞)는 어이없다는 듯 킬킬킬.. 웃는다.


「이보시오 젊은이..! 이 오사카성이 그리도 허술해 보이오? 여기 명(明)공자께서도 경비가 삼
엄한 이곳을 뚫고 칩입을 하여 소란을 부렸소이다. 그리고 칠층 서고에서 그 난리를 부린 지금,
그대들의 행적은 이미 모두 알려져 있소. 그런데도 이 성을 무사히 빠져나갈 수 있을 듯 하오?
어림없는 일..! 이미 저들은 이곳에 간자가 칩입을 해 이 소란을 피우고 긴요한 정보를 빼내려
하는 것이라 여겨 철통같은 경계를 펴고 있을 것이외다. 조금 전 그 긴지로도 이곳의 의심을 풀
지 않고 근처에서 살피고 있을 것이오. 잘못하면 보현원(寶賢院)을 나서자마자 모두 그들이 쏜
화살에 맞아 고슴도치의 신세가 되고 말 것이외다.」


고로(吾郞)의 긴 설명을 듣고 있던 윤충(尹忠)의 표정이 난감하게 변했다.
그런 방안의 손님들을 한바퀴 빙 둘러보고 난 후 고로(吾郞)는 하루(春)의 앞으로 다가가 고개
를 깊이 숙였다.


「아씨마님.. 후원의 연못 뒤를 돌아가면 성벽아래 조그만 구멍이 뚫려 있습니다. 이분들 모두
그곳으로 안내하여 그 구멍으로 빠져나가십시오. 마님께서도 함께 이곳을 떠나셔야 죽음을 면합
니다.」


「고로(吾郞).. 그것이 무슨 말이냐?」


「예.. 마님. 주군께서는 세키가하라(關ケ原)에서 목숨을 버리실 각오이십니다. 만약 동군이
승리를 하게 된다면 이곳에 남아있는 마님도 피바람을 면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이 성의 주인인
히데요리님에게는 그 피바람을 막아 낼만한 힘이 없습니다. 오히려 전장에서 마주해 죽음으로
전투에 임하는 주군의 기개를 도쿠가와님이 더 가상케 여길 것입니다. 그러니 에도가 마님께는
더 안전한 장소가 되겠지요. 제가 이곳을 지키는 군졸들을 유인할 테니 그 기회를 틈타 탈출하
십시오. 이곳을 벗어나게 되면 에도(江戶)로 들어가는 입구의 다케(竹)언덕으로 가십시오.」


그랬다. 만약 고니시가 세키가하라(關ケ原)의 전투에서 사망을 하게 된다면 하루(春)는 동군의
눈밖에난 서군장수의 딸일 뿐이었다.
그런 꼬투리를 잡아 이곳의 무장들이 어떤짓을 할지 모르는 난국이 아닌가?? 그 점을 염려한
고니시가 고로(吾郞)를 하루(春)에게 보냈으며 이곳에 온 고로(吾郞)는 상황을 면밀히 살피다가
스스로 군졸들을 유인해 이들이 빠져나갈 활로(活路)를 열려 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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