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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협야설) 붉은 달(月)을 베다. 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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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233 회 작성일 24-01-01 03:1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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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白雲俠(낭만백작)著/ 붉은 달(月)을 베다.  **



제 5 회  후츄성(府中城)의 인연(因緣) 1


성(城)안의 넓은 방안에는 조선에서의 전투를 위로하기 위한 연회(宴會)의 자리가 마련되었다.
이제 겨우 여섯 살 난 히데요리를 무릎에 앉힌 마에다가 상석에 앉아 아래를 내려다보며 근엄
한 표정으로 조선에서 돌아온 장수들에게 치하(致賀)의 말과 동시에 하명(下命)을 전한다.


「여러 제장(諸將)들.. 무사히 철군하신 것을 감축感祝)드리오. 그러나 여러분들은 모두 이곳에
당분간 머물며, 철군의 함선이 나고야(名古屋)로 귀항(歸港;배가 떠난 항구로 다시돌아옴)을 하
실 때는 한 척씩 별도(別途)로 시간의 차이를 두고 움직일 것을 히데요리님을 대신해 명(命)하
오. 그리고 함께 온 조선의 도공(陶工)들은 이곳 대마도에 그들의 가마(窯)를 지어주고 정착을
시키라는 히데요시님의 유훈(遺訓)이외다.」   


조선에서 죽음의 고비를 넘기며 철군을 하여 겨우 이곳에 당도한 왜장들의 얼굴에 잠시 분노의
표정이 스쳐 지나갔다. 지금 마에다가 하는 말은 분명 자신들이 한꺼번에 본토로 돌아간다면 조
선 출병의 공적을 내세워, 도요토미의 사후의 불안한 정세를 틈타 소란이라도 피우지나 않을까
염려한 말이 아닌가? 그것도 자신들과의 진중한 협의에 의한 타협이 아니라 어린 히데요리를 무
릎위에 앉히고 마치 가신들을 다루듯 명령을 한 것이다.
붉으락 푸르락 표정이 변하는 장수들을 지켜보고 있던 도주(島主) 요시도시가 이같은 분위기를
바꾸려 큰소리로 입을 열었다.


「마에다(前田)님의 고충이 담긴 말씀이라 이해합니다. 도공(陶工)들의 처리는 소관이 잘 알아
서 할 것이니 염려 마십시오. 자 자.. 제가 여러분들을 위해 술과 음식을 준비했으니 오늘은
아무 생각마시고 음식을 들며 철군의 피로를 풀도록 하십시오.」


그들이 나누고 있는 대화를 시마쓰의 등 뒤에 서서 듣고 있던 명(明)이 오히려 다급해 졌다.
저들이 명분(名分)을 내걸고 떠드는 말들이야 오로지 누가 먼저 힘을 발휘하는가 하는 저희들
끼리의 주도권 싸움일 뿐이다.
그러나 자신에게는 일본 본토의 상륙이 지상과제인 것이었다. 그런데 도공들을 이곳에 정착 시
킨다면 자신도 도공들과 함께 이곳에 남아야 하는 형편이 아닌가!!
답답한 마음을 가눌 길 없어 슬며시 고개를 들어 좌중을 살피던 명(明)의 시선이 대마도주 요시
도시와 마주쳤다.
그 순간 요시도시가 고개를 끄득이며 장내의 모두를 바라보고 빙긋 웃었다. 마에다(前田)의 말
에 무겁게 변한 이 연회의 자리에 분위기를 바꿀 여흥거리가 생겼다는 듯 회심의 미소를 머금은
것이다. 


「여러분.. 지금 이장소에 특이한 인물이 자리해 있습니다. 그의 무예가 탐이나 시마쓰(島津)장
군이 곁에두고 있는 조선의 청년입니다. 여흥도 돋굴 겸 우리 모두 그의 특출한 무예를 견학해
봄이 어떨런지..?」


서로 자신의 입지를 다지기 위한 기싸움으로 얼룩진 연회의 자리에 흥도 되살리고 시마쓰(島津)
가 굳이 조선의 청년을 측근으로 두어 신변의 안전을 도모하려는 이 난국을 비웃기라도 하듯 한
마디를 던진 것이다.


「오호.. 생각치 못한 손님이로고. 조선의 청년이라..! 얼마나 뛰어난 기량을 가진 청년이기에
시마쓰(島津)님이 욕심을 내어 거두셨는가? 내 휘하에 다카다(高田)라는 월도(月刀)의 명인이
있다. 히데요리님 앞에서 그와 한번 겨루어 보겠는가?」


젊은 시절부터 무예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났던 마에다 토시이에(前田利家)였다. 그 옛날 이누
찌요로 불리던 그 시절, 칼부림을 벌이다 자신의 가장 친한 동료 쥬아미(十阿彌)를 베고 어린각
시 마츠를 등에 업은 채 낭인의 신세가 되기도 한 그가 아니던가..!
무슨 이유로 이 조선의 청년을 시마쓰(島津)가 굳이 경호무사로 삼았는가? 그런 마에다(前田)의
눈동자 속에는 명(明)의 정체를 살피려는 호기심이 가득했다.


* * * * * * * * * *


명(明)이 시마쓰(島津)의 기색을 살폈다. 아무리 상석에 앉아 내려다 보고있는 토시이에의 명령
이라 할지라도 시마쓰(島津)의 허락이 떨어지지 않는다면 한발도 움직이지 않는다는 무언의 태
도(態度)였다.
그 순간 시마쓰(島津)의 표정도 굳어져 있었다. 그러나 피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당당하게 임해
야 할 이 자리.. 명(明)을 그들 앞에 내세워 이 뛰어난 적국(敵國)의 인물을 측근으로 삼은 자
신의 도량(度量)을 자랑하고도 싶었다. 그러나 월도(月刀)의 명인(名人)이라는 무사 다카다(高
田)의 재주를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시마쓰(島津)로서는 걱정이 앞설 수 밖에 없었다. 그런 시마
쓰(島津)의 마음을 짐작한 명(明)이 고개를 돌려 슬며시 미소를 지었다. 명(明)의 표정을 살핀
시마쓰(島津)가 어렵게 입을 연다.


「으음.. 마에다(前田)님의 부탁이다. 겨루어 보겠느냐?」


명(明)은 시마쓰(島津)를 향해 말없이 고개를 숙이고 뚜벅뚜벅 걸어나가 연회장의 한 가운데에
자리를 잡고 왼손에 쥔 지팡이로 바닥을 짚으며 우뚝 섰다. 그런 명(明)에게 마에다(前田)가 한
번 더 다짐을 했다.


「그의 월도(月刀)에는 눈이 없다. 그래도 겨루어 보겠느냐?」


목숨을 건 대결이라는 말.. 명(明)의 얼굴에 잔잔한 미소가 떠오르며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오오.. 대단한 용기(勇氣), 여봐라.. 다카다(高田)를 들라하라!!」


 * * * * * * * * * *


빈틈이 보이지 않는다.
손에 쥔 긴 창끝의 반월도(半月刀)를 비스듬이 아래로 향하고 마주선 다카다(高田)란 무사의
자세는 조그만 허점도 발견할 수가 없다. 과연 토시이에가 자랑할 만한 무예의 달인이었다.


「다카다(高田)라 하오. 진검(眞劍)승부에는 양보가 없소이다. 덤비시오!」


스르르 오른발을 앞으로 한발 내딛으며 그림자처럼 다가드는 다카다(高田)의 앞에 대치해 있는
명(明)은 왼손으로 바닥을 짚고있던 지팡이를 오른손에 옮겨 잡을 뿐 미동도 없다.
일각(一刻;약 15분 정도의 시간).. 이각..
서로가 움직임이 없이 그렇게 대치를 한 시각이 벌써 한참의 시간이 지나자 비무(比武)를 위해
마주하고 있는 두 사람보다 오히려 구경꾼들이 긴장을 해 숨소리조차 멈추고 있었다.
그 정적속에서 툭.. 툭.. 다카다(高田)의 이마에서 흐른 땀방울이 바닥을 울리는 소리가 마치
천둥소리처럼 들린다.
명(明)의 오른손에 들려진 지팡이가 꿈틀 움직였다. 그 순간..


「야앗.. 간다!!」


드디어 정적을 깨고 다카다(高田)의 월도(月刀)가 바람을 갈랐다. 그 짧은 순간 지팡이의 흔들
림 속에서 빈틈을 발견한 다카다(高田)가 명(明)의 왼쪽 무릎 아래로 부터 오른쪽 어깨를 향하
여 비스듬이 그어 올린 것이다.


「엇.. 아아앗..!!」


연화장에서 숨죽이고 바라보던 모든 사람들의 입에서 비명이 터졌다.
긴 정적(靜寂)속 단 일합(一合)의 마주침에서 명(明)의 몸뚱이가 반으로 갈라지며 선혈이 뿜어
져 나오는 광경을 목도(目睹)한 것이다.


- 탁.. 휘잉.. 퍽..!!
- 쿵.. 털썩..!!


「어어어.. 저.. 저.. 저 놈이...??」


다카다(高田)의 손에서 떠난 반월도가 허공을 날아 연회장 입구의 기둥에 깊이 박히고, 피를 튀
기며 쓰러지듯 보였던 명(明)의 모습은 환영(幻影)이었다. 오히려 바닥에 넘어져 있는 인물은
명(明)이 아닌 다카다(高田)였던 것이다.


「으으으.. 강하다. 틈을 보인 순간이 유인이었구나. 내가 졌소. 목을 치시오!!」


「승패(勝敗)는 병가지상사(兵家之常事).. 그대의 월도(月刀)또한 가공할 위력이었소이다.」         


다가드는 월도(月刀)를 몸을 비틀어 흘려보낸 명(明)은 죽장(竹杖)속의 검은 뽑지도 않은 채
그 순간 중심이 무너져 빈틈을 보인 다카다(高田)의 단전을 지팡이로 번개같이 찌르고 한발 뒤
로 물러서며 호흡조차도 흐트러지지 않은 표정으로 시마쓰(島津)를 향해 가볍게 고개를 숙인 후
뒤돌아 보지도 않고 연회장 밖으로 천천히 걸어나갔다.


 * * * * * * * * * * 


비무(比武)를 끝낸 후 씁쓸한 마음을 달랠 길 없어 연회장을 빠져나온 명(明)은 후원의 정원을
거닐며 잘 가꾸어진 연못의 물속에 노닐고 있는 붉은 잉어들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겨들었다.


「마음대로들 헤엄쳐 돌아다니구나. 연(蓮)누님은 이런 자유조차 박탈당한 채 어느 구석진 장소
에 붙들려 있는건지..!」


명(明)은 조선을 떠날 때 말없이 바라만 보고 있던 혜암스님의 눈빛을 떠 올리며, 어느 날 복천
암의 선방(禪房)에서 연(蓮)과 자신을 앞에 두고 조용히 이르고 있던 혜암스님의 말을 되내이고
있었다.


「연(蓮)아.. 내가 미처 달려가지 못해 너의 부모는 구하지를 못했구나..! 허나 다행히 그 자리
에 계시던 어른은 놈들의 눈을 피해 피신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어른도 다가올 운명을 예
측해 몸을 숨기고 있으리라. 이 전란이 끝나면 조종에 바른 말을 고하는 모든 중신들은 삭탈관
직을 당하여 힘을 쓰지 못할 천운(天運)이다. 해서, 그 당시 어른께서 내게 부탁한 지극한 당부
의 말이 있었다. 너의 몸에는 나라의 명운(命運)이 걸린 물건이 숨겨져 있다고 말씀을 하셨다.
연(蓮)아.. 너는 그 말을 명심하여 스스로 자신을 아끼고 그 중요한 물건을 목숨이 다하도록 간
수해야 할 것이니라.」


그 연(蓮)이 왜군들에게 납치를 당하고, 명(明)이 일본 땅을 밟으려 할 그때, 아무 말없이 입을
다물고 계시던 혜암스님의 눈빛에서 스님이 하고자 하는 말을 명(明)은 느꼈다.


(어서가거라. 가서 꼭 연(蓮)을 구해 조선으로 돌아 오너라.)


그러나 명(明)의 마음은 혜암스님의 눈빛보다 더 절실했다. 어린 명(明)이 복천암에서 무예를
단련하며 지낸 하루하루..! 명(明)의 슬픈 가슴을 포근히 감싸주던 연(蓮)은 명(明)에게 어머니
며 누님이었다. 그리고 점점 자라 이제 명(明)에게는 떨아질 수 없는 생명이 된 연(蓮)이었다.
때문에 혜암스님의 그 절실한 눈빛이 아니더라도 자신의 생명을 찾아 거친 바다를 건너지 않을
수가 없는 명(明)의 운명이었다.


(그래..! 이 대마도에서 나고야를 향하는 귀항선을 기필코 타야만 한다. 혜암사부님의 염원이
아니더라도 나 스스로 연(蓮)누님을 찾지 않으면 안된다. 허나 도공들이 여기에 남는다면??)


이런저런 궁리에 젖어있던 명(明)의 귀에 갑자기 여인의 날카로운 호통소리가 울렸다.


「왠 놈들이냐?」
 
번쩍 정신을 차린 명(明)의 눈 앞에 벌어진 광경..!
연못 건너 저쪽 정자위에서 해괴(駭怪)한 다툼이 벌어지고 있었다.
그곳에는 한 여인이 후원을 쨍.. 울리듯 날카로운 고함을 지르고 있었고 그 여인의 앞을 검은
복면을 한 무사들.. 아니 무사라기 보다 온몸을 검은 옷으로 두르고 얼굴을 가린 세명의 닌자
(忍者)들이 길을 막고 있었다.
그들은 두 자 길이의 소도(小刀)와 낫처럼 생긴 무기들을 손에 쥐고 스스스스.. 그림자처럼 여
인의 앞에 나타난 것이다.


「이놈들.. 내가 누군 줄 아느냐? 나는 도주(島主) 요시도시의 안사람이다. 어서 물러서라!」
 
그들의 모습을 본 여인이 손을 가슴 앞에 들어 손칼(手刀)의 자세로 방어의 태세를 취하며 호통
을 쳤다.


「예.. 알고 있습니다. 아씨 마님을 모시라는 분부를 받았습니다.」


「뭐라.. 나를 모신다..? 혹시.. 네놈들은..? 이가(伊賀)냐 고가(甲賀)냐?」


「고가(甲賀)입니다. 마님을 극비리 우도성으로 모시라 주군께서 명(命) 하셨습니다.」


「고가(甲賀)라..! 그렇다면 아버님이로구나. 왜..? 무엇 때문이냐?」


「저희들은 이유를 모릅니다. 그저 은밀히 모시라는 말씀뿐이었습니다.」           


이들이 아씨마님이라 부르는 여인의 아버지, 즉 대마도주 요시도시의 장인은 바로 고니시 유키
나가(小西行長)였다. 그리고 이들은 고니시(小西)가 부리고 있던 고가(甲賀)마을의 닌자(忍者)
들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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