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협야설) 붉은 달(月)을 베다. 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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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白雲俠(낭만백작)著/ 붉은 달(月)을 베다 **
제 3 회 거친 바다를 건너다 1
한양 아담한 초옥의 내실에 잡인을 금하고 은밀히 마주해 있는 설아(雪娥)와 윤충(尹忠)을 앞에
두고 병풍뒤에 모습을 숨기고 있는 사람이 물었다.
「어찌 되었느냐?」
「어른.. 흔적도 없이 사라져 도저히 찾을 방법이 없었습니다.」
고개를 푹 숙이며 대답을 하는 두사람을 향해 병풍뒤에 있는 사람의 입에서 난감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좀더 소상히 말해 보아라.」
「예.. 어른, 저희들 둘은 장군의 출진을 두고 볼 수 없어 장군을 도우려 함선에 올랐습니다.
그리고 그 비록은 옥함에 넣어, 아무래도 여자의 몸인 영경(瑛璟)이 의심없이 왜군들을 피해
한양으로 빠져나갈 수 있을 듯 해 전투가 시작되기 직전에 출발을 시켰습니다.」
「그래서..?」
궁금해 견딜 수 없다는 듯 다그치는 음성이다.
「문경세재의 숲속에 영경(瑛璟)이 난자(亂刺)를 당한 채 버려져 있었습니다. 급히 영경(瑛璟)
의 옷 속을 뒤졌으나 그 어디에도 그 옥함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안된다. 그 비록이 왜군의 손에 넘어가면 조선의 안위를 지켜낼 수 없다. 찾아라!! 꼭 찾아야
한다. 헌원비록(獻元秘錄)이 혹시 저놈들의 손에 넘어 갔다면 너희 두사람이 왜국(倭國)으로 건
너 가서라도 찾아와야만 한다.」
병풍뒤에서 비장하게 부르짖는 절규가 흘러나왔다.
* * * * * * * * * *
해안의 언덩에 숨어 철군의 행렬을 살피며 무엇인가를 기다리고 있던 명(明)이 눈에 한 무리 왜
군의 움직임이 들어왔다.
포박을 당한 채 길게 열을 이루어 넘어지고 자빠지며 행진하는 한무리 조선인들..! 전쟁중에 포
로가 되어 끌려가는 도공(陶工)들과 그들을 인솔하는 왜군들 이었다.
「흠.. 이제야 나타나는구나.」
산길을 한 걸음에 날듯 내닫아 그들에게 다가선 명(明)이 인솔하는 왜군의 앞을 막아섰다.
「잠깐만 기다리시오. 나는 이 도공(陶工)들을 무사히 대마도(大馬島)까지 인솔하라는 고니시
(小西)장군의 명(命)을 받은 명(明)이라 하오.」
백옥같은 하얀 도포에 머리에는 방립(方笠;방갓)을 쓰고 넉자 길이의 죽장(竹杖;대나무 지팡이)
을 땅에 짚은 미장부가 내미는 손에는 목패(木牌)가 하나 들려있다. 그 목패(木牌)의 앞면에는
뚜렷이 ㅡ 영(令) ㅡ 자가 새겨져 있고, 뒷면에는 ㅡ 小西行長 ㅡ (소서행장; 고니시 유키나가)
이라 세겨진 명판이 또렸하게 보였다.
「시마쓰 요시히로(島津義弘)장군의 철군선(撤軍船)에 도공들과 함께 승선해 이들을 잘 보호하
여 무사히 대마도까지 호송을 한 후, 대마도주(大馬島主) 소오(宗)님에게 차질없이 인계를 하라
는 특명이오!!」
그들 중 수장인 듯한 왜군에게 당당한 표정으로 말한 명(明)은 대답은 들을 필요도 없다는 듯
도공(陶工)들의 앞으로 한발 나서서 그들을 인솔하기 시작했다. 이곳까지 도공을 인솔하던 왜병
들은 명(明)의 손에 들린 목패(木牌)와 그의 의젓한 위엄에 아무런 의심 없이 명(明)의 뒤를 따
라 움직였다.
지팡이를 땅에 짚으며 그들보다 한발 앞서 휘적휘적 걷는 명(明)의 손에 들린 그 죽장(竹杖)속
에는 석자 장검(長劍)이 숨겨져 있었다.
* * * * * * * * * *
천신만고 끝에 노량 앞바다를 벗어나 절영도(切影島)의 해안을 빠져 나가는 시마쓰 요시히로
(島津義弘)의 군선(軍船) 갑판위에는 왜군(倭軍) 수병(水兵)들이 먼 바다를 뚫어지게 노려보고
있고 그들의 앞에는 조선 도공(陶工)들이 일렬로 도열해 있다.
혹시나 조선의 추격선이 포(砲)를 쏘거나 화살을 날릴 경우에 왜군들 보다 먼저 도공들이 희생
을 당하도록 조치해 쉬 공격을 하지 못하도록 세워둔 방어막인 것이다.
시마쓰 요시히로(島津義弘)는 도공들을 앞세워 조선 수군들의 공격을 방해하여 무사히 해협(海
峽)을 빠져 나가려는 술책이었다.
무사히 배위에 오른 명(明)은 그런 안타까움에 처해있는 도공들을 바라보며 지그시 입술을 깨문
다. 그리고 눈을 들어 봉래산의 기슭에 서있는 복천암(福泉庵)을 그윽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각오를 다졌다.
「노수(櫓手;노를 젓는 병사)은 빨리 노를 저어라.. 어서 이 해협을 빠져나가야 한다.」
높은 망루에 올라서서 바다를 살피던 시마쓰 요시히로(島津義弘)가 배의 갑판 아래를 내려다
보며 큰 소리로 고함을 질렀다.
그는 저 멀리서 빠른 속도로 추격해오는 조선수군의 전함(戰艦)을 발견한 것이었다.
재빨리 다가온 조선(朝鮮)의 판옥선은 일본 수군의 전함이 폭이 좁은 이 해협(海峽)을 빠져나
가기 전에 격침을 시키려 함포를 발사하기 시작했다.
「아앗.. 선수(船首)를 좌로..! 저들의 사정권을 벗어나야 한다!!」
시마쓰 요시히로(島津義弘)의 입에서 다급한 목소리가 터졌다.
- 펑.. 퍼엉..!
- 슉.. 슉.. 슈욱..!
노수(櫓手)들을 독려해 속력을 올리는 왜함(倭艦)을 향해 조선의 판옥선이 함포를 발사하며 빠
른 속도로 다가왔다. 그리고 가까이 접근한 조선수군의 궁수들은 왜함을 향해 화살을 쏘아대고
있었다.
일본 수군(水軍)을 향해 수없이 날아드는 화살들은 왜병들을 쓰러뜨리기 전에 그 앞을 막고있는
조선의 도공들에게 날아들었다.
그 무자비하게 날아들던 화살중 하나가 전함의 망루에서 지휘를 하고 있는 시마쓰 요시히로(島
津義弘)의 얼굴로 향했다.
화살이 시마쓰(島津)의 안면을 관통하려는 순간, 휘익.. 갑판의 위를 향해 날아오르는 흰 그림
자.. 명(明)이었다.
「장군.. 피하시오!」
- 쉭.. 그으응.. 탁..!
날카로운 파공음을 내며 날아든 화살이 명의 지팡이에 의해 튕겨져 나가 망루의 기둥이 깊이 박
히며 꼬리를 부르르 떤다.
몸을 날려 시마쓰(島津)의 앞을 막아서며 날아드는 화살을 죽장(竹杖)로 튕겨낸 명(明)은 지체
없이 뱃전으로 날렸다. 그곳에 줄지어 도열해 왜병의 방패막이가 되어있는 도공들을 보호하려
그들의 한 가운데로 뛰어든 것이다.
- 휙.. 휘익.. 탁.. 탁.. 탁..!
- 탁.. 탁.. 후두둑.. 턱.. 턱.. 턱..!
선현(船舷)으로 날아간 명(明)은 비오듯 솟아지는 화살을 손에 든 지팡이로 튕겨내며 혼란에 빠
진 도공들을 살폈다.
명(明)의 죽장(竹杖)에 의해 튕겨난 화살이 우수수 바다로 떨어져 내리는 그 순간 왜군의 전함
은 시마쓰(島津)의 독려에 쏜살같이 파도를 가르며 조선수군의 사정거리를 벗어났다.
* * * * * * * * * *
시마쓰 요시히로(島津義弘)의 입가에 미소가 흐른다.
「미지후사(通總).. 저 청년을 이리로 데려오라.」
시마쓰(島津)는 명(明) 덕분에 화살을 피해 다행히 목숨을 건진 고마움을 직접 사례를 하고 싶
어 부관(副官) 미지후사(通總)에게 명령을 했다.
「고맙다. 본관의 목숨을 조선인인 그대가 구해 주었구나.」
「과찬입니다. 장군..! 조선 도공들이 동족인 조선의 수군들이 쏜 화살에 억울하게 목숨을 잃을
까 염려하여 몸을 날리는 순간에 장군의 얼굴로 날아드는 화살을 발견했을 뿐입니다.」
「그 절명의 순간 나를 구하려 뛰어든 사람은 그대 한사람이다. 만약 그 화살을 쳐 내지 않았다
면 본관의 목숨이 살아 남았겠느냐?」
「하하하.. 누구든 그 자리에 가까이 있었다면 소생과 꼭같이 행동했을 것입니다. 소생에게는
조선도공의 목숨이나 장군의 목숨 모두 중요하지요.」
「허허허.. 그런가? 알았다. 그대가 지키려한 도공들은 모두 선실에서 안전하게 머물도록 할테
니 안심하고 그대는 본관을 지근에서 경호토록 하라.」
철군을 하고있는 지금보다 본국에 당도한 후가 더욱 혼란하고 어지러울 터..
왜장(倭將) 시마쓰는 명(明)이 자신의 목숨을 돌보지 않고 뱃전으로 달려가 조선의 도공들을 구
하려는 의협심과 명(明)이 시전한 무예를 목격하고는 그 협기(俠氣)를 높이 사, 명(明)을 자신
의 곁에 머물게 해 호위를 부탁하려 했다.
명(明)은 스스로 왜장(倭將)과 가까워 질 수 있는 기회를 절치부심 노려왔던 일. 어찌 이 호기
(好機)를 모른 척 하겠는가?
「장군은 측근의 많은 장수를 두고 어찌 조선사람인 소생을 곁에 두시려 합니까?」
「하하하.. 고니시장군도 그대를 인정을 해 본국까지 도공의 인솔을 맡겼다. 나 또한 그대의 협
심(俠心)을 보았다. 아니.. 그보다 그대는 본관의 목숨을 구한 은인이 아닌가?」
「알겠습니다. 장군..!」
시마쓰(島津)의 부탁을 수락한 명(明)은 이 순간 부터 장군의 목숨을 지키는 가장 가까운 측근
이 되어 자신의 입지를 다진 것이다.
「장군.. 이배에는 조선에서 끌려온 많은 도공들이 타고 있습니다. 혹시 도공들 외에 또 다른
조선의 포로들을 없습니까?」
혹시나 하여 슬며시 물어보는 명(明)에게 시마쓰(島津)는 자랑스럽게 대답을 했다.
「우리의 뒤를 따르는 함선에는 한 무리의 조선여인들이 타고 있다. 그러나 그중 예쁘고 재색을
갖춘 여인들 중 몇 명은 이 배의 선실에 감금해두고 나머지는 먼저 본국으로 보냈다. 크흐흐..
저 배에 탄 여인들은 겨우 부엌일이나 거들 인물들 뿐이지.」
그 말을 들은 명(明)의 눈동자에는 기광(奇光) 번쩍 흐른다.
「그 여인들은 전쟁에 노고(勞苦) 시달린 장수들을 위로하기 위해 남겨둔 전리품(戰利品)일 뿐
이다. 허허.. 관심이 있느냐?」
「장군.. 그 여인들도 이곳에 잡혀오기 전에는 조선의 귀한 처자(處子)와 아낙들이었습니다.
비록 포로가 된 처지라 하나 그들을 보호해야 할 장군께서 소생을 앞에 두고 어찌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네 말이 옳다. 그러나 이 또한 어쩔 수 없는 전쟁의 비극이 아니겠는가!!」
* * * * * * * * * *
긴 항해.. 파도가 높은 바닷길에도 어느듯 어둠이 내렸다.
이제 철군선에는 한밤의 정적이 감돌며 항해에 지친 병사들은 모두 선실에 있는 침상(寢牀)을
찾아 깊은잠에 빠져들었다.
그 어두움 속에서 발소리를 죽여가며 한발 한발 그림자처럼 움직여 선미(船尾)의 한켠 깊은 곳
에 있는 옥사(獄舍)로 다가가는 한 사람.. 명(明)이다.
점점 옥사에 가까이 다가갈수록 또렷이 들려오는 신음소리.. 이를 악물고 고통을 참는 처참한
소리가 귓속에 들려온다.
그 옥사에는 잡혀온 조선 여인들을 상대로 음밀히 음행이 이루어 지고 있었다.
「끄으윽.. 아악.. 제.. 제발....」
명(明)의 눈에 들어온 옥사의 광경.. 과히 눈뜨고는 보지 못할 지옥이었다.
옥사의 천정을 가로지르는 대들보에 걸쳐진 밧줄에 두 손이 묶여, 앉지도 못하고 겨우 두 다리
로 버티고 서있는 여인..
그 바닥에는 옷고름이 풀어 헤쳐진 서너 명의 여인들이 기진해 뒹굴고 있었다.
힘겹게 다리를 바닥에 딛고 겨우 지탱하고 있는 그 여인의 치마는 이미 몸에서 사라져 버렸고
고쟁이는 찢겨져 발아래에 흘러내려, 발가벗겨진 아랫도리는 그 한 가운데에 흔들리고 있는 까
만 음모만 을시년스럽게 드러나 보였다.
그런 그녀의 앞에 서 있는 왜장의 솥뚜껑같은 한손은 여인의 저고리를 들치고 뽀요얀 젖가슴을
손바닥 안에 넣어 주무르며 다른 한손은 가랑이 사이를 파고들어 바들바들 떨고 있는 음문을 열
고 깊은 동굴 속을 농락했다.
여인의 벌거벗은 하체는 그 짐승같은 손길을 피하기 위해 몸부림을 친다.
- 철썩..
「아아악...」
여인의 뺨에서 불꽂이 튀며 고통의 비명이 터졌다.
「이년.. 반항않고 고이 내말을 들었으면 네년도 나도 모두 좋았을 것이 아니냐. 다리를 더 벌
리지 못할까?」
극도의 아픔과 공포를 참지 못한 여인의 다리가 스르르 벌어졌다. 그 열린 다리의 아래로 선혈
이 뚝.. 뚝.. 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