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뇌학원 1부 굴욕의 하루(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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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뇌학원 1부 굴욕의 하루(1)
"헥- 헥- 헥- 헥-"
칸자키 타쿠로는 거칠게 숨을 헐떡거리며 교문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 교복은 출렁거리는 비계살에 찟어버릴 것만 같았고, 쪼갠 수박물처럼 줄줄 흘린 땀으로 푹 젖어 있었다. 어깨, 허리, 무릅 할것없이 전신의 관절이 삐걱거리며 아팟고, 심장이 터질 것만 같았다. 그래도 타쿠로는 근육에 비해 비계가 너무 많은 몸을 힘겹게 뒤뚱뒤뚱 움직이며 달렷다. 하지만 그 속도는 100미터를 15초에 달리기도 힘들 만큼 느려터졌다.
‘큰일이다. 심야 애니를 보느라 늦잠을 자버렸어!’
타쿠로는 심각한 오타쿠 폐인이었다. 어제 저녁에도 심야방송 애니를 전부 다 보고, 인터넷으로 팬 사이트를 돌아다니며 찌질이 짓을 하고, 야겜을 하면서 딸딸이를 몇번 치다보니 늦잠을 자게 된 것이다. 그나마 등교시간이 끝나기 전에 일어나기라도 한 것이 대견한 일이었다. 보통은 아예 1,2교시는 넘겨버리기 일수였고 점심시간을 넘겨서 등교하는 경우도 잦았다.
그는 오타쿠답게 어지간히 고집불통에 다른 사람의 말을 안 듣는 성격이었지만 담임 선생이 거의 협박하듯이 제 시간에 나오지 않으면 이번에는 절대 가만히 두지 않겠다고 말하는 데서야 어쩔수가 없었다.
"헤엑- 헤엑- 헤엑- 헤엑-"
타쿠로는 겨우 멀리 교문이 보이는 곳까지 뛰어왔다. 이만하면 가까스로 등교시간에 맞출 수는 있을 것 같았다. 타쿠로는 있는 힘 없는 힘을 다 끌어내서 걸레를 쥐어짜듯이 막판 스퍼트를 위한 힘을 냈다. 그리고 좌우도 살피지 않고 무작정 뛰었다.
쿠당!
"꺅!"
"우왁!"
그런데 하필이면 그때 타쿠로는 마침 그 근처를 지나가던 여학생과 부딧쳐서 쓰러져 버렸다. 덩치?크지만 운동신경은 형편 없는 탓이었다. 물론 타쿠로의 육중한 몸에 부딧친 여학생도 엉덩방아를 찧으며 쓰러졌다.
좌르르륵-
"앗! 내 보물들이!"
넘어질때의 충격으로 타쿠로의 가방이 열리면서 안에 가득 들어있던 아이템들이 우르르 쏟아져나왔다. 미소녀 피규어가 사방에 흩어졌다. 모두 타쿠로가 늘 가지고 다니는 보물들이었다. 그는 평소의 굼뜬 동작은 어떻게 되었냐는 듯이 허둥지둥 그것들을 주워모았다.
"뭐하는 짓이야? 야!"
정신없이 피규어를 주워모으던 타쿠로의 귀속으로 날카롭게 화내는 소녀의 목소리가 찌르고 들어왔다. 멍 하니 머리를 돌려 올려다본 타쿠로는 그와 부딧쳐 쓰러졌던 소녀가 새빨갛게 화가 난 얼굴로 자신을 내려다보는 것을 발견하고 깜짝 놀랐다.
‘악! 큰일이다!’
게다가 그녀는 타쿠로와 같은 반의 여자아이였다. 이름은 무라사키 카나, 굉장한 미소녀였지만 동시에 그 외모에 맞먹는 오만한 태도과 무도한 행동으로 학교 전체에 악명을 떨치는 소녀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이 학교를 설립한 무라사키 재단 이사장의 손녀였기 때문에 아무도 그녀를 가로막지 못하고 선생이나 학생이나 거의 모두 떠받들기에 여념이 없었다.
학교 전체에서 대표적인 인간 쓰레기 취급을 받는 타쿠로와는 하늘과 땅 차이라고 할수있는 상대였다. 타쿠로는 이제까지 감히 그녀와 말을 한 적도 없었다.
"이 돼지같은게 먼저 뛰어와서 부딧친 주제에…. 이 인간 쓰레기가!"
특히 늘 공주 취급을 받는데 익숙해져 있던 그녀는 엉덩방아를 찧은 그녀를 완전히 무시하고 피규어만 챙기는 타쿠로의 오타쿠적 태도에 더욱 열받은 것 같았다. 카나는 구두굽으로 아직도 피규어를 부여잡고 있는 타쿠로의 푸둥푸둥한 손을 짓밟았다.
"으아악!"
타쿠로는 눈물을 찔끔 흘리며 손을 움켜쥐었다. 카나는 그 비굴한 모습을 보고 통쾌하다는 듯이 가학적인 미소를 지으며 더욱 무자비하게 구두굽을 내리찍었다. 그리고 그녀의 구둣발 아래에서 타쿠로의 소중한 피규어들은 산산조각으로 부서진 플라스틱 조각이 되버렸다.
"이, 이게 무슨 짓이야! 내 사쿠라 쨩이! 물어내!"
타쿠로는 손이 아픈 것보다 피규어가 망가진 것에 더 화가 났다. 그는 벌떡 일어나 카나의 멱살을 잡으려 들었다. 카나는 한순간 겁을 집어먹으며 물러섯다. 아무리 타쿠로가 운동신경이 엉망인 돼지 오타쿠라지만 완력으로 가냘픈 미소녀에게 질 정도는 아니었으니까 말이다. 그렇지만 타쿠로는 결국 그녀에게 손가락 하나 까딱할수 없었다. 사방에서 날아온 다른 남학생들의 손이 그를 꽉 붙들었기 때문이다.
"야이! 변태 안여돼 새끼! 카나 님께 감히 무슨 짓이야!"
"너 같은게 어떤 분에게 손대려고 하는 거야?"
대여섯명의 남학생이 타쿠로를 꿈쩍도 못하게 꽉 붙들고는 사방에서 린치를 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카나를 추종하는 남학생 클럽으로서, 일명 카나 친위대라고 불리는 놈들이었다. 타쿠로는 순식간에 떡이 되도록 두들겨 맞았다. 안경은 깨지고 코피가 줄줄 쏟아지고, 온 몸이 엉망진창이 되었다.
"으으으으윽."
친위대원들은 타쿠로를 형틀에 묶어둔 것처럼 받치고 섯다. 카나는 그에게 다가와 뺨을 몇차례 갈겼다.
철썩! 철썩! 철썩! 철썩!
지방으로 탱탱한 양쪽 뺨은 경쾌한 소리를 내고 벌겋게 손자국이 남아 부어올랏다. 카나는 친위대원 중 하나에게 손수건을 받아 손바닥을 닦았다. 그리고 잔인하게 미소를 지으며 구두발로 피규어를 짓밟아 으스러뜨렸다. 마법소녀 피규어 하나가 그녀의 구둣발 아래에서 무참하게 뭉개지자 타쿠로는 울부짓으며 소리쳤다.
"사, 사쿠라쨩을 밟지마! 제발!"
"이딴게 너같은 놈한테는 그렇게 소중한거니? 후후후후후-!"
빠각-!
늘 몸에 지니고 다니고 들여다보면서 마음의 위안을 얻던 피규어의 목이 꺽어지자 타쿠로는 거의 심장이 터질 것만 같았다.
"아, 안돼…. 난 어떻게 해도 좋으니까 제발 그건 돌려줘! 소중한 거란 말이야."
"호? 그래?"
카나는 피규어를 하나 골라 들고서는 타쿠로의 얼굴 앞에 들이댓다. 타쿠로의 눈에 그 흙투성이가 되어 여기저기 망가진 피규어는 마치 마녀의 손에 붙잡힌 공주님처럼 보였다. 타쿠로는 절박한 표정으로 정신없이 손을 뻗어 피규어를 되찾으려 했지만 건장한 친위대의 힘을 당해낼수는 없었다.
"그럼 한번 여기에다 키스해볼수 있니?"
카나는 장난스럽게 피규어를 좌우로 흔들면서 인형극을 하듯이 말했다.
"‘왕자니임~ 구해주세요오~ 풀려나려면 당신의 키스가 필요해요오~’"
사방에서 친위대원들의 코웃음 소리가 들렸다. 타쿠로는 멍한 눈동자로 피규어를 바라보았다. 물론 보통 때라면 아무리 그라도 이런 어이없는 요구를 받아들이지는 않았을 것이지만. 평소 쌓아둔 망상 내공과 밤을 새버린 탓에 피곤한 두뇌와 소중한 것이 눈앞에 있는데 구할수 없는 절박한 마음. 그리고 카나의 뜻밖에도 잘 이루어진 성우연기(?)가 그의 마음속에 망상의 폭발을 일으켰다.
"구, 구해줄께. 사쿠라쨩."
타쿠로의 눈 앞에 피규어의 모델이 된 애니메이션의 미소녀 캐릭터가 현신해서 나타난 것 같은 환각이 나타났다. 그는 주저없이 피규어에 쭉 하고 정렬적으로 입을 맞추었다. 하지만 피둥피둥 살찌고 여드름 투성이에 도수 높은 안경을 낀 얼굴이 거친 메기 같은 입술로 침을 질질 흘리며 인형의 얼굴에 뽀뽀를 하는 광경은 그 짓을 시킨 카나도차도 상상을 못했을 만큼 추악했다.
"꺅!"
카나는 타쿠로의 몰골에 질겁을 하고 피규어를 내동댕이 치고 도망치듯이 물러섯다. 친위대들도 설마 정말로 할 줄이라고는 상상도 안했기 때문에 뭐라고 말을 잇지 못했다.
"이 변태새끼…. 저 지저분한 인형들을 몽땅 부숴버려!"
"예에!"
친위대원들은 즉시 그녀의 명령에 따라 타쿠로의 피규어들을 짓밟아 부수기 시작했다. 아직도 망상에 빠져있는 타쿠로의 눈에 그 광경은 사랑하는 미소녀 캐릭터들이 무참하게 능욕당하고 살해당하는 환각으로 비쳐졌다.
"아, 안돼에!"
타쿠로는 전력을 다해 친위대에게 달려들었지만 곧 얻어터지고 쓰러져버렸다. 잠시후 타쿠로의 피규어는 모두 남김없이 부서져 플라스틱 쓰레기 조각으로 변해있었다. 타쿠로는 멍한 눈으로 그 피규어의 잔해들을 바라보았다.
"이, 이 더러운 새끼."
카나는 그야말로 혐오스럽기 짝이 없다는 표정으로 타쿠로의 얼굴에 침을 탁 뱉어버렸다. 안경에 맞은 침은 타쿠로의 뺨으로 주르륵 흘러내렸다. 하지만 그때에도 그의 눈은 멍하니 망가진 피규어들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아. 재수없어. 아침부터 저런 놈하고 마주치다니."
"죄송합니다. 다음부터는 집 앞에서부터 모시겠습니다."
친위대들은 굽신굽신 거리며 카나를 모셧다. 가마가 있다면 가마라도 태울듯한 분위기로 교문으로 들어갔다. 잠시후 정신을 차린 타쿠로는 원래 모습을 알수 없을 정도로 망가진 피규어 조각들을 부여잡고 엉엉 울어댓다. 침과 콧물이 뒤섞여서 못생긴 얼굴이 더욱 꼴도 보기 싫게 되었다. 그 꼬락서니를 본 지나가던 다른 학생들은 오물이나 되는 것 마냥 피해가면서 누구도 타쿠로에게 가까이 다가오지 않았다. 그러다보니 그만 오늘도 등교 시간을 놓쳐버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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