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설 나향여협 (悖說 裸香女俠)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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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白雲俠 著/ 패설 나향여협 (悖說 裸香女俠) 16 **
제 16 장. 봉황(鳳凰), 백룡(白龍)을 만나다 1.
환중(喚重)의 입에서 천천히 흘러나오는 지난날의 이야기가 천정위의 수린(秀璘)에게도 똑똑히
들려왔다.
「후후.. 우연히 들린 그 객잔이 환중(喚重)도인에게는 유혹의 시작이었습니다. 사립을 눌러쓰
고 얼굴 아래를 흰 면포로 가려 정체를 숨긴 그 무림인은 나의 앞자리에 다가와 앉아 목소리를
낮추어 조그맣게 말했습니다.」
회한을 느낀다는 표정으로 그 무명(無明)의 사립인을 만나게 된 그날을 이야기 하고 있었다.
「그래.. 그 사람이 무어라 소근 거렸습니까..?」
「`청성의 명예를 회복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드리리까..? 하며 내 귀에 속삭였지요. 그 소리
를 듣자마자 나는 귀가 번쩍 뜨였지요. 그래서 마음을 다잡아 물었습니다.」
계속해서 환중(喚重)의 입에서는 지난날의 그 상황이 술술 흘러나오고 있었다.
* * * * * * * * * *
「명예라니 무슨 말이오..?」
「후후.. 명예지.. 당연히 청성의 명예지..!」
사립복면인의 밑도 끝도 없이 툭 던지는 말.. 환중(喚重)의 마음에는 호기심이 가득 생겼다.
「그래, 명예라 칩시다. 그 명예를 회복하는 방법은 무엇이오..?」
「흐흐흐.. 장진도..!」
장진도라면 지금 강호에 떠도는 그 소문속의 지도를 말하는 것이 아닌가..! 그 장진도가 명예
를 회복한다..?
그렇다면 이 사립복면인이 장진도를 소유하고 있단 말인가..?
「장진도가 어디에 있소이까..? 혹시 귀하의 수중에..?」
「후후후후.. 남해(南海)..!」
「남해라..! 보타암에 숨겨져 있단 말이오..?」
사립복면인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 사람이 그리도 어리석게 보이시오. 허허허.. 잘못 보셨소이다. 남해의 보련신니는 무림의
모두가 공인하는 선인(禪人)이외다. 그런 신니(神尼)를 들먹이며 이 사람에게 허언을 하고 접근
을 한 귀하의 진정한 의도나 밝히시오. 그렇지 않으면..!」
환중(喚重)은 이놈이 자신을 놀리는 것이라 생각이 들어 얼굴에 노기를 띠며 오른손을 가슴위로
천천히 올렸다.
다시 한번 실없는 말을 한다면 그냥 넘어가지 않겠다는 무언의 표현이었던 것이었다.
「내말이 거짓이라면 나에게 손을 쓰시겠다..? 허허허.. 그대의 장문사형인 환공도장(喚空道長)
의 어리석은 결정으로 청성이 봉문을 하지 않았던가..!」
순간 한마디 말이 사립인의 입에서 날카롭게 터져 나왔다.
「헉..! 귀하는 내가 누구인지 알고 계셨소..?」
「암.. 알고 말고..! 머리에 검은 두건을 쓰고 강호를 활보하는 도인이 청성외에 또 있는가..?
그리고 그대의 얼굴에 흘러내린 그 수염..! 당연히 환중(喚重)도인이 아니신가..? 내 그대를 알
고 있기에 그대가 청성의 명예를 회복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 주려는 것이지..!」
자신이 청성파의 환중(喚重)이라는 것을 알고 접근을 한 것 이라는 말이었다. 그러나 아무런 목
적이 없이 자신을 도우겠다는 말은 아닐 것..!
「그러나 하필이면 우리 청성파에 도움을 주시려는 것이오..? 귀하는 또 다른 방파와도 만나 그
들에게 도움을 주려 하셨소이까..?」
환중(喚重)도인은 사립복면인의 의도를 조금 더 살피려는 생각으로 물었다.
「어허.. 이 어리석은..! 이보시오 환중(喚重).. 일해낭중(一海浪仲) 천강(千剛)과 벌인 삼협
(三峽)에서의 일주야의 혈투..! 그 날의 결전에서 청성만이 패한 것이 아니고 구파일방 모두가
일해낭중 천강(千剛)의 일검에 패한 것이 아니오..? 그러나 귀파의 장문인은 오직 그 결전을
선동하였다 하여 스스로 봉문을 결정하지 않았소..?」
「맞습니다. 본문의 장문사형께서 괜한 선동을 하여 대결에 패한 것에 책임을 느끼고 봉문을
하였지요.」
「크흐흐.. 그 때 청성을 제외한 여타 문파들은 어떠했소이까..? 귀파에 의리를 지켜 봉문에
동참한 문파는 하나도 없이 오히려 귀파가 봉문을 한 그 시기를 틈타 더욱 자파의 세력을 키워
강호를 횡행하고 있지 않소이까..? 귀파 장문인의 어리석은 결정으로 봉문을 하여 강호의 대열
에 낙오되고 말았지요..!」
듣고 보니 하나도 틀림이 없는 말이었다.
장문인이 책임을 지고 봉문을 강호에 선포를 한 것이다. 그리 한다면 삼협(三峽)의 혈투에 함께
한 강호 문파에 대한 명분을 나타낼 수도 있으며 또한 적어도 몇몇 문파는 동참을 하던지 아니
면 말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당연히 만류를 할 것으로 짐작을 한 것이었다. 그러나 강호의 모든
문파는 청성을 비웃기라도 하는 듯 삼협(三峽)의 책임을 청성에게 모두 떠넘기고 돌아서 버린
것이었다.
「좋습니다. 귀하의 말을 따르기로 하지요, 그러나 청성으로 돌아가 장문인에게 말씀드리고 허
락을 득(得)해야 합니다.」
환중의 대답에 사립인의 입가에 냉소(冷笑)가 번졌다.
「푸흐흐..! 환중도인.. 답답하시구려. 능력도 없는 귀파의 장문인이 삼협의 대결을 결정할 때
나 귀파의 봉문을 결정할 때 언제 그대들과 의논한 적이 있소이까..? 오직 장문인 혼자의 독단
으로 결정을 하고 귀파의 제자들에게 시행을 강요했을 뿐이었지요..!」
그랬다.
장문사형이 모든 제자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혼자 결정을 한 후 강요한 일이 아닌가..! 그것 조
차도 오로지 장문인의 체면 때문에 시간의 여유도 없이 촉박하게 결정되어 이루어진 일이었다.
「그러니, 아무에게도 알리지 말고 환중도인 혼자 은밀히 움직여 무공비급을 손에 넣게 되면 귀
파의 득이 될 뿐만 아니라, 앞으로 귀하의 힘으로 청성이 봉문을 풀어 강호에 이름을 날리게 되
고 그 후 그대가 청성의 장문인자리는 차지한다 한들 어느 누가 탓 할 사람이 있겠소이까..?」
「헉..!」
환중(喚重)에게는 숨이 넘어갈 만한 충격이었다.
현 장문인을 그 자리에서 몰아내고 자신이 장문인의 자리에 오른다..? 정상적인 상황에서의 그
행위는 분명 하극상이 될 뿐이다. 그러나 청성이 힘을 잃어가는 이 순간 청성을 위한 노력이라
면 당연히 제자들의 호응을 얻을 수 있는 지금의 말이 아닌가..!
(그렇지.. 이 사람의 말이 옳다. 내가 우리 청성파의 명예를 높여 장문인의 자리를 차지한다고
해도 누가 이의를 달겠는가..!)
사립인의 요설(饒舌)에 점점 젖어가는 환중(喚重)의 마음에 서서히 웅심이 싹트고 있었다.
「그 장진도의 장소를 찾을 때 기필코 빈도와 동행을 하시겠다는 말이지요..?」
「어허.. 당연한 물음을..? 강호 구석구석 가보지 않은 곳이 없는 환중(喚重)도인이 아니고 누
가 감히 그 장소를 찾아 낸단 말이오..! 장진도를 얻는 것보다 얻은 후 비급을 찾는 일이 더욱
중요한 사안이외다.」
바로 그것이었다.
사립복면인이 환중에게 접근을 한 이유가 청성의 수련시 중원과 변방을 막론하고 강호 어느곳
가보지 않은 곳이 없었던 환중(喚重)의 경험을 이용하기 위한 감언이었던 것이었다.
「좋습니다. 내 그 말을 믿지요..!」
서로 굳은 약조를 하고 청성으로 돌아온 환중(喚重)은 당분간 폐관수련을 한다는 구실로 백운각
을 봉쇄하고 제자들의 접근을 엄히 금한 후 적하검(寂河劍)을 손에 들고 아무도 모르게 남해 보
타암으로 달려간 것이었다.
(혹시나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저놈이 나에게 위해를 가하려 한다면 이 적하검이 나의 신
변을 지켜줄 것이다.)
적하검(寂河劍)..!
어리석게도 달콤한 말에 미혹(迷惑)되기는 했으나 그래도 청성의 환중(喚重)이었다. 이리저리
머리를 굴려 자신의 안전을 담보하기 위해 아무도 몰래 천하의 보검 적하검을 지니고 하산을 한
것이었다.
그러나,
남해에는 장진도가 없었다.
그 보다 보타암의 살육을 직접 지켜볼 수 밖에 없었던 환중(喚重)은 여섯 복면인이 자신을
바라보고 경계하는 눈초리에 도저히 그 자리를 빠져 나올 수가 없었다.
슬며시 자신의 팔을 당기는 또 한사람의 무인(武人)..! 그 사람 또한 자신과 마찬가지로 이 순
간의 상황에 무척이나 당황한 듯 어쩔 줄 몰라 하며 이 자리를 벗어나고픈 표정이 역력했다.
그러나 다섯 명의 흉맹한 눈초리가 자신들을 꼼짝 못하게 옭매고 있었던 것이다.
어쩔 수 없이 그들과 동행을 해 장진도의 행방을 끝까지 추적을 해야 하는 진퇴양난의 혼란속에
그 들의 손에 이끌려 가다시피 함께 한 발걸음..! 결국 일곱 무인들이 마지막 다다른 행선지는
천산의 설봉이었다.
(그렇지.. 그 소문..! 장진도가 이곳에 없다면 강호의 소문처럼 당연히 그들 부부의 살가죽에
새겨져 있을 것이다.)
그 즉시 일곱 무림인들은 남해를 벗어나자 마자 소문의 뒤를 쫒아 천산을 향해 한 걸음에 달려
갔던 것이었다.
그 천산까지 쫒아가 찾아내 결국은 서로 마주하게된 설인군(雪仁君)부부..!
그들이 연합을 해 살해한 설인군(雪仁君)부부의 붉은 피가 새하얀 설원을 적셨으며 아무리 뒤져
도 그 부부의 품속 어디에도 장진도는 없었고 발가벗겨진 사혜추(嗣惠秋)와 설인군(雪仁君)의
온몸을 확인했으나 그들의 피부 어디에도 장진도가 새겨져 있지는 않았다.
결국 그 조차 헛소문이었음을 확인한 채 어느 하나 이룬 것 없이 발걸음을 돌려야 했던 환중의
일곱 일행들 이었던 것이다.
* * * * * * * * * *
긴 이야기를 끝낸 환중(喚重)이 한숨을 푸욱.. 내 쉬며 백룡검을 향해 안타까운 눈길을 보내고
있었다.
「지금 내가 한 말에는 추호도 거짓이 없습니다. 제법 시간이 흐른 것 같으니 제발 해독제를 주
실 수 없겠습니까..?」
반나절의 여유 밖에 없다고 했다.
이제 긴 시간 말을 이어간 환중(喚重)에게는 독이 발작을 할까 조마조마 가슴을 졸이며 애절하
게 부탁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독환(毒丸)을 삼켜 목숨이 걸려있는 일이라고는 하나 득도를 위한 수련을 하는 도인인 자신의
치부를 낱낱이 드러내는 고백을 한 환중(喚重)도인의 긴 이야기였다.
그러나 그 기니긴 이야기의 핵심은 가담은 했지만 자신과 또 한사람은 한번도 손을 쓰지 않고
나머지 다섯 사람이 살행(殺行)을 저질렀다는 변명의 말만을 늘어놓은 환중(喚重)을 보며, 우선
백룡검(白龍劍)은 그 말을 믿는 것처럼 온화한 표정을 보이며 작심(作心)을 한 듯 입을 열었다.
「으음.. 그 모든 소문이 헛소문 이었다..?」
「예, 유대협.. 모두가 헛소문 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대는 그 여섯 무림인들과 한달 가까이 함께 움직였소이다. 그 많은 날들을 그들과
함께 행동을 한 그대가 어찌 그들의 정체를 조금도 눈치를 채지를 못하였단 말이오..?」
「정말.. 정말로 알 수가 없었습니다.」
「허허허.. 강호인들은 서로의 무공을 일견(一見)하는 것 만으로도 출신을 알 수 있는 것..! 날
더러 그 말을 믿으라는 것이오..?」
「유대협.. 진심이오. 그들의 꼬임에 빠져 그 무진 고생을 하였으나 아무런 소득도 얻지 못한
나 자신도 너무 한심스러워 그들의 정체라도 파악하려 힘을 다해 노력을 하였으나 그들의 행동
은 너무나 기괴(奇怪)하고 신묘(神妙)하여 도저히 알아 낼 수가 없었습니다.」
「기괴 신묘했다..? 알았소이다. 그 말을 믿어 드리지요. 그러나 더 깊이 그들의 행동을 생각해
내어 보시구려..!」
강호의 소문중 하나.. 설인군(雪仁君)부부의 등에 장진도가 새겨져 있다는 것은 거짓이라고
밝혀졌다.
그리고 음적(淫賊)으로 무림의 지탄을 받던 설인군(雪仁君)부부는 이미 고인이 되었다.
그 부부의 품속에 있었다는 어린 여아는 어찌 되었을까..? 역시 그 설한(雪寒)의 천산에서 분명
살아남지를 못한 것일까..? 적하검을 단서삼아 이곳 청성을 찾아 스승의 유명(遺命;임종 때 남
긴 말)을 수행하려 했으나 하나도 밝혀진 것이 없지 않은가..! 이런 저런 생각에 잠겨있던 백룡
검이 답답하다는 듯 입을 열었다.
「환중(喚重)선배님.. 소생 선배께 한마디만 더 이야기를 하리다..!」
갑자기 정중해진 백룡검(白龍劍)의 어투에 어리둥절해진 환중도인이 황급히 대답을 했다.
「예, 대협.. 말씀 하십시오.」
「지금까지 저에게 한 선배님의 말이 청성 장문인의 귀에 들어가면 어떨게 될까요..?」
「어헉..!」
그 한마디에 얼굴이 사색(死色)이 된 환중(喚重)이 털썩.. 백룡검(白龍劍)앞에 무릎을 꿇었다.
「대협..! 왜.. 왜 그러시오..? 제.. 제발 장문인에게만은..!」
미처 환중(喚重)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백룡검(白龍劍)의 말이 계속 되었다.
「선배님.. 청성의 장문인 자리가 그리도 탐이 나십니까..?」
「그.. 그건..!」
「알았소이다. 제가 환중선배님이 장문인이 되도록 만들어 드리지요. 선배님께서 명실공히 청성
의 제자 중 가장 높은 무공을 터득하고 청성에 헌신 한다면 장문인이 되고도 남을 것입니다. 그
리 되도록 제가 도와 드리겠습니다.」
이 어찌된 말인가..?
백룡검(白龍劍)이 환중(喚重)에게 자신의 무공을 전수해 주겠다는 언질이 아닌가..!
돌변한 백룡검의 태도가 오리려 환중(喚重)의 가슴속에 두려움이 밀려오게 만들고 있었다.
그러나 노회하고 욕심 가득한 환중(喚重)은 백룡검(白龍劍)의 입에서 말이 떨어지자 그 순간
다급히 백룡검(白龍劍)의 면전으로 기어와 고개를 숙였다.
「고.. 고맙소이다. 대협..!」
「하하하.. 그러나 조건이 있습니다. 최대한 노력을 하여 그 여섯 무림인들의 정체를 알아 내십
시오. 아니 정체를 파악하기 힘들면 조그만 실마리라도 알아내도록 노력하십시오.」
「알았습니다. 꼭 그렇게 하겠습니다.」
「좋습니다. 선배님..! 대신 저도 장문인에게는 일체 말을 하지 않도록 하지요. 그리고 제가 한
제안은 선배님과 저만의 비밀입니다. 조만간 환중선배님이 힘을 가지도록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그럼 저는 이만..!」
백룡검(白龍劍)이 인사를 한 후 백운각의 문을 나서려 하자 환중(喚重)도인이 숨 막히는 소리를
내며 기겁(氣怯)을 하고 달려들었다.
「대.. 대협..! 백룡대협..! 해독약을 주셔야지요..!」
백룡검(白龍劍)은 환중(喚重)도인을 돌아보며 싱긋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하.. 환중 선배님, 선배님이 목으로 넘긴 환약은 마음을 맑게 만드는 청랑환(晴朗丸)이었
습니다. 선배님의 몸과 마음이 한층 더 맑아졌을 거외다.」
* * * * * * * * * *
백운각을 빠져나와 허공을 날고 있는 백룡검의 뒤를 수린은 혼자 중얼거리며 말없이 따르고 있
었다.
(환중(喚重)이 말하고 있던 그 또 한사람이라는 인물이 혹시 모용세가(慕容世家)의 장주 모용환
(慕容煥) 그자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