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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검연풍록 (書劍戀風錄) 제 68 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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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250 회 작성일 23-12-31 16:28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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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낭만백작著/ 서검연풍록 (書劍戀風錄) 제 68 부  **



제 24 장  이간(離間) 그리고 초조한 야욕(野慾).


대명호수(大明湖水)변 언덕아래에 몸을 숨기고 계곡 속 산채의 움직임을 하루 종일 초초하게
주시(注視)하고 있던 황보승은 소림을 위시한 각 방파의 무림인들이 열을 지어 줄줄이 빠져
나오고 있는 것을 보며 잔뜩 긴장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저들의 숫자를 보니 거의 병력의 손상은 없다. 그렇다면 서문인걸의 작전이 성공을 거두었다
는 말인가..?」


상관명이 일행이 계곡속으로 들어가는 모습은 분명히 지켜보았다. 그러나 서문인걸의 연합군
들인 소림과 진양문 그리고 숭정방의 제자들은 한사람도 부상을 입은 사람이 없어 보였다.
그렇다면 서문인걸이 승리를 거두었다는 말..! 지금쯤 환호성을 지르며 달려 나올 만도 한데
계곡을 빠져나오는 무림인들의 어깨는 축 처져 있으며, 아직 서문인걸은 콧배기도 보이지 않는
다. 만약의 경우를 생각해 황보정 휘하의 최정예 궁수들을 배치해 계곡의 입구를 막아 일거에
서문인걸을 제거하려 기다리고 있던 황보승은 의아한 마음이 들어 점점 초조해져 오고 있는 것
이었다.


그런 그의 눈에 갑자기 드러난 서문인걸의 모습..! 좌우에 구와 학련이 호위를 하며, 그들 사
이에 고개를 숙이고 따르고 있는 그 모습은 당당한 승리자의 모습이 아니라 마치 추포(追捕)
되어 끌려가는 얼굴을 한 처절한 표정을 짓고 있는 것이었다.


「앗차.. 사단이 난 것이로구나..!」


황보승은 더욱 깊이 몸을 숨기고 계곡의 입구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 황보승의 눈에 계곡 저
멀리 천천히 걸어 나오고 있는 한 무리 군웅들의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그들을 맞이하려는 듯
그 군웅들의 앞으로 달려 들어가는 무사 한명이 눈에 띠였다.


「어어.. 저 사람은 자혜공주의 호위무사인 광진이 아닌가..? 그러면 저들은 분명 상관명의 일
행들이겠구나..」


이제는 어찌 처신을 해야 하는 가..? 잠시 생각을 정리하고 있던 황보승은 마음속으로 생각을
가다듬고 있었다.


(그래.. 저들은 내가 여기에 숨어있는 것을 모를 것이다. 가까이 다가올 때 까지 저들을 면밀
히 살피면 계곡안 결전장에서 벌어진 상황들을 짐작할 수 있으리라..!)


황보승은 더욱 깊숙이 몸을 숨기며 궁수들에게 정체가 드러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이라는 손
짓을 보내고 있었다.


 * * * * * * * * * *


상관명의 일행 앞으로 다가간 광진이 공주를 맞이해 예(禮)를 취했다.


「마마.. 무사하셨습니다. 상관공자님.. 공주마마를 별 탈 없이 지켜 주셔셔 감사합니다.」


「감사라니 무슨 말씀을..! 그보다 황보대인의 움직임은 어떠했습니까..?」


상관명은 그들의 움직임이 궁금한 듯 광진에게 재빨리 묻고 있었다.


「예.. 공자, 황보승의 군사들은 한걸음도 움직이지 않고 숨까지 죽이며 그 장소에 숨어 있었
습니다. 지금쯤은 제가 달려 나온 것을 저들도 보고 있을 것입니다.」


「그렇겠지요. 알았습니다. 우리는 대명호(大明湖)의 남쪽으로 돌아 모른 척 역하정(歷下亭)의
정자로 오릅시다.」


 * * * * * * * * * *


「궁주.. 어찌하실 겁니까..? 백련문도들 이라도 저들과 대치(對峙)를 시킬까요..?」


역하정에 오른 홍련채주가 심각한 얼굴로 호수의 주변을 바라보고 있는 상관명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러나 홍련의 물음에도 한동안 말없이 호수의 물결만 바라보던 상관명이 결심이 선 듯 입을
열었다.


「모두들 여기 조용히 계십시오. 나 혼자 저들을 만나보고 오리다.」


「예..? 오라버니 혼자서요..?」


「공주..! 염려 마시오..!」


그러나 자혜공주는 상관명의 무공(武功)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지 않은가..! 그녀는 상관명이
그들에게 당할까 염려한 것이 아니었다. 다만 능구렁이 같은 황보승에게 혹시 다른 언질이라도
약속하면 어쩌나 그 점이 염려된 것이었다.
그런 공주의 마음을 뒤로하고 상관명은 황보승이 숨어있는 곳을 향해 허공으로 몸을 날렸다.
대명호(大明湖)의 상공(上空)..! 하늘높이 날아오른 상관명의 눈에는 언덕아래 몸을 낮추고 손
에 활을 들고 있는 많은 군졸들의 모습이 훤하게 드러나 보였다.


「어.. 어어..! 누.. 누구냐..?」


하얀 명주 옷자락을 휘날리며 백학(白鶴)처럼 허공을 날아오는 인영의 모습을 발견한 언덕아래
의 군졸들이 당황해 활에 화살을 재워 인영이 날아드는 허공을 향했다. 그 순간..!      


「하하하.. 황보대인, 그곳이 있는 것 알고 있습니다. 소생 상관명이외다.」


우왕좌왕하며 다급히 움직이는 그들을 바라본 상관명이 큰 소리를 내며 휘이익.. 황보승의 앞
으로 내려앉았다.


「어엇.. 상관공자..! 내가 여기 있는 것을 어찌 알고..?」


「하하.. 소생이 모르면 누가 알겠습니까..? 대인어른 서문인걸의 발호(跋扈)를 제지하려 이곳
에서 지키고 있느라 고생하셨습니다.」


「허허.. 이것 참..! 그래.. 서문의 일당을 물리치느라 공자의 노고가 크셨소이다.」


「예.. 대인어른, 다행히 소생이 잘 마무리를 했습니다. 이제 걱정거리가 모두 사라졌으니 저
기 활을 들고 잔뜩 긴장을 하고 있는 아드님의 병졸들은 모두 국경으로 돌려보내도 될 듯 합니
다.」


「그.. 그건..! 아니오 공자.. 혹여 서문의 잔당들이 준동를 한다면 그 잔당들을 소탕할 병력
은 남겨두어야 하지 않겠소..?」


상관명의 말에 잠시 궁리를 하다가 대답을 하는 황보승을 보며 다시 한마디를 던졌다.


「아니외다 대인어른..! 다행히 소생의 부탁으로 조평환의 부자가 재빨리 움직여, 지금은 서문
인걸을 따르고 있으나 지난날 조 부자를 추종(追從)하던 그들을 일일이 직접 만나 설득을 해
서문인걸과의 관계를 모두 단절시켰습니다. 아마 조정으로 돌아가시면 그들도 황보대인의 국정
수행에 적극으로 협력을 할 것입니다.」


황보승의 머리는 혼란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자신이 스스로 생각을 할때 서문인걸만 제거되면
자신의 머리를 따를 자가 없어 모든 일이 자신의 마음대로 될 것이라 여기지 않았던가..! 
그러나 이 공자는 이미 권좌(權座)에서 쫓겨난 조평환까지 감복시켜 조정 신료(臣僚)들의 마음
을 움직여가고 있다. 
이리저리 머리속으로 생각을 굴려가던 황보승이 고개를 들어 상관명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상관공자..! 조정 관료가 나서서 지켜야 할 나라의 변고(變故)를 대신 처리해 주신 점, 국록
(國祿)을 먹고 있는 사람으로 정말 감사드리외다..! 공자의 말씀대로 저 궁수들은 변방으로 복
귀 시키겠습니다.」


이 장소에서 아웅다웅 상관명과 언쟁을 벌려 보아야 조금도 명분이 없다는 것을 금방 깨달은
황보승이었다. 소수의 병사를 움직이는 권한이라 하나 그 권한은 황제가 자신에게 부여해준 정
당한 군권이 아닌가..! 지금 이 순간 병력을 돌려보낸다 해도 필요시 다시 부르면 될 것..!
우선 상관명과 공주의 일행보다 황궁으로 먼저 돌아가는 일이 급하다 느낀 황보승이었다.
 
「나는 지금 즉시 궁(宮)으로 돌아가 폐하를 알현해 오늘의 일을 소상히 보고를 해 올릴 것이
외다. 그럼..!」


황보승은 상관명이 더 입을 열 틈도 주지 않고 작별의 인사를 하며 고개를 돌려 언덕아래를 향
해 큰소리로 명령을 내렸다.


「궁(宮)으로 돌아간다.. 어전시위들은 궁수들을 인솔해 철수를 하시오..!」


 * * * * * * * * * *


대명호(大明湖) 계곡의 결전을 무사히 마무리한 상관명과 자혜공주 그리고 백련채의 문도들은
이제 조금의 여유롭게 유람을 하듯 산동성(山東省) 제남(齊南)을 떠나 산천의 풍경을 감상을
하며 때로는 빠르게 때로는 천천히 여러 날을 보낸 후, 이윽고 명승지 주선진(朱仙鎭)의 언덕
을 넘고 있었다.


마침내 그들이 다다른 곳은 서문인걸부녀에게 맡겨 두었던 연환서숙(捐幻書塾)..! 그곳에는 아
직도 많은 학동들이 조야의 정세에는 아랑곳도 하지 않고 오직 문무의 수련에만 열중하고 있었
다. 그들을 말없이 바라보던 상관명이 자혜공주를 향해 입을 열었다.


「나라의 인재들이 이렇듯 열심히 공부를 하고 있소..! 이제 공주가 이곳을 맡아 이들을 선도
(先導;앞장을 서서 인도함)했으면 하오..!」


서문인걸과 화령에게 맡겨두었던 연환서숙(捐幻書塾)을 이제는 한림학사원(翰林學士院)을 대신
하기 위해 나라에 바치려 하는 것이었다.


「오라버니.. 제가요..?」


「그래요 공주..! 이제는 국가의 재정이 뒷받침이 되는 교육기관이 되어 나라의 동량지재(棟梁
之材)를 육성하는 장소로 만들어 가야지요..!」


상관명은 이곳을 공주에게 보이기 위해 일부러 먼 길을 유람하듯 연환서숙으로 발걸음을 하였
던 것이었다. 공주 또한 이 연환서숙은 잊을 수 없는 장소였다. 이곳 내실에서 서문인걸이 반
지속의 망아미혼(忘我迷魂)의 음독을 뿌려내 중독된 자신이 상관명에 의해 구원을 받은 잊지
못할 인연의 장소였던 것이다.
 
두 사람의 대화를 곁에서 듣고 있던 홍련채주가 생글생글 웃으며 거들고 나섰다.


「그거 좋은 생각입니다. 공주님.. 저도 힘닿는 대로 도와 드리겠습니다.」


 * * * * * * * * * *


그 시각..!
제남(齊南)을 떠나 밤낮을 도와 황궁으로 달려온 황보승은 황제와 대면을 하고 있었다.


「폐하.. 서문인걸의 준동(蠢動)은 이제 말끔히 처리가 되었습니다.」


「오.. 황보대인..! 수고했소..! 그런데 그 정도의 병력만으로 격퇴시킬 수 있었던 서문인걸이
었던가..? 별 것도 아닌 그가 짐의 마음을 혼란시키고 있었구나..!」


황제의 말에 얼른 무릎걸음으로 가까이 다가간 황보승이 목소리를 낮추어 은밀히 고했다.


「아닙니다. 폐하..! 소신이 인솔한 병력은 단지 서문인걸이 출병하려는 입구를 막아 방비만
하고 있었습니다. 서문을 폐퇴시킨 사람은 다름 아닌 상관공자의 일행이었습니다. 그러나..!」    
    
말의 말미에 여운을 두고 입을 다무는 황보승을 향해 황제는 다음 말을 재촉하고 있었다.


「그.. 그래..? 명(明)아 였구나..! 그런데 또 무엇인가.. 어서 말하라..!」


「예.. 폐하..! 상관공자의 일행 중에는 공주마마도 보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공주마마의 명령
까지 무시를 하며 서문인걸의 목숨을 살려주었다 합니다.」


「그래서..?」


「예.. 폐하..! 소신의 느낌으로는 서문인걸이 강호의 인심을 얻을 그때의 상황과 너무도 흡사
한 듯 해서 적이 걱정이 앞섭니다. 그 곳에 있던 모든 군웅들이 상관명 만세를 부르며 그를 환
호하고 있었고 또한 공주의 말을 듣지도 않고 나라의 역적인 서문인걸을 살려준 사실도 그 곳
의 군웅들은 상관명의 너그러움만 칭찬할 뿐이지 나라의 법도를 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
니다. 그 과정이 서문인걸의 민심을 얻어가는 과정과 너무나 흡사해 소신.. 가슴이 떨리고 있
습니다. 서문인걸보다 모든 무림인들의 존경을 등에 업고 있는 상관공자의 세력이 오히려 더욱
경계해야 하는 상대가 아닌가, 그 두려움에 마음이 떨려오는 것입니다.」


황제의 용안이 꿈틀 거렸다.
황보승의 이간하는 말재주에 서서히 흔들리고 있는 황제의 마음인 것이었다.


「으음..! 그대의 눈에 그렇게 보였단 말이지..?」


「예..! 서문인걸과 그 많은 무림인들을 진압하는 상관공자의 위력은 무시무시할 정도로 대단
했습니다. 그 많은 강호인들은 상관명의 위세에 눌려 모두 앞으로 그의 명(命)을 따르겠다 스
스로 맹세를 다짐하고 있었습니다.」


「허허.. 명(明)아의 위엄(威嚴)이 그리도 대단하더란 말이냐..?」 


「예.. 폐하..! 보십시오. 이 급보를 먼저 폐하께 알려 폐하의 성심을 편하게 마들어야 할 공
주마마와 상관공자는 아직도 폐하를 알현하러 들어오지 않고 있습니다. 상관공자는 아마 또다
른 준비에 바쁜 것이 분명합니다.」


순간 황제의 표정이 파르르 떨리며 입에서는 벼락같은 노호가 터져 나왔다.


「황보대인.. 앞으로 상관명의 황궁출입을 금한다는 황명을 내린다. 상관명과 공주의 만남도
금한다. 어전시위는 들어라.. 너희들은 공주의 주변을 철저히 감시하여 상관명이 공주에게 접
근하는 것을 차단하도록 하라..!」


그런 황제의 모습을 본 황보승의 표정에는 회심의 미소가 흐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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