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검연풍록 (書劍戀風錄) 제 64 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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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낭만백작著/ 서검연풍록 (書劍戀風錄) 제 64 부 **
제 22 장 대회전(大會戰) 4.
상관명을 대신해 소림의 세 성승(聖僧)앞을 막아선 흰 그림자는 구(龜)였다.
「 하하하.. 제가 여러분들을 상대해 드리지요. 먼저 출수(出手)를 하십시오..! 」
갑자기 눈앞이 번쩍하며 나타난 이 청년이 혼자서 세 사람의 연공(聯功)을 감당하려 한다. 조
금은 흔들리는 자존심 때문에 멈칫하는 그들의 귀에 독전(督戰)을 하는 서문인걸의 큰 목소리
가 울려왔다.
「 세분사형..! 그자의 무공도 화극(和極)을 이루었소이다. 세 사람이 연합을 하여 전력을 다
하지 않으면 물리칠 수 없을 것이외다..! 」
세 성승(聖僧)도 연환서숙을 오가며 구(龜)가 누구인지는 익히 알고 있었다. 그러나 소림이 아
무리 쇠퇴일로(衰退一路)를 걷고 있다고는 하나 아직은 강호 무림의 한가운데 우뚝 서 있는 방
파였다. 그런 소림의 장문인과 원로들이, 이 약관의 청년을 대적함에 함께 힘을 합해야 한다니
이 얼마나 어이가 없는 일인가..! 지덕과 지공대사는 그래도 부끄러움이 앞서 조금은 망설이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러나 서문인걸의 호통소리에 생각을 달리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지원방장이 손에 쥔 녹옥불
장을 앞으로 내밀며 구(龜)와 마주해 자리를 잡고, 그 좌우로 지덕과 지공대사가 양옆으로 펼
쳐 서며 두 대사는 목에 걸린 염주를 슬며시 벗어 손에 들고 진기를 모으고 있었다.
그 순간 방장의 녹옥불장은 우우웅.. 소리 내며 울고 있었고 두 대사의 손에 들려 흔들거리던
염주는 막대기처럼 곧게 뻗어 단단해 지고 있었다.
사문(師門)의 비경 소림지밀비록(小林至密秘錄)속의 내공을 십이분 끌어올려 불장과 염주에 주
입을 하고 구(龜)와 대적할 작정인 것이었다.
가운데 서있던 지원방장이 녹옥불장을 불쑥 구(龜)의 가슴을 향해 앞으로 내밀었다. 동시에 지
덕대사는 좌측으로 돌며 손에 든 염주로 구(龜)의 허리를 쓸어갔다. 소림의 무상공력이 구(龜)
를 향해 날카롭게 날아든 것이다.
구(龜)가 불장과 염주에서 터져 나오는 가공할 내력을 피하기 위해 오른쪽으로 신형을 슬쩍 움
직이는 순간, 우측을 지키고 있던 지공대사가 기다렸다는 듯 손에 든 염주에 반야신공(般若神
功)을 실어 구의 요혈을 노리고 휘익.. 날렸다. 일직선으로 날아가던 염주가 구의 주위에 다다
르자 염주알이 모두 튕겨져 나와, 알 하나 하나가 구의 삼십육대 요혈 곳곳을 노리고 빈틈없이
파고 들었다.
「 헉..! 저 놈이.. 저럴 수가..! 」
분명히 협공을 받아 그 자리에 넘어져 있어야 할 구(龜)를 바라보던 지원, 지덕, 지공 삼인의
대사가 오히려 놀라고 있었다.
무상공력과 반야신공이 가득담긴 불장과 염주알이 신형을 덮쳐가는 그 순간..! 가볍게 몸을 날
린 구(龜)의 신형이 조그만 염주 구슬위에 올라타고 허공을 날고 있는 것이었다.
「 하하하.. 소림의 무공이 겨우 이것 이었던가..? 대사님들 염주알을 주인에게 모두 돌려 드
리리다..! 」
마치 허공에서 그네를 타듯 이리저리 신형을 구르며 다리 아래로 손바닥을 휘익.. 내저었다.
구(龜)의 손에서 뻗어난 장력에 허공을 이리저리 날고 있던 염주알이 한군데로 모여 들더니
날카로운 파공음을 울리며 세 명의 대사들 몸뚱이를 향해 파고들었다.
「 어어어.. 어억..! 」
피할 틈도 여유도 없었다. 다급해진 대사들은 무작정 두 손을 휘둘러 날아드는 염주구슬은 막
아 내기에 정신이 없었다. 그러나 되돌아 온 염주알들은 후려치는 그들의 장풍을 오히려 반가
워 하는 듯 그 손바람에 장단 맞추어 너울너울 춤을 추며 정확하게 혈도를 후려치고 있었다.
「 허걱.. 으으윽..! 」
분명히 혈도를 맞아 큰 부상을 당하거나 목숨을 잃어야 하는 순간이 아닌가..? 그러나 다행히
따끔.. 몸에 부딪히는 감(感)만 느꼈을 뿐 되돌아온 염주알에는 내공이 하나도 실려 있지 않았
다. 그 염주알들이 대사들의 요혈을 격타(擊打)하는 순간, 구(龜)가 염주에 실린 공력을 회수
해 버린 것이었다.
분명 그들에게 경각심만 일깨워 주려는 구(龜)의 의도였다. 그러한 그의 모습은 멀리 단상(壇
上)위에 앉아 지켜보고 있던 서문인걸의 눈에도 들어왔다.
「 아무래도 사형들만으로는 힘에 부치구나..! 제갈가주님 가서 저들을 좀 도와야겠습니다. 그
유명한 현원전단신공(玄元傳檀神功)의 위력을 한번 보여주시지요..! 」
「 알았소 대인.. 흐흠.. 저놈에게 신공의 위력을 한번 보여주어야 겠소이다..! 」
앉은 자리에서 그대로 몸을 날려 구(龜)에게 다가가는 제갈청운(諸葛靑雲)이었다. 왕년에 서문
인걸과 함께 신동(神童) 소리를 들으며 그 재주를 다투던 기재가 아니었던가..! 서문인걸은 그
런 제갈가주를 내 보내어 전세를 뒤집으려 기대를 하고 있는 것이었다.
이제 구(龜)를 포위한 사람은 한사람이 더 늘어 네 사람..! 혼비백산 구의 무공에 놀란 지덕,
지공대사가 제갈청운의 지원에 용기를 얻어 구의 좌우로 막아서고 뒷쪽에는 지원방장이, 그리
고 구의 정면에는 지금 날아온 제갈청운이 호기로운 자세로 다가와 우뚝 자리를 잡고 있었다.
「 이 애송이 놈이 제법 사술도 부릴 줄 아는구나..! 내가 나섰으니 이제는 너의 그 조그만 재
주도 아무 소용이 없을 것이다. 자.. 내 검(劍)을 받아랏..!」
제갈청운은 한발 앞으로 내딛으며 왼손을 단전에 붙였다가 가슴으로 들어 올리며, 오른손은 빼
어든 검(劍)을 수평으로 이루며 구의 가슴을 향해 일직선으로 찔러왔다.
번쩍..!
제갈청운의 검날에서 번갯불이 일었다. 칠현무형검(七絃無形劍:무형기검의 일종)의 날카로운
검초였다. 그 무형검(無形劍)의 일식(一式)에는 가공할 현원전단신공(玄元傳檀神功)이 실려 있
었다.
- 우웅.. 우우우웅..!
검에서 울려나오는 신공의 파공음이 구(龜)의 귀를 파고들었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검강이
파도가 밀려오듯 구의 신형을 향해 날아들고 있었다. 무형검(無形劍)..! 검날이 몸의 근처에
근접하기도 전에 가공할 신검(神劍)의 검강(劍剛)..! 마음만으로도 요혈을 노리고 달려 든다는
그 무형검의 검기였다. 그런 절륜한 신검의 내력(內力)이 구를 노리고 밀려드는 그 기회를 틈
타 소림 세명의 대사들도 동시에 합장을 하고 있던 손을 구를 향해 홱.. 뿌렸다.
- 펑.. 크아앙.. 콰앙..!
천지를 진동하는 굉음을 울리며 소림 삼승의 손에서 뻗어 나온 장력이 바닥의 흙먼지를 말아
올려 매몰차게 구의 요혈을 노리고 날아들었다.
「 헉.. 조금 전과는 전혀 다르다..! 조심해야겠다..! 과연 제갈가주의 내공은 절륜하구나..!」
눈을 부릅뜨고 날아드는 장풍과 검강을 노려보던 구(龜)는 단단히 주의를 기울이며 신형을
수평으로 움직여 날아드는 장풍과 검강을 발밑으로 흘려보내며 휘익.. 허공으로 몸을 날렸다.
「 크흐흐.. 피하겠다..? 어림없지..! 」
제갈청운은 마치 자신의 눈 바로 앞에 서있는 사람을 검으로 찌르듯 팔을 뻗어 칼끝으로 허공
에 떠있는 구(龜)의 허리아래를 가리켰다.
- 피웅.. 슉.. 슈우육..!
단지 검끝으로 방향을 가리키기만 한 공격이었으나 칼끝에서 날아든 검강(劍剛)은 마치 검 자
체가 날아드는 듯 구의 아랫도리 소요혈(笑腰穴)을 향해 초절한 공력으로 찔러가고 있었다.
「 어헛.. 어검(馭劍)의 무형강기(無形剛氣)..! 내공이 제법 정순하구나..! 」
구(龜)는 자신의 내공을 지극으로 운용을 해 단단히 방비를 하며, 오른 손을 들어 허리 아래를
향해 횡(橫)으로 흔들어 초극의 장력(掌力)을 펼쳐내며 왼손으로는 허공을 한 바퀴 휘저었다.
- 쿵.. 크르릉.. 퍼엉..!
- 휭.. 휘이잉..!
제갈청운이 내지른 검강(劍剛)과 그 틈을 살펴 세 명의 대사가 쌍장을 교차해 펼쳐낸 장풍이
우뢰같은 소리를 울리며 허공에서 서로 부딪혀 갔다.
그 순간 허공에 떠있던 구(龜)의 신형이 내력을 지탱하지 못하고 낙옆처럼 땅바닥으로 떨어져
내려앉았다. 그러나 검강을 뿌리고 소림의 지고지순한 내공을 쌍장에 모아 회심의 일격을 쏘아
보낸 네 명의 고인들이, 오히려 구(龜)가 가볍게 흔들어댄 양손의 손바람에 의해 주르르 열댓
걸음 뒤로 밀려가 엉덩방아를 찍어버린 것이었다.
「 허허.. 대사님들.. 저 소협의 내공이 우리 네 사람이 합한 공력보다 더욱 고강하구려..! 이
것 참..! 앞으로 어찌 강호에 고개를 들 수 있겠소..! 」
털썩 주저앉으며 말하는 제갈청운의 중얼거림에 지원방장이 오히려 질책을 하고 나섰다.
「 제갈가주.. 무슨 소리요..? 우리의 연공(聯功)이 잠시 일치를 보지 않아 실수한 것이외다.
다시 한번 몰아붙입시다..! 」
말을 하며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거칠게 구(龜)의 앞으로 달려가는 지원방장의 오기가 가득한
모습이었다.
* * * * * * * * * *
「 으음.. 한 두사람의 조력(助力)만 있으면 저 놈의 무릎을 꿇일 수가 있겠다. 이 보시오 두
분 장문인..! 」
그 싸움을 주의 깊게 지켜보던 서문인걸이 곁에 앉아있는 숭정방주 철궁패장 맹우량(孟宇亮)과
진양문의 문주 단심도인 일엽(一葉)을 쳐다보며 한마디를 던졌다.
「 두분 장문인께서 나서서 저들을 도운다면 저놈을 쉬 패퇴시킬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가서
힘을 좀 보태시지요..! 」
그러나 서문인걸의 말에 두 장문인은 쭈빗쭈빗 얼굴을 외면하며 수월히 대답을 않고 있었다.
「 어허.. 두분..! 내 부탁을 듣지 않겠다는 것이오..? 」
서문인걸이 얼굴에 불쾌(不快)한 기색을 나타내며 한번 더 재촉을 하자 단심도인 일엽이 대꾸
를 했다.
「 서문대인..! 지금도 한사람을 가운데 두고 네 명이 나서서 협공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또다시 나선다면 그 행위만으로도 무림에 고개를 들 수 없는 사행(邪行;옳지 못한 행위)이 되
는 것이외다. 」
「 뭐.. 무엇..! 사악한 행위라..? 그래서 나가 도우지 못하겠단 말이오..? 맹방주..! 그대도
같은 생각인가..? 」
「 대인..! 일엽문주의 말이 옳은 듯 하외다..! 」
「 옳다..? 어허.. 이 사람들이..! 알았소.. 이곳의 일이 모두 끝난 다음에 그대들의 말을 따
져 보기로 합시다. 」
이놈들이 나에 대한 믿음이 사라졌는가..? 그리고 화령의 말에 의하면 분명히 황보정은 우리의
거사에 동조하기로 약조를 했다고 들었다. 그리고 그의 휘하에 있는 병력이 이곳으로 움직인
사실도 포착되었다. 그렇다면 우리의 거사는 분명 성공한다. 그런데..? 두 장문인들이 자신의
명령을 강호의 정의를 내세워 듣지 않으려 하고 있다.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오른 그의 안면
은 벌겋게 달아올라 열(熱)을 식히려 식식거리고 있었다. 잠시 시간이 지나 겨우 마음을 진정
시킨 서문인걸은 다시 장중의 무인(武人)들을 향해 큰소리로 고함을 질렀다.
「 소림의 제자들은 어서 나한진(羅漢陣)을 펼쳐 장문인을 도우라..! 그리고 궁수들은 모두 화
살을 재우고 대기해 저들이 진을 빠져 나오는 즉시 화살을 날리도록 하라..! 」
점점 시간을 끌면 오히려 불리하다고 생각을 한 것인가..? 이제 수의 힘으로 밀어붙여 속전속
결로 끝내려 하고 있었다.
휘익.. 구(龜)와 소림 삼승이 대치하고 있으며 제갈청운이 사력을 다해 그들을 도우고 있는 결
전의 장소로 우루루.. 소림의 제자들이 달려가고 있었다.
무림 역사상 단 한 번도 무너진 일이 없다는 유명한 소림의 진법 나한진(羅漢陣)..!
소림사의 무학을 탐내거나 천하에 명성을 떨치고자 소림사에 뛰어든 허다한 무림고수들이 이
나한진 아래 허무하게 무너져 간 것이 아닌가..! 그 가공할 절진을 이루려 소림의 뛰어난 제자
들이 서문인걸의 명에 의해 달려 나오고 있는 것이었다.
이제 단 한명 구(龜)를 향해 백여명이 넘는 인원이 달려들고 있는 형국이 되고 있었다. 그러나
그 광경을 바라보고 있는 상관명의 얼굴은 태연자약(泰然自若)..! 표정하나 변함없이 꿈쩍 않
고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오히려 놀란 사람은 언덕아래에 몸을 감추고 장중의 상황을 살피고 있던 홍련채주와 백련채의
문도들 그리고 자혜공주였다.
- 후다다닥..!
홍련채주가 뒤를 돌아보지도 않고 구를 도우려 다급하게 그들의 앞으로 달려 나오고 있었다.
그러나 그 순간..! 펄럭.. 옷자락 날리는 소리가 들리며 자색 그림자가 홍련의 눈앞을 스치며
지나갔다.
「 호호호호 채주님..! 그냥 쉬고 계십시오. 제가 갑니다. 구(龜)야.. 나와 함께 한바탕 신나
게 놀아보자..! 」
학련(鶴蓮)이었다.
한 무리의 군웅(君雄)들이 구(龜)를 향해 달려 나오는 모습을 보고 있던 학련(鶴蓮)이 그들이
펼친 나한진의 위로 몸을 날린 것이었다. 그 상황을 상관명은 빙그레 웃는 얼굴로 주시하고 있
었다.
구(龜)를 한가운데 두고 세명의 소림대사와 제갈청운이 사방을 막아 일진일퇴를 거듭하는 그곳
을 소림의 나한진이 다시 포위를 하여, 일백 여덟 방위를 서로의 신형들이 엇갈리며 진을 이루
어 점점 조여들고 있었다.
그 소림의 절진 그 나한진의 위, 허공을 학련(鶴蓮)의 신형이 날아올라 마치 하얀 안개처럼 빙
글빙글 돌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