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검연풍록 (書劍戀風錄) 제 63 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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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낭만백작著/ 서검연풍록 (書劍戀風錄) 제 63 부 **
제 22 장 대회전(大會戰) 3.
대명호(大明湖)를 맴돌아 계곡으로 들어가는 길의 양 옆에는 아름드리나무가 줄지어 하늘을
향해 치솟아 있었다.
그 진입로의 한가운데에 황금색 깃발을 높이 들고 구(龜)와 학련(鶴蓮)이 보무당당히 앞서
걸어가고 있었으며 그 세발자국 뒤에는 근엄한 얼굴을 한 상관명이 자리를 하고 있었다.
한발 비켜난 등 뒤쪽으로 자혜공주와 홍련채주가 어깨를 나란히 해 걷고 있으며 그녀들의 후위
에는 백련채의 문도들이 열을 지어 뒤따르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조심조심 발소리를 죽여 가며 은밀히 서문인걸의 요새..! 숨겨진 산채를 찾아
들고 있는 것이었다.
이제 상관명의 일행들은 상대를 바라보는 마음은 급한 것은 없었다. 다만 이 길을 지켜가며 깊
은 계곡 속에 모여 있는 서문인걸의 도당들을 찾아가 그들을 응징하는 일만 남은 것이었다.
천천히 걸어 들어가던 상관명의 눈에 이윽고 항아리를 뉘여 놓은 듯한 넓은 평지가 보였다.
그 평지의 입구 양쪽에 높은 망루가 세워져 있고, 망루의 위에는 수명의 초병(哨兵)들이 길목
을 감시하고 있었다.
「 구(龜)야..! 학련(鶴蓮)누님..! 」
상광명의 입에서 낮고 조용한 목소리가 울려 나왔다. 그 순간 앞서가던 두 사람은 무슨 뜻인지
알아들었다는 듯 망루를 향해 들고 있던 깃발을 슬쩍 흔들었다.
- 번쩍.. 휙.. 휘익..!
- 툭.. 툭.. 투둑.. 털썩..!
순간, 깃발에서 번개 같은 섬광(閃光)이 여러 갈래로 날아가, 망루위에 서있는 초병(哨兵)들의
훈혈(暈穴)을 번개처럼 스쳐 지나가며 그들을 일시에 혼절시켜 계곡속 본대(本隊)와의 연락을
하지 못하게 막아버렸다.
* * * * * * * * * *
망루(望樓)를 지나 한발 들어서니 그 앞쪽은 광활하게 펼쳐진 평지를 이루고 있었고 그 뒷쪽은
산(山)들이 연이어 병풍처럼 막아있어 어느 누가 보아도 천혜의 요새임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
는 장소였다.
이곳만 둘러보아도 서문인걸은 그의 야망을 위하여 그 오랜 세월 얼마나 철저히 진행시켜 왔는
가를 미루어 짐작할 수가 있었다.
「 으음.. 과연 발군(拔群)의 인물이로고..! 」
혼자 입속으로 중얼거리는 상관명의 눈앞에 드러난 광경..! 그 넓은 평지에 이미 수백 명의 무
인(武人)들이 질서 정연히 도열을 하여, 저 앞의 연단(演壇)위를 바라보고 있는 모습이 눈속에
들어왔다.
그 연단위에는 서문인걸을 위시하여 일찌감치 도착한 강호의 내로라하는 고인들은 모두 모여
있는 듯 보였다.
천천히 그 앞을 향해 걸어가던 상관명이 우둑 발걸음을 멈추고 연단위의 사람들을 향해 고개를
들었다.
「 으하하하하.. 그 연단 위에 계시는 분이 서문어르신이 아니시오..? 」
갑자기 들려오는 호쾌한 웃음소리에 연단의 위아래에 포진해 있던 모든 무인들이 혼비백산 놀
라고 있었다.
이 요새를 찾아 들어오는 길은 오직 대명호(大明湖)의 호반을 지나 들어오는 외길..! 그 앞의
길목만 차단하면 어느 누구도 침범을 할 수 없는 은밀히 숨은 장소가 아닌가..? 입구의 높은
망루를 지켜 앞을 내다보면 그 누구도 가까이 할 수 없는 이곳이기에 침입자가 있을 것이라
짐작조차 하지 않고 출진(出陣)의 준비를 서두르던 서문인걸이었다.
때문에 이곳에 모여든 모든 무림인들과 단상의 인물들까지도 망루의 초병(哨兵)들만 믿고 어느
한사람 뒤돌아 보지 않는 사이, 한순간에 침입자를 맞이하게 된 상황이었다.
「 헉..! 누.. 누구냐..! 」
「 하하하.. 소생 상관명입니다. 공주와 백련채의 홍련채주께서도 함께 왔소이다..!」
「 어엇.. 네놈이 여기를 어찌 알고..? 」
「 하하하.. 서문어르신..! 강호 방방곳곳 백련의 문도들이 없는 곳이 있더이까..? 그들 모두
가 소생에게 이곳을 안내해 주었지요..! 」
「 치잇.. 그랬구나..! 그토록 내가 백련채를 아쉬워했건만..! 」
「 맞습니다 어르신..! 해서.. 우리 모두가 어르신의 거사에 동참을 할까하여 이곳을 찾은 것
이지요..! 」
「 뭐.. 동참이라..? 무엇을 동참한다는 것이냐..? 」
「 후후후.. 어르신..! 저도 권세의 맛이 어떤가 한번 알아 보고 싶어 졌지요. 어르신의 거사
에 동참을 하면 조금은 나누어 주실런지..! 」
상관명의 어투와 공주까지 함께 이곳으로 온 것을 보면 자신의 계획이 낱낱이 드러났다고 느낀
서문인걸은 상황의 반전을 시도하려 얼른 마음을 다잡기 시작했다.
「 크흐흐.. 잘되었구나..? 어차피 한번은 맞닥뜨려야 할 네놈이 스스로 찾아 들었으니 네놈을
없애고 공주를 인질로 삼으면 거사는 이미 성공한 것이나 다름없다. 여봐라.. 소림의 제자들은
산채의 출구를 봉쇄해 이놈들 단 한사람도 빠져나가지 못하게 하라..! 」
서문인걸의 눈에 보이는 상관명의 일행 모두를 합쳐도 불과 수십 명..! 자신의 휘하에는 과히
수백 명의 무인들이 대기를 하고 있지 않는가..? 그리고 자신을 비롯해 절정의 무공을 소유한
무림기인(武林奇人)가 얼마나 많이 포진해 있는가..!
(그래.. 굳이 찾아 나설 필요 없이 잘된 일이 아니냐..! 천궁(天宮)을 내세우는 저들은 상관명
과 그의 좌우에 천궁의 기(旗)를 들고 있는 구(龜)와 학련(鶴蓮) 오직 세사람..! 나머지는 모
두 오합지졸일 뿐이다.)
잠깐의 순간 상대의 전력을 살펴본 서문인걸의 마음속에는 상관명이 이끌고 있는 그들의 초라
한 인원을 보고 무럭무럭 자신감이 일고 있었다.
(흐흐흐.. 우리의 면면을 보라. 우선 혜승(惠昇)사부님, 지(智)자 돌림의 세분사형, 혜승사부
님과 버금가는 아버님, 제갈세가의 가주 제갈청운(諸葛靑雲) 그리고 숭정방(崇正邦)과 진양문
(眞陽門)의 장문인들.. 또한 그 들을 수행한 많은 제자들이 버티고 있다. 또한 소림의 절진이
저들을 둘러 포위를 할 것이다. 이만하면.. 크흐흐흐흐..!)
얼굴에 득의의 미소를 띠우며 다시 큰소리로 명령을 내리고 있는 서문인걸이었다.
「 소림이 제자들은 나한진(羅漢陣)을 펴 저들을 포위하고 철갑궁수들은 나한진(羅漢陣)의 후
방을 철통같이 방비하라..! 」
서문인걸의 입에서 고함소리가 떨어지자 넓은 장중의 무인(武人)들이 쿠구구 쿵.. 발자국 소리
를 울리며 자신들의 위치를 확보하려 달려가고 있었다. 그들의 움직임을 주시하고 있던 상관명
의 얼굴에는 잔잔한 미소가 흐르고 있었다.
* * * * * * * * * *
부산스럽던 장중이 이제는 서서히 진영을 갖추어 가고 있었다. 소림의 제자 일단이 계곡의
입구를 막아 봉쇄를 했고 넓게 둘러선 나한진(羅漢陣)은 상관명의 일행을 꼼작 못하게 옭아
매고 있었다. 그것도 부족해 그 뒤로는 철갑으로 무장한 궁수들이 모두 활에 화살을 재고 대기하고
있었다.
저편 단상위에는 서문인걸이 그 모습을 흐뭇하게 내려다보며 의자에 앉아 있었다. 반면 상관명
은 입을 꾹 다문 채 아무런 말도 없이 한발 한발 움직여 자신의 일행을 병풍처럼 둘러싼 높은
산의 언덕 아래로 슬금슬금 이동을 해 갔다. 그런 상관명의 행동을 스스로 퇴로를 차단하는 것
이라 여겨 장중의 어느 누구도 제지를 하지 않고 길을 열어 주었다.
드디어 막다른 언덕에 도달한 상관명은 일행 모두를 산 아래의 평지에 편히 앉도록 조치를 하
며 구(龜)와 학련(鶴蓮)에게만 눈짓을 하여 자신의 곁으로 다가서게 했다.
「 모두들 그 자리에 앉아서 편히 구경들 하십시오. 구(龜)야.. 학련(鶴蓮)누님.. 단단히 준비
하세요..! 」
소풍을 나온 듯 가벼운 구와 학련에게 다짐을 하는 상관명을 바라보며 그 두 사람도 싱긋 웃음을
띠고 있었다.
「 염려마세요 주군..! 구(龜)야.. 어떠냐..? 」
「 하하하.. 학련누님..! 몸에 진기가 가득합니다..! 」
세 사람이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을 바라보던 홍련채주가 앉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상
관명의 앞으로 달려 나오며 말했다.
「 궁주(宮主)님.. 왜 저는 내세우지를 앉습니까..? 저도 함께 저들을 맞겠습니다. 」
조그만 힘이라도 보태겠다고 나서는 홍련의 손을 이끌어 다시 자리에 앉게 하며 상관명은 웃음
띤 얼굴로 안심을 시켰다.
「 하하하.. 홍채주님.. 고맙소이다. 그러나 이정도의 일에 채주님께서 나설 만한 자리도 되지
않습니다. 그냥 바위뒤에 몸을 낮추고 편히 앉아 공주와 담소를 나누며 구경이나 하십시오. 」
가까이 달려드는 적들은 아무런 걱정이 되지 않았다. 그러나 공주와 백련채의 문도들이 함께
싸우고자 장중에 뛰쳐나와 이리저리 움직일 경우, 멀리 둘러싸고 있는 철갑궁수들이 한꺼번에
이들을 향해 화살을 날리게 되면 도저히 그들 수십 명을 한꺼번에 보호할 방법이 없는 것이었
다. 때문에 이들을 언덕 아래로 데려와 아예 몸을 피하게 만든 것이었다.
멀리서 상관명의 일행이 하는 수작을 바라보고 있던 서문인걸은 슬며시 화가 솟아오르고 있었
다. 스스로 배수(背水)의 진(陣)을 친 듯 산 밑 언덕 아래로 찾아들어 퇴로를 차단하고 결전의
각오를 다지는 것이라 생각한 저들이, 이제는 마치 명승고적을 찾은 유람객들처럼 노닥거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결전을 포기 한 것인가..? 아니면 또다른 복안이 있는 것인가..? 저들의
행각에 부아가 치밀어 오른 것이었다.
슬쩍 고개를 돌려 옆에 앉아있는 소림방장 지원대사(智元大師)에게 말을 건넸다.
「 사형.. 먼저 나서서 저들을 한번 건드려 보십시오. 저놈들의 행태가 좀 의심스럽습니다. 」
「 알았네.. 그럼..! 」
지원대사가 나서려 하자 서문인걸은 곁에 있는 지덕대사(智悳大師), 지공대사(智供大師)대사를
바라보며 다시 한마디를 더 거들었다.
「 혹시 모르니 두 분 사형들도 함께 나서 주십시오. 」
* * * * * * * * * *
세 사람의 소림 고승이 천천히 다가오고 있는 것을 본 상관명이 한걸음 앞을 나서며 그들을 막
아 섰다.
「 오랜만에 뵙습니다. 지덕대사대사님..! 십여 년 전 서문가에서 뵌 적이 있었지요. 」
상관명의 말에 잠시 눈을 감고 지난날의 기억을 더듬어 보던 지덕대사가 입을 열었다.
「 어허.. 네가 그때의 그 어린아이더냐..? 」
「 예.. 기억하시는 군요..! 과연 대사님은 십여년 전이나 오늘이나 하나도 다르지가 않습니
다. 오늘은 또 무슨 말씀을 하시려 소생의 앞에 나섰소이까..? 」
「 다르지가 않다니..? 그게 무슨 말이냐..? 」
「 하하하.. 대사님..! 불가의 가르침은 생명을 귀히 여기라는 것이지요..! 그 옛날 소생의 목
숨이 경각에 달렸을 그때도 대사께서는 자신의 이득만을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
상관명이 하는 말을 곰곰이 생각하고 있던 지덕대사가 흠칫 눈살을 찌푸렸다.
「 허허.. 그날 화령이 네게 한 짓을 말하는 것이로구나..! 그때는 경황이 없었다. 」
「 무공의 무(武)자도 모르는 어린아이의 목숨을 앞에 두고도 경황이 없었다..? 깨달음 이 깊
고 덕(悳)이 높으신 대사께서도 이렇듯 변명으로 일관하며 세속의 욕망에 앞장을 서고 계십니
다 그려..! 」
「 이.. 이놈이..! 」
그래도 지금의 소림에서는 가장 숭앙을 받고 있는 지덕대사(智悳大師)가 아닌가..! 자신의 이
름중 한 글자를 들먹여 가며 놀리듯 하는 상관명의 말에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르고 있었다.
그 순간 지덕대사의 옆에 서 있던 지공방장의 고함소리가 터져 나왔다.
「 지덕사제.. 무슨 말리 그리도 많은가..! 서문 사조님의 명령대로 저놈을 당장 때려눕히면
될 것을..! 어서 저놈을 꿇려라..! 」
말과 동시에 손에 들고 있던 녹옥불장을 상관명의 가슴을 향해 휙.. 내뻗었다.
- 그으응.. 위잉..!
불장의 끝자락을 타고 날카로운 한줄기 진기가 상관명의 견정혈을 향해 날아들었다. 그러나
상관명은 그 자리에 미동도 하지 않고 가만히 서서 미소만 짓고 있었다.
방장의 혼신을 다한 진기(眞氣)..! 그 속에는 소림의 무상진력이 가득 담겨져 있었던 것이 아
닌가..! 그런데 그 가공할 공력이 상관명에게 가까이 다가가기도 전에 허무하게 사라져 버린
것이다.
「 이.. 이.. 이놈이..! 지덕, 지공사제는 무엇하는가..? 어서 공격을 하지 않고..! 」
그 광경을 바라보고 있던 지덕과 지공대사도 눈이 휘둥그레졌다. 방장이 뿌려낸 소림의 공력
이었다. 상대가 아무리 절정의 고수라 하더라도 방장의 내공에 적어도 한 걸음 쯤은 뒤로 밀려
나야 되는 상황이 아닌가..! 그러나 그 강맹한 불장의 바람이 상관명의 앞으로 다가가지도 못
하고 스스로 소멸되어 버린 것이다.
놀란 가슴을 진정 시키며 세 사람이 연합을 하여 공격하기 위해 상관명의 앞으로 뛰어 들었다.
바로 그 순간..!
스르르르 땅위를 미끄러지듯 하얀 그림자 하나가 눈 깜짝 할 사이에 상관명의 앞을 막아섰다.
「 주군.. 어찌 이들을 손수 상대하려 하십니까..? 이들은 제게 맡기고 뒤로 물러나 쉬고 계십
시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