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용 무협 미완성본]月輪 1편 낙화(落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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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허리를 따라 난 숲길을 따라,
마치, 꿈에서는 볼 수 있는 풍경을 음미하며 걸었었다.
그녀가 그를 처음 본 것은, 그런 봄날이었다.
그도 그때 그녀를 처음 보았다.
그는 언젠가 그녀를 보내야 함을 알기에, 사랑하지 않으려 했고.
그녀는 언젠가 그를 보내야 함을 알기에, 조금이라도 더 일찍 사랑하고자 했다.
< 어떤 죽음 >
여인의 몸에는 공격자들이 남긴 무공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급히 도망치느라 흔적을 지우지도 못했던 것이었다.
황국(黃國)의 무공. 과거, 수많은 전장에서 맞서 왔던 누른 잡종들의 흔적이었다.
그는 그 흔적들을 쓰다듬었다.
손짓 한번에, 여인의 몸은 마치 봄바람에 흩날리는 꽃잎처럼 사라져 갔다.
눈물은 흘리지 않았다.
그는 사내가 눈물을 보여서는 안된다고 배우며 자랐다.
하지만 그 눈 안에서 한때 잠잠했던 검은색의 불꽃이 타오르기 시작하고 있었다.
사내는 자리에서 일어서 돌아섰다.
여인이 있던 자리엔 어느새 바람에 날려온 꽃잎들만 뒹굴고 있었다.
사내의 이름은 그 자신도 몰랐다.
다만 黑雲이라는 별명만이 무한에 가까운 전장에서 그의 적들을 떨게 했을 뿐....
진의 만리장성이 멀지 않은 업의 북읍에 설치된 관문의 병사들도 굶주리고 있었다. 그들도 지나가는 행인들을 약탈한다는 점에서는 도적떼와 다를바 없는 무리로 변해 있었다.
검은 경장 차림의 사내가 말을 몰고, 한 손에 강철로 된 창을 들고 북관(北關)에 들어선 것은 저녁 어스름 무렵이었다. 한여름의 더위가 아직 가시지 않아 대지는 김을 내뿜을 만큼 뜨거웠다.
" 웬놈이냐? "
관문을 지키는 병사는 무장을 하고 있는 기사(騎仕)의 출현에 적잖이 놀랐다. 발해 쪽에서 오는 고구려인은 대부분 문제를 일으키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런 공공연한 무장을 보기는 처음이었다.
" 말에서 내려 검문에 응하라! "
그다음 순간, 병사는 갑자기 주변이 어두워졌다고 느꼈다. 알 수 없는 불안감이 가슴을 엄습했다. 말 위의 사내는 창을 늘어뜨린 채 계속해서 천천히 다가 오고 있었다.
" 거기 서라! "
활을 겨누는 병사의 손에 땀이 배였다. 왠지 뭔가 하지 않아야 할 일을 하는 느낌이었다.
하북성 절도사의 관인으로, 원래 무림인이며 유명한 추적자였던 금표자(金彪子) 위지량은 처참한 광경에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그의 눈앞에는 지금 여기저기 널브러진 병사들로 보이는 살덩이가 흩어져 있는 산산히 부서진 북관의 잔해가 펼쳐져 있었다.
" 이자는 그야말로 엄청난 솜씨를 가졌군요. 일격에 관문을 두조각 냈습니다. "
위지량은 추종술에도 대가였지만, 무공을 알아보고 상황을 추정하는데에서도 대가였다. 그래서 관에 고용된 지금은 하북성의 성주인 양세걸 휘하의 수사관으로 일하고 있었다.
그는 업의 성주이자 절도사 휘하의 4명의 군사 책임자중 한명인 대사(大事) 채경이 북관의 전멸소식을 듣고 놀라서 달려온 것을 보고 속으로는 비웃었지만(어쨌거나 그는 무공이 아니라 주색 잡기에 더 능했으므로) 자신이 알아낸 상황에 대해 소상하게 설명해 주고 있었다.
" 그래, 흉수가 무공을 사용했다면 사문이 있을 것이 아닌가, 무공의 종류를 알아 냈는가? "
그 당연한 질문에, 위지량의 안색이 약간 흐려졌다.
" 그것이... 이게 전혀 무공의 흔적같아 보이지 않습니다. 아니, 적어도 제가 아는 무공은 아닙니다. "
위지량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이 들었다면 졸도할 소리였다.
그가 금표자라는 별호로 무림을 휘젓고 다닐때, [천하에 그 종적을 쫒지 못함이 없고, 천하에 그 무공을 알아보지 못함이 없다]라는 수식어가 따라 붙었을 정도로, 위지량은 무공에 대해 박식했다.
" 무슨 말인가? 그럼 흉수가 무공을 사용하지 않았다는 말인가? "
" 제가 보기엔 그렇습니다. 아니면... 흉수가 중원의 무공을 사용하지 않았거나요. "
채경이 안색이 변했다. 그의 뇌리에 떠오르는 이름은 하나 뿐이었다. 고구려. 고구려는 오래 전에 당에 멸망해 발해로 바뀌었지만, 아직도 고구려라는 이름과 검은 색만 보면 오그라드는 것이 당나라인들의 본능이었다.
무림인이건 관인이건 거의 차이나지 않는, 본능적인 죽음에 대한 두려움. 고구려는 당에게 그것이었다.
" 절도사께 파발을 보내야겠네. "
그는 하북성의 절도사인 북경의 양세걸에게 급전의 파발을 보내 사태의 위급을 알렸고, 위지량에게는 고당주에서 가장 민첩한 병사들을 딸려 흉수를 추적하도록 조치했다. 그리고 그 자신은 주변의 읍성에서 병사들을 모으기 시작했던 것이었다.
위지량은 어렵지 않게 흉수가 타고 왔으리라 추측되는 말의 발자국을 찾아낼 수 있었다.
" 일부러 천천히 가는 것인가... "
말의 발자국은 보폭이 크지 않았다. 보통의 인간이 느리게 뛰는 속도 정도의 걸음으로 남쪽으로 향한 발자국에서, 위지량은 왠지 모를 두려움을 느꼈다.
그는 일부러 그에게 쫒아와 보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잔인함. 그 아름다움.(본편)>
관문 위의 병사의 손이 떨리는 것이 느껴졌다.
그가 나고 자란 나라에서는 어린아이 조차도 그런 식으로 벌벌 떨지 않았다.
팅!...
푸슉.
화살이 날아왔지만, 그나 말에게 조차 맞지 않고 땅바닥에 꽂혔다.
이제 시작이다.
그는 말의 잔등에서 창을 들어 그대로 관문을 향해 비스듬히 내리 그었다.
그그긍... 콰콰콰...
관문 위의 병사들까지 그의 일격에 두토막이 났다.
" 히이익!... "
창이 닿기 직전, 병사의 목에서 날카로운 비명이 새어 나왔다. 그 비명소리를 듣고 관문 아래의 숙소에 있던 병사들이 달려나왔다.
어느정도는 그걸 기대하고 기다린 것이었다.
붉은 석양이 대지를 물들인 가운데, 말 위에서 한손에 창을 잡고 내려다 보는 그의 형체는 잘 분간되지 않았다.
병사들은 소란스럽게 창을 휘두르고 활을 쏘았지만, 그가 가만히 서서 맞상대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누구도 그의 주변에조차 접근할 수 없었다.
그럴 수 밖에, 그와 그들은 살아온 세계가 달랐다. 전투원으로서의 수준이 아득한 차이가 나는 것이다.
그는 순수하게 살육을 즐겼다. 비명과 피를, 잘리는 고기의 느낌을.
무(武)을 사용하지 않았음에도, 그가 백여명의 병사들을 도륙하는 데엔 차 한잔 마시는 시간도 걸리지 않았다.
장씨는 고당주에서는 유명한 무림세가였다. 표국을 운영하고 있었고, 재물도 많이 모았다. 그리고 그 재물로 쓸만한 무사들도 많이 고용하고, 보물도 많이 사들였었다.
그리고 무림성이 무림을 일통한 후, 하북에서의 무림성의 분타 역할을 맏아 몆몆의 장원을 경영하고 있었다. 워낙에 대단한 세력이라, 관아도 그를 함부로 대하지는 못했다.
장담하건데, 장세걸의 집안을 건드릴 인물은 하북에서 전무했다.
그런데 그 장세걸이 죽었다. 백주 대낮에, 수백명의 가솔들과 함께 학살당한 것이었다.
관문에서 흔적을 찾아 내려오던 위지성은 장세걸의 장원을 발견하고 경악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장세걸의 장원은 피바다였다. 무공이 강하기로 유명한 장씨표국의 위사들은 시신의 형체를 알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잘라지고 짓이겨져 있었고, 장세걸 본인을 포함해 전 가솔들이 도주조차 해 보지 못하고 그자리에서 참살당해 사방에 흩어져 있었다.
흉수는 노인도, 아이도, 여자도 용서하지 않았다.
마침 혼례를 하고 있었던 듯, 새신부의 붉은 복장을 한 고깃덩어리가 눈에 들어오자 위지량은 차마 보지 못하고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여기서도, 그가 알고 있는 무공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그는 말을 탄 채로 대문으로 다가갔다. 불청객이란 것을 감지한 위사가 그를 제지하기 위해 위사가 움직였다.
제법 무공을 배운 흔적이 그의 움직임에 배어 있었다.
그는 다시 창을 휘둘렀다.
" 핫핫하! 좋은 날이야 좋은 날! "
결혼식 준비에 분주한 가솔들을 돌아다보며, 그는 흥겹게 무릎을 쳤다. 신랑은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
바로 그 때, 뭔가가 엄청난 속도로 장세걸의 눈앞을 스치고 지나갔다. 무엇인지 깨닫기도 전에 따뜻하고 축축한 무언가가 얼굴에 흩뿌려졌다.
피였다.
터엉!...
위사는 아직도 자기가 무슨일을 당했는지 알 수 없다는 표정으로 6척이 넘는 길이의 강철제 장창에 꼬치 꿰이듯이 꿰인 채 기둥에 박혀 사지를 벌벌 경련하고 있었다.
꺄아악!
우아악!
으허허억!
비명이 나는 곳을 돌아보니 웬 검은 옷을 입은 자가 마찬가지로 새까만 털을 가진 준마 위에 타고 문을 들어서고 있었다.
쿠쿵...
그가 지나간 뒤로, 거대한 장원의 정문이 소리없이 잘려져 내려앉았다.
무슨일인지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위사가 들고 있던 장검을 빼앗아 든 침입자는 검을 닥치는 대로 휘둘렀다. 보이지도 않을 정도의 속도였다.
흐아악!
으악!
하객으로 참석한 사람들도, 위사도, 장원의 식솔들도, 모두 베어져 날아가고 있었다. 흉수(이제 그리 불러야 하겠지만)의 손속은 잔인하고, 무식할 정도로 강했다. 검에 맞은 사람의 몸뚱아리가 산산조각이 나며 날려가는 것은 무림에서 잔뼈가 굵은 장세걸로써도 처음 보는 광경이었다.
사실은 그가한번이라고 생각한 순간에 이미 수십번의 칼질을 하고 있는 흑운의 초인적인 기량 탓이었지만.
두 팔이 잘린 장세걸은 고통에 울부짖었다. 그의 눈 앞에 바닥에 떨어진 자신의 두 팔이 아직도 검을 잡은 채 벌벌 경련하고 있었다.
흑운은 대답하지 않았다. 다음 순간, 그의 머리가 박살나서 날아갔다.
" 살...살려주세요... "
장세걸의 딸은 새신부의 정장을 한 채 저택의 붉은 기둥에 기대어 앉아 있었다. 벌벌 떨고 있는 그녀의 아래로, 공포에 질려 흘린 액체가 비쳤다.
흑운은 검을 휘두르고, 돌아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