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백작著/ 서검연풍록 (書劍戀風錄) 제 37 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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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낭만백작著/ 서검연풍록 (書劍戀風錄) 제 37 부 **
제 12 장. 반간지계(反間之計) 2.
서문인걸(西門仁杰)은 자혜공주(慈惠公主)가 자신이 한 말에 한동안 대답을 하지않고 머뭇거
리고 있는 모습을 보며, 분명 이 공자에게 조언을 구하는 것이라 생각하며 상관명의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그러나 두사람의 표정에는 조그만 변화도 없이 잠깐의 시간이 흘러 지나갔다. 그런 후 곧 자
혜공주(慈惠公主)가 입을 열었다.
「서문(西門)대인, 지금 조정에는 조평환(趙平換)의 눈과 귀가 가득합니다. 조정에서 조평환
(趙平換)을 실각시키려는 거사가 일어난다면 그 즉시 대군(大軍)을 거느리고 있는 그의 아들
조익균(趙益均)의 귀에 들어갈 것입니다. 그 감당은 어떻게 하려 합니까..?」
쉬 대답을 하지않고 한동안 즉답을 피한 채 심사숙고한 공주의 물음이었다. 틀림없이 염려를
해야만 하는 상황을 묻고 있는 것이었다.
「예.. 대답을 하지요. 이미 오래전부터 그 점을 생각해 왔습니다. 만약에 조정에 분란이 일
어, 위급한 상황이 벌어진다 하더라도 어떻게 하면 국경을 지켜는 대군(大軍)은 움직이지 못
하고 그곳을 벗어나지 못하게 할 수 있을까..? 혹여 국경에서 더 위급한 분란이 일어나게 된
다면 어떻게 될까..? 여러가지 방법을 깊이 강구하고 있습니다.」
서문일걸의 말을 조용히 듣고 있던 상관명의 짙은 눈썹이 그 순간 꿈틀거렸다.
「그래도 익균(益均)이 아버지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군(軍)을 몰고 황궁(皇宮)으로 달려 온
다면 어찌하렵니까..?」
부친의 목숨이 경각(頃刻)에 달린 일..! 있을 수 있는 가능한 상황일 것이다. 그러나 서문인
걸(西門仁杰)의 어조는 단호했다.
「군사를 움직이면 호시탐탐 침공을 노리는 변방의 국가들에게 국경(國境)을 열어주는 행위가
됩니다. 사(私)를 위해 군사(軍士)를 움직인다면 그건 나라에 대한 반역(反逆)이지요..!」
「반역이라..? 그 말은 옳은 말입니다.」
아버지를 살리기 위하여 나라를 내어 주어서는 안될 일..! 역시 자혜공주(慈惠公主)는 황실
(皇室)의 일원임에 틀림이 없었다.
「그러나 그 조차도 무시하고 국경의 수비를 포기한다면..?」
재차 묻고 있는 자혜공주(慈惠公主)의 물음에 서문인걸의 얼굴에는 희미한 미소가 지나며 대
답을 했다.
「국경을 벗어나는 즉시 죽음이 있을 뿐입니다. 우리의 군세(軍勢)로 국경의 수비를 대신하면
될 것이외다.」
서문인걸의 말속에는 반역을 도모하는 행위는 그 목숨을 거둔다 해도 당연한 일이 아니냐는
뜻이 내포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 말의 뒤에는 국경을 담당할 만한 서문인걸 자신의 세력이
존재한다는 것을 은연중 과시하는 말이 아닌가..?
서문인걸의 대답을 듣고 있던 그 사이, 공주의 귀에는 다시 상관명의 전음(傳音)이 들려왔다.
(흔쾌히 지휘권을 양보하겠다고 말하시오.)
슬쩍 돌아본 상관명의 얼굴에 이제는 서문인걸(西門仁杰)의 복안(腹案)을 모두 알겠다는 듯한
표정이 나타나 있었다.
「서문대인.. 좋습니다. 그 상황이 되면 나의 휘하에 있는 어림군(御林軍)의 지휘를 대인께
맡기지요.」
「오오.. 공주님, 고맙습니다. 이렇게 선뜻 승락을 해 주시니 천군만마(千軍萬馬)를 얻은 듯
합니다. 그럼 저는 나머지 준비를 위해 이만 물러갈까 합니다.」
생각보다 쉽게 응해주는 자혜공주를 바라보며 서문인걸의 표정은 이제 한고비는 넘겼다는 안
도의 표정이 가득했다. 공주에게 얻을 것은 모두 얻었다. 이제는 그 뒤의 일처리를 위해 서둘
고 있는 서문인걸의 모습이었다.
「예.. 그럼, 참.. 서문대인, 내가 따로 준비해야할 일은 없습니까..?」
자혜공주의 말에 서문인걸은 자신에 찬 표정으로 고개를 흔들었다.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공주님의 염려대로 저는 국경의 일을 준비해야 겠습니다. 더 이상 지
체할 시간이 없으니 이만 돌아가겠습니다. 아참.. 마음이 조급해 한가지를 빠뜨렸습니다.」
「예.. 서문대인, 주저말고 말씀하십시오.」
「공주님.. 지금 조평환이 사병(私兵)처럼 움직이는 혈잠령은 원래 황궁(皇宮) 비밀고수의 집
단인 황성사(皇城司)의 밀부(密部)입니다. 그러하니 공주님께서 황제폐하께 말씀을 올려 그
지휘권을 회수해 두는 것이 옳을 듯 합니다.」
조평환이 권력을 휘둘는 기반이 가공할 무력을 가진 그 혈잠령에 기인하는 것이었다. 때문에
서문인걸의 말은 혈잠령의 힘을 무력화 시켜야만 조평환을 제거하는 거사가 수월하게 이루어
질 것이라는 언질이었다.
「알겠습니다. 최선을 다해 성사시켜 보지요.」
「고맙습니다 공주님. 그럼..!」
자혜공주에게 하직의 인사를 하고 문을 나설 동안 상관명은 앉은 자리에서 서문인걸에게 목례
만 한 후 아무말 없이 그의 등 뒤만 바라보며 생각에 잠겨있었다.
* * * * * * * * * *
모두 서문인걸을 배웅하고 다시 운향원(雲香院)의 실내로 들어올 때까지도 상관명은 무엇인가
깊이 생각에 젖은 듯 그 자리에 꼼작 않고 앉아있었다. 그런 상관명의 곁으로 학련(鶴蓮)이
조용히 다가갔다.
「주군.. 전서구가 또 날아왔습니다.」
「어.. 그래요. 언제 날아 왔었습니까..?」
「예, 주군.. 서문대인과 한참 이야기를 나누던 그때 였습니다.」
자혜공주와 서문인걸이 대화를 나누고 있던 그 시각 운향원(雲香院) 주변을 돌며 경비를 하고
있던 자신에게 날아든 전서구의 연락을 보고 학련(鶴蓮)은 초조하게 회합이 끝나기를 기다리
고 있었던 것이었다.
상관명이 모두 자리에 앉기를 권한 후 그들의 눈앞에 학련(鶴蓮)에게서 전해 받은 서한(書翰)
을 펴 보였다.
ㅡ 서문인걸은,
황보세가(皇甫世家)에 휴양차 머물고 있는 황보승(皇甫承)을 찾을 듯 합니다. ㅡ
누군가에게서 전해진 또 다른 연락인 것이었다.
「상관오라버니.. 이렇게 강호의 소식을 전해오는 사람이 누구입니까..?」
궁금한 표정으로 묻는 자혜공주를 바라보며 학련(鶴蓮)이 싱긋 웃었다. 그런 두사람을 보며
상관명이 공주에게 대답을 했다.
「공주.. 그 사람은 서문인걸이 여기에 왔다는 사실도 모릅니다. 다만 그의 움직임을 짐작하
여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는 것이지요. 또한 그 사람은 서문인걸과 우리가 서로의 진심을 살피
려 노심초사(勞心焦思)하고 있다는 사실도 모르고 있을 것입니다. 서문인걸을 아직은 영걸로
생각하고 있겠지요. 그 사람이 서문인걸을 보는 관점이 분명해 질 때까지 그냥 모른 척 계시
는게 좋을 듯 합니다.」
상관명은 혹시 공주가 서운해 할까 자상한 설명을 해준 것이었다.
「아이.. 오라버니. 저에게는 그 사람이 누군지 밝혀 주셔도 괜찮은데..!」
그래도 공주는 자신에게만 감추는 것이 아닌가, 그 마음은 서운할 수 밖에 없어 상관명에게
투정을 부려보고 있었다.
「그보다 공주..! 서문인걸의 심계(心計)를 짐작할 듯 합니다. 지금 곧바로 그의 뒤를 따라가
그의 행적을 살펴야 겠습니다. 공주는 지금 즉시 궁으로 돌아가 조평환과 가까운 주변 인물들
의 움직임을 면밀히 감시해 주십시오.」
상관명은 황궁내에 연결되어 있는 서문인걸의 동조자들 움직임을 파악하기 위해 자혜공주에게
그 일을 당부하고 있었다.
「그리고 학련(鶴蓮)누님은 백련채의 홍채주님과 함께, 전해오는 소식들을 취합해 주십시오.
아참..! 이번의 일이 끝나면 제가 황제(皇帝)를 만나뵈었으면 합니다. 공주.. 부탁드리오..!
그럼 다녀 와서 뵙겠습니다. 구(龜)야.. 내뒤를 따르라..!」
* * * * * * * * * *
그 시각..!
개봉(開封) 비연선원의 운향원(雲香院)을 나선 서문인걸은 산동성(山東省) 제남의 동남쪽 천
불산(天佛山)아래에 위치한 황보세가(皇甫世家)를 향해 밤을 도와 달리고 있었다. 그곳에 머
물고 있는 황보승(皇甫承)을 만나 담판을 하기 위함이었다.
(그참 이상하다. 그리 쉽게 응하리라 생각을 하지 않았는데 공주가 그 청년에게 어떤 조언을
들었길래 쉬 양보를 했을까..? 그들이 아직 완벽히 내말을 따르지 않는 것을 보면 미혼독(迷
魂毒)에 제 대로 중독된 것 같지는 않다. 그리고 그 청년의 정체 또한 무공을 아는 듯 모르는
듯 도저히 갈피를 잡을 수가 없다. 어쨌던 공주가 그리도 의지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 극히 조
심해야만할 인물임이 분명하다.)
머릿속으로 생각하며 조급한 마음에 절정경공을 펼쳐 달려가는 서문인걸의 뒤로 산길의 아름
드리 나무들이 휙.. 휙.. 지나가고 있었다.
* * * * * * * * * *
황보세가(皇甫世家)의 장원은 그 화려했던 명성을 뒤로하고 고요한 적막에 잠겨있었다. 한동
안 황보승(皇甫承)의 손에 실권이 쥐어져 있을 그때에는 비록 자신이, 이 본가의 자리를 비우
고 개봉의 경처(京處)에 기거를 하고 있을 시에도 이곳 세가는 식객들로 발디딜 틈이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자신이 직접 이곳에 와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 지금 이 순간에도 세가의 문들
드나드는 사람이라고는 어쩌다 지나던 과객이 목을 축이러 찾을 뿐이었다.
「허허.. 인정(人情)이란 이렇게 무심(無心)한지고..!」
황보승(皇甫承)은 뜰앞의 연못속에 피어있는 백련화(白蓮花)를 바라보며 세월무상(歲月無常)
을 한탄하고 있었다.
「쯧쯧.. 그놈이 함께와 이야기라도 나누었으면 좋았으리라 만은.. 이 아비의 깊은 속도 모르
는 놈..!」
아끼는 아들 황보정(皇甫程)이 동행을 하지 않은 것을 못내 아쉬워 하며 정원의 경치를 바라
보고 있는 황보승(皇甫承)의 곁으로 딸 여경(如璟)이 살며시 다가왔다. 황보여경(皇甫如璟)은
휴양차 이곳 세가에 와서 부쩍 외로움에 젖어있는 부친의 곁에서 말벗이 되어주고 있는, 황보
승의 유일한 말동무인 것이었다.
「아버님.. 손님이 찾아 오셨습니다.」
「누가 이곳까지 나를 찾아왔단 말이냐..?」
「낙양의 서문대인이십니다.」
「어허.. 이 먼곳까지..? 어서 안으로 뫼시어라..!」
앉아있던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재촉하는 황보승(皇甫承)의 말에 부리나케 대문앞으로 달려
간 여경(如璟)이 서문인걸(西門仁杰)을 안내해 들어왔다.
「어이구.. 이 누추한 곳까지 어인 일이신가..?」
이곳에서 적적히 지내던 자신을 찾아온 손님이라 반갑게 맞이하는 황보승(皇甫承)을 보며 인
사를 건네는 서문인걸의 표정은 얼굴에 웃음은 보이고 있으나 그의 온몸을 감싸고 있는 심각
한 분위기는 숨길 수가 없었다.
「평장사(平章事)어른.. 서문(西門)이 문안드립니다.」
「어서 이리로 드시게. 오래전 조정에 출사했을 때 보고는 이게 얼마만인가..?」
「예. 그동안 격조했습니다. 오늘은 평장사(平章事)어른에게 긴히 드릴 말씀이 있어서 찾아
뵈었습니다.」
말을 하며 세가의 주변을 유심히 둘러보는 서문인걸의 얼굴을 바라보던 황보승(皇甫承)은 심
각하게 주위를 살피는 그의 표정에서 무언가 비밀리에 할말이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아 조그만
목소리로 말했다.
「서문대인.. 안으로 드세나..! 여경(如璟)아 집 주위에 잡인을 금하며 가솔들도 내실의 접근
을 막아라..!」
안채로 안내를 받은 서문인걸은 황보승(皇甫承)이 자리를 잡아, 앉기를 권하는 그 순간도 기
다릴 여유가 없다는 듯 상체를 내밀며 입을 열었다.
「평장사(平章事)어른.. 이제 조정을 혁신(革新)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헉.. 이사람 그게 무슨 말인가..? 천천히 숨이나 좀 돌리시게..!」
서문인걸(西門仁杰)의 입에서 급하게 튀어나온 말이었으나 가벼이 들을 말은 아니었다.
조정의 혁신(革新)이라..! 그 말의 뜻은 자신을 앞세워 그 어느 세력을 제거하자는 충격적인
말이 아닌가..!
황보승(皇甫承)은 슬며시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가 여경(如璟)을 찾았다.
「얘야.. 주변을 살피라 일렀느냐..?」
「예.. 아버님.」
「잘했다. 그리고 내실의 앞은 여경(如璟)이 네가 지켜 어느 누구도 접근을 못하도록 해라.」
「알겠습니다. 아버님..!」
부친의 말에 황보여경(皇甫如璟)도 비밀을 지켜야 할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라 생각해 긴장을
하며 대답을 했다.
주위를 단단히 단속을 하고 다시 내실로 돌아와 서문인걸(西門仁杰)의 앞자리에 앉은 황보승
(皇甫承)이 입을 열었다.
「이제 마음 놓고 말을 해도 되네. 그래 그 말이 무슨 뜻인가..?」
서문인걸(西門仁杰)도 황보승(皇甫承)의 조심스러움에 놀라고 있었다. 어쩌면 늙고 힘없어 자
신의 보신(保身)만을 생각하는 노인이라 여겼던 스스로의 생각은 잘못이 아닌가..? 혹시 때를
기다리고 있는 잠룡(潛龍)이었던가..? 자신이 내밷은 말은 듣는 그 순간, 황보승(皇甫承)의
날카롭게 반짝이는 눈초리와 문밖을 나서 주변을 단속을 시키는 그의 행동에 잠시 당황한 서
문인걸(西門仁杰)이었다.
그러나 황보승(皇甫承)을 자신의 야망(野望)속으로 끌어들이려면, 방금 내밷은 말을 자세히
설명을 하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예.. 평장사(平章事)어른. 아무런 능력도 재주도 없는 조익균(趙益均)을 제거하고 그자리에
어른의 자제인 황보정을 앉히면 어떻겠습니까..?」
「어엇.. 뭐.. 뭐라했는가..?」
갑작스러운 말에 깜작 놀란 황보승(皇甫承)이 그 말을 던진 서문인걸(西門仁杰)의 진의가 무
엇인지를 알아 보려는 듯 지긋이 서문인걸의 눈을 들여다 보고 있었다.
「하하하.. 뭘 그리 놀라십니까..! 그 옛날 평장사어른과 저의 가친이 다짐한 언약도 있지 않
습니까..?」
「허허허.. 전 왕조(王朝)때의 약속을 어찌 그대가 들먹이는가..?」
후주(後周)의 명군(明君) 세종(世宗)이 승하(昇遐)한 후 나라의 명운이 다해 무너져 가던 후
주의 재상이었던 서문인걸의 부친인 서문상현(西門相賢)과 황보승(皇甫承)..!
그 한사람은 낙양의 서문가에 은퇴를 하여 노후를 보내고 있었고 황보승(皇甫承)은 신왕조 송
(宋)의 개국(開國)에 일조를 하여 오늘까지 온 것이었다.
「그때 두분 어른께서는 나라를 위해 진충보국(盡忠報國)을 하자고 굳게 약조를 하신 분들이
아니십니까..!」
서문인걸은 그 혼란스러웠던 시기, 서로 다른 길을 걸어온 두사람의 인연을 이야기 하고 있는
것이었다.
* * * * * * * * * *
서문인걸의 입에서 전 왕조(王朝)때의 약속이란 말이 흘러나오자 황보세가(皇甫世家)의 지붕
위에 납짝 업드려 실내의 대화에 귀를 기울이던 두 그림자 중 한 사람의 눈에서 섬광(閃光)같
은 눈빛이 한순간 번쩍이며 지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