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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설 회원투고] 고추밭 이야기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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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283 회 작성일 23-12-29 19:1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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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여름 백호부대 정문 앞이었다. 아 드디어 끝났구나!


씨 발.. 으.. 지겨웠다. 그동안 악.. 캭.. 퉤..


동기인 현수 놈과 난 2년여 동안 있었던 지옥문을 나오며 소리 질렀다.좆 배이 까라 새끼들... ㅋㅋ뜨거운 햇살이 눈살을 찌푸리게 했지만 기분만큼은 시원했다.그것은 오늘이 나의 길고 길었던 군 생활에 종지부를 찍는 날이어서 그럴 것이다.


야! 버스터미널까지 타고 가라.. 부모님이 데리러 오신 단다.현수 놈이 말했다.이 새끼가 빠졌네.. 뭐 하러 이런 산골에 부모님오시라고 했냐?..그냥 버스타고 갈 것이지.. ㅋ ㅋ뭐 임 마.. 오신다는데 어 쩌 냐? ㅋ ㅋ 담배하나 줘 바...10분정도 기다리니 저 멀리서 검은색 차량이 산길을 올라오고 있었다.오셨다. 가자.. 현수의 부모님 차에 타면서 인사를 드렸다.


안녕 하세요.엄마.. 내 동기 광호.. 면회 와서 저번에 한번 봤지?...버스터미널 까지만 태워줘.. 아..광호였나? 전역 축하해.. 네..감사 합니다.현수의 어머니였다.엄마.. 아빠는? 현수가 조수석에 앉아 수첩을 꺼내더니 무언가를 적으며 물었다.아빠가 여기 올 시간이 어디 있어?.. 바빠 죽겠다는데..


현수는 아무렇지 않은 듯 다 적은 수첩을 찢으며 나에게 건 냈다.야.. 이거 우리 집 주소랑 전화번호다.. 고향 내려가면 꼭 연락하고..


언제한번 놀러와.. 알았어..난, 현수에게 받은 종이를 지갑에다 꽂아두면서 운전석의 현수 어머님을 훔 쳐 보았다.


현수어머님은 굉장한 미인이셨다. 군대에서 현수 녀석 관물 대에 있는 어머님 사진을 처음 보았을 때 무척 놀랐었고... 면회 오셔서 실물을 처음 보았을 때..



하얀 피부에 늘씬한 몸매에 나도 모르게 얼굴을 붉히고 말던 기억이 났다.현수 녀석은 운전하는 어머니와 싱글벙글 웃으며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그래서 이놈하고 막판에 영창 갈 뻔 했다니깐.. ㅋㅋ호 호..다행이네..


근데... 아까 이야기 들어보니 광호는 고향 내려가는 거야?고향이 어디니?" 내가 심심해 보였는지 현수어머님께서 말을 걸어주셨다.아.. 네.. 시골이에요 ㅎㅎ엄마.. 광호 이놈 완전 촌놈이야... 군대에서 맨손으로 뱀 잡는 거 보고 놀랐다니깐.. ㅋㅋ어머.. 그러니?.. ㅎㅎ 그럼 부모님모시고 농사짓는 거니? 힘들 텐데..아.. 네.. 당분간요.. ㅎㅎ


더 물어보시려는 현수어머니를 현수가 눈치를 주며 말렸다.아무래도 현수는 나의 아버지 이야기가 나올 것 같으니 그러는 것 같았다.나의 아버지는 내가 상병 때 돌아가셨다.


술을 너무 좋아하셨던 아버지는 간암이었고.. 난 휴가를 내 집에 다녀왔다.


그때 어머니는 나를 안고 엄청 울었었다.현수의 어머니를 보니.. 지금쯤 땡볕아래에서 홀로 밭일을 하시는 어머니가 생각나 가슴이 아려왔다. 잘 가라.. 임 마.. 꼭 연락하고...그래.. 고마워... 어머님 태워주셔서 감사해요.뭘.. 그래,.. 고향 잘 내려가고.. 현수말대로 언제한번 놀러와~


네.. 감사 합니다.


터미널에서 내린 난 현수와 작별인사를 하고 버스에 올랐다. 버스에 올라타자마자 자리에 앉아 눈을 감았다.


다음 내릴 터미널까지는 3시간이나 걸렸기 때문이다.우리 집은 3시간 뒤 내릴 터미널에서 읍내로 들어가는 버스를 타고 2시간...읍내에서 마을버스를 타고 40분이나 더 가야했다.눈을 감았지만 잠이 오지 않았다.


버스 창밖으로 빠르게 지나가는 풍경들을 보며 지난 시간들을 생각했다.공고를 졸업하자마자 서울 공장에서 1년 동안 일하고.. 입대했다.


군 생활은 촌놈인 나에게 그렇게 어려울 것도 없었지만.. 정신적으로 힘든 시간이었던 것 같다.상병 때 아버지께서 돌아가시고 너무 힘들었지만 어머니의 편지와 누나들이 있었기에 버틸 수 있었다.


두 명의 누나들은 서울로 시집을 가서 잘 살고 있었고.. 문제는 어머니였다.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홀로 시골에서 일하시는 어머니...


그런 어머니를 위해서 난 고향으로 내려가기로 결정했던 것이다.원래 전역하면 예전에 일하던 공장으로 다시 들어갈 생각이었지만 말이다.


읍내에서 마을버스를 기다리는데 뒤에서 누군가 나를 불렀다.광호 아이가? 뒤를 돌아보니 용재 형이었다.어?.. 형.. 이 새끼.. 이번 달 전역이라더니 오늘이었냐?응..ㅎㅎ.. 축하한다... 임 마.. 내 차타고 들어가자.용재 형은 고등학교 때까지 2년 선배였다. 쭉 같은 동네에서 자란 용재 형과는 어렸을 때부터 아주 친했다.


용재 형은 작년에 고향으로 내려와 부모님을 도와 소를 키우고 있었다.난 용재 형이 사준 음료수를 마시며 형 차에 탔다.그럼, 서울 공장으로 안가고 여기에서 눌러 앉을 끼가?눌러앉긴 뭘... 그냥 당분간 여기 있어야지.. 어머니도 혼잔데...그래.. 잘 생각했다. 임 마.. 형도 요즘 심심했는데 잘 됐네.. ㅎㅎ구불구불 먼지 나는 비포장 길을 달리며 용재 형에게 요즘 마을 이야기들을 전해 들었다.


요즘 한창 바쁘지 뭐... 고추 값이 엄청 올 랐 잖 여.. 마을 아주머니들 최 씨 할아버지 네로 고추작업 다니신다.


너희 어머니도.. 그래?그리 고, 요즘 다들 집 짓는다 난리여... 조립식건물 싸다고..


면에서 지원금도 나오고... 너네집도 다시 지어야지 임 마...


요즘 누가 나무 때냐? 빨리 돈 벌어서 어머님 집지어 드려라..ㅎㅎ 알았어..


용재 형이 마을 어귀에서 내려달라고 하는 나를 만류하고 기어코 집 아래 다리 앞까지 태워다 주었다.들어가라... 놀러 와서 소 똥 좀 치워주고 ㅎㅎ..ㅎㅎ 알았어. 형... 잘 가.. 고마워.. 용재 형에게 인사를 하고 조그마한 다리를 건너 산 중턱아래 자리 잡고 있는 집을 바라다보았다.


기와장이 군데군데 떨어져 나와 있었고.. 흙으로 발라진 벽들은 쩍쩍 갈라져 있었다.집으로 들어가니 아무도 없다는 걸 알았다. 어머니는 최 씨 할아버지네 일을 간 모양이었다.


아버지가 살아 계셨을 때만 하더라도 우리 집도 농사를 크게 지었었는데


요즘은 어머니 혼자 그 넓은 땅을 감당 못하니...


돈을 받고 땅을 빌려주면서 남의 일을 다니고 있었던 것이다. 내 방으로 들어가니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엄마가 장날에 사 오신 듯 추니 링 한 벌과 그 위 쪽지가 눈에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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