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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소설-내가 만드는 이야기

메이저리그 선수 출신인 스즈 ... - 단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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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436 회 작성일 23-12-29 09:35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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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저리거 스즈키 이치로의 죽음

“2025년 5월 7일 NHK 아침 종합 뉴스입니다. 어제 밤사이 다시 우리 일본 열도가 어제보다



5Cm 더 침하하였다고 관방장관이 말하였습니다.”난 마지막 일본에서의 뉴스에 관심을 가지고 짐을 챙기며 봤다.



난 서울의 모 신문사 일본 주재 특파원인데 일본 열도의 침하 현상이 점점 심하여 지자 다급하여진



신문사의 편집국장이 위험하다며 귀국을 서두르라는 지시에 따라 짐을 챙기며 아침 종합 뉴스에 정신을 집중하였다.



작년 그러니까 2024년 8월 13일 휴화산이던 후지산에서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며 침하가 시작이 되었다.



처음에는 하루에 몇 mm씩 침하가 되더니 점점 침하속도가 빨라져서 하루저녁에 1Cm씩 침하가 되더니



해가 바뀌면서 후지산이 화산활동을 시작하면서 그 침하정도는 더 빨라지자 약탈과 강도가 성행을 하자



일본 정부는 급기야 비상계엄령을 선포라고 자위대와 경찰을 동원하여 치안 유지에 급급하였으나



돈 있는 작자들은 가족을 동반하고 외국으로 탈출을 하였고 없는 자는 하루하루 먹고 살기에도 급급한 형편이었다.



4월 초에는 바닷가에 있는 몇 몇 도시가 완전히 바다 속으로 자취를 감추었고 주민들은 높은 산에 움막을 치며 연명을 하였다.



다급해진 일본 정부는 국제단체에 구호의 요청을 하였으나 조금 있다고 거들먹거리던 것을 기억하는 나라에서는 그 요청을 외면하였다.



심심하면 망발이나 늘어놓고 자기 합리화만 시키기에 급급하였던 일본 정부를 국제사회에서는 탐탁치 않는 눈으로 봐 오던 당연한 결과였다고



언론들은 이구동성으로 떠들고 있을 정도로 관심의 초점은 되었으나 도움을 주는 나라는 하나도 없었다.



더구나 일본 놈들의 속국으로 36년을 힘들게 살아온 대한민국의 위상이 국제사회에서 높아지자 돕고 싶은 나라들도 한국정부의 눈치 보기에만 급급하였다.



국민 대비 GNP 세계 1위에 수출 1위를 자랑하며 외환보유고 역시 제일 많은 외화를 보유하고 있고



금괴 역시 세계 최고를 보유한 한국정부에게 미움을 받는 것은 바로 국제사회에서 따돌림 받는 것과 다름이 없었기에



모든 나라들은 한국정부 눈치만 볼 뿐 어느 나라도 먼저 앞장을 서서 발 벗고 나서는 나라가 없었다.



그런데 NHK의 종합뉴스 끝에 부고가 나왔다.



“흠, 간밤에 또 누가 죽었나?”혼자 뇌까리며 짐을 챙기며 모니터에 눈을 집중하였다.



<메이저 리거 출신 스즈키 이치로(52세)>내 눈을 의심하였다.



보름 전에 나에게 자신의 일을 기사화 하지 말아달라고 애원을 하던 놈이었다.



놈은 나 보다 나이가 훨씬 많았으나 놈이 없으면 항상 난 놈을 놈이라고 불렀다.



재가 중학교에 막 올라갔던 2006년 봄 미국에서 월드베이스볼클래식이 열리기 전에 놈이



“향후 30년 동안 일본에는 절대 이길 수 없다고 생각하게 해 주겠다.”라고 말 하였을 때만 하여도



나 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우리나라와 일본의 실력 차가 현격하게 난다고 생각을 하고 있었었다.



그러나 일본에서 열린 아시아 예선전에서 우리나라에게 3:2로 패하더니 미국의 본선 2라운드에서도



일점 차로 패배하자 관중들과 자기들 선수를 향하여 화를 내는 모습을 보고 난 놈을 관심 있게 지켜보기 시작을 하였었다.



당시에 뉴스에서 월드베이스볼클래식 결승에서 투구 수 제한에 묶여서 두 명의 주전 투수가 빠진



쿠바를 10-6으로 패하게 만들고 우승을 하였다고 거들먹거리는 꼴은 정말 볼썽사나운 꼴이 보기 싫다며



아버지는 채널을 돌려 버리신 것은 나에게 놈에 대한 관심을 더 두게 만든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었다.



지금도 내 방의 낡은 스크랩북에는 놈의 기사가 낫낫이 빛을 바랜 체 장식을 하고 있다.



그러나 세월이 가면서 놈의 생각은 내 머리에서 점점 사라졌다.



그러다가 내가 일본 동경에 특파원으로 파견이 되어 오니 서울로 유학을 왔던 일본인 중에 대학 동창이 유난히 많았다.



그 동창생들이 내가 일본 특파원이 된 것을 축하한다며 축하연을 하였는데 마침 옆 자리에서 술을 마시다가



우리가 한국말을 하자 시비를 붙은 놈이 바로 메이저 리그 출신인 스즈키 이치로라는 놈이었다.



“이봐 조센징들 조용히 하지”놈이 눈을 불알이며 말하기에



“당신이 뭔데 조용히 하라고 하며 조센징이 뭐야?”일본인인 내 친구가 말하자



“뭐? 날 몰라? 메이저리그 출신 스즈키 이치로를 모르는 놈이 일본 놈이라고 할 수가 있나?”하며 삿대질을 하였다.



“호! 그래 네 놈이 그 잘난 스즈키 이치로냐? 제 1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 전에 한국에게 30년 안에



한국은 일본을 못 잡을 것이라고 한 그 스즈키 이치로가 바로 너냐?”하고 놈을 바라보며 조소 띤 웃음을 지으며 묻자



“호 조센징 주제에 기억은 좋군, 그래 그렇다 너희 한국을 4강전에서 완봉패 하게 만든 스즈키 이치로다 왜?”하기에



“정말 우스운 놈이군, 그래서 이 일본 도쿄 돔에서 패하고 2라운드에서도 패하였냐? 이치로 야구에서



완봉승도 물론 중요하지 그러나 두 번이나 패하고도 큰소리치는 네 놈이 불쌍하다, 여보게 더러운 놈과 같은 가게에서 술을 마시면



술맛 안 나겠네, 다른 곳으로 가세”하고는 난 나를 환영하려고 모인 동창들과 다른 술집으로 옮겨서 술을 마셨다.



놈과 나의 악연을 그렇게 시작이 되었다.



난 다른 취재거리도 중요하였지만 놈의 행적도 기사화하기로 마음을 먹고 조사를 시작하였다.



놈은 메이저리그에서 은퇴를 하고 일본의 한 구단에서 타격 코치로 영입을 하였으나 동계 훈련 중에



선수들에게는 훈련을 하라고 하고는 기생집을 넘나들며 못 된 짓만 하다가는 감독에게 질책을 받게 되자



오히려 감독에게 메이저리그 출신을 업신여긴다며 행패를 부리다가 시즌이 시작도 되기 전에 구단주에게



그 행각이 들어가는 바람에 해임이 되었는데 다른 구단에서도 놈의 그 행각을 전하여 듣고는 누구 하나



그 놈을 자기 구단으로 영입을 할 생각을 안 하자 놈은 우리나라 말대로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되고 말았었다.



그러다가 놈은 월드베이스볼클래식의 열풍으로 전 세계적으로 야구에 대한 붐이 일어났고 그 와중에



동남아에서도 야구 열풍이 일어나더니 동남아의 한 국가에서 프로 야구가 탄생을 하자 타격코치로 영입이 되었다.



놈은 처음에는 자기나라인 일본의 구단에서 당한 것을 생각하며 선수들을 열심히 훈련을 시켰다.



자기 버릇 개 못 준다는 말처럼 놈의 더러운 행각은 다시 시작이 되었다.



분명히 자기 나라에 처가 있고 자식이 있었으나 놈은 곳 이혼을 할 예정이라고 속이고 그의 나이 사십에 20살 먹은 현지의 아가씨와 혼인을 하였다.



놈은 자기 자식 나이 정도의 어린 여자와 현지에서 결혼을 한 것이었다.



본국의 처자식들 모르게 결혼을 한 놈의 나이는 40살이었다.



놈은 그 여자와 사이에 딸을 두었으나 리그전이 없을 때면 그 여자와 딸아이를 그 곳에 두고



일본으로 휴가를 와 마누라와 즐기는 것도 부족하여 기생집을 전전하며 놀아난 것을 나에게 발각이 되어



놈의 행각을 기사화함으로서 승진을 하였고 그 승진은 더욱더 놈의 행적을 살피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다가 놈은 작년에 그 동남아의 프로 구단에서도 해고가 되어 귀국을 하였다.



몰론 일본에 있는 본처 몰래 그 동남아에서 혼인을 한 여자와 딸아이를 데리고 말이다.



나는 놈이 일본으로 돌아오자 뭔가가 있다는 생각에 취재에 열을 올렸으나 놈이 나를 잡고 애걸복걸을 하는 바람에



취재를 중단하였고 또 마침 일본열도가 침하현상이 발생을 하자 서울의 본사 편집부장이 귀국을 명령하였으나



놈의 부고를 TV를 통하여 접하고는 뭔가 구린내가 난다고 판단을 하고 편집장에게 얼마간의 말미만 달라고 사정을 하고는



대답도 안 듣고 NHK방송국에 근무하는 사람 편으로 놈의 시신이 안치 된 병원을 알고 사진기만 달랑 들고 한걸음에 달려갔다.



난 장례예식장에 들어서며 놀라고 말았다.



명색이 메이저리그 선수 출신의 장례식장에 손님이라고는 거의 없었다.



빈소를 지키고 있는 것은 그의 부인도 아니요 본처의 아이들도 아니었다.



다만 튀기로 보이는 가무잡잡한 소녀만이 빈소를 지키고 있었다.



죄는 미워도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말에 따라 난 하얀 국화 한 송이를 헌화하였다.



“아니 메이저리그 선수 출신인 스즈키 이치로의 빈소가 왜 이렇게 허전합니까?”팔에 검은 완장을 한 남자에게 물었다.



“고인과 어떻게 아십니까?”하고 도리어 나에게 묻기에



“네, 전 대한민국 서울의 00신문사 동경특파원인 박 대호입니다”하며 명함을 건네자



“아~그렇습니까? 잠시 나가시죠?”하며 앞장을 서더니



“어이, 앞으로 이 사람 여기 출입 못 하게 막아, 알았어”하고는 내 팔을 잡고 밖으로 나갔다.



“왜? 절 출입을 못 시키게 하죠?”따지듯이 묻자



“전 오가사와라라고 하는 일본 프로야구 선수 출신입니다”하기에



“아~그래요 그런데 이유가 뭔가요?”하고 묻자



“이유는 묻지 마시고 이치로에 대한 것은 더 이상 알려고 안 하였으면 좋겠습니다, 그럼”하고는 장례식장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기도 안 찼다.



명색이 메이저리그 출신 선수의 장례식장에 그 흔한 조화 하나 안 보였고 조문객들도 없었으니 얼마나 황당하였겠는가.



그렇다고 쉽게 물러날 내가 아니었다.



난 숙소로 돌아와서 장기 취재를 계획하고 치밀하게 준비를 하여 다시 차에 기름을 가득 넣고 장례식장에 도착을 하였다.



역시 조문객은 거의 없었다.



놈의 부음을 듣고 3일 만에 놈의 시신이 영구차에 실려 화장장으로 향하였다.



영구차에는 놈의 빈소를 지키던 튀기 소녀와 오가사와라 그리고 몇 몇 뿐이었다.



난 화장장 까지 따라가 멀리서 놈의 관을 운구하는 모습을 촬영하고 지켜봤다.



놀라운 것은 일본에도 많은 언론사들이 있었으나 어느 신문 어느 방송국 한 곳에서도 취재를 안 하였다.



화장을 마치자 오가사와라가 튀기 소녀에게 유골을 들게 하고는 자신이 타고 온 차에 태우고 어디론가 향하여 달렸다.



난 거리를 두고 오가사와라가 몰고 가는 차의 뒤를 따랐다.



오가사와라는 스즈키 이치로의 유골을 우리나라로 치면 동해바다요 놈들이 부르는 명칭으로는 일본 해에 뿌릴 작정인 모양이었다.



하긴 태평양 바다 쪽의 침하연상이 심하여 해변 가에 출입을 통제하는 마당에 감히 태평양 연안에



뿌릴 엄두를 못 내고 침하현상이 덜 한 동해바다에 뿌리지 아니하면 마땅하게 뿌릴 곳이 없었을 것이다.



몇 시간을 달려 나의 예측대로 오가사와라는 동해바다가 보이는 언덕에 도착을 하였고 길 가에



차를 파킹하고는 튀기 소녀와 함께 스즈키 이치로의 유골이 든 함을 가지고 내리더니 바닷가



바위 위로 올라가 유골함을 풀고는 유골 가루를 튀기 소녀가 바다에 뿌리자 오가사와라는 미리 준비를 한



하얀 국화송이를 바다에 던지면 눈시울을 닦는 모습을 난 망원렌즈가 장착이 된 카메라로 연방 찍었다.



기자란 그렇다.



정확한 취재원의 소스가 있더라도 그 소스가 특종감이 될 가능성이 있느냐 없느냐는 기자 자신의 느낌으로 판단을 한다.



난 분명히 특종 감임을 느꼈다.



아무리 그의 행동이나 행실이 더럽다 하여도 명색이 메이저리그 출신 선수의 장례가 이다지 초라하다면 뭔가 그 이유가 있음이 분명하였다.



동남아에서 비밀리에 결혼을 한 것이 발각이 되어 본처에게 이혼을 당하였다고 하나 그의 본처에게서 낳은 자식들도



하나 참석을 안 하였다는 사실만으로도 뭔가 구린 냄새가 풍기는 것은 바보가 아닌 이상 감지를 할 수가 있었다.



더구나 그의 빈소에 들렸다가 카메라와 취재 준비물을 숙소에 가지러 가서 행여 다른 어떤 새로운



소스라도 캐 볼 량 평소에 친분이 있던 일본의 신문사 기자에게 넌지시 물었으나 대답은 회피하고



엉뚱한 이야기만 한 것이 나를 더 스즈키 이치로의 주검에 대한 궁금증을 유발하게 만들었고



그 궁금증은 침하현상으로 무정부 상태에 이른 일본에서 떠나지 못 하고 취재에 열을 올리게 만든 것이었다.



오가사와라는 계속 눈물을 흘리며 튀기 소녀가 유골 가루를 무표정하게 뿌리는 것을 보고 있었다.



이상하다!



이상하다!



난 사진을 찍으면서도 무언가 석연치 않은 튀기 소녀의 모습을 보며 생각을 하였다.



명색이 아빠의 유골을 부리면서 눈물 한 방울 안 흘리는 것은 더 더욱 구린 냄새를 풍기는 것이었다.



오가사와라는 튀기 소녀가 유골을 다 뿌리자 바위 구석으로 가서 유골함을 불에 태우고 튀기 소녀를



다시 차에 태우고 출발을 하자 나 역시 오가사와라의 차와 일정한 거리를 두고 계속 미행을 하였다.



그리고 한참을 달려서 별장이라고 하기에는 초라해 보이는 허름한 산허리에 위치한 곳에 도착을 하더니



튀기 소녀가 내리자 오가사와라도 함께 내리더니 튀기 소녀의 등을 두드리며 뭐라고 한참을 말하더니 다시 차를 몰로 가버렸다.



바로 튀기 소녀를 따라 들어가 사연을 듣고 싶었으나 조금은 진정을 할 필요를 느끼고 창문을 통하여 안을 봤다.



소녀는 시장기가 느껴지는지 냉장고 문을 열고 한참을 뒤적이더니 다시 문을 닫고 소파에 주저앉아 배를 움켜잡았다.



난 직감적으로 소녀가 시장해 한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차에 올라타서 취재 기간이 길 것을 대비하여



비상식량으로 준비를 한 컵 라면과 과자 봉투를 꺼내어 들고는 소녀가 있는 집 현관으로 가 벨을 눌렀다.



“누구세요?”소녀가 인터폰을 통하여 물었다.



“여기가 스즈키 이치로 씨 댁 맞죠?”하고 묻자



“네, 그런데 누구세요?”하고 다시 묻기에



“아 맞아서 다행이네, 전 스즈키 이치로 선생의 제자인데 부음을 듣고 000에서 왔습니다”하며 난 놈이 동남아에서 코치를 하던 나라의 이름을 대었다.



“네, 철컥!”소녀의 대답과 함께 문이 열렸다.



“미안하다 거짓말을 해서”난 문을 활짝 열고 말하고는 안으로 들어갔다.



“그......신문 기...자...아...저....씨”소녀는 빈소에서 날 본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래, 이야기 좀 하자”하며 난 컵라면과 과자가 든 봉투를 소녀에게 주었다.



“...............”소녀는 무척 당황하는 표정이었다.



“배고프니?”난 소녀와 친하여 져야 이야기가 나올 기분이 들어 물었다.



“네”하고 대답을 하기에



“좋아 그럼 아저씨가 물 끓여 컵라면 먹게 할 동안 과자라도 먹어”하고는 주방에 서서 물을 렌지에 올리면서도 시선은 소녀에게 향하여 있었다.



소녀는 얼마나 시장하였는지 과자를 한 주먹 쥐고 입에 넣고 먹었다.



“먹을 것이 하나도 없군, 쯔쯔쯔”물이 끓는 동안 냉장고 문을 열고 안을 봤다.



냉장고 안에는 술과 칵테일에 필요한 것들만 가득 자리를 채우고 있었다.



“............”소녀는 정신없이 과자를 먹으면서 과자 봉투 안만 봤다.



“먹어”물이 끓자 난 컵라면에 물을 부어 뜸이 들게 하고는 소녀에게 권하였다.



“고맙습니다”소녀는 고개를 까딱 하고는 컵라면을 먹기 시작을 하였었다.



“하나 더?”다 먹자 다시 소녀에게 물었다.



“아니요, 잘 먹었습니다”하며 처음으로 웃는 모습을 나에게 보여주었다.



“그래 넌 스즈키 이치로의 딸이지?”본격적으로 질문을 시작하였다.



“네”하고 대답을 하더니 휴대폰을 들었다.



“왜?”전화기를 잡으며 물었다.



“오가사와라 아저씨가 이상한 사람이 오면 전화 하라고 해서”하였다.



“나와 이야기 다 하고 해”휴대폰을 빼앗으며 말하였다.



“하라고 했는데....”하며 말을 흐리기에



“그래 너희 엄마는?”하고 묻자



“...................”대답을 안 하고 고개만 숙였다.



“엄마 나라로 갔니?”하고 묻자



“.................”대답을 안 하고 고개만 숙였다.



“왜?”하고 묻자



“흑흑흑”다리 사이에 얼굴을 묻고 울기 시작을 하였다.



내가 기자 생활을 하면서 터득 한 것이 있다면 여자들이 울고 있을 때는 아무리 질문을 해도 대답을 들을 수가 없다는 사실이다.



방법은 그대로 속 시원하게 울게 놔두고 있다가 울음이 그치면 그 때 질문을 하면 대답이 술술 나온다.



난 튀기 소녀의 휴대폰을 들고 점점 노을이 지는 밖을 바라보며 울음이 그치기를 기다렸다.



거의 20분 정도를 울더니 울음소리가 안 났다.



“속 시원하니?”가까이 다가가며 묻자



“네”하며 언제 울었냐는 듯이 배시시 웃었다.



“엄마가 보고 싶어서 울었어?”하고 묻자



“..............”대답 대신 고개를 살래살래 흔들었다.



<야! 이거 분명히 특종이다 특종!>속으로 외쳤다.



“왜?”하고 묻자



“그냥?”하기에



“너 혹시 아빠 좋아 한 것 아니었니?”무심결에 그런 질문을 하고도 쑥스러운 느낌이 들었다.



어느 딸이 자기를 낳아 준 아빠를 안 좋아 하겠냐는 생각을 하자 더 쑥스러운 마음이 생기는데



“아뇨 전 아빠가 미워요”하더니



“흑흑흑”하고 다시 엎드려 울기 시작을 하였다.



<아무래도 시간이 걸리겠군, 나도 컵라면이나 하나 먹어야겠다.>하는 생각에 렌지에 불을 켰다.



내가 컵라면을 다 먹을 동안 튀기 소녀는 계속 울었다.



“아저씨 저도 하나 주세요”컵라면 쓰레기를 휴지통에 버리고 담배를 피워 물자 튀기 소녀가 말하였다.



“너 담배 피우니?”난 놀라며 튀기 소녀에게 담배 갑을 주었다.



“네”하며 담배를 입에 물려 손등으로 눈물을 닦기에 불을 붙여주었다.



“흐~윽 퓨~”길게 빨더니 크게 연기를 내 뱉었다.



담배를 피우는 모습은 아주 자연스러웠다.



많이 피운 솜씨였다.



“안 독해요 더 독한 것 없어요?”튀기 소녀가 담뱃불을 비벼 끄며 물었다.



“어떤 것?”하고 묻자



“참, 아빠가 피우던 것 있다”하더니 벌떡 일어나 방으로 들어가기에 따라 들어갔다.



“헉! 대마초 아니니?”놀라며 묻자



“네, 맞아요, 대마초”하며 피우던 담배 앞의 담배 잎을 비벼서 빼더니 능숙하게 대마초를 넣고는



“불”하며 대마초가 든 담배를 입에 물고 내 앞에 들이밀었다.



“찰칵”난 라이터 불을 켜서 튀기 소녀가 물고 있는 담배에 불을 붙여 주었다.



“흐~윽 퓨~ 역시 좋아요”튀기 소녀는 또 한 번 날 놀라게 만들었다.



“그래 어째서 아빠가 미운데?”다시 본격적인 질문을 하였다.



“...............”튀기소녀는 담배 연기만 내 뿜으며 말이 없었다.



한참을 피우자 튀기소녀의 눈이 풀리기 시작을 하였다.



“이야기하기 싫니?”눈치를 보며 물었다.



“그게 그러니까............”대마초에 취하였는지 발음이 이상하였다.



“그래 이야기 해”하며 난 주머니 안에 든 소형 녹음기의 버튼을 눌렀다.



지금부터는 튀기소녀의 이야기를 튀기소녀 입장에서 그대로 서술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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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메이저리그에서 이름을 날렸던 스즈키 이치로의 딸 라라입니다.



우리 엄마는 아시아의 동남쪽에 자리 잡은 나라에서 태어났답니다.



그런데 그 나라의 프로 야구팀에 타격코치로 온 우리 아빠는 아빠의 고향나라에 아내와 자식이 있는데도 이혼을 할 것이라고 속여서



그 프로야구팀에서 선수들의 타율 등을 적어서 보관을 하는 업무를 맡은 엄마를 꼬드겨 결혼을 하였다고 합니다.



그 때 엄마 나이 20살이었고 아빠 나이는 40살이었답니다.



그런데 아빠와 결혼을 하던 그 해에 저를 낳았는데 일본에 갈 일이 있어도 아빠는 엄마를 안 데리고 늘 혼자만 갔답니다.



그러다가 제가 8살이 되던 해에 엄마 나라의 프로야구팀에서도 아빠는 쫓겨나는 신세가 되자 엄마에게 일본에서 법적 문제가 해결이 되면



부른다고 하고는 귀국을 하더니 아예 감감 무소식으로 일 년을 넘게 엄마 혼자 절 키우며 살게 만들었답니다.



엄마는 도저히 더 기다릴 수가 없어서 저를 데리고 일본으로 왔는데 아빠는 일본에 있던 이혼을 한다던 그 여자와 함께 살고 있더랍니다.



엄마는 아빠에게 찾아가서 사정을 하자 바로 지금 이 집을 사 주면서 살라고 하였는데 제 작년에 아빠의 본처에게



우리이야기가 발각이 되자 이혼을 당하고는 갈 곳이 없자 아예 우리 집인 여기에 머물러 살기 시작을 하였습니다.



그 전에 아빠가 생활비를 잘 안주자 엄마는 엄마 나라에서 가지고 온 돈으로 가까운 시내에 카페를 하나 차려 운영을 하였습니다.



메이저리그 출신이라고 하지만 성질 안 좋은 아빠는 거의 매일 술로 일과를 시작하였고 술로 일과를 마칠 정도였습니다.



완전히 폐인이 된 것인데 문제는 일 년 전부터는 대마초도 구입을 하여 피우기 시작하면서였습니다.



하루에 평균 5번 이상 대마초를 피우기 시작을 하더니 정신이 몽롱해 지자 어린 저에게도 담배를 피우라고 하였습니다.



싫다고 하자 아빠는 막무가내로 피우게 하더니 급기야는 대마초도 피우면서 저에게 빨라고 하였습니다.



담배의 연기를 제법 잘 코로 내기시작을 한 저는 대마초도 빨아서 피웠습니다.



처음에는 독한 냄새 때문에 역겨웠으나 하늘을 나르는듯한 기분이라 저는 아빠가 대마초를 피우기를 기다렸다가 피우면 서로 돌려가며 피웠습니다.



그런 어느 날이었습니다.



그 날 역시 아빠와 전 대마초를 번갈아가며 빨았습니다.



“라라, 너 아빠 좆 한 번 빨래?”하였습니다.



“싫어”하자



“그럼 넌 그만 피워”하며 대마초를 혼자서 빨았습니다.



“좋아, 한 번 만이다, 알았지?”전 대마초를 한 번이라도 빨아보려고 승낙을 하고 말았습니다.



“그래 한 번 빨면 대마초 같이 피우게 해 준다”하고 약속을 하였습니다.



“좋아”하고 말하자 아빠는 바지 지퍼를 내리더니 좆을 끄집어내었습니다.



“빨아”아빠는 먼저 대마초를 한 번 더 제 입에 대어주고는 빨고 연기를 코로 내자 내 얼굴을 좆을 향하여 눌렀습니다.



그 때 전 솔직히 대마초에 취하여 있었습니다.



부끄러움도 없었고 아바의 좆이란 사실보다도 대마초를 한 번이라도 더 빨 욕심뿐이었습니다.



“이렇게 흔들며 빨아”아빠는 자신의 손으로 용두질을 쳐 보이며 저에게 시켰습니다.



“그 것 한 번 더 빨고”난 아바가 시키는 대로 용두질을 치며 고개를 들어 입을 내밀자



“그래 빨아라”하며 대마초를 제 입에 물려주었습니다.



전 아빠의 좆을 잡고 용두질을 치다가 대마초를 수시로 빨면서 좆도 빨았습니다.



“으~~~~~~~라라 먹으면 대마초 피우게 해 준다”라고 말하였습니다.



“뭘?”저는 무엇을 먹으라고 하는지 몰라서 고개를 들고 물었습니다.



“아바 좆에서 나오는 물을 먹어, 알았어?”하기에



“오줌?”전 그 것이 보건시간에 성교육을 받아 무엇인지 알았으나 시치미를 때고 물었습니다.



“아니, 이거 안 피 울래”하며 대마초를 빨기에



“알았어”하고는 다시 아바의 좆을 입으로 빨며 흔들기 시작을 하였습니다.



“라라, 간다, 으~~~~”



“퀙! 꿀꺽, 꿀꺽”구토가 나왔으나 대마초를 피울 욕심으로 목구멍으로 삼켰습니다.



그 후로 하루에 한 두 번은 꼭 대마초를 무기로 빨게 하였고 또 좆 물을 먹게 하였습니다.



“라라, 우리 같이 벌거벗고 피우자”그로부터 일주일이 지나자 또 다른 제안을 하였습니다.



“싫어”하자



“그럼 나가”하며 방문을 걸어 잠그고 혼자서 대마초를 피웠습니다.



이미 중독이 된 저는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라라 나 또 피운다”벌거벗은 아빠가 잠긴 방문을 열고 대마초 연기를 저에게 뿜었습니다.



“아빠 나도”하고 애원을 하자



“너도 벗으면 피우게 해 주지”하며 길게 빨더니 그 연기를 저의 면전에 뿜었습니다.



“좋아”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전 그 자리에서 옷을 홀라 다 벗고 안방으로 아빠를 따라 들어가 침대에 걸터앉은 아빠 허벅지에 올라 앉아 대마초를 번갈아 피웠습니다.



아빠가 대마초를 들고 한 번 씩 제 입에 물려주던 것이 이제는 제가 아빠와 제 입에 번갈아가며 물려주고 피우게 하였습니다.



전 그 이유를 잘 몰랐습니다.



그 이유는 바로 나타났습니다.



아빠는 막 올라오기 시작을 한 저의 젖꼭지를 만지고 또 한 손으로는 제 보지 둔덕을 비볐습니다.



그러나 저는 아빠보다도 더 많이 대마초를 피운다는 생각만 하며 마구 빨았습니다.



정신이 엄청 더 몽롱하여지며 온 몸이 나른한 것이 아주 기분이 좋았습니다.



첫 날은 그렇게 주무르기만 하였고 대마초는 거의 전부 제가 다 피우다 시피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후로는 자연스럽게 아빠와 전 알몸으로 대마초를 즐겼습니다.



또 3일이 지나자 이번에는 저에게 누어서 피우라고 하며 대마초에 불을 붙여 주었습니다.



아빠는 제 가랑이를 벌리고 그 사이에 무릎을 꿇고 앉아서 좆으로 제 보지 금을 따라 이동을 시키며 대마초는 저에게 피우게 하고 자신은 입에도 안 대었습니다.



잠시 후 몽롱한 가운데 뭔가가 제 보지 안에 박히는 기분이 들었으나 대마초 덕인지 아무런 느낌도 안 들었습니다.



제가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대마초만 피우자 아빠는 저의 몸에 포개고 엉덩이를 들썩였습니다.



아무런 느낌도 안 들고 몽롱하기만 하였습니다.



한 참 후 아빠가 제 몸에서 몸을 때고 일어났을 때 전 몽롱한 정신이었지만 아빠의 좆을 보고 놀라고 말았습니다.



아빠의 좆에 검붉은 피와 제 입에 싸 줬던 것과 같은 물이 범벅이 되어 있었습니다.



아빠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물걸레를 가지고 와 자신의 좆도 닦고 제 보지도 닦아 주었습니다.



대마초의 약효가 떨어지자 제 보지에서는 통증이 느껴졌습니다.



아프다고 하소연을 하면 아빠는 어김없이 대마초를 저에게 주었고 그것을 피우면 언제 아팠냐는 듯이 아프지 않았습니다.



아빠와 저는 거의 매일 하루에 두 세 번은 그렇게 하였습니다.



그러다가 갑자기 생리가 없자 놀라 밤늦게 집으로 온 엄마에게 사실을 말하였습니다.



엄마는 놀라며 그 다음 날 절 데리고 산부인과로 갔습니다.



임신이었습니다.



의사는 태아가 이상하다며 초음파 검사를 하였습니다.



태아를 때지 않으면 제가 위험하다며 중절을 하라고 하기에 엄마가 승낙을 하여 수술을 하였습니다.



이미 뱃속에 든 태아는 죽어 있었다고 하였습니다.



엄마는 저를 데리고 집으로 와 아빠와 한참을 옥신각신 싸웠습니다.



그 길로 아빠를 집에서 나가게 만들었습니다.



엄마는 다시 카페로 출근을 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대마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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