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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소설-내가 만드는 이야기

말 잘 듣는 여자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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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282 회 작성일 23-12-26 19:25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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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아내와 나는 입에서 단내가 나도록 상대를 탐하고, 시험하고, 학대한 후 소금에 전 배추 꼴이 되어 나가떨어졌다. 우유인지 신문인지를 집집마다 배달해놓는 소리가 바깥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아내의 고른 숨소리가 거기에 은은한 코러스를 더해주었고... 나 역시 이내 시커먼 잠 속으로 자맥질을 쳤다.
그러나 얼마 안 되어 나는 잠에서 깨었다. 얼마 안 되는 시간이었다는 건 깨고 나서야 계산한 것이고, 그 사이에 나는 뒤숭숭한 악몽 속에서 영원토록 헤매고 있었다. 자세한 내용은 기억나지 않는다. 단지 아내의 몸뚱이가 정육점의 고깃덩어리처럼 조각조각 토막나던 모습만이 단편적으로 떠오른다. 그리고 누군가가 그것을 함부로 헤집으며 킬킬대던 소리.

눈을 떴을 때 주위는 아직 어두웠다. 겨울 새벽녘 특유의 시커먼 먼동 - 그리고 거기에 심판하듯 이쪽을 내려다보는 얼굴이 있었다. 그 시큰한 눈빛에 나는 하마터면 비명을 지를 뻔한다.



관호였다. 누운 자리에서 올려다보이는 녀석의 큰 덩치가 더없이 위압적이었다. 게다가 그 스산한 눈이라니! 나는 나도 모르게 소리 내어 호흡을 삼키었다.
관호의 시선이 천천히 내 쪽을 향하였다. 비로소 이제껏 녀석이 내려다보고 있던 게 내가 아님을 안다. 그것은 내 옆자리였다. 내 옆자리에서 무방비로 잠든, 아내의 알몸이었다.

나를 돌아보는 녀석의 얼굴이 그야말로 무시무시했다. 나는 일순 가슴을 떨었지만, 잠시 후 그 표정이 위협적이라기보다는, 나 이상으로 겁에 질려 있는 것임을 알 수 있었다.


그제야 어젯밤의 일이 눈앞으로 슬라이드처럼 지나갔다. 나는 관호에게, 녀석의 취기를 빌어 내 아내의 몸을 보여주었다. 녀석이 꿈속의 일로 기억하길 기대하면서, 팬티만 입은 아내의 알몸을 자랑하듯 펼쳐 보였던 것이다.
“형......”
이윽고 열리는 녀석의 입술이 헛구역질을 하듯 움직였다.

나는 조용히 검지손가락을 들어 내 입술로 갖다대었다. 그리고 갑자기 몸을 휘감는 한기에 이불을 당겨 목 언저리까지 끌어올렸다.
그 바람에 아내의 몸을 가린 이불이 흘러내려 그녀의 상체 일부가 드러났다. 새벽의 시퍼런 어둠 속으로 벗은 어깨가 야광 구슬처럼 빛난다. 관호가 급박한 호흡을 삼킨다. 그것이 내 안에까지 싸늘한 숨결을 불어넣는다.

나는 말없이, 누운 채로 남은 이불까지를 천천히 내 쪽으로 끌어당겼다. 이불자락이 아내의 속살을 스치는 소리가 이상하게 크게 들린다. 관호는 장승처럼 버티어 선 채 숨소리조차 내지 않는다.



아내가 잠결에 찬바람을 느꼈는지 가늘게 몸을 뒤척인다. 그런 그녀의 몸을, 녀석은 다 본다. 나는 이제 녀석이 더 이상, 어제 보았던 아내의 풍만한 속살과 기름진 젖가슴이 꿈속 풍경이 아니었음을 확실히 알게 되었으리라 생각한다.
숨소리가 잦아든 대신 녀석은 그 건장한 신체를 바르르 떨기 시작한다. 갑자기 내게 이상한 우월감이 지피기 시작했다. 까마득하게 높아 보이던 관호의 덩치가 이제 터무니없이 작아 보인다. 우습게도 이 순간, 이불이 치워진 아내의 엉덩이가 녀석에게 그야말로 처녀지일 거라는 생각을 했다. 어젯밤 관호에게 선보인 그녀의 몸에는 팬티 한 장이 여전히 걸쳐져 있었다.

나는 충동적으로 아내에게 손을 뻗어 그녀를 끌어당겼다. 한기에 몸을 떨던 그녀는 잠결에도 기다렸다는 듯 내게 매달려 온다. 아내의 알몸이 이불 위로 내게 반쯤 올라탄다. 그녀의 무릎을 붙잡아 내 위로 올라앉게 했다. 이제 그녀는 비스듬히 엎드린 채 관호 쪽으로 맨 엉덩이를 무방비로 열어놓게 된다.
관호가 더욱 세차게 몸을 떨었다. 녀석을 향해 고개를 돌린 건 내 아내의 탐스런 엉덩이, 그리고 그 아래에 어둡게 드러난 것은-.


나는 한손으로 아내의 머리를 안아 슬그머니 가린 후, 나머지 손으로 침대 가의 스탠드 스위치를 올렸다. 조명이 그녀의 몸을 훑었다. 발간 불빛이 그녀의 엉덩이, 그리고 그 밑으로 잠들어 있는-.
관호의 몸이 석상처럼 굳어 버렸다. 시선이 아내의 엉덩이 아래로 고정된 채, 미동도 하지 않았다.


내 심장조차 따라서 멎어버리는 감촉을 느끼며, 나는 다시금 손을 뻗어 스탠드 스위치를 내린다. 아주 천천히, 관호의 시선과 아내의 아랫도리가 그 몇 초 사이나마 서로 대화할 수 있도록......
어둠 속에서 관호가 길게 한숨지었다.


나는 스탠드를 끈 손을 얼굴로 가져와 전화기 모양을 만들었다. 관호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면서. 관호 녀석도 천천히 그것의 의미를 알아들었다. 나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고장난 기계처럼 뻣뻣하게 몸을 돌려, 후들거리는 걸음으로 방을 나섰다.
안방 문이 닫히고, 잠시 후 현관문이 열렸다간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온몸에서 힘이 빠져나갔다. 여지껏 이렇게 피로해본 일이 없는 것만 같았다. 아내를 다시 옆으로 눕히고 이불을 덮어준 후, 그대로 곯아떨어졌다. ‘문단속을 해야 되는데-’ 하고 생각은 했지만 눈앞으로 검은 커튼이 덮일 때까지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었다.



눈을 뜨니 대낮이었다. 머리가 사정없이 지끈거렸다. 벽시계를 올려다보니 벌써 오후 두 시가 넘어 있었다.
“어떻게 그렇게 목숨 걸고 잘 수가 있어? 기절한 줄 알았네, 난.”
앞치마를 두른 아내가 웃지도 않은 채 농을 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녀의 농담을 거의 알아듣지 못하였다. 그녀의 농에 웃는 건 나뿐이었다) 늘 느끼는 거지만, 아내의 화장을 안 해도 짙은 속눈썹, 선이 강한 이목구비와 날렵한 얼굴 선에는 저렇게 가정적인 차림새가 아무래도 어울리지 않는다. 여왕의 화장을 한 위에 메이드의 복장을 걸친 것 같다고나 할까.

“배 안 고파? 난 당신 기다리다가 그냥 먼저 먹었는데.”
“관호는?”
내가 시치미를 떼고 묻자, 아내는 예사로운 얼굴로 그새 나갔나 보더라고 말해 주었다. 무표정한 얼굴, 보기에 따라선 뚱해 있거나 화난 것으로도 보이는 표정이 평소 그대로다. 마치 어젯밤의 ‘돌발사태’가, 밤새 우리를 지배했던 광기가 나만의 꿈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잠시 후, 아내는 내게 다가와 조심스럽게 입을 연다.


“있잖아. 진짜 괜찮을까? 어제......”
나는 문득 긴장했다. 아내의 평소 성격대로라면, 어제의 일에 대해서도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내가 관호한테 발가벗은 거 보여줬잖아’ 말해버릴 것만 같았다. 전날 본 티브이프로 이야기를 하듯이 - 하지만 아니었다.



그녀는 내게서 시선을 돌렸다. 오후 햇살에 비친 옆얼굴이 조금이나마 발그레해진 듯하다. 맙소사, 그녀가 얼굴을 붉혔다고? 내게 첫 고백을 받을 때도, 처음으로 알몸을 보일 때조차! 아내는 저만치나마 얼굴에 홍조를 띄운 일이 없다.

“물어보지 그랬어?”
내가 짓궂게 웃으며 말했다.
“그 친구 나갈 때 말야. 어제 내가 너한테 모처럼 벗은 몸을 보여줬는데, 혹시 기억하느냐고.”
“어떻게 그렇게 하냐?”

아내가 약간 불쾌하다는 듯 말했다. 나는 속으로 웃음을 삼켰다. 그녀는 내 농을 적어도 반쯤은 진지하게 받아들인 것이다. 아내가 정말로 관호한테 ‘저기, 어제 본 거 기억해요?’ 묻는 광경을 머릿속에 그려보았다.

“왜? 뭐가 문젠데? 창피해서 그래? 그러면 진작에 싫다고 그러지 그랬나?”
“......”
“아니면, 걔가 당신 알몸 본 걸로 번민에 빠질까봐? 당신하고 하고 싶어져서 상사병이라도 걸릴까봐 그러는 거야?”

아내가 동그랗게 뜬눈을 내게 향했다. 또한 진지하게, 미처 거기까지는 생각해보지 못했다는 눈빛이었다. 나는 그 순진한 반응에 그만 웃음을 터뜨렸다. 바짝 굳었던 아내의 얼굴 선이 조금 흐트러졌다.


“그럴 리는 없겠지? 그렇지?”
아내가 말한다.
“있잖아. 바보 같은 생각이란 건 알지만...... 그냥 그렇더라고. 난.”
“무슨 소리야?”
“어제 말이야. 그러니까 그...... 그때 관호 씨랑 눈이 마주쳤는데. 태어나서 그런 눈빛은 처음 봤어. 술 때문일까? 반쯤 잠긴 눈으로 날 똑바로 보는데...... 내 몸이 아니고 내 눈을......”
“죽어가는 사람처럼...... 아니면 숭배하는 것처럼?”

아내가 놀란 얼굴로 나를 돌아보았다. 굳이 내게 고개를 끄덕여 보일 필요는 없었다.
“정 미안하면 한번쯤 해주면 되잖아. 적선하는 셈치고. 당신이 싫지 않다면 말이야.”

다른 여자였다면, 혹은 아내라도 상대가 내가 아니었다면 무슨 소리냐고 반색하며 허벅지나 후려칠 일이었다. 하지만 아내였기에, 또 나였기에 그녀는 다시금 내 눈을 쳐다보았다.
나는 장난스러운 얼굴로, 그녀의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북어국...... 데워줄게.”
먼저 얼굴을 돌린 건 아내 쪽이었다. 나는 그런 그녀를 불러 세웠다. 밥 먹는 것보다 더 급한 것이 있다고 하면서 말이다. 돌아보는 아내 얼굴이 잘못을 저지른 아이처럼 굳어 있었다.

나는 웃음 띄운 얼굴 그대로, 말없이 내 아랫도리에서 이불을 걷어내었다. 아직 팬티조차 챙겨 입지 않은 사타구니 사이로 내 페니스가 다시금 위용도 당당하게 고개를 들고 있었다.
아내의 얼굴에서 서서히 긴장이 풀리고, 얼음이 녹듯 어처구니없다는 미소가 퍼져 나왔다.

“이리와. 잠깐만.”
그녀가 시키는대로 하였다. 아직 양치도 하지 않은 내 입술을 피하지 않았고, 순순히 내 아래로 얼굴을 가져왔다. 그런 행동으로 조금 전의 어색한 분위기를 무마하기나 하려는 듯.

“근데 있잖아. 나 지금은...... 조금.”
“괜찮아. 지금은 이걸로 충분해.”
나는 너그러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 역시 지금 그녀의 몸 안으로 들어갈 생각은 없었다. 그녀의 음부에 잠시 휴식을 주도록 하자. 그날 내게는, 또 다른 계획이 있었던 것이다.



“이해합니다, 형. 저도 이해해요.”
관호가 말했다.
“진짭니다. 저도 책에서 봤거든요. 그......”
관호는 차마 다음 단어를 잇지 못한다. 녀석의 눈가가 시커멓다. 어제 먹은 술이 과하기도 했겠지만, 오늘 새벽 이후 한숨도 눈을 붙이지 못했음을 나는 왠지 알 수가 있다.

녀석의 입장은 충분히 이해하지만, 나는 조금 지겨워졌다. 만나서 의도한 화제를 꺼내기도 전에 그놈의 ‘이해한다’ 소리를 몇 분이나 되풀이해서 듣고 있자면 아마도 누구나 나와 같은 심정이 될 것이다.

“진짜로, 책에서도 그......”
“한번만 더 이해하느니 어쩌느니 하면, 자리에서 일어날 거다.”
내 말에 녀석이 찔끔 입을 다문다. 척 봐도 나 같은 건 한주먹감으로 보이는 장정이, 내 여자처럼 가늘고 새된 목소리에 꼼짝못하는 걸, 근처의 누군가가 눈여겨봤다면 참으로 의아하게 여길 법했다.

“너더러 이해해달라고 한 적 없어. 이해할 거라고 기대하지도 않고.”
내가 차갑게 말한다.
“다른 상황이었다면, 어제 일이 없었다면 넌 틀림없이 ‘이해한다’ 소리 대신에 욕을 했겠지. 무분별하게 들어온 서구 문화가 어쩌고 꼰대 흉내를 내면서 말이다. 이런 일을 원하는 사람이나 거기 참여하는 사람이나 무슨 괴상한 짐승 보듯 했을 거야. 그건 뭐 그걸로 좋은 거고, 난 네 삶의 철학에 관여하고 싶은 생각이 없어. 내가 관심 있는 건 네 아랫도리야. 시쳇말로 네 좆이, 네 편견을 이길 만치 이 상황에 반응하였는가 이거야.”


나를 외면하였던 얼굴이 내게로 향해, 좀처럼 떨어지지 않았다. 눈치를 보는 어린아이처럼, 아니 먹이를 졸라대는 강아지처럼.

“한마디로 말하지. 하고 싶냐?”
“예.”
녀석의 목소리가 반쯤 쉬어 있다.
“그럼 맹세해라. 널 믿을 수 있도록.”
“예? 맹세...... 뭐를 요?”
“말 안 해도 알 텐데. 뭐, 모른다면 어쩔 수 없고.”
“어떻게......”
“무릎을 꿇어라.”


관호는 거의 군대식으로 자리에서 일어나, 테이블 옆에 무릎을 꿇었다. 카페 안의 다른 손님들과 종업원들이 놀란 눈으로 이쪽을 쳐다보았다. 가게 안이 갑자기 조용해졌지만 나도, 관호도 신경쓰지 않았다.

“널 믿어도 되겠지?”
관호 녀석이 고지식한 눈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이제 이 녀석이, 내 말이면 (그리고 내가 주려는 것을 위해서라면) 이 자리에 네 발로 서서 개처럼 짖으라 해도 그대로 하리란 걸 안다.

“다음주 금요일 날 우리 집으로 와라. 자세한 시간은 다시 전화하마. 실망시키지 않겠지?”
“예. 맹세합니다, 형.”
관호가 정색을 하고 말했다. 주위 사람들은 우리가 무슨 조폭 비슷한 자들인 줄 알지 모르겠다. 나는 웃으면서 자리에서 일어섰다.

“내 말은 우리 집사람을 실망시키지 말란 거야. 그날 밤에.”

그 말을 남긴 채 나는 카운터로 가서 두 사람 몫의 찻값을 계산하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카페를 나와 집으로 향했다. 어둡기 전에 양평으로 출발하려면 조금 서둘러야 했다.




“그게 무슨 소리야?”
아내가 제 귀를 의심하는 표정으로 날 보았다. 나 역시 아내가 하필 이 시점에서 이렇게 반응하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하였다.

나를 똑바로 향한 아내의 얼굴이 무서워 보이기까지 한다. 나는 속으로 고개를 갸웃대면서, 대수롭잖은 척하고자 노력하며 말을 잇는다.
“별 거 아냐. 거기선...... 그러니까 진명 형이랑 거기 아저씨는 우리가 누군지 잘 몰라. 그러니까 우리도 그 익명성을 즐기자는 거야. 귀찮을 일도 없고 말이야.”

요는 그쪽 사람들은 그녀가 내 아내라는 것을 모르고 있으며, 우리 역시 굳이 부부라는 티를 내는 일없이 있자는 이야기였다. 앞뒤가 잘 맞지 않는다는 건 나 역시 모르는 바 아니었다. 그렇다 해도 이상한 건 내 요구에 자원봉사를 나간 늙은이의 시든 성기마저 입으로 애무해주던 그녀가, 이상스레 여기에는 납득이 가지 않는다는 듯 찌푸린 얼굴을 쉽게 풀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당신이 싫다면 관두지 뭐’ 하는 소리가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억지로 꿀꺽 삼켰다. 대신 나 역시 짐짓 이해가 안 간다는 표정으로 아내를 마주 쳐다보았다.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집 앞, 이런 때가 아니라면 잘 쓰지 않는 승용차를 앞에 둔 채로.
도저히 견딜 수 없어서, 결국 그녀에게 항복하고 내 말을 철회하려던 참이었다. 그녀가 입을 연 게 1초만 늦었어도 그렇게 하였으리라.


“괜찮지만...... 이렇게 말하면 자기가 이상하게 생각하겠지만......”
아내가 그녀답지 않게 횡설수설하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내가 생각지도 못했던 말을 꺼낸다.
“그건 거기서만의 일이고...... 돌아오면, 아닌 거지?”

무슨 소린지 알 수 없어서 그녀를 쳐다보았다.
“그러니까 돌아오면...... 난 당신 아내인 거지? 계속해서.”


나는 그만 웃음을 터뜨렸다. 아내가 눈을 깜빡이며 바보 같은 눈으로 나를 보았다. 이런 일이 없었다면 절대로 들춰볼 수 없었을 아내의 일면이다.

“당연하지, 이 사람아!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내가 말했다.
“우린 죽을 때까지 같이 살 거야. 당신이 싫다 그래도 소용없어. 벽에 똥칠할 때까지. 축축한 땅에 나란히 묻힐 때까지.”

아내가 나를 쳐다보고, 지루할 정도로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있잖아......”
아내가 말했다.

“나는 화장이 좋은데. 유골이 한 데 섞여서 바다 같은 데 뿌려졌으면 좋겠어.”

나는 웃으며 어깨를 한 번 으쓱해 보이고, 차에 올라 시동을 걸었다. 아내가 조수석에 올라 문을 닫았다. 문득 그녀가 내 포옹을, 입맞춤을 원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나 역시 알 수 없는 성욕을 느꼈다.


손을 뻗어 아내의 손을 한 번 힘주어 잡아준 후, 곧장 차를 출발시켰다. 우리가 탄 차가 저녁 노을 사이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그 길이 끝닿은 양평의 별장에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내가 무슨 일을 꾸미고 있는지, 아내는 아직까지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먼데 하늘이 어슴푸레 눈을 감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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