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잘 듣는 여자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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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내가 내 말이라면 뭐든지 다 들어준다고 하면, 사람들은 대개 눈꼬리를 허물어뜨리면서 어색하게 웃어넘긴다. 영 그림이 그려지지 않아서일 것이다.
나는 170의 키에 호리호리한 체구, 섬세한 얼굴 선이 꽤 잘빠진 외모라고 생각하지만, 솔직히 여자처럼 연약한 인상이다. 반면에 그녀는 키는 작지만 볼륨 있는 몸매에 크단 눈과 또렷한 이목구비가 어딜 보나 선이 굵고 야무지게 생겼다. 누가 봐도 내가 딱 쥐여서 살 모양새지 반대로는 생각하기 힘들다. 내가 아내 쪽을 돌아보며 “진짜잖아? 그렇지?” 하면 그녀는 픽 웃으며 말없이 몸을 돌려 자기 일을 한다. 그러면 사람들은 ‘그럼 그렇지. 뭔 허세를......’ 하는 눈빛으로 안심한 듯 화제를 돌리곤 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어떻게 생각하든 간에 그건 엄연한 사실이다. 내 아내는 이제, 내가 시키면 내 지도교수의 볼품없는 성기도 아낌없이 입에 물고, 혀끝에서 굴려 준다. 언제나와 똑같이 무심한 얼굴로, 연구실 바깥에서 기다리던 내게 입안에 남은 그 영감의 시든 정액 냄새를 확인시켜 주면서 보일락 말락 웃어 보이는 것이다. 아내에게 그녀의 제자들 중 하나를 유혹하게 시켰을 적에도, 나는 일부러 그녀가 가장 싫어하는 녀석을 골라잡았다. 그래도 그녀는 군말없이 (아니, 조금은 있었다) 응해주었다. 그리고 아랫도리가 뻐근하도록 즐겼다. 내가 원하는 일이었기에.
나는 우리의 이런 관계를 당신들에게 설명할 생각도, 이해를 구할 생각도 없다. 우리는 처음부터 이렇게 될 운명이었고, 내가 이것을 원했다. 당신들한테는 이것이 악의적인 동화처럼 들릴지 몰라도, 우리 부부에게는 이제 당연한 일상이 되어 버렸다.
1.
우리 사이에 ‘그런 일’이 생길 낌새가 보이기 시작한 건, 결혼 2년차째로 기억한다. 서로의 일과 공부를 병행하며 동업자처럼 쿨하게 시작한 결혼 생활도 조금씩 일상의 먼지가 앉고, 또 조금은 지루해지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독거 노인의 수발을 들어주는 자원봉사를, 친구 대신 나가주었던 걸로 기억한다. 마침 중간고사 기간이었기에 일이 생긴 친구의 대타를 해주었던 것이리라. 구체적인 계기나 일의 내용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다만 가을이 되어도 후덥지근하던 날씨가 갑자기 소스라치도록 차가워지던 때였던 게 기억에 남는다.
집에 돌아오니 아내가 멍하니 앉아있었다. 전깃불도 켜지 않은 채 말이다.
나는 말없이 불을 켜고, 온풍기에 스위치를 올린 다음 쌀을 씻어 밥을 앉혔다. 그리고 그녀 곁에 앉았다. 그녀가 내 어깨로 파고들었다. 애정표현이라기보다는 서로의 체온이 아쉬워서였다. 뒤늦게 집안의 냉기를 느꼈는지도 모른다. 조용한 방안에 밥솥이 칙칙대며 울어대기 시작하였다.
“가서 뭐했어?”
“별 거 없었어. 노인네 밥이랑 찬 챙겨주고, 따뜻한 물에 씻겨드렸어.”
나는 별 생각 없이 덧붙여 묻는다.
“남자 분이었어? 그 노인네.”
“응.”
아내가 말했다.
“좀 놀란 것 같더라. 날 보고.”
그랬으리라. 찾아간 아줌마, 아니 아가씨가 너무 젊어서 놀랐으리라. 아내는 아직도 이십 대 초중반으로 보였다. 애가 없고, 아직 학교를 다녀서 그런가 보다. 머리를 묶고 강의에 나가면 어떤 때는 그녀가 가르치는 학생들보다도 더 어려 보이곤 했다.
그때 무언가가 가슴 안쪽으로 서늘하게 끼어 들었다. 나는 충동적으로 입을 연다.
“혹시...... 그 할아버지 몸이 반응하던? 너 때문에.”
침묵, 말없는 긍정, 소리 높여 칭얼대며 콧김을 뿜어대는 밥솥.
“나도 놀랐어.”
그녀가 말했다.
“주름살이랑 뼈다귀만 남은 몸이었는데. 그래서 신경 쓰지 않았는데. 새하얀 털 사이로...... 그게 천천히 고개를 드는 거야. 덤불에서 뱀이 기어 나오는 것처럼 말이야. 비쩍 마른 몸에서 그 부분만, 새빨갛더라. 외눈을 들고 날 노려봤어. 할아버지 몸에서 다른 생명체가 튀어나온 것 같았어.”
“만져봤니?”
내 목소리가 무척 건조하게 들렸을 것이다. 아내가 나를 쳐다보았다. 다른 사람들이 본다면 평소와 같이 무뚝뚝한 얼굴이라 할 테지만, 내가 보기에 그녀는 겁을 먹고 있었다. 나만이 아는 그녀의 숨겨진 일면.
“아니...... 못 본 척 그 부분만 피해가면서 씻어드렸어. 중간에 살짝 살짝 손이 닿기는 했어. 할아버지는 창피해 하지도 않고, 오히려 은근히 그 부분을 내밀더라. 보란 듯이.”
“다음에는 만져드려. 제대로.”
내가 말했다. 목소리가 떨려 나오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사실은 굉장히 메마르고, 사무적인 목소리를 내었다. 조교 시절 시험 감독에 들어가 주의사항을 일러줄 때처럼.
“제대로 된 성관계는 하지 못할 거야. 대신 그 양반 거기가 뼈다귀처럼 딱딱하게 되도록 만들어. 필요하면 네 몸을 보여드리고, 원하는 곳을 만지게 해.”
아내의 크단 눈, 씩씩하고, 어떨 때는 위압적으로도 보이는 또렷한 눈매가 내게 고정된 채 떨리고 있었다. 다른 사람, 아내를 나만큼 모르는 사람이라면 그 겁먹은 침묵, 눈빛에 지레 기가 죽을 것이다. 고개를 돌리고 목소리를 떨지도 모른다. 그녀는 딱 그럴 만치 아름다우면서, 매서워 보인다. 그러나 나는 아무렇잖게 그녀의 시선을 받았다. 내가 하고있는 요구가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 이 상황이 너무나 진부한 일상이기나 한 양.
그녀의 눈동자 안에서 무언가가 큼지막하게 움직였다.
나는 그것을, 아내의 보이지 않는 얼굴이 내게 고개를 끄덕인 것으로 받아들인다. 왜냐하면.
내가 아내와 처음 몸을 섞을 때도 딱 이러했다. 조교 시절의 그녀를 내 자취방으로 불러들였다. 그녀는 특유의 오만해 뵈는, 혹은 무뚝뚝해 보이는 표정으로 앉아있었다. 대부분의 사람들로 하여금 기가 죽게 만들고, 감히 범접할 염을 내지 못하게 만드는 자태였다. 그런 모습이 사실은 긴장되고 떨려서 어쩔 줄 몰라하는 것이란 걸 그때는 나 역시 알지 못했지만......
나는 감히 거기에 입을 맞추었던 것이다. 달콤한 무드를 만들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강하게 압박하거나 위압적인 분위기를 내지도 않았다. 그냥, 우리가 당연히 겪어야 하는 사무인 양 다가가, 그녀의 입술에 내 것을 포개었던 것이다.
그녀가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하지만 몸을 피하거나 나를 밀어내지는 않았다.
“......왜?”
나는 밝게 미소지었다. 장난스럽게. 지금이라면 오히려 무표정을 유지했을 테지만, 그게 더 효과적이었을 테지만...... 그때는 그녀를 그렇게까지는 알지 못했다. 내가 지금보다 어리고, 더 곱상하면서 해맑은 인상이었기에 그래도 통하였을 것이다.
“난 너랑 결혼할 생각이거든.”
웃으면서 말했다. 마치 새로운 놀이를 생각해낸 어린아이처럼. 하기야 당시에는 그런 심정하고 크게 다르지도 않았다. (지금 생각하면 내가 뭘 믿고 그래 대담했던지 스스로도 잘 알 수가 없다)
“근데?”
“그러려면 확인해 봐야지. 너랑 나랑 잘 맞는지.”
내가 말했다.
“결혼하면 평생을 같이 살 건데, 맞는지 안 맞는지를 알아야 결정할 수 있지 않겠어.”
그 말을 하면서 한 손으로는 그녀의 볼과 관자놀이, 옆머리에서 귓불로 이르는 부분을 부드럽게 어루만졌다. 그것이 이미 내 것이기나 한 양.
그러자 그녀의 눈동자가 흔들렸던 것이다. 깊디 깊은 속으로, 커다란 것이 파문을 일으키며 내려앉았다. 딱 이와 같은 눈빛이었다. 4년 후 내가 그녀에게 다른 남자의, 그것도 잘 모르는 독거노인의 성기를 애무해주라고 요구했을 때와 똑같은 - 그 때 나는 알았다. 그녀가 내 것이라는 것을.
그녀의 볼에 입술을 가져가고, 귓가로 입김을 불어넣으며 나는 그녀에게, 뻔뻔스럽게도 그 자리에 누우라고 속삭였다. 상체로 그녀를 압박하고, 한 손으로는 가만히 그 어깨를 밀어젖히면서.
놀랍게도 그녀는 그렇게 하였다. 자리에 누운 채 내게 몸을 열었다. 쉽사리 응한 것치고는 도통 아랫도리가 젖어들지 않아서 애를 먹었던 기억이 있다. 그날 밤 그녀는 울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반듯이 누운 채 천장을 응시하면서 밤늦도록 아무 말이 없었다. (‘난 뭘 생각하는데 좀 오래 걸리거든’ - 그때 일을 물어보자 그녀가 웃으며 이렇게 말하였다)
아내는 대답하지 않았다. 적어도 입을 열어서는 말이다. 가만히 나를 쳐다보다가 시선을 내리깔았다. 나는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생각에 잠긴 그녀를 내버려둔 채 일어나 밥상을 차리러 갔다.
그날 밤 나는 무척 거칠게 그녀를 범하였고, 그녀 역시, 나를 부여잡는 손에 평소 이상으로 힘이 들어갔던 걸로, 기억한다.
“했니?”
사흘 뒤, 아내가 다시금 봉사를 다녀왔다. 전번에 비해 보다 특별한 봉사를. 나는 최대한 무뚝뚝한 목소리를 내고자 노력했다. 사실은 내 심장의 고동소리가 그녀에게, 곧바로 전해지지 않을까 가슴을 졸이면서. 다리가 후들대지 않도록 무릎에 있는 힘껏 긴장을 실으면서.
“응.”
아내 역시 무뚝뚝하게 대답했지만, 목소리가 어쩔 수 없이 잔뜩 잠겨 있었다. 본인은 의식하지 못하는 듯하였지만.
“그렇게 했어.”
덧붙이는 목소리는 이제 눈에 띄게 떨린다. 취조를 받는 범죄자처럼, 아니 나쁜 짓을 고백하는 아이와 같다.
그녀의 떨리는 어깨를 안아줄까? 흔들리는 목소리를 보듬어주어야 할까?
아니다. 그래선 실패다 -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지만 나는 내 본능대로, 경과보고를 받는 상관의 흉내를 내었다.
“뜨거운 물을 받아놓고, 노인네를 벗기면서 나도 벗었어. ‘옷이 젖어서요’라고 하면서. 아무렇지 않은 척했지만 굉장히 떨렸어. 때수건이 몇 번이나 손에서 미끄러졌어.”
“섰어? 노인네 물건이. 네 벗은 걸 보고 말이야.”
“응...... 생각보다 그렇게 딱딱하지는 않았지만.”
그녀가 고개를 숙이고, 말을 더듬는다.
“나중에는...... 꽤 딱딱해졌어. 내...... 손안에서.”
“노인네가 널 만졌어?”
“......”
“어디를?”
“위에...... 아래는 말고.”
“어떻게?”
제기랄, 목소리의 톤을 유지하기가 점점 힘들어진다. 다행이 그녀의 상태로는 눈치채지 못할 것 같긴 하다.
“노인네를 욕실 의자에 앉히고 무릎꿇은 채 씻어주면서...... 한손으로 노인네 것을 만져주었어. 노인네는 눈을 감고 음미하듯 가만히 있었지. 그러다가...... 비누를 헹구고 나니까 이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는 거야. 손은 자꾸 떨리고...... 그리고......”
“아랫도리가 촉촉해졌겠지. 목덜미에선 오한이 들고.”
“......”
“그래서 어떻게 했지?”
“어떻게 할지를 몰랐어. 그냥 무릎 꿇은 자세로, 노인네 그것만 손에 쥐고 있었어. 할아버지 눈을 쳐다볼 수가 없었고. 그랬는데, 노인네가 손을 내 머리에 얹었어. 위로하듯이 쓰다듬어 주었어.”
‘꽤 놀아본 할아버지인가 보군’ - 하고 생각하면서, 주머니 속의 담배를 꺼내어 물고 싶었지만 바닥에 떨어뜨릴 것 같아서 그만두었다.
“그리고...... 천천히 끌어당겼어. 내 머리가...... 사타구니 위로 오도록.”
“그리고?”
“노인네 물건을 입으로 물었어.”
담뱃갑을 꺼내지 않기를 잘했다. 손안에서 산산조각이 났을 것이다. 나는 이제 목소리가 거칠어지는 것을 숨기지 않았다. 아니, 숨길 수가 없었다.
“그래서...... 사정은 했어?”
“응?”
“사정! 그 노인네 물건에서 정액이 나왔냐고. 네 입안에.”
“아니.”
아내의 얼굴과 목소리는 겁을 먹은 건지 흥분한 건지 얼른 분간이 가지 않는다. 아마 둘 다일 것이다.
“그러지는 않았어. 꽤 오래 물고 있었고...... 마음이 좀 진정되니까 입으로 해줄 수 있었지. 당신한테, 해주는 것처럼 말야. 그게 입안을 움직이게 하고, 혀끝으로...... 노인네가 한숨을 쉬면서 내 젖가슴을 쥐고, 주물르고 꼬집고 했어. 입안에 것이 딱딱해지고 뜨거워지고 몇번씩 꿈틀대다가...... 찝찔한 걸 조금씩 흘리기는 했지만 사정하지는 않았지. 그러다가 천천히 수그러들더라고. 노인네가 내 얼굴을 밀어내더니 수고했다고, 너무 고맙다고 했어. 날 내려다보면서 웃는데...... 세상에 그렇게 평화롭고 자애로울 수가 없었어!”
아내가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사정하듯 말한다.
“날 안아줘. 제발.”
“옷을 벗어.”
내가 기다렸다는 듯 말했다. 거칠어진 호흡으로.
“옷을 벗고 침대로 가. 지금 당장!”
한차례 폭풍이 지나가고, 침대 안에서 아내는 내게 기대 누운 채 아직껏 몸을 떨어대고 있었다. 침대 위는 엉망으로 헝클어진 채였다. 나는 격정이 지나간 너그러운 기분으로 그녀의 머리를 가슴에 안아주었다. 그리고, 좋았다든가 좋았냐든가 사랑한다는 말 대신, 이렇게 속삭였다.
“잘했어. 넌 좋은 일을 한 거야. 모두에게.”
아내 상체의 떨림이 서서히 진정되었다.
그녀는 무방비의 자태로, 잠시 후 내 품안에서 잠이 들었다. 그녀의 기름진 피부, 만두처럼 속이 든든한 젖가슴을 어루만지며 나는 내 신체 일부가 다시금 빳빳하게 반응하는 걸 느꼈다.
아내를 깨워서 다시 한번 그녀 안에 들어갈 수도 있었지만, 그러지 않기로 했다. 대신 그녀를 세상 모르게 재운 채 둘이서, 그러니까 나와 내 부푼 남근이 함께, 새로운 계획을 세웠다. 그녀의 무구한 나신을 펼쳐둔 채 나와 내 발기한 남근은 밤늦도록 갖가지 음모를 꾸미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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