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이야누이야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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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머니는 동생에게 연락하지 말라고 했지만 난 그럴 수 없었다. 그리고 나한테 그런 것까지 요구할 권리가 아주머니한테는 없다고 생각했다.
군대 가기 전 난 동생에게 그 사실을 알리기 위해 열심히 전화했는데 전화할 때마다 그 집 가정부인 듯한 사람이 받고는 동생이 지금 집에 없다고 했다. 아침에도 저녁에도.
군대 가기 직전에 동생에게 전화가 와서 간신히 내가 군대 간다는 사실을 알릴 수 있었다.
입대 후에 기회가 날 때마다 동생에 편지를 썼다. 그러나 답장이 오지를 않았다. 바쁜가 보구나. 혹은 집안 사람들 눈치도 보이겠지.
일병이 되어 휴가를 나왔을 때 난 집주소를 가지고 부동산을 여러 차례 들려가며 동생의 집을 찾았다.
담이 엄청 높고 길게 이어져있는 큰 집이었다. 마치 내가 어렸을 적 살던 집처럼.
난 동생을 볼 수 없었다. 단지 그 집 대문을 드나드는 고급 외제차만을 여러 대 보았을 뿐이다.
상병 휴가도 헛되이 지내고 다시 부대로 돌아오고 며칠이 지났을 때였다.
믿기지 않게도 동생에게 편지가 왔다.
내무반 안이 난장판이 되었다.
어리숙한 김준식 상병에게 여자한테 편지가 왔다고.
편지는 내무실 안 병장들 손으로 들어가 그들 사이에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이리저리 축구공처럼 패스를 하고 있는데 난 기회를 잡아 편지가 그들 중 한 사람의 손으로 떨어지기 직전에 그 병장을 덮쳤다.
‘뻑’
옆에서 주먹이 날라오고 난 내무실 바닥에 굴렀다.
“이 새끼가 상병 됐다고 눈에 보이는 게 없나, 존나 개기네, 병장이 다 물로 보이냐?”
난 바닥에 머리를 박은 채 편지 내용을 듣게 되었다.
“야, 상병 되면, 짤 없이 여자 떨어져 나가는데 이 편지 이별의 편지 아냐.”
“야, 김상병 존나 불쌍하다 그래도 남들은 일병 때까지는 연락 오는데, 김상병은 면회한번 없이 짤린거냐?”
“자... 어디보자. 오빠!, 오빠! 미안! 미안해, 그동안 편지 많이 기다렸지?”
“와, 야,야,야, 이별의 편지가 아닐 수도 있겠는데?”
“오빠, 난 엄청 열 받았어. 나 그동안 오빠가 나한테 편지 한번도 안 한지 알았거든, 오늘 아침에 가정부아줌마가 뭔가를 찢어서 휴지통에 버리는데 느낌이 이상해서 나중에 휴지통을 뒤져 살펴보니, 오빠한테 온 편지 잖아! 그동안 오빠한테 온 편지가 다 휴지통으로 간 거야. 아, 난 왜 이렇게 돌대가리일까. 그런지도 모르고 부대 주소도 안 알켜 준다고... 도대체 몇 년이 이렇게 지난 거야......?”
내무반 안이 잠시 조용해졌다.
“야, 내용이 뭐 이러냐?”
그 때 저쪽 침상 끝에서 모포를 뒤집어쓰고 자고 있던 말년 병장이 일어났다. 그리고 고함질렀다.
“전체 차렷.”
내무반안 모든 병사들이 순식간에 기립자세를 취했다.
“그 편지 이리 가져와봐.”
편지를 읽고 있던 병장이 말년 병장에게 편지를 가져다 주었다.
“김상병, 기상.”
“상병 김준식.”
난 복창하며 일어섰다. 말년 병장이 편지를 나한테 던졌다. 그리고 말했다.
“모두들, 김상병의 편지에 관심을 끊는다. 알겠나?”
“옛!”
“그리고 앞으로도 김상병한테 오는 편지는 본인 이외에는 아무도 읽지 않는다. 알겠나?”
“옛!”
그것은 말년 병장이 제대하기 전 나한테 준 조그만 선물이었다.
편지를 읽으며 창피하게도 눈물이 났다.
동생은 지금까지 내 편지를 한번도 못 받아서 부대 주소도 모르고 있었다.
이젠 고3 2학기여서 대입시험을 준비 중이라고 한다.
난 동생이 나를 잊은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어 너무나 기뻤다.
그 이후로 몇 번 더 동생에게 편지가 왔다.
난 다음 휴가를 손꼽아 기다렸다.
다음 해 4월 난 병장이 되어 말년 휴가를 받았다.
동생은 K대학에 붙어서 대학 새내기가 되었다고 했다.
난 동생의 집으로 가다가 어짜피 동생 집으로 가봤자 만나보기 힘들다는 생각에 발길을 돌려 K대학을 향했다.
대학 정문에 이르자 갑자기 예기치 못한 두려움이 생겼다. 그 두려움은 못난 것이었다.
동생은 이제 대학생이 되었다. 내가 알던 순진한 여고생이 아닌 것이다.
내가 군대에서 정지된 시간을 보내는 동안 동생은 성인이 되어 있을 것이다.
성인이 된 동생이 내가 알던 소녀의 동생과 같을 수 있을까.
동생은 대학생.
나는 고등학교 중퇴의 노가다꾼.
뭐라고 정의 내리기 힘들지만, 알 수 없는, 그리고 피할 수 없는 그 무슨 결과가 느껴져왔다.
머리를 좌우로 흔들었다. 그래도, 최소한 동생은 나를 반갑게 맞아 주기는 할 것이다. 무엇을 두려워하는 것이냐.
얼마전 받았던 동생의 발랄한 편지를 생각하여 발끝에 힘을 주고 교문을 통과했다.
정말 운이 좋았다. 아니 이것이 운이 좋은 것일까.
동생은 길을 물어 찾아간 4호관 건물 앞 잔디밭에 앉아 있었다. 이 넓은 대학 안에서 한번에 만나다니.
문제는 동생의 옆에 어떤 남자가 앉아 있다는 것이다.
나는 한참을 기다렸다. 둘은 뭐가 재미있는지 마주보고 웃으며 대화하고 있었다.
난 남자를 살펴보았다. 그런대로 준수한 얼굴에, 그 옷차림에서 세련된 느낌을 받았다.
다시 동생을 보았다 그리고 그 남자가 세련된 만큼 동생도 세련된 모습이다. 아니다. 그 이상이었다.
동생은 이제껏 내가 보아온 여자들 중 최고의 미인이었다. 예상하고 있던 바였다. 화장을 하고 예쁜 옷을 입고 있는 동생의 모습. 저 여자가 내가 알고 있던 동생인가. 길거리에서 만났다면 쉽게 말조차 붙이기 힘들 정도의 미인이다.
멀찍이 떨어져 보고 있는 내 자신의 모습이 몹시 초라하게 느껴진다.
그때 그 남자의 팔이 동생의 어깨 위로 올라가는 것을 보았다. 몸에서 뭐가 쿵하고 내려 앉았다.
동생이 손을 들어 어깨에서 그 팔을 치웠다. 난 거기까지 보았다. 그리고 뒤로 돌아 달리기 시작했다.
다시 교문까지 와서 숨을 헐떡거렸다.
젠장, 이게 무슨 꼴인가. 죄라도 지었냐? 내가 누구냐. 난 동생의 오빠다. 아니다. 내가 동생의 오빠일까.
난 동생의 연인이 되고 싶은게 아닌가? 여기까지와서 갑자기 생각이 헝클어 졌다.
그리고 그 때 최초로 나 자신이 동생에게 품고 있는 생각을 정면으로 마주보았다.
넌, 동생의 오빠가 되고 싶은 것이냐. 아니면 연인이 되고 싶은 것이냐.
순간적으로 오빠가 되고 싶은 것이다. 좋은 오빠가 라는 생각이 떠올랐다.
그러나 난 자신을 속일 수 없었다.
난 동생의 연인이 되고 싶은 것이다. 그래서 이처럼 죄지은 사람처럼 치졸한 모습으로 여기 이렇게 도망쳐 온 것이다.
난 묵묵히 생각했다. 그리고 다시 발끝에 힘을 주어 동생이 있던 자리로 걸어갔다.
만나면 뭐라고 말할지 정하지도 않은 채. 그러나 가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용감하게 동생을 마주해야 한다.
비록 그것이 끝이 될지라도. 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동생은 그 자리에 없었다. 옆에 같이 앉아있던 남자와 함께 사라진 것이다.
난 한숨을 몰아쉬고 잠시 주저하다가 4호관 건물로 들어섰다.
7층에 이르러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다. 복도를 따라 걸으며 살펴보니 세 번 째 방에 컴퓨터공학과 사무실이라는 팻말이 보였다. 노크를 했다. 문이 삐걱 열렸다.
“어떻게 오셨지요?”
내 나이또래의 검은 테의 안경을 쓴 남자가 눈빛을 빛내며 나에게 물어왔다. 그 사람의 눈에 내가 이상해 보였을 것이다. 군복을 입은 채 쭈뼛거리며 말을 더듬고 있으니.
“가영... 최가영 학생을 만나러 왔습니다.”
그 남자가 나를 아래 위로 훑어 보았다.
“저... 무슨 관계인지...”
“저... 전...”
왠지 가영이의 오빠라는 말이 입에서 나오지 않았다. 아니 오빠라고 말하기가 싫었다. 그래서 어물거리고 있는 데 과사무실 안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뭐야, 또 가영이 찾는 사람이야? 참나, 한 둘도 아니고 걔 진짜 인기 좋네.”
“저, 가영이는 지금 여기 없거든요? 있다가 수업이 끝나면 아마... 그래도 만나기 힘들 텐데...”
“저기요. 죄송하지만 가영이 하고 아시는 사이라면 직접 연락해서 만나지 않으실래요? 여기는 사무실이라 시끄러우면 안되거든요?
그 때 일단의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왔다. 그들 중 하나가 나를 힐끗 올려다보며 냉소하듯이 말했다.
“뭐야. 또 가영이 팬이야? 야, 걔 뭐냐, 연예인이냐. 참나. 저기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좀 딴데 가서 알아보실래요? 팬클럽을 만드시거나.”
“킥.킥.킥.”
사람들이 날 비웃듯이 쳐다보며 웃어댔다. 난 수치심에 얼굴이 빨개졌다. 빨리 오해를 풀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었다. 내가 막 ‘전 가영이 오빠거든요?’ 라고 말하려고 하는데 복도 반대편쪽 강의실에서 동생이 나왔다. 그리고 우리는 마주보았다.
동생이 멍하니 나를 쳐다보더니 달려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향긋한 바람과 함께 내 목에 팔을 두르며 뛰어와 안겼다.
“오빠!”
우리는 껴안고 정지했다. 주위가 조용해졌다. 잠시 후 몸을 떼고 서로를 말없이 바라보고 있는데 옆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뭐야, 가영이 오빠였어? 아, 정말 실례했네. 죄송...”
“맞아 가영이한테 군대간 오빠가 있다고 했었지? 맞아, 맞아.”
그 때 동생이 그들을 향하더니 조용히 수줍은 듯이 말했다.
“저, 오빠 아니거든요?”
“?” “?” “?” “?”......
나도 어리둥절해서 무슨소리인가 하고 있는데 동생이 약간 더 큰 소리로 말했다.
“오빠가 아니라 제 앤이에요.”
“뭐?”
“앤이라고?
“야, 너 남자친구 없다고 했잖아!”
주위가 소란스러워졌다.
“남자친구는 없어요 오빠가 싫어할 테니까. 하지만 앤은 있죠. 이 오빠요.”
동생은 씽긋 웃더니 내 팔에 팔짱을 꼈다.
“오빠, 가자!”
등뒤에서 이런 저런 소리가 들렸왔다.
‘아니, 쟤가, 쟤가.’ ‘야, 얌전한 고양이 부뚜막에 먼저 오른다더니...’ ‘야 닭 쫓던 개가 도대체 몇 마리냐. 한번 세보자...’
우리는 학교를 나와 번화가로 나왔다.
동생은 데이트를 할 때 어디에 들어가는 것 보다 걷는 것을 좋아한다.
난 그것이 왜 그런지 안다. 어릴 적부터 돈이 없었기 때문에 어디 들어가는 것 보다 걷는 걸 좋아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지금도 그럴까?
우리는 한참동안 팔짱을 끼고 걸었고 걷다가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지 않을까 걱정될 만큼 서로를 자주 쳐다보았다.
보면 볼 수록 미인이어서 쳐다보기가 겁날 정도였다.
“오빠 다리 아프다 좀 어디서 쉬었다 가자.”
“응.”
그런데 하필이면 그 때 들어선 골목이 여관골목이었다. 난 좀 당황해서 빨리 그 골목을 지나쳐 가려고 했다. 동생을 이끌고 걸으며 골목 초입에서는 아, 민망해라 빨리 지나가야지 하고 생각했는데 골목을 걸어 가면서 생각이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고. 골목 끝 마지막 여관이 지나치기 직전에 난 우뚝 서고 말았다. 그리고 동생을 돌아보고는 말했다.
“여기 들어갈까?”
말이 튀어 나가고 난 다음 난 얼굴이 붉어졌다.
내용도 그렇지만 말의 어조 자체가 내가 생각하기에도 너무 무뚝뚝하고 게다가 갈라져서 긴장해 있었던 것이다.
난 동생의 반응이 두려워져서 얼굴에서 피가 빠져나가는 것을 느꼈다.
그래서 뭔가, 어떻게 말을 해야 할까. 음... 농담이었어? 라고 말할까하고 당황하고 있는데 동생이 킥킥 거리며 웃었다.
“뭐야? 그런 말을 그렇게 하는 남자가 어딨어?”
“여자가 그런 생각이 있다가도 무서워서 도망가겠다. 킥킥.”
그러더니 얼굴을 한 번 굳히고는 어디 사투리인지 모를 사투리를 흉내내며 말했다.
“그러제 뭐 들 가자.”
난 내가 저질러 놓은 상황에 당황하면서도 동생을 데리고 안내된 방으로 들어갔다.
난 더 이상 당황하지 않고 침착해 졌는데 동생은 방문을 닫자 오히려 굳어지는 모습이었다.
군대 가기 전 난 동생에게 그 사실을 알리기 위해 열심히 전화했는데 전화할 때마다 그 집 가정부인 듯한 사람이 받고는 동생이 지금 집에 없다고 했다. 아침에도 저녁에도.
군대 가기 직전에 동생에게 전화가 와서 간신히 내가 군대 간다는 사실을 알릴 수 있었다.
입대 후에 기회가 날 때마다 동생에 편지를 썼다. 그러나 답장이 오지를 않았다. 바쁜가 보구나. 혹은 집안 사람들 눈치도 보이겠지.
일병이 되어 휴가를 나왔을 때 난 집주소를 가지고 부동산을 여러 차례 들려가며 동생의 집을 찾았다.
담이 엄청 높고 길게 이어져있는 큰 집이었다. 마치 내가 어렸을 적 살던 집처럼.
난 동생을 볼 수 없었다. 단지 그 집 대문을 드나드는 고급 외제차만을 여러 대 보았을 뿐이다.
상병 휴가도 헛되이 지내고 다시 부대로 돌아오고 며칠이 지났을 때였다.
믿기지 않게도 동생에게 편지가 왔다.
내무반 안이 난장판이 되었다.
어리숙한 김준식 상병에게 여자한테 편지가 왔다고.
편지는 내무실 안 병장들 손으로 들어가 그들 사이에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이리저리 축구공처럼 패스를 하고 있는데 난 기회를 잡아 편지가 그들 중 한 사람의 손으로 떨어지기 직전에 그 병장을 덮쳤다.
‘뻑’
옆에서 주먹이 날라오고 난 내무실 바닥에 굴렀다.
“이 새끼가 상병 됐다고 눈에 보이는 게 없나, 존나 개기네, 병장이 다 물로 보이냐?”
난 바닥에 머리를 박은 채 편지 내용을 듣게 되었다.
“야, 상병 되면, 짤 없이 여자 떨어져 나가는데 이 편지 이별의 편지 아냐.”
“야, 김상병 존나 불쌍하다 그래도 남들은 일병 때까지는 연락 오는데, 김상병은 면회한번 없이 짤린거냐?”
“자... 어디보자. 오빠!, 오빠! 미안! 미안해, 그동안 편지 많이 기다렸지?”
“와, 야,야,야, 이별의 편지가 아닐 수도 있겠는데?”
“오빠, 난 엄청 열 받았어. 나 그동안 오빠가 나한테 편지 한번도 안 한지 알았거든, 오늘 아침에 가정부아줌마가 뭔가를 찢어서 휴지통에 버리는데 느낌이 이상해서 나중에 휴지통을 뒤져 살펴보니, 오빠한테 온 편지 잖아! 그동안 오빠한테 온 편지가 다 휴지통으로 간 거야. 아, 난 왜 이렇게 돌대가리일까. 그런지도 모르고 부대 주소도 안 알켜 준다고... 도대체 몇 년이 이렇게 지난 거야......?”
내무반 안이 잠시 조용해졌다.
“야, 내용이 뭐 이러냐?”
그 때 저쪽 침상 끝에서 모포를 뒤집어쓰고 자고 있던 말년 병장이 일어났다. 그리고 고함질렀다.
“전체 차렷.”
내무반안 모든 병사들이 순식간에 기립자세를 취했다.
“그 편지 이리 가져와봐.”
편지를 읽고 있던 병장이 말년 병장에게 편지를 가져다 주었다.
“김상병, 기상.”
“상병 김준식.”
난 복창하며 일어섰다. 말년 병장이 편지를 나한테 던졌다. 그리고 말했다.
“모두들, 김상병의 편지에 관심을 끊는다. 알겠나?”
“옛!”
“그리고 앞으로도 김상병한테 오는 편지는 본인 이외에는 아무도 읽지 않는다. 알겠나?”
“옛!”
그것은 말년 병장이 제대하기 전 나한테 준 조그만 선물이었다.
편지를 읽으며 창피하게도 눈물이 났다.
동생은 지금까지 내 편지를 한번도 못 받아서 부대 주소도 모르고 있었다.
이젠 고3 2학기여서 대입시험을 준비 중이라고 한다.
난 동생이 나를 잊은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어 너무나 기뻤다.
그 이후로 몇 번 더 동생에게 편지가 왔다.
난 다음 휴가를 손꼽아 기다렸다.
다음 해 4월 난 병장이 되어 말년 휴가를 받았다.
동생은 K대학에 붙어서 대학 새내기가 되었다고 했다.
난 동생의 집으로 가다가 어짜피 동생 집으로 가봤자 만나보기 힘들다는 생각에 발길을 돌려 K대학을 향했다.
대학 정문에 이르자 갑자기 예기치 못한 두려움이 생겼다. 그 두려움은 못난 것이었다.
동생은 이제 대학생이 되었다. 내가 알던 순진한 여고생이 아닌 것이다.
내가 군대에서 정지된 시간을 보내는 동안 동생은 성인이 되어 있을 것이다.
성인이 된 동생이 내가 알던 소녀의 동생과 같을 수 있을까.
동생은 대학생.
나는 고등학교 중퇴의 노가다꾼.
뭐라고 정의 내리기 힘들지만, 알 수 없는, 그리고 피할 수 없는 그 무슨 결과가 느껴져왔다.
머리를 좌우로 흔들었다. 그래도, 최소한 동생은 나를 반갑게 맞아 주기는 할 것이다. 무엇을 두려워하는 것이냐.
얼마전 받았던 동생의 발랄한 편지를 생각하여 발끝에 힘을 주고 교문을 통과했다.
정말 운이 좋았다. 아니 이것이 운이 좋은 것일까.
동생은 길을 물어 찾아간 4호관 건물 앞 잔디밭에 앉아 있었다. 이 넓은 대학 안에서 한번에 만나다니.
문제는 동생의 옆에 어떤 남자가 앉아 있다는 것이다.
나는 한참을 기다렸다. 둘은 뭐가 재미있는지 마주보고 웃으며 대화하고 있었다.
난 남자를 살펴보았다. 그런대로 준수한 얼굴에, 그 옷차림에서 세련된 느낌을 받았다.
다시 동생을 보았다 그리고 그 남자가 세련된 만큼 동생도 세련된 모습이다. 아니다. 그 이상이었다.
동생은 이제껏 내가 보아온 여자들 중 최고의 미인이었다. 예상하고 있던 바였다. 화장을 하고 예쁜 옷을 입고 있는 동생의 모습. 저 여자가 내가 알고 있던 동생인가. 길거리에서 만났다면 쉽게 말조차 붙이기 힘들 정도의 미인이다.
멀찍이 떨어져 보고 있는 내 자신의 모습이 몹시 초라하게 느껴진다.
그때 그 남자의 팔이 동생의 어깨 위로 올라가는 것을 보았다. 몸에서 뭐가 쿵하고 내려 앉았다.
동생이 손을 들어 어깨에서 그 팔을 치웠다. 난 거기까지 보았다. 그리고 뒤로 돌아 달리기 시작했다.
다시 교문까지 와서 숨을 헐떡거렸다.
젠장, 이게 무슨 꼴인가. 죄라도 지었냐? 내가 누구냐. 난 동생의 오빠다. 아니다. 내가 동생의 오빠일까.
난 동생의 연인이 되고 싶은게 아닌가? 여기까지와서 갑자기 생각이 헝클어 졌다.
그리고 그 때 최초로 나 자신이 동생에게 품고 있는 생각을 정면으로 마주보았다.
넌, 동생의 오빠가 되고 싶은 것이냐. 아니면 연인이 되고 싶은 것이냐.
순간적으로 오빠가 되고 싶은 것이다. 좋은 오빠가 라는 생각이 떠올랐다.
그러나 난 자신을 속일 수 없었다.
난 동생의 연인이 되고 싶은 것이다. 그래서 이처럼 죄지은 사람처럼 치졸한 모습으로 여기 이렇게 도망쳐 온 것이다.
난 묵묵히 생각했다. 그리고 다시 발끝에 힘을 주어 동생이 있던 자리로 걸어갔다.
만나면 뭐라고 말할지 정하지도 않은 채. 그러나 가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용감하게 동생을 마주해야 한다.
비록 그것이 끝이 될지라도. 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동생은 그 자리에 없었다. 옆에 같이 앉아있던 남자와 함께 사라진 것이다.
난 한숨을 몰아쉬고 잠시 주저하다가 4호관 건물로 들어섰다.
7층에 이르러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다. 복도를 따라 걸으며 살펴보니 세 번 째 방에 컴퓨터공학과 사무실이라는 팻말이 보였다. 노크를 했다. 문이 삐걱 열렸다.
“어떻게 오셨지요?”
내 나이또래의 검은 테의 안경을 쓴 남자가 눈빛을 빛내며 나에게 물어왔다. 그 사람의 눈에 내가 이상해 보였을 것이다. 군복을 입은 채 쭈뼛거리며 말을 더듬고 있으니.
“가영... 최가영 학생을 만나러 왔습니다.”
그 남자가 나를 아래 위로 훑어 보았다.
“저... 무슨 관계인지...”
“저... 전...”
왠지 가영이의 오빠라는 말이 입에서 나오지 않았다. 아니 오빠라고 말하기가 싫었다. 그래서 어물거리고 있는 데 과사무실 안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뭐야, 또 가영이 찾는 사람이야? 참나, 한 둘도 아니고 걔 진짜 인기 좋네.”
“저, 가영이는 지금 여기 없거든요? 있다가 수업이 끝나면 아마... 그래도 만나기 힘들 텐데...”
“저기요. 죄송하지만 가영이 하고 아시는 사이라면 직접 연락해서 만나지 않으실래요? 여기는 사무실이라 시끄러우면 안되거든요?
그 때 일단의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왔다. 그들 중 하나가 나를 힐끗 올려다보며 냉소하듯이 말했다.
“뭐야. 또 가영이 팬이야? 야, 걔 뭐냐, 연예인이냐. 참나. 저기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좀 딴데 가서 알아보실래요? 팬클럽을 만드시거나.”
“킥.킥.킥.”
사람들이 날 비웃듯이 쳐다보며 웃어댔다. 난 수치심에 얼굴이 빨개졌다. 빨리 오해를 풀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었다. 내가 막 ‘전 가영이 오빠거든요?’ 라고 말하려고 하는데 복도 반대편쪽 강의실에서 동생이 나왔다. 그리고 우리는 마주보았다.
동생이 멍하니 나를 쳐다보더니 달려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향긋한 바람과 함께 내 목에 팔을 두르며 뛰어와 안겼다.
“오빠!”
우리는 껴안고 정지했다. 주위가 조용해졌다. 잠시 후 몸을 떼고 서로를 말없이 바라보고 있는데 옆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뭐야, 가영이 오빠였어? 아, 정말 실례했네. 죄송...”
“맞아 가영이한테 군대간 오빠가 있다고 했었지? 맞아, 맞아.”
그 때 동생이 그들을 향하더니 조용히 수줍은 듯이 말했다.
“저, 오빠 아니거든요?”
“?” “?” “?” “?”......
나도 어리둥절해서 무슨소리인가 하고 있는데 동생이 약간 더 큰 소리로 말했다.
“오빠가 아니라 제 앤이에요.”
“뭐?”
“앤이라고?
“야, 너 남자친구 없다고 했잖아!”
주위가 소란스러워졌다.
“남자친구는 없어요 오빠가 싫어할 테니까. 하지만 앤은 있죠. 이 오빠요.”
동생은 씽긋 웃더니 내 팔에 팔짱을 꼈다.
“오빠, 가자!”
등뒤에서 이런 저런 소리가 들렸왔다.
‘아니, 쟤가, 쟤가.’ ‘야, 얌전한 고양이 부뚜막에 먼저 오른다더니...’ ‘야 닭 쫓던 개가 도대체 몇 마리냐. 한번 세보자...’
우리는 학교를 나와 번화가로 나왔다.
동생은 데이트를 할 때 어디에 들어가는 것 보다 걷는 것을 좋아한다.
난 그것이 왜 그런지 안다. 어릴 적부터 돈이 없었기 때문에 어디 들어가는 것 보다 걷는 걸 좋아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지금도 그럴까?
우리는 한참동안 팔짱을 끼고 걸었고 걷다가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지 않을까 걱정될 만큼 서로를 자주 쳐다보았다.
보면 볼 수록 미인이어서 쳐다보기가 겁날 정도였다.
“오빠 다리 아프다 좀 어디서 쉬었다 가자.”
“응.”
그런데 하필이면 그 때 들어선 골목이 여관골목이었다. 난 좀 당황해서 빨리 그 골목을 지나쳐 가려고 했다. 동생을 이끌고 걸으며 골목 초입에서는 아, 민망해라 빨리 지나가야지 하고 생각했는데 골목을 걸어 가면서 생각이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고. 골목 끝 마지막 여관이 지나치기 직전에 난 우뚝 서고 말았다. 그리고 동생을 돌아보고는 말했다.
“여기 들어갈까?”
말이 튀어 나가고 난 다음 난 얼굴이 붉어졌다.
내용도 그렇지만 말의 어조 자체가 내가 생각하기에도 너무 무뚝뚝하고 게다가 갈라져서 긴장해 있었던 것이다.
난 동생의 반응이 두려워져서 얼굴에서 피가 빠져나가는 것을 느꼈다.
그래서 뭔가, 어떻게 말을 해야 할까. 음... 농담이었어? 라고 말할까하고 당황하고 있는데 동생이 킥킥 거리며 웃었다.
“뭐야? 그런 말을 그렇게 하는 남자가 어딨어?”
“여자가 그런 생각이 있다가도 무서워서 도망가겠다. 킥킥.”
그러더니 얼굴을 한 번 굳히고는 어디 사투리인지 모를 사투리를 흉내내며 말했다.
“그러제 뭐 들 가자.”
난 내가 저질러 놓은 상황에 당황하면서도 동생을 데리고 안내된 방으로 들어갔다.
난 더 이상 당황하지 않고 침착해 졌는데 동생은 방문을 닫자 오히려 굳어지는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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