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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소설-내가 만드는 이야기

슬프도록 아름다운 - 13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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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333 회 작성일 23-12-26 12:4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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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잠에서 깬 찬승이 눈을 떠 시계를 바라보자 12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4시간쯤 잔 모양이었다. 아영은 여전히 찬승의 위에 엎드린 상태로 잠들어 있었다.

찬승이 그런 그녀를 조심스레 옆으로 밀어 눕히자 자신의 자지 부근에 허연 정액이 달라붙어 있는 모습이 보였다. 아영의 보지에서 흘러내린 모양이었다.



“으응….”



찬승이 옆에 있던 휴지로 마르기 시작하는 정액을 닦아낼 때 아영이 잠에서 깼다. 서로 눈이 마주친 두 사람. 그러나 웬일인지 약간 어색한 분위기에 눈을 피해야 했다. 아까 있었던 일이 너무나도 부끄러웠기 때문이다. 둘 다 많이 취했던 상태. 그러나 찬승은 아영을 여동생인 것처럼 부르면서 온갖 음란한 말을 했고, 아영도 여동생의 역할을 자처하며 마구 음란한 말을 내뱉은 것이다. 모텔에서 처음 관계했을 때를 빼고는 이렇게 음란한 대화를 주고받으며 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근친상간이라는 금지된 상황극을 연기했으니 술이 깨기 시작한 둘이 어색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아영이 옆에 있던 자신의 팬티를 입으며 슬쩍 입을 열었다.



“저, 저기 선배….”



“응, 응?”



“아까는 죄송했어요…. 선배한테 색다른 경험 시켜드리고 싶어서….”



아영의 사과에 오히려 찬승이 손을 저었다.



“아, 아냐! 나, 나도 좋았는걸….”



찬승이 그렇게 얘기하자 아영이 살짝 웃음을 터트린다. 찬승도 따라 웃고…. 그렇게 잠시간을 웃던 아영이 조심스런 말투로 입을 열었다.



“선배. 저기…. 음. 근데 혹시 정말 그런 생각 하고 계신 건 아니죠?”



“무슨 생각?”



“여, 여동생이랑….”



아영의 말에 찬승이 살짝 놀란 듯한 표정을 짓더니 이내 웃음을 터트린다.



“푸핫. 뭐야. 그럴 일 없어. 그런 생각은 아까 너무 흥분해서 그랬고…. 이젠 뭐 아무렇지도 않아.”



“…다행이네요.”



아영은 정말 다행이라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 그녀의 표정을 본 찬승은 이내 피식 웃고는 화장실로 들어가려 했다. 그러나 이어지는 아영의 말에 다시 자리에 앉아야 했다.



“선배. 서, 선배한테만 트, 특별히 얘기하는 건데요…. 저도 그런 가…족이랑 관련된 일이 있었어요.”



“…!”



찬승의 놀란 표정을 무시하고 아영의 말이 이어졌다.



“…초등학교 때 엄마가 사고로 돌아가셨어요. 그리고 고등학교 1학년 때 아빠가 새엄마와 결혼했어요. 아빠가 엄마를 버리고 다른 여자와 결혼한다는 것이 너무나도 싫었고 차라리 여자가 그립다면 저를 줄 수 있다고 까지 생각했었죠. 그때는 남자 경험이 전혀 없었지만 친구들과 대화하면서 남자랑 여자가 무얼 하는지는 대충 알고 있었고 자위 경험도 몇 번 있었기에 완전 숙맥은 아니었죠. 그래서 어느 날 새엄마가 집에 없고 아빠가 목욕하러 들어간 사이 알몸으로 욕탕에 따라 들어갔어요. 웃기는 얘기지만 전 그 당시 제 얼굴과 몸매에 자신 있었고 팔팔한 17세 여고생의 알몸을 본 아빠가 바로 저를 가질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럼 새엄마와 아빠의 관계도 끝이라고 생각했죠.”



너무나도 충격적인 이야기에 찬승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아니 할 말이 있더라도 이런 말은 끝까지 들어주는 것이 예의였다.



“그런데…. 그런데 웃기게도 그 당시 몰래 친구들이랑 공유하며 읽던 야설 같은 상황은 안 일어나더라고요. 아빠는 제가 적극적으로 다가갔음에도 불구하고 고개를 돌리시면서 빨리 나가라고 말씀하셨죠. 결국 포기하고 밖으로 나왔어요. 그리고 이제 앞으로 아빠 얼굴 어떻게 보나 죽어버릴까 생각했지만 역시 아빠는 아빠였어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대해주시고 오히려 전보다 더 잘해주셨어요.”



거기까지 말한 아영은 잠시 한숨을 내쉬고는 말을 이었다.



“전 지금까지 그때 일에 너무 후회하면서도 아빠에겐 너무나도 고마워하고 있어요. 바보 같은 딸 지금까지 한결 같은 마음으로 대해주시고 변함없는 사랑을 주시는 모습에…. 덕분에 새엄마와도 친해졌어요. 그만큼 아빠를 믿으니까요. 정말…. 정말 다행인 것은 그때 아무 일도 없었다는 거예요. 그때 무슨 일이 있었다면 전 지금 평생 땅을 치며 후회하고 있을 테니까요.”



아영의 말은 거기서 끝이었다. 전혀 모르던 사실을 알게 된 찬승은 아영에게 다가가 살짝 그녀를 안았다. 찬승의 품안에서 아영이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제 말은 선배도 상상만으로 그치라는 거예요! 아.셨.죠!”



“바보…. 이제 우리 철없던 시절은 다 지났잖아. 그런 일은 없을 거야.”



찬승의 말에 아영이 환하게 미소 지었다. 10대의 철없던 시절을 지나 20대란 자신에게 책임을 져야 하는 시절엔 정말 그런 일은 없을 것이다.



*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돌아온 토요일 밤, 옷을 갈아입으려는 찬승에게 전화가 왔다. 발신자를 보니 지현이었다. 오랜만이라는 생각에 반가운 마음이 들어 재빨리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여, 여보세요. 선배. 안녕하세요.]



“응. 잘 지냈니?”



[예에….]



반갑고 밝은 찬승의 목소리에 비해 지현의 목소리는 상대적으로 작았다. 상대방의 반응이 미적지근하자 풀이 죽은 찬승은 덩달아 그녀처럼 목소리가 줄어들었다.



“응…. 근데 웬일이야?”



[아, 아뇨. 다음주에 2학년에서 엠티 가거든요. 서, 선배도 가실래요?]



“뭐? 엠티?”



찬승은 엠티라는 말에 다시 목소리가 높아졌다. 엠티는 1학년이나 지금이나, 나이를 먹든 말든 항상 재미있는 행사였기 때문이다. 그런 엠티를 빠질 리 없는 찬승이었다.



“당연히 가야지! 나도 갈 거니까 과대한테 그렇게 말해줘 알았지?”



[예….]



핸드폰 너머의 지현은 그렇게 대답한 뒤 잠시간 동안 말이 없었다. 갑자기 어색해진 분위기를 느낀 찬승은 이런 저런 이야기로 분위기 전환을 해보려고 입을 열었다.



“지현아.”



[서, 선배….]



그러나 역시 동시에 말하는 두 사람. 결국 지현이 양보했고 찬승이 먼저 말하기로 했다.



“아…. 그러고 보니 너 요리 되게 잘하는 거 같더라. 책 사가더니 실력 좀 늘었나본데?”



그러자 핸드폰 너머의 지현이 잠시 동안 아무 반응이 없다. 갑자기 무슨 요리를 말하는 건지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그러다 무언가를 깨달은 지현의 놀란 목소리가 들려 왔다.



[에엑…! 제, 제 싸이 들어가 보셨어요?]



“응. 당연하지 일촌인데. 하핫!”



[아아…. 제 싸, 싸이 자주 들어오세요?]



“응. 뭐. 가끔….”



[그렇군요….]



그렇게 대답하고는 또 다시 말이 없는 지현. 그러나 이번엔 지현이 말을 해야 할 차례라는 것을 알기에 찬승은 조용히 기다리고 있었다.

잠시간의 시간이 지난 후 지현이 조용한 목소리로 찬승을 불렀다.



[서, 선배….]



“응?”



[저, 저…. 저기.]



무언가 말을 하려다 말고 멈춘 지현은 잠시간의 뜸을 들인 후 약간의 한숨 섞인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다음 주 엠티 때 꼭 오시라구요….]



“응. 그래 갈게.”



그렇게 전화를 끊은 찬승은 싱거운 후배의 말에 어리둥절해 했지만 지현은 핸드폰 폴더를 닫으며 길게 한숨을 내쉬어야 했다.

결국 말하지 못했다…. 엠티 가기 전에 오랜만에 한 번 보자는 핑계로 만나자고 말하려 했는데 결국 끝까지 입을 열지 못한 것이다. 방학하고 자주 만나지 못할 거 같은 선배이기에 약속을 잡기 위한 여러 가지 연습 아닌 연습을 해야 했다. 유치한 연애소설, 연애만화도 읽어보고, 연애에 관련된 자기개발서를 읽어보기도 하고, 연애영화, 연애드라마, 심지어 연애게임까지 안 해본 것이 없을 정도였다. 그리고 전화하기 전 어색하지 않게 오랜만에 만나자는 말을 몇 십번을 되뇌었는지 모른다.



‘그런데 이게 뭐야…. 결국 떨려서 아무 말도 못했잖아. 으으으으…!’



지현은 침대에 길게 드러누우며 커다란 베개로 자신의 얼굴을 덮었다.



*



띵동-!



찬승은 또 다시 밤늦게 들어오는 여동생을 혼자 기다리다가 문을 열어 주었다. 서희는 웃는 얼굴로 혀를 한 번 삐죽 내밀고는 방으로 들어갔지만, 여동생의 뒷모습을 지켜보는 오빠로서는 마음이 편치 않았다. 요즘 들어 거의 밤늦게 들어온다. 물론 그 때 일 이후 서희에게 무슨 일이 있는지 알게 되었고 이해하는 입장을 갖자고 했지만 역시 오빠는 오빠였다. 매일 늦게 들어오는 여동생이 걱정 되는 것이 당연했기 때문이다.



‘쳇…. 그래도 그때 그런 생각을 하며 아영이랑 한 나도 이상한 인간이니….’



그때 아영이를 서희라고 부르며 뜨거운 관계를 가졌던 것을 떠올렸다. 그때 일을 떠올리면 여전히 흥분되는 것은 마찬가지였지만 여동생에게 이상한 생각이 드는 것은 아니었다. 그것만은 참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어쨌든 서희도 들어왔기에 방으로 들어간 찬승은 컴퓨터를 켰다. 여동생의 미니홈피에 한 번 들어가 볼 생각이었다.

싸이월드 홈페이지에서 로그인을 하고 접속한 뒤 여동생의 미니홈피로 가자 역시나 남자친구와 같이 찍은 메인사진이 나타났다. 사진첩을 둘러보는데 여전히 잘 사귀고 있는 것 같았다.



‘잘 사귀잖아. 쳇 부럽다….’



찬승은 남자와 여자가 연인관계로 다정하게 찍은 사진들을 보면 너무나도 부러운 생각이 든다. 사진 속의 남녀는 세상 모든 것을 가진 행복한 표정을 짓고 있으므로….

괜히 투덜거리며 서희의 일기장을 클릭하자 대충 오늘은 무엇을 했다는 내용 등이 간략하게 적혀 있었다. 특별한 내용이 없었기에 대충 넘기던 찬승은 어느 날부터 일기장에 ♡표시만 찍혀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순간 이상한 생각이 든 찬승은 계속해서 앞으로 넘겨보았다. 그러자 어느 날짜에 이렇게 적혀 있었다.



[♡ 시작]



그리고 그 하트는 2, 3일 간격으로 일기장마다 덩그러니 찍혀 있었다.



‘서, 설마….’



짐작이 갔다. 시작이란 날짜를 보니 여동생이 첫경험을 했다고 예상했던 날짜였다. 그리고 2, 3일 간격으로 ♡표시만 찍혀 있는 것이었다.



‘내, 내가 전에 여자친구 사귈 때도 이렇게 자주 하지는 않았는데….’



찬승은 이마를 짚었다. 생각보다 여동생이 너무 자주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런 생각을 하자 서희가 남자친구랑 하는 장면이 떠오르고 연쇄반응이 일어난다. 흥분하고만 것이다.



‘으읏…. 자자. 자자! 생각하지 말고…. 후우!’



찬승은 크게 한 번 심호흡을 하고는 침대에 몸을 뉘었다.



*



벌써 7월도 중순을 훌쩍 뛰어넘었다. 그만큼 날씨는 더워지고 있었고 특히 오늘, 금요일의 날씨는 그 어느 때보다도 더웠다. 더운 만큼 여름 특유의 부드러운 바다빛 하늘엔 구름 한 점 떠있지 않았다. 그만큼 맑은 날씨이기에 강촌으로 엠티를 가, 시원한 물에 발을 담그고 놀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는 날이었다.

찬승도 그런 기대를 잔뜩 하며 청량리역에 도착했지만 먼저 온 사람들을 보고는 왠지 이번 엠티가 심상치 않을 것이라고 느껴졌다.

일단 찬승이 알지 못하는 멤버가 네 명이 있었다. 남자 세 명과 여자 한 명. 모두 04학번 후배인 모양이었다. 그리고 아는 멤버가 다섯 명이 있었다. 여자 다섯 명. 역시 모두 04학번 후배였다. 2학년 엠티라고 했지만 이번에도 역시 04학번에 항상 참여하는 애들만 참여한 것 같았다. 선배는 자기 혼자…. 찬승은 괜스레 민망한 기분이 들었다.

찬승은 자신이 아는 04학번 여자 후배 다섯 명의 얼굴을 차례차례 바라보았다. 우선 두 명은 지현의 친구였기에 아는 후배. 그럼 나머지 세 명 중 한 명은 항상 같이 다니는 지현이 분명하다.

찬승은 나머지 두 명 중 한 명을 바라보았다. 자신을 생글거리는 얼굴로 바라보는 여자 후배. 어깨까지 내려오는 샤기컷의 머리에 특유의 섹시함을 발하는 스모키 눈 화장. 그리고 엠티가는 복장치고는 너무나도 편안하게 보이는 붉은색의 나시티와 검은색의 핫팬츠. 덕분에 드러난 새하얀 팔과 다리에 주위 사람들의 시선이 끊임없이 쏟아졌다. 이 여자후배는 두말할 것도 없이 아영이었다.

그리고 그 아영 옆에 무표정한 얼굴로 가만히 서 있는 여자 후배. 연두색의 티셔츠와 갈색 반바지를 편안하게 입었지만 특유의 세련된 외모가 지워지지 않는 여자 후배. 역시 긴말할 것도 없이 미경이었다.



‘후우….’



찬승은 둘을 보며 속으로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둘이 싫은 것은 아니었다. 아니 둘 다 자신이 좋아하는 후배들이었다. 하지만 저번에 술자리에서 이 둘과 지현이 만났을 때 상당해 이상해진 분위기를 아직도 기억하고 있기에 걱정이 드는 것이다. 그러나 찬승은 그때의 이상해진 분위기가 자신 때문이 아니라 셋이 친하지 않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라 착각하고 있었다.

아영과 미경을 보며 찬승만큼이나 한숨을 내쉬는 사람이 있었다. 바로 지현이었다. 아영과 미경도 2학년이라 2학년 과대가 연락은 했겠지만 설마 엠티마저 따라올 줄은 몰랐던 것이다. 둘은 오티부터 시작해서 엠티란 엠티는 하나도 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엠티뿐이랴. 학교에서 하는 행사 같은 것에 얼굴조차 내밀지 않는 그녀들이었는데 저번 종강파티도 그렇고 이번 엠티에도 얼굴을 내민 것이다.

지현은 그런 그녀들의 참여가 찬승 때문이란 생각이 들자 오기가 생겼다. 자신은 말도 제대로 못 붙이는데 저 둘은 찬승 때문에 참여하지도 않던 엠티에 참여하고 있다….



‘그럼 이번 엠티 때는 저 둘보다 선배와 훨씬 친하게 지내야지….’



지현은 문득 그런 생각을 하다가 얼굴이 화끈거렸다. 괜히 혼자 또 부끄러운 것이었다.

그러나 여기 혼자 부끄러워하는 지현 말고도 속으로 한숨을 내쉬는 이들이 또 있었다. 바로 04학번 남학생들이었다. 지금 엠티에 온 남학생들은 저번 종강파티에도 참여했던 이들이었다. 그 당시 그들의 두 눈으로 똑똑히 봤던 것이다. 04학번에서 가장 예쁘다는 지현, 아영, 미경 세 명의 여학생이 찬승하고만 노는 장면을…. 남학생들은 재밌는 엠티가 되기는 글렀다고 생각했지만 아영의 노출이 심한 옷을 보면서 위안을 삼았다.

어찌됐든 각자만의 생각을 품은 그들의 엠티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



그러나 그렇게 시작된 엠티는 출발부터 삐걱거렸다. 기차에 탑승해 자리에 앉는 문제 때문이었다. 몇 번부터 몇 번 좌석까지 앉으라는 말에 찬승은 아무데나 털썩 앉았지만 그 다음부터가 문제였다. 물론 다른 학생들은 다른 좌석에 앉으면 되었지만 지현, 아영, 미경에겐 전혀 그렇지가 않았다.

찬승이 앉아 있는 의자와 더불어 마주 앉는 의자까지 치면 세 자리가 남는다. 하지만 문제는 찬승의 옆자리에 누가 앉느냐는 것이었다. 서로 다른 생각으로 망설이던 세 명은 서로의 눈치를 슬쩍 봤다.

하지만 다행히 스타트를 끊은 여학생이 있었다. 의외로 지현이었다. 망설이던 지현의 엉덩이를 지켜보던 그녀의 친구들이 확 민 것이다. 허나 여전히 부끄러운 지현은 찬승의 옆에 앉질 못하고 대각선 앞쪽에 앉게 되었다. 그러자 그 다음부터는 일사천리였다. 가장 적극적인 아영이 좋아라하며 찬승의 옆에 달라붙었고, 미경이 조용히 찬승의 앞에 앉았다.

자리 배치가 그렇게 되자 찬승은 조용히 한숨을 쉬었다. 이 구도는 저번 종강파티를 하던 술집에서랑 같은 좌석배치였기 때문이다.



‘잠이나 잘까….’



세 명의 여자후배를 둘러보다가 그런 생각을 한 찬승이었지만, 그 생각은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



“너네 준비물 가져왔어?”



창문 쪽으로 고개를 돌리던 찬승이 의외의 목소리에 다시 고개를 돌렸다. 가장 먼저 입을 연 인물이 지현이었기 때문이다. 지현이 평소 활발한 후배란 것은 알고 있었지만 요즘 들어 이상하게 조용하고 얌전해졌으며 이 둘과는 친하지 않은 모습을 보였기에 가만히 입을 다물고 있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허나 지현이 먼저 입을 연 것에는 이유가 있었다. 아직 찬승에게 직접적으로 말을 하기에는 부끄럽고 이 둘을 공략해야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런데 아까 역에서 본 둘의 양손이 너무나도 편안해 보였기에 이런 트집을 잡고 나선 것이다. 찬승에게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는 지현의 목소리였으니 평소처럼 활발하고 힘이 있었다.

지현의 말에 아영과 미경은 서로를 쳐다보며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안 가져왔다는 뜻이었다. 그러자 지현이 걸렸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



“너네 오늘 준비물 가져오는 거 몰랐어? 쌀, 라면! 그리고 엠티 오는 사람은 과대한테 연락해서 개인 준비물 따로 가져와야 되는 거!”



지현의 목소리는 맑았으나 힘이 있었다. 그런 지현이 태권도 4단이라는 것을 동기인 아영과 미경이 모를 리 없었다. 그렇기에 지현의 말에 아영과 미경은 살짝 움찔해야 했다. 그러나 곧 둘도 특유의 성격이 나오고 말았다.



“칫. 알았어. 난 회비 더 낼게. 가서 마트에서 사면 돼지 뭐.”



아영은 말이 끝남과 동시에 지갑에서 만원을 꺼내 과대에게 건넸다. 사실 아영의 집은 꽤 사는 편이었다. 그러나 사치스럽지는 않은 그녀였기에 돈을 물 쓰듯 하는 성격은 아니었지만 이런 일에는 돈으로 해결하고 보는 성격이었다.



“미안. 다음에는 꼭 가져올게.”



이것은 미경의 대답이었다. 그렇게 되자 오히려 할 말이 없어진 것은 지현이었다.



“어…. 그래. 하하하. 아영이는 가서 사고 미경이는 다음에 꼭 가져와. 하하….”



지현은 허탈하게 웃음을 지었다. 딱히 특별한 반응을 노리고 말한 것은 아니었지만 둘의 반응이 너무나도 평범하니 할 말이 탁 막힌 것이다.

셋의 이런 대화를 듣던 찬승은 슬며시 웃음이 나왔다. 찬승은 지현이 둘과 친해지려고 하는 행동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여전히 셋의 속마음을 까마득히 모르는 찬승이었다.



기차를 타고 가는 동안 지현, 아영, 미경은 의외로 말이 없었다. 아니 저번 술집에서의 일이 있었기 때문에 서로서로를 조금씩 견제하고 있다고 함이 옳았다. 미경은 조용히 창문을 바라보고 있었고, 지현은 옆 좌석에 앉아 있는 혜미와 떠들고 있었다. 아영은 뭘 그리 보는지 계속해서 핸드폰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쳇. 내가 결국 이렇게 될 줄 알았어….’



저번 술집과 비슷한 분위기가 이어지자 찬승은 쓴 웃음을 지으며 아영 쪽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헛바람을 들이키며 재빨리 고개를 되돌려야만 했다. 아영이 양손으로 핸드폰을 잡고 있자 붉은색 나시티의 가슴부분이 살짝 올라가며 뽀얀 가슴골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전에 여러 번 봤던 그녀의 가슴이지만 이런 자리에서 저런 옷차림의 그녀를 보자 새삼스레 흥분이 되었다. 찬승이 당황하며 다시 고개를 돌리는 순간 이 광경을 목격한 사람이 있었다. 바로 지현이었다. 한참 혜미와 떠들던 지현은 찬승이 아영의 옷차림을 보고는 순간적으로 고개를 돌리는 장면을 목격한 것이다. 그러자 괜히 화가 나며 속이 부글부글 끓는 지현….



“야. 홍아영. 너 담요라도 덮어.”



뜬금없는 지현의 말에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던 아영이 검은 눈알을 들어 올렸다.



“왜?”



“내가 에어컨 높여 달라고 할 거니까.”



말을 마친 지현은 실제로 핸드폰을 꺼내더니 기차 칸에 붙어 있는 번호로 전화를 연결했다. 그리고 잠시 후 몇 마디의 말이 오고가자 실제로 에어컨의 강도가 세지기 시작했다.



“으핫…!”



맨살의 노출이 꽤나 심한 아영은 갑자기 낮아진 온도에 서늘함을 느꼈다. 얼른 자신을 끌어안는 자세를 취하더니 화가 난 듯 투덜거렸다.



“야. 지금도 잘 가고 있는데 갑자기 왜 그래. 아휴…! 추워 죽겠네. 미경아 너도 춥지?”



아영은 자신의 팔을 문지르며 미경에게 도움을 청했다. 창밖을 바라보던 미경은 고개를 돌리며 조용히 입을 열었다.



“지금이 딱 좋은데?”



“으씨….”



미경의 말에 아영은 투덜거리며 자신의 가방에서 겉옷을 꺼내 걸쳤다. 사실 미경도 아영이 심한 노출로 찬승의 옆에 앉아 있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러던 차에 지현 덕분에 에어컨 세기가 올라갔으니 반대할 이유가 없었다.

찬승은 갑작스런 해프닝으로 아영이 옷을 걸친 것이 약간 아쉽긴 했다. 부담스럽기도 했지만 몰래 훔쳐보는 재미도 꽤 쏠쏠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일어난 일로 보아 셋이 잘 지낼 것 같아 왠지 흐뭇한 마음이 들기도 하였다.

여전히 혼자 쓸데없는 착각을 하는 찬승이었다.



*



이윽고 강촌에 도착해 기차에서 내리자 또 다시 뜨거운 기운이 찬승을 덮쳤다. 시원한 곳에 장시간 앉아 있다 나오자 밖의 열기가 더욱 심하게 느껴진 것이다. 겉옷을 걸치고 있던 아영은 밖에 나오자마자 자기 세상이라도 만난 것처럼 겉옷을 벗어버렸다. 그러자 강촌에 엠티를 온 수많은 사람들의 시선이 그녀에게로 쏠렸다. 뒤따라 내리던 지현은 그런 아영의 행동이 마땅찮았으나 이제 뭐라 할 수 없는 입장이기에 속으로만 툴툴거릴 뿐이었다.

숙소까지는 역으로 마중 나온 주인집 아저씨의 차를 타고 이동하였다. 인원이 열 명이었기에 두 번에 걸쳐 날라야 했다. 숙소는 보기에도 시원한 개울을 끼고 있는 곳에 위치한 통나무집 형식이었다. 짐은 대부분 04학번 남학생들이 들고 있었기에 찬승은 편안하게 숙소에 들어갈 수 있었다.



‘후후…. 1학년 때는 내가 다 짐 날랐는데…. 나이 먹으니 이런 게 좋긴 하구나.’



04학번 남학생들이 자기를 싫어하는지는 꿈에도 모른 채 그들을 흐뭇하게 바라보는 찬승이었다.

잠시 후 숙소의 화장실에 다녀온 한 여학생이 툴툴거렸다.



“화장실 문 안 잠겨!”



그러자 몇 명의 여학생이 화장실로 달려가 문을 살펴봤으나 서로 조심하면 되기에 이내 그 소동은 사그라졌다.



숙소에 짐을 푼 열 명의 인원들은 뜨거운 햇빛을 받으며 근처 개울로 향하고 있었다. 물놀이를 하러 가는 것이다. 찬승도 좋아라하며 가지고 온 수건을 어깨에 둘러메고 출발했으나 막상 걷다보니 누구와 놀아야 할지 참 난감했다.

평소 같았으면 지현과 그녀의 친구 두 명과 놀면 되었지만 오늘은 아영과 미경이 같이 있는 것이었다. 아영, 미경이 여기 여덟 명 중 그 누구와도 친하다고 생각되지 않았다. 얘기하고 밥 먹는 사람은 자신뿐인 것이다.



‘뭐…? 나 밖에 없다고?’



그런 생각을 하던 찬승은 문득 이상한 것을 깨달았다. 누구와 알지도 못하고 심지어 서로도 그리 친한 친구가 아닌데 왜 갑자기 종강파티며 엠티를 참여 했을까? 그 참여한 사람 중 유일하게 친하게 지내는 사람이라면 찬승 자신 밖에 없을 텐데….



‘서, 설마 나 때문에 참여한 건가?’



찬승은 문득 눈을 들어 앞에서 무언가 서로 얘기를 하며 걷고 있는 아영과 미경을 바라보았다. 친해 보인다…. 결코 자신 때문이 아니라 둘이 친해서 놀러온 것 같았다.



‘그래. 설마 나 때문에 온 건 아니겠지. 내가 뭐라고….’



그러나 지금 나누는 아영과 미경의 대화를 모르는 찬승이었다.



“미경아. 속옷 가져 왔어?”



“아니.”



“으씨…. 젖으면 난리 나는데…. 대충 놀다 나와야지.”



아영과 미경의 대화였다.



7월 여름의 뜨거운 햇살을 받는 개울물은 반짝거리는 반사 빛을 내뿜으며 아름답게 흐르고 있었다. 그러나 결코 잔잔하지는 않았다. 이미 엠티를 온 많은 사람들이 곳곳에서 시끌벅적하게 놀고 있었기 때문이다.

개울가에 도착해 머뭇거리며 살짝 발만 담그던 찬승의 일행들은 이윽고 누군가의 장난을 시작으로 요란스레 서로에게 물을 튀기며 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사람들 중 여전히 외곽에서 머뭇거리며 서 있는 세 사람이 있었다. 말할 것도 없이 찬승과 아영, 그리고 미경이었다.

찬승은 그들 틈에 들어가 물을 뿌리거나 맞기엔 애들과 너무 친하지 않았으며, 아영과 미경도 비슷한 이유에 속옷이 없다는 이유를 더해야 했다. 그러나 계속해서 그렇게 서 있을 수만은 없기에 찬승은 셋이라도 함께 놀기로 했다.



“너네는 안 놀아?”



찬승의 물음에 아영이 생글거리며 말했다.



“헤헤. 전 별로 저렇게 노는 걸…. 으악!”



아영의 말은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찬승이 갑작스레 물을 뿌렸기 때문이다. 아영의 얼굴에 맞은 물은 그녀의 새하얀 어깨와 팔을 타고 주르륵 흘러내렸다.

아영에게 물을 뿌린 찬승은 곧바로 미경에게도 물을 뿌리려 했다. 그러나 미경은 아영이 맞을 때부터 이미 준비를 하고 있었기에 찬승이 허리를 숙이자마자 자신이 먼저 물을 뿌렸다.



“푸헙!”



미경에게 물을 맞은 찬승은 깜짝 놀라 눈을 감았다. 그리고 그때부터 아영과 미경의 공세가 신나게 이어지기 시작했다.



세 명이서 신나게 물을 뿌리며 놀고 있을 때 지현이 그 모습을 발견했다. 찬승, 아영, 미경 셋이서 얼굴에 웃음이 끊이지 않은 채 서로에게 물을 뿌리는 모습. 지현은 자신도 저쪽에서 놀기로 하고는 재빨리 텀벙거리며 다가왔다. 그리고 아영과 미경에게 마구 물을 뿌리기 시작했다.



“앗…!”



아영과 미경은 갑작스레 쏟아지는 엄청난 물보라에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지현이 보내오는 물의 양이 엄청났기 때문이다.



“야. 정지현!”



아영이 지현의 이름을 크게 부르고는 반격을 하기 시작했다.

이윽고 지현, 아영, 미경의 서로가 서로에게 물을 뿌리는 엄청난 공방전이 계속되었다.



“…뭐냐.”



갑작스레 물놀이에서 소외된 찬승은 세 명의 여자 후배가 벌이는 물놀이를 보고는 입을 벌렸다. 살벌하다…. 저쪽에서 물놀이를 하던 다른 그룹도 이쪽 세 명의 여학생이 펼치는 물놀이를 보며 입을 벌렸다. 자기 들이 하는 것은 애기들 소꿉장난이었던 것이다.

지현, 아영, 미경이 서로가 서로에게 뿌리는 물이 점차 많아지자 이윽고 남학생들의 눈빛이 빛나기 시작했다. 상의가 젖어 달라붙으며 가슴의 윤곽과 브래지어가 비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붉은색의 나시티를 입은 아영은 옷이 달라붙으며 가슴의 둥그런 윤곽이 드러나긴 했지만 속이 비치거나 하진 않았다. 하지만 연두색의 티셔츠를 입은 미경은 브래지어가 살짝 살짝 비치기 시작했다. 그러나 문제는 지현이었다. 하얀색의 티셔츠가 젖은 채로 달라붙어 브래지어뿐만 아니라 속살까지 비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크, 큰일이다!’



찬승은 남학생들의 눈빛과 세 명의 여자 후배들의 모습을 발견하고는 큰일이라고 생각했다. 어떻게든 가려줘야 했다. 물론 자신도 보기 싫은 것은 아니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아끼는 후배의 저런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는 않았다.

결국 찬승은 자신의 수건으로 후배의 몸을 가려주기로 했다. 그러나 세 명중 누구에게 주어야 할까 고민이 되었다.



‘그래…. 지현에게 주자….’



그래도 하얀 티셔츠를 입은 지현이 가장 위험한 상황이었기에 그녀를 가려주어야 했다.



“얘들아! 이제 그만하자!”



찬승이 크게 박수를 치며 외치자 거짓말같이 세 명의 살벌한 물놀이가 끝났다. 지현, 아영, 미경은 샤워라도 한 듯 길고 검은 머리칼 끝에서 물을 뚝뚝 흘리며 서 있었다.

찬승은 물놀이가 끝나자 다행이라고 생각하고는 지현에게 수건을 건네주기 위해 텀벙거리며 다가갔다.



“지현아. 이거 수…. 으앗!”



그러나 중간에 돌을 잘못디딘 찬승은 중심을 잃으며 앞으로 고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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