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스 4화. [Kiss xxxx] 5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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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생각
시즌이 어중간한 때문인지, 평일이기 때문인지, 인기척 없는 별장지 안에
서도 한층 큰 건물.
여기도, 이 훌륭한 건물도 이나리 마아야 라고 하는 소녀 한 명을 위한
것, 여름의 일순간만 상태가 좋아지는 그녀를 위해 만들어진 별장이라고 한
다. 언제나 같은 장소에서는 지루할 것일거라고. 단지 그 정도의 이유로,
이나리 카즈이가 세운 건물. 그리고 지금은, 그 명의가 이나리 아키라가 되
어 있는 건물.
마아야를 위한 방과 카즈이 자신을 위한 방과 간호사나 가정부가 자는
방. 원래는 어떻게 있던 것이든, 지금은 그 모습을 희미하게 하듯이 개축되
어 있었다. 자기 위한 방은 몇 있었지만, 이나리는 어느 방에도 가지 않고
난로가 있는 이 장소에 가져온 융단을 깔고는, 도착하자마자 찰싹 굴러 버
렸다.
관리인이 건넨 짐 안에 있던 레토르트 식사를 가만히 그대로 먹은 뒤 따
로 따로 목욕했다. 관리인이 준 것 안에는 목욕 타올은 있어도 갈아입을 것
은 없어서, 카스미도 이나리같이 목욕타올 한 장만 걸친 채 돌아왔다. 또다
시 어딘가에서 내 온 것 같은 모포를 뒤집어 쓰고는, 역시 힘이 다한 것처
럼 널려 있는 이나리의 옆에 갔다.
털썩 앉아, 전혀 움직이지 않는 머리를 억지로 들어 올려 무릎에 실었다.
조금 놀란 것 같은 얼굴을 한 후, 이나리가 쓴웃음을 지었다.
「하아」
큰 손이 뺨에 닿았다. 뭐라고 응하는 대신에 그 얼굴을 들여다보고 있자,
눈감은 이나리가 카스미에게 물었다.
「카스미의, 제일 오래된 기억은 뭐야?」
눈감으며, 찾았다. 자신의 제일 오래된 기억은 무엇일까.
「……장례식. 아마 부모님의. 모두 검은 옷을 입고 있어, 울어. 나는 무슨
일인가 전혀 몰라서, 그렇지만 할머니라든지 백모라든지, 모두가 울고 있으
니, 이유도 모르는 채 함께 울었었던 것은 기억해요……」
많은 어른이 있었다. 모두가 작은 카스미에게 「불쌍하게」라고 말하고
있었다. 바로 그 카스미는 무엇이 어떻게 불쌍한 것인가 전혀 이해할 수 없
었지만.
「미안하다, 이상한 일 생각나게 했구나」
눈감은 채로, 담담하게 말하는 카스미의 말을 차단하듯이 이나리가 사과
했다. 조금 생각하면 알 수 있는 것이었다.
애매한 아이의 기억 안에 제대로 남는 것이라고 하면, 일상에서는 일어나
지 않는 일일 것이다. 철이 드는가 들지 않는가, 그런 무렵에 부모님과 사
별한 카스미라면, 그것은 그들이 죽었을 때든가, 그 장례식인가, 어쨌든 카
스미에게 있어서는 나쁜 기억에 지나지 않는 것이 나올 것인데.
「으응. 비교적 태연해요. 멍하니지만 기억하고 있어. 이런 일, 부모님의
일 같은 거, 기억하지 못한다고 생각했는데」
제일 오래된 기억에서부터 더듬어갔다. 많은 사람이 한 번에 죽은 큰 사
고에 말려 들어갔던 것이다. 지금도 그 사고가 있던 계절이 되면 어딘가의
뉴스로 화제가 되는, 그런 사고.
장례식을 한 것은 죽은 때보다도 훨씬 지나서였다. 벌써 화장해 버려 시
체는 없어서, 집에 닿은 것은 작은 흰 상자가 두 개씩. 그러니까 더욱, 그
것이 부모님이라고 하는 실감이 적었다.
카스미가 태어나고 처음으로, 둘이서 여행하러 갔던 것이다. 일박 이일.
할머니와 함께 배웅했다.
「아! 다르다. 응. 그러고 보니, 좀 더 전에 일 생각해 냈어요. 배웅한
것, 바이바이 말하면서」
확 카스미의 얼굴이 밝아졌다.
「얼굴 같은 거는…역시 제대로 생각해 낼 수 없지만, 응, 나, 여행하러 가
는 두 분에게 바이바이, 하고 손을 흔들며 배웅했어요. 그런데, 그 뒤에 갑
자기 몹시 슬프고 외로워져서, 한참 울었어. 훨씬 후에…초등학생이 되고
나서 할머니가 그 이야기해 주었을 때는, 나 생각해 낼 수 없었는데, 대단
해. 분명하게 기억하고 있어」
기쁜 듯이 그렇게 말한 카스미가 눈동자를 열면서 그 미소를 되돌렸다.
기억 안에는 없다고 생각하고 있던 두 명이, 분명하게 자신 속에서 미소짓
고 있는 것이 기뻤다. 그러니까 무의식중에 웃어 버리고, 그런 자신을 보며
미소짓는 이나리를 보고 지금은 그런 일로 웃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고 눈치
챘다.
「웃어」
그렇게 듣고서 웃으려고 해도 무리였다. 눈물이 떨어질 것 같아. 입가는
미소를 만들 수 있어도, 쿵 떨어져 버린 기분을 눈동자가 배반할 수 없었
다. 떠오른 반동으로, 조금 전까지 보다 더 안타깝게 되었다. 물방울이 떨
어지지 않게 살그머니 눈감으며 몸을 굽혔다.
「선생님은?」
한숨이 걸리는 만큼 근처에.
아직 젖은 머리카락이 양어깨에서 넘쳐흐르듯 떨어졌다. 밖의 세계를 차
단하듯이. 둘이서만 있게 하듯이.
「나는, 두 살의 여름…이 끝났을 무렵이야」
그래, 계절까지 분명히 기억하고 있다. 제일 깊이 새겨져 있어, 잊을 수
가 없는 것. 자신의 기억으로서 인식하는 가운데, 제일 선명한 것. 여름 방
학 사이 쭉 어딘가에 가 있던 형이 돌아왔다고 들어, 그것이 다만 기뻐서
계단을 오르는 형을 뒤쫓았다. 형의 방은 2층에, 작았던 이나리의 방은 1층
에 있어, 빠른 걸음으로 계단위로 향하는 형을 부르면서.
계단의 중턱에서 멈춰 서 있던 형에게, 기어가듯 계단을 올라가 따라잡
아, 몇 일전에 호죠로부터 받은 장난감을 보여 함께 놀자고 말하려고 했을
때, 고함을 들었다.
「시끄러워! 들러붙지 마! 」
그 말과 동시에, 몸이 떠오론 것도 전부 기억하고 있다. 머리가 커서 균
형이 나쁜 아이의 몸은, 확실하게 머리부터 떨어진다. 밀어 떨어뜨려졌다고
안 것은, 몸이 지면에 닿고 나서였다.
불이 붙은 것처럼 우는 아이의 소리에, 고용인들이 나타나, 곧바로 구급
차로 병원에 옮겨졌다. 마루나 계단도 융단이 쳐지고 있던 덕분에 소중하게
는 도달하지 않았지만, 그 날부터 이나리는 형이 무서워졌다.
그 이전의 일은 분명히 기억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영문도 모
른 채 남동생을 냅다 밀치는 일은 없었다. 그리고는 얼굴을 마주할 때마다
노려보는 것 같아서, 그렇게까지 상냥하지는 않아도 심술쟁이는 아니었던
형이 어째서 그런 식으로 바뀌어 버렸는지, 그 이유를 작았던 이나리는 완
전히 몰라, 다만 무서울 뿐이었다.
그가 중학교에 진학해 기숙사에 들어가 버리고 나서도 봄과 여름과 겨울,
형이 돌아오는 무렵이 되면 바로 조용해져 버리는 남동생이었다.
형이 돌아온 것을 알면 방에서 거의 나오지 않게 되는 남동생에게 쯔기모
리가 언제나 신경을 써 줘서, 가능한 한 만나지 않게 해 주고 있었다.
하지만 그 날은, 형이 돌아와 있다고는 몰랐다. 모르는 채, 호죠가 온 것
을 알게 되어 현관까지 호죠를 맞이하러 달려갔다.
「…그 날까지 계속, 쭉 나는 쿄코씨가 나의 어머니라고 생각하고 있었어」
달에 한 번, 올까 오지 않을가. 하지만 언제나 올 때는 장난감이나 봉제
인형이나 과자를 가져와 주는 호죠를, 작았던 이나리는 정말로 좋아했다.
만나지 못했던, 그때까지 있던 사건을 열심히 말하는 것을 언제나 싫증내는
일 없이 웃으며 들어 주었다. 엄마라고 부르면, 상냥하게 미소지으며 대답
해 주었다.
그러니까 그 날도, 이나리는 엄마라고 부르면서 호죠가 있는 곳에 달려갔
다. 건강했어? 아픈 데는 없어? 그렇게 들을 수 있는 것이 매우 기뻤다.
호죠에 찰싹 매달렸을 때, 2층으로부터 유우키의 목소리가 들렸다.
떨어지라고. 그 사람은 너의 어머니가 아니라고.
그 사람은, 너는 아니고 자신이, 자신만의 어머니라고. 더러운 손으로 손
대지 말아라 라고 했다.
한순간 1층에 내려온 유우키에 의해, 억지로 떼어졌다. 그대로 냅다 밀치
듯이. 이유를 몰라서 주저앉은 채 말도 못하고 있는 이나리에게, 유우키가
한 말을 지금도 모두 생각해 낼 수 있다.
「너는 아버지와 그 여동생과의 사이에 생긴 필요 없는 아이야. 태어난 것
만으로 너 같은 건 더러워져 있어. 너 같은 건 태어나지 않았어야 하는데!
」
들은 말은 모두 이해할 수 있었다. 때때로 부친이 데리고 간 정치가들의
모임에서 주고 받는 언질이 잡히지 않는 대화보다 그 직선적인 말은 훨씬
잘 알수 있었다.
「지금은 훌륭하게 보통 사람이니, 믿지 않아도 좋지만, 내가 세 살 무렵에
누군가가 어딘가에 데리고 가서 말이야, 테스트 접수 당했어. IQ의. 그 결
과가 굉장히 높았는지, 집에도 어딘가의 훌륭한 학자나, 교수같은 사람들이
와서 이런저런 이상한 질문을 하고. 제대로 대답 하면 모두 칭찬해 주고,
더 고도의 것을 요구해 오기 때문에, 처음 무렵은 그것이 재미있어서 여러
가지 공식을 기억하거나 문장을 암기하거나 하며 놀고 있었어」
그렇다. 어렸던 이나리에게는 그 모든 게 놀이의 연장선상에 있었다. 작
은 아이가 난해한 한자를 읽어, 그 의미도 확실히 이해하고 있다. 어른조차
상당히 수학을 좋아하지 않는 한 풀 수 없는 수학 문제도 1분 만에 풀어 버
린다. 게다가 공식이 전부 머릿속에 들어가 있으니까, 종이에 써서 계산하
는 일 없이 암산이다. 부친이 읽고 있는 경제잡지를 읽는 데 빠져, 60을 넘
은 거물 정치가 상대로 정치 경제에 대해 말할 수가 있는 아이. 다섯 살이
되는 무렵에는 그는 다양한 장소에서 「천재」로 불리는 아이가 되었다.
「그 당시의 애독서 가르쳐 줄까? 코지엔(역주:대표적인 일본의 사전)이야
코지엔. 그걸 제일 재미있게 읽고 있었어」
이나리의 집에 있던 코지엔은 제일판이었다. 지금도 그 코지엔의 무슨 페
이지에, 조사하고 싶은 말이 실려 있는지 알고 있다. 사전 하나가 머릿속에
들어가 있으므로, 사전은 지금도 필요 없다.
그러니까 알고 있었다.
남매 사이의 아이, 라고 하는 것이 무슨 일인가.
역사전과 같이 아주 적은 용례의 단어가 나와, 그것이 세상에서 일반적으
로 터부가 되어 있는 것이라는 일도 이해하고 있었다. 그 의미를 이해하고
있어도, 자신이 그렇다라고 인식할 수 없었다. 하지만 자신을 응시하는 유
우키의 눈은, 거짓말을 하고 있지 않았다.
그것보다 쭉 마음이 아팠던 것은 호죠가 모친은 아니면 알았기 때문인 거
같다. 호죠가 자신의 어머니가 아니란 사실은…희미하게는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눈치채지 못한 척을 하고 있었다. 다른 어른들과 같이 자신
의 일을 흥미 본위로 쿡쿡 찌르지 않고, 자신을 다섯 살 아이로서 취급해
주는 호죠의 곁에 있고 싶었으니까.
높은 소리가 울려, 올려보니 형이 호죠에게 뺨을 얻어맞은 직후였다. 그
렇게 화나 있고, 그리고 울 것 같은 얼굴을 한 호죠와 그때까지 자신을 향
해 불타는 것 같은 증오를 보내고 있던 형의 눈동자, 모두에 상처받아, 눈
물이 떠오르던 기억이 뇌리에 달라붙어 있다.
달려서 2층에 있는 자기 방에 도망쳐가는 형을 봤다. 호죠가 정말 크게
한숨 돌리는 소리가 분명히 들렸다. 여러 가지 것을 눌러 참으면서 그런데
도 그녀는 미소지으며, 신경쓰지 않고 손을 뻗어 주었던 것이다.
그것을 뿌리친 것은 자신이다. 형과 같이, 그 자리로부터 도망치듯이 방
에 돌아갔다. 울고 있는 것을 누군가에게 보이기 싫어, 있는 힘껏 봉제인형
을 옷장 구석에 찔러 넣고, 그 사이에 메워지듯이 들어가, 어둡고 좁은 공
간에서 혼자서 울었다.
이전부터 두런두런, 고용인들이 하는 대화를 귀로 담고 있었다. 그들은
뒷편에서, 망설임 없이 무책임하게 화제에 꽃을 피운다. 가끔 테스트라고
칭하며 오는 어른에게서 도망쳐, 이나리는 넓은 저택 안에서 혼자서 숨어다
니고 있었다. 그들이 돌아가기 전에 발견되면 이나리의 패배. 계속 숨으면
승리. 그렇게 여러 가지 틈새에 비집고 들어가 놀고 있었으므로, 청소나 점
검으로 우왕좌왕하거나, 일을 게으름 피우고 있는 고용인들이 이야기하고
있는 것은 비밀 이야기이므로 전부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그래도 주고받는
거짓말과 같은 진짜 이야기. 그것이 자신의 이야기라고는,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
사라진 차남을 찾아 뜰의 연못까지 수색했다. 밤늦게 겨우, 옷장 안에서
고열을 내며 녹초가 되어 있는 모습이 발견되었다.
3일간, 정말 이대로 눈을 뜨지 않을 수 있으니 각오하란 말을 들을 정도
로 원인 불명의 고열이 계속되었다고 한다.
눈을 뜬 기색에 근처에 있던 호죠가 안심한 얼굴을 해 자신의 얼굴을 바
라보았다. 그리고, 그녀의 안색이 바뀌는 것을 눈치챘다. 자신은 변화한 것
이다. 겉모습이 아니라, 마음이.
그때까지 확실히 있던, 따뜻한 장소는, 환상이란 걸 눈치챘다.
「그렇지만 아마, 그 때나는 웃었던 거 같아. 안심한 얼굴 뒤 울 것 같게
된 쿄코씨에게 「괜찮습니다」라고 하며」
그때까지 천재 신동이라고, 특별하다고 듣는 것이 정말 좋은 일이라고 생
각하고 있었다.
대단해 대단해 하는 말을 들으며, 칭찬받는 것은 기분이 좋았다.
실제로는, 자신이 다른 아이와는 태어나는 방법이 달랐다는 걸 알았고 자
신이 이질적이라는 걸 눈치챘다. 자신이 남과 다른 이유가 거기에 있는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는 쭉, 보통인 척을 하기로 했다. 그렇게 하는 동안에 자신은 보통
사람들과 굳이 다른 게 없는 존재라고 믿어 버리려 하고 있었다. 거절되는
것이 무서웠다. 모든 것을 참으면서 살아 왔다. 필요하지 않다고 듣지 않
게, 자신을 죽여 주위에 맞추며.
언제나 억지로 웃고 있었다. 사람에게 의지하는 것은 음울하다고 생각하
면서, 관계가 끊어졌을 때 어떻게 될 지가 무서워 언제나 붙임성이 좋은 척
을 하며 살고 있었다.
「스스로 어떤 것도 할 수 없는 시점에서 다른 사람과 다르다라는 것은, 정
말로 어쩔 수 없지만, 그렇지만 역시, 나는 보통으로 있고 싶었어.」
학교라고 하는 조직 안에서는 귀찮은 일이 많이 있었지만, 잘 여기저기
돌아다니면 처리를 할 수 없는 양도 아니었다. 적당하게 자신의 힘을 남겨
두며, 결코 자기 주장을 하지 않고, 주위에 맞추어. 드러나지 않을 정도로
우등생을 하며, 때때로 일부러 잘못하며. 그렇게 잘 살고 있었다. 미사에를
만날 때까지.
「그 여자, 처음에 누나란 말 전혀 없이 내 앞에 나타났어. 중2, 열네 살
때 처음으로 만났지만 듣고 놀라지 마. 교사야 교사. 중학교 지리 교사. 게
다가 신임인데 바로 담임」
어쨌든 엄청났다. 좋은 아이의 우등생인 겉의 이나리의 한계에 도전할 것
같은 생트집을 걸면서 괴롭혔다.
수업 시간에는 잡담을 하거나, 이상한 수수께끼를 내며 시간을 때운다.
공격 대상은 언제나 이나리로, 정답을 알고 있어도 누군가가 대답할 것이라
고 생각해 말하지 않거나 하면 그대로 맞아 버렸다. 생각하고 있는 척을 해
도 왠지 발각되어, 알았으면 곧바로 대답하라고 손이나 물건이 날아온다.
몇 초의 여유도 없이 대답을 하면, 이번에는 좀 더 생각하고 말하라고 역시
맞았다. 터무니없고 불합리했지만 우선 일년만 참으면, 3학년이 되면 사회
과의 교과는 바뀌므로 어쨌든 참았다.
「아무리 호인인 체하며 웃어도, 그 무렵 뒤편에는 지금같은 내가 있었기
때문에, 내심 진심으로 죽여버릴까 하고 생각했지만, 그런데도 1학기 동안
은 이럭저럭 참았다 싶어. 나치고는」
무개성인 우등생을 계속 연기하고 있던 이나리도, 1학기의 마지막에 드디
어 이성을 잃었다.
「그런데. 남의 성적이라고 생각해서인지는 모르지만, 전부 1점을 줬어. 전
부. 빵점을 준 것도 아니고, 딱 1점」
1학년 때 올10이었던 이나리의 성적표. 중간 시험도 기말 시험도 미사에
의 교과 이외 모두 수석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거, 선생님이 나에게 한 짓과 별 차이 없는 거 같은데. 이번 학기말도
9점 줄 생각이겠죠?」
점잖게 듣고 있던 카스미가, 쓴웃음을 지었다.
「전혀 달라. 아무리 나라도 다른 교과까지 손을 댈까. 하지만 그 때는, 그
무렵의 나에게는 학교에서 받는 평가밖에 자신의 가치를 찾는 것이 없었으
니까, 결국」
장소가 교실인 것조차 잊고, 마구 고함쳤다.
「………그 때는 진심으로. 무슨 원한이 있어 이런 일 하냐 싶어, 무심코
소리가 터져나왔어」
온후해 인덕이 좋고, 누구와도 붙임성이 좋아서 웃는 얼굴을 지우지 않는
우등생. 부탁 받은 것은 생긋 웃으며 맡아, 누구의 기대도 배반하지 않는
다. 누군가의 욕이나 험담도 하지 않는 성인 군자와 같은 이나리 아키라가
기세 좋게, 그녀의 악행을 처음부터 바로 조금 전의 일까지 예전 거부터 순
서도 하나 빠지는 일 없이 단번에 토해냈다.
그녀가 말한 농담의, 일언 일구마저 틀리지 않고.
급우들이 그 경이적인 기억력에 경악하고 있는 것조차 깨닫지 못하고, 산
소 결핍으로 어깨를 들썩이면서 무슨 님의 작정이냐고 묻자, 시원스럽게도.
「미사에 님으로 정해져 있잖아. 합격 합격. 하면 할 수 있잖아. 말하고 싶
은 것은 말하지 않으면 안돼. 남의 안색만 보지 말고. 별로 나, 네가 어떤
녀석이든 마음에 들어. 언제 폭발할까 하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대단한 인
내력이네. 자 진짜 너에게 진짜 통지표」
하나 더의 통지표를 내밀며, 망연자실해 있던 중학생 이나리의 머리를 쓰
다듬으며 기뻐 어쩔 수 없다는 얼굴로 미사에가 웃었던 것이다.
「여기의 너 쪽이 좋아. 그대로 가면 어때? 어차피 봐, 모두 무서워하고
있고」
단언하는 미사에에게, 씁쓸한 무엇인가를 씹는 기분으로 누구 때문이냐고
말대답하자, 그녀는 마음 속부터 즐거운 듯이 웃어댔다.
「그거야 지금까지 숨고 있었던 네 탓이지. 한 번이나 두 번 배반하거나 배
신당하거나 한 것만으로 떨어져 나갈 인간, 이쪽에서 차 버리는 거야. 네가
훌륭한 범죄자가 된다 해도 나는 아군으로 있어 줄 거니까」
어째서 그런 식으로 무조건으로,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것일까. 어쩐지
수상하다는 느낌의 얼굴을 한 이나리에게, 미사에가 싱긋 웃으며 결정타를
날렸다.
「너 정말로 깨닫지 못한 거야? 정말로? 호죠라고 들은 적 있을 텐데, 전
혀 생각나지 않았어? 」
그 사악함조차 감도는 것 같은 미소는 기억 안의 호죠 쿄코와, 완전히 닮
았어도 전혀 어울리지 않았지만. 물끄러미 응시하니 역시 얼굴 생김새는 잘
닮아 있었다. 「아」의 모양인 채 움직이지 못하는 입술과 조건 반사와 같
이 미사에를 향해 세운 집게손가락이 떨렸다.
「재차 처음 뵙겠습니다. 호죠 미사에입니다」
그것만이라면 좋았겠지만.
「누님이라고 불러도 좋아」
물론, 돌려준 말은 「누가 부를까 할망구」로, 더 덧붙이면 그 후 때리고
차기가 복합된 폭행을 당했다.
「굉장하지? 그 여자, 나를 만나기 위해서란 이유만으로 교사가 되어 학교
에도 슬쩍 들어왔다구?」
생각해 내 웃으면서, 이나리가 그리고 입가를 당겼다.
「어째서 그런 일 했냐고 물으니까, 내가 그런 모습이 된 것은 자신
의 탓이니까, 라 하더군 」
무개성인 미소로, 집단 안에 매몰하려고 하는 겉과 그런데도 낱개의 모임
안에서 홀로 남아있는 뒤편.
겉의 자신이 발버둥치면 발버둥치는 만큼, 더 멀어지는 타인과의 거리.
사람은 잊는 것이 보통이라고 머리로 알고 있어도, 모든 것을 기억하고 있
는 자신과 형편 나쁜 것은 때 좋게 잊어버리는 다른 사람들.
그래도 누구도 알아차리지 못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이놈들 정말로 뇌
에 피가 통하는 걸까 라고 생각하면서, 완전한 웃는 얼굴로 물음에는 응했
다. 아무도 모르는 진짜 자신과 누구나가 알고 있는 가짜의 자신.
겉의 자신이 발버둥치면 발버둥치는 만큼, 더 멀어지는 뒤편의 자신과의
거리.
단단하지만 약한 가면. 언젠가 부서졌을 때, 주위만이 아니라 자신마저
상처입힐, 두꺼운 가면.
「아무 것도 몰랐던 카즈이에게, 나의 일을 가르쳐준 것은 자신이니까라고,
모든 악의와 함께. 어머니를, 쿄코씨를 놓쳐 마음이 아팠던 것은 유우키만
이 아니었어. 오히려 미사에 쪽이 심했던 것 같아. 호죠의 인간들은 의도적
으로 쿄코씨와 미사에를 갈라놓고 있었으니까」
장래, 호죠 일족의 간판이 될 아이를, 분가의 인간들은 당신들에게 적당
한 어른으로 만들려 하고 있었다. 호죠 쿄코도 걱정을 하고 있었지만 분가
가 한 덩어리가 된다면 반대로 이 쪽이 당한다. 머리를 갈아끼우는 건 얼마
든지 가능하다. 분가에 거역해서까지 미사에에게 집착하는 것보다도, 그녀
에게는 가까운 곳에, 대용품이 있었으니까. 일이 바쁜 것을 변명으로 해,
그녀는 미사에와 거리를 두고 있었다.
본래라면 자신에게, 당연하게 와야 할 애정은, 다른 인간이 가로챘다. 아
무 것도 알지 못하고 순진하게 웃고 있던 이나리가.
얼굴도 모르는 남동생을, 미사에는 쭉 미워하고 있었다. 절대로 자신보다
행복해지지 않기를 원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무엇이 미사에를 바꾸었는지, 나는 정말로 몰라. 어째서 짐짓 그랬냐고
물은 나에게 이렇게 말했어」
누군가의 불행을 바라고 있는 한, 자신이 행복하게 될 수 없는 걸. 자신
의 불행을 남 탓으로 하고 있는 한, 출구는 발견되지 않는 거야.
「시작은 나였던 것 같아. 5년 정도 계획을 가다듬고 있었다니까 굉장하지?
그렇지만 나의 경우는 정말로……어디에도 출구 같은 건 없어」
얼굴도 본 적이 없는 어머니의 탓으로 하면 좋을까?
말도 주고 받지 않게 된 아버지의 탓으로 하면 편해질 수 있었을까?
「누구의 탓으로 하든지, 나는 이렇게 해 태어났고 살아 있으니까」
그렇게 말하며, 울 것 같은 얼굴을 한 채 말없이 듣고 있던 카스미의 머
리카락을 손대며, 이나리가 일어섰다.
난로의 옆의 긴 머리카락은, 그 열로 말라 있는데, 반대 편 머리카락은
이제 완전히 차가와져 있었다.
「그렇지만, 카스미를 만나, 함께 살면서, 그런 일 이제 아무래도 좋다 싶
었어. 전혀 생각해 내는 일도 없어져, 아무렇지도 않게 되었다고 생각했
다」
노출된 팔이나 어깨도. 다른 한쪽은 불길에 구워져 뜨거운데, 이제 다른
한쪽은 체온을 잃어 아플 정도로 차가웠다.
「………춥지?」
그 차가운 어깨를 안아 묻자, 그렇지 않아요 하는 작은 소리가 되돌아왔
다.
맡기듯이 의지하는 가는 몸을 다시 안으며 모포를 걸쳤다.
「이렇게 하고 있으면 내일 아침에는, 아무렇지도 않을 거니까」
마주 닿는 피부와 피부로부터, 전해지는 열이 있으면.
「카스미와 이렇게 하고 있으면」
아무 것도 말하지 않아도, 다만 숨을 쉬고 있는 것만으로도.
「아무 것도 필요하지 않아」
다른 것으로는, 절대로 맞지 않을, 대등한 반.
「그러니까 가능한 한, 이대로」
퍽.
익숙치 않은 소리에 깨어난다.
천정을 올려보며, 당분간 멍하니 있다, 카스미는 여기가 어디였는지를 생
각해 냈다.
살그머니 꼭 껴안긴 채, 딱 좋은 체온에 싸여, 어느새 자고 있었다.
손가락이 메워질 만큼 길고 부드러운 융단에 손을 대며, 일어났다. 살그
머니, 옆에서 아직 자는 이나리를 깨우지 않게. 함께 덮고 있던, 역시 매우
부드러운 모포를 다시 살그머니 덮어 줬다.
아무 것도 입지 않고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다만 찰싹 붙은채 있었던 건,
이번이 처음이다. 어쩐지 처음인 일 뿐이라, 왠지 웃음이 복받쳐 온다. 어
째야 좋을런지 모를 정도로 혼란스럽기에, 웃어 버리는 건지도 모른다.
그리고 깨달았다. 이나리가 제대로 잠들어 있는 것을 보는 것도, 처음이
란걸. 아침에 이불에서 나오는 것은 확실히 카스미보다 훨씬 늦지만 의식이
깨는 것은 카스미보다 먼저이다. 보통 우물쭈물 하고 있지만 숙면하고 있는
것을 본 적은 없었다.
지친 듯한 얼굴로. 당연하다. 아마 그도, 어제는 한 잠도 자지 못한 것이
다. 게다가 장거리를 운전하고, 개여 있었다고는 해도 카스미를 만날 때까
지 쭉 옥외에 있었을 것이다.
그것만이 아니다. 그를 여기까지 지치게 한 것은, 아마 자신이라고 카스
미는 생각했다. 그 고백에는 대량의 기력이 필요했던 게 틀림없다. 그리고,
돌려줄 말을 찾지 못하는 자신이 여기에 있다. 그의 과거를, 다만 입다문
채 듣고 있을 수밖에 할 수 없는 자신이. 병원 때와 같이, 장소가 바뀌어도
카스미는 이나리를 꼭 껴안는 거 말고는 할 수 없었다. 머릿속에서 빙글빙
글 도는 말은 하나도 목소리가 되지 않았다.
숙면하고 있는 이나리를 보면서, 천천히 오늘의 일을 생각해 낸다. 하나
씩 뒤쫓아 정리하고, 그리고 이나리가 일어나면, 분명하게 웃으며 안녕이라
고 말할 수 있도록.
밖에 있는 보일러로 뜨거운 물을 순환시키고 있으므로, 난로에 불붙이지
않아도 집안은 어디든지 따뜻해지지만, 추우면 곤란하고 체재를 알리기 위
해서라도 불을 피우는 게 좋다고, 도중에 들른 별장 관리인이 등유 외에 장
작을 두 다발 나누어주었다.
많이 불길이 잦아든 난로에, 기대어 세워둔 장작을 더한다. 올려본 높은
천장에서 큰 팬이 천천히 돌면서 공기를 뒤섞고 있었다.
너무 가까이에 있으면, 모처럼 자고 있는 이나리가 일어나 버릴 것 같아,
아주 조금 떨어진 장소에 정좌를 무너뜨린 듯한 모습으로 앉아, 어느새 몸
에서 떨어진 목욕타올을 어깨에 걸쳤다.
퍽.
장작이 터지는 소리가, 등의 저 편에서 들린다. 어슴푸레한 실내에, 다홍
색 빛 그림자가 살짝 흔들렸다.
자는 이나리의 얼굴을 가만히 응시했다. 이 사람은 어느 정도의 시간을,
인생의 날들을, 혼자서 살아 왔을까? 많은 어른에게 둘러싸인 채. 단 한
명의 고독 안에서, 살아 왔을 것이다.
어디에도 없는 자신이 있는 곳을 찾으면서. 어느 정도의 시간을, 혼자서
출구를 찾으면서.
언제가 되어도 결코 낫지 않는, 아물지 않는 상처를 가진 채로 걸어 왔을
것이다.
그렇게 고독한 모습을 조금도 보이지 않고, 아무 것도 눈치 채이지 않고,
카스미에게 있을 곳을 주었다. 여기에 있으면 좋다고 말해 주었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서, 혼자서 살아 있던 동안, 이나리에게……진짜
이나리를 만날 때까지 카스미는 쭉 쭉, 도움을 원하고 있었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다고 자기 자신에게 변명하면서, 유흥가에서 아르바이
트를 했다.
그렇지만 쭉 찾고 있었다.
그런 일은 그만두라고 해 주는 사람을.
그런 일까지 하며 살지 않아도 된다고 말해 주는 사람을.
너는 잘못되어 있다고, 말해 주는 사람을.
카스미를, 자기 자신을 필요로 해 주는 사람을. 단 하나, 카스미만을 필
요로 해 주는 사람을 사실은 찾고 있었다. 원하고 있었다.
혼자서 좋다, 그렇게 생각하면서 그 고독에 눌릴 것 같았다. 숨쉬는 방법
마저 가끔 잊게 될 정도로, 눈앞이 돌연 깜깜하게 되면, 아무 것도 느낄 수
가 없어질수록 카스미는 자꾸자꾸 막다른 골목으로 쫒겨가는 자신을 느끼면
서, 멈출 수가 없었다.
처음으로 이나리의 집에 갔을 때.
그만두라고, 말해 주었을 때.
여기에 살면 된다, 그렇게 말해 주었을 때.
돌아가려고 한 자신을, 만류해 준 것.
상냥하게 이름을 불러 준 것.
따뜻한 키스를, 많이 해 준 것.
삭막하게 사는 것도 자유라고 하면서, 잘못된 길로 나아가고 있던 자신에
게, 가까스로 다다를 장소를 주었다.
큰 손바닥은, 정말 따뜻했다.
숙부나 사촌에게 폭행을 당한 것도, 유흥가에서 일하고 있던 것도, 카스
미는 절대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언젠가 누군가, 정
말로 좋아하게 된 사람, 좋아해주는 사람에게도 절대로.
그 상처도 죄도, 전부 혼자서 짊어지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고 있었
다.
그런 자신은, 스스로 죽이며 살아가려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나리는, 전부 받아들여 주었다. 아무것도 아닌 것같이.
전부 알아도, 자신에 대한 생각을 바꾸지 않고 있어 주었다.
처음으로, 상냥한 얼굴을 한 이나리를 보았을 때, 키스해도 좋을까라고
들었을 때, 왜인지 모르지만 끄덕이고 있었다.
그 때는 정말로, 어째서 거절하지 않았던 것인지 몰랐지만.
지금이라면 안다.
전부 기뻤다.
카스미가 무의식중에 원하고 있던 것을 전부 주었으니까.
모두 모두.
이름에 힘을 준 사람. 아무리 훌륭한 이름이라도 부르는 사람이 없다면
의미가 없는 것을 가르쳐 주었다. 그 목소리로.
그대로인 채, 그 때, 이나리를 만나지 않았어도 틀림 없이 카스미는 혼자
서 살아 갈 수 있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지금의 카스미는 없었다. 절대로,
그대로였다면.
3년 지난 지금도, 반 친구와는 일선을 그은 채로, 어른이, 선생님이 권하
는 대로의 학교에 진학해, 형틀에서 뽑아낸 모양의 인생을 보내고 있었을
것이다.
그것이, 그 삶의 방법이 전부 불행하진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절대, 행복하지 않을 것이다.
훨씬 일생 고독한 그대로였을 지도 모른다.
반 친구와 웃으며, 쿠사노와 바보같은 이야기를 하고, 미사에의 밥을 먹
는다. 지금은 전부 당연한 일상이다.
그대로, 그 때 이나리와 엇갈렸을 뿐이었다면 절대로 없었을 일.
이 따뜻한 장소를 카스미에게 준 이 사람은 정말로 자신을 똑같이 생각해
주고 있는 것일까 하고 두서도 없이 생각한다.
이 장소가 기분 좋다고 생각해 주고 있는 것일까?
거기까지 생각하다, 카스미가 입술을 깨물며 고개를 흔들었다.
「그렇지 않아」
아무리 기분이 좋아도 갑자기 이나리를 잡아당기는 것이 있다.
자기 자신은 어떤 것도 할 수 없는 부분에 걸린 큰 쇠고랑. 빠지지 않는
가시.
자기 전에 아무래도 듣고 싶어서 확인했다.
「실은, 마야씨와 누군가, 다른 사람과의 아이일 수는, 없어요? 」
조심조심, 조금씩 작은 목소리로 그렇게 물은 카스미에게 이나리가 쓴웃
음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미사에의, 호죠 가문의 여성이 왠지 남녀의 쌍둥이를 낳듯이, 이나리 가
문에도 남성에게만 유전하는 특수한 혈액형이 있다고 한다.
어느 쪽의 가문도 일본의 역사가 고대로 분류되는 시대부터 이어지는 집
안으로, 근대에 들어와서는 밖의 피가 섞이게 되었지만 그때까지는 좁은 일
족 안에서만 그 피를 돌리고 있던 때가 있다. 그렇게 생긴 유전자가 어딘가
의 단계에서 밖과는 다른 것일까 하며 한숨을 조금씩 토해내면서 이나리가
말했다.
「나에게는, 이나리 마아야로부터는 유전하지 않는 이나리의 피가 흐르고
있어」
이나리 카즈이…이나리 가의 남성에게서밖에, 계승받지 않을 피가.
그렇게, 도망갈 길은 시원스럽게 끊겼던 것이라고 역시 곤란한 듯한 얼굴
로 이나리가 웃었다.
그런 일 정도는, 아마 좀 더 전에 검사 등으로 결과가 나와 있던 것이라
고는 알고 있었지만, 확인하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었다.
상상하고 있었던 것보다도 명확하게, 대답은 내려져 있었다.
이나리 자신에게는 아무 죄도 없는데, 왜 그 죄악은 모두 그에게 남겨진
것일까? 태어났다고 하는 이유만으로.
남매. 그것이 금기가 된 것은 아직 얼마 안 된 역사 시대부터. 하지만 현
대라고 하는 시대에선, 아마, 누구나 눈살을 찌푸리는, 부도덕. 피의 연결
이 한쪽 부모였다고 해도. 어디선가 만들어진 상식과 비상식. 사람은 혼자
서 살수 있어도, 거기에 속박된다. 타인은 타인의 자로, 가차없이 사람을
측정한다. 이 사람은, 어느 정도로 다른 이들에게, 어느 정도의 시간동안,
무례하게 계속 측정당해 왔을까.
스스로는 측정하지 못할 무거운 짐을 질질 끌면서, 이 사람은 어느 정도
를, 혼자서 살아 있었을까.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이렇게도 마음이 아픈데.
눈물이 멈추지 않는데.
생각해도 생각해도. 아무리 마음에 그려도, 카스미는 대답이 찾을 수가
없다. 어째서 이 사람은.
그렇게 쉽게 미소지을 수가 있는 것일까.
그렇게 상냥한 키스를 주는 것일까.
그렇게 따뜻한, 장소를 주는 것일까.
「카스미?」
이렇게 상냥하게 이름을 불러 주는 것일까.
어째서 이렇게, 눈물이 멈추지 않을까.
「무슨 일 있어?」
얼굴을 양손으로 가린 채 조용하게 우는 카스미에게 닿는 상냥한 물음.
이 목소리에조차 마음이 떨린다.
카스미는 지금까지, 몇 번이나 몇 번이나 울어 왔지만, 그것은 전부 자신
을 위한 눈물이었다. 자신이 다만 슬프기도 하고, 화나기도 하고, 아프기도
하고 괴롭기도 하고. 그런 자기 자신을 위한 눈물밖에 몰랐다.
누군가를 위해서, 정말 좋아하는 사람을 위해서, 지금까지도 지금도 앞으
로도 훨씬 사랑스러운 사람을 위해서 흘리는 눈물이.
이렇게 아프다니 몰랐다.
자신을 위한 눈물과 이렇게도 틀리다니 몰랐다.
아무것도 아니라고 대답하고 싶어도, 말이 나오지 않는다. 천천히 고개를
흔들며, 하지만 계속 울기만 하는 카스미를 꼭 껴안아 주는, 이나리의 따뜻
한 팔. 넓은 가슴. 숨결.
그 사람을 위해서 울고 있는데, 역시 그 마음을 달래 주는 것은 그 사람
밖에 없어서, 그것이 한층 더 카스미는 안타까웠다.
몸을 떼어놓으며, 살그머니 카스미의 손을 잡으며 이나리가 말했다.
「울지 마라. 네가 울면 정말……여기가 슬퍼져. 내가 가지고 있는 온 세상
이, 울고 있는 것 같아」
눈물로 젖은 카스미의 손이, 이나리의 뺨에 이끌린다. 울면서 응시했다.
울지 말아라 라고 들으니, 반대로 자꾸자꾸 눈물이 넘쳐 멈추지 않는다.
「나, 선생님에게 많이, 가득, 중요한 것을 받았어. 그런데, 나, 똑 같이
선생님에게 여러가지를 정말, 주고 싶은데 전혀, 모르겠어.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걸」
말로 구할 수 있을 만큼 간단한 것은 아니다.
몸이 이어진다 해서, 모든 것을 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전하는 수단은 그 둘밖에 없어서.
몸을 펴, 살그머니 가까워지며, 뺨에 키스를 한다. 눈물로 습기찬 입술
을, 지금까지보다 제일 상냥하게, 살짝 닿듯이.
「아키라를 좋아해. 누구보다 무엇보다도 제일 좋아해. 당신의 전부를 좋아
해」
이런 말만으로는 부족할만큼.
「아키라가, 당신이 당신인 한, 모두, 어떤 존재라 해도」
살그머니 몇 번이나, 이나리의 얼굴에 키스를 하면서 카스미가 헛소리와
같이 그렇게 반복했다. 몇 번이나, 몇 번이나.
「당신을 좋아해」
얼굴을 떼어놓으며, 서로 바라보다, 키스를 하고. 천천히 입술을 열어,
마치 처음 하듯이 처음은 사양하듯, 그리고 서서히 깊게, 부드러운 혀가 얽
힌다.
키스를 반복하면서, 이나리의 손이 카스미의 몸을 떠돌았다. 그 존재를
확인하듯이 살그머니. 그 모양을 손바닥으로 보는 듯이. 카스미의 손도, 이
나리의 피부를 기었다. 천천히.
허리를 손으로 감으며, 카스미를 덮으려 한 이나리에게, 카스미가 작은
소리로 말했다.
「저, 응………내가, 위가 되어도 되요?」
이나리의 몸을 살그머니 밀어내는 가는 팔.
「오늘만은, 내가, 안아 주고 싶어요」
깜박임. 눈초리의 눈물이 뺨을 내려간다.
어깨를 누르는 작은 손바닥에 담겨진 힘은 마치 망가지기 쉬운 물건을 취
급하듯 섬세해서, 희미한 떨림조차 전해진다. 그런데도 이나리를 응시하는
카스미의 눈동자에는 어떤 요동도 미혹도 없다. 물리적으로는 막을 수 있
다. 하지만 그 눈동자에 따르게 된다.
카스미가 누른 때문이 아니라, 몸이 뒤로 기우는 것은 이나리 자신의 의
사였을지도 모른다. 부드럽지만 조금 서늘한 융단의 감촉이, 이나리의 등에
닿았다.
덮치도록 하며 내려다보는, 카스미의 작은 입술이 살짝 움직였다. 진지인
빛만을 담은 눈동자가, 동시에 부드럽게 미소지었다.
「내가, 당신을 안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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