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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소설-내가 만드는 이야기

바람소리 - 6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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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218 회 작성일 23-12-25 12:03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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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소리-



제 6 부 : 막다른 골목



현석은 시동을 끄면서도, 잠에 깊이 빠져든 윤서를 깨우기 어려웠다. 조금 열려진 창틈 사이로 한 밤을 가로지르는 풀벌레 소리가 잦아드는 그 시각, 두 사람을 반겨주는 것은 짙은 어둠 뿐이었다.



‘윤서야!, 윤서야! 정신 좀 차려 봐. 다 왔어.’



‘으응…..벌써? 내가 얼마나 잤지?’



‘글쎄 한 40분? 차가 하나도 안 막혀서 정신없이 밟다보니……아니, 그렇게 넋을 놓고 잠을 자나? 이 판국에?’



‘빨리 들어가자. 너무 춥다.’



사실, 가을 날씨 치고는 밤바람이 조금 차기는 했다. 혹시라도 무슨 일이 있을까 싶어, 차창을 열고 달려온 탓에 히터를 켜 놓았어도 차내가 썰렁하기는 마찬가지 였다. 멀리서 차가 들어 오는 것을 본 관리인이 터덜터덜 샛길을 통해 걸어오는 것이 보였다.



‘쉬고 가시게요?’



‘네. 하루….아니, 한 며칠이요.’



‘낯이 매우 익어 뵈는데, 혹시 예전에 오신 적이…...’



‘네, 예전에 워크샵 때문에 온 적이 있죠.’



‘아, 그러시구나, 어쩐지….푹 쉬다 가시져. 날씨가 쫌 쌀쌀 허네여. 어여 들어가시구랴.’



대단한 눈썰미라고 여기면서도, 예전 같으면, 자신을 알아봐 주는 것이 고맙기 그지 없었겠지만, 오늘만큼은 그렇질 않았다. 윤서는 혹여, 얼굴도장이라도 찍을까 무서운지, 저 먼저 냉큼 집 안으로 사라지고, 차안의 짐을 챙겨 오는 것 하며, 문단속 같은 것이 모두 자기의 차지로 돌려지고 있었다.



‘미안해. 나 혼자 들어와 버려서….’



‘괜찮아…..날씨도 쌀쌀한데…..’



윤서는 그런 그의 배려가 항상 마음을 따듯하게 한다고 느껴왔다. 민기와는 사뭇 다르게 비교되는 그의 자상함…..들고 들어오는 짐과 가방을 받아들고 보니, 생각보다 짐이 꽤나 많았다. 둘 다, 차고 다니는 핸폰 처럼 컴터 가방이며, 서류가방, 윤서의 핸드백 까지, 고만고만한 가방들이 여남은 개는 되어서, 혼자 들고 들어오기 꽤 무거웠을 법도 했건만, 현석은 불평이 없었다. 거실에 짐을 부리기 바쁘게, 썰렁한 실내를 덥히기 위해, 히터를 트는 그의 자상함…그것은 억지로 한다고 되는 것이 아님을 윤서는 안다. 항시 몸에 배어 있는 그 만의 꼼꼼한 친절과 섬세한 배려….윤서는 그 안에서 마음껏 활개치면서, 자신의 의지대로, 욕구대로 그를 휘어 잡고 있었다는 생각을 해본다. 거실의 소파에 마주 앉은 현석과 윤서…..너무 멀뚱하니 서먹한 감이 흐른다는 것을, 두 사람 모두 동시에 느끼고 있었다.



‘나 때문에 자기만 괴롭게 된 거 같아서….’



‘아니야. 이제 어쩌겠니? 기왕지사 이렇게 된 거, 갈 데까지 한번 가 보는 거지. 그 까이꺼…..’



‘그래도, 그렇지…..이제까지 잘 숨겨 왔었잖아?’



‘그랬지…..’



윤서는 왠지 모르게 그의 심경을 긁어 놓았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려고 한 것은 아닌데, 이런 상황에 빠진 자신을 따라 나선, 그의 의도가 그렇게 흔쾌하지 만은 않은 듯이….



‘애기 엄마 한테 정말 죄송 스럽다.’



‘알고 있을거야. 말을 안 해서 그렇지. 윤서 너도 그렇잖아? 민기씨가 내색은 않해도 윤서 너의 일탈을 지금까지 전혀 모르고 있었다면, 넌 너무 나쁜 여자가 아니었을까?’



‘그건 그래. 자기 말대로 난 너무 나쁜 년 이었나봐. 일 핑계를 대고 자기와 어울려 다니면서도, 맘 속에 죄책감 같은 건 죽어도 없었으니까. 아마 이 일이 아니었다면, 영원히 모르다가 끝을 맺었을런지도 몰라.’



‘너두 참 대단하다. 어떻게 그렇게 칼로 자르듯이, 감정을 다스릴 수 있었을까? 난 집에 돌아가 섹스 할 때는, 머릿속으로 자기 얼굴이랑 몸매가 겹쳐지고, 혼란 스러워 당황되던 적이 한 두번이 아니던데, 자긴 안 그랬니?’



‘그런 순간이 없었다면, 거짓말 이었을 껄? 그런데, 선수는 그래선 안되는 거 아냐? 자기나 나나, 좋아 죽을 때만을 머릿속에 남기고 살진 않잖어? 망각이 있기에 편안한 인간사라고, 난 그 순간에 집착할 뿐이지, 그걸 머릿속에 오래 남기려고 덤비진 않아. 자기는 너무 쎈치한 게 흠이야. 그러다 보니 이렇게 질질 끌려온 듯도 싶구……’



‘참 윤서, 너 대단하다. 어떻게 이 지경이 되었는데도, 나더러 질질 끌려 왔다고 얘기할 수 있는 건지…..내가 그렇게 무기력하고 줏대도 없는 사람으로 보이니? 니 인생에 거쳐간 남자들은 모두 그렇게 힘없이 너를 놓아주기만 했다니?’



‘………’



그 말에 윤서의 눈가에 눈물이 핑하니 맺히는 것을 놓칠 현석이 아니었다.



‘미안하다. 내가 너무 심하게 둘러대서……’



‘아니야. 자기 말 틀린 건 하나두 없다.’



‘난 평소에 너랑 섹스하면서도, 이다지도 주도권 쟁탈에 열심을 떠는 네가 이해할 수 없었어. 아니, 남자에게 그렇게나 이기고 싶어하는 네 구석은 뭘로 그렇게 똘똘 뭉쳤는지….윤서, 너 기억해? 언제나 섹스 할 때는 니가 자세를 이끌었던 거….내가 자세 잡기도 전에 이게 좋네, 저게 죽이네 하면서 나를 후둘렀던 거…..난 첨에 니가 섹스를 엄청 좋아하기에 그럴 수도 있다고 여겼었는데, 지금은 아니야. 넌 남자에게 짓밟히면서도, 속으로는 니가 갖고 놀았다는 생각을 하고 싶은 종자란 걸 알았어. 아니야? 내가 너에게 복종해 주는 것도 모자라서, 나 위에 그렇게나 군림하고 싶었니? 그런 거니?’



‘아니야, 그런 게…..’



‘아니면 뭔데? 너 니 남편 한테도 그러니? 니 남편 한테도 그렇게 코때기 눌러가며, 살아대니?’



윤서는 말이 없어졌다. 언제나 얌전한 그의 예상치 못한 분노가 이리도 날카롭게 뇌리를 때릴 줄은 정말 몰랐다고 여겼다.



‘나 맨 첨에는 그렇지 않았어. 내 마음 가는대로, 움직여 주는 자기에게 얼마나 고마와 했는지 몰라. 뭘 변변히 요구하는 적도 없고, 그렇다고 눈치를 주는 일도 없고….그저 내가 좋을 때 손 벌리면, 속없이 히죽대며, 달려와 주는 자기가 얼마나 고마왔는데…..나 첨부터 그렇게 나쁜 년은 아니었다구, 알아? 그거?’



‘아니야, 네가 첨부터 의도적으로 내게 접근 한 거, 모를 줄 알구? 그래, 내가 사내에서 신참들 디리 까잡숫기로 유명했다 치자, 넌 나와 관계를 트자마자, 그 주위의 여자들 다 끊으라고 으름장 놓다시피 을러 댔던 거 기억나지? 그래, 그것도 이를테면, 집착이기 이전에 네 취향이라고 해두자, 그래도 내 주위의, 너와 관계 없는 사생활까지 간섭하는 건 쫌 그렇지 않나? 우리 모두 서로를 구속하기에는 넘어야 될 산들이 너무 많았던 인물들 아냐? 내가 보기에 넌 나를 만나기 이전에, 아니, 남편, 민기를 만나기 이전에, 이미 황폐화된 여자 인지도 몰라, 아니야?’



떨구어진 윤서의 고개가 들릴 줄 몰랐다. 서로에게 절실히 의지하고 있었다고 믿었던 상황이, 어처구니 없는 대화의 진전으로 말미암아, 서로를 까발겨, 부수어 뜨리는 지경으로 가고 있었다.



‘미안해….미안해…..자기 말처럼 나 그렇고 그런 년, 맞어…..’



현석은 자신이 내뱉은 말이 회칼처럼 그녀의 가슴패기를 저며놓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한번쯤은 하고 싶은 얘기 이기도 했기에, 피워 문 담배만 뻐끔댈 뿐, 이번에는 달래 줄 생각을 하질 않고 있었다.



‘이제 막다른 골목이다 싶어서 질러본 투정이야. 맘 속에 두진 마라. 너나 나나 가면 뒤집어 쓴 채로 살아가는 인간들이 뭔 긴 말이며, 변명이 있을까? 자신 없으면 이쯤에서 접ㅇ 보자고 한 소리야. 어때?’



‘………’



그러나, 윤서는 눈물만 뚝뚝 흘릴 뿐 말이 없다. 현석은 또 다시 그런 그녀의 연약한 모습이 안쓰럽기 그지 없다. 자신도 잘 난 것 없음에도, 누구보다도 옳바른 듯이 몰아세운 구석으로 인해, 속이 찜찜해지기는 매한가지 인데……그는 무엇보다 위로가 필요하다고 느꼈다. 살며시 옆자리로 다가 앉아 어깨를 보듬는 현석의 자상함….그녀의 어깨가 심하게 들썩이고 있었다.



‘너무 멀리 갔다 싶으면, 돌아오면 되잖아? 아님, 길이 아니라 생각하고, 돌아서는 것도 어쩌면 현명할 것도 같고…..’



‘근데….근데…이런 상황에서 할 말은 아니지만, 나 왠지 걱정이 하나두 안되는 거 있지? 나 비정상이지, 맞지?’



‘너무 경황이 없어서 일 꺼야. 우리가 살아오면서, 남들 시선 피해가며, 돌려대던 섹스의 스릴 정도가 고작 이었지, 이렇게 사네, 죽네하는 상황이 있기나 했니? 다 엉뚱한 헤프닝이라 몰아부쳐서 쓰레기통에 마구 쳐박아 버렸으면 싶다.’



언제나 안전 제일 주의로 일관해 온 현석의 삶에 깊은 파장을 불러온 자신의 책임을 윤서는통감하고도 있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이렇듯 자신을 위기에서 지켜준 그의 호의가 고맙기도 했다. 그의 품에 안겨 윤서는 울먹이며, 말했다.



‘자기 말이 맞아. 난 남자들의 면상을 향해 죽을 때까지 욕지기를 퍼붓고 싶었다는 말이 옳을 거야. 자기 말처럼, 민기씨를 만나기 전에 나 아는 남자가 있었어. 내 인생에 굵은 획을, 그것도 지울 수 없는 흔적을 남긴 사람…..다 잊은 줄 알았는데, 다 버린 줄 알았는데….그게 그렇게 쉽지 않았나봐. 자기한테 너무 미안하고, 민기씨를 생각하면, 죽어버리고만 싶어. 사는 게 이래서는 안되는데, 정말 이렇게는 살고 싶진 않았는데…..’



‘지금이라도 늦진 않았어. 모든 거 경찰에 얘기하고, 훌훌 털어버리는 게 어때?’



그 말에 현석의 품 안에 안겨 있던 윤서가 벌떡 몸을 일으켜 세우며, 소리쳤다.



‘그건….안돼….그럴 수 없어!’



‘그럼 어쩔껀데? 이렇게 하루 하루 숨어다니면서 끝도 없는 싸움을 해 보자구? 아니야, 이건 아니야. 내가 너를 사랑한다고 해도, 이건 아니야, 아니라구.’



‘조금만….조금만…시간을 가져보면 안 될까? 우리가, 아니, 내가 해 온 일들을 만천하에 공개할 수 잇는 상황까지 기다려 주면…..’



‘윤서야. 정신 차려! 그러기도 전에 우린 죽을지도 몰라. 우리 두 사람 눈치도 채지 못하는 사이에, 귀신같이 따라붙는 그 자들 솜씨 봤지? 이건 상대가 되는 싸움이 첨부터 아니었다구. 내가 너랑 사이에 있었던 섹스가 아까와서 그러는 게 정말 아니야. 네가 이런 일에 휘말려 목숨이라도 잃는다면, 정말…나 어떻게 살아야 할 지, 정말 막막해진다. 너, 잘 들어. 아무리 남편이랑 부인 있는 유녀, 유남끼리 까불었던 세월이라도, 난 그 안에서 정말 행복했거든? 알아? 매일 아침, 너의 얼굴을 대하는 것 만으로도, 하루가 의미있었던 나날들, 넌 아니? 나 우리 마누라도 사랑해. 그렇지만, 널 아끼고, 애타게 그리워 하는 맘은 좀 달라. 아니, 아주 많이 달라. 그렇다고 이혼을 하고 너랑 살아버려? 그렇게까진 얘기할 수는 없어도, 내가 목숨 걸고 널 찾아 왔을땐, 무언가 바라는 것이 있다기보다, 너를 위해 달려 왔다고는 생각해 줄 수 없니?’



‘그럼 어떡해? 난 이 끈을 놓을 수가 없어. 이 세상 모든 사람이 다 등을 돌려도, 난 용서 못해. 그 인간이 저질러 놓은 일이 분명한 이 판국에, 내가 내 손에 쥔 칼을 스스로 버릴 것 같아?’



‘아니, 그럼…..그 인간이 저지른 일인걸, 맨 첨부터 알고 있었단 거야?’



‘……..’



윤서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자, 현석은 두 다리의 힘이 팽하고 풀려 버렸다. 그녀의 복수에 흠씬 이용당하고 있었다는 절망감이, 그의 기력을 그다지도 놓게 하였던 모양 이었다.



‘현석씨, 나 나쁜 년 인거 알아. 그리고, 솔직히 자기를 이용하지 않았다고 할 수도 없구. 그렇지만, 나 그 사이에 그저, 눈이 멀어서 자기를 갖고 논 건 아니야. 그거 하나만은 자신있게 얘기할 수 있어. 자기 말이 맞아. 내가 민기씨를 사랑하는 거랑, 현석씨를 마음에 두고 있는 거 같을 수는 없어. 누구는 그러겠지. 그렇고 그렇게 씹빠빠로 들러 붙은 인간들 사이에 동물적인 쾌락 이외에 더 뭐가 남아 있겠느냐구. 그래, 그럴 수도 있을 거야. 그렇지만, 나도 솔직히 고백하건데, 나 자기 무척 사랑했어. 그거 알아? 하루 24 시간 중에, 남편 얼굴 보다 더 오랜 시간 지내는 자기가 나에겐 남편 이상으로 친근했다는 사실…..매일 대하는 남편의 몸에서 무슨 냄새가 나는지, 기억에도 없지만, 하루도 풍기지 않는 날이 없는 자기 스킨냄새는 귀신같이 등 뒤에서도 알아차렸던 거, 무어라고 생각해? 사랑? 그런 유치찬란한 단어가 아니라고 해도 좋아. 나 민기씨, 넥타이는 뭐가 어느건지, 정확히 기억하는 것도 없어. 그렇지만, 아침이면, 자기가 매고 나오는 타이색깔, 어느 하나 빼놓질 않고 기억해, 철마다 무슨 양복으로 갈아 입는지도, 구두는 몇 켤래인지, 손수건은 어떤 것으로 매일 갈고 나오는지…..내가 자기 마누라야? 아니야. 그건 억지로 기억되는 일이 아니라구. 하루에 남편보다 오랜 시간 함께 있다보면, 자연히 알고, 기억되고, 느껴지고, 내 피부가 되어가는 그런 나날….자긴 모를 거야. 그런데, 내가 자기의 벌거벗은 육체만 손아귀에 넣고 놀았다고 말 할 수 있을 거 같애? 아니야. 절대 그건…..나, 이중적이긴 해도, 민기씨에게 향하는 맘과는 좀 다르긴 하지만, 자기에게도 단번에 버릴 수 없을 만큼 커다란 구석을 내 이 맘속에, 이 더러운 구석에 보듬고 있다고, 알아?’



두 사람은 상대의 얼굴에 퍼붓고 있는 심중의 얘기가 서로를 깊이 찔러대, 기어이 피를 토하게 하는 모순이란 창과 방패라는 생각을 하고는 있었어도, 그렇게 속이 시원할 수는 없었다.



‘이젠 잊을 때도 됐다며, 이젠 버릴때도 됐다며?....이제 그만 하자. 정상에서 벗어난 삶을 하루라도 이어나갈 자신….솔직히 얘기해서 난 눈꼽만치도 없다. 섭섭하게 들릴런지는 몰라도…..’



현석이 먼저 백기를 접어 들었다.



‘그래, 그럴 줄 알았어. 자기를 잡고 싶진 않아. 자기야, 모른다고 하면 그 뿐이고, 서버 사용권은 내가 훔쳐서 그랬다고 하면 되지, 뭐….자기야 아무 잘 못 없어. 그렇게 해. 정작 아무도 자신의 앞에 놓인 문제를 알아서 해결해 줄 수는 없잖아? 그래, 지금 이라도 늦지 않으니, 현석씨가 속해 있던 그 삶으로 돌아가. 더 늦기전에….더 되돌이키기 불가능해 지기전에…..’



‘그럴 순 없어.’



‘괜찮아. 이해해. 어차피 항상 남자들은 책임질 타이밍이 오면, 이렇게 빠져 나가는 게 수순 이란 거, 알만한 나이쯤은 됐어. 나 자기, 나무라지 않을께. 이렇게 살다가 죽는 순간이 오더라도 결코 자기 이름 석자, 뻥끗도 하지 않을테니 걱정하지마.’



‘……..’



이번엔 현석의 고개가 떨구어 졌다. 그녀의 앞에서 언제나 자상한 척, 부드러운 척, 배려투성이인 것처럼 보여온 자신이, 파렴치한으로 변하는 이 순간을 도저히 참기 어려운 것처럼 말이다.



‘앞으로 도대체 어떻게 하려구? 너 혼자서…’



‘괜찮아. 이제까지도 혼자 잘 버텼는데, 어련할라구….자기 알아? 죽고 싶을 만큼의 공포가 무언지? 만일 그런 지경에 놓이면, 이상하게도 맘 속은 그 반대로 평안해 진다는 거…..난 알아. 겪어 봤으니까. 아무도 도움을 줄 수 없는 막다른 골목에, 이빨을 드러낸 승냥이 들에게 둘러싸인 그 느낌……죽고싶다는, 그래도 죽기 힘들다는 묘한 두 가지 감정이 뒤섞이는 순간…..자기가 그 자리, 그 느낌을 대신해 줄 수 없듯이, 내가 혼자 해결해야 될 거야. 그게 나의 짐이자, 십자가 인 걸 난 알고 있거든. 악연의 한 귀퉁이 였다고 생각해 줘. 나중에라도….나중에라도…혹시 내가 죽은 곳을 알 게 되면, 꽃 한송이 갖다 줘. 그것도 안개꽃으로….주위에 심어 줘도 좋고…..’



고개를 떨구고 있던 현석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처절한 독백을 읊조리던 윤서의 어깨를 와락 껴 앉았다.



‘아니야, 아니야. 절대 그럴 수 없어. 그럴 수는……널 두고 이렇게 비겁하게 돌아설 수는……’



그의 품에 안겨 있는 윤서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 내렸다. 그러나, 그를 껴 안지는 않았다. 그렇게 된다면, 보내야 할 그에게 너무 무거운 족쇄를 채우는 것 같아서….



‘괜찮아. 울지마. 우리 정말 좋았잖아? 그걸로 됐어….당신은 당신의 삶이 있구, 난 나대로의 생이 있는 거라고 맨 첨에 말했잖아? 어차피 영원히 마주칠 수 없는 평행선 같은 우리들 삶인데, 뭘 더 바라겠어? 그냥 서로 들러붙어 좋았던 기억이 전부였다고 생각해 줘.’



그러나, 그 말을 하는 사이, 현석은 윤서의 내려뜨려진 팔을 들어 자신의 등을 감싸 안도록 했다.



‘걱정마, 내가 지켜줄께. 이 세상에 태어나 생전 첨으로 비겁함에서 벗어나고 싶다. 진심으로……’



윤서는 그의 의도대로 그의 너른 등을 껴 안기로 했다.



‘하고 싶어?’



윤서는 언제나 처럼 그의 포옹 속에서 질문을 한다. 그 두사람에게 있어서 지금처럼 절박한 때는 없었다는 생각이 휘몰아 치면, 칠수록, 그 사이에는 동물적인 욕구가 고개를 들고 있음을 부정할 수는 없었다. 그가 윤서의 가슴을 마구 헤짚으면서, 어린 아기처럼 브레지어를 재끼며, 젖꼭지를 찾아 헤매고, 윤서는 그의 스웨터를 벗기며, 드러나는 맨 가슴에서 다듬어지지 않은 초원을 본다.



‘아!...음…..음..아! 아파!’



현석의 욕망은 이미 그녀의 젖꼭지를 물어뜯어 놓을듯이, 빨아대는 것으로 보아도 알 수 있었다. 그건 평소 남들의 눈을 피해 즐겼던 섹스의 스릴이나 긴박감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격렬함이 숨어 있었다. 더 이상 내일이 없는 것 같은 막다른 절벽 위에서의 섹스, 그렇게 밖에는 표현할 길이 없어 보였고…..



‘현석씨,…..아! 더 빨아 줘!’



이미 상체가 벌겨벗겨진 그녀의 젖을 양손으로 쥐어 짜듯이 빨고는 있었어도, 윤서는 더 빨아 달라며, 가슴을 현석의 입가로 디민다. 슬며시 두사람의 상체는 소파 속으로 파묻히면서, 그녀의 다리가 서서히 벌어져 간다. 눈을 감고, 젖꼭지를 통해 전해지는 짜릿한 감각을 느끼면서도, 윤서는 스스로 옷을 벗어갔다. 이미 드러나 버린 그녀의 음습한 수풀….그 사이로 질척대는 손가락의 화음이 뒤따른다. 민기의 좇이 훑고 지나간지, 몇 시간도 채 되지 않는, 퉁퉁 부을대로 부어버린 보지 사이로 그의 손가락이 방황하면서 쩔걱댄다. 그녀의 몸에서 옷가지기 낙엽처럼 바닥으로 모두 떨구어지자, 현석은 예전처럼 앉아 있는 그녀의 앞에 일어서서 올려다보는 그녀의 머리결을 쓰다듬었다.



‘그래, 예전처럼……’



윤서는 천천히 현석의 바지를 풀었다. 두 사람의 급박한 사정은 이미 스톱워치의 초침이 멈춘듯, 사라져 있었고, 윤서의 눈 앞에는 그를 알고 있던 여자들마다 한숨을 토해내게 해던 그 좇이 벌떡대며, 눈 앞을 어지럽히고 있었다. 약도 없이, 그렇다고 어떤 설정도 없이, 이미 벌떡대며, 성을 내고 있는 현석의 물건….두 손으로 말아 쥐어도 귀두는 언제나 처럼, 방긋대며 그녀에게 고갯짓으로 인사를 대신한다.



‘쩝쩝…쭙쭙…윽욱..너무 커….억…윽…’



그의 물건이 아나콘다의 꿈틀거림 처럼, 윤서의 입안으로 사라지기 무섭게, 번들거리는 기름을 두른 채, 입 밖으로 토해져 나온다. 두 눈을 감고, 고개를 뒤로 젖히고 있는 현석의 머릿속에는 아무런 느낌도 없다. 다만, 좇끝에서 전해지는 그녀의 오랄이 황홀하다는 느낌뿐…..두 사람은 이런 와중에 모든 것을 잠시라도 잊을 수 있는 길은, 이것 뿐이라고 여기는 것처럼 보였다. 그건 섹스라기 보담, 집착에 가까왔다. 서로를 탐닉하면서, 잡다한 것을 잊어가려는 일종의 서류정리와 흡사했다. 보고난 서류는 그 두 사람에게 있어서 으미를 상실한 휴지에 불과했다. 더 이상의 회귀곡선이 없는, 퇴로가 막힌 막다른 진행선상……그게 그 두 사람의 섹스 였다.



‘아흐..아흐….어흐……’



윤서가 그의 좇과 불알을 빨아주고 핥아줄 때면, 언제나 그런 신음을 쏟아내곤 했다. 그녀의 입술과 혀끝 사이에서 그의 번들거리는 좇대가 곡예를 했고, 그 틈바구니에서 그녀의 욕망은 꿈틀대는 아크로바트를 짜 맞추었다. 그는 이미 그녀의 머리를 거머쥐고, 그녀의 목구멍에 한계가 없는 것처럼, 좇질을 해대기 시작한다. 그녀는 헛구역질을 하는 법도 없이 기도를 한껏 열어, 그의 길고 굵은 좇대가 거침이 없도록, 만반의 대로을 열어주고, 좇물의 행차를 위해 두 눈을 내리 감았다. 마치 왕의 거드름을 알면서도, 조아리는 불쌍한 민초들처럼 말이다. 그러나, 그는 그녀를 가만 놔둘리가 없었다.



‘벌려 봐.’



언제나 그녀는 그의 명령중에서 이것 만큼은 거부함이 없었다. 스스로 가랭이를 뻐개지도록 벌리고, 그것도 모자라다는 듯이 자신의 북실한 씹털마저 양 손으로 가리마를 타 버리는 그녀의 재주. 퉁퉁 부어 있기는 해도 그 보지는 언제나 보고, 맛보던 것처럼, 식욕에 들떠 침을 질질 흘리고 있다. 현석의 좇대는 기다릴 여유가 없었지만, 보지를 잠시 달래주기로 했다. 좇대로 충만하게 채워 주면서, 그 보지의 기절초풍할 쪼여댐을 기대할 수도 있었지만, 이 동물적인 격정을 그런 펌핑만으로 삭히기에는 아까울 정도로 자신의 좇대가 꺼덕대고 있음으로 현석은 무릎을 꿇고, 그녀에게서 작위를 수여받기에 이른다. 그의 두 어깨 위에 벌려진 그녀의 두 다리가 의식처럼 얹히고, 그의 입 안으로 밀려드는 여왕의 하사품과 전리품들….전쟁의 끝은 바로 전리품을 나누는 의식이 가장 의미있다고 누군가 그랬던 것처럼….



‘쩝쩝…쭙쭙……아! 맛있다. 이건 민기의 좇물인가?’



‘어흥…어흥….어서..어서…어서 더 빨아 줘. 보지가 찢어지게….어서..’



그렇게 빨아도, 그 오랜 시간, 그녀와 밀회를 거쳤을 지언정, 빤다고 보지가 째지는 법은 없었다. 그 주위를 타고 흐르는 지칠줄 모르는 그녀의 씹물로 인해, 오히려, 그의 혀가 그 씹구녕 속으로 말려들어갈 뿐…..



‘어흐…어흐…제발 씹공알 쫌 놔 둬. 그렇게…잘근…잘근 씹어 돌리면…나 돌아 버린 다니까…..억억억…….’



그녀의 허리가 일찍도 휘어진다. 호흡이 끊어질듯한 정상에서 다시금 턱 하니 맥을 놓으며, 그 굽었던 활시위는 다시 튕겨져 니오고, 현석의 좇대는 또 다른 활시위의 긴장감을 꿈꾸며, 그 보기에도 끔찍한 좇대를 음흉한 미소와 함께 그녀의 보지께로 가져간다.



‘어그극…어그극…살살…아니…더 깊이…팍팍…..더 쑤셔 줘..더..더…악…..미쳐…미쳐….아극…아극…아그그극….’



그녀는 방황했다. 거침없이 박아대는 그 좇대의 기세에 뱃속이 다 뒤집어 진다며, 그의 아랫배를 밀어 내면서도, 그씹구녕 속에서 움트는 새삭처럼 귀두를 세워대는 현석의 좇돌림에는 아예 그의 허리를 감아 쥔 발목을 더 죄어댔기 때문이었다. 고통과 쾌락의 갈림길에서 그 어느 것도 놓칠 수 없다는 못된 심뽀…..



‘척척척척…..척척척척…..척척척……뿍짝뿍짝….척척’



그 만의 펌핑이 땅파기처럼 시작되고, 그 사이로 그녀의 씹구녕은 먼 여행을 떠나는 기차 화통처럼 기적을 울린다. 그의 이마와 가슴에서 떨구는 땀방울이 그녀의 가슴에 마구 빗물처럼 흩뿌려지고, 그의 가슴을 부여잡은 윤서의 손톱은 그 사이로 밭을 간다. 핏물이 베어 나오는 황무지의 땅 일구기…..그녀나, 그나 고통과 쾌락의 사이에서 신음하기는 마찬가지 였다.



‘악악악악악……..사랑해….사랑해…악악………너무나…..’



그녀가 먼저 시선을 놓으며, 허공을 헤매던 그 팔과 버둥대던 가랭이의 힘을 풀어 버렸다. 이미 두 사람에게 있어서 즐거움이 아닌 섹스 였기에, 그녀의 보지에서 좇을 빼고 소파로 질질대며 흐르는 허연 좇물덩어리를 평소처럼 닦아주는 것을 현석은 이미 포기해 버렸다. 그건 예전과 다르게 시장 바닥에 아무렇게나 굴어다니는 생선 대가리 같은 느낌이 다분했다. 윤서를 안아다가 방의 침대에 누이고, 현석도 아무렇게나 곁에 누워 잠이 들고 말았다. 그건 두 사람 사이에 오랜만에 가져보는 긴 밤이 될 것 이었지만, 이미 두 사람의 사이에는 빚청산이 끝난 채무자와 채권자의 사이처럼, 차갑게 땀이 식어가는 돌려진 등만이 존재했다. 그렇게 그 밤은 새벽을 향해 지쳐가는 걸음을 섹스로 대신하고 흘러갔다.





‘음……목말라…..’



현석은 건조한 방안의 공기와 더불어 눈가를 치미는 햇빛으로 인해 잠이 서서히 깨어가고 있었다. 반사적으로 옆자리를 짚어 보았지만, 옆에 자고 있어야 할 윤서가 보이질 않았다.



‘어, 어떻게 된거지? 윤서야! 밖에 있니?’



그러나, 밖은 방 안보다도 더 조용하고 적막했다. 발가벗은 것도 잊은 채, 현석은 침대에서 일어나 방을 튀어 나갔다. 그리고는 자리에 털썩 주저앉는 현석…….어제 놓아 두었던 짐과 가방, 그리고 윤서의 신발이 없었다. 맥을 놓고 천장을 바라보고 있는 그의 눈에 햇빛으로 반사되고 있는 탁자 위에 놓인 메모가 보이고 있었다.



‘현석씨, 미안해….

이 지경까지 자기를 끌어 들여서,

차랑, 자기 컴터를 좀 빌려갈께.

그리고 서류가방도…..

난 그래도 끝까지 한번 해 볼 참이야.

어제 새벽에 너무 행복했어.

내 생애 최고의 섹스라고 하면, 쫌 그래도,

이 와중에 그렇게 나를 가져줄 수 있는 사람은

아마 자기 뿐이지 싶어.

나와 같이 계속 있다간

자기가 더 다칠거야.

사랑해, 그 동안 즐거웠어.

나 같이 못된 년, 이젠 잊어.

안녕…..



-못난이 윤서가-‘



현석은 손이 부들부들 떨릴 뿐 더 이상 무슨 말을 할 수도 없었다. 그저, 비명같은 울부짖음 속에서 미련하게 잠에 빠져 있던 자신의 머리카락을 쥐고 흔드는 것 밖에 아무것도 더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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