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번] 음학의 함정-제5장 향락의 대상 (5) 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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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후회
전철의 창을 통해 바라보는 하늘은 두껍게 구름에 덮여서 보는 사람의 마음을 우울하게 만들고 있었다. 하지만, 미호의 기분이 무겁게 가라앉고있는 것은 그런 날씨 때문만이 아니었다.
( 나… 이런 바보같은 일을……)
미호는 문에 기대 밖의 경치를 바라보면서 멍하니 생각했다. 검은 회색의 정장을 입은 자신의 모습이 희미하게 유리창에 비치고 있었다. 이른 아침의 전철은 한산해서 미호가 타고있는 차량안에는 5,6명 정도의 승객만이 있을 뿐이었다. 거의 좌석이 비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미호가 앉지않는 것은 앉아마자 머리를 움켜쥐고 소리질러 버릴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만큼 미호의 고뇌는 컸다.
(어제밤엔 어쩌자고…)
미호는 한숨을 토하면서 마음 속으로 중얼거렸다. 학생과 게다가 자신이 담임을 맡고있는 클래스의 학생과의 섹스는 선생으로서 절대 있어서 안 되는 것이었다. 아니, 사람으로서도 결코 해서는 안되는 행위라고 할 수 있다. 선생으로써 책임감을 갖고 끝내지않은 잘못을 범해버린 것이다.
어떻게 그런 일을 해 버릴 수 있었을까……
미호는 여러번 같은 질문속에 어제밤 자신의 치태를 생각하며 심한 자기 혐오에 빠져들었다.더 무서운 것은 어제밤 료스케와의 행위가 뇌리를 지나갈 때마다 몸의 안쪽이 달콤하게 쑤시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료스케의 자지의 감촉을 생각하면 가슴이 뜨거워지는 자신에게 미호는 절망감마저 느끼고 있었다.
( 나……미쳤나봐…이상해진게 분명해…)
그리고 또 부지불식간에 입술로부터 깊은 한숨이 흘러나왔다. 전철이 천천히 홈에 미끄러져 들어가 문이 열리자 몇 명의 승객이 더 탔다. 모두 한결같이 혼자 문가에 서 있는 미호를 향해 시선을 돌리다가 그 미모에게 놀라고는 빈 좌석으로 가서 앉는 것이었다. 전철이 움직이기 시작하자 미호는 다시 깊은 사색에 빠져 침울해졌다. 다음 역에 도착하면 역전대로를 지나 또 학교로 향하지 않으면 안 된다. 할 수만 있다면 가고 싶지 않았다. 방을 나올 때는 차라리 컨디션이 안좋다하고 쉬려는 생각도 했었다. 그러나 유키히로가 있는 이상 쉴 수는 없었다.
미호는 결국 유키히로와의 약속을 완수할 수 없었다. 료스케의 등장이라고하는 예상치 못한 사태가 있었다고하지만 아침까지 유키히로에게 자유를 맡긴다고 하는 조건은 클리어되지 않은 것이다. 유키히로가 그 사진들을 돌려줄지 아닐지 미호는 불안했다. 따라서 학교에서 직접 유키히로를 만나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 유키히로 이상으로 미호를 괴롭히는 것이 료스케였다.
(아, 도대체 료스케군을 어떻게 봐야 하지…)
미호는 천천히 차창 넘어 흘러가는 거리풍경을 멍하니 응시하면서 생각했다. 어제밤 이별 직전 료스케에게 오늘밤의 일은 누구에게도 말하지않도록 타일러두었다. 아마 거기에 대해서는 문제없을 것이다. 료스케가 어제밤의 일을 다른사람에게 말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생각되었다.
다만 그 때 료스케가 「또 선생님과 하고 싶다」라고 말한 것이 미호에게는 불안했다. 적당하게 얼버무리며 그 자리는 피했지만 료스케가 만약 학교안에서 관계를 강요해오면 어떻게 대처해야 할 지 몰랐다. 거절당한 료스케가 예측할 수 없는 행동을 하는 것이 제일 무섭다.하지만 그렇다고해서 거듭해서 죄를 범하는 것은 도저히 할 수 없었다. 전철은 눈 깜짝할 사이에 다음 역에 도착했다. 미호는 내려서 후회와 불안을 안은채 무거워진 기분으로 걷기 시작했다.
유키히로는 이른 아침임에도 불구하고 벌써 교무실의 자기 자리에 앉아있었다. 미호는 입구에 일단 멈춰서서 자신에게 기합을 다시 넣었다. 어제밤의 잘못을 생각하면 더 이상 유키히로의 명령에는 따르지 않아도 된다. 여기서 거절하지 않는다면 유키히로가 요구하는대로 자신이 어디까지 죄를 짓게될지 모른다. 어제밤같은 일은 이제 두 번 다시는 안 된다……강한 결의를 가슴에 품고 미호는 유키히로 옆으로 천천히 움직였다.
「아, 미호선생님, 안녕하세요.」
유키히로는 미호의 모습을 보자 평상시와 변함없는 울적한 어조로 말했다. 유키히로와 시선이 마주친 순간 알 수 없는 뜨거운 감정이 넘쳐나와 미호는 몹시 당혹스러웠다.
(이 사람에게 모두 맡겨버리면… 편할텐데……)
뜻하지않게 마음속에 끓어오른 충동에 아연실색한 미호는 내심의 동요가 눈치채이지 않도록 평정을 가장하면서 입을 열었다.
「유키히로선생님, 그 사진을 돌려주세요.」
유키히로는 천천히 미호를 다시 바라보며 말했다.
「그걸 원한다면……여기서 옷을 벗어보세요.」
「그, 그런 일 할 수 없습니다.」
유키히로의 요구를 미호는 단호하게 끊었다.
「어제 약속은 오늘아침까지 나의 명령에 따른다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아직 약속이 유효하다면……」
「이제 이것으로 충분합니다! 누가 당신의 명령을 듣는다는건가요!」
미호는 유키히로의 말을 도중에 잘랐다. 유키히로는 조금 기가 죽은 것처럼 입을 다물었다.그리고 눈앞에 선 미호의 얼굴을 가만히 올려보았다. 미호에게 후회는 없었다. 계속 유키히로의 명령을 따르면 앞으로 어떤 잘못을 더 범하게 될 지 모른다. 여기서 유키히로에 굴복할 수는 없었다.
「그렇습니까? 어떻게 되더라도 난 몰라요.」
잠시 침묵이 흐른 뒤 유키히로는 말했다. 하지만 그 말에는 힘이 없었다.
「각오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 사진들을 전부 돌려주기 바랍니다.」
대답하는 미호의 말은 조용한 힘으로 가득 차 있었다. 미호는 스스로 놀랄정도로 냉정함을 유지하고 있었다. 분명하게 거절함에 따라 마음 속에 깃들여있던 불안이나 공포라고 하는 것들이 모두 사라지고 있었다.
「처음부터…」
유키히로는 온화한 어조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처음부터 그런 식으로 결연히 거절해주었으면 좋았을텐데……」
미호는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유키히로의 표정에 분명 안도의 미소가 떠올라있었기 때문이었다. 유키히로 자신도 미호를 능욕하는 것에 대해 우려나 고뇌를 안고있었다고 말하는 것일까?
유키히로는 책상 서랍에서 약간 큰 봉투를 꺼내어 미호에게 내밀었다.
「이 안에 내가 가지고 있는 사진 전부 들어있어요. 물론 창고에서 내가 찍은 것도 모두 같이 들어있습니다.」
미호는 그것을 받으면서 맥이 빠져버렸다. 설마 이렇게 간단히 유키히로가 사진을 돌려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아, 저…정말로 이게 전부에요?」
「예, 확인해보셔도 괜찮아요.」
미호는 봉투를 열어 안에서 사진다발을 꺼냈다. 사진은 20매정도로 오키나와때의 사진은 5매 정도였고 나머지는 모두 비품창고에서 유키히로가 찍은 사진이었다. 봉투속에는 그 밖에도 유키히로가 찍은 사진의 네가티브도 들어있었다. 미호는 안도의 한숨을 토했다. 그리고 사진을 대충 훑어보고 그것을 모두 봉투에 되담고는 유키히로에게 강한 시선을 던지면서 말했다.
「 이제 더 이상 이상한 일은 하지 말아주세요.」
「예, 이제 두 번 다시……약속합니다.」
유키히로는 조용하게 대답했다. 미호는 유키히로의 말에 왠지 일말의 적막감과 같은 것을 느꼈다. 두 사람의 사이를 연결하고있던 눈에는 안보이는 무엇인가가 그 순간 끊어져 버린 것같은 생각이 들었다. 일순간, 정말 일순간이었지만 「이게 정말 제대로 한 일일까?」라는 생각이 마음에 들었고 그리고 그것을 당황하며 부정했다.
(잘 한거야… 더 이상 심한 일을 안 당해도 되니까……)
미호는 봉투를 책상서랍에 넣으려다가 갑자기 손을 멈추었다. 서랍안에 넣어두는 것은 너무 조심성없는 행동이다. 서랍은 열쇠를 잠글 수 있지만 자료나 뭔가를 꺼내기위해 열쇠를 풀고는 다시 잠그는 것을 잊을수도 있다.
「음…나… 로커에 넣어두고 오겠습니다.」
미호는 그럴 필요가 전혀 없음에도 불구하고 왠지 유키히로에 그렇게 말해버렸다.
「예 …그러세요…」
유키히로도 약간 놀란 표정으로 대답했다. 상당히 바보같이 말했다고 미호는 마음 속에서 자기 자신에게 쓴웃음지으며 교무실을 나왔다. 교무실을 나오자 몸에 짓누르고있던 뭔가 무거운 것이 없어져 기분이 조금 가벼워진 생각이 들었다. 이것으로 큰 문제가 하나 해결된 것이다. 유키히로가 거짓말하고 아직 다른 사진을 가지고있을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유키히로의 모습으로 짐작해보건데 다시 미호에게 손을 뻗쳐오리라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탈의실로 향하는 도중 복도의 창 밖을 보자 다시 빗방울이 하나둘 떨어지기 시작하였다.
「 이제 장마철인가……」
미호는 혼자 중얼거리면서 잔뜩 찌푸린 흐린 하늘을 올려보았다. 낮게 깔린 어두운 구름은 두꺼워서 푸른 하늘의 기색은 조금도 느낄 수 없었다. 어느덧 미호는 유키히로를 생각하고 있었다. 왜 그토록 간단히 사진을 돌려주었지? 왜 사진을 돌려주며 안도의 표정을 지었을까? 생각해 보면 모르는 것 투성이었다. 그리고……
「유키히로선생님…어제밤, 뭔가를 얘기하려 했었는데…?」
미호는 불쑥 중얼거렸다. 어제밤은 료스케와의 일도 있어 결국 유키히로와 이야기를 할 기회가 없었다. 유키히로가 어떤 이야기를 하려했는지 미호는 궁금했다. 하지만 아마 그것을 알게 될 일은 영원히 없을 것이라고 느끼고 있었다. 아마 유키히로는 이야기하려하지 않을 것이고, 자신도 감히 물으려고는 하지 않을 것이다……그런 예감인듯한 것이 있었다.
(또 지금까지처럼…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
미호는 마음 속으로 중얼거렸다. 이상할 정도로 유키히로에 대한 미움이나 혐오감은 없었다. 어떡하면 처음의 양호한 관계를 되찾을 수 있을까하는 생각조차 들었다.
「 그렇지만… 역시…무리겠지…」
미호는 창 밖을 멍하니 바라보면서 작게 한숨을 토했다. 미호의 시선 앞으로 비는 드디어 본격적으로 내리기 시작하려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