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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번] 음학의 함정-제2장 피학의 열락 (2) 곤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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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376 회 작성일 23-12-23 23:3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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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곤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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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워를 마치고 미호는 목욕타올을 몸에 감은채 다시 방에 돌아와 그대로 침대에 걸터앉았다. 문득 방 중앙에 놓여진 테이블에 눈이 멈추었다. 테이블 위에는 글래스 하나가 놓여져 있었다. 글래스 바닥에는 호박색의 액체가 약간 남아있다.


(····저것도 꿈은 아니었던 걸까?)


미호는 글래스를 가만히 응시하면서 가물가물한 어제를 기억하려 애썼다. 기억나는 것은 유키히로에 의해 미호가 사는 이 방에 옮겨진 후의 일 뿐이었다. 어떻게 학교에서 데리고 나왔는지는 전혀 기억나지 않았다.


유키히로는 미호를 침대 위에 누이고는 부엌을 찾으러 타인의 방을 우왕좌왕하면서 뭔가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미호는 그때까지도 완전히 식지않은 쾌락의 달콤한 여운에 잠기면서 그 모습을 그저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왠일인지 꺼림칙한 능욕자가 방안을 마음대로 돌아다니며 뒤져도 이상하게 분노나 굴욕감 같은 것은 솟아오르지 않았다.


이윽고 욕실로부터 물소리가 들리자 미호는 유키히로가 목욕 준비를 하고있는 것을 깨달았다. 곧 셔츠 소매를 걷어붙인 유키히로가 욕실에서 나타나더니 머리맡에 앉아서 미호의 옷을 하나씩 벗기기 시작했다. 몸에 힘이 완전히 빠져버린 미호는 유키히로가 하는대로 알몸이 되어갔다. 역시, 어찌된 영문인지 혐오감도 굴욕감도 느껴지지 않았다. 다만 알몸을 보인다는 부끄러움만 있었다.


전라가 된 미호는 유키히로에 이끌려 욕실로 들어갔다. 유키히로는 학교에서의 희롱이 마치 거짓말이었던 것처럼 상냥했다. 미호는 몸의 구석구석까지 씻기우며 당황스러움을 숨기지 못하고 있었다. 왜 이렇게 유키히로가 상냥하게 해주는지 이유를 전혀 알 수 없었다.


바디샴푸의 거품을 샤워로 씻어내며 유키히로는 미호를 안아들고는 살그머니 욕실로부터 나왔다. 결국 미호에게 강요하는 것 같은 행위는 일절 없었다. 유키히로가 준비해 준 파자마로 갈아입고 방으로 돌아오자, 어딘가에 전화하고 있는 유키히로의 뒷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어디에 전화하고 있을까?)


미호는 의문을 느끼며 침대에 걸터 앉았다. 이윽고 전화를 끝낸 유키히로는 글래스에 위스키를 따라 미호에게 가져왔다. 미호는 내민 글래스를 거리낌없이 받았다. 글래스 안의 위스키를 약간 입에 머금고는 목에 흘려 넣었다. 타는 것 같은 뜨거움이 식도로부터 위로 흘러들더니 이윽고 천천히 체내에 퍼져 갔다. 그리고 유키히로가 머리나 뺨을 어루만지는 동안 스르르 깊은 잠에 들었다. 이해할 수 없는 온화한 기분이었다······


점차 선명해지는 기억에 미호는 당황했다. 기억이 리얼하게 되살아나면 되살아날수록 그것이 정말로 있었던 일이라고는 믿을 수 없어졌다. 무엇인가 찜찜한 기분을 가진채 미호는 출근준비를 시작했다. 어떤 얼굴로 유키히로를 봐야할지 미호는 고민하면서 비탈길을 올라갔다. 오늘은 검은 팬츠 슈트로 몸을 싸고왔다. 어제 일을 생각하면 스커트를 입을 생각은 전혀 없었다. 무엇보다 옷을 벗으라는 말을 듣는다면 무엇을 입고 있어도 소용없지만····


끊임없이 쏟아지는 빗속, 옅은 파란색 우산을 쓰고 비탈길을 오르는 미호의 발걸음은 의외로 무거웠다. 비탈길의 중간정도 도달했을 때 미호는 어제처럼 유우키의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뒤돌아 보자 선명한 붉은색 우산을 쓴 유우키가 종종걸음으로 가까워 오는 것이 보였다. 유우키는 미호를 따라 잡고는 말을 걸었다.


「선생님, 오늘도 속이 메스꺼우세요? 어쩐지 많이 아픈 것 같아요.」


「응?····그러니? 이젠 아무렇지도 않아..」


미호는 내심 갈팡질팡하며 대답했다.


「확실히 양호실에서 쉬셨어요?」


유우키는 미호의 얼굴을 들여다보며 거듭 물어왔다.


「으···응」


미호의 입에서는 애매한 말 밖에 나오지 않았다. 유우키의 순수한 시선은 상대방으로 하여금 거짓말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 힘을 가지고 있었다. 설마 창고에서 유키히로와 추잡한 행위에 빠져 있었다는 등의 얘기를 할 수 없지만 분명히 양호실에서 쉬고 있었다고도 말할 수 없다.


「역시 쉬지 않았었지요.」


유우키는 조금 화난 것 같은 어조로 그렇게 말했다.


「미안해요. 바빠서····양호실에 가있을 틈이 없었어요….」


두사람의 대화만을 듣고 있으면 어느 쪽이 연상인지 알 수 없을 정도였다. 미호는 진심으로 자신을 걱정해주는 유우키를 바라보는 것이 괴로웠다. 지금도 희미하게 계속 쑤시며 기묘한 느낌을 전하는 몸이 저주처럼 느껴졌다.


「무리하면 안되요. 쉴 때는 분명하게····」


「미안해, 조금 바쁜 일이 있어서…」


미호는 유우키의 말을 가로막았다. 더 이상 도저히 대화를 계속할 수 없었다. 유우키는 일순간 의아스럽다는 표정을 보였지만 상냥하게 미호에게 말했다.


「괴로우면 무리하지 말고 쉬세요.」


미호에게 유우키의 걱정이 마음깊이 스며들었다.


「고마워요····그럼…」


미호는 그렇게 말을 마치고는 빠른 걸음으로 교사를 향했다····


교무실에 들어가는 문 앞에서 미호는 멈춰섰다.


(그럼 어제····무단조퇴하고 집에 돌아간 것으로 되어 있지 않을까…?)


지금까지 거기에 생각이 미치치 않았던 것이었다. 어떻게 말해야 좋을지 미호가 교무실 문 앞에서 골똘히 생각하고 있는데 등 뒤에서 토다가 말을 걸어왔다.


「미호선생님, 안녕하세요. 여기 서서 뭐하세요?」


「아, 아니에요. 아무것도 아닙니다.」


「컨디션은 어떠세요?」


토다가 한 말이 무슨 뜻인지 알 수 없어서 미호는 말을 더듬었다.


「아, 그···그것은 갑자기…·」


「갑자기 속이 메스꺼워져 유키히로선생님이 집까지 배웅해 주셨다면서요?」


그 말을 듣자 미호는 겨우 상황이 이해됐다. 어제 유키히로가 걸고있던 전화는 학교에 걸었던 것이었다. 미호를 집까지 데려다 주었다는 보고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혹시, 아닌가요?」


미호가 아무런 대답않고 있었기 때문에 토다는 이상한 의심을 갖는 것 같았다.


「설마, 유키히로선생님과 둘이서····」


「그대로 드러누워 버리는 바람에 학교로 연락할 수 없었기 때문에…근데 어떻게 토다선생님이 알고 있는 것인지····」


토다가 쓸데없는 말을 하기 전에 미호는 분명히 끊으며 말했다.


「유키히로선생님으로부터 전화가 왔었어요. 그보다 몸은 괜찮습니까?」


토다는 미호의 얼굴을 쳐다보며 말했다. 아무래도 의심쩍게 생각하는 것 같았다.


「하룻밤 푹 쉬어서 이젠 괜찮습니다.」


미호는 토다의 시선으로부터 피하듯이 얼굴을 돌렸다. 사실 토다와의 대화를 조금이라도 빨리 끝내고 싶었다.


「그렇더라도 유키히로선생님도 참….」


「무슨 일이라도…?」


뭔가 묘하게 여운을 남기는 듯한 토다의 어조에 미호는 무심코 다시 쳐다보았다.


「 보고가 너무 늦어서····아니 그전에 미호선생님을 모시고 가기 전에 누군가에게 미리 연락을 했어야 하지않나 생각합니다.」


「 그렇지만 그렇게 할 수 없는 경우도 있지 않습니까?」


미호는 무심결에 무자비한 능욕자의 편을 들어버렸다. 반론하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었다. 이해할 수 없는 마음의 움직임에 미호는 내심 조금 당황했다.


「그런가요? 젊은 여성 교사와 남성 교사가 방과후 함께 행방불명이····이상하게 생각되도 어쩔 수 없지않나요?」


토다는 말했다. 아무래도 혐의가 아직 가시지 않은 것 같다. 미호는 공연히 화가 났다. 사실 말 그대로지만 이상하게 사람을 깍아내리려고 애쓰는 것 같은 토다의 말투가 비위에 거슬렸다.


「토다 선생님은 그런 식으로 나를 생각하시는군요.」


미호는 말의 구석구석에 분노가 담기도록 단언하고는 휙 뒤꿈치를 돌려 재빨리 교무실로 들어갔다.


「아, 아니, , 오해입니다. 나는 그런····」


당황한 토다는 필사적으로 변명하며 미호의 뒤를 쫓아 왔지만 미호는 무시하고 다른 교사들과 인사를 주고 받으면서 곧바로 자기자리로 향했다. 이윽고 단념했는지 토다는 자신의 자리에 돌아가는 것 같았다.


(좀…너무했나?)


미호는 약간 후회하며 자신의 책상으로 향하던 미호의 다리가 딱 멈추었다. 보통 때처럼 미호의 책상 옆에 유키히로가 수업준비하고 있는 것이 눈에 들어온 것이다. 미호는 일순간 유키히로에게 어떻게 해야할지 당황해하다가 스러질 것 같은 작은 소리로 말했다.


「안녕하세요..」


「아, 미호선생님, 안녕하세요.」


평상시와 변함없는 인사였다. 미호는 조심조심 옆자리에 앉았다. 유키히로가 어제 있었던 일로 뭘 말하러 온 건 아닌지, 아님 몰래 몸에 손대려고 하는 건 아닌지 미호는 내심 벌벌떨면서 수업 준비를 했지만 결국 아무 일도 없이 1교시 수업을 맞이하게 되었다.


미호는 비때문에 흐릿하게 보이는 창 밖 경치를 멍하게 바라보았다. 학생들은 열심히 테스트 문제와 씨름하고 있는 중이었다. 감기가 악화되는 바람에 결근한 교사 대신 미호가 2학년 세계사 수업을 하게 되었지만 사전에 테스트가 준비되어 있어 미호가 굳이 수고해야 할 일은 없었다.


(그렇더라도····)


미호는 생각에 깊이 빠졌다. 유키히로는 왜 아무것도 하지않는걸까...벌써 6교시 수업도 끝나려고 하는데····


어제 있었던 일이 꿈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 꿈이라면 얼마나 좋을지 생각해보지만, 현실적으로 생각하면 꿈이 아닌 것은 분명했다. 유키히로의 손에는 미호의 약점이 확실히 쥐어져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키히로는 평상시와 똑같이 묵묵히 수업을 할 뿐 미호에게 손을 뻗치는 기색이 전혀 없었다.


어제있었던 일로 만족한 것일까? 그러나 미호는 아직 유키히로에 안기지는 않았다. 그 이유때문에라도 유키히로가 만족했으리라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그렇다면 어째서······원래 어제도 얼마든지 찬스가 있었는데 왜 유키히로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을까····


갑자기 수업 끝을 알리는 벨소리가 울리자 미호는 계속 반복되는 생각의 사슬을 끊고 일어섰다.


「그럼…. 아, 테스트 용지를 모아오세요.」


학생들에게 말을 하고는,


(하여간, 어떻게든 해서 그 사진들을 그에게서 찾아오지 않으면 안 돼….)


미호는 마음 속으로 그렇게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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