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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 수라기(獸羅記) 65번째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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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300 회 작성일 23-12-22 09:43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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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우..”
적무환은 숨을 고르며 천천히 손에 들고 있는 다섯자 가량의 철퇴를 아래로 내렸다. 손잡이에서부터 점점 굵어져서 끝에 이르면 작은 아이 머리통만한 쇠뭉치가 달려 있고 그 쇠뭉치에는 울퉁불퉁한 돌기가 수없이 솟아나 있었다. 일견하기에 기가 질릴만한 무지막지한 병기인 철퇴, 적무환은 그 철퇴를 땅에 슬쩍 내려놓은 다음 다시금 자세를 잡았다.
기마세.
두 발을 어깨 넓이로 벌린다음 무릎을 굽히고 양 손을 허리춤으로 붙이더니 천천히 신형을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한발을 내딛고는 허리를 굽혀 상체를 앞으로 숙여 두 손을 엇갈리게 앞으로 내뻗었다. 주먹도, 그렇다고 손을 편 형태도 아닌 손가락만 굽혀 마치 호랑이의 앞발을 연상케 하는 동작을 취했다. 화타오금세 였다.
장대한 체구의 적무환의 전신은 오랜 시간 수련을 했는지 땀으로 번들거렸다. 알몸의 상체에 금방이라도 물기가 뚝뚝 흘러내릴 정도인 것으로 보아 꽤 힘을 기울인 것으로 보였다. 그런 적무환의 벗은 몸에는 땀과 근육외에 여러 흔적들이 보였다. 수많은 상처들이 흡사 거미줄처럼 적무환의 상체를 뒤덥고 있었다. 세세한 작은 생채기부터 깊숙히 패인 상흔들이 문양을 그려놓은 듯 잘 발달된 근육위에 덧칠되어 있었다. 그 중 옆구리의 동그란 모양의 상흔은 꽤 심하였는지 오래된 흔적이지만 아직 그 부위에 움푹 들어간 자국을 남기고 있었다.
하늘로 비상하려는 창룡의 형을 마지막으로 적무환은 신형을 멈추며 숨을 가다듬었다. 옆에 놓여진 수건으로 상반신과 얼굴에 흐르고 있는 땀을 닦아내리고는 천천히 지식과 조식을 반복하며 내기를 순환하여 외기와 조화시켰다. 완전히 자신의 몸의 상태를 되찾은 것이 일년 남짓되었다.

이년 전 적무환이 단애에서 추락하였을 때 그 절벽 밑으로 다행히 작은 하천이 흐르고 있었기에 적무환은 살아날 수 있었다. 만약 그 밑이 그냥 일반 땅이었으면 피육으로 된 적무환의 몸은 아무리 외공으로 단련되었고 화경을 넘는 몸이라 할지라도 피떡이 되었을 것이었다. 허나 적당한 깊이의 강물은 적무환의 몸을 강렬한 충격을 주었지만 받아주었고 심신이 크게 진탕된 상태였지만 적무환은 죽지 않고 명을 이어갈 수 있었다. 게다가 그 하천은 그리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흐름으로 적무환을 하류로 흘러 보내주었고 천재일우로 적무환의 몸이 강가에 걸쳐졌으며 체내에 잠재되어 있던 음양신단과 그 원류를 알 수 없는 기운으로 인하여 적무환은 오래되지 않아 가까스로 정신을 차리게 되었다.
절망, 적무환이 그당시 정신을 차렸을 때 느꼈던 감정이었다. 산산히 부서진 육체는 끊임없이 고통을 호소하였다. 손가락 하나 까딱할 힘이 없었던 적무환은 서두르지 않고 조금씩 조금씩 진기를 끌어올렸다. 완전히 제 정신을 차리지 못하였던 것이 도움이 되었을까? 묻혀진 기억속의 무상의 도에 대한 깨달음이 적무환의 육체를 미약하나마 회복시키려는 기미가 있었다.
그렇게 삼일가량을 적무환은 강가에 널부러져 산송장과 다름없는 지경에 놓여있었다. 삼일이 지나고서야 적무환은 전력을 기울여 몸을 일으킬 수 있었고 그리고는 적무환은 혹 모를 추적자들을 대비해서 외진, 몸을 은신할 만한 곳을 찾았다. 그 와중에도 손에서 놓지 않은 거도가 적무환의 지팡이 역할을 해주었고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만 같은 몸으로 적무환은 가까스로 몸을 숨길 곳을 찾아 주저 앉았다. 벗은 상반신에는 적무환이 물에 휩쓸려 내려오는 동안 긁힌 수많은 작은 생채기가 단단한 그의 몸위에 곳곳에 남아있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이 적무환의 몸의 피육은 상했을 지 몰라도 뼈는 이상이 없었기에 가닥 가닥 끊어진 경맥을 추스르면서 적무환은 가부좌를 틀고 내기를 끌어올렸다. 극렬한 통증이 세포 마디 마디마다 뿜어져 나왔다. 게다가 계속되어진 피의 손실로 인하여 혼미해진 이성의 끈이 자꾸 끊어질려고 하였다. 그 와중에 정신을 놓아버린다면 그 이후는 장담할 수 없는 지경, 적무환은 이성의 한 가닥을 놓치 않은채 이를 악물고 진기를 순환시켰다.
여의치 않았다. 봉황성모와의 대전에서 위태하게 연결된 경락과 혈맥이 손상을 입어서 혈에 산개되어진 진력이 모아지지 않았다. 거의 하루를 그렇게 적무환은 몸을 추스렸지만 차도는 극히 미미할 정도였다. 그러던 중 적무환이 힘겹게 일주천을 마치고 과다한 출혈로 어지러운 정신을 바로 잡고 무언가 먹을 것을 찾기 위하여 힘겹게 몸을 일으킬 때 적무환은 옆구리에 심한 아픔을 느꼈다.
‘그렇지. 봉황성모가 쏘아낸 암기에 맞았지.’
적무환의 기억속에 ‘봉황탄’이라는 음성과 함께 빛살같이 날아와 자신의 복부에 틀어박힌 암기가 되살아 났다. 봉황탄에 격중되고 정신을 잃어 그 다음의 기억은 존재하지 않았다. 적무환은 손을 뻗어 암기가 작렬한 부위로 손을 가져갔다. 단순히 상세를 보기위해 뻗은 그 손끝에 무언가 둥그런 물체가 닿았다. 물살에 휩쓸려 여기까지 떠내려 왔음에도 그 암기가 빠지지 않고 그대로 박혀있는 것이었다.
자조섞인 쓴웃음이 적무환의 얼굴에 그려졌다. 손을 움직여 적무환은 그 암기를 복부에서 빼내었다. 몸을 움직이기에 힘이 들었지만 적무환은 온힘을 다 기울여 깊숙히 박혀있는 물체를 뽑아낼 수 있었다. 암기가 빠진 자리에 시커멓게 죽은 울혈이 뭉쳐져 있다가 열린 틈으로 울컥 솟아나왔다. 적무환은 그 뚫린 구멍을 울혈이 어느 정도 빠져나가자 조각난 옷가지로 틀어막았다.
둥그런 물체는 유백색을 띈 직경이 두치반 가량의 구(球)체였다. 물끄러미 그 구체를 바라보던 적무환은 몸을 벽에 기대곤 눈을 감았다. 극심한 피로가 몰려왔다. 그저 자리에 누워 잠들고 싶었다. 이후의 삶이나 미래 따위 생각할 필요 없이 그냥 이대로 깊은 잠속에 빠져들고 싶었다. 깨어나지 못하더라도, 그래서 어떻게 될지라도 무작정 자고 싶었다. 조금 추스렸다고는 하나 몸을 조금 움찔거릴지라도 찾아드는 엄청난 고통이 두렵기도 하였고 그 고통이 사라졌다 할지라도 과거의 자신으로 되돌아갈 자신도 없었다.
절망!
심연의 나락 속으로 잠겨드는 적무환이었다. 끊임없는 절망감이 몸을 휘감았다. 그러면서 적무환의 이성이 차츰 흐트러졌다. 그 이성을 놓아서는 안된다는 것을 알지만 붙잡기엔 너무나 힘이 들었다. 자! 이제 그만 쉬자. 적무환의 뇌리가 세차게 소리쳤다.
그렇게 적무환이 스스로를 버티지 못하려할 때 그의 뇌리속에 어렴풋한 과거의 기억이 흩어진 조각으로 뒤섞이며 되살아났다. 어렸을 때 자신의 모습이 떠올랐다. 적가의방에서 뛰놀던 어린 시절의 꼬맹이의 개구진 동작이 머릿속에 떠오르자 자신도 모르게 적무환은 빙그레 웃음을 지었다. 철없이 장난치며 자라던 그 시절의 기억..
그러나 그 기억은 곧이어 모친 진청청의 자애스러운 자태를 되살렸고 이는 야산에서 진청청의 능욕당하는 처참한 기억으로 전이되었다. 백옥 같은 나신을 활짝 벌린채 야수들의 정액을 받으며 몸부침치던 당시의 광경이 혼미한 적무환의 이성에 뚜렷이 새기어지고 그 뒤를 이어 절벽에서 죽임을 당한채 부릅뜬 눈으로 떨어져 적무환과 눈이 마주치는 그 순간이 적무환의 머릿속에 가득할 때 형용할 수 없는 격렬한 분노가 치밀었다.
빠직.
작은 기음이 노기가 극에 다달은 적무환을 일순간 자극하였다. 적무환은 무의식적으로 그 소리가 들려온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소리의 근원지는 자신의 손이었다. 그 손아귀에는 희끄무레한 물체가 부수어진채 손에 들려있는 것이 보였다. 암기였다. 봉황성모의 손에서 발출되어 자신의 몸에 틀어박힌 암기가 부숴진채 손에 들려있었다. 적무환이 분노로 손에 힘이 들어갔을 때 깨뜨려진 모양이었다. 전신에 기력이 없었지만 분노에 약간의 힘이 모아졌나보았다.
‘응?’
적무환은 손에 들린 부스러기들을 털어버릴려다 동작을 멈추었다. 깨어진 암기속, 청아한 향기와 영롱한 빛을 발하는 조그마한 단환이 눈에 들어온 것이었다. 적무환은 정신을 가다듬고 힘겹게 손을 들어 부스러기들을 제거하였다. 그러자 그 속에서 자금(紫金)빛의 엄지 손가락 마디만한 환이 하나 보였다.
‘이게 무얼까?’
적무환은 의혹어린 눈으로 엄지와 검지로 환을 들어올렸다. 몸을 편안하게 해주는 향긋한 내음이 콧속으로 들어왔다. 맡기만 하여도 청아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이게 왜 여기에 있는 거지?’
계속해서 의구심이 일어났다. 환약에서 풍겨나오는 향기가 적무환의 머릿속을 맑게 해주었고 적무환은 차츰 생각을 정리하였다.
‘봉황성모가 이 암기를 내게 쏘아낸 것은 나를 공격하기 위함이 아니란 말인가? 왜 그녀는 살상의 암기가 아닌 이 환약을 발사하였을까? 그러고 보니 내가 왜 그런 절벽에 서있었던거지? 나는 봉황성모와 싸움을 벌였고 그리고 그 반탄력에 정신을 잃은 것 같은데..’
가닥이 잡히지 않았다. 생각을 가다듬기엔 잘려나간 부분이 많았다.
‘혹 봉황성모가 그런 것일까? 아니야. 그녀는 손속에 사정을 두지 않았다. 살기는 보이지 않았지만 충분히 나를 제압할 수 있었어. 정신을 잃었을 때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거지?’
미미하게 고개를 흔들며 적무환은 복잡한 머리속을 떨쳐버리려 하였다. 그러자 다시금 찾아오는 고통.
“우욱..”
한줄기 피가 입가로 흘러내렸다. 적무환은 손등으로 피를 닦아내었다. 그러다 무언가를 결심한 듯 눈을 빛내었다.
‘그래. 해보자.’
적무환은 손에 들고 있던 환약을 입에 털어넣었다. 순식간에 타액에 용해되어 식도로 환약은 넘어갔다.

‘그게 봉황선환(鳳凰仙丸)이었을 줄이야.’
적무환은 바닥에 내려놓은 철퇴를 집어들었다. 그리고는 발걸음을 개울가로 향했다. 조그마한 개울에는 이미 몇몇 선객이 몸을 씻고 있었다.
“조장님. 이제 끝나셨습니까?”
“오늘도 하시네요. 하루도 빠짐없이 수련을 하시다니..얼마나 더 강해지실려고 그러십니까?”
“허이구야. 저 근육 좀 봐. 구렁이가 수백마리 또아리친 거 같네..”
개울에 몸을 담그고 있던 사내들이 적무환을 보면서 한마디씩 입을 열었다. 그들의 눈속에는 존경과 신뢰, 그리고 감탄이 가득했다. 이들은 다름아닌 적무환이 속한 부대에서 적무환의 밑에 있는 병사들이었다. 새롭게 배속된 부대에서 적무환을 비롯한 한 무리의 부대가 한 지역을 맡았고 그들은 도착하여 작은 막사들을 여러 개 짓고는 각각의 분대로 흩어져 부여받은 지역을 맡았다.
일종의 국경수비대라 할 수 있는 이 곳에 적무환이 온 것은 일년이 조금 넘었다. 봉황선환(나중에 알게되었지만)을 복용하고 상세를 치료하느라 거의 육개월을 은신하며 지냈다. 형산은 위험하여 적무환은 야밤에 이동을 거듭하여 운남으로 몸을 피했다. 운남은 형식상 중원에 포함되어 있기는 하지만 거의 외국이나 마찬가지인 곳이었다. 문명의 발달을 이루기에는 이 곳의 기후가 너무 습하고 더웠기에 중원의 사람들은 운남을 잘 찾지 않았다. 그러한 것을 적무환도 알기에 적무환은 운남으로 행보를 결정하였고 운남에서도 가장 서쪽으로 발걸음을 잡았다.
간신히 내기를 다스렸지만 아직 몸상태는 완전하지 않았다. 그러던 중 적무환은 우연히 일단의 병사들과 마주치게 되었고 서슴없이 군에 투신하였다. 군에 몸을 담게된 이유는 군은 엄연히 강호와 구분되었고 상호간에 간섭을 하지 않는다는 불문율이 있다는 것과 처음 강호에 출도하였을시 악철옹이 한 말이 기억이 나서 적무환은 군에 들어갔다.
그때 적무환을 받아들인 장수가 지금 적무환이 속한 부대의 백부장이었다. 그는 적무환의 초췌한 몰골이지만 거구에 잘 발달된 근육을 보고 어떤 연유가 있어 이 장대한 사내가 도피하고 있다는 것을 추측해내었다. 그리고는 적무환에게 권유를 하였고 적무환 역시 당장 몸을 피할 도피처가 생겼기에 합류를 하였다.
몸 상태가 차츰 차츰 나아지면서 적무환의 힘은 이 부대에 없어서는 안될 존재가 되었다. 타고난 힘에 언뜻 언뜻 무공이 깃들여 있는 것을 대부분의 병사들이 알았지만 오히려 그로 인하여 병졸들은 안심을 하였다. 그들도 눈과 귀가 있어 강호인들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에 무림인의 힘을 선망과 경외, 두려움의 시선으로 보던 참이었다. 그러한 무인이 자신들과 합류를 한다는데 저어할 이유가 없었다.
적무환은 군의 소속으로 활동을 하면서 철저히 내공을 숨겼다. 그래도 적무환의 거대한 체격과 근육에서 뿜어져 나오는 힘만으로도 이 곳에서 사신(死神)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칠척이 넘는 청동탑 같은 괴물이 휘두르는 철퇴는 가히 공포였다. 다른 이들이 간신히 들어올릴만한 무게의 쇠몽둥이를 사신은 거리낌없이 자유자재로 휘두르는 것을 보고 토벌의 대상인 원주민들은 도망가기에 바빴다.
국경수비대의 원 임무는 중원의 외곽을 지키면서 외적의 침입에 대응하는 것을 그 주 임무로 하였다. 이 곳 남만이라 불리우는 운남에는 수많은 부족들이 살았다. 불과 수십정도 밖에 되지 않은 소수부족에서 거의 만여명을 헤아리는 거대한 부족들까지 셀수 없을 정도로 많은 종족들이 오래전부터 자리를 잡고 생활하였다. 일부는 작은 국가형태를 갖추어 원황실에 정기적으로 공물을 보내면서 제후로서 위치를 다진 곳도 있었지만 대부분 부족생활을 하고 있었다. 이런 곳이므로 발생할 분쟁이야 기껏 조그마한 투닥거림밖에 없는 것이 당연하였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그 원인은 운남성주였다.
현 운남성을 맡고 있는 성주는 출세지향적인 인물이었다. 그렇기에 그는 어떡하면 중앙으로 진출하기 위하여 공과를 세우기위해 계책을 만들었다. 예를 들면 어느 부족이 반기를 들었다는 식으로 하여 병력을 출동시켜 토벌을 하였다. 평화롭게 살고 있던 원주민들은 군병의 상대가 되지 못하였다. 초창기에는 거의 일방적인 학살이 이루어졌다. 군사들은 부족을 침탈하여 수많은 인간을 파리잡듯 죽이고 여인들은 강간하였으며 보물을 노략질하였다. 허나 그 것은 다 전공을 세운 것으로 기록되었고 이는 원의 황실에 자화자찬식의 보고로 이어졌다. 당연히 황실에서는 공을 치하하는 황명이 내려왔고 아울러 품계라던지 상금이라던지하는 보상이 뒤따랐다.
그렇지만 이것도 오래가지는 않았다. 군병들은 잘 훈련된 힘을 보여주었으나 원주민들은 이곳이 그들의 생활의 공간이었다. 원주민들이 반격이 시작되었다. 지리적인 잇점을 이용하여 원주민들이 수세에서 맞서 싸우자는 쪽으로 돌아서자 그때부터 원의 병사들도 병력의 손실이 급격히 늘어났다. 심지어 어느 부대는 야습으로 인하여 한명도 남김없이 몰살당한 경우도 있었다. 이렇게 되자 운남성주는 더 아래의 장수들을 닥달하였고 이런 상황이 지금까지 이어온 것이었다.
적무환이 사신의 별칭을 얻은 것도 불과 구개월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적무환이 비록 몇번 무림에서 격전을 벌였다고는 하나 전장은 그와 완전히 달랐다. 몇몇의 싸움이 아닌 집단과 집단의 싸움이었다. 수십의 작은 전투에서 때로는 수천에 이르는 대병력이 나서서 싸움을 벌이기도 하였다. 시체가 산을 이루고 흘러나온 붉은 피가 웅덩이를 만들고 강을 이루었다. 앞의 적들과 칼을 나누고 있는 순간에도 불쑥 옆에서 튀어나온 창이 옆구리를 꿰뚫고 지나갔다.
멋모르고 스스로의 무위를 믿고 있던 적무환에게 이는 색다른 충격과 두려움을 주었다. 빗발치는 화살속에서 얼마전까지 옆에서 희희덕거리던 동료가 고슴도치가 되어버렸다. 술내기를 하던 장가라 불리우던 사내는 목이 없어진채 막사 귀퉁이에서 발견되었다. 무인들이 발하는 무형의 살기와는 전혀 다른 야수의 기운도 있었다.
급박한 순간 자신도 모르게 내공을 방출하며 적을 날릴 때 적무환은 탄식을 터뜨렸다. 아무리 다짐을 해도 생명의 위협이 담긴 순간에는 본능적으로 진기가 일어 몸을 방어해내었다. 이는 적무환의 명줄을 오래 지속시키는 역할도 있으나 스스로가 정한 한계를 넘어서지 못하는 것이므로 어느 순간부터 적무환은 내공을 금제하고는 전투에 나섰다.
시작은 어려웠다. 독화살에 맞아 간신히 목숨을 건진 적도 있었고 세차게 날아온 돌멩이에 전신을 타작한 적도 있었지만 그때마다 적무환은 살아남았고 본인이 느끼기에 무언가가 강해지고 단련되고 있다는 기분이 들었다. 바로 그 순간부터 적무환의 이름은 사신이라 불리웠다.
죽지않는 인간, 그러면서 죽음을 가져다 주는 인간. 적무환은 적을 죽일 때 맨처음에는 사혈이나 급소를 찍어 죽였다. 조금이나마 고통을 덜하게 하겠다는 의미였다. 곤을 들었다. 자신의 신장만한 봉을 들고 전쟁에 나서서 봉을 휘둘렀다.
그렇게 적무환이 전장에 나섰고 결정적으로 사신이라 불리우는 계기가된 노완족의 토벌이 시작되었다. 이때에도 적무환은 예와 다름없이 봉을 들고 전투에 나섰다. 노완족은 이 근방에서 손에 꼽히는 큰 부족이었다. 그만큼 용맹한 전사들이 무수히 포진되어 있었기에 이쪽에서도 가능하면 이들을 건들지 않으려 했었고 원만한 관계로 지내오고 있었다.
사건은 뜻밖의 일이 발단이 되었다. 병사들 몇몇이 수색을 나섰다가 원주민 처자들 몇몇을 발견하고는 그 여자들을 붙잡아 윤간을 하였다. 그런 것쯤은 일상적으로 있는 일이었기에 병사들도 간단히 생각하였고 여자들을 강간한 후 모두 칼을 휘둘러 죽였다. 그러나 그 죽인 여자들이 ‘모두’가 아니라는 것에 문제가 발생하였다. 그 중 하나가 급한 볼일을 위해 잠시 자리를 뜬 사이 사건이 벌어졌고 살아남은 여자는 부족으로 돌아가 그 만행을 낱낱이 보고하였다. 윤간당한후 죽은 여자중 한명이 족장의 딸임에야 그 문제는 말할 나위가 없으리라.
이 일이 벌어진 후 노완족은 사신을 보내어 그 병사들을 처벌할 것을 요구하였으나 부대장이 듣지 않자 보복으로 병사들을 공격하였고 이는 전면전으로 치달았다. 전투가 벌어지면서 양쪽의 병력의 손실이 발생하였다. 점차 노완족쪽으로 승세가 기울면서 아군의 피해가 늘어났다.
적무환이 출전한 전투 도중에 양쪽에서 사상자들이 발생하였다. 아무래도 가려가면서 급소를 찌르기가 쉽지 않아 적무환이 몇몇 처리하고 있지 않을 때 아군은 거의 전멸직전까지 다달았고 옆의 동료가 하나 하나 스러지는 것에 적무환은 분노가 솟구쳤다. 그리고는 옆에 뒹굴고 있는 철퇴하나를 집어들었다. 그게 끝이었다.
적무환이 숨을 고르면서 주위를 둘러볼때에 전장에 서 있는 것은 자기와 아군 병사 열 둘이 전부였다. 이백가량이 참전한 전투에서 거의 몰살이 되고 살아남은 것은 열셋, 허나 노완족의 피해는 더하였다. 거의 삼백에 이르는 용사들이 마음 먹고 급습을 하였으나 공포에 질려 도주한 오십여명을 제외하고는 이백 오십가량이 이 곳에 뼈를 묻은 것이었다. 거기에 적무환 혼자 거진 백 오십을 처리하였으니 그 공포야 이루 말할 수가 없으리라.
그 이후 적무환은 십호장의 직위를 받으며 사신이라 불리워졌다.

“조장님. 본대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뭔가?”
“운봉산 어귀의 나호족의 동태가 심상치 않다고 수색하라 합니다.”
“나호족이?”
“예. 그렇습니다.”
“흐음..알았다.”
보고하러 들어온 병사를 내보내면서 적무환은 생각에 잠겼다. 그러고보니 기억속에 아스라히 운봉산이라는 지명이 귀에 익었다는 데에 미치고 유명사신 혁사락이 죽어가면서 한 말 중 운봉산 가봉이라는 말이 되살아났다.
‘운봉산 가봉이라..운봉산..무슨 뜻일까?’
장궁과 강문직에게도 돌린 혁사락의 서찰을 찬찬히 되새겨 보았다. 혁사락은 그 서찰에 자신의 가문을 몰살한 흉수에 대한 언급을 하지 않았다. 다만 반드시 복수를 하겠다는 말이 떠올랐고 적무환이 몸을 추스리고 운남으로 빠져나올때에 태산에 큰 화재가 발생했다는 말을 듣고는 그 ‘복수’가 무엇인지 깨달았다. 혁사락은 보물을 얻었지만 인연이 닿지 않는다 서찰에 적어 놓았다. 그러면서 남겨진 장보도를 적무환에게 주면서 전음으로 ‘운남 운봉산 가봉’을 전했다. 그렇다면 그 보물이라는 것이 운봉산에 있다는 것일까? 태산에 일어난 화재로 인하여 흑천의 세력을 비롯한 많은 무림인 들이 죽었다는 말을 듣고는 비로소 그것이 혁사락의 복수라는 것을 알았다. 미리 덫을 지어 놓고 장보도를 적무환에게 전달한 것이었다. 적무환이 흑천에 그 장보도를 빼앗길 것을 확신한 것인지..
‘나중에 알게 되겠지.’

사신 적무환을 조장으로 하여 수색대가 조직되었다. 적무환을 포함하여 열 아홉의 병사들이 군장을 갖추고는 군영을 떠났다. 원주민이자 아군에 협력하는 길잡이 하나를 앞세우며 스물의 인원이 운봉산 어귀로 발걸음을 향했다. 그 중에는 사신의 부대에 배속되면 어쩌나 하며 투덜거리는 왕가와 정가가 포함되어 있음이 어떤 인연을 의미함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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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었습니다. 꾸벅 (-.-) (_._)
은근히 글을 이어나가기가 어려워 손을 좀 놓았더니 더 힘들군요.
응응응을 집어넣을려고 해도 어디서 여자를 조달할 방법이 없어서..
다음편이나 나오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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