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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 수라기(獸羅記) 64번째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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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364 회 작성일 23-12-22 07:25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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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부 유희(遊戱)

1장 사신(死神)

(1)

“크허억!”
“끄으..”
“으헉!”
“#$$%#@%”
쉴새 없이 여기저기서 터져나오는 비명소리!
창! 카캉! 퍽! 츠잇..
날카로운 금속성에 피육이 짓이겨지는 소리까지 들려왔다. 그것도 한 두명이 아닌 수십 수백의 인간들이 고통과 광분에 젖어 내질러대기 때문에 가히 지옥의 한 귀퉁이를 보는 듯한 착각마저 들게 하는 이 곳.
“공격하라! 저 야만인 놈들을 몰살시켜라!”
갈기에 윤기가 자르르 흐르고 살집이 적당히 잘 올라있는 명마계보에 오름직한 말을 탄 육척이 넘는 거한이 참마도를 휘두르며 고함을 쳤다. 혼잡한 전장을 쩌렁 쩌렁하게 울리며 퍼져나가는 거한의 공격명령에 사기가 북돋아지는지 그 사내와 엇비슷한 복장을 갖춘 수십의 사내들이 손에 병장기를 꽉 움켜쥐고는 앞에 대적하고 있는 그들의 적을 향해 돌진해 들어갔다.
“끄으..”
“아악! 어머니..”
“#%^*#”
“!@$!$”
전장에서 들려오는 언어는 비단 한어만이 아니었다. 중원에서는 듣기 어려운 전혀 낯설은 말들이 한족의 사내들의 칼이 목을 가르고 창에 가슴이 꿰뚫리면서 터져나갔다. 들려오는 비명소리는 한어가 반이 좀 안되었고 이민족의 언어가 한어보다 조금 더 들려왔다. 그럼에도 참마도를 휘두르는 거한과 같은 편쪽의 사내들은 돌진해 나가던 기세가 주춤하였고 이내 사람의 머릿수에 밀려 뒤로 주춤 주춤 밀려나기 시작하였다.
“흑룡대는 전열을 정비하라! 적들은 지쳤다. 이 기회를 놓치지 말고 적들은 섬멸하라!”
거한의 사내의 입에서 다시금 고함이 터져나왔다. 정말 지쳐보이는 것은 그들이 상대하는 이민족 전사들보다는 이쪽 사내들이었다. 인원으로는 세배를 훌쩍 뛰어넘는데다가 그들의 눈에 담겨있는 형형한 흉광은 칼을 나눠보기도 전에 기가 질리게 하였다. 게다가 이 곳은 그들, 이민족의 삶의 터전. 아무래도 밀릴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훈련이 잘된 병사들이고 조직적인 싸움에 익숙한다고 하더라도 일방백의 무예를 지닌 자들도 아닌 직접 칼로 골육을 베어야 하는 전투이기에 숫자 싸움에 밀릴 경우에는 별다른 방법이 없었다.
참마도를 휘두르는 거무스름한 거한의 눈빛에 점차 절망감이 스며들었다. 그가 지금껏 벤 목숨이 수십이지만 적들은 그 수가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와 반대로 현저하게 수가 적어지는 아군.
그때였다.
“전군 공격!”
“우와아아!”
“와아아!”
동쪽에서 들려오는 함성이 전장을 뒤흔들었다. 그와 함께 달려나오는 수십의 인영들..맨앞에 서있는 칠척이 넘어보이는 구리빛 피부가 잘 그을린 사내가 철퇴를 흔들면서 전력으로 달려나왔다.

* * *

“아군의 피해상황은?”
“사망자 사십 육, 부상자 칠십 이명입니다. 장군님.”
“사십 육? 사십 육이라..흐음..부상자는 어떤가?”
“대부분 중상이라 전력에 포함시키기는 어렵습니다.”
“그렇겠지. 어렵군. 어려워. 흐음..”
“...”
한 내실. 사방과 천정의 벽은 나무를 얽어서 만들고 진흙으로 틈을 막은 가건물 형태의 방이었다. 내실 안에는 지금 두 명의 사내, 한명은 경갑주를 입고 있었고 다른 하나는 평상의를 걸치고 있어 대조적인 모습을 보였다. 그 중 갑주의 사내가 앉아 있는 장년의 사내에게 보고를 드리는 모양이었다.
“그래, 이제 흑룡대의 인원이 총 몇이나 남았나?”
“스물 일곱입니다. 장군님.”
“스물 일곱? 그것 밖에 안남았단 말인가? 물경 백오십을 넘나들던 그 많은 인원이?”
“연이은 전투에 계속 희생된 후 충원이 없는 관계로 병력을 지원하지 못하였습니다.”
“끄으음..”
앓는 소리가 잘 정돈된 수염으로 가려진 입술을 헤집고 삐져나왔다.
쾅!
머리를 짚고는 안색을 어둡게 하던 그의 손에 힘이 들어가고 급기야는 앞의 탁자를 내려쳤다.
“도대체 보내준다는 인원은 어떻게 된거야! 전령이 온지 두달이야, 두달! 그동안 매일 십여명씩 죽어나가는데 언제 충원해준다는 거야!”
노기로 붉게 얼굴을 물들이며 장군이라는 사내가 고함을 질렀다. 흑룡대라함은 일반적인 병제를 나눈 후 각각의 병대에 붙인 일종의 별호인 모양이었다.
“이제 얼마나 남았는가?”
“장군님.”
“도대체 우리 병사가 얼마나 남았냐는 말일세!”
“흑룡대 스물 일곱에 황갈대 일백 셋, 사령대 여든 아홉 그리고 본대 이백 열 하나 입니다. 본대에 제반 인원을 포함시켰습니다. 부상인원은 일백 서른 일곱입니다.”
“...겨우 그 병력 밖에 남지 않았나? 천 삼백을 넘던 그 많은 병사들이 이제 오백 정도밖에 남지 않았단 말인가? 그 병사들가지고 이 곳을 지키란 말인가? 이런..”
채 말을 잇지 못하고 장군은 가슴어림까지 내려온 수염을 부르르 떨어대었다. 말그대로 노기충천!
“진정하십시오. 그렇지 않아도 그에 대한 말을 들었습니다. 장군님.”
“말? 어떤 말? 인원이 보충된다던가? 그런 전령이 왔나?”
“그게 아닙니다. 저도 이번 전투에 참가를 하지 못했지만 흑룡대의 병사 중 하나가 이번 전투에 지원을 나온 이에게 들었다 합니다.”
“무슨 말을 들었다 하는가?”
“백호장 하나와 그에 따른 병대가 이쪽으로 배속된다 합니다.”
“십호장? 겨우 십호장 하나? 아니, 그 정도 가지고 자네가 그런 말을 하는가? 정 백호?”
“그렇지만 그 병대는 일개 병대라고 할 수 없을 정도의 병사들이라 합니다.”
“그래? 설마 장 익덕이 다시 살아나 지원을 온다고 하던가?”
다소 냉소적으로 장군이라는 사내가 입을 열었다. 기껏 해야 조금 오래 살아남은 병사 하나를 십호장에 올라 앉혀 이리로 보낸 것이겠지. 멍청이들. 지금 이 곳이 얼마나 위급한지 모른단 말인가?”
“익덕 장비 장군은 아닙니다만 적어도 이곳에서는 그와 버금가는 장수라 할 수 있습니다. 장군께서는 혹시 사신(死神)이라고 들어보셨습니까?”
“사신? 죽음의 신? 사신이라..설마 복호장군 휘하의 사신을 말하는 것은 아니겠지?”
부정의 말을 하면서도 간절한 느낌이 사이 사이에 담겨 나왔다. 그 설마를 진실로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기 때문일게다. 그런 그 장군의 절실한 심정이 하늘에 닿았을까?
“바로 그 입니다. 그 사신이라 불리우는 적 십호가 들어있는 부대가 이쪽에 합류한다고 합니다.”
“뭣이!”
자신도 모르게 벌떡 자리에서 일어선 장군, 그의 안면은 경악과 놀라움에 기대와 열망이 뒤섞인 복잡한 표정이었다.
“어찌 그럴 수가 있는가? 지난 번 감 천호을 만났을 때 그런 말을 전혀 들은 적도 없는데 어떻게 감 천호가 사신을 다른 부대로 전출시킨다는 말인가? 복호가 그를 얼마나 아끼는데 그에 대한 칭찬과 감탄을 얼마나 해대었는데 이리로 올 수 있나?”
“그게 말입니다. 말씀드리기 송구하옵니다만 복호장군 감 천호장군님은 이미 이 세상 분이 아닌 것으로 들었습니다.”
“응? 그게 무슨 말인가? 자세히 말해보게. 도대체 뭔 일이 벌어졌나?”
“오늘 보고드릴 사항 중 하나였습니다. 다름아닌 복호장군께서 전사를 하셨다 합니다.”
“전사? 어떻게 그가? 그렇게 용맹스럽고 그 휘하의 장수들이 건재한데 어찌 그가 죽음을 당할 수 있지? 자세히 말해 보게.”
“얼마 전 복호장군께서는 이 옆 운봉산 어귀의 나호족을 토벌하라는 명을 받고 병력을 이동하였습니다. 그러나 어찌 알았는지 나호족의 매복을 하고 있어 협곡에서 기습을 받고는 당황한 상태에서 계속되는 공격에 그만 운명하셨다고 합니다.”
“기습? 그렇다면 사신을 비롯 그 많은 용맹한 장졸들이 있는데도 그들을 못막았다고 하던가?”
“그게 사신이 속해 있던 부대는 다른 임무를 수행하고 뒤이어 합류를 할 계획인지라 미처 복호장군과 행동을 같이 하지 못했다 합니다.”
“그렇게 되었구만. 그래, 그 병력의 피해는 얼마나 된다 하던가?”
“물경 오백에 가까운 병사들이 목숨을 잃었다 합니다.”
“뭐라! 오백이라고? 그렇게나 많은 병사들이 죽었단 말인가?”
“예. 장군님.”
“그렇다면 큰일이 아닌가? 복호장군이라면 이 곳 운남을 지키는 큰 축 중의 하나가 아닌가? 이곳 남만국경 수비군에 큰 구멍이 뚫렸다는 말인데..”
“그래서 그 복호장군의 병력이 우리 부대에 합류를 하고 그만큼 경계 영역이 확대된다고 들었습니다.”
“그렇겠지. 그렇겠지.”
“서쪽으로는 운봉산까지가 본 군역이 될 듯 싶습니다.”
“으음.”
“전에 말씀드린 것처럼 이 운봉산에는 나호족이 있습니다.”
“알고 있네.”
장군의 대답이 침중해지자 정 백호장은 입을 다물고 장군의 앞에 반듯이 선채 이어질 장군의 말을 기다렸다.
“나가보게.”
좌수를 들어 이마를 짚는 장군, 무령장군 강 천호장의 이마에 주름이 잡히고 심중히 안색이 굳어지는 것을 보다 정 백호는 강 천호장의 말에 군의 예를 취한 후 내실을 빠져나왔다. 그의 뒤로 장군의 나직한 독백이 들려왔다.
“나호족이라..사신, 그가 온단 말이지.그가..”

* * *

“아이구..아이구..”
“아욱. 이 씨팔, 살살 좀 해!”
“주둥이는 멀쩡한 가 보네, 정작 칼을 맞아야 할데는 안 맞고. 에그..”
“야이! 왕팔자식아! 네가 한번 이렇게 찍혀봐! 그나마 나니까 이 정도지. 너면 벌써 염라대왕면전에서 줄서기하고 있을게다. 아구구..”
심한 고통을 호소하는 신음. 동료들이 조잡한 창약을 발라줄 때 느껴지는 아픔에 투덜거리는 욕설등이 막사안을 가득 메웠다.
얼마 전에 벌어진 전투로 인하여 부상을 당한 병사들이 치료를 받고 있는 중이었다. 무령장군 휘하 흑룡대라는 군 소속의 인물들은 그들이 거하던 막사로 돌아와 다친 부위를 돌보고 있었다. 이 들은 부상자의 명단에 올라있지 않은 사람들이었다. 이런 전쟁에서 부상자라함은 적어도 팔이나 다리 한짝이 떨어져 나갈 정도의 상세가 아니면 다시 본 소속 부대로 돌아와 차후에 대비하여야 하기에 그나마 경상이라 판단되는 자들은 끼리끼리 모여서 서로간에 약을 발라주고 붕대를 감아주곤 하였다.
의원이라 해봤자 중상자들에게 매달려 있지 이런 일개 하급 병사의 창상이나 열상등에 신경을 미칠 경황이 없기에 병졸들은 이렇게 나마 스스로의 몸을 살피고 있었다.
“어이, 전칠은 어디 갔나? 안보이네.”
“뒤졌어.”
“전칠이 죽었다고? 그 까불대던 친구가? 이런..이런 빌어먹을 내돈 두냥은 어쩌고..이 개가 뜯어먹을 놈. 지옥에 쫓아가야 겠네.”
아마 전칠이라는 동료에게 약간의 돈을 빌려줬던 모양이었다. 그런데 그 전칠은 전사하였고 그로 인하여 이 사내는 투덜거리는게 보였다. 허나, 자세히 보면 그 투덜거리는 사내의 눈 속에 담겨 있는 분노와 슬픔은 비단 그 전칠이란 동료가 돈을 안갚은 것때문만은 아니었다.
“이봐, 장가야.”
“왜?”
“이제 우리도 죽을 날이 얼마 안 남았네. 이번에 우리 흑룡대도 거의 다 날라갔고. 곧 그 삭두족 놈들이 들이닥칠텐데 그러면 끝나지 않겠어?”
“이 빌어먹을 자라자식! 꼭 그 혓바닥을 그렇게 놀려야지. 썅! 하긴 그말도 틀린 것은 아니지. 인원도 없고. 있는 놈은 이런 비실비실한 놈들뿐이니 어디 배겨나겠어? 묘자리는 어디 잘 봐뒀냐?”
“씨팔, 무슨 돈이 있어서 그 돈이 있으면 춘월이년 궁둥이나 한번 더 두드리겠다.”
“아직도 춘월이냐? 그 엉덩이만 펑퍼짐한게 뭐가 그리 좋다고..”
“네 놈이 계집의 참맛을 몰라서 그러는게야. 자고로 계집이란 엉덩이에 살집이 두툼하게 잡혀야 맛이 있지.”
“지랄 말고 어디 팔 한번 움직여봐라.”
툭.
“악! 이 새끼가. 어디, 좀 낫네.”
“다 내가 하늘에서 내려온 명의라 그렇단다.”
“명의? 지랄하고 자빠졌네. 네까짓게 명의면 난 조자룡이다. 이 놈아!”
“이런..크핫핫하..”
“하하하..”
크게 둘은 박장대소를 하였다. 왠지 공허한 느낌. 이 둘뿐 아니라 훵하니 인원이 비어있는 막사안에서 생기를 잃은 눈으로 멍하니 앉아있거나 눈을 감고 자리에 누워있는 몇몇 병사들에게서는 사기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스물이 넘는 인원이 자리를 잡고 있는 이곳 막사는 평소에는 백여명이 북적거려 자리가 좁다고 아우성치던 곳이었다. 그런데 이제 남아 있는 병사는 스물 일곱, 사분지일이 채 되지 않는 숫자다.
“장가야. 그 십호장 정말 대단하지 않냐?”
“누구?”
“그 사신인가 뭔가하는 그 십호장 말야.”
“아! 사신!”
장가라 불리운 사내는 사신이란 말에 감탄사를 발하며 사신이란 이름을 되풀이하였다.
“정말 대단했지. 정말..”
중얼거리며 장가는 얼마전 삭두족(削頭族)과의 전투를 머리에 떠올렸다.

불과 이틀전, 흑룡대는 영역의 수색을 명받고 주변을 탐색하면서 군영으로부터 약 사십리정도까지의 거리에 정탐을 나섰다. 흑룡대 전 인원이 출동하는 대대적인 수색이니만큼 세밀한 계획을 세우고 점진적으로 진격을 하여 삭두족의 경계를 지나 일부 삭두족의 영역으로 들어섰다. 워낙 많은 인원이 이동하고 있던지라 이는 주변의 여러 소수 부족을 포함하여 고대로부터 이곳에 거주하던 삭두족의 경계심을 불러 일으켰고 이 지역의 패자라 할 수 있는 삭두족은 그들 휘하의 소수부족들의 병력을 포함 대대적인 인원으로 흑룡대를 막아 섰다.
처음에는 대화를 통하여 원만히 진행하려 하다 자신들이 아닌 타 민족을 멸시하는 한족의 버릇이 나왔고 이는 곳 싸움으로 발전했다. 처음에는 흑룡대의 조직적인 대응에 이민족들의 많은 전사들이 목숨을 잃었다. 그렇지만 숫적 불리함은 얼마 있지 않아 전세를 역전시켰으며 흑룡대는 점차적으로 밀리고 있었다. 용맹스러운 흑룡대 병사들도 죽여도 죽여도 계속 이어지는 삭두족의 전사들에게 질려 힘을 잃었고 급기야는 일방적인 열세가 되었다.
바람앞에 등불같이 위태로왔던 순간, 그들이 나타났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그’가 그 무시무시한 철퇴를 휘두르면서 달려왔다. 그의 손에 쥐어쥔 철퇴는 흔히 볼 수 있는 철퇴가 아니었다. 그 체격만큼 거대한 철퇴, 물경 다섯자 정도에 끝에 달려있는 쇳덩이는 작은 어린애 머리통만 하였다. 그 철퇴가 한번 휘둘려질때마다 삭두족의 전사하나가 쓰러졌다. 그것도 아예 짓이겨지듯이 정수리 부분이 목으로 파묻혀 들어갈 정도로 깊숙히 함몰되었고 피와 뇌수가 분수처럼 솟구쳤다. 빠르고 강력했다.
마치 사람을 죽이는 것을 하늘에서 그에게 내려준 일인 것처엄 그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철퇴를 휘둘렀고 그 철퇴에 걸리는 피육을 부숴버렸다.
사신이라 불리우는 그가 전장에 나타나자 상황은 급변하였다. 그를 알아보는 삭두족의 전사들이 공포의 빛을 보이면서 소리를 지르며 뒤로 도주를 하였다. 순식간에 적들의 대오가 무너지고 기세가 꺾였다. 사신은 맨앞에 서서 쇳덩이를 쉴새 없이 쳐내었다. 비명이 질퍽한 늪지를 뒤흔들었다. 알아들 수 없는 언어였지만 그 비명과 다급한 소리들은 그 이민족들이 그 사신이라 불리우는 자들에게 얼마나 공포심을 느끼고 있는지 단적으로 보여주었다.
그렇게 전투가 끝나고 장내가 정리되었다. 그때까지 사신은 철퇴를 휘두르고 있었다. 그가 휘두른 철퇴에 맞아 죽은 이들만 수십명이었다. 시신의 원형조차 알아보기 힘들게 으깨어진 시체는 거의다 그가 죽였다 생각하면 되었다.
사신이 나타나서 철퇴를 휘두르자 응원군에 힘이 솟은 흑룡대 병사들은 전열을 추스려 반격을 하였고 가까스로 삭두족을 퇴치할 수 있었다. 그후 한숨을 돌리려 할 때 그들은 비로소 사신이라는 작자의 공포를 실감할 수 있었다.
일반적으로 저렇게 사람을 죽인 자들의 눈을 보면 대개 광기로 번들거리는 것이 거의 전부였다. 사람의 피와 기름이 묻은 칼을 보면서 희번득거리고 퇴색한 눈에 인광이 담겨있었다.
그러나 사신이라 불리우는 자는 틀렸다. 혼탁한 눈빛이 아닌 거짓말처럼 깊게 가라앉아 있는 조금의 감정도 실려 있지 않은 그러한 동공을 보여주었다. 그런 눈을 하고서 철퇴를 날려 인육을 으깨고 있는 것이었다. 그러기에 그 ‘사신’이라는 이름이 가져다 주는 공포는 컸다. 그 이름을 알고 있는 부족들이나 원주민들은 사신이라는 이름만 들어도 사시나무 떨 듯 하고 전투를 포기한다고 하였다.
흑룡대 병사들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사신이란 이름을 귀동냥으로 듣고 조소를 보내는 자들이 그가 나타나 그 무지막지한 쇠몽둥이를 휘두르자 겁에 질려 꼼짝도 못하고 심지어 몇몇 병사들은 그가 벌인 참혹한 광경에 오줌을 지리거나 눈을 까뒤집고 기절을 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런 ‘사신’이었기에 그가 적이었으면 그만큼 두려운 존재인 반면 아군이라면 그보다 더 든든한 장수는 없으리라.

“그는 소문대로 무시무시하겠지?”
“그럴게야. 들리는 소문엔 키가 십척이나 되고 허벅지 하나가 왠만한 장정 몸통만 한다고 하네. 에휴~ 그가 우리 상관으로 오면 어쩌지?”
“이런 빌어먹을 놈. 끔찍한 말은..”
“참 너, 왕가놈도 대단하다. 그 많은 싸움을 해도 아직 멀쩡한 걸 보면..”
“정가야. 그런 말 말아라. 거진 삼년을 조그마한 상처 하나 없이 살아 남은 네 놈에 어찌 비하겠느냐? 거기다 어디서 줏어들은 병법하며..너 여기 오기전에 뭐했냐?”
“뭐 하기는..그냥 농사나 지었지. 그런 네 놈은 어디서 한 두수 배운 모양이던데..”
“쓸데 없는 소리! 그건 그렇고 당분간 잠잠하겠지? 오늘 저녁은 향춘루나 들러야 겠다.”
스리 슬쩍 왕가란 자가 말을 바꾸었다. 일순 눈에 당황한 기색이 담겼다 싶더니 이내 스러지고 자연스레 말을 바꾸는 왕가, 그를 보는 정가 역시 눈을 빛냈지만 곧 무덤덤하게 바뀌더니 이후 저녁에 있을 계집 생각으로 잡념을 날려버렸다.

------- -------------- -------------- ----------------- --------------

늦었습니다. 토요일에 생각만큼 시간이 나질 않더군요.
이번 글도 길지 않고..응응응도 없고..(왕팔-> 욕입니다. 자라새끼라는 뜻인가..?)

드디어 적무환이 운남으로 왔습니다. 그것도 ‘군’이라는 틀에..제가 알기로는 군이라는 곳, 그것도 전쟁터 속의 군대는 ‘참혹’이라는 말로 표현될 수 있는 것으로 압니다. 혹, 응응응이 나오지 않을까 걱정하시는 분들께서는 그런 걱정을 하지 않으셔도 될 듯..오히려 너무 하드하지 않을까..

이번 회에는 적무환이 나오지를 않는 군요. 아마 다음 편에 나오겠지요. 그리고 아환이 절벽에서 떨어져서 얻은 기연은 없습니다. 얻은 거라곤 만신창이 육신밖에..

수정: 사신(死身)->사신(死神) 입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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