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 수라기(獸羅記) 58번째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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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색의 편린들이 수없이 어두운 야산에 내려 앉아 사그러드는 조그마한 모닥불의 기운외엔 여타 광원이 없는 공간에 희미한 반사를 일으키고 있었다. 고즈넉한 정경에 걸맞은 수풀 사이에서 들려오는 각종 산짐승들과 풀벌레의 울음소리는 한 여름의 산중의 운치를 더하여 주었고 찌는 듯한 한낮의 더위가 서늘한 산바람에 식어갔다.
“......이예요. 이 정도가 현 무림의 정세지요. 상공께서도 이미 알고 계시는 부분이 많겠지만 요즈음 준동하고 있는 세력들은 아마 그리 잘 모르셨을 거예요.”
꽤 긴 시간을 제갈수란은 자신이 아는 바를 상세히 설명을 하였다. 혜지가 번뜩이는 눈으로 한참을 설명하는 그녀의 말에 의하면 현 강호의 정세는 난마처럼 얽히고 섥힌 그야말로 일촉즉발의 형세였다. 얼마 전에 장궁과 강문직 등이 입에 언급한 흑천이라는 세력과 또 그에 버금가는 세력, 아직 표면화된 상태는 아니었지만 제갈수란의 말을 들어보면 암암 중에 활동을 지속적으로 벌이고 있는 거대한 힘이 있다고 하였다. 장보도를 사이에 두고 대치를 하였을 때 장궁등과는 달리 제갈수란의 목에 칼을 댄 백리석이 그 힘의 일원으로 보인다고 하였다.
“이는 제 추측이지만 그 둘중 한 세력은 원의 황실과 관련이 있다고 보여져요. 당금 황실의 기운이 급속도로 몰락하고 각지에서 민란이 일어나고 있지요. 민심은 이미 황제에게서 등을 돌린 상태, 이민족이라는 것도 한 원인이겠지만 원에는 이 중원을 주도할 만한 정신적인 구심점이 없어요. 몽고의 철목진이 기병을 앞세워 원을 일으켰다지만 그리 오래가지는 못할 겁니다. 그러한 원의 마지막 보루라 할 수 있는 힘이 그 보이지 않은 세력이라고 여기어 져요. 제 생각은 흑천이 아닐까 생각하지만..”
“혹시 그 흑천과 또다른 세력의 수뇌에 대하여는 알고 있소?”
“정확히는 모르지요. 워낙 신비에 가려진 세력들이고 또 매우 은밀한 행동을 취하고 있어 쉽사리 무림 제파의 정보망에 걸려들지 않고 있어요. 단지 그 규모나 그들의 활동영역등으로 보아 범상치 않은 고인이라고 생각되지요.”
“범상치 않은 고인이라 함은..?”
“칠왕이나 오존이 그 세력을 이끌고 있지 않을까 생각되요.”
“칠왕이나 오존이라..흐음..”
“만약 그것이 사실이라면 무림은 풍전등화 같은 위기에 놓이게 되는 거죠.”
“그 힘들이 강호를 위협한다는 증거가 있소?”
“아직 그런 징후는 뚜렷이 찾을 수가 없어요. 허나 여태 무림에 은밀하게 행동을 한 여러 문파치고 그 성격이 온전한 곳이 드물었어요. 게다가 장궁이나 백리석의 행동등을 보면 어딘지 모르게 석연찮은 부분이 많아요.”
“천궁등의 세력도 안개속에 가려져 있지 않소?”
“그렇지요. 허나 대다수 무림인들이 천궁에 대한 인식이 좋은 것은 사실이지만 일부 원로급의 고인들은 천궁에 대한 경계를 늦추지 않고 있어요.”
“그건 또 무슨 이유요?”
“공교롭게도 천궁이 등장하는 시점은 무림에 크나큰 평지풍파가 일어난 시기와 일치합니다. 비록 그들의 무공이 정순하고 드러나있는 행보가 정도를 걸었지만 과연 그게 전부일까? 하는 의문은 여전히 남거든요.”
“천궁의 출신 중 검후 같은 인물은 그렇지 않잖소? 검후는 강호의 분란이 없음에도 무림에 등장하였잖소?”
“확실히 검후의 등장은 무림에 있어서 의외였어요. 그리고 그 어느 천궁의 문인들보다 많은 활동을 보였구요. 그래서 섣불리 천궁에 대한 평을 늦추고 있지요. 더욱이 검후는..아니예요.”
미심쩍게 말을 맺는 모양이 무언가를 숨기려고 하는 것이 역력하였지만 계속 캐묻고 싶지 않아 아환도 더 이상 질문을 던지지 않았다. 아환이 말을 그침에 자연스럽게 제갈수란도 입을 다물게 되었고 둘 사이에는 묘한 침묵이 자리를 잡았다. 야밤에 외진 곳에서 들끓는 피를 가진 두 남녀가 한 곳에 같이 있으면 일어날 법한 애사(愛事)는 분위기가 그렇지 않은지 발생할 기미는 보이지 않고 상당한 시간이 지나도록 잦아들어 가는 불씨만 쳐다보고 있었다.
“상공.”
아까와 같이 제갈수란은 아환을 상공이라 호칭하였다. 상공이라 함은 아녀자가 자신의 지아비나 지아비가 될 정혼의 관계에 있는 사내에게 붙이는 호칭이었다. 제갈수란이 아환을 상공이라 부르는 것은 처음 아환과 대면하였을때에 사화가 모두 아환과 연을 맺을 것이라는 천기를 따라 그리 부르는 가 싶었다. 호칭에 별 신경을 쓰지 않는 아환이기에 제갈수란의 호칭에 특별한 반응을 일으키지는 않았다.
“...?”
대답을 하지는 않고 아환은 눈짓으로 제갈수란의 입을 쳐다보고는 묵시적인 응답을 하였다.
“세 언니를 다 취하셨나요?”
“...”
약간 눈빛이 변하였지만 아환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여 그 말에 긍정의 표시를 보였다.
“그렇셨군요. 그리 되었으리라 짐작은 하였지만..이제 저만 남았네요.”
살포시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아환을 쳐다보는 제갈수란이었다. 아직 잔재로 남아있는 불씨가 비추어져서인지 양쪽 뺨이 불그스름하게 보였다. 아환과 마주치 두 눈빛에는 어느새 일렁이는 열기가 전해져왔다. 아환의 눈빛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노골적인 유혹이었다. 끈적끈적한 매혹의 그물이 아환을 칭칭 동여매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지금 이 여인, 제갈수란이 원하는 것은 이 자리에서 나와 정사를 갖는 것인가?
사뿐히 제갈수란의 교영이 상하로 길어졌다. 미소를 짓던 얼굴이 위로 올라갔다. 제갈수란은 얼굴에 웃음을 거두지 않은채 일어서서 두어발 내딛었다. 그런 후 자리에 살짝 적당히 살집이 오른 엉덩이를 내려 붙였다. 바로 아환의 옆, 손을 뻗으면 쉽게 어깨를 감쌀 수 있는 위치 였다. 칠척에 다다른 아환의 거대한 몸체에 붙은 오척이 조금 넘은 제갈수란의 모습은 대조를 이루었지만 야생의 동물외엔 그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야심한 적막이 부드러이 아환과 제갈수란을 감싸 안았다.
아환은 수명의 여인들과 관계를 가졌고 꽤 많은 횟수의 성행위를 했었다. 그렇지만 지금처럼 여인이 나서서 노골적인 추파를 던져오 경험은 없었다. 더군다나 상대는 현 정파무림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사화 중의 한명인 제갈수란이 아닌가?
아환은 몸의 각도를 조금 틀어 제갈수란을 똑바로 직시하였다. 코앞에 다가와 있는 제갈수란의 지혜가 담뿍 담겨진 깊은 눈망울이 아환의 약간의 당혹이 담긴 시선을 빨아당겼다. 오똑 솟은 매끈한 콧날과 그 밑의 촉촉하게 젖어 있는 겹쳐진 살점의 새빨간 도발이 아환의 욕정을 끌어올렸다. 불끈 아랫도리에 힘이 들어감에 아환은 큼지막한 손을 들어 제갈수란의 뒷머리를 가볍게 쥐고는 안으로 당겼다.
“음..”
나직한 숨소리가 마주대어있는 제갈수란의 입을 지나서 아환의 입술로 전달되었다. 달짝지근한 숨결이 보드라운 여인의 입을 통하여 아환의 콧속으로 스며들었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지만 서로간의 설육이 뒹굴면서 양쪽의 입속을 유영하였다. 한쪽의 혀가 다른 쪽을 감았다 싶으면 어느새 상황은 반전이 되어 휘감기기를 수차례, 지그시 내려 감어진 두 사람의 눈가가 파르르 떨림을 보였다.
“으음..”
가쁜 숨과 함께 약한 신음성이 여인의 입에서 새어나왔다. 살짝 찌푸린 제갈수란의 고운 아미가 고통인지 그와 다른 어떤 감흥인지 모를 기묘하게 일그러진채 안으로 슬쩍 모였다. 거치른 사내의 한 손이 여인의 가슴부위를 옷위로 움켜쥐고 있었다. 커다란 손이 쥐었다 폈다를 반복함에 따라 그에 맞추어 제갈수란의 신음성과 청순한 얼굴의 표정은 시시각각으로 변화를 보였다. 때로는 고통에 못이기는 것처럼 아랫입술을 잘근 깨물다가 곧 입을 살짝 벌리고는 뜨거운 숨을 내뱉었다. 귓가에 와닿은 아환의 거친 숨소리가 제갈수란의 욕망을 부채질하였다.
검붉은 아환의 혀놀림이 제갈수란의 귓바퀴를 어루만지다 싶더니 귀의 골을 따라 서서히 이동을 함에 따라 제갈수란은 몸을 움찔거렸다. 간지러우면서도 그 정체를 알수 없는 기이한 감각이 스물스물 전신에 번져나갔다. 소름이 돋는 것일까? 온몸의 털이 하나하나 가닥가닥 곤두서는 느낌은 아환의 혀가 제갈수란의 귓속을 파고 들 때 그 절정에 달하였다. 몸에 힘이 쭈욱 빠지고 정신이 아득해졌다. 자신이 빠르게 내쉬는 숨결조차 인지가 되지 않았다. 늘어뜨린 양손에 축축하게 땀이 고였다. 쉴새 없이 주먹을 쥐었다 폈다. 혼란스러운 감각은 아환의 다른 한 손이 움직이면서 제갈수란의 옷고름을 풀어 내리는 것을 감지할 여력이 없었다.
한손으로 제갈수란을 감싸 안은채 입으로는 제갈수란의 얼굴 곳곳을 자극하면서 다른 한 손을 이용하여 아환은 제갈수란의 옷을 벗기었다. 옷고름이 풀어 헤쳐지고 연한 분홍빛을 띄는 내고가 그 수줍은 빛깔을 드러내었다. 불룩 돌출되어 있는 탄력있는 젖가슴이 수려한 장식이 되어 있는 내고를 통하여 그 윤곽을 은근히 보여주었다. 잘 여물어져 있는 스무살의 여체, 그 첨단의 상징인 유방이 한꺼풀 벗겨진 옷가지를 통하여 그 모양새를 나타내었다.
“하아..하아..”
열정어린 입김은 그러한 상황을 전혀 모르는 듯 바쁘게 토해내어지고 아환의 손놀림은 더욱 속도가 붙었다. 쉴새 없이 제갈수란의 목덜미와 귓가, 눈주위를 맴도는 아환의 설육과는 별개로 아환의 손길은 제갈수란의 상의를 완전히 벗기어 내고 아래로 떨어뜨린 다음 내고의 끈을 끌러 여체에게서 작은 조각을 끄집어내었다.
툭..
아환의 손에 잠시 머물던 연분홍의 내고가 바닥으로 아무렇게나 날려진 후 그 속에 감추어졌던 내밀한 속살이 은색의 달빛에 부끄러이 고개를 내밀었다.
유백색의 두 설봉. 마치 눈이 내린 설원에 솟아있는 두 봉우리인 마냥 유백색의 두 융기가 적나라하게 그 자태를 드러내었다. 조금 작다 싶지만 그러기에 제갈수란과 더 어울리는 소담스러운 두 유방이 달빛에 환하게 반사되었다. 작은 살덩이이기에 그 위에 매달려 있는 짙은 자주빛의 유실 둘은 아환이 만났던 그 어느 여인보다 조금 컸지만 연한 색깔의 작은 젖가슴에 대조를 이루어 강한 매력을 자아내었다.
때마침 불어오는 서늘한 바람은 맨살이 외부에 노출된 제갈수란의 여린 피부를 자극하여 미미하게 진동을 만들었고 한 여름이었지만 까닭을 알수 없는 추위에 제갈수란은 슬그머니 손을 올려 훤하게 드러난 두 융기를 감싸안았다.
아환은 제갈수란의 유방에서 손을 떼고는 양팔로 제갈수란을 껴안았다. 커다란 아환의 체구에 파묻히듯이 제갈수란의 작은 동체가 잠겨들어가고 그 상태로 아환은 몸을 앞으로 기울여 제갈수란을 덮어갔다.
“으음..”
묵중한 남자의 체중이 제갈수란의 갸녀린 교구에 실어졌다. 등에 작은 자갈과 여러 잡초들의 배기는 듯한 감촉도 지금 이순간의 제갈수란에게는 감지되지 않았다. 오로지 사내의 땀내음이 베인 체취와 맞닿은 사내의 무게가 제갈수란의 온 신경을 뒤덮고 있기 때문이었다. 물흐르듯 자연스러운 동작으로 제갈수란의 두 팔이 아환의 목을 감쌌다. 오들오들 떨고 있는 여체의 진동이 가느다란 팔을 통하여 아환의 목덜미로 전해져 왔다.
아환의 손이 아래로 보내어진다 싶더니 제갈수란의 경장 하의 허리춤에 머물렀다. 손가락을 몇번 꼬물거렸다 싶은데 이내 세류요를 조이고 있던 팽팽한 요대가 끌러지고 아환의 손에 걸린 바짓자락은 느릿하게 제갈수란의 발밑으로 내려갔다. 그러면서 두 세공한 조각 같은 뽀얀 피부의 매끄러운 다리가 모습을 보이고 한점 티끌 없이 길게 뻗어 내려간 교태를 자랑하였다. 그 두 다리가 만나고 갈라지는 곳, 작은 천조각하나가 여체의 몸에 유일하게 걸쳐져 환한 월광에 남김없이 노출되는 여인의 마지막을 가리고 있었다.
보드랍고 탄력있는 제갈수란의 복부가 아환의 손끝에 만져졌다. 거칠한 굳은 살이 자뜩 배겨있는 아환의 손 마디마디에 곱디 고운 비단결 같은 감촉이 느껴졌다. 근육으로 뭉쳐진 자신의 몸과는 다른 뼈마디가 없고 단련된 근육하나 없어 보이는 솜털같이 포근한 여인의 맨몸이 전달하는 감각은 맹렬한 아랫도리의 팽창을 일으켰고 아환은 잔뜩 성이나 있는 육봉이 바지를 뚫고 나올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두툼한 남자의 손이 조그마한, 최후로 남아 있는 천조가리로 침입을 하였다. 슬쩍 손가락을 밀어 넣어 틈을 만들고는 조금씩 조금씩 손을 집어넣었다. 한치 한치 손가락이 고의 속을 침범함에 따라 접해 있는 여체의 두 팔에 힘이 점점 가해지고 발가벗은 여체는 힘껏 자신의 몸을 아환에게 밀어붙였다. 안타까운 신음성일까? 무엇을 잔뜩 갈구하는 교성이 도톰히 물기오른 빨간 입술을 벌리고 더운 숨결과 함께 흘러나왔다.
사내의 손이 천천히 진행을 하는 동안 느껴져야 할 것, 까칠 까칠한 감촉을 만나지 못한채 계속 나아가다가 급격히 떨어지는 단애를 만났다. 언제부터인지 습한 기운이 감돌고 있는 갈라진 틈이 손끝에 감지되었다. 오밀조밀하게 주름잡힌 여린 속살이 느껴졌다.
툭..
굵은 손바닥과 손목을 두께를 이기지 못하고 끊어지는 소리와 함께 아환의 손을 죄고 있던 압력이 순간 사라졌다. 그러는 가운데 계속 움직이는 아환의 손놀림이 미끄러져 내리는 작은 천조각이 살짝 벌어진 가랑이 밑으로 흘러내렸다. 체격에 걸맞게 사내의 손은 무척이나 커서 여인의 비처를 다 덮은 상태에서 손가락의 근육을 움직였다.
사내가 옷을 벗기 위하여 손을 떼고 몸을 일으키자 그제서야 은빛 월광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여체의 곳곳을 환하게 비추었다. 그러자 완전히 그 모양을 나타내는 여인, 사화 중의 하나 제갈수란의 비소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미세한 꿈틀임을 보이며 부끄러운 속살을 남김없이 노출하였다. 신기하게도 제갈수란의 비처는 맨둥맨둥한 맨살이었다. 전혀 털오라기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거의 눈에 잘 뜨이지 않을 정도의 솜털만이 보송보송하게 나있어 아예 무모(無毛)인 어린 여자아이의 그곳을 보듯 갈리진 구릉의 윤곽을 감춤없이 보여주었다.
멈칫..
막 상의를 벗어 뒤로 던지는 동작을 취하던 아환의 행동이 일순간에 정지되었다. 부릅뜨여진 그의 눈에 반들반들한 여체의 음부가 새겨졌다. 그러면서 그의 이성을 지배하던 욕정이 거짓말처럼 사그러들었다. 아환의 뇌리에 떠오르는 것은 다름아닌 그의 모친인 진청청의 비처, 그것도 여러 사내의 양물이 출입하는 능욕의 현장에서 음수들의 체액으로 흥건히 젖어있던 진청청의 아랫도리였다. 절대로 잊혀지지 않는 그 상황, 떠올리기 싫지만 잊어서는 안될 그 당시의 기억이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린채 발가벗은 몸을 아환의 눈앞에 숨김없이 드러낸 제갈수란과 겹쳐지면서 아환은 하던 동작을 채 잇지 못하고 그 자세 그대로 얼어붙어 있었다. 그런 아환의 안면은 씰룩거리며 표정을 일그러뜨렸다.
차가운 이성이 되돌아왔다. 거세게 치밀어오르던 욕망의 기운과 진청청의 치욕적인 모습이 되살아나면서 솟구쳐 오르던 분노를 삭이고 아환은 상의를 다시 집어들었다. 순간적인 일이라 미처 현 상황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제갈수란은 아직 얼굴을 가린채 아리따운 나체 상태로 누워있었다. 크게 숨을 내쉬고 아래에 흩어진 옷가지를 잡아 제갈수란의 나신을 가려주려던 아환은 문득 기이한 느낌에 신경을 곤두세웠다.
낯설었다. 이곳이 아환이 와본적이 없던 곳이라 익숙하지 않은 풍경과 지세를 보여줌은 당연하지만 그와는 성격이 다른 어색함이 감지되었다. 어려서부터 떠돌아다닌 그인지라 외진 지형따위는 그에게 낯설음을 가져다 줄 까닭이 없었다. 그럼에도 아환은 지금 무엇인가가 맞지 않음을 알고는 그것이 무엇인가에 신경을 곤두세웠다. 얼마 있지 않아 아환은 그가 알고 있던 야산과는 다른 그 무엇을 알아챘다.
침묵. 이상하게도 묘한 침묵이 아환과 제갈수란을 휩싸고 있던 것이었다. 얼마전까지 제갈수란의 몸위에서 가쁘게 숨울 내쉴때까지 눈치채지 못하였지만 냉철한 이성이 돌아오자 그의 예민한 감각에 어색한 상황이 가져오는 낯설음이 전달되었던 것이었다. 아환이 제갈수란과 붙어있기 전만해도 그는 풀벌레 소리와 여러 짐승들의 울부짖음을 들었었다. 허나 지금은 먼곳에서 아스라히 들려오는 짐승들의 소리는 들려오지만 근방에서는 그 어떠한 자연적인 소리도 들을 수 없었다. 이는 곧 그 풀벌레나 기타 야생의 동물들이 경계심을 갖는 그 어떠한 것이 주변에 있다는 것을 의미하였다.
휘리릿..휘릿..
아환이 막 옷가지를 제갈수란의 몸에 덮어줄 때 바람을 가르는 듯한 소리와 함께 달이 있다고 해도 어두움에 덮혀 있는 곳에서 육안으로 관측하기 어려운 물체가 날아들었다.
“조심하시오!”
아환이 제갈수란을 안고는 바닥을 뒹굴었다. 소리나 경기를 짐작할 때 범상치 않은 암기나 화살 같았다. 그러면서 옷가지로 가렸다고는 하나 아직 옷을 입지 않은 상태라 쪼개놓은 박 같은 탐스러운 여인의 둔부가 작은 흙이 조금 묻은 채 환히 드러났다. 잔뜩 긴장된 상태에서 다음 동작을 기다리다가 갑자기 옷가지가 자신의 몸을 뒤덮더니 아환이 자신의 몸을 끌어안고 뒹굴자 영문을 몰라 막 무어라 말을 하려던 제갈수란은 조금전까지 자신이 누워있던 곳에 작렬하는 기성을 듣고는 가볍게 안색이 변했다.
“누구신가요?”
침착한 음성으로 제갈수란이 바닥에 박힌 화살이 날아온 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물음을 던쳤다. 바닥에 박힌 화살을 그 깃만 남긴채 깊숙히 땅에 박혔다. 기물로 쏘아 낸 화살인듯 싶었다. 당혹스러운 상황이었으나 곧 침착을 되찾고는 아환의 몸에 등을 기댄채 옷가지로 맨몸을 가린채로 제갈수란을 눈을 반짝였다. 숲속에서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제갈수란은 다시금 목소리를 높여 질문을 하였다.
“어느 분께서 소녀를 뵙고 싶으신가요?”
눈을 예의 수풀을 주시하면서 재빨리 윗도리를 걸치는 제갈수란은 비록 한꺼풀의 옷가지지만 몸이 어느 정도 가려졌다 싶은지 살짝 무릎을 굽혀 바닥에 놓여있는 자신의 짐보퉁이를 잡으려 하였다. 그 짐에는 아마 제갈세가의 이름을 천하에 울리게 한 비도가 있으리라.
“핫핫핫! 과연 천하의 가녀답게 미인이시구료. 이렇듯 아리따운 분을 이런 한적한 곳에서 오붓하게 뵙게 되니 이는 아마 소생이 삼생의 공덕을 쌓은 덕분이 아니겠소. 핫핫하!”
낭랑한 웃음소리와 함께 아환과 제갈수란의 시선이 집중되어 있던 곳에서 몇몇의 인영이 사뿐히 몸을 날려 모습을 드러내었다. 한결같이 검은 옷을 입고 얼굴에는 마찬가지로 검은색의 복면을 하고 있었다. 오직 얼굴에 밖으로 보이는 것은 두 눈뿐. 하나같이 번쩍이는 안광을 빛내고 있어 예사 고수들이 아님을 단적으로 보여주었다. 정확한 인원의 수는 여덟.
“이런 외진 곳에 무슨 일로 이 많은 분들이 모이신거죠? 설마 소녀를 보기 위해 이렇듯 모이신 것인가요?”
“하하! 어찌 그리 잘 아시오. 우리들은 평소에 무림을 진동하는 미명을 가진 제갈소저를 뵙고 싶었는데 오늘 이런 기회가 되니 얼마나 좋은 일이오?”
“호오..그러신가요? 그렇다면 소녀도 여러분들의 영준한 풍모를 뵈는 영광을 주시겠어요?”
“물론 그러고 싶지만 우리들이 워낙 추한 모습인지라 이렇게 얼굴을 가릴수 밖에 없음을 양해해주시오.”
“사람의 외모가 어찌 옥석을 구분하는데 잣대가 되겠어요. 소녀는 여러 영웅들께서 그 기개와 사내다움을 보여주시는 것에 큰 기쁨을 갖겠네요.”
“그래도 제갈소저의 영롱한 봉목을 더럽히는 것 같아 소생들은 그 분부를 따르지 못하겠소이다.”
“그러시군요. 그렇다면 이제 저를 보았으니 목적은 다 이루신건가요? 그럼 이만 돌아가시겠어요?”
말을 매끄럽게 이어가면서 제갈수란은 여유있게 말을 받아쳤다. 당연히 그들이 원하는 것은 그게 아님은 삼척동자라도 잘 알리라.
“흐흐흐. 이렇게 좋은 곳에서 제갈소저를 뵈었는데 어찌 그냥 갈 수 있겠소. 지금부터 대화를 시작해서 서로간에 우의를 다지고..”
“어이! 못난이들!”
능글 능글하면서 농을 지껄이는 사내들의 수작이 계속되려는 찰나 그 말을 중간에 아환이 끊었다.
“그냥 애초에 하려던 대로 하지. 괜히 쓸데없는 말장난으로 시간을 보낼필요 있나? 악당은 악당다워야지. 자! 검이든지 칼이든지 뽑으라고. 그게 목적아냐? 못난이들!”
귀찮다는 듯 아환이 고개를 흔들면서 주절이자 여러 사내들의 눈에 금새 살광이 번뜩였다. 애초 그들의 목적은 여기 이 둘을 죽이는 것이리라. 그래서 화살을 쏘아 보내고 곧이어 등장하면서도 조금의 여유를 잃지 않은 것이 만반의 준비를 마치고 모습을 나타낸 것이라 여겨졌다. 사내들의 손에는 작은 단궁이 들려져 있었다. 은은한 붉은 기운을 띄고 있는 것이 보물로 보였다.
복면의 사내들은 단궁을 품에 갈무리하면서 허리춤에서 일제히 검을 뽑아들었다.
“크흣흣. 명을 재촉하는 구나. 주환!”
“내 이름을 어떻게 아는 거지?”
“그야 다 아는 수가 있다.”
“장궁이 말해주던가?”
“알 필요 없다.”
“그렇다면...”
아환이 말을 막 내뱉으려다 중도에 끊자 복면사내들의 눈가에 의아함과 호기심이 일어났다. 이 주환이라는 자가 무슨 말을 하려다 그만두는 것일까?
“그렇다면 뭐냐?”
“이 것!”
아환이 발밑에 놓여있는 자신의 패도의 손잡이 부분을 강하게 걷어찼다. 칼이 놓여진 일직선상에 복면의 사내들이 있어 아환은 도를 걷어차면서 바로 그 뒤를 질주해 들어갔다.
“허엇!”
아환의 다음 말을 기다리다 갑자기 시커멓고 커다란 물체가 쏜살같이 날아오자 헛바람을 들이키고는 미처 피할 생각을 하지 못하고 맨앞의 사내가 검을 가로로 휘둘러 도를 쳐내려 하였다. 채 방비가 된 상태가 아니었지만 정련된 동작을 보이는 것이 꽤 수련을 쌓은 무사인듯 보였다.
깡..
“우웃..”
칼을 쳐내었지만 그 칼의 무게와 그 기세에 맨앞의 복면인이 신음을 떨치면서 몇걸음 뒤로 물러섰다. 보검으로 보이는 복면의 장검은 아환의 칼을 쳐내면서 별 훼손이 없었다.
빙글 빙글 회전을 하면서 튕겨나오는 거도가 아환의 손에 잡힌다 싶더니 아환의 손이 크게 가로로 휘둘러졌다. 이번에는 단지 무게나 경력뿐 아닌 내기를 주입시킨지라 도기를 일으키면서 거도가 가로로 휘둘러졌다.
‘건곤의 붕(崩)’
다행히 지금의 대치 상태는 아환이 포위가 된 형태가 아닌 아환과 여덟의 복면이 마주보는 상태라 아환은 팔성의 공력을 기울여 첫 초식부터 강공으로 나섰다. 아환의 도에 실린 거대한 압력이 물밀듯이 복면의 사내들에게 밀려들어갔다.
여덟의 사내들은 처음에 선두의 사내가 아환의 도를 튕기면서 밀려났지만 곧 자세를 바로잡고 공세를 취하려 하였었는데 아환의 선공이 이어지자 신중하게 공력을 일으켜서 짓쳐들어오는 기세를 마주쳤다.
여덟의 사내가 일제히 검을 휘둘렀다. 똑 같은 초식. 검끝에서 은색의 실같이 가느다란 검기가 이어진다 싶더니 층층히 겹을 이루어 하나의 벽을 이루어내었다. 비록 사화지연에서 남궁비가 보인 검막에는 미치지 못하였지만 둥그런 여덟의 검기로 이루어진 테두리는 하나로 융합되는 듯이 서로 부딪히지 않고 하나로 겹쳐져서 달빛에 반사되는 은으로 이루어진 투명한 망사를 씌어 놓은 모양이 되었다.
카카카캉!
“우욱..”
“커억..”
“으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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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는 시간이 여의치 않을 것 같습니다. 짬이 되면 하나 더 올릴께요.
지난 번 올린 고금육천은 달마를 포함하여 여섯입니다. 그래서 달마 앞에 ‘-‘를 집어 넣었는데..
하나 더! 원래 장삼풍의 역사속의 등장시점은 1247년생 입니다. 실제로는 검후의 나이에 열몇살 많지요. 그래서 설정상 그 보다 한 백년전에 태어난 것으로 하였으니 참고하시길..
푸념- 왜 야설에 무협 요소를 가미했는지..설정이 넘 까다로워요. T.T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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