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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소설-내가 만드는 이야기

[창작] 수라기(獸羅記) 54번째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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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228 회 작성일 23-12-21 19:07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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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스름한 어둠이 걷히고 한여름이라 밤이 길지 않아 이제 얼마 있지 않아 동이 터올 무렵 선라현의 객잔, 선라객전 뒤편에 마련되어 있는 별채에서는 대략 열명 정도의 인원이 모여서 둥근 제법 잘 만들어진 원탁을 사이에 두고 앉아 있었다. 모두들 입을 다물고 있었다. 그런 중인들의 앞, 원탁의 한 가운데에는 찻잔을 담아 놓은 다기(茶器)들과 함께 놓여진 고풍스러운 장식품들이 보였다.
아환, 남궁비등의 일행들은 조금 전 산을 내려와서 사화지연에 참석하기 위하여 제갈수란과 악서령, 석영등이 묵었던 객실에 다시금 모여 있었다. 지금 이 방은 사화 중의 하나인 제갈수란의 객실과 연결된 곳으로 사람들은 혁사락의 죽음을 목격한 장소에서 급히 몸을 빼내어 마을로 내려온 것이었다. 그 후 일행은 제갈수란의 제안으로 차후의 대책을 논의하기 위하여 모두 한자리에 모였다.
“이제부터 어찌할 것인가에 대하여 의논하기로 하죠.’
아무래도 제갈수란이 모임을 제의한 것이니만큼 제갈수란이 나서서 중이들에게 문제제기를 하였다. 천진한 듯한 얼굴이지만 깇은 눈에는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무궁무진한 지혜가 넘실대는 것 같았다. 일반적으로 미인들은 그 외모로 인하여 머리가 나쁠 것이라는 선입견을 갖지 쉬우나 제갈수란은 사화에 끼인 타 재녀들과 마찬가지로 통속적인 관념으로만 판단할 수 없는 그 무엇이 있었다.
“일단 빨리 이 곳 선라현을 뜨는 것이 급선무요.”
백리석이 다소 상기된 안색으로 다급히 말을 꺼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유명사신 혁사락이라는 인물은 무림에 갑자기 등장하여 수없는 살명을 뿌려댄 사람이었다. 그런 그가 천고의 기연을 얻어 고강한 마공을 터득했다고 보는 무림인들이 많았다. 알려진 바에 의하면 그는 호남성의 한 유생의 후손이라 했다. 그러다 기물을 얻어 마공을 익힌 후 살행을 했다고 강호인들은 풍문으로 알고 있었다. 그 혁사락의 품에서 나온 두루마리라면 마공비서(魔功秘書)이거나 아니면 그 무예가 숨겨진 비밀의 장소를 나타내는 장보도일 확률이 높았다. 따라서 여기 모인 중인들은 기연을 얻기 위하여 흥분된 상태였다.
“이 형산을 벗어나는 것만이 우선은 아닌 것 같소.”
이 곳까지 오는 동안 줄곧 얼굴을 굳히고 있던 장궁이 신중한 태도로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였다.
“현재 이 곳, 형산은 형산파의 권역이오. 그리고 그들은 조금전까지만 해도 혁사락과 계속 접전을 벌이고 있었고 혁사락을 추적하고 있었소. 어쩌면 우리들이 혁사락이 죽은 곳에서 머물렀던 것을 지금쯤은 파악하고 있을지도 모르오. 이럴때 섣불리 행동을 하는 것은 타초경사의 우를 범하는 것일 수도 있소. 게다가 여기에는 형산뿐만 아니라 무당과 곤륜의 고수들도 초빙되어 와 있소. 내 의견은 잠시나마 이 곳에 머무르며 예의 상황을 주시한후 그 이후에 행동을 결정하는 것이 낫다고 사료되오.”
“장형의 말이 맞소. 아무리 형산이라고 해도 우리들 역시 그리 만만치 않은 명가의 후손들이오.”
힐끗 곁눈질로 아환을 한번 살피고는 말을 계속 이어가는 강문직, 적극적으로 장궁의 말에 동조를 하였다.
“이 곳이 형산이고 형산파의 위세가 쟁쟁하다 하더라도 우리에게 함부로 할 수는 없을 것이오. 일정 시간 지켜본 후 행보를 하는 것이 옳다고 보오.”
“하지만 기물을 얻었을때에는 빨리 움직여야 합니다. 혹시라도 이 일이 밖으로 새어나간다고 하면 우리는 중원의 무인들에게 표적이 될꺼요.”
“그것은 우리들만 입을 다물고 있으면 되질 않겠소? 설마 백리형이 밖으로 그 기밀을 누설하시지는 않으시겠지요.”
“강형! 나를 어찌 보고 그런 말을 한단 말이오.”
백리석이 이죽거리는 듯한 강문직의 말에 기분이 상했는지 음성이 격하여졌다.
“진정들하시고..남궁소협의 의견을 어떠신지요?”
제갈수란이 분위기가 이상하게 돌아가자 슬쩍 말을 돌리고는 남궁비에게 의견을 묻는다. 그러자 백리석과 강문직, 장궁의 행동이 일순 멈춰지고 그들은 남궁비에게 눈을 돌렸다. 아무래도 이 곳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인물은 다름아닌 남궁비, 만검창룡이었다.
“글쎄요. 소생이 뭐라 해야 할지..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 소유주에게 물어보아야 하지 않겠소?”
남궁비가 제갈수란의 말에 잠시 생각을 하더니, 현현히 신광이 빛나는 눈을 들어 그 초점의 끝을 아환에게 살며시 돌렸다. 그러자 일제히 중인들의 시선이 아환에게 향해졌다. 아환은 자신에게 모든 이들의 눈길이 모아졌음에도 불구하고 앉은 자리에서 미동도 하지 않고 눈을 감은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한참을 기다려도 아환에게서 원하는 답을 찾지 못하자 성질이 급한 백리석은 재차 되물었다.
“주형, 어쩌실 꺼요. 어서 빨리 이 곳 형산을 떠야 하지 않겠소?”
“주형, 아니오. 경솔한 행동은 천고의 누를 범하기 쉽소. 차분히 정리를 한다음 앞으로의 일을 결정합시다.”
백리석과 장궁, 강문직은 아환에게 자신의 의견을 거듭 주장하였다.
“웃기는군.”
그때 들려오는 나직한 소리, 아리따운 새가 지저귀는 것 같은 맑고 청아한 음성이었지만 그 속에서 풍겨져 나오는 색깔은 조소(嘲笑)였다. 안색이 순식간에 굳어지는 백리석과 장궁 등은 험한 빛을 눈에서 내뿜으며 말이 들려온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왜 소유자는 아무 말도 없는데 나서서 배놔라 감놔라 하는 이유가 뭐지? 마치 그 두루마리가 자기 것처럼 말하는데 그 자신감은 어디에서 나오는 거지?”
예의 그 싸늘하면서도 냉소적인 음성, 모인 일행들의 눈이 한 곳, 석영에게로 모여졌다. 거침없는 말투와 자신의 의사를 직설적으로 표현하는 것으로 유명한 석영의 면모가 확연히 드러났다.
“....”
“....”
중인들이 무어라 답할 말을 찾지 못하고 혈장미 석영의 입만 주시하고 있을 때 석영의 말이 이어졌다.
“여기있는 그 누구도 주소협의 품속에 있는 기물을 달라고 할 권리는 없어. 강호의 관례상 보물은 소유하는 자의 것이지. 더군다나 혁사락이 직접 자신의 손으로 건네주었으니 그것을 가지고 왈가왈부하는 것은 어불성설이지.”
“그렇다면 석소저는 그 두루마리를 포기하겠다는 거요?”
“포기? 언제 그게 내 것이었나? 그것도 아니면 강제로 주소협에게서 뺏자는 말인가? 아! 사양하겠어. 괜히 연도 닿지 않는 물건 때문에 목숨을 잃고 싶지는 않거든..”
“그렇다면 다른 사람의 일에도 간섭을 하지 않겠다는 것이오?”
“당연하지. 내가 왜.. 혹시 당신들 주소협에게서 기물을 빼앗을려는 것인가?”
상황이 점점 묘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탐욕의 빛을 잃지 않는 백리석과 장궁, 강문직 등이 사화를 제외한 주위의 다른 이들과 합세를 하여 주소협에게서 보물을 강탈하려는 모양이었다.
“그대가 원하는 것이 이 두루마리인가?”
침묵을 지키고 있던 아환이 장내의 분위기가 험악하게 흐르자 품에서 두루마리 하나를 꺼내었다. 검게 말라 붙어있는 핏자국이 아직 두루마리 표면을 군데 군데 덮고 있어 중인들에게 아까 그 피웅덩이와 그 속에 담겨있는 수 많은 시체들을 떠올리게 하였다.
“그렇소. 당신은 그 두루마리를 어찌할 거요?”
강문직이 한발 앞으로 나와서 아환에게 질문을 던졌다. 한손을 검을 찬 허리춤에 가 있어 언제라도 출수를 할 수 있게 만반의 준비를 한 자세로 긴장된 음성으로 아환의 다음말을 요구하였다.
“그대들이 원하는 것이 이 두루마리인가?”
“...”
정곡을 찔렸지만 그렇다고 대답할 수는 없었다. 자신들은 결국 명문 정파라 불리우는 후지기수들이었고 자칫 유명사신의 유물을 얻었다고 소문이 나기라도 한다면 작게는 개인의 참변을 불러올 수 있지만 크게는 사문의 멸문까지 일어날 수 있었다. 과거 무림의 역사에 비추어 볼 때 기진이보를 얻은 후 그 소문을 막지 못하여 탐욕스러운 수많은 무림인에게 협공을 받아 멸문, 몰락한 명문대파들이 부지기수였다. 자칫하면 그 기물은 얻지 못함보다 훨씬 좋지 않은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
“우리는 천하의 살마 유명사신의 유물들이 다른 사마외도의 손에 넘어가는 것을 막기 위하여 그리 하는 것이요.”
“장형의 말이 옳소. 또다른 마두가 강호에 출몰한다면 또 피바람이 불터, 백도의 무사로 그것을 어찌 그냥 지켜볼 수 있겠소.”
모인 사람들 중 그 말을 곧이 곧대로 들을 이는 없었다. 백도의 무사라고? 저 탐욕에 이글거리는 눈빛이 이들의 목적이 무엇임을 분명하게 보여주었다. 허나 그들의 마음을 잃지 못하는 사람도 있었는지 ‘툭’ 탁자위에 물체가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여기 있소.”
아환이 별 감정이 실리지 않은 음성으로 짧게 내뱉는다.
흠칫, 중인들은 놀라서 아환을 쳐다 보았다. 그들의 눈에 어린 복잡한 감정, 어이없음과 당황, 당혹, 기쁨, 희열, 의혹 등 복합적인 감정들이 조합된 눈빛으로 아환을 쳐다보던 이들의 시선이 자연스레 탁자위에 내던져진 두루마리로 향해졌다.
“제갈소저, 두루마리를 펼치시오.”
거구의 아환을 올려다보는 작은 키의 제갈수란의 눈빛이 잠시 흔들렸다. 아주 일순간의 일이라 눈빛을 마주친 아환외에는 그 누구도 알아챌 수 없는 흔들림. 제갈수란은 아무 말 없이 손을 뻗어 두루마리를 잡아갔다.
“멈추시오.”
다급한 음성, 장궁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상황이 흘러가자 자신도 모르게 제갈수란의 동작을 제지하였다.
“무슨 일인가요. 장소협?”
“그게..이렇게 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하오.”
“이렇게 하다니요?”
“많은 이목이 있는 곳에서 공개를 한다는 것은 극히 위험이 따르는 일이라 생각한다는 말이오.”
“그렇다면 장소협의 의견은 어떤 것인가요?”
“아까도 말했듯이 상황을 지켜보면서 행동을 결정하는 것이..”
“그게 저 두루마리를 보고 보지 않고와 차이가 있다는 말인가요?”
“그건...”
“소생 강모는 장형의 의견이 옳다고 생각하오. 섣불리 두루마리를 열기 보다는 예의 상황을 주시하는 것이 합당하다 사려되오.”
“참내..아! 물건의 소유주가 펼치자는 데 왠 잡소리? 란매, 빨리 펼쳐.”
“잠깐! 석소저, 말씀이 너무 심하지 않소?”
“또 뭐야? 왜 그대가 끼어드는 것이지?”
백리석이 가만히 있다가 장궁을 편들고 나섰다. 아까와는 태도를 돌변하여 갑자기 태도를 바꾸어 장궁의 쪽에 섰다. 그 말을 듣고는 석영의 고운 봉목이 가볍게 찌푸려지고 눈가에 노기가 맴돌았다.
“그래서 어쩌겠다는 거지?”
계속되는 평어투의 말에 사내들은 자존심에 손상을 입었지만 상대는 무림사화 중의 일인이자 제일 고강한 무예를 지니고 있는 여걸로 남궁비에 못지 않는 무위를 지니고 있다는 혈장미, 쉽사리 분노를 표출할 상대가 아니었다.
“아니..언행에 주의를 해달라는 말입니다.”
“풋!”
실소를 터뜨리는 혈장미, 눈도 돌리지 않고 제갈수란에게 말을 건네었다.
“란매, 빨리 두루마리를 열지?”
“에잇! 보자보자 하니 정말 너무 하는 군. 사화면 다야! 어디 나랑 한번 싸워봐!”
날카로운 음성이 장내를 흔들었다. 그러면서 이어지는 금속성.
챙!
시퍼런 예기를 흩뿌리는 두자 반 가량의 얇은 검신을 가진 보검이 뽑혀져 현현한 금속광채를 공간에 채우고 있었다.
“나, 갈염청은 더 이상 네년들 사화의 잘난척 하는 것을 볼 수 없어. 오늘 그 콧대를 꺾어주마. 혈장미! 검을 뽑아라.”
“오호! 그으래..”
슈릉..
석영의 연검이 석영의 허리춤에서 휘청거리듯 그 검신이 흔들리며 은회색의 예광을 뿜어내었다. 가벼운 손짓에, 이어진 운기로 인하여 검에 주입된 진기는 검을 세웠다.
쮸웅..
자연스레 두 여걸은 탁자에서 발걸음을 옮겨 안실의 한쪽 옆으로 움직였다. 다행인지는 몰라도 객실의 별채는 꽤 규모가 있어 원탁을 벗어나도 상당한 규모의 공간이 있었다.
“받아랏!”
비단이 찢어지듯한 교성을 내뱉으면서 갈염청이라 말하던 여인이 검을 내질러 석영을 찔러 왔다. 검에 담겨 있는 흉흉한 살기가 순식간에 석영을 짓쳐들어갔다.
“어림없다! 회류형(回流形)”
석영의 연검이 호선을 그으며 갈염청의 직선으로 뻗어오는 보검의 측면을 비스듬히 눌러서 돌려 기세를 누그러뜨렸다.
“섬전세(閃電勢)!”
미처 검을 거두지 못한 갈염청의 목을 향해 곧장 찔러가는 석영의 검, 그 빠르기는 감히 범인이 감당하지 못할 정도의 속도였다. 이에 갈염청의 안색이 하얗게 질려가고 눈을 질끈 감아 앞으로 찾아올 죽음을 기다릴 때 차가운 금속성이 들려왔다.
차앙..
어느새 빼어들었는지 운학일룡 장궁이 회색빛이 감도는 검을 세워 갈염청의 목앞을 막고 있었고 그 검신에 석영의 검이 멈추어져 있었다. 검의 폭이라 해봤자 불과 세치가 채 되지 않는 두께, 그 것으로 석영의 검을 세운 것이었다.
“이런 살초까지 쓰는 것은 과하지 않소. 석소저.”
“누가 먼저 살초를 펼쳤는데 그런 말을 하지?”
“왜 나셨어요. 그깟 초식 나도 막을 수 있어요. 어서 비켜요. 장공자. 내 오늘 저 혈장미 석영의 허실을 낱낱이 파헤칠 테니까..”
갈염청은 조금전 자신이 지옥의 문턱에서 되돌아 온것도 모르는지 표독스러운 안광을 빛내면서 앞을 가로막은 장궁을 밀쳐내려 하였다. 그러자 장궁이 난감한 기색으로 남궁비를 쳐다보면서 도움을 요청하였다.
“남궁형. 소생이 석소저의 검에 눌려 움직이지 못하겠으니 남궁형이 갈소저를 좀 맡아 주시구려.”
“알았소.”
갈염청이 신형을 날려 계속 석영을 공격하려 하자 남궁비가 살짝 손을 뻗쳐 갈염청의 공세를 비껴가게 만들었다. 그러면서 가볍게 갈염청의 앞을 가로막고는 태극권으로 전면의 방위를 점거하여 갈염청의 진로를 막았다.
“안정을 되찾으시오. 갈소저.”
“안정이라니..이렇게 모욕을 받고 어찌 안정을 찾으라 말씀하시는 거죠?”
갈염청이 새파랗게 빛나는 눈동자로 석영을 노려보면서 길길이 날뛰었다. 일단 갈염청을 막았으나 남궁비는 어떻게 이 곤경을 버텨야 하나 하는 눈빛을 담고 고개를 돌려 장궁을 쳐다 보았다. 그 순간 남궁비는 석영의 검을 막고 있는 한 손외에 뒤쪽으로 돌려진 장궁의 손에 기이한 쇠붙이로된 원통형의 물체를 보고는 다급히 소리쳤다.
“광폭사정(狂爆死釘), 위험하오! 석소저!”
퍼펑..
급박한 남궁비의 소리가 갈염청에 대한 조소를 띄고 있던 석영의 귀에 들리기도 전에 장궁의 손에 들려 있던 원통형의 괴물체는 순식간에 장궁의 앞으로 향한다 싶더니 산산히 터져나가면서 수십, 수백 줄기의 검은빛을 앞으로 쏘아내었다.
“허엇!”
순간적으로 일으킨 검막으로 쇄도해 들어오는 암기를 막기에는 부족하였다. 더군다나 그 광폭사정은 무림에서도 보물이자 마물로 취급받는 이물임에야..
“으윽..”
대부분이 검막에 퉁겨나갔지만 몇몇의 쇠못이 석영의 탄탄하지만 가녀린 교구를 꿰뚫고 들어 갔다. 헛바람 새듯한 신음을 흘리면서 주춤 주춤 몇걸음 물러나던 석영이 팔과 다리 가슴과 배부위에서 붉은 피를 쏟으면서 무너지듯 쓰러졌다.
퍼펑..
연이은 폭발음이 터져나왔다. 이번에는 남궁비의 등쪽에서 터져나왔다. 본능적으로 고개를 숙이고 몸을 틀면서 검을 뒤로 세차게 휘둘러대는 남궁비, 충분한 준비가 되지 못한 상태라 그 역시 수발의 쇠못이 자신의 몸에 틀어박히는 것을 막을 수는 없었다. 단지 그 남궁비의 상체에 작렬했던 쇠못들은 무엇인가에 가로막혀 옷을 채 뚫지 못하고 뒤로 퉁겨져 나갔다.
“크윽..”
쾌속히 앞으로 신형을 날리며 검을 떨쳐낸 남궁비지만 근거리에서 터져나온 광폭사정은 남궁비의 검의 방어를 뚫고 팔과 다리 몇군데에 꽂혔다. 그러자 남궁비의 화려한 비단 백의는 금새 붉게 물들여졌다. 고통이 만만치 않아 짙은 검미를 찌푸리며 신음성을 뱉더니 그 상태로 뒤로 물러서 검을 들고 전면을 방비를 하였다. 허나 곧 그의 다리는 후들거리며 떨기 시작하였다.
“독! 독을 묻혔군..”
아찔한 현기증과 함께 진기가 유통되는 혈맥에 장애를 느끼자 가까스로 내기로 독기운이 확산되는 것을 막은후 씹어뱉듯 한자한자 내뱉었다. 그러면서 검봉을 갈염청의 목젖을 향한 방향으로 잡고 금방이라도 출수하려는 품을 잡았다.
“이게 무슨..헛! 설마 당신들도..”
갑작스러운 사태에 깜짝 놀라서 일어나며 외치던 유가형이 미처 말을 끝내지 못하고 헛바람을 들이켰다. 어느새 유가형의 옆으로 다가 왔는지 강문직이 검을 빼어들고는 유가형의 등뒤에 갖다대었다. 비단 유가형뿐이 아니었다. 백리석 역시 언제 뽑았는지 검을 제갈수란의 목부위에 가져다 대었다. 창촐간에 벌어진 일이라 유가형이나 제갈수란이나 미처 방어를 하지 못하고 그들보다 무공이 아래인 둘에게 제압을 당한 것이었다.
그러나 악서령은 아환이 사전에 주지를 준 관계로 원탁에서 뒤로 물러서서 비스듬히 검을 세워 자신의 옆으로 다가온 선우지와 또다른 여인, 진주 언가보의 여식이라 소개한 언가기와 대치를 한 형태였다. 아환은 두루마리를 제갈수란에게 넘기면서 만일의 사태를 대비하라 악서령에게 전음으로 알렸고 악서령은 광폭사정이 터지자 마자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서 뒤로 신형을 날려 자신에게 다가오던 두 여인과 대치국면을 이루었다.
마지막 한 사내, 백리석과 동행하던 백리세가의 인물이라고 말했던 이는 아환의 손에 목을 틀어 잡혀 있었다. 목이 기역자로 뒤로 꺾였고 혀가 입밖으로 길게 빠져나와 있는 것으로 보아 아마 즉사를 한 모양이었다. 그의 손에 비침이 들려 있는 것으로 보아 아환에게 암습을 하려다 제압을 당한 것으로 보였다.
거의 한자 가깝게 차이가 나는 아환이 백리세가의 인물의 목을 잡고 허공에 들고 있는 모습은 전장의 전신(戰神)을 연상하게 했다. 시퍼런 안광을 흩뿌리면서 아환은 주위를 둘러 보았다. 석영은 쓰러져 의식을 잃었고 그런 그녀의 얼굴이 점점 검은색으로 물들어가는 것으로 보아 독기가 상당부분 침투한 상태로 추측되었다.
“왜 이런 짓을 하는 거죠? 게다가 광폭사정이라니..어찌 백도의 무인들이 그런 행위를 할 수 있단 말인가요? 어서 검을 치우고 뒤로 물러 서세요. 남궁소협과 석영의 상세가 좋지 않아요. 빨리 치료를 하지 않으면 생명이 위험할 수도 있어요.”
“흐흐흐..유가형, 우리가 장난으로 이러는 줄 아나?”
“그게 무슨 말이죠?”
“저 기보를 너희들 칠룡과 사화들이 순순히 차지하게 할 꺼라고 보느냐? 천만의 말씀이다. 저 기보는 우리 흑천이..”
“강문직! 말조심하라.”
“헛! 죄송합니다. 속하의 죄를 용서하십시오. 이년 때문에..이 죽일 계집이 감히 나를 우롱해?”
강문직은 유가형의 의혹에 자신도 모르게 입을 열다가 장궁이 싸늘하게 외치는 것을 보고 안색이 하얗게 질려 장궁에게 사죄를 하고는 그 분노의 화살을 유가형에게 돌렸다.
“흑천? 흑천이라 어떤 단체죠?”
“더 이상 알려 하지 마라. 어차피 네 년놈들은 여기서 죽을테지만..”
강문직이 유가형의 물음에 잔혹한 음성으로 대답을 하고는 검을 그대로 유가형의 등으로 밀어넣으려 손에 힘을 주었다.
그 순간,
“너희들은 다 한 패거리인가?”
뒤로 물러서서 백리세가의 인물의 목을 틀어잡고 있던 아환이 입을 열었다. 제갈수란의 목에 검을 대고 있는 백리석이 왠지 눈을 굴리며 장내의 상황을 예의 주시하고 있는 것이 꺼림직하게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아니다. 저 백리가는 우리와 상관없는 놈이다. 앗! 저놈이!”
장궁이 아환의 말에 순순히 대답을 하면서 제갈수란쪽을 보다가 다급한 음성을 토해내었다. 어느새 제갈수란의 손에서 백리석이 두루마리를 빼앗아 들고 품에 넣을려고 하는 것이 장궁의 눈에 잡혔기 때문이었다.
“그렇게는 안된다! 이 놈!”
장궁이 한 걸음 내딛으며 일직선으로 검을 찔러 백리석의 손을 겨냥하였다. 그러자 막 품에 손을 집어넣으려는 백리석은 흠칫하며 두루마리를 잡고 있던 손을 들어 올리고는 몸을 회전시켜 장궁의 검을 다른 손에 들려 있는 검으로 쳐내었다.
첫 공세가 막히자 장궁은 쇄도하던 그 기세로 연달아 수검을 쳐내어 백리석을 공격하였다. 주로 검이 향하는 곳은 백리석이 두루마리를 잡고 있는 손에 집중되었다. 백리석은 흉흉한 기세가 짓쳐들어오는 것을 보고는 뒤로 몸을 틀어 검을 피해내었다. 그러면서도 두루마리를 들고 있는 손은 뒤로 하여 검의 영향권을 벗어났다.
창창창..
계속되는 금속성, 백리석과 장궁의 검이 수십차례 부딪히며 날카로운 금속성을 안실에 퍼져나가게 하였다.
백리석은 몇차례 손을 나누어 보니 장궁이란 자의 무공이 자신보다 한 수 위인 것을 깨달았다. 백리석은 더 이상 이곳에 머무르다가는 결코 좋은 꼴을 보지 못할 것을 알고는 전면을 향해 검을 휘둘러 장궁의 진로를 일단 막은후 재빨리 땅을 박차 창문쪽으로 신형을 날렸다.
퍽!
“우욱..”
막 창문을 뚫고 나가려는 백리석의 몸에 커다란 물체가 부딪혀왔다. 검을 들어 그 날아오는 물체를 베었지만 베어진 상태로 날라온 그 물체는 백리석과 충돌하여 백리석을 뒤로 물러서게 하였다. 꽤 무게와 부피가 나가는 물체에 실려진 경력이 상당하여 백리석은 뜻한 바 도주를 하지 못하고 신형을 뒤집어 한쪽 옆으로 내려섰다. 그리고는 검을 세워 연이어 다가올 공격을 대비하였다.
백리석의 움직임이 뚝 멈추었다. 어이가 없는 표정, 무언가 말할 듯 입을 살짝 연 상태로 석상같이 굳은 백리석의 얼굴 부위에 낯설은 것이 보였다. 보랏빛의 어른의 엄지 손가락만한 막대가 백리석의 이마에 붙어있는 것이었다. 흡사 어떤 장신구가 백리석의 이마에 달려 있는 것으로 착각할 정도였다.
“비도! 제갈세가의 무영비도!”
신음처럼 장궁의 입가에서 하나의 무공이 흘러나왔다. 그러면서 장궁이 눈길이 향하는 곳, 갸녀린 손을 살짝 굽혀 백리석을 가리키는 제갈수란이 보였다. 제갈세가의 비전절기 무영비도가 제갈수란의 손에서 펼쳐져서 백리석의 목숨을 앗아간 것이었다. 백리석이 다급하게 나갈려고 해서 그랬는지 미처 제갈수란에게 위해를 주지 않고, 도망치려다 아환과 장궁에게 제지를 당하였고 결국은 제갈수란의 무영비도가 날았다.
“검을 치워요.”
제갈수란이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장궁을 노려보며 말했다. 그와 동시에 백리석에게 다가가 두루마리를 회수하려고 손을 뻗으려고 할 때 그런 그녀의 손보다 빠른 것이 있었다. 다름아닌 아환의 거도였다.
아환이 칼을 뻗어 두루마리에 갖다대었나 싶더니 마치 자석에 붙은 쇠붙이인양 두루마리가 칼에 달라 붙어 아환의 손으로 다시 들어갔다. 아환은 칼에서 두루마리를 떼고는 두루마리의 끈을 잘라 버리고는 두루마리를 펼쳤다.
휘릭..툭..
두루마리가 아래로 쭉 펴지더니 무언가가 그 속에서 툭 떨어졌다. 아환은 손을 그 두루마리에서 떨어진 것, 유지에 쌓인 것을 향해 뻗어 그 것을 들어올렸다. 그러더니 그 유지를 펼쳤다.
“멈춰라!”
다급한 장궁의 제지를 무시하고 아환은 그 유지속의 잘 접어진 서신 같은 것을 들더니 펼쳐 그 내용을 읽기 시작하였다. 그런 아환의 동작이 너무나 태연해서 그런지 누구하나 아환이 하는 것을 방해하지 못하고 멍하니 아환만 쳐다보고 있었다.
이윽고 아환은 두장가량의 빽빽히 글이 써있는 서신을 읽더니 휙 장궁에게 그 서신을 던졌다. 장궁이 잔뜩 손에 내기를 끌어올려서 서신을 받았다. 그러나 장궁의 예상과는 달리 그 서신에는 아무런 경력이 들어있지 않았으며 장궁은 자신의 내공에 오히려 중심을 잃고는 휘청거렸다.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누구하나 웃지 않았다.
장궁은 자세를 잡고 얼른 서신을 펼쳐 그 속의 내용을 확인하였다. 그러더니 얼굴이 확 구겨졌다.
“이 쳐죽일 놈! 이깟 푸념이 적인 글 말고 그 손에 들고 있는 두루마리를 넘겨라!”
“이 것 말인가?”
아환이 두루마리를 빙글 뒤집었다. 뒤집힌 두루마리가 중인들의 시선에 들어오고 모든 이의 눈길이 두루마리에 집중되었다. 두루마리 속에 들어 있는 것은 산수화 한폭이었다. 그것도 꽤 수준급의 명인이 그린 것으로 보이는 그림이었다. 허나, 일반 산수화와 틀린 점이 금새 중인들의 눈에 들어왔다. 음산함이었다. 두루마리 속의 그림은 왠지 모를 음산함과 괴기스러움을 담고 있었다. 그 외에는 다른 아무런 글씨나 문양등은 없었다.
사람들은 안력을 돋구어 그림을 자세히 들여다 보고는 비로소 이 산이 어떤 산인지 깨달을 수 있었다.
“태산! 저 산은 태산이예요.”
제갈수란이 가장 먼저 입을 열었다. 그러자 주위의 사람들도 동조를 하였다. 그림 속의 산수화는 태산의 한 봉우리를 그리고 있었다. 중인들이 그 봉우리가 태산의 어느 봉우리일까 곰곰히 생각하며 안력을 더욱 돋구어 자세히 그림을 살피려고 하는 순간 두루마리에서 불길이 확 솟아 올랐다. 아환이 삼매진화를 일으켜서 두루마리를 태워버린 것이었다.
“이..이런..”
“헛…”
“아니..”
절세의 기보라 할 수 있는 장보도가 순식간에 눈앞에서 잿더미로 화해 사라져 버리자 모인 사람들은 아환이 삼매진화를 일으켰다는 놀라운 무위보다 천고의 기물이 세상에서 없어졌다는 것이 더욱 경악스럽고 황당하여 어이없는 표정으로 아환을 노려 보았다.
“다들 잘 보았으니 별 문제는 없을 것이오. 기억하는 사람들도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있겠지만 머리나쁜 자신을 탓하시오.”
“이..이 천하에 빌어먹을 새끼!”
“이제 더 볼일은 없는 것 같은데 이만 가주시겠소?”
막 흥분과 분노에 떨면서 아환에게 공세를 취하려던 장궁과 강문직은 덤덤한 아환의 말에 순간적으로 노기가 솟구쳤으나 이내 이성을 되찾았다. 그리고는 냉정히 상태를 분석해 보았다. 남궁비와 석영이 쓰러져 있고 유가형은 언가기의 검에 제압을 당해있다. 허나 저쪽에는 아직 제갈수란과 악서령이 건재하고 그 무공의 깊이를 알 수 없는 아환이 있다. 사생결단을 낼려면 낼수도 있겠지만 그러기엔 피해가 너무 크리라 여기어지고 또 뜻한 바 목적은 어느 정도 달성해 내었다.
장궁은 강문직과 언가기, 그리고 일행들에게 눈짓을 보내고는 일제히 몸을 날려 창문을 부수고 밖으로 뛰쳐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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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늦었습니다.
여유를 내기가 쉽지 않네요.
한 페이지 한 페이지를 넘기기가 빠듯한 기분입니다. 사죄의 말씀을 드리고요.
이 판도 야~ 응응응 이 없습니다. 스토리전개상 넘 늘어져서..ㅠ.ㅠ
다 저의 필력이 약하기 때문인듯 싶습니다.
그래서 부록을 올립니다.

좋은 시간, 좋은 순간을 보내십시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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