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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소설-내가 만드는 이야기

[창작] 수라기(獸羅記) 53번째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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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341 회 작성일 23-12-21 17:4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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솨아아아...
우르르릉..꽝!
빗줄기가 점점 더 거세졌다. 간혹 뇌기가 하늘에서 떨어져 일순간 주위를 환하게 밝히곤 하는 이 곳은 중원 오악 중의 하나인 형산, 그 수많은 봉우리들 중 하나에 위치한 자그마한 동굴이었다. 그리 깊지도 그렇다고 넓지도 않은 서넛이 몸을 뉘이면 동굴안의 공간을 메울 정도..
아환은 입가에 닿아있는 부드러운 감촉에서 살며시 자신의 입술을 떼었다. 두툼한 입술에 가려져 있던 적당한 크기의 도톰이 솟은 선홍빛의 입술이 어둠 속에서 희미하게 그 자태를 드러내었다. 입꼬리 부분이 미세하게 떨리는 모양이 잔뜩 긴장을 하고 있음을 역력하게 보여주었다.
그 바로 위 곧은 하얀 길, 인중을 지나면 오똑 솟은 코가 보였다. 날카롭다 할 정도로 앞으로 뻗어있는 콧날밑에서는 가쁘게 바람이 불어 나오고 있었다. 여름이라서 그런가? 상당한 열기를 뿜어내는 숨결이 느껴졌다.
눈가에 주름살이 맺힐 정도로 두눈을 꼭 감은 채 남궁비는 쪼그려 앉은 그 상태로 가늘게 잔떨림을 보이면서 앞으로 다가올 아환을 기다리고 있었다.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만 같은 하이얀 태고의 여체는 생전 처음 경험할 사내의 손길이 닿을 순간이지만 머릿 속이 텅비어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은채 왜 그리 추운지 덜덜 떨리는 몸을 진정시킬 수 없었다.
그러한 여심이 사내에게 전달되었을까? 입술을 뗀후 아무런 후속 동작을 보이지 않은 아환이 마침내 천천히 신형을 움직여서 남궁비에게 다가갔다. 눈을 감고 정신이 아득하다 할지라도 어찌 근거리의 사람이 바짝 가까이 오는 것을 못 느끼랴? 남궁비는 더더욱 눈을 질끈 감으며 앞으로 자신의 육체에 와닿을 남정네를 기다렸다.
스읏..
여인이지만 태생과 성장과정에서 잘 발달된 근육이 잡혀 있는 남궁비의 어깨에 거칠거칠한 사내의 손바닥이 느껴졌다. 뜨거웠다. 마치 불에 달구어진 인두가 여리고 여린 속살을 지져대듯 강렬한 촉감이 아환의 손길이 닿은 자리에서 순식간에 전신으로 퍼져나갔다.
움찔..
더욱 몸을 움추리고 무의식적으로 교구가 뒤로 물러섰다. 아니 물러서려 하였다. 허나, 아환의 손에 어깨를 잡힌지라 단지 백색의 나신만 꿈틀거렸을 뿐이었다. 그러면서 소중한 부위를 가리고 있던 양손을 바싹 끌어당겨서 떨리는 손끝으로 젖가슴과 치부를 가리는 남궁비의 모습은 난데없이 비를 맞아 길을 잃은 어린 새를 연상케 했다.
스슷..
그런 남궁비에게 무언가가 자신의 어깨에 내려 앉는 감각이 들었다. 연신 몸을 움찔거리는 남궁비지만 얼마 되지 않아 그것이 옷가지, 방금 자신이 벗어 놓은 옷가지라는 것을 알았을때엔 아환은 자신의 나체에서 손을 떼고는 저만치 물러서 동굴밖을 쳐다보고 있었다.
“왜...왜..지요?”
나직하면서도 끊임없이 흔들리는 남궁비의 음성이 아환의 귓가에 들어왔다. 어깨를 감싼 옷을 자신도 모르게 끌어당기면서 긴장감과 의혹서린 목소리로 남궁비는 아환에게 물었다. 그러면서도 그 음성에는 실망감과 안도감이 순간적으로 교차하는 것을 남궁비와 아환은 동시에 감지해내었다.
“...”
아환에게서 아무런 답이 없자 남궁비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왜..왜..? 혹, 제가 마음에 들지 않는 건가요?”
아환의 고개가 겨우 알아챌 정도로 살짝 좌우로 움직였다.
“그렇다면..왜?”
“남궁형..아니, 비아. 이렇게 해서 어쩌자는 거지?”
“제가 말씀드렸잖아요. 저에게 자유를 나누어 달라고..”
“이렇게 하면 남궁비, 네게 자유가 전하여지나?”
“그것은..”
“자유? 그게 남이 나누어 준다고 해서 나누어 지는 것일까?”
“...”
“남궁비.”
“....예?”
“지금 네가 하는 행동은 단순한 일탈일 뿐이다.”
“....일탈?”
“네게 짓눌려진 무게가, 그 짐이 너무나 커서 순간적으로 표출된 일상의 파탈일뿐 다른 의미가 없다 생각한다.”
“...”
“네가 지금 나와 교미를 한다고 하여 정말 네가 자유로워질까?”
아환은 다른 말을 쓸수도 있는데 일부러 교미라는 극단적인 단어를 골랐다.
“...”
“그것은 아니라고 본다. 물론, 네 스스로의 의지로 행한 일이라 여기고 얼마 간의 해방감은 느낄 수 있을지도 모르지. 허나, 그로인하여 또다른 구속을 받을 지 모른다는 생각은 해보지 않았나?”
“...생각했었어요.”
“그런데?”
“홀가분할 것 같았어요. 비록 새로운 사슬로 내가 묶을지라도 얼마 간은 눌려있던 것을 벗을 수 있다 생각했었어요.”
“새롭게 너를 묶을 사슬이 지금껏 네가 지어왔던 짐보다 더 크다고 해도 말인가?”
“그것은...”
“말장난이다.”
“....?”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아환을 빤히 쳐다보는 남궁비. 그 시선을 따갑게 느끼면서도 아환은 남궁비의 심연히 빛나는 봉목을 직시하면서 말을 이어갔다.
“적어도 내가 아는, 그리고 내가 생각하는 자유란 그런 것이 아니다.”
“...”
“자유란 의지다. 마음이다. 그것은 다른 사람이 줄 수도, 그렇다고 뺏을 수도 없는 것이다. 볼려하면 볼 수도, 보지 않으려하면 그 존재하는 것 조차 부정할 수 있는 것이 자유란 것이다. 누구가 가지고 있지만 또 그 어느 누구도 완전히 가지지 못하는 것도 자유라는 것이다.”
“....”
계속되는 아환의 말에 슬쩍 아랫입술을 깨물고는 남궁비가 스르르 고개를 숙인다.
“남궁비.”
“예?”
고개를 숙인채 기어들어가는 듯한 소리로 아환에게 대답을 하는 남궁비. 어제까지만해도 보이던 그 당당하던 제왕지기는 온데간데 없고 나약한 여인하나만이 사내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쪼그려 앉아 있을 뿐이었다.
“자유란 네 스스로의 몫이다.”
“...”
아환은 말을 마치고 고개를 숙인채 미동도 하지 않고 있는 남궁비를 보고는 슬쩍 몸을 일으켰다. 빗줄기는 전혀 줄지 앟고 아까와 마찬가지로 내려붓듯이 빗물을 아래로 퍼붓고 있었다. 한동안 잠잠했던 뇌성이 다시금 들리면서 가끔 산중의 풍경을 은빛으로 빛나게 하였다.
잠시 뒤에서 부시럭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마 의복을 다시 갖추어 입는 모양이었다. 얼마의 시간이 흐른 후 아환의 옆에 하얀 옷자락이 나란히 섰다. 아환은 느릿하게 고개를 남궁비쪽으로 돌렸다. 그런 아환의 동공에 긴머리결을 간간히 불어오는 바람에 휘날리며 표표히 서있는 남궁비의 모습이 보였다.
아까 남궁비가 옷을 벗었을때부터 팽창되어 있던 아랫도리는 지금 이 순간 그 극을 달렸다. 기실 아환으로서도 남궁비가 옷을 벗었을 때 욕정이 불같이 일어났었고 남궁비를 취하고 싶었다. 그 고귀한 여체를 마음껏 유린하고 싶었다. 허나, 왠지 모를 감정에 아환은 아래에서 솟구쳐 오르는 욕망을 내리 누르고 남궁비에게 더 이상의 행동을 하지 않았다.
“왜지?”
당연히 원래의 의관을 갖추리라 여기었던 아환은 남궁비가 아직 역용을 하지 않고 여인을 느낄 수 있는 상태로 아환의 옆에 다가가자 의아한 태도를 보였다. 그러한 아환을 남궁비는 몸을 돌려 아환의 정면을 보고 서더니 몸을 굽힌다.
“...”
지금 남궁비는 아환에게 예를 올리고 있었다. 정성껏 무릎을 굽히더니 아환에게 여인들이 사내에게 하는 큰절을 하였다. 한참을 바닥에 몸을 붙이고 있던 남궁비는 서서히 몸을 세운 후 아환을 바라 보면서 입을 열었다.
“이 예는 제가 여인으로서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남자에게 드리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제 스스로의 다짐으로 한 남자에게 귀속됨을 뜻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남궁비는 아환의 앞에 똑바로 서서 멍하니 서 있는 아환을 한동안 쳐다 보았다. 그러더니 몸을 돌려 바닥에 떨어져 있는 갑의와 목젖의 역할을 한 구슬 등을 짚어들었다. 상의를 끌르더니 갑의를 착용하고 입에 구슬을 물고는 운기를 하였다. 그런 후 얼굴에 손을 가져가서 몇번 매만지니 처음의 남궁비, 그 위용의 만검창룡의 모습을 되찾았다.
“주형, 뭘 그리 빤히 보시오?”
영웅건으로 뒤로 늘어뜨려 있는 머릿결을 묶으며 남궁비가 아환에게 말을 건네었다. 말투나 음색이 어제의 남궁비 그대로였다. 허나, 아직 잠시전의 열정이 스러지지 않았는지 발간 홍조가 은은히 남궁비의 옥용을 물들였다.
“과연..”
“과연..? 뭐요?”
“천하제일 기남아요. 남궁형은..”
“핫핫하..”
호탕하게 웃음을 터뜨리는 남궁비, 그런 그의 눈가에 살짝 맺혀있는 물기는..

며칠 간을 계속될 것 같이 쏟아지던 빗줄기는 언제 그랬냐는 듯 그쳐있었고 흐린 밤하늘이지만 간혹 별빛이 구름사이를 뚫고 산중을 희미하게 비추고 있었다.
아환과 남궁비는 시간이 오래 지체된 관계로 경신술을 발휘하며 일행이 자리를 잡은 곳으로
바쁘게 발을 놀렸다. 한참을 달리던 중 아환의 귓가에 남궁비의 나즈막한, 그러면서도 진중한 음성이 들려왔다.
“주형.”
“왜 그러시오? 남궁형.”
“오대세가를 조심하시오.”
“..무슨 말이오?”
“오대세가, 아니 가면을 쓰고 있는 무리들을 항시 경계하시오.”
“그게..”
아환이 의아한 기색으로 재차 질문을 던지며 아환은 남궁비의 얼굴을 보았다. 그러면서 남궁비의 얼굴이 상당히 굳어있는 것을 보고는 더 이상 질문은 하지 않으며 남궁비와 보조를 맞추며 일행들에게 바삐 달려갔다.

일행들은 그 자리에 없었다. 산중의 시내는 약한 빗줄기에도 순식간에 물이 불어나는 만큼 빗줄기가 거세자 중인들은 급히 다른 곳으로 몸을 피한 모양이었다.
아환과 남궁비가 다시 마을로 내려가야 할지 아니면 사람들을 찾아야할지 망설이고 있을 때 두런 두런 말소리와 함께 일단의 사람들이 다가오는 기척이 들렸다. 아환과 남궁비는 긴장의 끈을 늦추지 않은채 시선을 예의 빛내며 소리가 들려오는 쪽을 응시했다. 가벼운 발놀림이 경신술을 익힌 무림인들로 보였다.
한순간, 흐릿한 별빛에 반사된 선두에선 인물이 드디어 숲속의 나무를 헤치고 아환과 남궁비의 눈에 들어올 때 아환과 남궁비는 긴장을 풀었다.
“남궁형, 어디 계셨었소? 한참을 찾았잖소.”
“두분이 같이 계시는 구료. 어느 쪽에 계셨던 거요? 보아하니 별로 비를 맞은 것 같지는 않은데..”
아까 헤어진 일행들이었다. 사화를 비롯한 남아 있던 이들이 아환과 남궁비가 자리를 떠난 상태에서 비가 와서 자리를 피한 후 비가 그치자 둘을 찾으려 했던 모양이었다.
“허허..죄송하게 되었소이다. 갑자기 비를 만나서..”
남궁비가 너털 웃으면서 사과를 한후 중인들은 자리를 다시 고쳐 앉고는 이런 저런 말을 나누며 수마를 잠시 잊은채 대화를 나누었다. 주로 내용이라 해봤자 산세나 빗줄기가 세다는 둥 일상적인 이야기들 뿐..
두런 두런 말을 나누던 이들이 하나 둘 쉴 요량으로 자리를 떴다. 아까까지 내린 비로 인하여 바닥이 진창이라 조심 조심 자리를 골라잡은 사람들은 슬그머니 눈을 감고는 휴식을 취하였다. 아환 역시 이들의 대화가 따분한지라 한 구석으로 나 앉아서 눈을 붙이고 천천히 진기를 순환시키는 중이었다. 운기조식과는 다른 경맥의 수련이라 할까? 그 원류를 알지 못하는 무상심결은 고절한 심공이어서 아환이 가부좌를 취하지 않은 상태라도 운공이 가능하였지만 굳이 위험을 자초하고 싶지는 않아 아환은 양의심공으로 얼마 간의 감각을 열어둔채 명상에 접어들었다.

반짝!
아환의 눈이 뜨여졌다. 아환은 슬쩍 주위를 둘러 보았다. 그러자 조금의 시간이 흐른 후 남궁비와 유가형을 비롯한 사화의 몸이 움찔하거나 눈이 열리는 것이 아환에게 감지되었다. 아마 아환이 느낀 것을 이들 역시 알아내었다. 한참 후 사내들 중 하나도 눈치를 채고는 다른 이들에게 경고성을 전달하였다.
창...투둑..챙챙..
병장기 부딪히는 소리, 나뭇가지 밟는 발자국 소리가 사람들의 귓전을 두드렸다. 그러면서 간간히 들려 오는 비명이 고요한 적막을 스러뜨리며 아환등에게 전달되어 왔다. 그 소리가 점점 커지고 선명해지는 것으로 보아 이 쪽 근처로 향하는 지 중인들은 더욱 또렷이 여러 소리들을 들을 수 있었다.
“가봅시다!”
백리세가의 소가주라는 백리석이 검을 움켜쥐고는 벌떡 일어서서 사람들을 쳐다보면서 소리쳤다. 그러자 운학일룡 장궁과 강문직등이 안광을 빛내면서 백리석의 행동에 동조를 취하였다. 남궁비는 묵시적으로 중인들의 우두머리 격이 되어 있어 백리석과 장궁등의 시선에 바닥에 엉덩이를 더 붙이고 앉아 있기 곤란하였다.
“혹시 사마외도의 행패면 어쩝니까? 백도의 무사라면 당연히 정의를 수호하여야 하는 법! 어서 저쪽으로 가십시다.”
백리석이 영웅심에 도취되어 목청을 높여도 아환은 별로 내키지 않았다. 다른 이들이 싸우건 말건 특별히 관심을 갖고 싶지도 않았고 쓸데 없이 타인들의 분쟁에 휘말리는 것도 귀찮았다. 백리석의 얼굴에 쓰여져있는 영웅이 되고 싶지도 않았다. 허나 남궁비과 유가형, 제갈수란이 자리를 털고 일어서는 것을 보고는 내심 투덜거리면서도 거구를 일으켰다.
아환이 일어나자 자연스레 악서령과 석영이 교구를 일으켰고 이내 중인들은 병장기가 부딪히는 곳으로 신형을 날렸다.

중인들이 그쪽으로 가까이 다가설수록 점점 소리가 잦아들었다. 조금전까지만 해도 수없이 많은 금속성이 부딪히는 소리가 들렸었지만 거의 마무리가 되어 가는지 이제는 어쩌다 한번씩 챙챙 거릴 뿐 아까 같은 격렬한 파열음은 들리지 않았다.
“끄어...”
일행들이 수풀을 헤치고 소리의 근원지에 몸을 나타냈을 때 목에서 가래가 끓는 듯한 괴성이 들리고는 장내의 전투가 마무리 되었다. 중인들은 격전지였던 이 곳에서 풍겨오는 비릿한 피냄새를 금방 느낄 수 있었다.
시체..시체들..
어림잡아 스물은 됨직한 사람들이 여기 저기 쓰러져 있었다. 죽은 이들이야 이미 지각이 없어 별다른 느낌이 없겠지만 눈을 돌려 그 주검들을 보던 남궁비등은 하나같이 안색을 급변시켰다.
처참하였다. 너무나도 처참한 광경이었다. 어느 하나 온전히 보존되어 있는 시신이 없었다. 팔다리가 떨어져 나간 이들을 비롯하여 머리가 통째로 날아가 버린 이들도 있었고 무거운 흉기로 짓눌린듯 머리가 으깨져 있는 이들도 보였다. 그러한 시신들의 공통점은 단 하나, 청색이라 짐작되는 옷을 입었다는 것이다. 아마 이들은 형산파의 제자들이리라. 양패구상을 하였는지 일견해서 살아 있는 사람의 모습이 보이질 않았다.
“꾸웩..”
“우웁..”
급기야 선우지를 비롯한 여인 두어명이 구역질을 하면서 고개를 돌렸다. 코끝을 찌르는 짙은 혈향에 남자들도 속이 울렁거릴텐데 평소 곱게 자란 명문가의 여식들은 약한 비위로 더 이상 참지 못하였다. 그나마 사화는 얼굴빛만 창백히 변하였을뿐 장내를 세심히 살피는 것이 달랐다. 유가형은 의가의 후예고 석영은 수차례 전투를 하여서 그렇다고 해도 악서령과 제갈수란의 변화는 의외였으나 미처 다른 이들은 이를 인지하지 못하였다.
“저기, 저기 살아 있는 사람이 있소.”
남궁비의 입에서 낭랑한 음성이 터져나왔다. 중인들은 남궁비의 손끝이 향하는 방향을 보고는 비로소 한 핏덩이가 고여있는 핏물과 진흙탕에서 미미하게 꿈틀이는 것을 알아챌 수 있었다. 그 사람은 다른 시체에 비해 유난히 붉은 피를 뒤짚어 쓰고 있었다. 사람들은 한쪽 팔이 잘려져 있고 온몸이 병기로 인하여 갈갈이 찢거진 그가 살아 있는 것을 알았지만 홍건히 피바다 속에 누워있는 그에게 접근을 하려 하지 않았다.
그때 아환이 성큼 한발 앞으로 나섰다. 아환의 눈에 그의 몸을 감고 있는 쇠사슬이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아환은 그 순간 이 살아도 살아 있는 것이 아닌 고깃덩어리가 유명사신 혁사락이라는 것을 알고는 무심결에 한발을 앞으로 내딛었다.
그러다 멈칫, 아환은 발을 멈추고는 잠시 무언가를 생각하는듯 하다가 몇발짝 떼어 꿈틀거리는 핏덩이 근처로 다가갔다. 남궁비를 비롯한 일행들은 그런 그를 누구도 잡지 않고는 아환이 하는 모양을 긴장된 시선으로 쳐다 보았다.
아환은 바닥에서 간신히 진동을 하는 반주검, 혁사락의 등이라 짐작되는 부위에 장심을 갖다대었다. 기분나쁜 끈적한 액체의 감촉이 전해져왔지만 개의치 않고 아환은 혁사략의 몸에 진기를 불어넣었다. 원래 타인의 진기를 불어넣는 다는 것은 위험천만한 일이었다. 각자 내공의 성질이 다르고 그 크기가 틀리다. 경맥의 강약이 틀리고 혈도의 위치 역시 반드시 사람마다 일치하지는 않았다. 허나 아환이 익히고 있는 무상심결은 그러한 한계를 초월할 정도의 원류(原類)라 할 수 있는 정심한 진기이기에 얼마의 시간도 되지 않아 중인들은 혁사락의 몸이 조금씩 일어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혁사락은 눈을 희미하게 뜨고 자신에게 진기를 불어 넣어준 인물이 누구인지 보려 안력을 집중시켰다. 끊어질 듯 끊어질 듯 간신히 진기가 이어졌다. 핏물로 눈이 가려져 있어 얼른 사물이 식별이 되지 않았지만 혁사략은 몇번 눈을 깜빡거린 후 마침내 아환의 얼굴을 식별할 수 있었다.
“자...네..였.군..”
“예. 선배.”
“..왜..나..를”
말을 알아듣기는 힘들어도 그 뜻은 혁사락의 눈빛으로 몸짓으로 충분히 아환에게 전달되었다.
“술 한잔 값입니다.”
아환은 자신이 말을 한 후 순간 혁사락이 웃었다 생각했다. 입꼬리가 살짝 흔들려 보이는 것이 꼭 웃음같아 보였다. 아환은 장심의 진기를 더욱 돋구었다.
“우욱..”
한덩이 핏뭉치를 토해낸 혁사락은 눈을 돌려 주위를 한번 스윽 둘러 보더니 희미하게 나마 눈에 광채를 뿌린 후 힘겹게 손을 들었다. 그러다 그 쪽 손이 없는 것을 보자 피식 웃음을 짓더니 반대쪽 손을 들어 올렸다. 그리곤 품에 손을 집어 넣었다. 그런 후 꺼내어진 혁사락의 손에 들려 있는 것은 고풍스러운 두루마리 하나.
“이...이..이것..”
간신히 아환의 손에 전달되어 진 것은 보기에도 귀하게 보이는 은은한 서기가 피어 오르는 비단 양피 두루마리였다.
“이게 무슨..”
막 말을 하려는 아환의 귀에 힘겹게 가닥가닥 끊어져서 들려오는 전음성.
‘운남성..운봉산..구봉에..’
그 누구도 눈치를 채지 못하게 쥐어짜듯 전신의 힘을 다 쏟아 아환에게 전음을 보낸후 더 이상 버틸 여력이 없는지 혁사략은 마지막 한마디를 내뱉고는 부르르 몸을 떨었다.
“기..검(氣劍)..형산..나조.”
혁사락의 몸이 축 늘어졌다. 한많은 삶, 풍요로운 집안의 태생이었던 혁사락은 재물이 화를 불러와 믿었던 친구들로부터 배신을 당하여 멸문을 당하고 그 원란을 갚기 위하여 절치부심, 금지된 마공을 익혔으나 결국 자연으로 그 육체를 회귀시키고는 스러져 버린 비운의 인물이었다.
멍하니 혁사락에게서 전해 받은 두루마리를 쥐고 있는 아환과 일행들은 순간적으로 벌어진 뜻밖의 상황에 일순 정신을 차리지 못하였다. 곧, 정신을 가다듬은 그들의 눈이 가지각색으로 빛났다.
혁사락이 아환에게 전하여준 두루마리는 틀림없는 강호의 기보로 추정되었다. 풍운에 혁사락이 기연을 얻어 마공절예를 얻었다 했다. 그렇다면 저 두루마리는 그 기연과 관계되어 있는 것이리라 짐작한 중인들의 눈은 호기심과 탐욕으로 불타올랐다. 그러면서도 섣불리 나설 수 없는 자리이니 만큼 서로의 눈치를 보아 가며 아환의 손에 들려 있는 두루마리를 힐끗거렸다.
“빨리 이 자리를 벗어나요. 금방 형산파의 고수들이 들이닥칠 거예요.”
그러한 사람들의 주위를 환기시킨 것은 다름 아닌 제갈수란이었다. 타고난 재녀답게 순간적인 임기응변이 뛰어나 빨리 생각을 정리하고는 중인들에게 외쳤다. 그러자 일행들의 눈이 마주치고 바삐 곧 신형을 날려 생명을 잃은 인체의 잔해가 널부러진 이 곳에서 하나 둘 떠나갔다. 일행 중 누군가 스치면서 나뭇가지에 손을 갖다대었다. 그 순간 소리없이 나뭇가지에 새겨지는 기이한 문양과 숫자 육(六).

사람들은 전력을 다하여 경신술을 발휘하였다. 비교적 무공이 떨어지는 여인들도 사안의 중요성을 깨달은 듯 젖먹던 힘까지 다 발휘하여 산을 내려갔다. 그리 높지 않은 봉우리인 관계로 얼마 되지 않아 중인들은 선라객잔이 위치한 마을의 어귀까지 다달을 수 있었다. 맨뒤에서 뒤의 기척과 추적하는 존재들을 감지하려는 남궁비는 마을에 도착할 때까지 예의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뒤를 따르는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아직 해가 뜨기 전이라 행인들이 보이지 않았지만 모두들 기척을 죽인 후 조용히 선라객잔 앞으로 다가섰다.


.............. ......................... ......................... .......................... ............................. .....................

글이 길지 않습니다. 요즈음 회사에서 눈치가 보여 오랫동안 글을 쓰기가..
남궁비와 응응응 을 기대하셨던 분들께는 죄송..
기필코 다음편은 응응응을..가능하면 하드하게..

바쁘게 하루를 살아 가는 사람들을 보면 부럽고 제 자신이 한심해집니다.
남들이 좋아하는 것은 다 할려구 하는 저이기에..
아무래도 포트리스등의 게임을 접든지 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시간이 쪼들려서..
노력을 최대한 기울여 다음 편은 빨리 올릴 예정입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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