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 수라기(獸羅記) 48번째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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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탁의 한 자리, 장대한 체격의 사내가 원독이 가득한 시선을 한곳으로 하여 자신보다 조금 체구가 더 큰 사내를 노려 보고 있었다. 꽉 다물어진 입술이 씰룩이고 원탁위에 올려져 있는 두 주먹이 불끈 힘이 잔뜩 들어가 있는 것으로 보아 금방이라도 노기가 폭발할 지경의 황보두균은 태연히 술잔을 기울이고 있는 아환의 행태가 이가 갈렸다.
남궁비와 수가위, 그리고 다른 이들의 제지로 인하여 접전은 일단락 되었다. 천궁의 귀인과 여러 영웅들이 모여 연회를 즐기는 자리이므로 분투를 자제해 달라는 말에 오히려 그 들앞에서 수치를 당한 것에 대한 분노가 더더욱 들끓는지라 뿌리치고 아환에게 달려들고 싶었지만 자리가 자리인지라 섣불리 행동을 할 수도 없어 수긍을 하고 가슴팍에 발자국을 새긴 채 자리에 무너지듯 주저 앉았다.
그러한 황보두균의 심정을 알기라도 하는 듯 남궁비가 일어나서 호기롭게 건배를 외쳤다.
“자! 오늘은 즐거운 날입니다. 모두들 잔을 들고 사화지연을 건배합시다.”
“와..건배!”
“건배!”
중인들은 자신의 탁자에 놓인 잔을 일제히 집어들고 남궁비의 선창에 맞추어 잔을 들어 건배를 외쳤다. 그러한 사람들의 눈가나 기타 얼굴 표정에는 조금 전의 결투가 싱겁게 끝난 것에 대한 아쉬움과 새로운 인물에 대한 호기심등과 사화를 비롯한 여인들의 미모에 대한 감탄 및 욕정등이 뒤엉킨 가지각색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아까 원탁에 앉아 있던 사람들의 위치도 자연스럽게 새로 조정이 되었다. 남궁비와 악서령 사이에 아환이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리고 석영은 악서령의 옆에 있다가 자리를 바꾸어 유가형과 제갈수란의 사이에 앉고 제갈수란의 옆에 은아려가 그리고 한자리를 건너서 수가위가 앉고 또 사이에 자리를 두고 황보두균이 앉았다. 그리고 다시 그 방향으로 몇 개의 의자를 지나 악서령이 다시금 위치하고..
태양혈이 불룩 솟은 외가의 무사를 경시하던 대부분 군중들은 경이로운 눈빛으로 아환과 남궁비가 자리한 상석쪽을 바라 보았다. 처음 보았을 때 근육질의 몸에 태양혈, 그리고 굳은 살이 잔뜩 배겨있는 손등으로 하찮은 외공을 익힌 그야말로 삼류 나부랭이 무사인줄만 알았던 아환이 황보두균에 우세를 보이자 중인들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칠룡이라면 거의 화경에 근접한 무위를 지닌 자들로 알려져 있었다. 그렇다면 저자는 외가로 화경에 올랐다는 말인가?
무림 역사상 외공을 극성으로 수련하여 절정에 오른 고수가 흔치 않았기에 아환의 출현은 이 곳 선라봉에 모인 제반 무인들에게 하나의 사건으로 받아들여졌다.
“주형, 한잔 받으시오.”
남궁비가 옆에서 백색의 장갑을 낀 손을 들어 아환에게 술을 권하였다. 그러자 아환이 잔을 들어 남궁비가 따르는 술을 묵묵히 받았다. 남궁비는 아환의 잔이 차자 술병을 내려 놓고는 자신의 잔을 들어 아환을 향하고는 단숨에 털어 넣었다.
“주형, 혹시 주형은 소림의 제자시오?”
아환이 눈을 남궁비의 눈에 맞추었다. 영롱하게 빛나는 눈빛이 아환의 동공에 새겨졌다.
“아니오.”
“그럼 무당이시오?”
“아니오만, 왜 그리 생각하시오?”
“주형의 무예가 극강의 외가계열 같기도 하고 유유히 흐르는 기세가 무당의 태극권같기도 하고..아까 태극 방위를 밟은 보법은 소제도 처음 보는 것이라 사뭇 주형의 사문이 궁금합니다. 또 주형 같은 젋은 고수를 길러낼 능력이 있는 강호의 세력이 그리 많지도 않아 더욱 호기심이 생기는 군요. 혹 사승을 말씀해 주시지 않으시겠습니까?”
“미안하오.”
“아! 괜찮습니다. 신경쓰지 마십시오.”
“당신이 만검창룡이구료. 과연 과연..”
남궁비가 친근하게 말을 붙이며 접근을 하였다. 아무런 사심이 보이지 않아 아환으로서도 그리 거부할 게 없어 아환 역시 순순히 말을 받아 주었다. 그러면서 아환은 남궁비를 나름대로 찬찬히 살펴보았다. 정말 말그대로 명실상부한 후지기수의 최고봉이라는 세간의 평가가 이해가 갔다. 어디 한점 흐트러짐이 없는 절제된 자세라든지 전신에 흐르는 신기에 깊고 가라앉아 있는 안광, 그리고 제왕지기의 소유자 답게 타인의 자연스레 압도하는 위엄등, 칠룡중의 수장이라 평함을 받기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었다.
“과연 무엇이지요?”
“아니오. 남궁형을 보니 칠룡의 수좌 라는 세간의 말이 부족하다는 것을 깨달았소.”
“핫핫하. 그런 과찬의 말씀을..그렇다면 주형께서는 저보다 훨씬 높은 평가를 받으셔야 할텐데요. 아니 그렇습니까?”
“…”
대꾸를 하지 않고 아환은 술잔을 잡았다. 어느새 아환의 술잔이 비어 있는 것을 본 남궁비 또 잔을 다시 채운다. 그리곤 자신의 잔에 술을 따르고 아환에게 술을 권하였다.
“기분 좋은 날입니다. 주형을 뵙게 된 것이 무엇보다 기쁩니다.”
아환이 남궁비를 빤히 쳐다 보았다. 잘생긴 얼굴이었다. 남자답게 잘생겼다기 보다는 아름다운 여인이라고 해도 믿어질 정도의 아름다운 얼굴이었다. 목에 돌출된 것만 없었어도 여자라 칭할 정도의 미모로 생각되었다. 허나 큰키와 단단히 잡힌 육체는 그를 무림의 호남아로 칭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아환이 자신을 뚫어지게 쳐다 보자 남궁비는 당황을 하였다. 자신의 아환을 만나서 반가움을 표시하는데 이 사내는 아무런 감정도 없는 듯한 눈으로 속속들이 자신을 들여다 보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런 남궁비의 눈가에 보일락 말락한 붉은 기운이 살짝 생겼다. 게다가 방금의 접전으로 인하여서인지 아환의 체향이 맡아졌다.
‘혹시..이 사내가..이 사내가..’
“남궁형은 참 잘생겼구려.”
밑도 끝도 없는 아환의 말에 남궁비는 멍해졌다. 한참을 자신을 직시하더니 갑자기 잘생겼다니. 물론 미남이라던지 잘생겼다던지 임풍옥수, 반안, 송옥 등의 찬사를 들은 적이 어디 한두번이 아니라지만 바로 옆에 앉아 있는 아환의 입에서 불쑥 튀어 나온 칭찬에 남궁비는 할말을 잃었다.
“예..? 예..”
그리고는 아환은 술병을 들더니 입으로 가져가 술을 들이켰다. 아환의 말의 진의를 파악하려고 잠시 고민하던 남궁비는 곧 머리를 가볍게 흔들더니 앞의 잔을 들어 입에 털어 넣었다. 빈잔, 아무 것도 들어 있지 않은 빈잔이 남궁비의 입에 닿았다.
아환이 술병을 들더니 남궁비의 잔을 채워 주었다.
움찔.
남궁비가 아환이 따르는 술줄기에 잔을 들은 장갑을 낀 손을 미미하게 떨었다. 금방 평정을 회복하고는 남궁비는 입으로 술을 가져갔다. 단숨에 한잔을 들이키고는 탁자에 잔을 내려 놓았다. 평소에 술을 즐겨한다는 말대로 상당한 주당인지 거침없이 술을 마셨다. 아환 역시 좋아하는 술이었다. 그러면서 서로가 잔을 비우면 따르고 마시고 하며 금새 몇병의 술을 비웠다.
그런 남궁비와 아환을 힐끔 힐끔 쳐다보는 대부분의 사람들 중에 불안한 눈빛으로 그 쪽을 바라보는 그린 듯한 아름다운 눈 한쌍이 있었다. 유가형, 난화성녀는 무언가 걱정스럽다는 뜻을 눈에 가득 담고 남궁비를 쳐다 보았다.
‘저런..남궁공자가 저렇게 술을 마신 적이 없었는데..무슨 일이지? 평소처럼 진기를 운용하지도 않고 술을 들다니..저러다가 취할지도 모르겠는걸?’
유가형이 알기에 남궁비는 세간에 알려진 그런 주당이 아니었다. 비록 그렇게 가깝게 지내진 않았지만 그래도 정혼한 관계라 유가형은 남궁비와 몇차례 자리를 함께 한 적이 있었다. 항상 여럿이 모인 자리, 사화지연 같은 후지기수들과 함께 하는 자리여서 남궁비가 호탕하게 술을 마시는 것을 수차례 보았다. 그때마다 남궁비는 남들이 모르게 마시는 족족 내공으로 주기를 날려 버렸고 전혀 취하지 않은 상태에서 자리를 파하였다. 그런 남궁비가 지금은 일체의 내기를 쓰지 않은 상태로 술을 마시면서 눈가에 미세하게나마 취기가 보이는 것이었다. 아환은 그러한 남궁비의 모습에 호감이 생겨 잔을 들어 한잔 한잔 술을 따르고 또 따라 주었다.
그때였다.
“호화사의 무위를 보여주시오.”
“호화사는 무전(武展)을 하시오.”
“와!..와! 호화사!”
누군가 불쑥 한마디를 내던지자 군중들이 합세하여 한목소리로 호화사의 무예를 보기를 희망하며 호화사를 외쳐 대었다. 관례대로 사화지연의 호화사는 자신의 절기를 사람들앞에서 시전하여 흥을 돋구는 순서가 있었다. 일반적으로 호화사는 사화가 지정하는 그 누구라도 될 수 있지만 여태까지 전례가 고절한 무위를 지닌 칠룡이나 아니면 그에 버금가는 명가의 후예였기에 호화사가 펼치는 무공은 한결같이 절예가 아닌 것이 없었다. 칠룡의 수좌라 평가받는 남궁비야 말할 것도 없고 주환도 조금 전 황보두균에 비해 우월한 경지를 보였으니 중인들의 기대는 상당하였다.
계속되는 군중들의 요구 뿐만 아니라 사화나 천궁의 귀인, 그리고 같은 칠룡들도 기대에 찬 눈빛을 빛내기에 남궁비는 더 이상 망설이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자 다시금 일어나는 환호성.
“와! 남궁비!”
“만검창룡이다!”
“제왕검을 보여주시오.”
기실 남궁세가의 검예는 창궁비연검과 만상검으로 대표된다. 남궁비가 익힌 무공도 그 것이었다. 허나, 천왕신맥이라는 제왕지기를 타고 태어난 남궁비는 자연스레 무예를 펼칠 때 타인을 압도하는 제왕지기를 발산하면서 무예 자체가 무거운 위엄을 뿌리기에 남궁비의 검술을 제왕검이라 칭하기도 하였다.
남궁비는 신형을 일으키더니 천천히 원탁을 벗어나 몇발자국 걸어 중인들의 앞으로 나아갔다. 그러자 물살이 갈라지듯 좌우로 사람들이 길을 터주었고 공간을 만들어 주었다. 군웅들로 둘러싸인 오장여의 공간이 금새 만들어졌다.
그 가운데에 선 남궁비, 천천히 호흡을 가다듬고 진기를 끌어올리기 시작하였다. 그러자 그의 몸에서 뭉클 뭉클 솟아나는 기세, 제왕지기였다. 군왕이 현신하였는 것처럼 남궁비의 호리호리한 신형에서 강한 패기가 솟아오르자 수십의 사람들이 그의 기도에 압도되어 저도 모르게 뒷걸음을 쳤다.
남궁비는 허리춤으로 손을 가져가더니 수수한 백광을 뿌리는 고아한 검집에서 자신의 병기인 설룡검(雪龍劍)을 빼어들었다. 그리 크지 않은 일반 크기의 중검, 평소 그의 성품을 대변하는지 순백의 검신에 별다른 장식이 없는 그렇지만 고결한 기품을 보이는 보검이었다.
남궁비가 가볍게 우수로 손잡이를 쥐고 좌수로 검신에 손가락 두개를 갖다댄 상태에서 검을 자신의 눈높이와 수평으로 맞추더니 심호흡을 하였다.
검이 완만한 곡선을 그리며 느릿느릿 크게 휘둘러져 검의 끝이 앞의 전방을 가릴 때 즈음 검의 끝이 부르르 떨리는 가 싶더니 검의 움직임이 급격히 빨라졌다. 차츰차츰 속도를 내는 설룡검이 남궁비의 전신에 백색의 잔영을 남기면서 섬전같이 움직이고 있었다.
“우주만상”
낭랑한 일갈이 터져 나왔다.
환상일까? 남궁비의 검이 움직임에 따라 계속되어 남겨진 잔상이 그 수가 계속 늘어나고 겹쳐지고 또 겹쳐져서 마침내 온 주위가 남궁비의 뚜렷한 검의 형상들로 뒤덮였다 싶었을 때 일순 검형의 잔영은 사라지고 뿌연 은백색의 빛을 내는 투명한 막이 남궁비를 감싸고 있는듯이 나타났다.
“검막!”
중인들 중의 누구 하나의 입에서 신음처럼 한 어휘가 새어나왔다. 그 말을 듣지 않아도 그 것이 무엇인지 이미 아는 사람들과 처음 보는 기현상에 눈을 부릅뜬 사람들, 그리고 내심 칠룡을 경시하던 기타 다른 영웅들의 안색이 창백하게 변했을 때 남궁비의 저신을 휘감았던 빛을 내는 은백의 무형의 막은 마치 신기루인 것처럼 스러져 사라지고 그 가운데 검을 갈무리하고 호흡을 가다듬고 있는 남궁비의 모습이 다시 보였다.
“검막! 검막이라니..”
“남궁비! 남궁비! 우와와와!!”
“만검창룡, 과연 무림 제일이다!”
그제서야 사람들이 정신이 돌아왔는지 환호성을 지르며 금방의 남궁비의 검예에 대한 탄성을 터뜨리며 소리를 외쳤다.
검막(劍幕).
말그대로 검기가 중첩이 되어 하나의 장벽을 이룬 것 처럼 보이는 것을 말함으로 환검이나 산검계열의 검공의 극치로 알려져 있다. 일반적으로 검에 어느 정도 깨달음이 있고 정순한 내기가 뒷받침이 되면 수련을 통하여 검에서 무형의 기운이 뻗쳐진다고 한다. 그것을 세칭 검기라 칭하였다. 그러한 검기를 계속 일정하게 중첩을 시켜서 마침내 검기의 경력이 물셀틈 없이 한 공간을 감싸게 되면 검기의 막이 이루어 지는데 이것을 검막이라고 한다. 강기나 검강과는 별개의 개념으로 여기어 지지만 일반적으로 환검에서 검강에 이르기 전의 단계라 알려져 있다.
군중들의 환호소리가 계속되었다. 그들이 호화사를 외치고 호화사의 무예를 보려고 목이 빠져라 기다렸지만 예상보다 훨씬 고도의 절예를 눈에 접하게 됨에 군웅들의 마음은 한없이 들떠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일반적으로 연회에서 무예를 시전하는 것은 단지 눈요기감으로 화려하거나 기이한 절공을 펼치는 것이 대부분이었는데 이번 사화지연에서 남궁비가 펼친 무예는 그야말고 진신절학이요, 그보다 무예가 낮은 이들에게는 안목을 틔여줄수 있는 상승의 무공이었다.
남궁비가 원탁의 자리에 돌아와 앉자 그런 그를 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제각각이었다. 칠룡중의 황보두균과 수가위는 심각한 얼굴로 안색이 변한채 남궁비를 뚫어지게 응시하고 있었고 사화 중 유가형은 복잡한 시선으로, 석영과 악서령은 별 감흥이 없어 보였고 제갈수란은 눈을 빛내면서 남궁비를 빤히 쳐다 보고 있었다. 예외하면 천궁의 여인이었다. 그 여인은 남궁비의 무예 시전이 끝나고 자리에 앉자 별다는 반응을 보이지 않고 시선을 내리 깐채 찻물만 들이키고 있었다.
아환 역시 별 감정이 실리지 않은 시선으로 남궁비를 한번 쳐다본 후 그냥 술잔을 들어 한번에 쭉 들이켰다. 다른 한 손 원탁 밑에 들어가 있는 손에는 불끈 힘이 들어갔다. 호승심일까? 비록 사전에 무술수련을 할때에 검후에게 검의 경지에 관하여 들었기는 하지만 처음보는 검막에 무심결에 손바닥에 땀이 배이는 것을 느꼈다.
‘검막이라..검막..’
“또다른 호화사는 무전을 하시오!”
“무전을 하시오!”
“무전! 무전!”
군웅들의 요구가 드세졌다. 또 어떤 절학이 나올까? 중인들은 방금 전의 검막의 잔상에 사로잡혀서 흥분된 상태에서 크게 소리를 질러댔다. 검막이 나왔으니 혹시 저 주환이라는 자의 등에 매달린 도에서 어떤 절학이 나올까?
기대감이 가득한 눈으로 아환을 쳐다보는 사람들. 아환은 천천히 원탁에서 몸을 일으켰다. 보통 중간크기의 사람보다 머리하나는 클것 같은 거한이 원탁에서 일어나서 아까 남궁비가 검막을 만들었던 공간으로 걸어나가자 장내에 팽팽한 긴장감이 맴돌았다.
아환은 중앙에 서자 다리를 어깨 보다 조금 넓을 정도로 벌리고는 크게 한걸음 내딛었다.
“터!”
* * *
어두움이 깊어졌다.
산에는 밤이 일찍 찾아오는 법, 검푸른 허공에 떠 있는 연한 금빛이 섞인 반월이 그 광휘를 선라봉의 곳곳에 내비추고 있었다. 초여름이 지났지만 아직 산중의 밤 공기는 쌀쌀한 감이 약간 느껴졌다.
한들 한들 나즉한 바람이 무성한 나뭇가지들을 흔들고 우거진 수풀의 초목들은 미풍에 몸을 맡겨 흐느적 거리듯 춤을 추었다.
하늘에는 구름한점 보이지 않은 맑은 밤인지라 달빛이 유난히 밝아 보였고 수많은 은하의 별들이 제각각 한점의 빛을 보태주어 깜깜한 밤이지만 사물을 구별하는데 별 어려움이 없었다. 그런 선라봉의 중턱 어림 희끄무레한 물체가 꿈틀거리고 있는 것이 보였다. 흑과 백이 조화를 이룬, 산중에는 어울리지 않은 색채였다.
하늘거리듯 검은 색이 출렁였다. 반드르 윤기가 나는 검은 빛을 내는 것은 다름아닌 사람의 머리였다. 그것도 그 길이나 모양을 보아하니 여인의 머릿채인듯 싶다.
“남궁비라..”
그 물체의 앞, 아환이 앉아 무언가를 중얼거리고 있다. 남궁비를 말하는 것으로 보아 오늘 낮의 사화지연에 관한 것을 생각하는가 보았다. 아환은 넓직한 바위에 걸터 앉아 편안한 자세로 검푸른 밤하늘에 반짝이는 여러 별들을 바라 보며 곰곰히 생각을 하고 있었다. 한 손은 뒤를 짚어 몸을 지탱하고 다른 한손은 앞에 무릎을 꿇고 있는 인체의 머릿결 사이로 손을 갖다대고 있었다.
고운 피부, 잘록한 허리나 거기에서 급격히 퍼진 둔부의 곡선등을 볼 때 여인인듯 싶은 앞의 사람은 아환의 아랫도리 근처에 얼굴을 묻고 머리를 부드러이 움직이고 있는 중이었다. 아환은 그 여체의 머릿결을 쓰다듬듯 하면서 가볍게 쥔 상태라 여인은 반은 자의로 반은 타의로 아환의 하체에서 머릿결을 출렁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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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송합니다. 약속을 어겼네요. 지난 주에 일이 생겨서 한번 올리지 못했습니다.
괜히 6월에 쉬었습니다. 한번 쉬다 다시 할려니 영 힘들어서..꾀도 많이 나고요..
그래도 힘내야겠지요. 가능한한 이번주 50회를 마무리 짓겠습니다.
담편에 사화지연의 뒷얘기가 나올 것입니다.
제 글에 댓글을 남겨주시는 분들게 사과의 말씀을 드립니다.
오늘 제가 어느 분의 글을 읽은 후 남긴 댓글을 보고 어느 작가님께서 편지를 보내셨습니다. 저도 댓글 남겨주시는 분들게 감사의 인사를 드렸어야 했는데 미처 그러지 못했습니다. 그냥 게을러서 그러려니 하고 이해하세요.
날씨가 영~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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