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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소설-내가 만드는 이야기

[창작] 수라기(獸羅記) 42번째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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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277 회 작성일 23-12-21 09:1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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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혈장미 석영은 등뒤로 식은땀이 흘러내리는 것을 느꼈다.
두려움. 여지껏 경험해 보지 못한 강한 두려움이 자신을 휩싸고 있었다. 앉아 있을 때에는 몰랐었는데 일어나서 저 괴이한 귀광을 뿌려대는 저 마왕의 마기는 이전에 겪어온 그 어떤 마인들보다 음울하고 극강하게만 보였다. 그리 크지 않은 키임에도 불구하고 흡사 앞에 거대한 절벽이 버티고 서있는 기분이었다.
다혈질의 성격에 걸맞게 석영은 유명사신을 보자 마자 복수심에 검을 빼들고 쳐들어 갔지만 느긋한 혁사락의 반응에 오히려 긴장을 하는 것은 석영, 그녀였다. 인간같지 않은 피부색하며 짙은 검회색의 머리결 사이로 줄기 줄기 내비치는 귀기스러운 안광에다 회색빛의 유명삭이 꿈틀거리며 혁사락의 전신에서 움직이고 있는 모습은 꽤 실전을 겪었다고 자부하는 석영 조차도 쉽게 받아 넘길 수 없는 이질적인 공포심을 자아 내었다.
석영은 떨리는 마음을 추스리고 검을 곧추세웠다. 핏빛의 붉은 경장의가 그녀의 몸에 착 달라 붙어 육감적인 자극을 주지만 객점의 그 누구도 지금의 석영을 보고는 욕정을 떠올리지 않았다. 곧 끊어질듯한 팽팽한 긴장감이 객점안을 맴돌았다. 석영의 검이 점차 빛을 발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은은히 빛이 보이는 다 싶더니 어느 순간부터 은색의 광채가 검신 전체를 뒤덮더니 휘황한 광채를 뿌려대며 석영의 손에 들려 있었다.
“수많은 무고한 사람들의 피의 빛을 이제 받겠어요.”
석영의 말투는 차분하고 여태까지와 다르게 말투가 험하지 않고 오히려 공손해지고 경어로 바뀌었다. 그렇지만 그 말에 실린 기운은 살기(殺氣), 그것도 일반인 같으면 오금을 저리게 할 정도로 극도의 살기였다. 전후(戰后)라 불리워도 손색이 없을 만큼 짙은 투기가 석영의 전신에서 배어나왔다.
“무슨 피의 빛이지?”
감정이 실리지 않아 어색하다는 기분이 드는 음성이 들려 왔다. 그 누구도 입을 벌리는 사람이 없었으니 혁사락의 입에서 나온 말일게다. 거센 살기와 투기가 자신에게 엄습하는데도 담담히 말을 하는 혁사락.
“당신이 학살한 그 수많은 원혼들을 부정하는 것인가요? 살인을 즐기는 당신 같은 대마두의 손속에 스러져간 그 목숨들의 혼령이 두렵지 않은 가요?”
“누가 살인을 즐긴다고 하던가?”
“그럼 아닌가요? 그렇지 않다면 그토록 끔찍한 혈사를 한 이유가 따로 있단 말인가요? 아무 죄도 없는 무고한 인명들을 잔인하게 죽여야 할 이유가 있나요?”
스스로가 그 상황에 감정이입을 시키는지 격정에 사로잡혀 피를 토하듯 부르짖는 석영, 위로 치켜 올라간 눈매가 부르르 떨린다.
“그대는 무림인인가?”
“그래요. 정도를 걷는 다 자부하고 있어요.”
뜬금 없이 물어오는 무인이라는 질문에 팽팽한 실이 일순 느슨해지듯 했다.
“그대는 한번도 사람을 죽인 적이 없는가?”
“없진 않아요. 하지만 당신과 달라요. 본녀는 무림에 해를 끼치는 패악무도한 인물들에게만 손을 썼어요. 존재해봤자 아무 쓸모가 없는 그런 인면수심의 마두들만 처리했어요.”
“누가 그들을 쓸모 없는 존재라 규정하던가?”
“그것은..”
잠시 말을 끊다가 계속 이어갔다.
“일반 무림인들의 평이지요. 보편적인 상식의 기준으로 보았을 때 악(惡)이라 여기어 지는 인물들은 무림에 해가 되는 자들이니까요.”
“일반 무림인이 아닌 정파라 칭하는 무리들의 평이고 기준이겠지. 그것은 그렇다 치고, 그대는 그들외에 그들의 부하나 가솔들에게 손을 쓴적은 없었나?”
“있었죠. 복수를 하려고 찾아온 마두의 수하들등에게 살수를 펼친 적이 있어요. 하지만 그들은 내 목을 노렸고 난 정당하게 그들에게서 나를 보호하려고 한 것이예요.”
손을 쓰지않고 논쟁을 벌인다는 것 자체가 평소에 들어오던 혁사락의 악명과 많이 달라 의아했지만 그의 의도를 모르는 지라 석영이 검을 세운채 혁사락의 질문에 일일히 대답하며 논쟁을 벌여 나갔다.
아환은 혁사락에 대하여 잘 모르지만 유가형이나 악가령을 위시한 다른 이들은 석영과 마찬가지로 귀에 따갑게 들어왔던 유명사신의 살명에 맞지 않는 이 논쟁을 물끄러미 지켜보고만 있었다. 그중에서도 유가형은 아리따운 눈빛을 빛내며 혁사락의 입이라 추정되는 부위에 시선을 고정시켰다.
“내가 아무 이유도 없이 그들에게 손을 썼다고 생각하는가?”
“그럼 아니란 말인가요?”
“크큭..내가 마공을 익혔고 이런 기괴한 몰골을 했다고 해서 살인을 즐기고 피에 광분하는 괴물처럼 보이나? 그런 것인가? 누가 그렇게 정의를 한 거지? 너는 나의 과거를 아는가? 내가 왜 혈사를 벌였는지 짐작이나 하나?”
“….”
혁사락의 안광의 빛이 더욱 짙어졌다. 그러면서 무심하게 느껴졌던 혁사락의 음색이 서서히 색을 띄어가기 시작하였다. 강한 분노의 색채를 띄며 혁사락은 계속 말을 이어갔다.
“나는 내 원수를 죽였다. 나를, 내 가족을, 내 가문을 멸망시킨 흉수를 뼈를 깎고 살을 발라내며 수없이 피를 흘리며 그나마 내가 익힐 기회가 있던 무공을 익혀 원한을 갚아 나갔다. 처음에는 원수만 갚으면 되는 줄 알았지. 그게 아니었다. 인면수심의 위선자들은 어느새 내게서 빼앗아간 기물들로 강호에서 기반을 다졌지. 백도라는 허울을 뒤집어 쓰고서는 성인군자입네 하고 행세하는 자들, 그들을 심판한게 잘못이란 말인가?”
“그건..”
“네가 방금 여기서 검을 빼어 들었다. 나와 싸움을 원하는 것이겠지?”
“그래요.”
석영의 기세가 한풀 꺾였다. 왠지 자신이 옳다 생각하던 것이 흔들리는 기분, 가치관 자체가 혼란스러워졌다. 상대는 무림에서 공적으로 낙인되다 시피하는 마두였다. 그런 그의 말을 귀기울여 듣는 것 자체가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음울한 혁사락의 말투에서 무언가 모를 자신을 끄는 힘을 느꼈다.
“너는 여기서 나와 싸움을 할 작정인가? 이 객잔에서? 너는 검을 휘두르며 초식이, 검기가 하나도 빗나가지 않고 나를 맞출 자신이 있나? 공력을 운용하면서 다른 기물을 파괴하지 않고 나를 공격할 수 있나? 이 객잔은 무림인이 아닌 일반인이 운영하는 곳이다. 물건이 부숴진다고 하면 보상을 하면 그만이라 말할 건가? 그도 저도 아니라면 그냥 객점에 피해를 주고 정의를 수호하였다 자화자찬할 생각인가?”
“….”
할말이 없었다. 틀린 말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그것까지는 미처 생각하지 않은 석영은 안색이 붉어진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하였다. 세워진 검끝이 떨리고 있었다. 마음이 흔들린다는 증거였다.
“왜 말이 없는가?”
“그런데 왜 미매는 강간을 한 후 죽인건가요?”
“무슨 말이지? 누가 강간을 하였다는 것이지?”
“당신이 하지 않았으면 누가 그런 천인공노한 짓을 한 것인가요?”
“나는 모르는 일이다.”
“거짓말 말아요! 이 패악무도한 마두!”
“감히..”
그순간,
치잇!
날카로운 파공성이 들렸다.
캉!
무언가 금속이 부딪히는 소리.
사람들이 소리가 난 곳으로 급히 눈을 돌렸다. 그러자 그 곳에는 검은 장갑에 뾰족한 못 모양의 암기를 들고 서 있는 당철의가 눈에 신광을 흘리며 서있었다.
“석 소저, 이런 마두의 말따위는 들을 가치 조차 없습니다. 유소저, 악소저, 우리 모두 합공해서 이 살마를 처치하여 강호의 정의가 살아 있다는 것을 보여 줍시다.”
신중히 전력을 다해 펼친 암습이 실패로 돌아가자 뒤로 한걸음 물러난 후 주위를 돌아보며 공격에 참여할 것을 부르짖는 당철의. 탈혼정(奪魂釘)이라는 당가의 비전 암기를 몸에 두른 유명삭으로 막아낸 혁사락의 푸르스름한 귀광에 맞설 자신이 없는지 슬그머니 시선을 피한다.
석영의 그린 듯 곱게 치켜뜨여진 눈이 가운데로 일그러졌다. 아마 당철의의 암습이 못마땅한 모양이었다. 막 무어라 말을 할 찰나,
키리릭..
쇠가 긁히는 소리가 낮게 들려왔다.
“크억!”
유명사신 혁사락이 우수를 치켜들고 서있는 모습이 중인의 눈에 들어왔다. 하얀 피부 색의 장심 가운데가 붉게 물들고 있고 그런 그 손바닥의 한가운데에서 유명삭이 뻗어 나와 당철의와 이어져 있었다. 그 끝은 당철의의 당철의의 검은 장갑을 낀 쪽 어깨를 꿰뚫고 밖으로 다섯치가량 삐져나와 있었다. 유명삭의 끝은 화살촉과 유사하고 갈고리 같은 구조로 되어있어 들어가기는 쉬우나 빼기는 어려운 그런 형태를 갖고 있었다.
“멈춰요.”
석영이 연검을 휘둘러 당철의와 혁사락을 연결하고 있는 유명삭을 칼로 베어나갔다.
창!
“끄억!”
보검으로 보이는 석영의 검은 유명삭을 베지 못하고 튕겨져 나왔다. 그 여파로 인하여 유명삭의 끝이 당철의의 어깨를 헤짚으며 다시금 어깨에 박혀버렸다. 당철의는 순간 극심한 고통에 비명을 지르며 몸을 떨었다.
“이럴수가?”
왠만한 병기를 무우자르듯 자르는 비연검(飛燕劍)이었다. 게다가 내공을 주입시킨 자신의 검이 저런 쇠사슬을 자르지 못하고 튕겨나옴에 경악성을 흘리는 석영이었다.
당철의의 눈에 원독이 서렸다. 언제 자신이 이런 낭패를 보았던가? 천하의 칠룡 중의 하나라 자부하던 당철의는 평소 사모하던 석영의 앞에서 수치를 당하자 이를 바드득 갈면서 부상을 입지 않은 손을 뒤로 슬며시 가져가 작은 주머니를 끄르고 그 속에서 무언가를 꺼내었다. 혁사락이 검을 펼쳐낸 석영에게 시선을 돌리는 순간 당철의는 그 손을 재빨리 빼어내어 손에 들어있는 것을 혁사락에게 뿌렸다.
츠츠츠..
기분나쁜 황색의 분말이 허공에 확 퍼졌다. 저녁 시간이라 불을 켜 놓은 객잔 안이 일순 황색의 빛깔로 덮어진다 싶었다.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뻗어나가는 황색 가루를 쳐다 보던 당철의. 혁사락이 고개가 획 돌려지며 안광이 빛나면서 양손을 뒤흔드는 것을 보고 얼굴이 하얘졌다.
“안..안돼!”
“피해!”
혁사락의 전신에서 유명삭이 회전을 하며 거센 바람을 일으켜 황색의 분말을 뒤로 밀어내었다. 아환은 급히 바닥으로 몸을 굴러 황색 가루의 영향권에서 벗어났지만 검을 들고 멍하니 서있던 석영은 일순 동작이 늦어 황급히 신형을 날렸으나 일부의 황색분말에 호흡을 노출시키고 말았다.
“으읏..”
그런 그녀와 함께 나뒹구는 당철의.
키리릭..
“꺼어..”
쿵..
혁사락이 움직임에 따라 회전하는 유명삭이 당철의의 어깨를 온통 긁으며 빠져 나왔다. 당철의는 눈을 허옇게 까뒤짚으며 바닥에 쓰러졌다. 그런 그의 어깨에서는 핏줄기가 분수처럼 솟구쳤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다른 사람이 손쓸 사이도 없이 두 사람이 바닥에 쓰러졌다.
유가형과 악서령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영매.”
“영아!”
빠르게 달리다 시피 다가오는 두 여인.
“독이 남아 있을지 몰라! 조심해.”
“예, 언니.”
유가형은 석영의 곁으로 가까이 가서 다급히 석영의 상세를 살폈다. 벌써 독기운이 퍼지는지 연한 홍조를 띄고 있던 석영의 얼굴이 거무스름하게 변했다. 유가형은 급히 교수를 뻗쳐 석영의 손목을 잡고 진맥을 하였다.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석영의 맥을 짚던 유가형의 안색이 침중히 변했다. 그러더니 품에 손을 넣더니 작은 옥병을 꺼내곤 그속에서 밀납에 쌓인 환약을 하나 빼어내어 깨드렸다. 유가형은 석영의 턱주위의 혈도를 짚어 석영의 입을 벌리게 하고는 환약을 입에 넣었다. 넣자 마자 타액과 섞이며 녹아내리는 환약은 유가형이 석영의 턱과 목주위의 몇몇 혈도를 짚자 끄르륵 소리를 내면서 석영의 식도로 넘어갔다.
“언니, 영아의 상세가 어때요? 약을 먹었으니 이제 괜찮아요?”
“그렇지 않아. 영매가 들이마신 황색 가루는 아마 당가의 쇄심절독(碎心切毒)같아. 일단 응급처치는 했지만 빨리 해약을 복용해야돼. 그렇지 않으면 어려워.”
악서령의 다급한 물음에 무거운 안색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으며 유가형이 대답하였다.
“쇄심절독이요? 그것은 극독이잖아요? 당가에서도 금기로 되어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래. 중독된 자의 이지를 파괴시킨다고 해서 당가에서 조차 사용하는 것을 금하고 있는 절독이지. 어째서 당소협이 이 것을 가지고 있는지 모르겠구나. 공기 중에 뿌려진 것은 이 독의 특성상 얼마 안 있어 소멸되겠지만 석영이 들이마신 것은 어쩌지?”
“언니의 의술로도 힘든 거예요?”
“우리 성의전도 천하의 모든 독극물을 해독할 수는 없어. 그 중의 하나가 이 쇄심절독이지. 이를 어쩌나? 이 독은 해독약이 없는 것으로 되어 있는데..”
악서령의 드러나 있는 눈주위가 창백해졌다.
“그럼 영아는 어쩌죠? 영아는..영아는..흐흑..”
악서령이 떨리는 음성으로 말을 하다가 급기야 눈물을 흘려 내었다.
“일단 당소협을 깨워야 겠어. 당소협이 이 독을 사용하였으니까 그 독의 해독방법도 알지 몰라.”
“흑..흑..”
유가형이 몸을 일으켜 바삐 당철의의 곁으로 다가가더니 어깨의 상처 부위의 혈을 짚어 지혈을 하였다. 피를 많이 흘린 탓인지 창백해진 안색을 하고 있는 당철의. 당철의의 몸을 세운후 뒤로 돌아가서 당철의의 등에 장심을 갖다대고는 진기를 주입시켰다.
진기를 이용한 기의 순환이 이루어졌다. 생각보다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유가형은 상세가 별로 심각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당철의가 의아했지만 내상이 깊어 그런 것이라 판단하고 계속해서 내공을 주입시켰다.
대략 일다경의 시간이 흐르자 당철의의 입에서 신음성이 흘러나왔다.
“으으음..”
당철의가 눈을 떴다. 내기로 상세를 치료하였는지라 혈색이 밝게 돌아온 당철의는 눈을 뜨고는 주위를 둘러 보았다. 자신의 등에 닿아 있는 이물의 감촉에 고개를 뒤로 돌린 당철의는 내기를 많이 소모하였는지 창백한 안색으로 뒤에 정좌한 유가형을 볼수 있었다.
“아니, 유소저. 으윽!”
몸을 일으키다가 어깨의 통증에 고통의 비명을 지르는 당철의는 어깨를 부여잡고 한쪽 무릎을 꿇은채 자리에 다시 주저 앉았다. 고통에 눈살을 찌푸리던 당철의가 유가형에게 질문을 던진다.
“이게 어찌..그 마두는 어디 갔습니까?”
“유명사신은 떠났어요. 그보다 당소협.”
“예? 말씀하십시오.”
“어떻게 쇄심절독이 당소협의 손에 있는 거죠? 쇄심절독은 당가에서 금지한 독이 아니던가요?”
“그게..”
유가형의 물음에 당철의의 안색이 눈에 띄게 변하였고 말이 제대로 나오지 않고 띄엄띄엄 나왔다.
“말씀하세요. 그 독 때문에 지금 영매의 상세가 심각해요. 해독약은 갖고 있나요?”
“예? 석 소저가요?”
급히 눈을 돌려 주변을 살피던 당철의의 눈에 객잔 바닥에 누워있는 석영의 모습이 들어왔다. 어깨를 부여잡고 다급히 석영에게 달려간 당철의의 입에서 신음성이 흘러나왔다.
“이게 어찌 된 거요? 왜 석 소저가 여기에 누워있는 겁니까?”
당철의가 다급하게 유가형에게 질문을 던졌다.
“당소협이 시전한 독이 유명사신의 경기에 휘말려 퉁겨나고 거기서 미처 빠져 나오지 못한 영매가 그 독을 들이 마셔 중독이 된 거지요. 말해주세요. 쇄심절독의 해약을 갖고 있나요?”
“…없습니다.”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당철의가 비통에 찬 음성으로 내뱉었다. 그 말을 들은 유가형의 부드럽기만 하던 미안이 굳어졌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요? 해약도 없는 독을, 그것도 여러 사람이 있는데서 쓸 생각을 한 것인가요? 당가에서 금기로 한 쇄심절독이잖아요. 그러면 그 독의 독성이 얼마나 극심하고 무서운지 당소협도 충분히 알 것 아닌가요?”
“…”
유가형이 당철의를 지나치며 석영의 옆에 살포시 앉아 다시금 석영의 손을 들고는 맥을 살펴 보았다. 그러면서 한마디 덧붙였다.
“어서 당가로 연락을 취하세요. 빨리 영매를 안정시킨다음 당가에 가서 치료법을 의논해야겠어요. 그리고 당가의 원로들에게 소협의 용독에 관하여 여쭈어 볼것이예요.”
당철의를 등을 진 상태에서 유가형은 차갑게 말을 흘리며 석영의 상세를 자세히 살펴 보았다. 아직 울고 있는 악서령은 한쪽의 의자에 앉아 조금 멍한 눈빛으로 유가형과 당철의의 대화를 쳐다 보고만 있었다.
당철의의 얼굴이 점점 더 심하게 일그러졌다. 자괴감과 부끄러움, 걱정, 불안감 등 각종 감정이 교차되는 당철의. 차츰 차츰 그 혼돈된 감정들은 하나의 감정으로 전이되었다. 살기. 당철의의 눈에서 슬며시 살기가 피어올랐다.
‘여기에 있는 자들의 입만 막으면 내가 한 일은 영원히 묻혀지리라. 삼화를 죽인 범인은 유명사신 혁사락으로 덮어씌우면 된다. 그렇지 않고 만약 내가 쇄심절독을 사용한 것이 당가에 보고된다면 나는 끝장이다. 나의 미래는 영영 없을 것이다. 장손의 위치를 배앗기는 것은 물론이고 평생 당가에 묻혀 살거나 무공을 폐지 당할 지도 모른다.’
당철의의 머릿 속에 엄하고 사리가 분명한 조부의 얼굴이 떠올랐다. 당철의는 입술을 꼭 깨물며 품으로 손을 가져가 살그머니 무엇인가를 꺼낸다.
“유소저, 당가에 쇄심절독을 보고할 것 입니까?”
“물론이지요. 그보다 앞서 석영의 상세가 위급하니 어서 마차를 수배하세요. 한시라도 빨리 출발하여야 겠어요.”
석영의 손을 잡고 진기를 부어 놓고 있던 유가형이 뒤도 돌아 보자 않고 당철의의 말에 응답을 하였다. 그러던 중 이상한 느낌이 들어 고개를 돌린 유가형의 눈속에 살기로 번뜩이는 당철의의 눈이 들어오고 순간 눈앞이 손그림자로 덮였다.
퍽!
“아악..”
당철의가 손에 내기를 끌어올려 철사장으로 유가형의 등을 후려쳤다. 미처 방비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일장을 가격당한 유가형이 입에서 분수가 퍼지듯 피를 토하며 앞으로 고꾸러 졌다.
“당소협! 이게 무슨..”
멍한 눈으로 바라보던 악서령이 눈에 초점을 잡고 다급하게 자리에 일어서며 항의를 하려고 할 때 당철의가 다친 손에 들려 있는 것을 옮겨 잡고는 악서령에게 획 뿌려대었다.
“아앗! 이게 무슨…으으음..”
막 항의를 하려다 스르르 눈을 감으며 악서령은 자리에 무너졌다. 당철의가 뿌린 미혼약을 들이마셔서 순식간에 정신을 잃은 것이었다. 당철의는 악서령쪽은 돌아보지도 않고 유가형이 엎어져 쓰러진 곳으로 다가갔다.
퍼억!
“크윽..”
당철의는 유가형의 평소의 무위가 높음에 신중을 기하려는지 유가형의 근처에서 발을 날려 유가형의 옆구리를 걷어찼다. 유가형은 좀 전에 당철의를 진기로서 치료하고 계속되는 석영의 상세를 살피며 내공을 소모하였는 상태에서 당철의의 내공이 실린 일수를 얻어 맞아 심한 내상을 입었다. 그러면서 쓰러진 상태에서 가까스로 내기를 모아 반격을 준비하려 한 유가형은 뒤이은 옆구리에 오는 충격에 모았던 내공이 샅샅이 흩어지고 호흡도 제대로 할 수 없게 고통이 찾아오자 비병을 질렀다.
유가형은 그 자리에서 옆구리를 움켜쥐고는 데굴데굴 굴러 석영의 옆을 넘어 몸을 간신히 세워 자리에 한쪽 무릎을 꿇은 상태에서 당철의를 노려보았다.
“이게 무슨 악랄한 짓인가요? 당소협. 어찌 그대가 이럴 수가 있지요? 그토록 그대가 사모하는 영매가 쓰러져 있는데 빨리 상세를 돌볼 생각은 하지 않고…설마 살인멸구를 하겠다는 것인가요?”
“유가형. 이제 알겠나? 내가 쇄심절독을 쓴 것을 당가나 다른 곳에서 알게 된다면 그야말로 나의 앞날은 암흑 속에 빠지는 것이지. 쇄심절독의 해약? 그런 거 없어. 미모가 아깝지만 혈장미 저 계집은 어쩔 수 없지. 그대신 천향매화와 난화성녀가 있잖아. 천향매화야 단순한 미약을 마신거지만 쌀이 익어 밥이 되면 지가 별 수 있겠어? 이거야 말로 꿩대신 닭이 아니고 꿩대신 봉황이 아니겠어? 게다가 이름난 두 미녀를 내 품에 품을 수 있으니 일석이조이기도 하고..크하하하..”
당철의가 앙천대소를 터뜨리는 것을 보는 유가형의 심정은 참담해졌다. 칠룡의 일인이자 오대세가의 장손으로 촉망되는 정파의 후지기수인 당철의의 본심을 알게 되자 심장이 내려 앉는 충격과 함께 앞으로 다가올 치욕에 부르르 몸을 떨었다.
“그러고도 그대가 정녕 세가의 후손이란 말인가요? 아까도 거짓이었군요. 어쩐지 깨어날때가 되어도 깨지 않더라니만..애초부터 쇄심절독을 쓸때부터 계획하였군요. 당철의! 결코 그대의 뜻대로만 되지는 않을 것이요. 그대가 나와 령매의 몸은 빼앗을지 몰라도 마음까지는 빼앗지 못할터, 우리 둘을 죽이지 않으면 그대의 만행이 만천하에 알려지고 그대는 강호에서 발붙이지 못할 것이예요.”
유가형의 입에서 원독이 서린 외침이 터져 나왔다. 곱디 고운 두 눈에 여태 한번도 유가형에게서 나타나지 않은 살기가 흘러나왔다.
“이런..이런..내미지상이라더니..남자에게 지극히 순종한다던 전설은 다 거짓인가? 크하하..유가형, 걱정말아라. 네가 모르는 쇄심절독의 묘용을 하나 더 말해주지. 쇄심절독을 아주 약하게 시전하면 중독된 사람은 이지를 잃어버리고 인형처럼 타인의 의지에 의해 움직이니 그런 걱정은 하지 말아라. 내 너희들을 두고 두고 귀여워 해줄 테니까? 안되지, 안돼. 혀를 깨물면 되나? 천상의 열락이 금새 찾아올텐데..”
유가형이 다급히 혀를 깨물어 자결을 하려고 하자 재빨리 손을 놀려 유가형의 아혈을 짚었다. 그러곤 당철의는 품에서 분홍의 옥병을 꺼내더니 그 속에서 분홍색을 띈 손톱만한 환약을 꺼내었다. 유가형의 턱을 잡더니 알약을 목 깊이 던져 놓았다. 유가형의 목에 들어간 환약은 곧 침과 섞여 유가형의 목젖으로 흘러 들어갔다.
유가형의 눈빛이 다급하게 변하였다. 당철의는 그런 유가형의 얼굴색이 변하는 것을 보더니 입가에 미소를 그리며 유가형의 얼굴을 매만졌다. 당철의의 손이 얼굴에 와닿자 움찔거리는 유가형이건만 그 손길을 피하지 못하고 분노로 몸을 떨 뿐이었다.
점차 유가형의 얼굴이 붉게 변하기 시작하였다. 아마 복용한 약효가 발휘되는 모양이었다. 유가형은 전신에서 미미한 열기가 피어오름을 느꼈다. 어디에서 처음 시작되는 지는 몰라도 그 열기는 점차 강렬해지고 몸이 더워지며 정신이 몽롱해지게 하였다. 유가형의 빛나던 눈이 그 빛을 잃어가고 눈주위가 붉게 변하는 것을 보던 당철의의 입가의 웃음이 더더욱 짙어졌다.
“그만하지.”
“헉!..크악!”
뒤에서 갑자기 들려오는 나즈막한 음성에 깜짝 놀라 다급히 몸을 튕기며 돌아서려던 당철의의 입에서 비명이 터져나왔다. 아환이 어느새인가 일어나서 당철의의 등뒤에서 칼을 들고 서있었다. 바닥에는 하나의 팔이 떨어져 뒹굴고 있었다. 아환이 칼을 휘둘러 그나마 성한 당철영의 다른 팔을 몸에서 떼어낸 것이다. 아환은 독의 영향권에서 벗어났지만 일어나지 않고 누워있는 채로 당철의가 하는 행동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보고 있다가 막 당철의가 본격적인 행위로 나설려고 하자 기척을 죽이고 일어나 당철의의 뒤로 접근한 것이었다.
피가 터져 나오며 바닥은 금새 홍건히 피가 고였다. 뒤로 물러선 당철의의 입에서도 핏줄기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네..네 놈은 누구냐?”
“그것은 알 필요 없어.”
“잠깐!”
“왜?”
“협상을 하자. 네가 원하는 게 뭐냐? 여자? 돈?”
“필요 없어.”
아환이 객점의 바닥을 박차고는 당철의에게 쇄도를 하여 들어가 칼을 휘둘렀다. 그 칼의 그리는 궤도에 들어 있는 것은 당철의의 목. 위를 뒤덮으며 검은 그림자가 자신에게 다가오자 당철의의 눈빛이 검어졌다.
츠카각..
아환의 칼이 당철의의 목을 스치고 지나가자 허공에 당철의의 목이 떠올랐다. 이내 땅에 떨어진 당철의의 수급이 눈을 부릅뜬 채 객점의 피로 질퍽한 바닥에 뒹굴며 굴러 다녔다.
아환은 칼을 갈무리하고는 눈을 돌려 삼화를 쳐다 보았다. 유가형은 이제 약효에 완전히 지배당했는지 얼굴이 새빨갛게 변해져 있었고, 달짝지근한 숨결을 끊임없이 내뱉었다. 눈은 몽롱하게 초점을 상실하여 열기가 출렁이고 있었고 입술은 촉촉한 물기가 어려 색정에 사로 잡힌 여인의 교태를 자아내고 있었다.
‘후후..원래 계획에는 없던 것이지만 당철의가 나를 도와주는구나. 고맙군.’
악서령은 미혼약에 취하여 쓰러진채 있었으며 석영은 누워있는 자세 그대로였다. 아환은 세 여자를 한데 모아 들어 올리고는 객점의 뒷편으로 서둘러 발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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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정말 잘합니다. 감동적이었어요. 과거의 뻥축구가 더 이상 아닌…
그에 반해 그토록 대단하다던 포르투갈은 영~
미국이 그리 썩 잘하는 것 같지도 않던데..

야설 다운 장면은 다음 회에 가서야 있겠습니다. 야설에 너무 뜸하네요.

월드컵 기간동안 연재 회수를 주 1회로 줄이겠습니다. 기다리시는 분들게 양해 부탁드립니다. 저도 일하고 축구보고 또….그대신 분량은 주 3회 분량 못지 않게 올리겠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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