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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소설-내가 만드는 이야기

악연 - 6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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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278 회 작성일 23-12-13 12:2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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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년 단종된 광길의 구형 코란도가 최근 튜닝된 6.7리터짜리 포드 파워스트록 디젤 엔진을 심장박동처럼 울려대며 주차장 입구로 다가왔다.

그는 주차장으로 내려가는 경사로를 타기 전 길 가에 서 있던 중국산 클래식 스쿠터인 분홍색 찌웨이를 흘깃 쳐다보았다.

스쿠터 주인인듯 보이는 남자가 연한 밤색 안장에 걸터앉아 담배를 문 채 전화통화를 하고 있었다.

광길은 얼굴을 찡그리며 경사로를 내려갔다.

남자의 몸이나 자세에서 풍기는 분위기가 그의 감각 어느 부분을 건드렸다.

주차장에는 이미 2대의 차가 주차되어 있는 것이 보였다.

빈 곳에 차를 세운 광길은 내리자마자 스쿠터가 서 있던 곳을 돌아보았으나 이미 스쿠터는 사라지고 없었다.

광길은 미심쩍은 얼굴로 잠시 그곳을 바라보았으나 이내 고개를 젓고는 차 뒤로 돌아가 뒷트렁크를 열었다.

그는 언제 필요할지 모를 몇가지 물건들을 준비해서 항상 차에 실어놓고 다니는데 PTFE 원사로 만든 방수 트레이닝복과 낡은 스니커즈도 그 중 하나였다.

그는 드레스 셔츠 위에 트레이닝복 상의를 걸치고 지퍼를 끝까지 올려 잠갔다.

하의는 바지 위에 그대로 덧입은 다음 허리와 발목의 고무줄을 잡아당겨 자신의 몸에 맞추고 구두는 스니커즈로 바꿔 신었다.



옷을 갈아입는 순간부터 서서히 긴장이 밀려오는 것이 느껴졌다.

차가운 얼음이 목구멍까지 차오르는 듯 서늘한 답답함이 뱃속을 들쑤시더니 신발을 신고 몸을 일으키자 기어코 망막열공이 생긴 것처럼 시야의 가장자리에서 순간적인 번쩍임이 작렬했다.

섬망현상은 그가 몹시 흥분하거나 기대가 커질 때 나타나는 현상이었다.

여자를 박을 때를 제외한다면 이럴 때야말로 그에게 피를 돌게하고 삶이 약동하고 있음을, 30초간 울려대는 민방위 훈련 싸이렌처럼 요란스레 알려주는 순간이었다.

썩어버린 하수종말 처리장의 거대 수조 안으로 깊이 빠져버리는 것처럼 뭔지모를 강렬한 기대 속에 허우적거리는 스스로를 그 자신도 이해할 수가 없었다.

게다가 이러한 긴장과 흥분은 비슷한 상황일지라도 항상 찾아오는 것도 아니었다.

올 때도 있고 한동안 오지 않을 때도 있고 온다 하더라도 각각 다르게, 조절할 수 없는 강도로 그를 불태우곤 했다.

그가 어렴풋이 느끼고 있듯 이것은 하나의 의식이며 절차였다.

그가 더이상 사회로부터 소외당하거나 멸시당하지 않으며 오히려 그를 무시했던 세계를 그의 억센 손아귀 아래 굴복시키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의식.

그의 의지가 얼마나 강한지 또 그의 의지 앞에 세상이 얼마나 무력한지를 스스로 확인해보는 절차.

그는 실로 이것을 즐겼으며 이 와중에 그의 난폭성은 걷잡을 수 없이 야만적으로 폭발하곤 하는데 통제할 수 없는 잔인함이 그의 정신을 지배하는 과정이 너무나도 급작스럽게 이루어지기 때문에 보는 사람들을 기겁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준비를 마친 그는 비상구로 들어가 계단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진중하게 시작했던 발걸음이 계단을 내려가면서 점점 가벼운 스텝으로 바뀌더니 마지막 몇계단은 마치 스프링이 달린 것처럼 발끝으로 뛰면서 내려섰다.

모세혈관을 타고 손끝까지 전류가 흐르는 것 같았다.

문을 열자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 향했다.

실내는 퀴퀴한 곰팡이 냄새와 매운 시멘트 냄새, 덕지덕지 기운 누더기같은 두려움으로 터질 것 같았다.

기다리기 지루했는지 앉아있는 녀석들도 있었으나 그를 보자 황급히 일어났다.

광길은 여자를 쳐다보고는 묶여있는 남자 쪽으로 걸어갔다.

주위에 서 있던 남자들이 둥글게 모여들었다.

광길이 남자 앞에 서서 뒷짐을 지고는 고개를 꼬고 그를 내려다보았다.

고통에 지친 눈동자가 그와 촛점을 맞추지 못하고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었다.



"재갈 벗겨."

침에 젖은 재갈이 목 아래로 벗겨졌다.

"김 과장님, 한번만.."

재갈이 벗겨진 남자가 갈라진 목소리로 말을 시작하려 했지만 옆에 섰던 사각형의 이마를 가진 남자가 그의 턱을 향해 훅을 내리꽂았다.

둔탁한 파열음과 함께 묶인 남자의 입에 피가 고였다.

남자가 신음소리와 함께 기침을 토했다.

"이 대리,이 대리..이게 무슨 꼴이야. 도망가면 안 잡힐거라고 생각했나?"

광길은 금이 간 축대처럼 비틀린 미소를 지으며 이 대리의 머리에 손을 올려놓았다.

"난 이 대리가 벌써 외국으로 튀었나하고 걱정했지 뭐야. 어떻게 아직까지 여기 있었어 그래?"

그러자 옆에 있던 사각 이마의 남자가 말했다.

"아닌게 아니라 호주 이민을 준비하고 있었더라구요. 대행사 통해서 기술심사서류까지 접수시켰던데요."

"아하.."

광길이 입을 동그랗게 말며 휘파람을 불었다.

"좀만 더 있었으면 날랐겠네. 야, 근데 왜 아직 못갔어?"

이 대리가 고개를 숙인 채 숨을 몰아쉬었다.

그의 무릎에 피가 섞인 침이 떨어졌다.

"아직 시험이 통과 안되서.."

이 대리는 쉰 목소리로 힘겹게 입을 열었다.

"응? 시험? 무슨 시험?"

"아이엘츠요."

"뭐라는거야? 씨발 새끼."

광길이 이 대리의 머리카락을 확 움켜잡았다.

"영어시험이요. 취업비자 받을 때.."

광길은 이 대리의 뒷통수를 세게 내리쳤다.

"것두 못했어? 이런 머저리 같은 새끼. 그럼 시험보고 나서 계좌를 먹었어야지, 병신아. 그래야 순서가 맞지. 안그래?"

이 대리가 아무 얘기하지 않고 입을 다물었다.

사각 이마의 남자가 말했다.

"우리가 계좌를 빼는 걸로 생각해서 서둘렀답니다."

"우리가?"

끝에 서 있던 남자가 몸이 뻣뻣했는지 다른 발로 체중을 옮기며 티나지 않게 두 세차례 어깨를 돌렸다.

광길이 다시 이 대리로 시선을 옮겼다.

"그때 회사 부도처리하고 AMC로 넘기려고 했었지."

사각 이마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랬었죠."

"근데..니가 그걸 어떻게 알았어?"

광길이 물었다.

잠깐 입술을 달착거리다 이 대리가 입을 열었다.

"어떤 사람이 계좌를 정리했었는데..회사 사람같았어요. 그걸 보고.."

"어떤 새끼야?"

광길이 둘러보았다.

"알아봤는데 저희 중엔 없습니다."

돌격대원처럼 머리를 짧게 깎은 남자가 의자 뒤에 서있다가 광길의 시선을 받고 단호하게 말했다.

"다른 팀 계좌도 섞여있었으니까 그 쪽에서 정리한거 같은데요."

"어떤 멍청한 새끼들이 자기네 멋대로.."

광길이 화를 참지 못하고 이 대리의 머리를 한번 더 내리쳤다.

"이 씨발새끼야. 니 실적으로 거래를 몇 십억을 해줬는데 그것도 모자라서 먹고 튀어?"



평상에 엎드려 벌거벗은 채로 스웨디쉬 오일 마사지를 받던 남자가 말했다.

"어,어. 거기,거기. 그래 거기가 뭉쳤어. 어..시원하다. 아가씨, 힘좋네. 응?"

그가 손을 뻗어 짧은 치마를 입은 여자의 허벅지 속으로 손을 넣었다.

그녀가 입은 검은 민소매 티셔츠엔 호텔 사우나 클럽의 이름이 흰 글씨로 크게 적혀 있었다.

"서비스도 잘 하나?"

여자는 다리를 뒤로 빼서 슬쩍 그의 손을 흘렸다.

"저는 마사지만 하구요, 서비스 원하시면 이쁜 애들 있어요. 마사지 끝나시면 불러드릴까요? "

남자가 콧소리로만 웃으며 말했다.

"왜? 아가씨는 안하고? 어?"

여자는 7번 흉추 옆의 근육을 누르며 통나무처럼 굵은 남자의 팔뚝을 쳐다보았다.

날개같기도 하고 칼 같기도 한 기하학적 모양의 문신이 담쟁이 덩쿨처럼 얽혀 올라가고 있었다.

"저는 안한다니까요."

"마사지만 해? 그래서 돈이 되나? 응..틈날 때마다 한탕씩 뛰어줘야 뭐 좀 버는게 있지 말야."

남자의 손이 다시 여자의 허벅지 안으로 들어갔다.

여자는 보통의 경우라면 하던대로 험한 소리를 해서라도 그를 막았겠지만 이 남자에게서 풍기는 분위기가 워낙 험상궂은 바람에 애써 화를 눌러참았다.

"손님 참..이쁜 애들 있다니까요. 난 얼굴도 못생겼는데 왜 이러실까."

여자가 다시 다리를 빼서 그의 손을 흘려 보냈다.

"어허..이거 서비스 엉망이구만. 어? 난 이쁜 애들 별로야. 통통한 애들이 좋아. 아가씨처럼."

"통통한 애들도 있어요. 이따 얘기하세요."

그러자 남자가 벌컥 소리를 질렀다.

"아..씨발..야, 너 수박도 안 사봤어. 수박 하나 사도 미리 맛을 보고 사는건데. 어? 여자가 수박만도 못하냐? 밑이 어떻게 생겼는지 먼저 만져봐야 될거 아냐. 내가 지금 너 먹겠다는 거야? 만져만 보겠다는 거 아냐. 맘에 드는지 아닌지 알아봐야 씹질을 하던지 할거 아냐."

여자가 뭐라고 대꾸하려고 할 때 그가 벗어놓은 바지 안에서 전화벨 소리가 울렸다.

남자가 얼굴을 돌리며 뭐라고 투덜거렸다.

"야. 전화기 좀 가져와 봐."

여자가 바지를 뒤져 전화기를 꺼내 남자에게 주었다.

"어..나야. 왜?"

전화를 듣는 남자의 얼굴이 좀 심각해졌다.

"니가 지금 거기 가 있는거야? 음,음..어떻게 찾아냈대?"

남자가 이마를 손으로 문지르며 말을 듣다가 소리를 높였다.

"이 새끼야, 그게 운으로 되는 일이야? 니네들이 사후관리를 잘 못해서 그런거 아냐. 듣기 싫어. 새끼들아."

남자가 몸을 약간 일으키는 바람에 엉덩이를 덮었던 수건이 내려갔다.

"하여튼 좀 더 지켜보고 있어. 들키지 말고, 새끼야. 일 더 크게 만들지마. 알았어? 형님한테는 내가 말할테니까."

남자가 전화를 끊더니 잠깐 생각에 잠겼다.

"마사지 계속 할까요?"

잠깐 옆에 비켜 서있던 여자가 말했다.

"아니, 너 잠깐 나가있어. 부르면 다시 들어오고."

여자가 입술을 비죽이며 밖으로 나갔다.

문이 닫히는 것을 보고는 남자가 어디론가 전화를 했다.

"예, 형님. 접니다. 수찬이요. 형님, 우리가 저번에 광길이네 엿 먹인거 있잖습니까. 아뇨,아뇨. 건설업자 껀 말구요. 차명계좌요. 네,네. 그거 갖고 도망갔던 놈을 광길이가 잡은거 같습니다. 예..동양이었죠..이 뭐라는 대리였던거 같습니다. 글쎄요..어떻게 잡았는지 정확한건 잘 모르겠습니다만..그 새끼들 운이 지독하게 좋은거 같습니다."

뭔가 안좋은 소리를 듣고 있는 듯 남자의 얼굴이 굳어졌다.

"근데 그건 어떻게 관리를 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어서..그 이 대리라는 놈과 저희는 사실 아무 관계도 없는 처지라..예,예. 접촉을 하면 우리 쪽이 더 탄로날 수도 있는 거라서요. 아, 그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제가 직접 했었는데 그 놈을 매수하거나 직접 부추긴게 아니구요, 부도낼걸 알아챌 수 있을만큼만 슬쩍 던져주고 나왔어요. 그 놈은 우리가 누군지도 모릅니다. 아마 광길이네 인원으로 생각했겠지요. 예,예...아마도 회수한다고 봐야겠지요. 신병을 손에 넣었으니까요. 장기라도 꺼내서 팔아치울 새끼 아니겠습니까. 지켜보고 있으라고 말은 해 놓았습니다. 예, 알겠습니다."

남자는 마사지 평상에 걸터앉아 살이 접힌 불룩한 자기 배를 바라보았다.

"좆같이 됐네..안될라니까."

그는 커다란 손으로 자기 어깨를 툭툭치며 혼잣말을 했다.

살이 흔들려 팔뚝부터 시작해 등으로 이어지는 날카로운 날개 문신이 역풍을 만난듯 흔들렸다.



"됐고..이 대리. 니 얘기는 듣고 싶지 않아. 들을 것도 없고. 우린 청산할 것만 남은 사이야. 줄건 주고 받을 건 받고. 우리 그거 확실하잖아. 그렇지? 이제 마무리나 잘 하자고. 자,자. 니가 먹고 튄 계좌 있지?"

이 대리가 머뭇거리자 사각 이마의 훅이 다시금 그의 얼굴에 작렬했다.

숨막히는 비명소리가 울리며 그의 얼굴이 금새 피로 물들었다.

그가 물에 빠진 사람처럼 숨을 내뱉으며 말했다.

"예,예."

"그 안에 10억을 넣어놓았었다. 자, 지금 얼마 남았나."

"5천만원 정도 쓰고 9억 5천 남았습니다."

"씨발 새끼. 그 동안 오천이나 썼어?"

광길이 그의 뒤통수를 다시 내리갈겼다.

"잘못 했습니다, 잘못 했습니다."

그가 연신 몸을 움츠리며 사정했다.

"니가 훔친 거 주인한테 돌려줘야겠지? 그렇지?"

"예,예."

"돈 어딨어?"

"CD로 바꿔놓았습니다."

광길이 사각 이마의 얼굴을 보며 밝은 웃음을 터뜨렸다.

"이민 갈 준비는 잘 해놨네. 응? 들고 튀기 좋게끔.."

광길이 이 대리의 머리를 툭툭 쳤다.

"그거 어따 놨냐?"

"옷장 안에.."

"어느 옷장? 이 개새끼야."



그녀는 묶인 남자가 한 대씩 얻어맞을 때마다 자기가 맞는 것처럼 몸을 움찔거렸다.

눈을 감거나 돌리려고 하면 옆에 서 있던 티셔츠 사내가 그녀를 노려보았다.

식은 땀이 그녀의 속옷을 모두 적신 것은 이미 예전이었다.

이젠 묶인 남자의 겁먹은 눈빛이 좌우로 휙휙 돌아가는 얼굴을 따라 이리저리 흩어질 때마다 속이 미식거렸다.

그나저나 나는 왜 납치한 걸까..저 사람은 어떤 돈을 떼어먹은거 같은데..그게 나랑 무슨 상관이 있어서..

그녀는 급증하는 공포 속에서도 의문을 놓을 수가 없었으나 물론 물어본다는 것은 꿈에도 생각할 수 없었다.



"대근이가 이 새끼 여자친구네 집에서 대기하고 있지?"

"예."

"전화 걸어. 그 여자는?"

"아침에 출근했답니다. 7시 넘어서 들어오고.."

"그 년은 아직 모르겠네?"

"그렇죠. 걔 집 나가고 나서 혼자 있는거 잡아온거니까요."

광길이 고개를 끄덕였고 사각 이마가 핸드폰을 열어 이 대리의 귀에 대어 주었다.

"설명해."

이 대리가 CD를 숨겨놓은 위치를 전화에 대고 설명했다.

몇차례 같은 설명을 반복하고 나서야 전화기 저편에서 찾았다는 말이 흘러나왔다.

"나머지 오천은 어떻게 채울거야?"

"한번 용서해 주시면 일주일 안에 반드시.."

대답이 끝나기도 전에 짧은 훅이 그의 얼굴을 강타했고 핏 속에 이빨이 부러져 나오는 것이 보였다.

사각 이마가 손수건으로 주먹에 묻은 피를 닦았다.

"이 새끼가 누굴 호구로 아나."

광길이 눈짓을 보내자 모히칸 스타일로 머리를 삐죽삐죽 기른 남자가 들고있던 서류철만한 가죽가방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풀그레인으로 손질한 돼지 가죽에 청동으로 된 사이드 잠금장치가 붙어 있었는데 가방을 펼치자 그곳엔 장도리, 줄, 송곳,집게 등 건축 공구를 연상시키는 각종 도구가 부착된 주머니 홈에 차곡차곡 꽂혀있는 것이 보였다.

그는 거기서 부틸러버로 감싼 손잡이가 약간 호를 그리며 휘어져 있고 머리는 니켈 도금이 되어 거울처럼 반짝거리는 작은 망치를 꺼냈다.

모히칸 스타일은 손목을 이용해 망치를 한바퀴 돌리더니 의자를 옆으로 차서 이 대리를 비닐 바닥 위로 쓰러뜨렸다.

그는 결박된 채 옆으로 넘어지며 소리를 질렀다.

남자들이 한 쪽 손을 풀어 바닥에 댔다.

"너..사람 몸의 가치가 어느 정도라고 생각하냐?"

"바로 드릴께요. 바로 드릴께요."

이 대리가 몸부림을 치며 소리질렀다.

"조용히 해. 이 새끼야."

돌격대처럼 생긴 사내가 이 대리의 팔을 붙들고 체중을 실어 바닥에 내리눌렀다.

"너도 금융을 해봐서 알겠지만 세상 물건엔 다 가치가 있다. 내가 이 일을 하면서 깜짝 깜짝 놀라는게 뭔지 아냐? 그 가치라는게 다 돈으로 환산되더라는 거야. 응? 물건도, 시간도, 보이지 않는 감정까지도. 죄다,죄다. 첨엔 싫다고,안된다고 하다가 돈 꺼내들면 변하는 새끼들 정말 많이 봤지. 하물며 사람 몸이야, 어? 코하나, 눈하나, 귀하나, 머리카락 하나까지 전부 돈으로 계산돼."

사각 이마가 모히칸 스타일이 넘겨 준 10인치 워터펌프 플라이어로 이 대리의 검지를 잡아폈다.

손가락 뼈의 컴팩본이 압착되어 찌그러지자 이 대리가 몸을 뒤틀며 소리를 질렀다.

"하나 묻자. 어때? 니 몸은 얼마나 가치가 있다고 보냐? 예를 들어 지금 니 손가락 하나. 이게 얼마나 할거같냐? 니 생각엔."

"금새 갚겠습니다. 바로 갚을께요."

이 대리가 정신없이 소리쳤다.

"지금 그걸 묻는게 아니잖아. 이 새끼야. 니 손가락이 얼마나 할거 같냐고? 엉? 잘 모르겠어? 내가 보기엔 몇 만원도 좆도 안나갈거 같은데. 안그래? 근데 그렇게 계산했다간 니 손가락 발가락 다 접수해도 턱도 없겠고. 씨발. 좋다. 우리가 크게 쳐줄께. 니 손가락 하나당 천만원으로 하자, 천만원. 말이 되냐? 씨발 새끼야. 손가락 하나에 천만원이라니. 너 우리 아니면 어디가서 좆도 아닌 니 손가락 하나에 천만원씩 받겠냐?"

광길이 팔짱을 끼며 발끝으로 바닥을 톡톡 찼다.

"손가락 하나에 천. 5000만원이니까 다섯개. 딱 떨어지게 정리되네. 됐냐? 왼손은 앞으로 못쓰겠네."

그가 무표정하게 내뱉었다.

"작업해."

모히칸 스타일이 망치를 쥔 팔의 어깨를 크게 돌렸다.

망치머리가 어두운 은빛꼬리를 끌고 정확히 손가락 두번째 마디에 떨어졌다.

관절 연골이 박살이 나면서 인대와 힘줄의 아교섬유들이 라면가닥처럼 끊어졌다.

이 대리가 폐부를 긁어내는 듯한 소리를 지르며 발버둥을 쳤으나 금속 프레임워크로 제작된 의자에 단단히 묶여있는 결박들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숨 들이마셔. 이 새끼야. 아직 기절하지마."

광길이 이 대리의 얼굴을 차며 말했다.

"다음."

다시금 플라이어의 이빨이 중지를 물어 펴고 강한 원심력에 의한 충돌력이 망치로부터 손가락 관절로 옮겨갔다.

윤활 관절 속 석회화된 뼈의 매트릭스가 종잇장처럼 펴지며 수십조각으로 갈라져 나가면서 세정맥과 세동맥이 흥건하게 터져나갔다.

이 대리가 새된 비명을 지르며 선불맞은 멧돼지처럼 튀어올랐다.

그치지 않는 비명 속에서 냉혹한 광길의 목소리가 도장찍듯 계속되었다.

"다음."



그녀는 얼굴을 돌리며 눈을 감았다.

즉시 그녀의 뺨에 불이 났다.

"누가 움직이래? 눈 똑바로 안떠."

티셔츠 사내의 건들대는 손 끝과 진 옆면의 이음새를 박아놓은 굵은 회색 실이 눈에 들어왔다.

그녀의 눈에 눈물이 고였으나 닦을 생각도 못하고 부들부들 떨며 사내들 쪽을 바라보았다.



다섯 차례의 고문이 광적인 비명과 악다구니 속에서 끝나자 쓰러져 있던 남자가 아기 소리같은 흐느낌을 내더니 조용해졌다.

광길이 손짓을 했다.

"깨워."

"주사할까요?"

"놔. 아직 할거 많아."

무지 원단으로 만든 와이셔츠를 걸친 조직원이 손가락 사이에 1회용 주사기를 끼운 채 다가오더니 레보파놀 2mg을 근육주사했다.

"주전자."

물이 담긴 주전자의 물이 이 대리의 얼굴에 퍼부어졌다.

이 대리가 숨을 들이키며 몸을 꿈틀댔다.

고통이 다시 전달되었는지 그는 곧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이 악물어. 더 떠들면 혓바닥을 뽑아버리겠어."

얼굴을 몇번 더 걷어차이자 비명은 흐느끼는 소리로 변해 잦아들었다.

광길이 쓰러져 있는 이 대리의 옆에 쪼그려 앉았다.

"계산해보자. 우리 부업 중 하나가 대부업이다. 사채업자지. 넌 가진 것도 없고 신용도 꽝이니까 너 같은 새끼가 돈을 빌리러 오면 우리 기준으로 5등급 대우를 해준다. 5등급 기준이 어떻게 되냐?"

광길이 묻자 좀 전에 주사를 놓았던 녀석이 다 쓴 주사기를 검은 비닐 봉투에 담으며 대답했다.

"선이자로 6부 제합니다."

"들었지? 10억에 6부면 한달에 5천이다. 넌 한달 반을 빌렸으니까 7천5백이 되겠네. 거기에 까먹은 돈 5천. 1억 2천5백이다. 우리한테 갚을 돈이 1억 2천 5백이라구. 알아듣냐? 씨발 새끼야."

광길이 쓰러져 있는 이 대리의 몸통을 걷어찼다.

"어떻게 갚을건데? 엉?"

그가 숨이 막혀 발버둥쳤다.

"너, 이 새끼. 집하나 있더라. 수원 파장동이지? 27평 짜리. 12년 된거. 야. 거기 요새 시세 어떠냐?"

기다렸다는 듯이 주사잡이가 대답했다.

"거기 동네가 좀 후져서요. 평당 500 정도 할 겁니다."

"그럼 1억 3천 5백이네. 딱 맞네. 씨발 놈. 취득세, 등록세 떼고 채권사면 500만원 정도 들겠네. 나머지 500은 우리가 일 다해주니까 수고비로 쓰고. 그치? 니가 내라, 등록세. 아님 우리한테 1000만원 더 받을래?"

그가 다시 한번 걷어찼다.

이 대리는 너덜너덜해진 왼손을 바닥에 붙인 채로 끙끙거리며 몸을 뒤척였다.

"아니요, 아니요."

"그럼 지금 계약하자. 응?"

이 대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일으켜 세워."

남자들이 그를 일으켜 세웠다.

"니가 상태가 안 좋으니 니가 해야 할 일을 우리가 대신 해주겠어. 고마운 줄 알아. 이 새끼야."

광길이 손짓을 하자 접이식 탁자 하나가 그의 앞에 펴졌다.

"니 아파트 근저당 잡혀있냐?"

"아뇨."

이 대리는 피와 눈물과 땀으로 벅벅이 된 얼굴을 가로저었다.

"그럼 그건 됐고. 인감 몇개 쓰냐?"

"하나..하나 있습니다."

"어따 뒀어?"

"거기 장롱.."

"뒤져보라구 해."

사각 이마가 전화를 넣더니 잠시 후 그를 바라보았다.

"예, CD랑 같이 챙겼답니다."

광길이 다시 그를 보았다.

"너 통장가지고 있지?"

"네.."

"어딨어?"

"CD넣은데 같이.."

"야. 걔네들한테 통장 찾으라고 해."

전화를 하던 남자가 말했다.

"찾았답니다."

"얼마 있냐?"

"80만원 정도 있답니다."

"씨발 새끼. 죄다 CD로 바꿔놨구만."

광길이 욕을 하더니 말했다.

"그 통장에 도장 따로 쓰냐?"

"아뇨. 인감으로.."

"됐어."

광길이 사각 이마에게 지시했다.

"거기다 아파트 매매대금 송금하고 송금 영수증 만들어놓으라고 해. 돈은 다시 찾아오고."

"예."

"주민등록증은 어딨어?"

"제 지갑에.."

"지갑."

광길이 조직원들을 바라보자 모히칸 스타일이 챙겨놓았던 지갑을 뒤져 주민등록증을 빼내서 광길에게 건넸다.

"이 새끼..이 사진엔 또 안경썼네. 야. 이거 들고 가서 최대한 비슷한 애 골라서 안경 씌워. 중간에 대근이 만나서 인감 받고 가까운 구청 보내서 서류 떼라고 해. 등본,초본, 인감증명서 이렇게. 알지?"

"예."

모히칸 스타일이 주민등록증을 받아 들었다.

"서류 준비한거 좀 가져와봐."

사각 이마가 서류를 가져왔다.

서류가 탁자 위에 놓여졌다.

등기 위임장과 부동산 양도신고확인서였다.

"여기 이름 쓰고 서명해."

이 대리가 성한 오른 손으로 펜을 들었다.

그는 최대한의 극기력을 발휘해서 떨리는 손을 진정시키며 서류 자락에 이름을 썼다.

광길이 여자 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야. 기집애 일루 데려와봐."



그녀는 자기가 지명되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티셔츠 사내가 한 손에 머리채를 휘어잡고 그녀를 일으켜 세웠다.

갑자기 일으켜 세워지는 바람에 다리가 제대로 움직여지지 않아 그녀는 반은 절룩거리고 반은 질질 끌려가며 엉거주춤 광길의 앞에 세워졌다.

"얘네 둘, 얼굴 붙여서 사진 한장 찍어라. 애인처럼."

사각 이마가 턱을 긁었다.

"애인 하기엔 저 새끼 얼굴이 좀..너무 더러운데요."

"약간 닦고, 임마. 나머진 뽀샵해. 스티커 사진 만들거니까..작게 나오니까 괜찮아. 여기저기 하트 박아놓으면 되잖아. 새끼야."

이 대리의 얼굴이 손수건으로 대충 닦였고 그녀는 반쯤 주저앉아 아주 친한 것처럼 그와 뺨을 마주대야 했다.

"웃어. 씨발 연놈들아."

사각 이마가 윽박지르자 그녀는 카메라 렌즈를 향해 웃는지 우는지 모를 표정으로 이빨을 드러냈다.

"이것들이 사진 첨 찍나. 웃는 거 몰라? 웃는 거까지 뽀샵해줘?"

파인더를 보던 사각 이마가 소리쳤다.

"따라해. 씨..발.."

사내들의 웃음이 터졌다.

그녀는 심장이 막힐 것 같은 두려움 속에서도 마주 댄 뺨을 통해 부들거리며 떠는 남자의 경련을 느낄 수 있었다.

조그만 디지털 카메라의 전자 셔터음이 울렸다.

"됐어. 넌 그 사진 가지고 애들 찾아가서 스티커 사진 만들어. 저 새끼 쓰던 물건 아무거나 하나 정해서 거기에 붙여가지고 쟤네 여자친구네 집에 흘려. 하는 거 알지?"

"그럼요."

광길은 서류를 거둬서 아까 주민등록증을 받았던 모히칸에게 건네주었다.

"넌 아까 말한 서류 다 준비되면 여기에 인감찍어서 수원으로 내려보내. 검인 신청하고 등록세부터 내야 한다. 그때 송금 영수증 줘야 돼. 그래야 필증 나와. 토지대장,관리대장 떼고 인지 떼고. 알지? 기본적인 거니까. 응? 챙겨야 될 서류 많아. 잊어먹지 말고. 알았어?"

"예."

"빨리빨리."

그가 시계를 보았다.

"아직 해 많이 남았네. 빨리 해서 오늘 내로 마쳐. 보내."

조직원이 나가자 광길이 말했다.

"책상 치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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